최근 수정 시각 : 2019-05-17 23:17:50

봉중근


봉중근의 수상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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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청룡기 전국고교야구 선수권대회 MVP
정형주(휘문고등학교) 봉중근 (신일고등학교) 이상훈(경남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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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리그 역대 골든 글러브 사랑의 골든글러브 부문 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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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2000년
첫 수상 박정태
롯데
이승엽
삼성
2001년 2002년 2003년 2004년 2005년
이병규
LG
수상자 없음 수상자 없음 정민태
현대
송진우
한화
조웅천
SK
롯데 자이언츠
선수단
2006년 2007년 2008년 2009년 2010년
이진영
SK
손민한
롯데
박용택
LG
한화 이글스
선수단
이대호
롯데
봉중근
LG
2011년 2012년 2013년 2014년 2015년
박용택
LG
김태균
한화
조성환
롯데
김광현
SK
강민호
롯데
2016년 2017년 2018년 2019년 2020년
박정권
SK
신본기
롯데
손아섭
롯데
포수 | 투수 | 1루수 | 2루수 | 3루수 | 유격수 | 외야수 | 지명타자 | 사랑의 골든글러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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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중근의 직책/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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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66.media.tumblr.com/tumblr_odn5wgCMUU1sqk8veo8_r1_500.png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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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 AG 2000 Oly 2002 AG 2004 Oly 예선 2006 WBC
심재학 김기태 이종범
2006 AG 2008 Oly 예선 2008 Oly 2009 WBC 2010 AG
박재홍 박찬호 진갑용 손민한 봉중근
2013 WBC 2014 AG 2015 P12 2017 WBC 2017 APBC
진갑용 박병호 정근우 김재호 구자욱
2018 AG 2019 P12 2020 Oly
김현수
ⓐ 1998년 이전의 올림픽과 야구선수권대회에는 아마추어 선수만 출장했으므로, 따로 주장 경력을 기재하지 않았다.
ⓑ 2017년 APBC는 U-24 대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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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트윈스 등번호 47번
김광우(2006) 봉중근(2007~2008) 이형종(2009)
LG 트윈스 등번호 51번
정의윤(2005~2008) 봉중근(2009~2018) 임지섭(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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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KBS_로고.png 야구 중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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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자 김현태 이광용 권성욱 강성철 이기호 이호근
파일:KBS_로고.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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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KBS_로고.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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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자 이용철 장성호 안치용 봉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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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PicsArt_06-06-01.33.55.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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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봉중근 야구해설위원.jpg
KBSKBS N SPORTS 야구 해설 위원.
이름 봉중근(奉重根 / Bong-Jung Keun )
생년월일 1980년 7월 15일 ([age(1980-07-15)]세)
국적 대한민국
출신지 서울특별시 강북구
종교 개신교
학력 서울수유초-신일중-신일고-성균관대[1]
포지션 투수
투타 좌투좌타
신체조건 190cm, 98kg, B형
프로입단 1997년 아마추어 자유계약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2007년 LG 트윈스 1차 지명
소속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2002~2003)
신시내티 레즈 (2004)
LG 트윈스 (2007~2018)
해설위원 KBS/KBS N SPORTS 야구 해설위원 (2019 ~ )
등장음악 Drowning Pool - Soldiers[2]
소속사 생각을보여주는 엔터테인먼트
SNS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png

1. 소개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2.2. 애틀란타 브레이브스 시절2.3. 신시내티 레즈 시절2.4. LG 트윈스 시절
2.4.1. 2007 ~ 2008 시즌2.4.2. 2009 시즌2.4.3. 2010 시즌2.4.4. 2011 시즌2.4.5. 2012 시즌2.4.6. 2013 시즌2.4.7. 2014 시즌2.4.8. 2015 시즌2.4.9. 2016 시즌2.4.10. 2017 시즌2.4.11. 2018 시즌
3. 해설위원 경력4. 플레이 스타일5. 이모저모6. 연도별 주요 성적

1.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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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 봉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신시내티 레즈, LG 트윈스 소속의 투수이며 2019 시즌부터 KBS N SPORTS 야구 해설위원이다.

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

파일:YBMe0kL.jpg
신일고시절 타자 봉중근.

신일고 시절 투수로서 뿐 아니라 타자로도 대단한 재능을 보여주었던 선수다.[3] 또한 1997년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에서 4게임 연속 홈런, 타율 5할을 기록하며 최우수선수가 되었다. 같은 해 청룡기에서는 타율 .688이라는 후덜덜한 기록을 보여주며 MVP, 타격, 타점왕을 휩쓸기도 했다. 1997년 신일고의 황금 클린업 트리오[4] 봉중근-안치용-김광삼 그리고 1번타자 현재윤[5]은 국내 4개 대회에서 신일고의 3관왕을 이끌었고 세명은 최우수타자, 최우수선수, 최우수투수, 대회MVP 등 각종 상을 휩쓸었다. 이 놀라운 활약 덕에 97년 당시 고3의 신분으로 애틀란타 브레이브스에 스카웃되어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무대를 밟는다.

2.2. 애틀란타 브레이브스 시절

원래 애틀란타에서는 타자로 키울 생각이었으나[6] 좌완에 148km/h를 찍는 것을 보고 투수로 전향시켰다. 이와 관련 봉중근 선수 본인이 인터뷰 및 자신의 자서전에 기록한 내용을 토대로 설명하자면, 훈련장에 간 첫날 타격연습을 시작했는데, 자신의 스윙이 잘못된 것인지 계속해서 배트가 부러졌다고 한다. 4,5자루의 배트가 전부 부러진 상태에서 여분의 배트도 없던 중에 좌완인걸 보고 투수쪽 연습에 합류하라고 얘기하였고, 그때부터 투수의 길을 걷게 되었다고 한다. 본인은 당시 어려서 다른 의견을 내고 말고 할 여지가 없었다고 하는데, 훗날 은퇴 전 팀에서 허락한다면 딱 1년만이라도 타자로 전향해보고 싶다고 한다. 대개 나이를 먹음으로 인해 구속이 저하되기 시작하면, 제구력을 갈고 닦아 롱런할 수 있는 투수와는 달리 타자 생명은 하향세가 되므로 이는 그냥 얘기하는 정도로만 생각해도 될듯.

