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5 14:08:37

박승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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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군
'''· 87 김민호 · 72 박승민 · 74 김경문 [[틀:한화 이글스 감독|
]] · 76 윤규진
· 77 박재상 · 78 김남형 · 79 양상문 · 82 김재걸
· 83 김우석 · 88 양승관 · 89 정경배 · 90 김정민'''
2군
'''71 이대진 [[틀:한화 이글스 2군 감독|
]] · 75 박정진 · 80 고동진 · 86 최윤석
· 87 추승우 · 100 정현석 · # 쓰루오카'''
잔류/재활군
57 정우람 · 81 김성갑 · 85 정범모 · 91 이상훈
트레이닝파트
이지풍 · 김형욱 · 김연규 · 장세홍
· 최우성 · 김재민 · 김소중
코칭스태프투수포수내야수외야수군 입대 선수등록 선수육성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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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민의 수상 경력 / 보유 기록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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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kt wiz 우승 엠블럼 V1.png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코치
2021

보유 기록
한 타자 상대 최다 투구수 20구[1][2]

현대 유니콘스 등번호 49번
장용대
(1996~1999.7.22.)
<colbgcolor=#000f24> 박준수
(2000~2004)
김동현
(2005)
현대 유니콘스 등번호 27번
서성민
(1999~2004)
박준수
(2005~2007)
팀 해체
{{{#fff [[우리 히어로즈|우리]]/[[서울 히어로즈|서울]]/[[넥센 히어로즈|넥센 히어로즈]] 등번호 27번}}}
팀 창단 <colcolor=#fff> 박준수
(2008~2011)
허도환
(2012~2013)
KIA 타이거즈 등번호 45번
송산
(2011.8.~2011)
박준수
(2012)
박찬
(2013)
넥센 히어로즈 등번호 87번
최창호
(2011)
박승민
(2014~2018)
이건우
(2019~2020)
kt wiz 등번호 87번
이창엽
(2018)
박승민
(2019~2022)
전병두
(2023~)
한화 이글스 등번호 72번
조성환
(2021~2022)
박승민
(2023~)
현역
}}} ||
파일:2024 박승민 프로필.png
<colbgcolor=#f73600><colcolor=#fff> 한화 이글스 No.72
박승민[3]
朴承珉 | Park Seungmin
출생 1977년 3월 18일 ([age(1977-03-18)]세)
서울특별시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강남초 - 강남중 - 서울고 - 경희대
신체 186cm, 90kg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 입단 1996년 2차 9라운드 (전체 67번, 현대)
소속팀 현대 유니콘스 (2000~2007)
우리-서울-넥센 히어로즈 (2008~2011)[4]
KIA 타이거즈 (2012)
지도자 넥센 히어로즈 1군 불펜코치 (2014~2016)
넥센 히어로즈 1군 투수코치 (2017)[5]
화성 히어로즈 투수코치 (2017~2018)[6]
kt wiz 1군 투수코치 (2019~2021)
kt wiz 2군 투수총괄코치 (2022)
한화 이글스 1군 불펜코치 (2023)[7]
한화 이글스 1군 투수코치 (2023~2024)[8]
한화 이글스 투수 코디네이터 (2024~)[9]
1. 개요2. 선수 경력3. 플레이 스타일4. 지도자 경력5. 연도별 주요 성적6. 여담7.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한화 이글스 투수 코디네이터.

이름이 생소할 수도 있는데, 현대 유니콘스마무리 투수이자 넥센 히어로즈 시절 준수한 중간계투로 활약했던 우완 사이드암 투수 박준수였다. 은퇴 후 2012년에 지금의 이름으로 개명했다.

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

서울고 3학년 시절에 깜짝 호투로 팀을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 4강까지 올리며 타격상까지 받았다.(10타수 6안타) 당시 4강전에서 김선우휘문고와 연장 14회까지 가는 혈투 끝에 분패하였다. 그 전후로 큰 활약이 없었다.

1996년 신인드래프트에서 현대 유니콘스의 지명을 받았지만, 경희대학교로 진학한다. 지명 순위 자체가 67번째로 상당히 낮은데, 팀에서도 그냥 즉석복권 긁는 기분으로 지명한 것. 이렇게 낮은 순번으로 지명된 선수들의 경우 보통 대학을 보낼 때가 많다.[10] 박준수도 그런 케이스였다. 경희대 재학 시절에도 고려대 킬러라는 이미지 빼고는 딱히 보여준 게 없어서 대학 졸업 후 입단 당시에도 계약금이 고작 2천만원이였다.

