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5-18 15:08:44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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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운아,천재악동이라는 별명을 얻었던 최전성기 OB, 두산 베어스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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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생활 말미를 함께한 롯데 자이언츠 시절
이름 정수근(鄭守根 / Soo-geun Chung)
생년월일 1977년 1월 20일 ([age(1977-01-20)]세)
출신지 서울특별시
최종 학력 대불대학교 전자공학 학사[1]
포지션 중견수
투타 좌투좌타
프로입단 1995년 OB 베어스 고졸연고 자유계약
가족 동생 정수성
소속팀 OB-두산 베어스 (1995~2003)
롯데 자이언츠 (2004~2009)
국가대표 시드니 올림픽 대표 (1999~2000)
등번호 8번
종교 불교
한국시리즈 우승 기록
1995 2001
수상 기록
1999, 2001년 한국프로야구 외야수 골든글러브 수상자
1998 ~ 2001년 한국프로야구 도루왕
2004, 2007년 한국프로야구 올스타전 미스터올스타

1. 개요2. 선수 경력
2.1. OB/두산 베어스 시절2.2. 롯데 자이언츠 시절
2.2.1. 술로 끝난 선수생활
3. 은퇴 후
3.1. 2010년 ~ 2011년3.2. 2012년3.3. 2013년 ~ 2014년3.4. 2015년3.5. 2016년3.6. 2018년
4. 사건사고5. 여담6. 연도별 주요 성적

1. 개요

"야구에 만약이라는 건 없습니다. 만약이라는 걸 붙이면 다 우승하죠"
- 2007년 12월 28일MBC ESPN에서 방송된 2007 프로야구 결산 특집 프로그램 <야구를 향한 상상 '꿈'>에 출연해서 한 말.

OB 베어스 - 두산 베어스, 롯데 자이언츠 소속 야구선수. 한국프로야구계에서 천재이자 풍운아로 꼽히던 선수였다. 야구계의 이천수.

2. 선수 경력

2.1. OB/두산 베어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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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B 베어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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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의 최전성기 시절인 두산 베어스 시절 환호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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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두산베어스의 두 오버맨 홍성흔정수근

아직까지도 베어스 역대 최고의 리드오프이종욱과 더불어 가장 많이 언급되는 선수이다.

베어스 시절 천재 소리를 들을 정도의 엄청난 야구센스얼빠를 부르는 얼굴, 파워를 제외한 공격, 수비, 주루, 삼박자를 두루 갖춘 호타준족이였다. 특히 4년 연속(1998년~2001년) 도루왕을 할 만큼 빠른 발을 가지고 있었으며 어떤 상황에서도 분위기를 살릴 수 있는 분위기 메이커로 방송국에서도 탐낼 만한 쇼맨쉽을 갖추고 있는[2], 그야말로 사랑받을 수밖에 없는 선수였다. 도루왕 제조기 김평호[3]가 주루코치로 바로 부임하면서부터 입단 2년차부터 주전 중견수로 자리잡기 시작, 도루 2위를 2번 기록하면서 차세대 대도로 주목받았고,이 보이는건 착각인가?? 이종범이 일본으로 이적한 98년부터 도루왕 4연패[4]를 하면서 일약 스타로 등극. 이병규, 박재홍, 제이 데이비스등과 함께 리그의 대표적인 중견수로 자리잡음과 동시에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야구 동메달의 주역이 되었다. 허나 2002시즌을 정점으로 타력이 떨어지는 등 불안요소도 안고 있었다. 다만, 타격이 들쑥날쑥한건 본인도 잘 알고 있다. 그래도 최전성기라 볼 수 있는 1998~2001년에 최소 0.280 이상의 타율은 찍어 주었다.

그리고 베어스 시절 팀에서 도루하는 선수라고 하면 정수근이 거의 모든 지분을 먹고 있었다. 그나마 김상호는 주루가 좋았지만 정수근이 데뷔할 즈음엔 클린업 타선으로 가면서 주루 능력이 감퇴했고, 1995년 당시 1번 타자였던 김민호는 타격이 좋지 않았던 데다 9번 타순으로 이동하면서 도루에서 돋보이는 성적을 보이자 못했다. 1999년에 한화에서 건너 온 전상렬은 백업이었기 때문에 주루 능력을 제대로 보여주진 못했다. 하여튼 그 뚱산야구팀에서 발야구[5]를 만들다니 흠좀무.

하지만 워낙 개구쟁이였던 성격탓에 경기 전 멋대로 짬뽕 시켜먹다가 이를 아니꼽게 본 심재학에게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았다고 한다, 2003년 하와이 스프링캠프에서는 팀 동료 한태균과 같이 무단 이탈과 음주 폭력 사고를 일으키기도 했다. 특히 뒤에 나온 무단이탈 사건으로 두산 프런트의 눈밖에 나게 되고, FA를 앞둔 2003년 잔부상으로 89경기 출장에 그치는 등 하락세가 시작되는 모습을 보인 데다가, 당시 돈도 별로 없었던 상황이었던지라 두산은 정수근의 잔류를 포기해 버린다.[6] 그리고 프로 입단 당시에도 대학 입학이 예정된 상태에서 가계약을 깨뜨리고 입단하는 바람에 동생 정수성의 야구인생이 꼬일 뻔한 적도 있었다. 정수근이 프로로 가자 외부에서 압력이 들어와 정수성은 야구를 그만 둘 위기에 놓였지만, 다행히 야구를 계속해 현대 유니콘스에 입단할 수 있었다.[7]

이후 두산의 중견수 자리는 김창희-이종욱-민병헌-정수빈-박건우로 그 계보가 이어지고있다.

2.2. 롯데 자이언츠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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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목(11번)과 함께 롯데 입단 기자회견에서.

03년 이승엽이 일본으로 떠나고 나자 자연스레 FA시장의 최대어로 떠오르면서 여러 팀의 러브콜을 받았다. 원소속팀과 우선협상 실패 후 자신은 열정적인 팬이 있고 제2의 도시인 부산을 연고로 하는 롯데를 가기를 희망을 했으나 먼저 삼성 라이온즈에게 옵션포함 최대 60억의 오퍼가 들어왔다고 한다. 그리고 롯데측에서 전화가 왔으나 대뜸 "우리 구단이랑 계약하실 마음 없으시죠?" 라는 말을해서 정수근은 황당했으나 당시 롯데자이언츠 이적을 희망해서 협상 테이블에 앉았으나 삼성라이온스에 비해 적은 40억을 제시해서 상당히 많은 고민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정수근은 대구에 거주하는데 흥미가 없었고 당시 삼성감독인 김응용감독과 시드니올림픽때 같이 대표팀에 뛰었을때 자신과 맞지 않는다는걸 느꼈기 때문에 롯데 쪽과 계속 협상하였고 정수근은 롯데 측에 fa 계약을 하면 좋은곳에 기부를 하고 싶다. 6천만원만 더 얹어주면 롯데로 가겠다고 제안, 결국 FA대박을 터뜨리며 롯데와 6년 40억 6천만원에 계약하였다.[8] 본인은 "한국 최고의 야구열기를 지니고 있는 구도 부산에서 한국 야구의 부흥을 이끌고 싶다"면서 롯데에 입단하게 되지만 이 때부터 그는 끝없는 추락을 겪게 된다.