2002년 메이저리그로 콜업. 2002년 4월 23일 터너 필드 對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전의 선발투수로 메이저리그 첫 경기 등판. 애리조나의 에이스 커트 실링과 맞대결을 벌였으나 6이닝 5실점을 기록했다.

2.3. 신시내티 레즈 시절

이후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를 오가며 2004년 시즌 시작되기 직전 신시내티 레즈로 트레이드 된다. 2004년 6월 21일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원정경기에 등판, 6이닝 무실점으로 메이저리그 처음이자 마지막 선발승을 거둔다.[7] 참고로 봉중근의 메이저리그 첫 승은 2003년 7월 6일 몬트리올 엑스포스와의 경기에서 거둔 구원승이었다. 이후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를 오가다가 2005년 팔꿈치 부상으로 한 해를 통째로 쉬고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이후 LG 트윈스에 입단한다.

2.4. LG 트윈스 시절

2.4.1. 2007 ~ 2008 시즌

파일:47번 봉중근.jpg
당시 47번을 달던 시절. 팀에서 얼마나 기대가 컸는지 알 수 있는 장면이다.[8]

2007년에 LG 트윈스에서 수준급의 선발을 기대했으나 초반에 반짝하고 후반엔 두들겨 맞았다. 그리고 5월 4일 두산과의 경기에서 5회말 안경현에게 머리로 향하는 투구를 하였고 이에 화난 안경현이 달려들자 난투극을 벌였다. 그리고 벤치클리어링이 일어났으며 심판진에 의해 퇴장당한다.

Don't Try this at Home
파일:eMMpvJN.gif
백 바디 드랍을 받아라.[9]

20분짜리 풀버전을 보면, 당시 기묘한 불운, 답이 없는 LG의 수비, 그리고 아직 그런 LG를 감당할 수준이 못된 봉중근의 멘탈을 다 볼수 있다. [10]

2007년도 기대치 이하의 성적으로 인해 연봉이 1억이나 깎이는 폭풍세일을 당하기도 했으나, 2008시즌에 들어와서 LG 마운드의 당당한 에이스가 되었다. 새로 얻은 별명은 봉타나… 하지만 팀 성적이 팀 성적인지라 8이닝을 무실점으로 던지고 내려가도 9회에 역전당하는 가슴아픈 순간을 자주 겪어서 2007년의 윤석민을 보는 듯 하였다는 평이 다수 존재한다. 그리하여 평균자책점 2.66의 뛰어난 호투에도 불구하고 11승으로 두자리 승수를 겨우 넘긴데다 8패나 당하는 바람에 2008년 윤석민상의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그러한 상황 속에 아래 짤방이 마리오의 노래 'Good bye'의 뒷 부분에 가사 'Don't Cry'가 반복되는 부분이 브금으로 깔려 돌아다니며 봉크라이라는 별명이 붙여졌다. 안습.

파일:external/i2.media.daumcdn.net/20090409215707818.jpg

2008시즌 9월 3일 등판하여 롯데 자이언츠의 연승 가도를 막았다. 6⅔ 이닝 1실점으로 호투하여 롯데 자이언츠의 폭발적인 화선을 잠재웠다. 덕분에 12연승을 노리던 롯데 자이언츠에게 고추가루 포를 제대로 먹였다. 만약 9월 3일에 LG가 승리하지 못했더라면 롯데는 16연승까지 가능했기에 롯데 팬들에게 원망의 대상이 되었다.

2008 베이징 올림픽 대표팀에 차출되어 미국전과 대만전 2경기 선발 등판했지만 각각 3실점, 5실점하였으며 ERA 8.31을 기록하였고 한기주에 이어 두번째로 나쁜 성적을 기록했다.

2.4.2. 2009 시즌

2009년 초엔 이런 투수를 마무리로 기용한단 기사가 나와 논란이 일었다.(참조) 야구팬들은 김재박 감독이 또 사고쳤다면서 맹비난하였다.

하지만 WBC 이후 선발로 기용하기로 다시 방침을 변경했다. (참조)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일본과의 예선 2차전에서 본인이 지망해서 선발투수로 출전해 일본을 상대로 압도적인 투구를 보여줘 국내야구 갤러리등에서 엄청난 찬양을 받았다. 그리고 야갤에서는 안중근 의사와 이름이 같은 것을 빗대서 만든 짤방까지 나왔다. 일명 의사 봉중근. 그리고 LG 트윈스는 이걸 프린트한 티셔츠를 한정판으로 팔았다.


참고로 검은색 실루엣은 스즈키 이치로

파일:tETj1wW.gif
3월 18일 벌어진 일본과의 2라운드 경기에서 두차례에 걸친 견제구 동작(퀵모션)만으로 이치로슬라이딩을 할 정도로 당황스럽게 만들어 이치로 전용 조련사 타이틀을 획득했다. 실제로도 국내에서 주자견제능력은 최고수준. 견제율이 약 7할에 근접한다.

