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style="margin: -10px -10px; word-break: keep-all" | <tablebordercolor=#f73600> | 한화 이글스 2025 시즌 코칭스태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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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7 김민호 · 72 박승민 · 74 김경문 [[틀:한화 이글스 감독| ★ ]] · 76 윤규진· 77 박재상 · 78 김남형 · 79 양상문 · 82 김재걸 · 83 김우석 · 88 양승관 · 89 정경배 · 90 김정민''' | |
2군 | |
'''71 이대진 [[틀:한화 이글스 2군 감독| ★ ]] · 75 박정진 · 80 고동진 · 86 최윤석· 87 추승우 · 100 정현석 · # 쓰루오카''' | |
잔류/재활군 | |
57 정우람 · 81 김성갑 · 85 정범모 · 91 이상훈 | |
트레이닝파트 | |
이지풍 · 김형욱 · 김연규 · 장세홍 · 최우성 · 김재민 · 김소중 | |
코칭스태프 | 투수 | 포수 | 내야수 | 외야수 | 군 입대 선수 | 등록 선수 | 육성선수 | |
다른 KBO 리그 팀 명단 보기 | }}}}}}}}} |
양승관의 수상 경력 /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반지 |
1990 |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코치 |
1998 |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width=100%><tablebordercolor=#002561> | KBO 골든글러브 외야수 부문 수상자 (1982~1999)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 <rowcolor=#d0ad67> 1982 | 1983 | ||||
김성관 롯데 자이언츠 | 김준환 해태 타이거즈 | 양승관 삼미 슈퍼스타즈 | 김종모 해태 타이거즈 | 박종훈 OB 베어스 | 장효조 삼성 라이온즈 | |
<rowcolor=#d0ad67> 1984 | 1985 | |||||
김종모 해태 타이거즈 | 장효조 삼성 라이온즈 | 홍문종 롯데 자이언츠 | 박종훈 OB 베어스 | 이광은 MBC 청룡 | 장효조 삼성 라이온즈 | |
<rowcolor=#d0ad67> 1986 | 1987 | |||||
김종모 해태 타이거즈 | 이광은 MBC 청룡 | 장효조 삼성 라이온즈 | 김종모 해태 타이거즈 | 이광은 MBC 청룡 | 장효조 삼성 라이온즈 | |
<rowcolor=#d0ad67> 1988 | 1989 | |||||
이강돈 빙그레 이글스 | 이순철 해태 타이거즈 | 이정훈 빙그레 이글스 | 고원부 빙그레 이글스 | 김일권 태평양 돌핀스 | 이강돈 빙그레 이글스 | |
<rowcolor=#d0ad67> 1990 | 1991 | |||||
이강돈 빙그레 이글스 | 이정훈 빙그레 이글스 | 해태 타이거즈 | 이순철 해태 타이거즈 | 이정훈 빙그레 이글스 | 해태 타이거즈 | |
<rowcolor=#d0ad67> 1992 | 1993 | |||||
김응국 롯데 자이언츠 | 이순철 해태 타이거즈 | 이정훈 빙그레 이글스 | 김광림 쌍방울 레이더스 | 이순철 해태 타이거즈 | 전준호 롯데 자이언츠 | |
<rowcolor=#d0ad67> 1994 | 1995 | |||||
김재현 LG 트윈스 | 박노준 쌍방울 레이더스 | 윤덕규 태평양 돌핀스 | 김광림 쌍방울 레이더스 | 김상호 OB 베어스 | 전준호 롯데 자이언츠 | |
<rowcolor=#d0ad67> 1996 | 1997 | |||||
김응국 롯데 자이언츠 | 박재홍 현대 유니콘스 | 양준혁 삼성 라이온즈 | 박재홍 현대 유니콘스 | 양준혁 삼성 라이온즈 | 이병규 LG 트윈스 | |
<rowcolor=#d0ad67> 1998 | 1999 | |||||
김재현 LG 트윈스 | 박재홍 현대 유니콘스 | 전준호 현대 유니콘스 | 이병규 LG 트윈스 | 정수근 두산 베어스 | 호세 롯데 자이언츠 | |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 align=center><tablebordercolor=#007f55><tablebgcolor=#007f55> | 현대 유니콘스 역대 주장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fc81e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 1982년~2007년 | |||
1982 | 1983~1984 | 1985 | 1986 | |
삼미 김구길 | 삼미 박준영 | 삼미/청보 정구왕 | 청보 김정수 | |
1987 | 1988~1989 | 1990~1991 | 1992~1993 | |
청보 양승관 | 태평양 김일권 | 태평양 김윤환 | 태평양 김동기 | |
1994 | 1995 | 1996~1999 | 2000~2001 | |
태평양 윤덕규 ☆ | 태평양 김용국 | 현대 김경기 ☆★ | 현대 김인호 ★ | |
2002~2003 | 2004 | 2005 | 2006~2007 | |
