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04 18:23:32

한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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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한상훈(韓尙勳 / Sang-hun Han)
생년월일 1980년 6월 3일 ([age(1980-06-03)]세)
국적 대한민국
출신지 서울특별시
출신학교 서울화곡초-신일중-신일고-경희대
포지션 2루수, 유격수, 3루수
투타 우투좌타
프로입단 1999년 2차지명 6라운드 (한화)[1]
소속팀 한화 이글스(2003 ~ 2015)
등장곡 YB-나는 나비
응원가 박혜경 - 뭉게구름[2]
Paul ANKA - Oh! Carol[3][4]
종교 개신교[5]
한화 이글스 등번호 3번
임주택 한상훈(2003~2004) 한상훈[6](2006~2008)
한화 이글스 등번호 13번
한희민(1986~1992) 한상훈(2005) 최주녕(2006~2007)
한화 이글스 등번호 3번
한상훈[7](2003~2004) 한상훈(2006~2008) 강동우(2009~2013)
한화 이글스 등번호 16번
신주영(2010) 한상훈(2011~2013) 정민혁(2014~2015)
한화 이글스 등번호 3번
강동우(2009~2013) 한상훈(2014~2015) 안승민(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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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 현재
1986~1990 1991 1992~1993 1994~1995 1996
? 유승안 이강돈 강정길 장종훈
1997~2000 2001 2002 2003 2004
강석천 장종훈 김종석 임수민 이영우
2005~2006 2007 2008~2010 2011~2012 2013
이도형 정민철 신경현 한상훈 김태균
2014 2015 2016 2017[(1)] 2018[(2)]
고동진 김태균 정근우 이용규송광민 최진행
송광민(임시 주장)
2018~현재[(3)]
이성열

[(1)] 기존 주장 이용규의 부상으로 송광민을 정식 주장으로 임명.[(2)] 기존 주장 최진행의 부진으로 송광민을 임시 주장으로 임명.[(3)] 임시 주장 송광민의 부상으로 이성열을 정식 주장으로 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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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프로 시절
2.1. 입단 후 군복무 전까지2.2. 2011 시즌2.3. 2012 시즌2.4. 2013 시즌2.5. 2014 시즌2.6. 2015 시즌2.7. 2016 시즌
3. 기타 사항
3.1. 별명3.2. 손시헌의 라이벌?3.3. 베이징 올림픽 차출?3.4. 한집사님
4. 연도별 성적

1. 개요

한화 이글스의 전 내야수. 주포지션은 2루이지만 유격수로도 자주 출장했다.

선수 초년기에는 상황에 따라 3루로 뛴 적도 있으며,[8] 좌익수로 나온 적도 있어 멀티 포지션의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2011년 이후 무주공산이 되어버린 2루에 안착하며 거의 2루수로 출장하였고, 2014년에는 국가대표 2루수 정근우가 영입되며 유격수로 많이 출장했다. 수비형 내야수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본래 내야수 출신이 아닌데다가 후술할 어깨부상, 갑작스러운 포지션 전환 등 사실 수비도 잘하는 편은 아니였다.경기수가 적어서 실책이 적어보인건 함정그러나 한상훈이나 이대수 정도의 수비면 감지덕지라 여길 정도로 한화의 내야는 공격에만 치중하다보니 전통적으로 수비가 굉장히 취약했다. 그 구멍을 채워야할 코칭 스태프의 무능은 생각외로 심각했고, 결국 FA로 정근우를 사오면서 어느 정도 해결이 된다.

2. 프로 시절

2.1. 입단 후 군복무 전까지

파일:/image/001/2003/07/24/kp1_2030724u1087.jpg
신인 시절.

신일고 시절에는 투수였고 한화에도 투수로 지명받았지만, 제구력 부족으로[9] 경희대에서 유격수로 전향했다. 경희대학교 졸업 후 한화 이글스에 입단해서 주로 2루수유격수로 뛰었다. 주전 2루수로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지만 혼돈의 카오스였던 한화 키스톤 포지션[10]에서 백업에 가까운 위치였고, 그나마 2007년, 2008년 정도가 주전 2루수에 가까웠다. 수비능력은 나름대로 괜찮은 편이었으나 타격이 실망이었다.