2.2. 현대 유니콘스

파일:attachment/박승민/Example.jpg

실제로 프로 입단 후, 2000년부터 2004년까지는 모두 9⅔이닝 7실점(방어율 6.52), 8 삼진, 6볼넷, 피홈런 2. 거의 등판 기록이 없으며 2001년과 2003년은 아예 1군에서 등판조차 하지 못했다. 한편 이런 무명시절에 치러진 2003년 한국시리즈, 2004년 한국시리즈에서 상대팀의 조웅천임창용, 권오준, 박석진 같은 사이드암 투수에 대비하기 위하여 배팅볼 투수 역할을 하기도 했었다.

본격적으로 1군에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건 2005년부터다. 전반기에 그럭저럭 하는 모습을 보여주다 5월 말 한화전에서 만루홈런을 맞아 2군에 갔다 와서 6월 말 두산전에서 또 만루홈런을 맞아 '만루홈런의 사나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하지만 8월 18일 1군에 다시 복귀한 후 완전히 각성하였다. 32⅔이닝 8실점(자책 7, 방어율 1.93), 삼진 38개, 볼넷 6개라는 성적을 남기며 시즌을 종료하였고, 현대팬들에게 어느정도 기대를 받지만 언론이나 타팀팬들에겐 전혀 주목받지 못했었다.

나이 30살이 되던 2006년에 드디어 꽃을 피운다. 당시 시즌 초반에 황두성이 마무리였는데, 황두성이 개막전에서부터 먼지나도록 두들겨맞고 성적 부진으로 2군에 내려가자, 불펜요원으로 활동했던 박준수가 마무리로 기회를 잡으면서 확실하게 위치를 잡았다. 2006년 시즌 기록은 61경기 출장에 69⅓이닝을 소화하며 5승 5패 38세이브 평균자책 1.82.[11] 아무리 2006시즌이 투고타저의 해였다고 하지만, 무명의 선수가 나이 30이 다되어서 세운 기록으로는 정말 놀라운 수치다. 마무리 투수로 활약하며 이 해 현대 유니콘스의 깜짝 2위에 한 몫 했다. 당연히 포스트시즌 엔트리에도 승선했었으나, 현대가 한화 이글스에게 PO에서 1차전 4:11로 승리 뒤 내리 3연패를 해버리면서 세이브는 기록할 수 없었고 2경기 출장에 1⅔이닝 동안 2피안타 1볼넷 1탈삼진 평균자책 0을 기록했다.
2007년까지는 줄어들은 스트라이크 존 때문에 바깥쪽 슬라이더 승부가 잘 안 먹히며 지난 시즌보단 부진하였지만 그럭저럭 무난한 피칭을 보여줬는데 2006 시즌 말 싱커를 배우기 위해 무리한 결과 몸에 부상을 입는다. 원래 직구와 슬라이더 투 피치로 재미를 본 투수인데, 구종을 다양화하겠다고 싱커에 도전했다가 팔꿈치에 부상이 온 것이다. 그 결과는 무려 세 번의 수술이었다. 뼛조각 제거 수술, 신경 수술까지. 그렇게 팔꿈치에 세 번 칼을 댔고, 2009 시즌은 아예 임의탈퇴로 시즌을 통째로 날렸다. 모두가 끝났다고 생각하는 순간...

2.3. 우리-서울-넥센 히어로즈

2010년 극적으로 복귀에 성공했다! 시즌 성적은 3승 3패 8홀드 평균자책 2.34. 우완 사이드암이 부족했던 넥센 히어로즈에게는 정말 천금같은 귀환이었다. 이 시기 주전 마무리로 손승락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에 2010년에는 마무리 투수로 뛸 일은 없었다. 여하간 넥센 투수진의 베테랑으로 오랜 재활도 경험했고, 끈기도 있었고, 구위도 나쁘지 않았기 때문에 팀 투수진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다.

참고로 2010년에 이용규와 20구에 걸친 승부 끝에 우익수 플라이로 잡아낸 적이 있다. 이로 인해 용큐놀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그리고 2012년 둘은 한 팀에서 만났다.