현대 이숭용 ★ | 현대 전준호 ★ | 현대 김동수 | 현대 이숭용 |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width=320><tablebordercolor=#570514><tablebgcolor=#570514> | 고양 히어로즈 역대 감독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ff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20272c,#d3dade | 초대 | <rowcolor=#fff> 2대 | 3대 | 4대 | 5대 |
강병철 (2008) | 윤학길 (2009) | 정인교 (2010) | 박흥식 (2011) | 양승관 (2012) | |
<rowcolor=#fff> 6대 | 7대 | 8대 | 9대 | ||
김성갑 (2013~2015) | 스펜서 (2016~2019) | 오규택 (2019) | 설종진 (2020~ ) |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align=center><tablewidth=320><tablebordercolor=#1d2764><tablebgcolor=#1d2764> | 파주 챌린저스 역대 감독 |
{{{#!wiki style="margin: 0 -10px" {{{#000000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bottom: -15px" {{{#0B0B61,#0B0B61 | |||||
초대 양승호 (2017~2020) | 2대 양승관 (2021) | 3대 김사율 (2022) | 4대 김경언 (2023) | 5대 최기문 (2024~ ) |
삼미 슈퍼스타즈 / 청보 핀토스 / 태평양 돌핀스 등번호 8번 | ||||
팀 창단 | → | <colcolor=#fff> 양승관 (1982~1989) | → | 홍문종 (1990) |
LG 트윈스 등번호 44번 | ||||
김정수 (1986) | → | <colbgcolor=#000000> 양승관 (1990) | → | 나진균 (1991) |
LG 트윈스 등번호 85번 | ||||
결번 | → | 양승관 (1991~1992) | → | 장재중 (2004~2005) |
태평양 돌핀스 / 현대 유니콘스 등번호 85번 | ||||
결번 | → | 양승관 (1994~1999) | → | 김응국 (2006) |
SK 와이번스 등번호 80번 | ||||
박철우 (2000) | → | 양승관 (2001~2002) | → | 박종훈 (2003~2004) |
SK 와이번스 등번호 77번 | ||||
김대진 (2003~2004) | → | 양승관 (2005) | → | 최일언 (2006~2011) |
넥센 히어로즈 등번호 90번 | ||||
조용성 (2011) | → | 양승관 (2012) | → | 윤정호 (2013) |
NC 다이노스 등번호 88번 | ||||
채종범 (2012) | → | 양승관 (2013~2018) | → | 채종범 (2019~2022) |
한화 이글스 등번호 88번 | ||||
정현석 (2024~2024.7.8.) | → | 양승관 (2024.7.9.~) | → | 현역 |
<nopad> | |
<colbgcolor=#f73600><colcolor=#fff> 한화 이글스 No.88 | |
양승관 梁承琯 | Yang Seung-Gwan | |
출생 | 1959년 6월 2일 ([age(1959-06-02)]세) |
인천광역시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신체 | 180cm, 82kg[1] |
학력 | 인천숭의초 - 동인천중 - 인천고 - 인하대 |
포지션 | 중견수, 우익수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 입단 | 1982년 삼미 슈퍼스타즈 창단멤버 |
소속팀 | 포항제철 야구단 삼미 슈퍼스타즈-청보 핀토스-태평양 돌핀스 (1982~1989) LG 트윈스 (1990) |
지도자 | LG 트윈스 코치 (1991~1992) 태평양 돌핀스-현대 유니콘스 1군 타격코치 (1994~1999) SK 와이번스 2군 타격코치 (2001~2002) 롯데 자이언츠 1군 수비·주루코치 (2003~2004) SK 와이번스 1군 수비코치 (2005) SK 와이번스 재활코치 (2006) 인하대학교 야구부 감독 (2007~2010) 넥센 히어로즈 2군 감독·타격코치 (2012) NC 다이노스 2군 타격코치 (2013) NC 다이노스 1군 수석코치 (2014~2016) 고양 다이노스 타격코치 (2017~2018)[2] NC 다이노스 1군 타격코치 (2018)[3] 파주 챌린저스 감독 (2021) 한화 이글스 1군 수석코치 (2024~)[4] |
프런트 | 파주 챌린저스 단장 (2020~2024)[5] |
본관 | 남원 양씨 (南原 梁氏) [6] |
가족 | 동생 양후승, 동생 양주승[7], 아들 양원혁 |
[clearfix]
1. 개요
現 한화 이글스 1군 수석코치. KBO 리그 초창기 인천야구 역사를 함께한 프랜차이즈 선수 중 한 명으로 특히 강견 외야수로 유명했던 선수였다.2. 선수 경력
KBO 골든글러브 외야수 부문 수상자 (1982) |
창단 당시 삼미는 원년 구단 6개 가운데 자타가 공인하는 최약체였는데[8] 그 팀에서 유일하게 볼 만한 선수로 평가받았던 인물이 바로 양승관이었다.