당시 타격이 영 좋지 않아 한화팬들에게는 한의 필두로 불렸다. 한화를 말아먹은 4인방이란 의미다. 물론 당사자들로선 좀 억울하겠지만 팬들 입장에선...[11] 물론 이 당시는 포스트시즌도 곧잘 진출하는 팀이었으니 말아먹었다는 평은 2014년에 와서는 그저 우스울 뿐이다.

2004년 병역비리 사건에 연루되었고, 2008년 말 공익근무요원으로 입대했다.[12]

2.2. 2011 시즌

2010년 11월 공익근무요원 소집이 해제되어 한화에 복귀하였다. 입대할 당시 많은 한화팬들이 '그가 복귀 후 내야에 무혈 입성할 정도면 정말 팀이 막장일 것이다….'라고 예상했으나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특히 2루수 정원석이 3루로 옮길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2루에 안착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팬들은 한화의 내야가 워낙 개판이라 그가 복귀하면 적어도 2010 시즌보단 약간은 나아지겠지 하는 기대를 하고 있었다.

수비를 안정적으로 해 주면서 전년도의 3루와 함께 시한폭탄과도 마찬가지였던 2루를 완벽하게 틀어막아 새로운 3루수 이여상과 함께 내야 수비를 안정시키면서 한화의 내야 수비를 안정화시켰으며, 놀랍게도 5월 들어 팀이 딱딱 필요한 순간에 적시타를 때리고 꾸준히 2번 타자의 역할도 해주면서 새로운 에이스가 될 수 있는 모습을 보여준 선발 김혁민, 가장 아슬아슬할 때 승부를 지켜준 계투의 박정진과 함께 한화 5월 상승세의 중심이 되었다.

그리고 2011년 7개의 상당히 적은 실책을 기록하며 공수 양면에서 꾸준히 제 역할을 해 주었으며, 후반기 크레이지 모드인 이대수와 함께 믿음직한 키스톤 콤비로 활약했다. 9월 25일 개인 통산 최초로 시즌 100안타까지 달성.

문제는 사람이라면 할 수 밖에 없는 실책, 또는 실책성 플레이가 너무 중요할 때만 꼭 나온다는 점... 한번은 9회 실책으로 경기 날려먹을 뻔하더니 6/9일 경기에서도 9회에 아쉬운 수비로 양훈의 완투승을 날려먹었다. 아쉬운 대목.

2011년 시즌 타율 2할 6푼 9리과 가장 많은 3홈런 39타점 16도루를 기록했다. 현재 자신의 롤모델은 기아의 이용규라고 한다. 평소에도 이용규의 영상을 보면서 연습한다고 한다.

2011년 11월 1일 마무리캠프에 참여했다. 부활을 꿈꾸는 장성호에 이은 팀내 고참 2위. 보통 마무리캠프를 신인 위주로 맞추는걸 생각해보면 전 경기 출장에 대단한 의욕이다. 2012 시즌 목표는 3할 타율이며, 간결하고 부드러운 밀어치기에 중점을 둘 생각이라고 한다. 한대화 감독도 캠프에서 무리를 시킬 생각은 없으며 타격의 부족한 점을 보충할 생각이라고 한다.

그리고 2012년부터 신경현의 후임으로 한화 이글스의 새 주장이 되었다.

2.3. 2012 시즌

주위로부터 많은 기대를 받았고 스스로도 의욕적으로 준비하며 시작한 2012 시즌이었지만, 2011년의 성적이 플루크였음을 입증하며 본래의 클래스인 2할 2푼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더군다나 유일한 장점이던 수비력도 노쇠화 때문인지 퇴보하여 많은 비난을 받고 있다. 어쩌면 원래 대수비로 밖에 활용 못할 양반을 전해의 플루크 때문에 주장이라는 중책까지 맡겨서 원래 실력보다도 더 못한 성적이 나오는 것일지도...

7월 11일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에서 9회초 불펜으로 등판한 임태훈을 상대로 투런 홈런을 쳐냈다.