대도 전준호를 연봉과 문동환 위약금 문제[9]로 뻥 차버린 다음에 어정쩡했던 1번 타자 자리를 메우기 위하여[10] 데리고 왔지만, 롯데 시절 커리어를 보면 타율은 0.290 이상을 찍어본 일이 없고 평균 40개 이상 하던 도루는 겨우 20개 남짓으로 줄었으며, 수비 범위마저 급격히 좁아지며 포지션을 좌익수로 변경해야만 했다. 급기야 이적 첫 해에 음주 폭행사고까지 저질러 무기한 출장정지라는 중징계까지 받게 되었다. 그렇게 방황하다 한창 유행하던 바다이야기에 맛을 들이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07년도엔 이혼까지 당하며 온갖 고난과 악재를 다 당하게 된다. 차라리 삼성을 갔으면 돈이라도 더 많이 벌어 놨겠지...
참고로 술 마실 때 주요 출몰 장소는 해운대-경성대 앞-수영[11] -부산법원 [12] [13].

다만 상대 선발이 좌완이면 좌타자라는 이유로 무조건 9번에 박아넣던 강병철 감독의 기계적인 좌우놀이도 성적 하락의 요인중 하나였다. [14] 정수근은 1번타자에 대한 자부심이 넘쳐나던 선수라서 9번을 매우 싫어했으며, 실제로 성적도 1번타자일 때 월등히 좋았다. 거기다 강병철 감독이 정수근에게 별로 도루를 시킬 의사가 없는 터라 인터뷰 중 수차례 강병철 감독을 직접적으로 까면서 뭣도 모르는 팬들을 선동하기도 했다. 이러다 보니 당연히 가뜩이나 팀에서 입지가 좁았던 강병철 감독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선수 주제에 감독 머리 위에서 놀며 자기 편한 것만 하려 했던 것. 심지어 강병철 감독이 사임하고 제리 로이스터 감독이 부임한 후에도 지속적으로 언플을 하며 강병철 감독을 까다가 당시 한화 김인식 감독에게 그 입 다물라는 지적까지 받았다. 참고로 김인식은 두산 감독 재임 시절 내내 정수근과 같은 팀에서 한솥밥을 먹었고 실제로도 꽤나 가까운 사이다. 정수근도 수차례 인터뷰에서 김인식 감독을 가장 존경한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그리고 이러니저러니 해도 부진의 가장 큰 원인은 일찍이 김성근 감독을 포함해서 많은 야구계 선배들이 지적했듯이 자신의 나태와 게으름이었다. 그리고 양상문 때부터 풀어지기 시작한 롯데의 팀 분위기를 완전히 술먹고 놀자판으로 만든 일등공신.

처음에 올 때는 롯데의 부활을 이끌 선봉장으로 믿어 의심치 않던 팬들도 계속 추락하는 그를 보면서 먹튀, 또는 40억짜리 마스코트라고 욕하기 시작, 정수근은 야구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힘든 나날을 보내게 된다. 한창 전성기를 달렸어야 할 시기에 자신의 게으른 멘탈로 인해 기록에서 손해를 본 건 덤.

사실 롯데에서 두산에 비해서 부진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두산에서 평균적으로 타율 0.280 출루율 0.356 장타율 0.355 ops 0.711 wRC+ 96.7 을 기록했는데 롯데에서 평균적으로 타율 0.282 출루율 0.364 장타율 0.358 ops 0.722 wRC+ 100.8 을 기록해서 타격 스탯만 보면 성적은 오히려 더 올랐다. 클래식 스탯이야 사직이 잠실보다 상대적으로 타고 구장이기에 올랐을 수 있지만 파크팩터를 감안한 세이버매트릭스 자체가 더 올랐다. 더군다나 두산시절은 상대적으로 타고 시즌이 많았고 롯데에선 투고 시즌이었으며 정수근 처럼 장타툴이 없고 주루툴만 높은 타입은 잠실처럼 넓은 구장에서 타격 성적도 더 높게 나올 수 있다. 어차피 홈런은 못치니까...

다만 이건 비율스탯이 그렇다는 말이고 누적에서는 분명 줄어든 모습을 보였는데 그것은 정수근이 각종 사건 사고나 부상등으로 출장 자체가 줄어든 탓이 컸다. 두산에서 연평균 467타석 그것도 고졸 1년차때 대수비 대주자로 뛴걸 포함해서 467타석을 소화했는데 롯데에서는 연평균 322타석으로 줄어들었다. 그러다 보니 안타나 도루 갯수가 줄어들 수 밖에 없었던것. 단 도루의 경우 롯데에서는 두산처럼 도루를 많이 지시하지 않았던 탓도 크다.

결론적으로 정수근의 기량은 두산에서보다 롯데에서 더 발전한 모습을 보였으나 각종 사건사고로 경기에 나오질 못하면서 부진하다는 인상을 받게 된 것이다. 거기다가 사건사고들과 바다이야기 등으로 나태하고 놀기만 좋아한다는 이미지가 박힌게 컸다. 실제로 경기 출장해서 못하진 않았다. 최소 두산에 있었을때 만큼은 해줬다.

2007년에 들어 그는 데뷔 1년차 이후 사상 최악의 모습을 보이며 이대로 다시 올라가지 못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극성스런 롯데팬들에 의해 그는 올스타전에 뽑히게 되었고, 그 경기에서 역전 홈런을 뽑아내며 미스터 올스타에 뽑히게 된다. 그 때 인터뷰에서 정수근은 "힘든 일로 인해 야구가 싫어지게 되었지만 오늘 다시 야구가 좋아지게 되었다"는 감동적인 멘트를 날렸고, 그 이후로 그는 기적같이 부활하며 자신의 가치를 입증하게 된다.

전성기 때보다 발도 느려졌고 수비력도 떨어졌으나 0.250에 불과하던 타율을 0.290까지 끌어올렸으며 느려진 발을 대신해 어퍼스윙으로 장타율을 올리는 등 정말 해보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선수가 된 것이다…라고 다들 생각하였다. 참고로 여기까지가 2007년 당시의 정수근 항목(...).