2011년 4월 8일 오랜만에 세이브를 기록했다. 하지만 전성기 때의 구속은 나오지 않았고 사이드암의 특성상 왼손타자에게 많이 약했다. 이후로는 큰 활약은 보여주지 못했다. 등판할 때마다 이닝을 1이닝 이하로 먹은 탓에 점수를 잃으면 평균자책점이 훅 올라갔으며, 그래도 홀드는 그럭저럭 기록해주고 있었지만 5월 9일까지의 성적이 ERA 5.73. 결국 이보근과 함께 5월 9일에 2군으로 내려갔다.

2.4. KIA 타이거즈

2011년 11월 25일, 황두성과 함께 넥센에서 방출당했다. 넥센 관계자의 말에 의하면, "박준수에게는 다른 곳에서 더 많은 기회를 주고 싶어 방출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12월 2일 불펜 강화를 시도하는 KIA 타이거즈가 그의 영입을 결정, 2012 시즌부터는 KIA 소속으로 뛰게 되었다.

2012 시즌 5월 4일 무등 야구장에서 열린 경기에서 KIA 타이거즈 소속으로는 처음으로 1군 무대에 콜업되어 스코어 3:3인 11회초에 등판하여 3타자를 상대하여 1이닝 12투구수 무실점을 기록하였다. 공교롭게도 당시 상대팀이 친정이었던 넥센 히어로즈. 이날 팀은 3:3으로 비겼다.

5월 6일 경기에서는 ⅓이닝 6투구수 1피안타 무실점 홀드를 기록하였다.

하지만 이후 2군으로 내려갔고,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2012 시즌이 끝난 이후 방출되었다.

3. 플레이 스타일

주무기는 사이드암의 폼에서 나오는 슬라이더였다. 본인도 자신이 던지는 공 10개 중 9개가 슬라이더라 밝혔으며, 사이드암이란 걸 배제하더라도 매우 희귀한 스타일이었다. 이 때문에 구위가 좋음에도 불구하고 우타자 기준으로 바깥쪽 승부가 자주 들어가는 편이라 패턴이 단조로운 편이였다. 그러나 제구력이 괜찮았고 슬라이더가 빠르고 각이 좋았으며 상황에 따라 변화를 잘 주었기에 그것만으로도 타자를 요리했다. 싱커도 배우려 했으나 무리하게 장착하려다가 부상을 얻었고 기나긴 재활을 겪어야 했다. 선수생활 막판엔 체인지업을 연마해 던지기도 했으나 아쉽게 다시 부활하진 못하였다.

4. 지도자 경력

4.1. 넥센 히어로즈

2013 시즌 종료 직후 친정팀 넥센 히어로즈의 코치로 영입되었다. 보직은 1군 불펜코치로 마무리 캠프에 합류하면서 코치로써의 업무를 시작했는데, 기존 김수경 코치의 선수 복귀로 공석이 된 불펜코치 자리에 선임되었다.

2016년 들어 엄청난 활약을 보여 주고 있는 신재영의 슬라이더가 그의 작품이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손혁 투수코치와 함께 찬양받고 있는 중이다. 또 2016년 마무리 투수로 완벽하게 정착한 김세현의 각성에도 박승민 코치의 도움이 있었다고 한다.

2016 시즌 후 기존 1군 투수코치였던 손혁이 사임하자 그 빈 자리를 메워 메인 투수코치로 승격되었다.

2017년 4월 맹활약하고 있는 최원태의 투심이 그의 작품임이 밝혀지면서 팬들에게 찬양을 받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얼마 후 투수진이 급격하게 부진에 빠지자, 7월 31일부로 브랜든 나이트와 보직이 맞바뀌어 2군(화성) 투수코치로 내려갔다.

4.2. kt wiz

2018년 11월 15일 이강철 감독의 부름을 받고 넥센을 떠나 kt wiz의 1군 투수코치로 자리를 옮겼다. 이강철 감독과는 넥센 시절에 같은 코칭스태프로 일했던 인연도 있는데다 마침 같이 kt에 합류한 이지풍 트레이닝코치와도 인연이 있다 보니 1군 코치 자리를 제시한 kt로 옮긴 걸로 보인다. 물론 kt 신임 단장인 이숭용과도 현대-넥센 시절 선후배였던 인연이 있다. 기사

kt wiz 1군 투수코치를 맡은 뒤 현재까지의 평은 배제성이 영점을 잡은 것과 주권이 사람이 된 것 등을 포함, 그리고 김민이 지난 시즌의 제구 불안에서 그나마 조금이라도 빠져나오기 시작했다는 것 등 때문에 대체적으로 준수하다는 평이다.