9월 19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대전 홈 경기에서 4회말 2루 도루를 시도했는데 김상수의 공이 태그가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2루수 심판의 오심으로 아웃되었다. 덕분에 김상수는 찜찜했고 이 오심은 두고두고 논란이 있다.[13]

시즌 최종 성적은 112경기 272타수 61안타 3홈런 8도루 타율 .224로, 지난 시즌 대비 타율이 4푼 5리나 떨어져 나가 버리며 멘도사 라인으로 복귀. 하지만 이 시즌의 한상훈이 요상한 점은 하나있다. 바로 작년 시즌과 출루율 자체는 똑같다는 것.(...)

시즌 종료 후 주장직을 일본에서 돌아온 김태균에게 넘겼다.

2.4. 2013 시즌

한상훈/2013년 참조.

2.5. 2014 시즌

오프시즌에 자신이 예전에 달던 3번을 강동우가 방출되고 공석이 되면서 다시 달게 되었다. 또한, 자신의 주 포지션인 2루수가 국대 2루수 정근우에게 주어지면서 유격수로 포지션을 변경하게 되었다.

시즌 평생에 이 정도로 평가받는 때가 있었나 싶은 출발. 물론 타격은 여전히 답답하지만(...), 송광민 發 에러열전에 암 걸릴 지경이던 팬들로선 무난한 수비만으로도 새삼 한상훈에게 감사하고 있다.

4월 13일에도 선발출장 하면서 4타수 3안타에 2루타만 2개(1타점 포함)를 치며 좋은 모습을 보여줬지만 정작 4회때 기본적인 땅볼을 못 잡는 아쉬운 실책을 저질렀다. 그나마 타격이 좋아지고 있다는 게 다행. 그리고 이 실책 빼고는 수비 역시 준수했기 때문에 송광민보다 낫다는 평가가 떨어져나가지는 않았다.

4월 25일부터 정근우 대신 2번 타순에 들어서게 되었다. 4번 김태균의 느린 발 때문에 3, 5번에 빠른 발을 가진 타자를 세울 필요성이 생겼기 때문.

5월 24일 두산 베어스전에서 7회 대타로 출전하여 점수차를 3점으로 벌려놓는 2타점 적시타를 기록했다.

6월 1일엔 7번 타순으로 출장했다. 송광민이 3루에서 괜찮은 활약을 보이며 한상훈의 주전 유격수 자리도 굳어졌다. 타격감도 일취월장해, 전성기 때도 없었던 3할 타율을 기록하고 있다. 5월말 현재 규정 타석엔 못 미치지만 타율이 .333에 출루율 .426, 득점권 타율은 .481에 이른다. 14시즌이 역사상 다시 없을 타신투병의 시즌이라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대단한 성과. 한상훈의 예기치 않았던 활약으로 결국 1군에서 자리가 없어진 이대수가 트레이드되어 SK 와이번스로 떠나야 했다.

주장 고동진이 부진으로 2군에 내려가자 전직 주장으로서 주장 대행을 맡고 있다.

6월 25일 경기에서 4회초 최준석의 애매한 위치의 뜬공을 잡으러 가던 도중 2루수 정근우와 부딫치며 왼쪽 발목이 돌아가는 부상을 입고 구급차로 실려갔다. 이후 엑스레이 검진결과 다행히 골절은 아니고 바깥쪽 인대가 늘어난 것이라는 진단을 받으며 최악의 상황은 피했지만 당분간 휴식이 불가피해졌고 결국 다음날 26일에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되었다. 대신 올라온 선수는 조정원.

8월 9일 1군에 재등록되었다. 다만 코끼리 감독이 신인 강경학을 전폭적으로 밀어주기를 천명했기 때문에 당분간 대타나 대수비로 쓰일 듯 하지만, 강경학이 1군 새가슴 증세(...)를 보이고 있어서 아직 그의 자리가 위협받을 정도는 아니다.