한일 베이스볼 클래식 5차전WBC 결승 대 일본전에 세 번째로 선발 등판했지만, 지난 2경기에서 당한 것에 칼을 갈고 나온 일본 타자들의 집요한 커트 신공에 말리고, 심판의 석연치 않은 판정에, 성적 자체는 4이닝 1실점(비자책)으로 준수하였지만 투구수가 많았던 것이 흠 아닌 흠이었다.

어쨌든, 이제 봉신연의는 막 시작했을 뿐이었다.

2008년 4월 15일, 잠실 KIA전에서 선발 투수로 등판해서, 타선이 무려 8점씩이나 내준 덕에 손쉽게 승리하나 했으나, 우규민정찬헌의 불질로 날려먹었다. 이 경기를 세간에서는 415 막장대첩이라 부른다. 그리고, 정확히 1년 후인 09년 4월 15일, 문학 SK전에서 먼저 3실점하긴 했으나 타선이 4점을 내 준 덕에 승리투수가 될 뻔 했으나, 이번에도 우규민의 부진으로 무산. 더더욱 안습인 것은 09년 4월 15일 새벽에 봉중근 딸이 태어났고, 봉중근은 '딸을 위해 승리투수가 되겠다'라며 등판한 것. 참으로 지못미. 이때 잠시 "딸아, 네가 태어나던 날 아빠는 선발투수였단다. 아빠가 내려가기 전까진 이기고 있었지. 그런데 규민이 삼촌이..." 라는 드립이 유행했었다.

2009년 6월 4일 한화 이글스와의 대결에서 6이닝동안 9개의 탈삼진을 잡아냈지만 타선의 도움을 받지 못해 패전투수가 됐다. 안습한 팀내사정 때문에 선발과 마무리 보직을 오가며 컨디션까지 흔들렸던 윤석민과 함께 2009년 윤석민상 타이틀을 경합 중이었지만 윤석민이 폭발한 팀타선을 배경으로 호투로 승수를 쌓고있던데 반해 봉중근은 여전히. 다만 류현진이라는 변수가 등장했다. 참고로 류현진과 함께 다패 공동 2위였다.[11]

2009년 8월경 팔꿈치 통증으로 인한 컨디션 난조라는 LG트윈스 최악의 악재가 벌어지고 말았다. 근데 자고 났더니 통증이 사라졌다고. 하지만 8월 27일에 결국 시즌 아웃 기사가 나왔다.

10월 25일 일요일에 같은 팀의 박용택과 함께 현대백화점 신촌점에서 사인회를 가졌다.

결혼한 아내와의 이야기가 특이한 듯. '날 때린 여자는 네가 처음이야'식 발언부터해서 부모님에게도 맞은적 없는데등등의 발언을 했다고.기사를 한번 보자

2009년에 랩퍼 이비아와 함께 사랑해요 LG 힙합버전을 불렀고, 수준급의 랩을 했다. 이곳에서 들어보자

팀의 유일무이한 에이스였는데...연봉 동결. 이쯤 되면 이 사람이 선수인지 자원봉사자인지 구분이 안 갈 지경.

2.4.3. 2010 시즌

2월 25일, 훈련을 하던 중 햄스트링 부상을 당했다. 최훈의 GM카툰에 의하면 이곳 부상은 완치가 쉽지 않다고 하는데...

4월 4일 경기에서 3이닝 동안 많은 실점을 하고 강판 당한 직후에 몸 상태도 안 좋은 데다가 에이스 답지 못한 태도의 경기를 했다는 이유로 감독과 트러블이 생겨서 2군행이 결정되었다. 그런데 감독과의 트러블이 생긴 과정에서 봉중근이 부인에게 감독에게 들은 말을 옮겼고 위의 이야기에서도 봤듯이 기가 센 것으로 보이는 부인이 그 말을 듣고 열이 뻗쳐서 싸이에 감독을 욕하는 심경문을 올렸다. (링크바람) 이형종의 싸이 감독 맞짱신청 사건이 있은지 1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서 터진 싸이홈피 사건이었다. 이로 인해 봉중근과 박 감독과 봉중근 부인에 대해 보는 시점에 따라서 각자 다르게 까였다.

그러나 그 이후로 서서히 페이스를 살려서 언제 그랬냐는 듯이 팀의 에이스로 자리매김중. 마운드가 불안하면 언제든지 구원투수로 나갈 수 있다고 밝히는 등 팀 케미스트리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2010년 8월 25일까지 10승(리그 9위) 8패, 평균자책점 3.31(리그 5위), 탈삼진 112개(리그 5위) 160⅓이닝(리그 2위)를 기록중. 거듭된 혹사와 부상으로 직구 구속을 크게 떨어뜨린 채 던지고 있다고 한다.

2010년 최종성적은 178⅓이닝 10승 9패 평균자책점 3.58, 탈삼진 130개를 기록. 08년 이후로 정상적인 선발로테이션을 돌린 적이 거의 없는 LG 트윈스에서 유일하게 3년동안 자기 자리를 지켜왔지만 완만하게 성적이 하강곡선을 그리고 있는것이 안타까울 따름. 또한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에도 류현진-김광현-양현종 과 함께 좌완 에이스부대의 맏형 노릇을 해야 한다.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국가대표 주장으로 발탁됐으나 훈련기간 불미스러운 루머[12]에 시달렸다.

아시안 게임 1차전 대만전에서는 7회초에 원래 윤석민이 등판하려고 했는데, 윤석민이 경기 전 등록된 선수 명단에 없어서 쫓겨나고 대신 급히 등판했다. 그리고 역시나 몸이 안 풀린 건지 볼은 볼대로 많고 상대 타자들도 잘 잡지 못했다. 그나마 손시헌의 센스로 무실점으로 잘 막았으니 다행이었다.