2021년 들어서는 더더욱 재평가가 되고 있는데, 투교 알리미라는 멸칭도 있었으나, 2020 시즌 구속도 팔도 안올라오던 배제성을 그 상태에서 밸런스를 맞춰 디셉션을 잡았고, 3점대 평자를 유지했으며, 2021 시즌 다시 구속도 150 언저리로 올렸다. 거기에 전유수, 이보근, 유원상, 박시영 등의 타 팀에서 길을 잃고 방출된 베테랑 불펜들을 영입한 뒤, 한 시즌 동안은 잘 써먹었던 것에 큰 공헌을 했고, 이는 곧 2020 시즌 창단 첫 포스트시즌 진출과도 연결된다고 할 수 있다.

전반적으로 투수들의 피칭 디자인 면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많은 구종을 던지다 확실한 결정구가 없어서 부진하던 주권을 직구-체인지업 투피치로 만들어 불펜 필승조로 만들었고, 박시영 또한 포크볼을 과감하게 버리고, 직구-슬라이더 투피치로 2점대 평자를 유지하면서 필승조로 각성시켰다.

2021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하면서 선수 때 껴보지 못한 우승반지를 코치로 처음 끼게 되었다.

그러나 2022 시즌을 앞두고 2군 총괄 투수코치로 보직을 옮겼다.
시즌을 마친 뒤 재계약을 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타팀의 영입 제안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4.3. 한화 이글스

kt wiz에서 나온 후 곧바로 한화 이글스의 코치로 영입된 걸로 보아 한화의 이적 제안을 받고 kt와 재계약을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 한화에서의 보직은 1군 불펜코치.

한편 코치 시절 동안 줄곧 사용했던 87번은 추승우 코치가 사용 중인 번호여서 72번을 택했다.[12]

5월 11일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이 경질됨에 따라 호세 로사도 투수코치가 팀을 떠나게 되어 메인 투수코치로 보직이동을 하게 되었다.

전임자 로사도의 평이 좋았기에 우려가 존재했으나, 페냐의 피칭 디자인을 바꿔 시즌 중반 팀의 에이스로 활약하게끔 했고, 시즌 초에 부진했던 주현상의 밸런스를 조정해 리그 최정상급 불펜 투수로 탈바꿈시키면서 호평받았다.

2024시즌에도 1군 투수코치로써 활동했지만 최원호 감독과 함께 한박자 느린 투수교체와 김서현과 문동주의 부침, 박상원/김범수의 부진 등으로 혹평받은 반면 주현상이 최정상급 불펜을 넘어 철벽 마무리가 된 공과 과가 동시에 존재했었고 감독이 김경문으로 바뀌고 나서 감독 지시에 따라 타이밍이 어느정도 맞아지며 혹평이 줄어들었다.

양상문 SPOTV 해설위원이 김경문 감독의 부름을 받고 새롭게 1군 투수코치로 합류하면서, 정경배 수석코치와 함께 전반기를 마치고 2군으로 내려간다.

김경문 감독은 2일 KT와의 경기를 앞두고 인터뷰에서 "정경배 수석코치에게는 지난주 부산 원정 때 미리 얘기를 했다. 박승민 코치에게도 내 결정에 미안하다는 뜻을 표시했다"고 설명했다.

김 감독은 "처음에 감독으로 부임했을 때는 코치진을 흔들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두 코치 모두 역할을 정말 잘해줬다. 하지만 감독 입장에서는 팀을 위해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있다. 두 코치가 남은 3연전도 선수들을 잘 이끌어줄 것"이라고 교체 이유를 설명했다.

7월 5일 1군 투수 코치에서 1군 투수 코디네이터로 보직이 변경되었다. 후임 투수 코치는 양상문.