2.2.1. 술로 끝난 선수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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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시즌, 오랜만에 3할을 치며 부활을 알리는 줄 알았는데...사직에서 4연패한 2008년 7월 16일, 만취 후 새벽 3시 경에 건물관리원과 경찰관을 폭행하여 유치장에 입감되었다. 거기에 당일에 술자리에 늦게 나타난 후배 투수 송승준을 두들겨 팬 사실도 드러났다. 송승준은 오해라고 둘러댔지만… 언론에다가 자기가 맞았다는 소릴 하면 구단 망신. 덕분에 연패 중에 역시 술 먹었던 강민호는 묻혔다.

하여간 하향세를 타고 있는 롯데에 있어서 사실상 최악의 악재. 심지어 정수근은 이 당시 팀의 주장이었다. 주장이 연패중에 대놓고 술 마신것도 모자라 사고까지 쳤으니 당연히 엔트리에서 제외된 것은 물론이고 결국 08년 올스타전 선발에서 탈락하였다.[15] 이후 보석금을 내고 가석방되었지만, KBO에서는 무기한 자격정지 처분을 내렸다. 이후 정수근의 공백으로 인해 비게 된 주장 자리는 조성환이 맡게 된다.

이 기간동안 KBS에서 찍은 올림픽 응원 광고에 출연하여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안타까움을 보여주기도 했다. 명대사는 "대호랑 민한이형… 나가?" 하지만 최종 엔트리에선 송승준이 뽑혔다.

09년 스토브리그 즈음 해서 그라운드로 복귀하고 싶다는 떡밥을 던지는 언론플레이도 해봤으나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그러나 정수근의 징계가 장기화되자 KBO 내에서도 멀쩡한 선수를 죽여선 안된다는 의견이 우세해 복귀를 허락했고,[16] 롯데측도 조성환의 부상과 팀의 부진으로 복귀를 타진하여 2009년 8월 12일에 1군에 복귀하였다. 그리고 복귀일 당일에 바로 2번 타자로 출장 첫타석에서 안타와 도루를 성공시키며 기대감을 높이더니, 8월 13일 역시 선발 2번타자로 출장, 5타수 2안타 1타점 1득점 및 7회말 기아 공격시 1사 주자 2루 상황에서 이종범의 안타성 타구를 점프하여 잡아내는 등, 대활약을 펼쳐 기아의 12연승 도전을 중요 기점에서 차단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며, 삼성의 패배와 함께 하루만에 4데로 복귀, 정수근 본인은 복귀 2경기만에 히어로 인터뷰를 하였다. 이에 롯갤러들은 "클래스는 영원하다"며 기쁨의 꼴레발을 떨었다. 하지만 복귀 효과는 반짝이었고, 한 달도 되지 않은 2009년 8월 31일 밤, 또 술 난동 문제로 언론에 오르내리는 위업을 달성하고 말았다.

신고자는 정수근이 난동 피운 적은 없고, 팀이 포스트시즌에 가느냐 마느냐 하는 중요한 순간에 한가로이 술 먹고 있는 정수근을 보고 순간 화가 나 허위 신고를 한 것이라고 증언했으나, -- 의심스러운 점이 무척 많다. 만약 그것이 허위신고라면 정수근은 위증으로 엄청난 명예훼손을 당한 것이니 바로 변호사 불러서 소송을 제기하면 100% 승소이고, 게다가 롯데 구단은 몇 번이나 사고치고 프런트의 임무(팀 관리)를 방해한 정수근을 구제해 준 전력이 있었다. 허나 정수근은 하루만에 팀에서 방출되었고 본인 역시 억울하다 억울하다 말만 해놓고 고소는 커녕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정수근은 '팀을 사랑해 신고를 한 팬에게 고소하기 싫다' 며 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게다가 롯데는 이미 정수근에게 연봉 1억을 지급한 상태. 따라서 이게 사실대로라면, 정수근은 크게 아쉬울 게 없지만 롯데는 돈만 날렸다. 결국 외야수 뎁스도 강하지 않은[17] 롯데는 오지랖 넓은 한 팬의 참견질로 인해 선수 한 명을 울며겨자먹기로 잃게 된 셈이다.

위의 문서에는 언론플레이라는 얘기가 있지만 본인 개인방송에 따르면 실제 고소를 하려고 신고자의 신원을 확보하여 만났으나 신고자의 개인적인 사정이 좋지 않았고 만나자 신고자는 진심어린 사과를 하였고 당시 힘들게 복귀를 했으나 이런식으로 꼬여버려서 야구에 대해 흥미를 잃어버려서 법적절차를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욕 먹어가며 정수근을 복귀시킨 롯데 정수근이 마음만 먹으면 다른 팀에서 계속 선수생활을 이어갈 수 있도록 퇴출처분을 내렸다. KBO는 당초 정수근을 영구제명할 분위기였으나 정수근은 은퇴를 선언한다. 본인 이야기로는 '다른데서 하려면 롯데에서 풀어 줄 수도 있었지만 더러워서 안한다' 였다고.

결국 롯데에 남긴 유일한 긍정적인 요인은 사직야구장의 인조잔디를 천연잔디로 바꿔달라고 탄원한 것밖에 거의 없다는게 대다수 롯데팬들의 의견이다.[18]

3. 은퇴 후

3.1. 2010년 ~ 2011년

2010년 6월 MBC ESPN퓨처스리그(2군)경기에 해설가로 데뷔. 은퇴 이후 새 삶을 열어가는 듯 하였으나…. 2010년 6월 13일. 알콜농도 0.125% 상태의 음주운전으로 택시를 들이받는 교통사고를 일으켰다. 엘루이 호텔에서 잠시 쉬다가려고 했으나 방이 다차서 다른곳으로 이동하기 위해 대리운전을 불렀으나 기다려도 오지 않아서 직접 운전했다가 사고가 났다고 통키티비 에서 밝혔다. 자신이 모델로 있는 대리운전 광고에서도 직접 얘기하며 깨알같은 셀프디스를 했다.

서울 압구정 로데오거리 근처의 실내포차를 한동안 운영했다. 야구팬들이 오면 기념사진도 함께 찍어주고, 싸인도 잘해준다는 목격담이 많았다. 이후, 학동역 근처의 치킨집으로 옮겼다는 당시 실내포차 알바생의 증언이 있었으나, 확인된 바는 없다.