성균관대학교 스포츠과학부에 10학번으로 입학했다. 셋째 누나가 성균관대 대학원에 다니고 있어서 도움이 많이 되었다고. 조무근과 대학동기다

산다라박을 격하게 아낀다는 말을 했다.

김성근이 탐나는 선수 톱3중 하나라고 밝혔다. 나머지 둘은 당연히 이대호류현진.[13][14][15]

2.4.4. 2011 시즌

3년간의 혹사때문에 몸에 무리가 많이가서 전훈때도 2월이 지나서야 공을 만졌다고 한다. 그런데 시범경기에서 덜컥! 팔꿈치 통증을 느껴 팬들을 놀라게 했으나 이상 없다는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무리하면 안되기에 4월말에 복귀한다고 한다.

관중석에서 LG 경기를 관람하는 게 카메라에 잡혔는데 LG가 찬스를 놓치거나 역전을 당할때 역동적인 안타까움을 몸으로 표현해서 관중근 이라는 별명이 새로 생겼다.

그렇게 재활과 준비의 시간 끝에 5월 1일날 볼질로 판을 거하게 말아먹은 심수창과 교체되어 등판했다. 이 때의 환호성은 그야말로 잠실이 떠나가라 수준. 이 날의 기록은 3⅔이닝 4볼넷 3탈삼진 2실점 2자책점을 기록했다. 아직 몸상태가 완전하지 않다는 걸 고려하면 그렇게 나쁜 편은 아니다.

5월 3일 두산 베어스 전에서 역동적인 응원이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 박용택이 적시타를 때리자 기뻐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5월 10일 한화 이글스와 경기전에 류현진과 반갑게 인사하는 모습이었는데 그 포즈가 꽤나 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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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왔던_나_에에에_수줍은.jpg

경기 때 이외에는 다 선후배간이니 친해서 그런것이겠지만 봉중근이 좀 장난스럽게 들이댄 듯한 모습이다. 거기에 난감해하는 류현진의 모습이 인상적.

그러나 시즌 시작 전부터 봉중근을 괴롭혔던 부상문제가 결국 완전히 그의 발목을 잡고야 말았는지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되고 말았다.관련기사

팔꿈치 인대접합수술을 하는 것이 거의 확정적인 분위기인데 이럴 경우 수술 후 재활까지 생각한다면 빨라야 2013년에 복귀가 가능하기에 봉중근 본인에게도 크나큰 아픔인 셈이다. 박종훈 감독이 부상사실을 빨리 말하지 않은데 대해 책망을 했다고 한다. 봉중근은 팀 분위기가 좋은 이때에 꼭 보탬이 되고 싶어 부상을 참았다고.

인대접합수술을 마치고 재활에 들어갔다고 한다. 다시 150km/h를 던질 수 있을 거 같다는 말을 덧붙이며 수술소감을 밝혔다.

6월 26일 다시 LG선수단을 방문해서 인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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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원에_한_대씩_이다.jpg

2012년 5월을 복귀시점으로 잡고 재활에 매진한다고 했다. LG 트윈스연이은 트레이드로 투수를 많이 확보해 놓은 상황이라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재활할 수 있는 여건은 마련된 상태였는데, 그놈의 승부조작 사건이 터져 트레이드해온 두 선수가 없어져버렸다.

2012시즌 연봉협상에서 신연봉제의 칼날을 피해가지 못하고 무려 전년대비 61%가 삭감된 1억 5천만 원에 사인했다.

2.4.5. 2012 시즌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봉중근/2012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재활 후 시즌 초 마무리로 전향했던 레다메스 리즈가 불안한 모습을 보이자 대신 마무리로 활약하기 시작했다. 이후 좋은 성적으로 LG의 불펜진을 안정시키며 팬들을 설레게 했으나, 6월 말 엘 꼴라시코에서 강민호에게 동점 투런을 맞고 소화전에 화풀이하다 윤석민처럼 오른손을 다치고 만다. 마무리 부재로 결국 LG는 다음날에서도 9회에 동점을 허용하고 연장에서 역전을 당했고, 마지막에는 이용훈에 퍼펙트게임 직전까지 끌려간 끝에 엘꼴라시코에서 스윕패를 당했다. 이후 7월 10일부터 1군에 복귀하였다.

2.4.6. 2013 시즌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봉중근/2013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파일:external/file.osen.co.kr/201310052055770326_524ffe634500a.jpg
2013년 정규시즌 두산 베어스와의 마지막 경기에서 2위 확정 세이브를 한 직후.
파일:/image/410/2013/01/29/20130129_1359449794.jpg_59_20130129180317.jpg
전훈 때의 개그 본능

그리고 2013시즌 위의 저 패션을 경기중 덕아웃에서 또다시 보여줘 네이버 중계창의 팬들을 제대로 웃겨주었다.영상 링크

2.4.7. 2014 시즌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봉중근/2014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전반적으로 난타당하기도 했지만 극한의 타고투저 속 마무리로서는 평균자책점이 제일 낮았다. 이 해 세이브왕 손승락이 4.33, 2위 임창용 모두 5.84의 평균자책점에서 놀았던 것을 감안한다면.

2.4.8. 2015 시즌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봉중근/2015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4.9. 2016 시즌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봉중근/2016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해당 문서를 참조. 너무나도 급속도로 퇴물이 되어버렸다. 2군에서도 방어율이 심각하게 처참할 정도이니...

그러나 9월달부터 선발진에서 나름 나쁘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었고 가을야구까지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2.4.10. 2017 시즌

시즌 후 FA 자격을 취득해 LG 트윈스와 2년 15억원에 FA계약을 체결했다.출처

그런데 4월 이후 2군 등판 기록이 전혀 없어 팬들이 의아해하던 중 어깨 부상으로 인해 수술 또는 재활이 필요하다는 꽤나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결국 2017년 6월 28일 미국 조브 클리닉에서 수술을 받았으며 재활 기간이 1년 정도 소요된다고 한다. 2017시즌은 이렇게 날렸고 2018시즌도 복귀가 불투명하게 됐다.

