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6-15 20:05:23

추승우


{{{#!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 align=center><table width=320><table bordercolor=#FF6600> 파일:HanwhaEagles_Brandlogo2.png 한화 이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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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이글스 현역 시절
파일:external/imgnews.naver.net/PS17030200291g_99_20170302214813.jpg
상무 피닉스 코치 시절.[1]
한화 이글스 No.87
추승우(秋承佑 / Seung-woo Chu)
생년월일 1979년 9월 24일
출신지 충청북도 청주시
학력 공연초-청주중-청주기계공고[2] - 성균관대
포지션 외야수, 1루수, 3루수[3]
투타 우투좌타
프로입단 1998년 2차 12라운드 지명[4]
소속팀 LG 트윈스 (2002~2007)
한화 이글스 (2008~2015)
지도자 상무 피닉스 야구단 수비코치 (2015~2017)
한화 이글스 육성군 작전·주루코치 (2018~)
응원가 뱃노래[5]
크라잉넛 - Over the Rainbow[6]
LG 트윈스 등번호 39번
추승우(2002~2003) 장진용 (2004~2005)
LG 트윈스 등번호 39번
장진용(2004-2005) 추승우(2006~2007) 박석진(2008)
한화 이글스 등번호 4번
김동훈(2007) 추승우(2008) 김강석(2009~2010)
한화 이글스 등번호 9번
김수연(2000~2008) 추승우(2009~2015) 송주호(2016~2018)

1. 소개2. 선수 경력
2.1. LG 트윈스 시절2.2. 한화 이글스 시절
2.2.1. 2009 ~ 2011 시즌2.2.2. 2012 시즌2.2.3. 2013 시즌2.2.4. 2014 시즌2.2.5. 2015 시즌
3. 지도자 경력4. 기타5. 연도별 주요 성적6. 관련 문서

1. 소개

한화 이글스외야수. 별명은 잘할 때는 '추간지' 또는 추신수의 별명을 따서 '추추트레인'혹은 '추추트랙터'. 못할 때는 '추잉여', '추추트랙터', 주루사할 때면 '추루사'.

한화 어중간한 외야수 라인인 김고추정이 라인의 일원이다.

2. 선수 경력

2.1. LG 트윈스 시절

1998년 청주기공을 졸업한 후 신인 드래프트에서 LG 트윈스의 2차 12순위로 지명을 받았으나 성균관대학교에 진학하였다. 그 뒤 2002년 LG 트윈스에 입단하여 내야 유망주로 주목받았으나, 당시 이순철의 잘못된 트레이닝 설정[7]과 고질적인 송구 불안이 문제가 되었고, 거기다 이대형 등의 비슷한 컨셉의 선수(타격보다 준족을 살려 출루하는 타입)들이 많았던 당시 LG 유망주 속에 끼여서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 결국 상무 제대 후에도 주로 2군 생활을 전전하다 2007년 시즌 종료 후 방출되었다.[8]

2.2. 한화 이글스 시절

방출당해 심리적 공황 상태에 빠져 있던 추승우에게, 한화 스카우트를 통해 김인식 감독이 예의 대사 "몸 만들고 기다리고 있으라"를 보내왔다. 그리하여 연봉 2,500만원에 연고지 팀인 한화와 계약했고, 그 과정에서 포지션을 외야수로 바꾸었다. 2008 시즌에는 나름대로 분발했으나 외야수로서의 경험 부족과 체력 부족 등으로 후반기에 성적이 하락하며 시즌을 종료하였다. 그래도 노력을 인정받아 연봉이 5천만원으로 인상.