3.2. 2012년

2012년 5월부터 Issports에서 다시 퓨처스리그 중계를 맡게 되었다. 특유의 입담으로 듣는 재미가 있긴 한데, 해설위원으로서의 분석력과 정보력은 별로라는 평. 해설 도중에 나온 자학개그가 술하면 정수근 아니겠어요(…)? 경찰청과 두산 경기 때는 경찰차를 보고는 저 차 안타보셨죠? 안타보셨음 말을 마세요~ 같은 개드립입담을 보여주기도 했다. 자랑이냐?

2012 포스트시즌부터 '정수근의 야구판독'이라는 막간 코너로 JTBC의 날씨&스포츠 뉴스 프로그램 쨍하고 공뜬날에서 활약중이다. 특유의 입담으로 야구팬들에게 소소한 웃음을 선사해주고 있는 중. 10월 24일에는 JTBC가 2013 WBC 독점 중계를 확정짓자 '사장님,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드립을 쳤다. 그러나 해설위원 자리는 얻지 못했다. 이와 함께 한국시리즈 1차전 승리팀을 맞히지 못해 뿅망치 벌칙을 받기 직전 '뿅망치 줘보세요. JTBC같은 퀄리티 있는 방송에서 폭력이 있으면 안 되죠.'라는 드립을 선사. 예?

2012년 10월 19일부터 채널A에서 강병규(!)와 함께 '스포츠 베토벤'이란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되었다.

3.3. 2013년 ~ 2014년

2013년 4월부터 SBS CNBC에서 일본프로야구 오릭스 버팔로스 객원 해설위원을 맡았는데, 해설 도중 뜬금없이 일본어가 튀어나왔다.[19] 그리고 종합운동장역 지하상가에서 '강정이 기가막혀'라는 닭강정 프랜차이즈를 개업했으며, 자기가 직접 영업하고 있다. 경기가 있는 날이면, 야구팬들을 상대로 '저 정수근 맞습니다!'라며, 열심히 닭강정을 파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지하철 역내 불사용금지 때문에 지하철 역내 매장은 접었다고 한다.

2013년 현재는 코리아볼닷컴 사사구에 출연하고 있다. 거기서 김진욱 감독을 비롯하여 두산 베어스의 문제점을 까고 있다. 인천의 그보다 더한 막장도 심심하면 까이는 편. 한편으로 LG 트윈스는 띄워주는 편인데 이에 대해서는 LG 트윈스가 포스트시즌에 진출해야 자신의 닭강정 장사가 잘 되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는 해석이 있다.

대리운전 광고에 출연 하며 [20] , 인터넷에 홍보명함 사진이 돌고 있다. 창업 초기엔 김성근 감독의 핫초코 광고를 패러디한 영상을 만들어 홍보하기도 했고, 특히 사회인 야구단에서 여러 차례 이용시 팀레슨을 해주겠다는 몹시 솔깃한 이벤트를 하기도 했다. 다른 회사에 비해 아주 약간 비싸다

현재는 일간스포츠에서 운영하는 야구웹진 베이스볼긱의 해설위원을 겸하면서 칼럼이나 인터뷰를 올리고 있다. 하지만 기사의 내용과는 별개로 정수근의 이미지 때문에 많이 까이는 듯. 그래도 글 자체에 대해선 네티즌들의 평가가 상당히 좋다. 특히나 두산 선수와 인터뷰를 할 때는 김동주에게는 술 한잔 하고 싶은 형이라 하기도 하고, 오재원에게는 "왜 별명이 식빵이야?"라고 물으며, 정수빈에게는 노력 안한다고 혼내기도 하는 등 친분을 바탕으로 특유의 입담이 거침없이 살아나 두산팬들에게 특히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런데 선수 등록 마감일이 얼마 안남은 상황에서 페이스북에 "곧 김동주가 복귀한다"라는 글을 써서 논란이 되고 있다. 이에 대해서 kt 위즈는 "김동주 영입 안한다" 라는 반응을 보였고, 정수근은 쌍으로 까였다.[21][22]

3.4. 2015년

2015년 3월 5일 뜬금없이 아프리카TV 석주일 방송에 출연하였다. 아프리카에서 KBO경기 해설로 모셔왔다고 한다. 일단 1주일에 3번 정도 방송하는 걸로 계약했다는 듯. 사사구 방송에서도 꽤나 거침없는 행보를 보여줬기 때문에 아프리카에서 어떤 막장 방송을 할지 기대하는 이들도 많다.

2015시즌부터 아프리카TV에서 정수근의 쑤근쑤근TV라는 간판을 달고 중계를 하고 있다. 현역 시절 대스타였다 보니 초창기 진짜 정수근이 맞냐는 질문 등이 많이 올라왔다. 그리고 채팅창에 올라오는 각종 어그로성 질문도 피하지 않는다. 특히 강병철 감독을 어떻게 보느냐는 물음에 내가 싫어한다. 솔직히 1회부터 번트대는 감독 매력 없다.라는 솔직한 답변을 남겼다. 채팅창에 강병규, 강병철를 금칙어로 지정해놔서, 입력하면 '사랑해요♡'가 뜬다.

9월 3일 한화 이글스권용관넥센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경기가 뜻대로 풀리지 않자 넥센의 정수성 코치에게 불만을 표시했다. 이에 정수근은 아프리카 TV에서 분노를(...) 표출했다. 당연하지. 동생한테 해코지 했으니까. 만약 직접 그 장면을 봤더라면 죽방을 날릴 기세(...)

10월 28일 프로야구 매니저 카드깡 방송에 출연해서 엄청난 대 활약을 펼치고 갔다. 방송 내내 비속어가 끊이지 않았으며... GM을 협박하여 많은 보상을 타냈다. 그 중 최고는 역시 플래티넘 훈련권 6장... 방송이 끝날 때 쯤 GM의 얼굴은 울상+흙빛이 되어있었다... 오죽하면 허준이 그만 하자고 했을까...

11월 5일 슈퍼시리즈를 끝으로 15년 아프리카 방송을 마쳤으며 마지막 방송에서 시청자가 2만명이나 입장하는등 내년 방송에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슈퍼시리즈 방송 도중 00 시드니 올림픽 군면제 썰을 풀어 영상이 아프리카 메인에 올라가며 화제를 모았다.

3.5. 2016년

작년에 이어 올해도 아프리카TV에서 前 SBS 스포츠 신아영이승륜 아나운서와 함께 쑤근쑤근TV로 중계를 시작했다. 올시즌 100경기를 중계하는걸로 아프리카와 계약을 했다고 한다. 본인 말로는 아프리카 중계 이외에 야구 매니저먼트 이사, 통키티비 분석위원, KBO 캐릭터 상품 사업, 호프집 운영[23] 등의 여러가지 일을하고 있다고 전했다.