코감독의 조급증 때문에 부상이 완쾌되지 않아 발목에 뼛조각이 돌아다님에도 1군에서 꾸준하게 출장했고, 그나마 주전으로 쓰인 것도 아니었다. 결국 시즌초의 쾌조의 폼을 많이 깎아먹긴 했지만 그래도 커리어 하이(.286)의 타격성적을 남겼다. 시즌후 발목 뼛조각 제거 수술을 받았고, 내년 스프링캠프 참가를 목표로 순조로이 재활중이다. 노력파 선수답게 시즌후 노력의 가치를 잘 아는 지도자 김성근 감독이 부임하자 기대감과 환영의 말을 남기기도 했다.

2.6. 2015 시즌

예상보다 재활이 늦어져 스프링캠프도 재활조에 편성되어 소화하였다. 마침 시즌을 앞두고 정근우도 송구에 맞아 턱 골절 부상을 입어, 시즌초 한화는 주전 키스톤이 모두 빠진 채 내야진 운영에 큰 어려움을 빚고 있다. 한상훈의 복귀가 늦어지는 동안 강경학이시찬이 괜찮은 모습을 보이고 있어 험난한 주전 경쟁이 예상되는 상황.

4월 30일 1군에 콜업되었지만 출장은 하지 않았다. 5월 1일 롯데전에서 대타로 처음 나와 볼넷으로 출루하였고 득점을 기록하며 6회의 대역전승에 한몫했다.

5월 5일 kt전에서 5회에 조인성의 대타로 출격, 담장을 원바운드로 때리는 2타점 2루타를 때려 8:8 동점을 만들었다.

5월 6일 kt전에서 5-7로 지던 6회 2사 2,3루에서 대타로 출장했으나 장시환에게 헛스윙 삼진을 헌납했다.

5월 7일 kt전에서 시즌 첫 선발출장했다.

5월 8일 두산전에서 2번 타자로 선발출장, 3타석 오르고 김경언과 교체된다. (희생번트, 삼진, 병살타...)

5월 9일 두산전에서는 8번 타자로 선발출장 했으며 3타수 1안타 1삼진 후, 교체되었다.

그러나 5월 12일 삼성전에서 3루수 겸 2번타자로 선발출장했으나 첫 타석에서 번트에 실패하고 강경학과 교체되었다.

이후 다음날 2군행. 2개월 후인 7월 1군에 짧게 등록되었다가 다시 2군으로 내려갔다. 이후 시즌이 다 끝나갈 무렵 권용관이 3경기 연속 실책을 기록한 후 권용관을 대신해 콜업되어 주전 유격수로 시즌을 마쳤다. 35경기 0.230 14안타 8타점으로 제대로 출장 기회조차 받지 못하였는데 어딜 보나 권용관에 비해 타격도 수비도 나쁘지 않고, 스타일도 김성근 감독이 좋아하는 수비형에 노력파 선수이지만 권용관의 부진에도 불구하고 콜업이 되지 못하여 한상훈이 김성근 감독에게 항명하여 징계성으로 2군에 박아두고 있다는 소문까지 나돌았다.

물론 근거는 없는 뜬소문이지만 그런 낭설이 나돌 정도로 미스테리하게 기회를 받지 못한 시즌.

2.7. 2016 시즌

보류선수 명단에서 제외되었고, 이과정에서 구단과의 잔여연봉 지급 논란이 발생핬다.한화 이글스/사건사고문서 참조. 최종적으로 2016년 2월 19일 한화를 떠나는 것으로 확정. 이 과정에서 잔여연봉 지급 문제를 두고 구단과 마찰을 겪게 되었으나 이후 3월 30일 구단이 잔여 연봉 4억 원을 모두 지급하기로 합의하였다. 관련 기사.

칰갤에서 알려진 근황에 따르면 사실상 선수 생활을 접은 상태에서 '한상훈 베이스볼클럽’이란 간판을 내걸고 사회인 야구 지도강사 겸 감독을 하고 있다. 이만수와 함께 찍은 사진도 있는데, 같은 크리스찬이라 그런지 통하는 게 있는 모양. 이만수 전 감독에 의해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받고 있는 듯하다. 피칭머신 기증.