시즌 이후 인터뷰에 따르면 4월 30일 1이닝 등판을 마지막으로 1군 콜업 통보를 받았는데 이날 등판서 아웃카운트를 잡고 나서 인대 파열 부상을 당했다고 한다. 현재는 2018 시즌 5월달 복귀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한다.

2.4.11. 2018 시즌

시무식에서 탈모가 매우 극심한 근황이 발견되고 말았다..문제는 목표가 2018년 5월이라지만 이미 수술을 여러번 받은 몸에다 불혹을 앞둔 나이라 2018년에도 시즌을 통으로 쉴 가능성이 높아보이는게...

사이판으로 갔다고 한다. 여태 봉중근은 재활할때 약속의 땅 사이판으로 갔던만큼 복귀의 의지가 강력한듯. 팬들도 제발 돌아오기를 바라고 있다.

마무리 투수 정찬헌이 시즌 개막 한 달만에 3블론세이브를 터뜨리면서 LG팬들은 봉중근을 너무나 그리워하고 있다.

6월 잠실야구장을 방문했을 당시 봉중근을 만나본 LG팬의 말에 의하면 7월말 복귀를 예상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아시안게임 브레이크가 지난 이후에도 돌아오지 못했고 결국 2018년 9월 19일 봉중근은 재활을 중단하고 은퇴하기로 결정했다. 끝내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LG 관계자에 따르면 봉중근은 최근 구단과 상의 끝에 파란만장했던 선수 생활을 마감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6월 28일 어깨 수술을 받고 1년이 넘게 재활에 몰두해 왔지만 더딘 회복 속도에 한계를 느껴 은퇴 결심을 굳힌 것으로 보인다. 기사 은퇴식은 9월 28일 KIA전에서 가진다.

9월 28일 은퇴식을 가졌다. 특유의 견제동작을 한 차례 보여준 후 포수로 김정민 코치를 앉히고 시구를 했다. 캐스터의 말처럼 어깨가 상당히 좋지 않아 보였고 그로 인해 전력투구까지는 하지 못했다. 투구 후 김정민 코치와 함께 손으로 하늘과 팬들을 향해 하트를 그렸다. 하지만 경기에서는 에이스인 윌슨을 하루 당겨쓰고도 패했다. 윌슨은 잘 던졌지만 8회초 2:2 상황을 맞은 이후 올라온 불펜들이 장작을 쌓았고 마무리인 정찬헌이 이범호에게 만루 홈런을 맞으며 무너졌다. 윌슨은 봉크라이 시절을, 정찬헌은 수준급 마무리 시절의 봉중근을 그립게 한 씁쓸한 모습이었다.

은퇴기사에서 봉중근은 얼마 전까지도 지인들에게 “과분한 사랑을 준 팬들 앞에서 마지막으로 한번이라도 공을 던져보고 싶다”며 사이드암으로 투구폼까지 바꿔 안간힘을 썼다고 한다. 중근이형.... 그야말로 눈물이 앞을 가리는 수준이다....

LG팬들은 이병규에 이어 또 다시 팀을 위해 헌신한 대선수를, 우승은 고사하고 한국시리즈 진출 경험조차 못 시켜주고 떠나보내게 되었다. LG프런트들은 팬들의 엄청난 쓴소리를 또 다시 피해가지 못하게 되었다.

또한 선수 본인이 LG에서 코치로 남고 싶다고 언급했다.

그렇게 봉의사는 암흑기(2007)에 팀에 와서 암흑기(2018)에 떠나게 되었다.

안타깝게도 봉의사의 마지막 경기조차 웃을 수 없는 경기였는데 7회까지 선발 타일러 윌슨이 잘 막아놓은 경기를 신정락이 장작을 쌓고 정찬헌이 이범호에게 만루홈런을 허용해 버리면서 가을야구 탈락에 7위로 하락해버린 최악의 경기였다. 결국 그 다음 두산전에 나와야했을 윌슨까지 땡겨쓰고도 대참패하면서 봉중근이 마냥 웃으면서 떠나지는 못하게 되었다.

봉중근은 마지막 고별사에서 후배들이 가을야구에 갈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고 애써 말했지만 후배놈들은 그런 맘이 없어서(...)

차명석 단장이 단장 부임 후 가장 먼저 연락한 선수 중 한 명이다.

3. 해설위원 경력

은퇴 후 2019년부터 KBS N SPORTS의 해설위원으로 활동한다.기사 팬들의 반응은 KBS N SPORTS의 야구 해설 특성상 가장 악질인 편파중계전염되지 않을까 우려스러운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여담으로 옐카 3 야구 파트에서 SPOTV NEWS로 이적한 이재국 기자를 대신해 게스트로 출연하는데 SK 와이번스한국시리즈 우승을 정확히 맞혔다.#

2019년 3월 23일 한화 이글스 vs 두산 베어스의 잠실 개막전 중계를 통해 첫 해설 데뷔전을 갖게 되었다. KBS2에서 중계되어 지상파에서 중계 데뷔를 했다. 앞으로는 이광용 아나운서, 장성호 해설위원과 함께 지상파에서도 활약할 예정. 중계 후 옐로우카드 3에서 "준비는 해 왔는데 왠지 소외감이 드는 기분"이라고 밝혔다.[16] 그리고 해설위원으로서도 KBS N 소속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등 방송인으로서의 행보도 보여주고 있다.