시즌전에 아프리카 방송계정을 해킹을 당해서 팬클럽들이 대거 블랙리스트,영구차단이 되고 즐겨찾기가 해제되는 등 악재를 겪었지만 작년과 변함없는 솔직한 입담과, 자신이 경기직전에 잠실야구장에 찾아가 선수들에게 받아낸 유니폼,배트,글러브 등을 경품으로 시청자에게 나눠주고, 주말방송에는 통키티비 아나운서들을 섭외하여 출연시키는 등의 노력으로 다시 시청자를 끌어모으고 있던 중 아프리카 고위층의 지침에 의해 중도 하차하게 되었다.

아프리카 측에서 화장실 흡연과 방송도중 딱 한번 잔것을 문제 삼아서 방송전날에 하차통보를 했다고 하는데 방송도중 잠깐 존것은 전날 방송에서 새벽 호프집 단체 예약과 다음날 오전에 매니지먼트 관련 약속 때문에 잠잘 시간이 없어서 내일 방송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밝혔으나 방송을 해달라는 시청자들의 요청에 의해 어쩔수 없이 무리하게 그날 방송을 강행을 하다가 안쓰러운 시청자들이 잠깐 쉬세요. 라는 말을 듣고 양해를 구하며 6회에서 8회 사이 잠깐 존것이다. 그리고 흡연 관련해서는 건물 내에 흡연공간이 없어서 1층까지 내려갔다 오고 하면 한이닝이 끝나기 때문에 방송시간을 맞추기 위해 잠시 클리닝 타임때 뛰어가서 화장실에서 흡연을 한것인데 그것도 문제를 삼았다고 한다. [24]

아프리카 방송에 애정을 가지고 자신의 사비로 아나운서 등을 섭외하고 시청자에게 선물을 주기 위해 야구장에 직접 찾아가 선수들의 용품등을 받아오고, 자신의 썰과 야구계에 떠도는 풍문을 거침없이 솔직하게 말을 하며 자기소비를 하면서[25] 까지 방송을 진행하였는데 정수근 같은 대선수를 중계 전날 [26] 아프리카 방송 측은 전화 달랑 한 통으로 계약조건을 위반하면서 하차 통보를 한다.[27] 이러니 PD수첩에서 까지[28]
그래서 2016년 10월 현재 방송활동은 승부예측 방송인 통키티비에만 출연하고 있다. 통키티비 채팅창에도 가끔등장하며 공식방송 이외에 비정기적인 방송으로 시청자와 소통을 하는 등 통키티비에 애정이 많은듯 하다.[29] 여기서도 재치 있는 입담을 보여주고 있다.

3.6. 2018년

서울 송파구 석촌동 석촌호수 서호 남단에 있는 오피스텔 지하에 '정수근의 야구놀이터'라는 야구연습장을 운영중이다, 단 사업자등록은 타인 명의인 것으로 보인다.

4. 사건사고

파일:skdAKVg.jpg
이 사진은 정수근을 구글에 검색하면 첫번째로 뜬다(...)

정수근의 캐릭터를 완벽하게 표현할 수 있는 단 한 장의 사진.

위에 언급된 술먹고 저지른 사고 제외하고도 폭력 및 사고 전과가 무척 화려하다. 당장 위의 사진만 봐도...
  • 2003년 두산 베어스 시절 하와이 스프링캠프에서 무단 이탈하고 음주, 폭력 사건을 저질렀으며, 2004년 롯데로 가선 해운대에서 팬과 몸싸움을 하였고 거기에 당시 음주운전까지 적발되었으며 사건을 축소시키려던게 추가로 드러났다.
  • 롯데 시절 팬들이 야유를 했다는 이유로 관중석에 야구공을 집어던진 적도 있다.
  • 강병철이 롯데 감독하던 2007년, 덕아웃 내 칠판에 쓰였던 글 강감독 야구 대범하게 합시다의 장본인이다. 정수근이 아프리카TV에서 세계청소년야구 중계 중 경기가 루즈해지자 강병철을 미친듯이 까던 도중에 시청자의 질문에 자신이 직접 적었다고 밝혔고, 이 후 프야매 카드깡 방송에서 한번 더 인증했다.