여담으로 가끔 1루수로 기용될 때가 있었는데 이 1루 수비를 볼 때 1루수 주제에 외야수처럼 공이 하늘로 뜨자 본능적으로 플라이 쪽으로 몸을 날렸다. 허나 공은 잡지 못하고, 옆에 있던 2루수 한상훈은 바운드 된 공을 1루로 던지려고 자세를 취하나 1루에는 아무도 없다는걸(…) 발견하고 앞에 추승우를 본 다음에 황당해서 쓴웃음을 짓는 기이한 광경이 연출되기도 했다.[9]

2.2.1. 2009 ~ 2011 시즌

2009 시즌에는 주로 우익수중견수로 출장. 처음엔 부진한 타격 탓에 후반 대수비 및 대주자 요원으로 주로 나왔으나 점차 주전 출장 기회가 늘어났다. 타격과 출루율은 아직 그리 미덥지 못하지만 전통적으로 느림보 팀인 한화에선 나름대로 귀중한 '발빠른 선수'. 거기다 생애 처음으로 2홈런을 치는 등 주전 자리 확보를 위해 나름대로 열심히 뛰었다.

파일:attachment/추승우/choo.jpg
2010 시즌에는 위의 사진처럼 번트 자세같은 특이한 타격폼[10]으로 등장, 여차하면 번트를 갈겨버릴 수 있지만 초반에 월등하게 향상된 타격감을 선보여서 그다지 번트를 갈길 일은 없을 듯했다.인터뷰에 따르면 그동안 종방향 변화구와 바깥쪽 볼에 약했는데 이 자세로 치다보니 의외로 잘 되길래 아예 타격폼을 바꿨다고 한다.

409 대첩에서도 5타수 4안타 2타점 2득점으로 맹활약.

그러나 KIA에서 김경언이 트레이드 된 후 주전경쟁에서 밀리고, 어쩌다 간혹 출장해도 그의 트레이트 마크인 잉여짓의 발동으로 대주자나 대수비로 가끔 모습을 보일 뿐이었다. 사실 실력과 나이에 비해 너무나도 엄청난 기회를 받았다. 역시 클래스는 영원한 것이다…

2011년 3월 13일 LG와의 시범경기에서 팀이 스코어 11:10으로 뒤지고 있던 9회말 2사 1루에서 대타로 출전해 폭풍 삼구삼진을 당하고 물러났다. 역시 클래스! 한대화의 의중은 무엇이었을까.

사실 이 경기의 백미는 한화 이글스LG 트윈스를 상대로 7회까지 스코어 11:0으로 끌려가다 8회에 폭풍 10득점을 했다는 주말 예능 쌈싸먹는 반전이었다. 야구 갤러리는 LG의 불펜에 경의를 표하며 그리고 한화의 예능감을 칭송하며 LG가 아닌 AG[11]로 폭발했다.

그래도 5월 들어서는 주전 우익수를 맡으면서 생각보단 그럭저럭 했다. 물론 어디까지나 그럭저럭(…)이었다.

그런데 외야진의 처절한 생존경쟁을 피하기 위해서인지 2군에서 3루수연습을 하는듯했고 2군 경기에서도 3루수로 출전하였다. 이여상 조심해!

2011 시즌 후 방출이 기정사실화되었으나 살아남았다.

2.2.2. 2012 시즌

시즌이 시작된 이후에도 한동안 소식이 없더니, 8월 2일 1군 엔트리에 등록되어 같은 날 LG 트윈스전에 1익수1루수로 선발 출장4타수 1안타 2타점으로 화려하게 복귀 신고를 했다.