3. 기타 사항

3.1. 별명

가장 널리 불리는 별명은 짱구아빠.(줄여서 '짱빠'라고 한다.) 짱구는 못말려의 짱구아빠와 인상이 비슷하다고 붙여진 별명어쩌면 발냄새가 지독할지도. 그 외에 한화 이글스가 승리할때면, 골을 넣은 박주영처럼 무릎 꿇고 기도를 하고는 해서 한개독이란 별명이 있다.주장할 때 마킹하고 나온 유니폼의 C는 캡틴(Captain)의 C가 아니라 크리스챤(Christian)의 C라 카더라...[14][15]

2008년초에 한창 삽질하던 때의 별명은 한삼푼. 실제로 3푼대 타율이었고.. 2푼8리로 바닥까지 찍은 후에 뒤늦게 분발하긴 했지만 시즌 성적은 멘도사 타율... 다만 전체적으로 통산 타율에 비해서 출루율이 꽤 높은 타자. 그렇다고 출루율이 정말 선구안이 좋은 S급에 비하면 대단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통산 타율은 2할대 초반인데 출루율은 3할대 초반으로 확실히 높다. 그리고 군대갔다 돌아온 이후에는 출루율로 보면 0.350이상은 기대해줄 수 있는 괜찮은 출루율을 기록하고 있다.

2011년 9월 22일에는 마지막 타석에서 우측 담장을 넘긴 홈런을 터뜨렸는데, 스스로도 홈런 친 것에 놀랐는지 홈에 들어오면서 '와아, 대-박' 이라 중얼거리던 목소리가 방송을 타고 나갔다. 이 직후 새로 '한대박' 이라는 별명을 득템.(...)

3.2. 손시헌의 라이벌?

손시헌라이벌로 지목한 적이 있으나 현실은… 그래서 그런지 묘하게 느린 발을 강한 어깨로 커버하는 수비 스타일도 비슷하다.[16]

3.3. 베이징 올림픽 차출?

수비능력 하나만큼은 탁월해서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당시 김경문 감독은 한상훈이 2할5푼만 쳤어도 대표팀에 뽑았을 것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허나 한상훈의 커리어하이는 2011년 2할6푼9리며, 김경문 감독이 이 말을 했던 시기의 커리어하이는 2007년 2할5푼9리다. 1할을 친 시즌도 2번이나 있고, 결정적으로 한창 베이징 올림픽 선수 뽑던 2008년에는 전설의 한삼푼시대였다.(...)[17] 일단 공익근무를 다녀 온 뒤로 선구안이 2008년 이전에 비해 어느정도 나아져 2011년에 커리어 하이를 기록하고 2012년에도 볼넷을 적은 출장속에서 50개 가까이 골라냈다. 단지 방망이를 공에 갖다대기 힘들뿐

3.4. 한집사님

파일:external/upload.cts.tv/%ED%95%9C%EC%83%81%ED%9B%88%20%EC%A7%91%EC%82%AC%20%EC%9D%B8%ED%84%B0%EB%84%B7%20copy.jpg
MC 최선규도 보인다.[18]

독실한 개신교 신자. 집사님이다. CTS의 간증 프로 '내가 매일 기쁘게'에도 출연했었다. 제목이 <은혜의 홈런 잡아내는 내야수>(...)은혜의 내야플라이라고 하면 이상하잖아 여기서 다시 볼 수 있다. 한화팬이라면 한화의 승리가 확정된 순간 수비 위치에서 무릎꿇고 기도 하는 한상훈의 모습을 자주 보았을 것이다.