5. 여담

  • 별명은 해담. 바다이야기를 한자(海談)로 쓴 것으로 롯데 암흑기 시절 바다이야기에 빠져 방탕한 삶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생긴 별명이다. 잘할 때는 해담+ = 해신. 문제의 오락실
  • 1990년대 중반까지는 대부분 대학을 거쳐서 프로에 입단했는데[30] 정수근은 고교 졸업후 프로로 직행했다. 아프리카TV에서 직접 이야기하기론 고교 졸업반 시절 고려대에선 계약금 6천만원에 차후 동생 정수성도 데려가겠다는 조건을 제시했고, 중앙대에선 계약금 8백만원에 동기생 3명 입학을 보장했다고 한다. 감독은 중앙대로 가라고 했지만, 본인은 고대로 가고 싶어해서 의견충돌이 벌어졌고, 이럴바엔 바로 프로로 가는게 낫겠다 싶어서 집에 찾아온 스카우터한테 반장난 식으로 '8천만 주면 프로가겠다'고 했는데 바로 7천7백짜리 계약서를 들고와서 그냥 싸인하고 두산에 입단했다고 한다.[31]
  • 97년도 해태와 더블해더 1차전 경기도중 중계플레이 할때 송구가 낮았다는 이유로 선배 이명수에게 경기중간 화장실에 불려가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아 열이 받은 정수근은 다음 타석부터 이치로 타격폼으로 경기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중계플레이를 할때 일부러 땅볼로 굴렸다고 한다. 더 압권은 더블헤더 2차전 9회 2아웃 까지 1:0으로 이기고 있었는데 해태 정회열의 외야쪽 깊은 플라이를 잡은 뒤 일부러 빠뜨리는 기행을 벌였다고 한다. 결국 게임은 2:1로 패배... 시합이 끝난 후 집합을 하여 엄청나게 혼이 났다고 한다.
  • 프로시절 노력을 안하고 재능 하나로 야구하는 선수라는 이미지가 강했지만, 실제론 노력가였다고 한다. 경기후 12시부터 3시까지 스윙을 500~700번씩 하고 상대 투수를 분석하고 기록한 뒤 잠에 들었다고. 그런데 이렇게 스윙연습을 해도 손바닥에 물집이 잡히지 않는 체질에다가 특유의 능글함, 그리고 야구 외적으로 악동 이미지가 강해서 노력하는 선수라는 평은 거의 듣지 못했다고 한다.
  • 2007년도 강병철감독과 불화로 자신이 감독에게 요청해 한화와 트레이드가 성사직전 갔다는것이 밝혀졌다. 안영명+이영우와 트레이드를 하기로 올스타 브레이크 직전에 감독간 서로 합의를 끝마치고 정수근에게 올스타전 이후에 트레이드가 될것이라고 통보까지 했으나, 올스타 브레이크 직전 경기에서 5타수 4안타를 치고 올스타전에서 역전홈런을 치며 미스터 올스타에 뽑히는 맹활약을 하자 롯데 구단측에서 트레이드 취소를 해버려서 성사 실패 했다고 한다. [32] 이때 올스타전 mvp 비화가 있는데 당시 올스타전 이후 한화를 간다는것이 거의 확정된 상태라서 롯데 유니폼을 입고 올스타전에 출전하기가 꺼려져서 한두타석만 게임하고 빠질 계획이였는데 외야수 한명이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어쩔수 없이 계속 게임을 뛰게 되어서 정수근은 이렇게 된거 홈런쳐서 올스타전 MVP나 타게 그냥 크게 휘두르자 하고 타석에 들어섰는데 거짓말처럼 크게 휘두른게 역전홈런이 되서 미스터올스타가 되었다고 한다. 그때 부상으로 받은 TV는 동생 정수성에게 줬다고 한다.
  • 2007년도 ESPN의 해설위원으로 거성이라는 별칭을 얻게 된 이순철이 제일 많이 깐 선수. 두 사람의 야구스타일이 똑같았기에 한 애정어린 질책이었으며 정수근은 인터뷰에서 이순철에게 감사하다는 멘트를 하기도 했다. 복귀후 인터뷰에서 이순철이 나름대로 애정을 가지고 팬들에게 이제는 잘 하겠다고 약속을 하라고 할 때만 해도 감동적이기까지 했지만 현실은….
  • 2008년도 미디어데이때 제리 로이스터 감독의 자율야구를 적극적으로 지지, 우리팀 선수들은 팀 훈련이 끝나도 개인훈련을 따로 열심히 했다고 발언했다. 이에 장성호가 "팀 훈련을 많이 하지 않으니 개인 연습을 많이 하는 것 아닌가"라고 핀잔을 주자 특정 팀을 겨냥한 발언인지는 모르겠지만 "모 선배가 밥만 먹고 야구만 한다고 야구가 잘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연습 많이 한 팀을 이기고 싶다"고 받아쳤다. 근데 당시에 누가 봐도 가장 훈련을 많이 한다고 소문난 팀은 SK 와이번스였다.
    허구연이 한 강연에서 밝힌 썰에 의하면, 이 발언에 김성근 감독을 비롯 SK 전 선수단이 빡돌아서 롯데만 만나면 이를 갈면서 플레이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결과는 모든 롯데팬들이 알다시피, 로이스터 시절 롯데의 SK전 성적은 처참할 뿐이다.
  • 2014년 서초경찰서 학교폭력 근절 홍보대사로 위촉되었다. 근데 같이 위촉된 연예인의 명단을 보면... 김창렬, 강인
  • 동생인 정수성SK 와이번스의 주루코치이다.[33] 형과는 여러 가지로 정반대의 인물이라고 한다. 하지만 정 반대의 성격과는 다르게 정수근은 정수성에게 정말 따뜻한 형이라고 하고 형제간의 우애도 좋다고 한다. 그래서 권용관 코 썰어버린다고 했나보다 인터뷰 중, 승부가 이미 결정난 상황이라면 정수성의 외야 플라이를 일부러 놓치는 실책을 해줄 수도 있다는 농담을 한 적도 있다
  • 아들인 정호준 군이 아버지의 모교인 덕수고등학교에서 뛰었다. 포지션은 외야수. 아버지와 삼촌을 닮았다면 좋은 선수로 성장할 지도. 정확히는 아버지의 재능과 삼촌의 성품. 그 반대가 되면 흠좀무. 하지만 아들이 생각하는 롤모델은 삼촌이라고 한다. 아들이 잘아네 아버지 실력이랑 삼촌의 성실성을 닮아야 할텐데 반대로 되지 않기를 그러나 프로에 지명받을 정도의 성적은 되지 않았고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로 진학했다.
  • 아버지는 검도계의 원로로 국가대표 감독을 지낸 고 정인재 선생이다.
  • 2003년 FA로 정수근을 영입하였던 롯데 자이언츠의 사장은 롯데제과의 대히트작 빠다코코낫을 만들었던 사람이었으나[34], FA영입 이후 정수근의 성적이 신통치 못하자 짤리는 수모를 겪기도 하였다.
  • 이런 화려한 전과에 반해 부인은 굉장한 현모양처인데다 미인이라고 한다. 지금 아내 만나려고 이혼까지 했으니 착하긴 하겠지…. 근데 전처도 상당한 미인이다. 현모양처는 아니라지만.(…)[35] 그리고 프야매 썰전 출연때 세번째 부인을 언급해 이혼 2번에 재혼 3번 한것으로 확인 되었다(...) 이것도 능력이라면 능력
  • 2012년 프로야구 승부조작 사건 초창기 때, 선수들 뿐만이 아니라 코치, 감독들도 오래 전부터 승부조작에 개입하였다는 제보를 하였다는 뉴스가 뜨면서 한 때 야구팬들을 패닉상태로 몰고갔으나, 후에 본인의 부정과 조사에 의해 그의 이름을 사칭한 어떤 사람이 거짓제보를 한 것으로 밝혀졌다.[36] 그야말로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셈. 이젠 야구계에 신경도 안 쓰고 있는데 왜 자기를 끌어들였는지 모르겠다면서 억울해하였다.
  • 이숭용사사구에서 약물 고백을 했을때 정수근이 옆에서 "이위원님. 제가 살면서 다른건 다 해봤는데 약은 안해봤어요~ 그렇게 살지 마세요~" 라고 했다. 자폭개그와 입담은 정말 잘한다.[37]
  • 아프리카 별풍선 수익 전액을 정모때 회식비로 쓰겠다고 선언하고 자신의 가게에서 정모를 했는데 20명 남짓한 팬들이 모여 200만원 어치를 먹는 바람에 오히려 적자가 났다고 한다. 술좋아하는 선수의 팬답다 정수근은 다음날 방송에서 차라리 그 돈이면 호텔 뷔페를 가는게 싸게 치겠다고 말했다. [38]
  • 2015년 1월 2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근황을 남겼는데[39] 김인식 전 두산 & 한화 감독과 김동주와 함께 식사를 하는 장면을 인증샷으로 남겼다. 헌데 선수시절의 정수근을 기억하는 팬들은 충공깽으로 받아들이는중. 이젠 몸집이 김동주보다 훨씬 커졌다.(...) 일단 김동주야 당뇨병이 있는지라 과거보다 체중이 많이 줄었고 정수근은 선수생활 그만둔지 오래된데다 나잇살도 있긴 하다지만 정수근의 선수시절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역변도 이런 역변이 없다.(...)
  • 원체 사고뭉치, 악동, 개차반 인성 이미지가 강한 정수근이지만, 동생만큼은 잘 챙겨주는 의외의 면모가 있다. 정수성이 무명이던 시절 잘나가던 정수근이 동생의 생활비를 보태주기도 했으며, 9월 3일 아프리카TV에서 넥센과 한화의 경기를 중계하던 중, 코 큰 쉐끼권용관이 정수성에게 인상을 쓰며 뭐라고 하자 "코를 잘라버리겠다", "대전가서 뺑소니로 받아버리겠다"는 드립을 쳤다...[40] 그리고 며칠 뒤 권용관은 히 드랍 더 볼을 시전하여 908 대첩의 주인공이 되었다.
  • SPOTV 최두영 캐스터가 정근우가 잡았다고 해야하는데 뜬금없이 정수근(....)을 소환시켜 팬들을 웃기게 해줬다... 최두영이 혹사당하고 있어서 가볍게 웃을 일이 아니다.
  • 아프리카TV에서 야구중계를 하면서 짜장면 먹방을 하던 도중 금니가 빠지는 엽기적인 해프닝을 보여줬다. 빠진 금니를 클로즈업해서 인증까지 한 후에,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나머지 짜장면을 흡입.
  • 출발드림팀에서 두산 베어스와 드림팀의 샌드백잡기 경기가 있었는데 정수근이 드림팀에 붙자 선수들이 왜 그러냐는 질문에 나는 겨울이면 방송인이다라고 하면서 웃음을 자아냈다. 그리고 드림팀에서도 안 받아주자 스태프일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근데 정작 방송인으로 데뷔한 사람은 정수근이 아니라 같이 나왔던 그 분....
  • 악동 이미지가 있어서 그렇지, 의외로 목소리는 상당히 차분한 톤이다.
  • KBO FA제도 역사상 가장 어린 나이에 FA 대상자가 되었다. 만 27세가 되기도 전에 FA가 되었는데, 빠른 생일 + 고졸 출신으로 입단 + 군 면제 + 1년차부터 풀타임이 모두 겹친 케이스. 최정김현수가 빠른 생일 + 고졸 출신 + 군 면제가 모두 겹치긴 했는데 1년차 풀타임을 못채웠고, 이후 이 조건을 채울 선수가 전혀 나타나지 않고 있다. 빠른 생일은 2009년부터 사라졌기 때문에 2003년생 이후로는 불가능하고, 2010년대 이후 고교 졸업 후 즉시 풀타임으로 뛰는 선수는 일 정도로 신인들이 바로 리그에 진입하기 어려워졌다는 걸 감안하면 FA가 9년에서 8년으로 줄어도 갱신하는건 당분간 보기 어려울 듯 하다. 조기 입학 + 고교 졸업후 바로 풀타임 1군 + 군 면제 + FA 연수 하락이 다 겹쳐야 정수근 기록을 깬다