5.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 기록
<rowcolor=#fab93d>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2000 현대 5 5⅔ 0 0 0 0 9.53 5 6 4
2001 1군 기록 없음
2002 2 2⅔ 0 0 0 0 3.38 4 1 4
2003 1군 기록 없음
2004 1 1⅓ 0 0 0 0 0.00 0 1 0
2005 29 42 1 1 0 1 3.86 37 14 43
2006 61 69⅓ 5 5 38
(2위)
0 1.82 48 15 65
2007 54 50⅓ 6 4 3 4 2.86 41 37 49
<rowcolor=#fff>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2008 우리-서울-넥센 34 27⅓ 0 3 2 7 3.62 20 13 17
2009 1군 기록 없음[13]
2010 42 42⅓ 3 3 0 8 2.34 30 20 25
2011 34 19⅔ 2 2 1 8 6.41 22 12 9
<rowcolor=#fff>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2012 KIA 2 1⅓ 0 0 0 1 0.00 1 0 0
KBO 통산(10시즌) 264 262 17 18 44 29 3.13 208 119 216

6. 여담

  • 현역 시절 별명은 월드컵 투수. 2006 시즌과 2010 시즌, 기묘하게 월드컵이 열린 잘하는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
  • 마구마구에서는 06 엘리 박승민이 자그마치 97의 제구력을 달고 나와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x형, 싱커 강화형이다. 엘리 기준 싱커의 기본 스탯은 89. 물론 고증 따위는 이미 어언 10여년전에 클리프 리의 케이스에서 보듯 저 우주 밖으로 던져버린 케이스이지만, 싱커를 배우려다 다쳤고 그게 선수 인생에 영향을 크게 준 케이스인데 게임 속 자신이 싱커를 신나게 던지는 걸 보면 이게 자신이 꿈꾸던 모습이라 흐뭇해할지, 괴로운 기억이 떠올라 싫어할지 참 궁금해지는 부분이다.
  • 조용준이나 조용훈 등 과거 현대 유니콘스 시절 같이 뛰었던 후배들의 말로는 굉장히 엄하고 무서운 선배였다고 한다. 보통 군기반장이면 후배들 상대로 억지로 트집을 잡거나 똥군기를 부리면서 자신한테는 관대하게 내로남불하는 경우가 있는데 박승민은 오히려 자신한테 더 엄격하고 본인이 솔선수범하는 FM 스타일이었다 보니 후배들이 뭐라 함부로 불평을 못했다고 한다. 게다가 아무리 무섭다 해도 한편으로는 후배들의 경조사도 잘 챙기는데다 사소한 고민도 무뚝뚝하게 잘 들어줬다 보니 선수들 사이에서 인망도 두터웠다고 한다.
  • 무명 생활이 워낙 길었던데다 한국 나이 서른이 다 되어 1군에서 자리잡았기 때문에 선수 시절 내내 한국시리즈 우승 반지를 하나도 껴보지 못하고 은퇴했다.[14] 하지만 은퇴 후 kt wiz 코치가 된 후인 2021년 한국시리즈에서 처음으로 우승 반지를 얻게 되었다.

7. 관련 문서



[1] 2010년 8월 29일 대 KIA전, 상대타자 이용규.[2] 이날 27구를 던져 승리투수가 되었다.[3] 개명 전 이름은 박준수(朴準洙).[4] 2009년 한 시즌동안 팔꿈치, 어깨 수술과 재활을 이유로 임의탈퇴 신분이었다.[5] ~7월 30일[6] 7월 31일~[7] ~5월 11일[8] 2023년 5월 12일~2024년 7월 4일[9] 7월 5일~[10] 당시는 2차지명의 지명권 유효기간이 4년이었다. 고졸의 경우 상위 라운드 지명선수만 입단시키고 중-하위 라운드 지명선수는 대학으로 진학시킨 다음 대학에서의 기량과 활약상을 보고 대학 졸업 후 입단을 시킬지 아니면 지명권을 포기할지 결정했다. 쌍방울 레이더스의 경우 팀의 재정사정이 어려워지자 모두 고졸선수만 지명하고 전원 대학으로 진학시킨 해가 있었다. 한국프로야구/2004년/신인 드래프트 대상자부터 지명권 유효기간이 4년에서 2년으로 줄었다.[11] 스탯티즈 제공 ERA+는 198.8, FIP+ 195.1에 WAR은 무려 3.82다.[12] 선수 때 사용한 27번을 뒤집은 번호이기도 하다.[13] 부상 및 수술로 시즌 아웃[14] 현대가 우승했던 2000년, 2003년, 2004년 한국시리즈 당시에는 2군 선수였다 보니 세 번 모두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들지 못했다. 그나마 우승 보너스는 정수근이 동생 썰을 풀면서 소액이라도 받았을 가능성이 높았던 게 위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