2019년 5월 4일 KBS2 LG 트윈스 : 두산 베어스의 5차전 즉 어린이날 2번째 날, 친정팀 경기를 맡게 되었다. 이 날 중계에서 어린이날 역대 두팀의 추억 영상중 12년 전이던 2007넌 당시 안경현 (現 SBS SPORTS) 해설위원과의 백 바디 드랍 사건이 언급되었다. # 이 영상이 나오자 마자 봉중근 위원은 부끄러웠다고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또한 해설위원으로서 강상수의 투수 혹사를 직접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4. 플레이 스타일

좌완투수로 MLB에 있을 때부터 선발투수로 커리어를 시작했고 07년도 LG에 입단했을 때부터 LG의 부동의 1선발을 활약하다가 12년도부터 마무리로 전환했는데 이는 적중해 13년도에 팀이 비밀번호를 깨고 페넌트레이스 2등을 사수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LG 입단부터 선발투수로 시작해 최대 150Km/h의 직구를 던졌고 13년도 기준 마무리로 전환했을 때 직구 구속은 최고 140대 중후반,[17] 16년도 기준으로 직구는 최고 143Km/h이 나왔다. 변화구로는 135정도의 체인지업과 너클커브를 던지는데 이 너클커브는 14년도 스캠때 정찬헌에게 전수해 줘서 지금까지도 쏠쏠하게 써먹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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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자견제하는 능력은 국내 최정상급으로 견제율이 7할에 육박하던 때도 있었을 정도이며, 09년도 WBC에서 퀵모션만으로 이치로를 쫄게 만들어 슬라이딩까지 하게 만들기도 했다.1루심까지 긴장하게 만드는 견제 능력. 언제 견제구가 날아올지 몰라.

특이사항으로 팀의 사정에 따라 선발진과 마무리 보직을 왔다갔다 했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는 LG 트윈스의 전설로, 82년 창단이후 선발과 마무리를 오가며 팀을 받치던 투수가 있었으며, 김용수 - 이상훈 - 우규민? - 봉중근의 순서로 계보가 이어지고 있다.

5. 이모저모

  • 메이저리그에서 먼저 프로 생활을 시작했지만, 대한민국에 돌아오고 나서 오히려 더 실력이 향상된 사례다. 미국식 훈련이 아닌 한국식 훈련이 자신의 실력을 향상시키는데 오히려 더 도움이 되었다는 말까지 했을 정도였다.
  • 외야수 스즈키 이치로의 광팬이다. 본인이 타자를 꿈꾸는 것도 이치로를 존경했기 때문. 그의 등번호인 51번도 이치로를 존경하기 때문에 단 것이다.[18] 메이저리그 시절에 이치로에게 가서 싸인을 받으며 "당신을 존경하기에 51번을 달고 있다"라고 말했고, 2회 WBC때 일본과의 경기전에 이치로에게 가서 나를 기억하냐고 묻자, "너 아직도 51번 달고 있니?"라고 봉중근을 알아보면서 대답하자 진심으로 기뻐했다고. 하지만 이치로의 오랄질을 질책하기 위해서인지 자신의 특출난 견제 능력으로 이치로에게 굴욕을 선사하기도 했다.
  • 마이너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보여주던 삼성 라이온즈브라이언 매존이라는 용병투수가 같이 마이너에서 뛰었던 봉중근이라는 선수를 아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런 미미한 선수까지는 다 모른다" 라고 답해 졸지에 봉미미라는 별명을 지니게 되었다. 팀 내에서는 변화구가 밋밋하다고 '봉밋밋'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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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몸이 매우 튼실하다.
  • 2004년 결혼했다. 부인은 한 살 연상. 연인 시절 여성 팬과 같이 술자리를 하던 봉중근에게 따귀를 때린 사건부터 [19] 2005년 부부싸움 끝에 봉중근이 경찰서로 이송되었던 사건, 2010년 박종훈 감독을 디스하는 글을 미니홈피에 올린 것 등등 많은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이로 미루어볼 때 상당히 기가 센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가끔 시끄럽긴 하지만 궁합은 맞는지 잘 살고 있다.
  • 상당한 효자로 알려져 있다. 아버지가 택시기사였는데, 그 택시를 타본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아들 자랑을 많이 하셨었다고 하며 차내에 봉중근 사진이 가득했다고 한다. 가족 중 아들은 자기 혼자인데다가 누나들만[20] 있기 때문에 신일고 시절 미국으로 갈 때에도 집에서 많은 걱정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2003년부터 대장암으로 투병하게 되면서 택시기사를 그만두었다고 하며, 잠시 호전되는 듯했으나 간암이 발병했다고 한다. 봉중근이 대한민국 U턴을 결정한 이유 중 하나가 아버지의 병환이었다. 2012년 9월 21일 잠실에서 아버지가 시구를 하고, 아들이 그 공을 받는 훈훈한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으나 2012년 11월 5일에 돌아가셨다고 한다. 2013 시즌 들어와서는 자신의 글러브에 아버지 사진을 새겨넣은 상태다.
  • 2012년 소화전 사건 때 골절당한 오른손을 수술하면서 상처가 거의 남지 않게 수술할 수도 있었으나 앞으로 보고 반성한다는 의미에서 상처를 일부러 크게 남겼다고 한다.
  • 2012년부터 마무리 투수을 맡고 있고, 팀의 든든한 수호신 역할을 하고 있으나, 마무리 투수로서 금기해야 할 과도한 흥분과 자책이 단점으로 지적된다. 앞서 언급한 소화전 사건도 블론세이브에 대한 본인의 자책과 분을 이기지 못한 결과로 인해 생긴 참사. 뿐만 아니라 2013년 6월 14일 넥센전에서도 블론세이브를 범하고 덕아웃에서 심하게 자책한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다행히 문선재의 끝내기 안타로 이겨서 망정이었지, 아닌게 아니라 문선재의 끝내기 세리모니때 상당히 흥분과 기쁨을 감추지 못한 모습을 보였다. 어쨌든 희노애락이 뚜렷한 본인의 성격상 어쩔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한 팀의 마무리이자 수호신으로서 이런 면은 분명 마이너스 요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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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런 사진도 있다. 봉중봉 참고로 이 문서는 봉중봉으로 검색해도 들어올 수 있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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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업으로 파스타 집을 한다고 한다.(...)
  • 류현진과 사적으로 친한 걸로 보인다. 류현진이 메이저리그 진출 때 지지해주면서 조언도 해줬고, 연락도 종종했다고. 2013년에는 둘 다 각자 정신이 없어서 연락은 못했지만 2014년 애리조나 스프링 캠프에서 만났을 때는 오랜만에 만나 즐겁게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둘다 답답해서 내가 친다를 시전하고 있기도 하다.
  • 웹툰 야심작 정열맨에서는 봉중근이라는 이름의 기술이 나온다. 봉황의 가운데 근육(...)이란 뜻으로, 김정열의 가슴에서 제 3의 손이 나오는 기술.
  • 현재윤과 신일중-신일고 선후배지간이다. 현재윤이 1년 선배.
  • 은퇴한 이후 코치 제안이 있지만 잠시 야구를 다른 시선으로 보고싶다며 고사했다. 도대체 왜 자꾸 탈쥐가 생기는 지 알아내기 위해 연구를 하고 싶다는 모양. LG를 사랑하는 봉중근에게도 탈쥐는 정말 가슴아픈 일이었나보다.
  • KT 시절 이진영과 NC 시절 이종욱은 마구마구 레전드카드가 나왔는데 봉중근은 레전드카드가 발매가 안 됐다. 만약 나온다면 마무리에 선발투수 듀포로 예상된다.
  • 영구결번은 애매한 상태. 메이저리그에서는 우승을 하지 못한 선수도 팀에게 봉중근 정도로 헌신한 선수면 영구결번을 주는 경우가 있지만 KBO리그에서는 아직 한국시리즈 우승이 없는 선수 중에 영구결번을 받은 선수는 이병규 코치밖에 없기 때문에...더구나 봉중근은 한국시리즈 경험도 없기 때문에 더욱 험난하다. 2019년 기준상 후배인 임지섭이 51번을 부여받았다.
  • 은퇴 후에 촬영한 LG U+ 광고에서 꼬마아이에게 "아저씨 야구 볼 줄 모르죠 ?" 라는 굴욕을 당했다.(...)