특히 대한민국 프로야구 역사상 최고의 강견 외야수를 꼽으라면 늘 언급 되는 인물 중 하나인데, 경기 시작전 롱토스로 몸을 풀때 홈플레이트에서 다이렉트로 중앙 펜스를 쉽게 넘기는[9] 무시무시한 강견을 자랑했다. 게다가 송구의 정확도도 대단해서, 엄청난 보살 장면을 밥먹듯 연출했는데, 가장 유명한 일화는 우익수 앞 땅볼 사건 즉 우익수에서 안타 타구를 잡아 1루로 던져서 우익수 땅볼을 만든 것. 그리고 이 때 타구를 친 선수는 전설적인 도루왕인 해태 타이거즈의 김일권이었기 때문에 양승관의 어깨가 그야말로 대단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10] 또한 삼성 라이온즈의 황규봉이 삼미를 상대로 9회 1사까지 완벽하게 막아 퍼펙트 게임을 눈앞에 뒀으나 양승관이 안타를 치면서 치욕스런 기록을 막을 수가 있었다.[11]
원년부터 1989년까지 팀 이름이 삼미-청보-태평양으로 바뀌는 동안의 역사를 함께 했다. 특히 삼미의 영광과 시련을 중심에서 함께한 선수였는데 1983년 장명부의 가세와 함께 반짝 돌풍을 일으킬 때 3할 타자로서 한몫했고, 1985년 끝이 보이지 않던 18연패의 그늘에서 벗어나게 했던 그 순간에도 양승관이 중심에 있었다. 특히 18연패를 끊고 시즌 2승째를 올린 경기 때는 1:0으로 불안하게 이기고 있던 8회말 1사 만루 상황에서 MBC 청룡의 에이스 하기룡을 상대로 주자 일소 3타점 3루타를 터뜨리며 팀의 승리에 쐐기를 박았다.
다만 팀명이 청보 핀토스와 태평양 돌핀스로 바뀐 뒤로는 타석에서의 활약이 미비했고, 여기에 부진과 잦은 부상 등으로 아쉬운 모습을 보이며 결국 1989년을 끝으로 방출당했다.
방출당한 후 은퇴 위기에 몰렸다가, 백인천 감독의 부름을 받고 LG 트윈스에 입단해 현역 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LG에서 한 시즌 더 뛰고 은퇴하는데, 현역 마지막 시즌이었던 1990년 시즌 LG가 1990년 한국시리즈에서 창단 첫 우승컵을 들어올리면서 우승 반지 한 개는 끼고 은퇴할 수 있었다.
3. 지도자 경력
3.1. LG 트윈스 코치 시절
1990년 한국시리즈 종료 후 곧바로 은퇴, LG 트윈스의 코치로 선임되면서 32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지도자 경력을 시작했지만 백인천 감독이 물러나고 이광환 감독이 취임한 뒤 재계약에 실패하며 LG 유니폼을 벗었다.3.2. 태평양 돌핀스-현대 유니콘스 코치 시절
1994년 친정팀 태평양 돌핀스의 타격코치로 영입되면서 현대 유니콘스로 팀명이 바뀔 때까지 코치로 일했다.3.3. SK 와이번스 1기 코치 시절
2001년부터 2002년까지 SK 와이번스 2군 코치를 맡았다.3.4. 롯데 자이언츠 코치 시절
LG 시절 스승이었던 백인천 감독의 영향으로 롯데 자이언츠의 1군 수비·주루코치로 영입되었다.3.5. SK 와이번스 2기 코치 시절
2005년부터 SK 와이번스의 1군 수비코치를 맡게 되었고, 2006년부터 재활코치로 보직을 옮겼다.3.6. 인하대학교 야구부 감독 시절
2006년 SK 코치직을 그만둔 뒤 한동안 프로 무대로 돌아오지 못하다가, 2007년부터 모교인 인하대학교 야구부 감독으로 재직했으나 큰 성과를 내지 못했고 감독직에서 물러났다.[12]3.7. 넥센 히어로즈 코치 시절
이후 한동안 야인으로 있다가 2012년 넥센 히어로즈의 2군 감독 겸 타격코치로 영입되면서 오랜만에 현장에 복귀했다.