다음 날인 8월 3일 SK 와이번스전에서도 3루타와 2루타를 연달아 때려내며 4타수 2안타 4타점으로 맹활약! 다만 나머지 두 타석이 폭삼

한동안 퓨쳐스리그에도 출전하지 못하면서 심리적으로 많은 방황을 했고, 이 기간 동안에는 은퇴를 생각할 정도로 깊이 상심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주변에서 끝까지 해보자며 많은 격려를 해 주었고, 결국 돌아올 수 있었던 것. #

하지만 이것도 반짝이었는지, 정확히 이 두 경기를 치르고 난 이후로 멀티히트와 타점은 고사하고 안타 하나 치기도 힘들 정도로 타격감이 폭락했고, 특히 8월 3주차에 들어서는 주간 타격기록이 13타수 1안타로 타율이 무려 .077. 게다가 팀의 에이스 류현진의 멘탈을 붕괴시킨 823 대첩에서 결정적인 송구 실책을 범하고 말았다. 결국 이 날의 실책이 빌미가 되어 8월 25일 자로 1군 엔트리에서 말소. 대체요원으로 연경흠이 1군에 콜업되었다.

2.2.3. 2013 시즌

추승우/2013년 문서 참조.

2.2.4. 2014 시즌

올스타 브레이크 전까지 1군에 한번도 못 올라오고 있고 2군 성적도 좋지 못한 데다가 그나마 출전도 많이 못하고 있다.

9월 12일, 드디어 401일만에 1군 엔트리에 등록되었다! 대수비로 나와 2014 시즌 1군 첫 타석에서 2루수 플라이로 아웃되었다. 이후로는 경기 막판 대주자와 대수비 정도로만 기용되어 타석에 거의 서지 못하다가 팀의 마지막 홈경기(22-1로 대파당한 삼성 라이온즈전)에서 자신의 시즌 첫 안타를 기록했다.

시즌후 부임한 김성근 감독의 마무리 캠프 명단에 포함되면서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리고...

파일:external/imgnews.naver.net/175255000_%25C7%25D1%25C8%25AD.jpg

파일:external/6f049970eec894f71ad1b23e9445a3ead94b8dbc23411762eed6cfda0e35d81f.jpg

이와 같은 짤방들을 남기며 장렬히 전사했다(...)

2.2.5. 2015 시즌

5월 26일 김경언이 기아 임준혁의 공에 종아리를 맞고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하게 되자 이 자리를 메꾸기 위해 고양 원더스 출신 육성선수였던 신성현이 정규선수로 등록되면서, 로스터 조정으로 웨이버 공시되어 팀을 떠나게 되었다. 계속해서 1군에 못 올라오는 데다가, 나이도 적지 않아서 타 팀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가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사구 하나가 노장선수 한 명의 선수생활을 위태롭게 만든 나비효과를 불러온 셈.

3. 지도자 경력

방출 이후 소식이 없다가 상무 피닉스 야구단 수비코치를 맡게 되면서 지도자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하게 되었다. 2004~2005년에 군복무 때문에 상무에서 선수생활을 한 이후 약 10년 만에 코치로 복귀하게 되었다. 군인으로 치면 전역하고 근무하던 부대에 군무원으로 들어간 격

2017시즌 종료 후 오랫동안 몸담았던 한화 이글스의 육성군 작전/주루코치로 돌아왔다.

4. 기타

간지나는 외모와 어울리지 않게 사실 엄청난 노력파라고 한다. 성실하기도 하고… LG에서나 한화에서나 가장 열심히 훈련하는 선수 중 하나로 손꼽혔다. 그래서 감독 및 코치진들이 신임하며 기용하지만,영 좋지않은 의미의 클래스는 어쩔 수가 없다라는 의견이 중론. 어찌 보면 선수의 한계를 넘는 과도한 기용으로 지나치게 까이지 않나 싶다. 그 예로 2010 시즌 초반 3~4할 때렸을 때.(…) 그래서 한화팬들이 이 선수를 바라보는 시선은 그야말로 애증. 성실한 선수여서 그 노력의 열매를 거두기를 바라지만 정작 경기를 뛰면 삽질의 연속이니... 2012년 은퇴의 기로에 섰을 때도 그 노력을 아쉬워한 팀 동료들과 코칭 스태프들이 앞장서 재기를 종용할 정도로, 많은 이들이 안타까워하고 응원하는 선수임에는 분명하다.