6.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선발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02 애틀랜타 1 1 6 0 1 0 0 0.000 7.50 8 0 2 4 5 5 1.67
2003 44 0 57 6 2 1 2 0.750 5.05 56 8 39 47 32 32 1.53
연도 소속팀 경기수 선발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04 신시내티 3 3 15⅓ 1 1 0 0 0.500 4.70 17 3 10 11 13 8 1.76
연도 소속팀 경기수 선발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사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07 LG 24 22 111⅔ 6 7 0 0 0.462 5.32 121 6 60 56 71 66 1.56
2008 28 28 186⅓
(1위)
11 8 0 0 0.579 2.66
(3위)
153 13 80 140
(3위)
66 55 1.19
2009 26 26 172⅓
(4위)
11 12 0 0 0.478 3.29 160 13 71 127 70 63 1.26
2010 28 28 178⅓
(3위)
10 9 0 0 0.526 3.58 166 13 83 130
(5위)
74 71 1.32
2011 4 3 16⅓ 1 2 0 0 0.333 4.96 13 1 14 7 9 9 1.35
2012 40 0 38 0 1 26 0 0.000 1.18 26 1 14 36 5 5 0.95
2013 55 0 61 8 1 38
(2위)
0 0.889 1.33 44 2 30 54 10 9 1.16
2014 50 0 49⅔ 2 4 30
(3위)
0 0.333 2.90 51 2 21 45 16 16 1.37
2015 47 2 49⅓ 5 2 15 0 0.714 4.93 60 10 29 39 28 27 1.68
2016 19 5 36⅓ 1 0 0 2 1.000 4.95 41 4 22 20 23 20 1.73
2017 1군 기록 없음
2018 1군 기록 없음
MLB 통산
(3시즌)
48 4 78⅓ 7 4 1 2 0.636 5.17 81 11 51 62 50 45 1.58
KBO 통산
(11시즌)
321 109 899⅓ 55 46 109 2 0.540 3.41 835 416 402 654 372 341 1.32