3.8. NC 다이노스 코치 시절
2012년 시즌 종료 후 넥센의 코치진 개편에 따라 2군 감독 자리에서 물러난 뒤 NC 다이노스의 2군 타격코치로 자리를 옮겼다. 마침 NC 스카우트로 일하던 동생 양후승도 2군 재활코치에 선임되면서 형제 코치가 탄생했다. 2014년부터는 1군 수석코치로 보직이 변경되며 김경문 감독을 보좌한다.[13] 2016년 시즌 종료 후 신진 타자 발굴을 위해 2군(C팀) 타격코치로 이동하였다.[14]
그러나 2018년 NC 타선이 이도형, 김민호 1군 타격코치 체제에서 프로야구 37년 역사상 가장 낮은 65의 wRC+를 4월까지 기록하면서 팀 타선 침체가 지속되면서 결국 1군 타격코치로 올라왔다. 하지만 2018년 6월 3일 김경문 감독이 감독직에서 물러나고 유영준 단장이 감독대행을 맡으면서 김평호 수석코치와 함께 스스로 사직서를 제출하고 팀을 떠났다.
3.9. 파주 챌린저스 감독 시절
NC에서 나온 뒤 잠시 야인으로 지내다 2020년에 파주 챌린저스의 단장으로 부임했고, 동년 12월 계약 만료된 양승호 전 감독의 후임으로 감독직을 겸하게 됐다. 2021년 도중 후배인 김사율에게 감독직을 넘기고 다시 단장직만 맡게 되었다.3.10. 한화 이글스 코치 시절
2024년 7월 5일, 김경문 감독의 요청으로 인해 한화 이글스 수석코치로 영입되면서 지난 NC 시절 이후로 다시 한 번 김경문 감독을 보좌하게 됐다.4.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 기록 | ||||||||||||||
<rowcolor=#ff9933>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타수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4사구 | 장타율 | 출루율 |
1982 | 삼미-청보-태평양 | 72 | 242 | .269 | 65 | 6 | 1 | 8 | 40 | 32 | 3 | 23 | .401 | .327 |
1983 | 85 | 278 | .302 | 84 | 15 | 2 | 9 | 30 | 41 | 0 | 28 | .468 | .365 | |
1984 | 36 | 135 | .289 | 39 | 13 | 1 | 2 | 17 | 14 | 1 | 10 | .444 | .338 | |
1985 | 72 | 243 | .210 | 51 | 12 | 2 | 5 | 31 | 17 | 0 | 17 | .337 | .260 | |
1986 | 93 | 303 | .205 | 62 | 17 | 0 | 7 | 26 | 29 | 3 | 19 | .330 | .251 | |
1987 | 33 | 75 | .213 | 16 | 1 | 0 | 0 | 5 | 11 | 7 | 9 | .227 | .298 | |
1988 | 1군 기록 없음 | |||||||||||||
1989 | 17 | 20 | .100 | 2 | 0 | 0 | 0 | 2 | 0 | 0 | 2 | .100 | .182 | |
<rowcolor=#fff>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타수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4사구 | 장타율 | 출루율 |
1990 | LG | 36 | 38 | .289 | 11 | 2 | 0 | 0 | 3 | 6 | 0 | 3 | .342 | .342 |
<rowcolor=#373a3c> KBO 통산 (8시즌) | 444 | 1334 | .247 | 330 | 66 | 6 | 31 | 154 | 150 | 14 | 111 | .376 | .304 |
5. 여담
- 김은식이 본인의 저서인 "야구의 추억"의 첫 번째 인물로 꼽았던 인물이다. 연재 제목은 "슈퍼스타즈의 유일한 스타, 양승관."