한화 이글스 팟캐스트 방송 이글스캔들에 의하면 2013년 시즌 후 총액 13억에 FA 계약을 체결한 후 이 금액을 십일조로 냈을 정도로 독실한 신자이다(...) 정확히는 일시불로 받은 계약금 3억 원 중 3천만 원을 냈다고 한다.목사님 댁 소고기 회식하실듯 헌금은 교회 재정팀에서 관리한다는게 함정

자신이 다니는 교회에서 간증을 하기도 했다. 앞에 나이스 플레이를 한 동영상을 틀어주면서 명품선수라 치켜세워주는데 본인도 오글거리긴 하는 듯.#

4. 연도별 성적

역대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3 한화 이글스 95 270 .196 53 9 1 1 18 28 6 19 .289 .249
2004 63 147 .197 29 4 0 0 4 15 1 8 .252 .239
2005 94 168 .214 36 4 1 1 7 19 1 17 .268 .286
2006 95 161 .242 39 7 0 1 11 14 2 16 .304 .311
2007 118 313 .259 81 15 1 2 22 33 6 35 .332 .333
2008 122 314 .217 68 13 2 0 32 29 5 34 .271 .293
2009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
2010
2011 131 398 .269 107 12 3 3 39 49 16 52 .337 .352
2012 112 272 .235 61 11 1 3 29 41 7 54 .305 .352
2013 101 260 .262 68 13 4 0 25 45 5 53 .342 .383
2014 77 175 .286 50 8 1 1 21 23 3 24 .360 .372
2015 35 61 .230 14 4 0 0 8 7 0 9 .295 .329
통산(11시즌) 1043 2539 .239 606 100 14 12 216 303 52 321 .303 .323


[1] 대학 진학으로 프로데뷔는 2003년에 했다.[2] 한화의 명품수비 한상훈~ 날려버려 한상훈~ 한화의 명품수비 한상훈~ 랄랄랄랄랄랄라~~[3] 한상훈~ 한화 한상훈~ 승리를 위해~ 날려버려라~~(X2)[4] 롯데 자이언츠정훈 응원가와 동일하다.[5] 후술하겠지만 2013 시즌 후 총액 13억에 FA 계약을 체결한 후 이 금액을 십일조로 냈을 정도로 독실한 신자이다.[6] 동일인.[7] 동일인.[8] 그 유명한 안영명 vs 김동수 빈볼 사건 당시 3루수가 바로 한상훈이다.[9] 당시 어깨부상으로 투수를 못하였다.[10] 이 당시 한화 내야는 개판 5분 전으로 2루 포지션의 경우 2006년까지는 임수민, 백재호, 루 클리어 등으로 돌려막기를 시전했고, 중간에 재일교포 고지행도 두 번이나 영입했었으나(영입->삼성으로 트레이드->삼성에서 역수입) 실패로 돌아간 바 있다.[11] 유래는 MLBPARK로 추정되는데, 어감상으로 제일 적합해서 그런지 나이상으론 신고한유가 되어야될거같은데 한고신유로 고정.[12] 2004년 프로야구 병역비리 사건 연루자 중에 거의 막차로 입대했다.[13] 근데 2012년 한국프로야구는 유독 오심이 많았다. 김강민, 이병규, 최진행 등등 관련 오심이 많은 것 보면 이번 오심은 터져나가고 있는 게 확실하다.[14] 실제로 독실한 개신교 신자다. 후술된 내용 참조.[15] 2013년의 한 인터뷰에 의하면 지는 경기 때도 항상 덕아웃에서 기도를 한다고 한다. 단지 지고 있는 경기에서는 공격하다 경기가 끝나니 그라운드에서 기도할 여건이 안 될 뿐.. 기도내용은 '안 다치고 무사히 경기할 수 있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최선을 다하게 하셔서 감사합니다'라고.[16] 참고로 손시헌과 한상훈은 화곡초 동기이다. 당시에는 손시헌이 2루수, 한상훈이 유격수였다. 권오준 또한 이 두명과 동기.[17] 류현진 외에는 미필 선수가 뽑히지 않은, 한화에 대한 선심성 드립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어쨌거나 수비능력 좋다는건 인정한거지만.. 그래도 거론되었다는 자체가 내야 멀티포지션이 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이유로 광저우 아시안게임때는 조동찬이 뽑혔고, 김민재 역시 현역 시절 시원찮은 타격에 비해 대표팀 차출이 잦았던 것은 이런 이유에서였을 것이다.[18] 현재는 MBC-SBS 출신이자 TV조선에서 "생방송 광화문의 아침"을 진행 중인 프리랜서 방송인 이창섭이 MC를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