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4-06 12:58:06

유지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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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베어스 No.74
유지훤(柳志烜)
생년월일 1955년 10월 4일
출신지 부산광역시
학력 대신초 - 대동중 - 대광고
포지션 유격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82년 OB 베어스 창단멤버
소속팀 OB 베어스 (1982~1988)
지도자 OB 베어스 1군 수비코치 (1989)
쌍방울 레이더스 1군 수비코치 (1990~1992)
OB 베어스 1군 수비코치 (1993~1997)
두산 베어스 1군 수석코치 (1999~2003)
한화 이글스 1군 수석코치 (2005~2009)
한화 이글스 재활군 코치 (2009)
두산 베어스 2군 재활코치 (2014)
두산 베어스 1군 수석코치 (2014~2015)
두산 베어스 잔류군 총괄코치 (2016~)
한국시리즈 우승 반지[1]
1982

1. 소개2. 아마추어 선수 시절3. 프로 선수 시절4. 지도자 시절5. 기타

1. 소개

OB 베어스의 유격수, 한화 이글스의 코치, 현재는 두산 베어스의 코치이다. 또한 두산이 우승한 원년, 95년, 01년 그리고 15년 우승에서 모두 함께 했던 '베어스의 혼'.[2]

2. 아마추어 선수 시절

본디 부산 출신으로 박철순과는 어릴 적 한 동네에서 야구를 하며 형동생하던 사이라고 한다. 그러나 부산지역 네임드 고교에 들어가지 못한 뒤 서울 대광고로 진학했고, 이 후 실업야구 상업은행철도청 야구단을 거쳤다.

3. 프로 선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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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광고를 졸업한 관계로 1982년 KBO 리그 출범 당시 서울 지역 선수로 분류되어 OB 베어스에 입단한다.[3]

OB에서는 타격은 떨어지지만[4], 안정감있는 수비로 2루수 구천서와 키스톤 콤비를 이뤘고, 1982년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배대웅의 땅볼 타구를 잡아 마지막 아웃 카운트를 잡은 바 있다. 그러나 의욕은 앞서지만 영민한 플레이와는 거리가 먼 선수였기 때문에 훗날 김광수 등이 성장하면서 주전 자리를 잃었고, 특히 1987년 플레이오프 4차전에서 1점 차로 간신히 앞선 9회말 2사 3루 위기에서 김성한의 땅볼 타구를 몸개그하며 내야안타로 만들어 주는 바람에[5] 김성근한테 찍혀 1988년 말에 은퇴하게 된다.

4. 지도자 시절

이후 김인식 감독의 부름으로 쌍방울 레이더스에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가 1993년에 OB 수비코치로 영입되었고, 1995년도에 김인식이 OB 감독으로 부임한 뒤부터 2009년 한화 수석코치에서 해임되기까지 김인식과 운명공동체로 활동했다. 그러나 많은 분들이 지적하시다시피 코치로서의 능력은 최악. 유격수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1군 전력의 유격수를 못 만들어낸 것은 그렇다고 쳐도, 좋게 말하면 신인 선수들의 군기반장, 나쁘게 말하면 꼰대 역할을 해야 하는 2군 감독이나 수석코치가 그의 주 보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선수 장악에 실패해 두산이 범죄두라는 오명을 쓰는데 큰 역할을 했기 때문.[6] 2005년 김인식 감독이 한화 이글스의 새로운 감독에 선임되면서 수석코치를 맡았지만 2009년을 끝으로 김인식 감독이 한화 최하위의 책임을 지고 사퇴하면서 함께 잘렸다.

이후에 쭈욱 야인으로 지내면서 고등학교 후배처럼 잊혀지는 듯 했으나 2013년 2군 재활코치로 친정팀 두산 베어스에 복귀했다.# 그리고 2014년 8월 11일 송재박을 대신하여 1군 수석코치로 올라왔다. 2015시즌 김태형 감독이 선임되었음에도 수석코치로 유임되었다.

5. 기타

90년대 이후의 야구팬들은 해당 선수의 존재 자체를 거의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글에 이 이름이 등장하면 유지현의 오타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안 좋은 쪽으로 두 개의 기록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는 앞에서 언급한 83년 47타석 연속 무안타, 다른 하나는 86년 기록한 시즌 31실책. 하지만 연속 타수 무안타 기록은 2015년 시즌에 손시헌이 48타석 연속 무안타로 깼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 1995~1997년 시즌 태평양 돌핀스-현대 유니콘즈염경엽이 먼저 51타석 연속 무안타를 기록하면서 깨졌다. 무안타 기록 갱신되기 전까지 계속 따라다니는 꼬리표로 인해 꽤나 스트레스 받은 듯 하다. 기사[7]


[1] 82년 우승은 우승반지가 생기기전이지만 훗날 2011년에 베어스 구단에서 직접 우승멤버들을 초청해서 우승반지 수여식을 가졌으므로 우승반지라고 해도 무방하다[2] 다만 KBO 차원에서 수여하는 우승반지는 2000년부터의 일이고, 구단 자체 제작도 1994년의 LG가 최초이다. 따라서 원년 시절의 우승반지는 없음.[3] 비슷한 케이스로 배명고를 졸업한 박철순도 OB의 지명을 받는다.[4] 1983년 전설의 47타수 연속 무안타의 한국기록을 세웠다. 2015년 손시헌이 이를 경신. 한때 이승엽 오푼이 시절, 2009년 진갑용의 43타석만의 안타, 이대형의 2010 시즌 등 타자들이 무안타 행진을 이어가면 슬그머니 언급된다. 2011년에는 롯데 이승화가 22타수 무안타를 기록하고 있지만, 기록 갱신은 쉽지 않다.[5] 여담이지만 그 이전인 9회초 1사만루 찬스에서 어이없는 주루로 한 점을 손해보게 만든 장본인이었다. 당시 2루 주자로 있으면서 구천서의 우전안타 때 홈으로 달렸는데, 3루코치가 1루주자인 이승희를 보고서 멈추라고 하는 것을 잘못 듣고서는 다 들어온 홈에서 3루로 다시 돌아가는 본헤드플레이로 아웃된 것. 게다가 1루주자 이승희도 무리하게 3루까지 뛰다가 아웃.[6] 1994년 항명사건과 이종민의 전경 살인사건이 그가 수석코치를 할 무렵에 터진 일이다. 결국 1997시즌 끝나고 김광수와 같이 물러나게 되었고, 양승호가 수석코치로 올라섰다. 다만 양승호도 강혁의 음주운전과 정수근의 전지훈련 난동사건 때문에 선수관리 면에서는 비판을 받는다.[7] 기사를 보면 알겠지만, 한편으로는 무안타 기록을 다른 관점에서 해석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