6.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95 OB 117 154 .214 33 3 1 0 10 34 25 21 .247 .309
1996 126 490 .253 124 20 6
(2위)
1 26 69 43
(2위)
48 .324 .319
1997 103 377 .263 99 9 2 2 34 59 50
(2위)
51 .313 .349
1998 125 480 .288 138 19 11
(1위)
1 36 88
(3위)
44
(1위)
57 .379 .362
1999 두산 129 505 .325 164 28 8
(3위)
2 55 100
(5위)
57
(1위)
74 .424 .408
2000 127 502 .277 139 23 3 3 50 82 47
(1위)
52 .353 .341
2001 122 467 .306 143 21 9
(1위)
2 53 95
(4위)
52
(1위)
72 .403 .395
2002 122 426 .235 100 9 2 3 22 58 40
(2위)
47 .286 .310
2003 89 262 .321 84 11 3 0 17 32 15 28 .385 .384
연도소속팀경기수타수타율안타2루타3루타홈런타점득점도루4사구장타율출루율
2004롯데 92 292 .257 75 11 1 3 29 37 24
(5위)
41 .332 .347
2005 109 370 .286 106 21 2 0 29 63 21 53 .354 .374
2006 83 295 .285 84 14 1 2 21 44 19 27 .359 .344
2007 105 341 .293 100 25 1 4 36 45 10 43 .408 .370
2008 80 309 .291 90 16 0 0 25 51 24 51 .343 .392
2009 15 59 .237 14 0 0 1 7 9 3 5 .288 .292
KBO 통산
(15시즌)
1544 5329 .280 1493 230 50
(3위)
24 450 866 474
(4위)
672 .356 .356