[1] 하지만 성균관대 야구부 소속인 적은 없다. 류현진(대전대), 양현종(광주대) 등과 같이, 프로입단 후 뒤늦게 대학교에 입학한 케이스. 10학번으로 입학했다.[2] 전주 부분에서 사이렌이 나오는데, 이게 상당히 위압감이 넘친다. 그야말로 간지폭풍. 근데 20초룰때문에 그냥 싸이렌만 울리고 끝난다.[3] 봉중근을 애틀란타로 스카우트했던 빌 클라크는 "나는 영원히 내가 베이브 루스를 잡았다고 믿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최소한 스탠 뮤지얼을 잡았다고 믿을 것이다. 어깨 부상 때문에 타자로 전향해 슈퍼스타가 된 스탠 뮤지얼 말이다. 나는 영원히 메이저리그 홈런 기록을 깨뜨릴 주인공과 계약했다고 믿을 것이다. 빅리그 스카우트 경력 36년 동안 나는 그런 재능을 가진 선수를 본 적이 없었다."라고 하였다. 출처[4] 신일고 다이너마이트 타선 내지 신일고 봉삼이(봉중근+김광삼)라고도 한다[5] 웃길지 모르지만, 현재윤은 발 빠른 포수였다!! 그래서 발 빠른 포수라는 유니크한 점은 그가 드래프트할 때 큰 도움이 되었다.현실은 통산 도루 10개 취소선을 치긴 했지만 현재윤이 포수라서 혹시라도 도루하다가 다치면 진갑용-현재윤으로 꾸렸던 삼성은 대체재가 없던터라 가급적 주의를 시킨 것. 실제로 현재윤이 다치자 부랴부랴 심광호와 채상병을 영입했지만 결과는 신통치않았다. 프로와서도 주루센스 자체는 좋은 편에 속했고, 가끔씩 깜짝 상위타선에 배치하기도 했다.[6] 포지션은 1루수외야수로 추정, 좌투좌타인 특성상 기용이 가능한 포지션은 이게 전부이기 때문.[7] 이날 경기에서 켄 그리피 주니어는 통산 500홈런을 기록했다. 국내에서조차 봉중근의 선발승이 묻혀버릴 뻔 할 정도.[8] LG팬이면 절대 잊지 못할 이상훈의 번호인 47번은 이상훈의 은퇴이후 오승준(2004) - 김광우(2005~2006) - 봉중근(2007~2008) - 이형종(2009) - 서승화(2010~2011) - 조윤준(2012~2015)순으로 달았으나 영 좋지 못하던 징크스가 있었으며 이상훈의 번호를 더럽힌다는 평만 받았었다. 봉중근만 유일하게 에이스급 성적을 내었으나 승운이 처첨하게 안좋았던, 여러모로 이상훈에게 어울리던 번호였다. 16년부터는 이상훈이 아카데미 원장으로 들어오며 주인을 찾았다.[9] 이 당시 동영상이 2012년 5월 6일 잠실 두산-LG 경기의 SBS ESPN 중계 때 재연되었는데(6회초 최준석 아웃 이후), 이 경기 해설자인 안경현은 "이 사람들 너무 하네~"라며 멘탈붕괴했다. 그리고 옐카3에서도 '잠실의 주인은 누구인가' 토론에서 이 장면이 나와 멘붕하기도 했다.[10] 시간이 없는 사람을 위한 요약. 정상적인 무사 안타->보내기 번트 굴절로 1루수 넘어지면서 올 세이프->느린 땅볼 베이스커버 실패로 세이프(1실점)->정상적인 보내기 번트->투구 빼서 3루주자 런다운 상황에 조인성이 주자와 충돌하여 주루방해 (1실점)->정상적인 안타(1실점)->그리고 안경현[11] 참고로 다패 1위는 김혁민. 하지만 평균자책점의 차이가 넘사벽이다.[12] 부산에서의 국가대표 평가전 후에 봉중근, 류현진, 이용규가 여성들과 어울려 술마시고 숙소까지 데려갔다는 주장이 KBO 게시판에 올라왔다. 실명제인 KBO 게시판에 올라와서 신빙성있다는 측과 증거가 없고, 기사화되지 않았기에 신빙성이 없는 루머라고 하는 측이 엇갈린다.[13] 류현진은 2006년에 한화에 지명받았고 김성근은 2007년에 SK로 왔다. 결론은 SK 프런트 또는 조뱀의 실수.[14] 하지만 결과론적으로 실수라고 하는 거지, 실제로 고교때 아무리 특급이었다고 해도 수술이나 부상경력이 있는 선수를 쉽게 뽑을 순 없다. 삼성의 STC같은 재활시설이 잘 갖춘 곳이라면야 고쳐쓴다는 마음으로 지를수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팀에서는 망설일 수 밖에 없으니. 더군다나 그 시절 SK에는 투수 자원은 상대적으로 부족한 게 없었고 박경완의 뒤를 이을 포수재원 마련이 더 시급했기에 이재원을 택했을 뿐이다. 그러나 김성근 시절의 이재원은 플래툰에 의한 대타로 기용된 적이 많아 포수로서의 성장이 더뎠고 결국 군 입대를 미루라는 감독의 압박을 부모님이 찾아와 막아낸 뒤 군 팀에 입대하는 등 막장스러운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15] 실제로 지명되었다쳐도 류현진도 살을 빼게 시키겠다고 공헌했던 김성근의 행보로 미뤄볼 때 15시즌 초반의 양훈처럼 안 되었으리란 보장도 없고... 전병두, 데럴 마데이, 살려조를 생각하면 봉중근이 SK에 지명되지 않은 건 신의 한 수라고 생각할 수 있다. 봉중근 정도의 실력이었으면 김성근 감독에 의해 무지막지한 혹사를 당했을 가능성이 크다.[16] 이용균 경향신문 기자는 경기 후반부터 안정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고 평했다.[17] 최고 150까지 나오는 공도 있었다. 2014년에도 146까지 나왔다가, 2015년 초반 무너지면서 직구 구속이 138에 그쳤는데, 이후 투구폼 수정을 거친 이후에는 146까지 다시 올라왔다.[18] 타자로써 51홈런을 날리겠다고 51번을 달았다는 얘기도 있다.또한 신일고 시절 5번이였던 김광삼은 그보다 딱 한개만 더 날리겠다고 52번을 달았다고.[19] 웃기는건 봉중근은 자기의 뺨을 때린 여자는 당신이 처음이라며 그때 결혼할 생각을 했다고 한다.[20] 누나 3명의 막내아들이다.[21] 관상학적으로는 이렇게 좌우가 대칭되는 얼굴이 매우 좋은 얼굴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