한화에선 보기 드문 날씬한 몸매의 소유자로, 모델같은 몸매라 하여 '추간지'라고 불렸다. 그 외 '일익수'[12]라는 별명을 얻은 적도 있다. 다른 별명으로는 '추추 트렉터'가 있다.(…)


2루수 한상훈의 허탈한 웃음이 이 사태를 지켜본 모두의 마음을 대변한다

한화 여성팬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역시 LG 출신 그러나 2012년 시즌 후 7살 연하의 신부 김선미 씨와 결혼에 성공. 2013 시즌 추승우의 예기치 않았던 활약엔 아내의 내조가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고.

2013년에는 당시 한화이글스 코치 이종범에게 배트를 선물받더니 한화 외야수치고는 준수한 성적을(...) 냈다.

한때 한화의 좌타 외야수 3인방이었던 (...) 트리오의 일원이었다.

5.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2 LG 트윈스 6 10 .200 2 0 0 0 0 1 0 0 .200 .200
2003 5 4 .000 0 0 0 0 0 1 0 0 .000 .000
2004 상무 피닉스 야구단에서 군 복무
2005
2006 38 52 .231 12 2 0 0 5 7 1 4 .269 .214
2007 1 1 .000 0 0 0 0 0 0 0 0 .000 .000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8 한화 이글스 119 371 .245 91 13 3 0 20 53 19 40 .296 .319
2009 105 193 .233 45 2 0 2 17 28 15 36 .275 .356
2010 111 260 .235 61 8 4
(4위)
2 23 39 10 35 .319 .325
2011 19 44 .205 9 0 0 0 1 5 0 3 .205 .255
2012 18 52 .173 9 5 1 0 8 4 3 7 .308 .271
2013 72 158 .304 48 7 0 1 17 19 12 21 .367 .383
2014 9 6 .167 1 0 0 0 0 3 0 4 .167 .500
2015 1군 기록 없음
통산(12시즌) 503 1151 .242 278 37 8 5 91 160 60 150 .301 .327

6. 관련 문서




[1] 옆에는 차례대로 심창민,오재원이다.[2] 청주고 야구부안좋은 일로 해체된 직후 청주의 야구부 명맥을 잇기 위해 청주기공 야구부가 생겼다. 이후 2008년 청주고가 청주기공 야구부를 인수하여, 청주기공 야구부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3] 입단 초에는 내야유틸로 주목받았으나, 외야로 전향했다.[4] 대학 진학으로 인해 실제 입단은 2002년.[5] 오오오 오오오오~ 추승우 날려버려 추승우 안타! 오오 오오오~[6] 한~ 화↗~ 추승우 안타 오~오~오~ 한~ 화~ 추승우 안타 오오오 오오~오[7] 살이 찌지 않는 체질인 추승우를, 체중을 늘려서 파워를 키워 장타자로 만들려 했다… 그 때문에 억지로 과식도 해가며 노력했으나, 오히려 수비 및 타격 포텐셜까지 망가졌다.[8] 마침 팀에서 마해영, 진필중과 같이 퇴출된 참이라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다… 김인식 감독을 제외하고.[9] '추승우 외야본능'이라고 검색하면 동영상을 볼 수 있다. 프로야구 역대 본헤드플레이 중 하나이므로 쉽게 찾을 수 있다. 2익수에 빗대서 1익수라고 까이기도 했다.[10] 1920년대 메이저리그의 데드볼 시대의 타격폼과 흡사하다.[11] 전광판 숫자는 한자리이기 때문에 한 이닝에 10점 이상을 득점하면 A, B, C…로 표시된다.[12] 2008년 5월 20일, 두산 베어스와의 잠실 경기에서 9회말 1루 수비를 볼 때, 전상렬의 2루수 앞 빗맞은 낮은 플라이 볼을 잡기 위해 외야수처럼 몸을 날렸던 일로 인해 일익수(일루수+외야수)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