-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에서는 김혁이 양승관 역을 맡아 감사용을 비롯한 삼미 선수들을 아니꼽게 생각한 캐릭터[15]로 등장하지만, 실제 모습은 영화와는 달리 삼미의 클럽하우스 리더로서 언제나 선수들을 따뜻하게 독려했다고 한다.
- 동생인 양후승과 양주승 모두 야구 선수로 활동했으며, 한 때는 3형제 모두 야구 지도자로 활동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바로 아래 동생인 양후승은 고교 야구 지도자로 명성을 떨쳤고, 양주승 역시 오래동안 아마야구 지도자로 활약했다. 다만, 이들 형제 중에서 선수로서 가장 대성한 것은 큰형인 양승관이다. 양승관과 양후승은 청보 핀토스 선수 시절인 1986년 프로야구 최초의 한 경기 동일 구단 소속 형제 동반 홈런을 기록한 바 있다.[16]
- 아들인 양원혁 선수 또한 아버지와 똑같은 인천고등학교-인하대학교 출신이다. 2013년 졸업 후 LG 트윈스에 신고선수로 입단하여 2015년에 처음으로 1군에 올랐다. 본인은 LG에서 선수 생활을 마치고, 아들은 LG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한 셈.
6. 관련 문서
[1] 네이버 프로필 기준[2] ~4월 30일[3] 5월 1일~6월 3일[4] 7월 5일~[5] 2021년에는 감독 겸 단장.[6] 병부공파 31세, 承(승)자 항렬. 나이에 비해 항렬이 낮은 편에 속한다.[7] 3형제 중 막내지만 프로 선수 데뷔는 하지 못했다. 대신 모교인 인천숭의초등학교 야구부 감독만 20년 역임했다고 알려져 있다.[8] 단적인 예로 삼미의 원년 선수단에는 국가대표 경력의 선수가 없었다. 물론 당시 인천 출신 국가대표 스타로는 임호균과 김진우가 있었지만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에 열린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 참석했던 관계로 1983년에야 선수단에 합류한다. 실제로 이들과 장명부가 합류했던 83년에 전년도 꼴지였던 삼미가 상위권에 들었다는 점을 보면 당대 프로야구에서 국가대표 경력을 가진 선수의 입지가 얼마나 큰지를 알 수 있다. 그래서 당시 야구팬들과 언론에서 "슈퍼스타즈에 슈퍼스타가 한 명도 없다"는 말을 자주 써먹었다.[9] 과거 숭의야구장에서 양승관의 워밍업을 본 이들의 목격담에 의하면 홈플레이트 부근에서 양승관이 던진 공이 큰 포물선을 그리다가 야구장 밖 숭의운동장 주경기장 관중석에 떨어지는 장면을 봤다고 한다.[10] 여담으로 김일권은 삼미 상대로 홈스틸을 해냈을 정도로 빠른 발을 가지고 있는 선수다.[11] 이후 9이닝 퍼펙트는 2022년 윌머 폰트가 NC 다이노스를 상대로 달성한다. 다만 9회말까지 0:0 동점 상황이 유지되었고 10회초에 4점을 뽑긴 했으나 폰트가 10회말에 등판하지 않으면서 퍼펙트 게임은 무산되었다.[12] 인하대는 2002년 전국대학야구선수권대회 우승 이후 암흑기를 보내다가 허세환 감독 부임 후 2012년 회장기 전국대학야구 하계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했다.[13] 한편 이 때 동생 양후승도 다시 스카우트 팀으로 돌아갔다.[14] 공석이 된 수석코치 자리는 삼성에서 나온 김평호 코치를 영입해 메꿨다.[15] 경기 중 덕아웃에서 야구공이 가득 담긴 바구니를 발로 거칠게 걷어차는 장면이 나온다.[16] 이후 같은 팀에서 뛰던 형제가 같은 경기에서 홈런을 치는 일이 없었으나 양승관-양후승 형제의 홈런 이후 34년이 지난 2020년 SK 와이번스의 최정-최항 형제가 한 경기에서 동반 홈런을 터뜨리면서 기록을 이어나갔다. 양승관-양후승 형제, 최정-최항 형제와 달리 서로 다른 팀에서 뛰던 형제가 같은 경기에서 홈런을 주고 받은 기록도 있다. 2015년 LG 트윈스의 나성용과 NC 다이노스 나성범 형제가 홈런을 주고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