[1] 덕수상고 졸업후 1995년 고졸우선지명에서 뽑혀 바로 선수생활을 시작했다. 대불대 입학은 군대 입영 연기를 위한 도구였을 가능성이 높다. 여기서 전자공학과를 나왔으며 학생들과 교수님들한테 잘 보이려고 선수들 사인볼 걷어다가 나눠주고 그랬다고 밝혔다.[2] 역시 분위기 메이커로 유명한 강병규, 홍성흔 등과 함께 출발 드림팀에도 출연했었다. 해당 방영분. 앞부분만 올라와 있다. 당시 같은 팀 소속이었던 심정수진필중도 보인다. 강병규는 이 일을 계기로 은퇴한 후 아예 연예계로 진출했다.[3] 2017년 NC 다이노스 주루코치[4] 이후 2007~2010시즌에 이대형이 타이기록을 세웠다.[5] 이 발야구는 현재까지도 2익수와 함께 두산의 팀 컬러로 이어져 오고 있다. 현재는 발야구가 조금 약해진 편.[6] 사실 두산 베어스는 김동주 정도를 제외하면 내부 FA도 잘 잡지 않았다. 그 김동주 역시 제대로 뛰지 못하고 은퇴크리.(이건 자신이 자초한 것도 있지만.)[7] 현대 역시 정수성의 실력을 보고 하위 픽으로 했다. 이정도면 정수성은 운이 그나마 따른 것도 다행이다.[8] 6천만원은 실제 야구 발전 기금으로 기부 하였다. 6천만원과 별개로 1천 만원을 임수혁 선수 치료비로 지급하였다.[9] 현대 피닉스에 입단한 문동환을 데려오기 위해서 현금과 전준호를 반대 급부로 내놓았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조[10] 그나마 김대익이나 김응국이 1번타자로 있었지만 주루능력은 1번타자로서는 적합하지 않았다.[11] 본인에 말에 따르면 경성대 야구장에서 자주 개인연습을 했으며, 수영 롯데캐슬에 거주했다고 한다.[12] 사건 사고 때문이 아니라 롯데 이적 초기에 부산법원 근처에 거주했었다고 밝혔다.[13] 부산 지방법원은 사직 야구장 근처에 있다. 사직구장이 사직동과 거제동에 걸쳐 있고 법원은 거제동에 있다. 걸어갈 수 있는 거리[14] 프로야구 선수에게 헤어스타일,귀걸이 등을 지적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귀걸이 등을 하고 다니는 자신을 탐탁치 않게 여겼다고 아프리카 방송에서 증언하였다. 당시 롯데는 비공식적으로 고졸 5년차, 대졸 3년차 이하는 염색 및 머리를 못기르게 했다고 한다.[15] 덕분에(?) 이종욱이 대신 선발되어 롯데 VS 서군의 대결은 이뤄지지 않았다. 하지만 2012년에 기어이 꼴스타전이 열리게 된다[16] 사실 롯데팬들 중에도 정수근 야구인생이 그렇게 끝날 거라 생각한 사람은 별로 없었다. 정수근의 모교인 덕수고는 한국야구계에 상당히 큰 세력을 갖고 있는 집단이다...라고 보통 얘기하는데 사실 덕수고 야구부는 1980년에 창단한, 서울에 있는 고교 팀 중 가장 역사가 짧은 팀이었다.(원래 덕수고의 뒤에 1987년 창단한 한서고가 있었으나 2005년을 끝으로 해체. 2014년에 서울디자인고가 새로 창단했다.) 주말리그 시행 전 전국대회에서 덕수고가 유난히 저녁 시간대의 경기에 많이 배정되는 바람에 여러 말이 오갔지만 이걸 갖고 영향력 운운하는 건 무리다. 이 부분은 한화의 북일파 VS 비북일파 떡밥과 함께 다소 부풀려진 감이 있다.[17] 정수근이 아웃되어버린 2009년 9월 당시 롯데의 외야진은 외국인 타자 카림 가르시아를 필두로 나머지 자리에 정보명, 이인구, 황성용을 돌려쓰던 상황이었다. 김주찬의 경우 1루수를 겸업했었고 손아섭전준우는 포텐이 터지기 전이었다.[18] 해당 건으로 인해 정수근은 잔디근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참조[19] 이대호의 2호 홈런 순간 오오키! 오오키!(크다! 크다!)라든가 일본프로야구를 니폰프로야구로 말함.[20] 형이 운영중이라고 한다.[21] 2014년, 정수근이 김동주와 한 인터뷰에서 정수근이 김동주에게 "형 감독하셔야죠." 라고 하자 김동주가 "그럼 너 코치시켜준다." 라는 인터뷰를 했는데 지금 와서 둘다 김치국을 드럼통으로 퍼마신다고 까였다.[22] 참고로 둘다 사생활은 나쁜편으로, 정수근은 술과 도박으로 인해 선수생활이 끝났고, 김동주는 간통사건과 리니지로 인한 현피 등으로 사생활이 좋지 못하다는 평을 받는다.[23] 신천역 4번출구에서 '그린라이트'를 운영하고 있다. 10시 이후로 가면 자주 만날 수 있다고 한다. 카운터는 부인이 보고 있다고 한다.[24] 보통 해설위원이 흡연을 한다면 방송 부스 근처에 따로 흡연부스를 만든다.[25] 특히 한국 야구계 같은 경우에는 몇 안되는 좁은 인맥으로 뭉쳐있기 때문에 솔직하게 말하기가 힘들다. 더군다나 정수근은 현역시절 대단한 활약을 했고 야구계의 지인들이 많아 더욱 쉽지 않으나 시청자를 위해 다 얘기 해주었다.[26] 정수근은 그날도 아프리카 방송을 위해 시청자에게 줄 선물을 준비하고 방송에 출연할 가수를 섭외를 했었다고 한다.[27] 마지막 방송에서 슬픈 표정보다는 당황한 기색이 엿보였다. "현역 은퇴 후 여러 방송에 출연하고 하차를 했으나 이런 식의 하차통보는 처음 받아본다." 라는 뉘앙스의 얘기를 했다. 얼마나 갑작스러웠으면 이승륜 아나운서와 남은 계약기간은 어떻게 되는지 얘기를 나눴다.[28] 이 이후 아프리카TV는 2017년 국정감사로 가게 되었다.[29] 강세련 아나운서와 프로야구중계 방송도 했으나 인터넷 방송최초로 정규방송 관계로 중계를 중단하는 병크를 저질렀다.[30] 사실 고졸선수의 프로직행이 일반화된 것은 1995년 입단한 이승엽이 홈런왕으로 폭발하면서 부터다.[31] 그러나 감독 지시에 항명했다는 식으로 비춰져서 대신 동생 정수성의 야구인생이 끝장날 뻔 했다. 정수성은 우여곡절 끝에 야구를 계속 할 수 있었다.[32] 훗날 김인식 감독에게 이때 이야기를 하자 김인식 감독이 왜 그때 갑자기 잘쳐가지고... 하며 안타까워 했다고 한다.[33] 2016년까지는 넥센 히어로즈의 주루코치였다가 시즌 후 SK로 옮겼다.[34] 오리지널 제품은 아니다. 원조는 일본이다.[35] 그런데 6월 음주운전 교통사고낸 차에는 부인이 아닌 다른 여자가 타고 있었다고 기사가 났다.[36] 그 사칭범은 전화 통화 인터뷰에서 사투리를 쓰고 있어서 사실 알만한 사람들에겐 바로 뽀록이 났다.[37] 그리고 이숭용은 2018년 이강철 두산 수석코치를 kt wiz 감독으로 빼가 두산 팬들에게 욕을 바가지로 먹게 된다.[38]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신라,롯데,조선 호텔 뷔페가 저녁시간에 약 10만원 정도 하는데 거긴 술이 비싸다.[39] 여기서 예의 김동주 복귀드립을 쳤다.[40] 아무리 권용관이 정수성보다 나이가 많아도, 정수성은 상대팀 코치이다. 경기중 타 팀 선수에게 불만이 있으면 선수들끼리 풀어야 하는 부분. 게다가 해담선생이 예전부터 동생만큼은 잘 챙겨줬다는 점을 생각하면 충분히 저럴 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