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5-22 23:42:17

신일고등학교 야구부

2019년 고교야구 주말리그 서울 A
파일:경기고등학교 투명로고.png 경기고등학교 파일:external/67.media.tumblr.com/tumblr_o8j7lw8dMb1sqk8veo8_r2_250.png 배명고등학교 파일:M7NK0dP.png 서울고등학교 파일:external/culture.joins.com/team_07.jpg 신일고등학교
파일:우신고.jpg 우신고등학교 파일:external/67.media.tumblr.com/tumblr_o8j7lw8dMb1sqk8veo3_r1_400.png 장충고등학교 파일:external/66.media.tumblr.com/tumblr_o8j7lw8dMb1sqk8veo1_100.png 청원고등학교 파일:external/66.media.tumblr.com/tumblr_o8j59qdJcK1sqk8veo7_r2_250.png 휘문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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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일고등학교 야구부
(Shinil High School)
창단 1975년
소속 리그 서울권
감독 정재권[1]
연고구단 두산 베어스
LG 트윈스
키움 히어로즈
우승 기록[2] 12회
홈페이지 ##

대회 우승 준우승 4강
대통령배 - 3회(1991, 2005, 12) 8회(1977, 81, 82, 87, 92, 93, 2007, 18)
청룡기2회(1997, 2009) 2회(1989, 2012) 4회(1988, 91, 2005, 13)
황금사자기8회(1976, 78, 87, 91, 93, 96, 97, 2003) 2회(2000) 2회(1977, 2004)
봉황대기2회(1991, 97) - 3회(1984, 98, 2009)
협회장기 - - 1회(2018)
1976년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부산상업고등학교 신일고등학교 광주상업고등학교
1978년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광주상업고등학교 신일고등학교 경북고등학교
1987년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군산상업고등학교 신일고등학교 동산고등학교
1991년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대전고등학교 신일고등학교 배명고등학교
1991년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충암고등학교 신일고등학교 배명고등학교
1993년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배명고등학교 신일고등학교 덕수상업고등학교
1996년, 1997년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덕수상업고등학교 신일고등학교 대구상업고등학교
1997년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
휘문고등학교 신일고등학교 경남고등학교
1997년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군산상업고등학교 신일고등학교 경남고등학교
2003년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북일고등학교 신일고등학교 덕수정보고등학교
2009년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
대구고등학교 신일고등학교 경남고등학교
1. 개요2. 연혁
2.1. 창단과 동시에 우승하다2.2. 신일고 황금세대 12.3. 신일고 황금세대 22.4. 황금세대 이후
3. 기타4. 출신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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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청룡기 우승기를 들고 있는 야구부

1. 개요

여타 명문 야구부들에 비해 역사는 다소 짧은 신흥 명문 축에 들어가는 학교지만, 1990년대 최강의 시절을 두 차례 만들면서 한 시대를 지배한 강호.

또한 2018년 기준으로 봉중근, 김현수가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으며[3] 광주일고에 이어 메이저리거를 2번째로 많이 배출한 학교다.[4]

2. 연혁

2.1. 창단과 동시에 우승하다

1975년 한동화를 초대 감독으로 선임하면서 팀을 창단했다. 신일고의 전력은 일반적인 창단 팀과 달리 초반부터 강했는데, 창단 당시에 일찌감치 영입한 박종훈광주 동신고 야구부가 해체하자 그 멤버를 흡수했고[5], 여기에 김정수, 양승호같은 멤버를 보강하면서 전력을 구축, 1976년 황금사자기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 창단 1년 만에 전국 대회 우승을 일궈냈다. 그리고 1976년 스카웃한 1학년 멤버들이 3학년이 되는 1978년에 다시 황금사자기에서 우승하면서 창단 3년 안에 두 번 우승이라는 기염을 토했다.

생긴지 얼마 되지 않은 팀이 우승을 두 번이나 하면서 당시 전성기를 구가하던 고교야구 판도에 신흥 강호로 떠오르고 인기몰이를 하면서, 신일고에는 꾸준히 우수한 선수들이 수급되었다. 비록 이 우수한 선수들은 1980년대 초반에는 팀의 4강 진출까지는 이끌었어도 우승과는 인연을 맺지 못했지만, 기어이 1987년 황금사자기 우승을 차지하면서 결실을 맺었다.

무엇보다 신일고 재단은 확실한 한 방을 보여준 야구부에 더 강한 매력을 느꼈는지, 1981년 농구부를 해체하고[6], 재단의 지원을 몰아 주기에 이른다. 그리고 그 결실은 1990년대 두 차례 전성기로 보답이 되었다.

2.2. 신일고 황금세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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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민

1991년 신일고의 멤버는 환상적이었다. 전설의 92학번 투수 중에서도 적어도 고교와 대학 시절 명성은 박찬호를 능가했던 조성민, 대학 시절 어이없는 화상으로 프로 무대에서는 존재감이 없었지만 고교 시절 팀의 리더로 투타 모두 뛰어났던 설종진, 2학년으로 설명이 필요없는 아마 최고의 강타자 강혁, 여기에 훌륭한 내야수였던 백재호, 1학년 김재현조인성까지, 극강으로 구축되었던 신일고의 황금세대는 1991년을 완벽하게 지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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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년 2관왕을 달성한 신일고[7]

그들과 지긋지긋한 악연이 있는 대통령배에서는 당시 돌풍을 일으키면서 2관왕을 차지한 경남상고에 밀려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지만, 봉황대기에서 우승을 차지한 후, 황금사자기에서 마저 우승을 차지하면서 그들도 2관왕으로 시즌을 마쳤다. 그리고 이 황금세대의 막내였던 김재현이 3학년이던 1993년 다시 황금사자기에서 우승하면서 이 황금세대는 총 세 번의 우승을 차지하면서 한 시대를 풍미했다. 하지만 그들이 신일고를 대표하는 최고의 멤버는 아닌 것이 그들보다 더한 멤버들이 등장했기 때문이었다.

2.3. 신일고 황금세대 2

1996년 황금사자기 우승이 전조였다. 사실 이 때의 주역들은 2학년이었다. 팀의 4번 타자로 홈런상을 탄 안치용이 대표적인 주역. 여기에 군기반장 겸 팀의 주장이었던 포수 현재윤도 당시 2학년이었다. 그리고 1997년, 1학년 선수들이 성장한 때, 신일고의 위력은 배가되었다. 그 중 가장 중심이었던 선수가 투수로서는 팀의 좌완 에이스였고, 타자로서는 괴력을 뿜어낸 봉중근이었다. 봉중근 외에도 김광삼, 한상훈같은 선수들이 이 때 세대인데 우승 경험이 있던 2학년에 괴물이 더해진 신일고는 정말 막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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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중근

마침 초대 창단 감독인 한동화 감독이 신일고로 컴백했고, 그가 불러온 프로 선수들의 레슨 속에서 강해진 신일고 선수들은 비록 그들이 징그럽게 약했던 대통령배에서는 역시 막강한 내야라인을 구축한 광주일고에 패했지만, 청룡기부터는 그야말로 거침없이 질주했다. 청룡기 우승, 봉황대기 우승, 그리고 황금사자기 우승[* 7-7 동점 상황에서 9회말 김광삼의 끝내기안타에 힘업어 우승을 차지했다.관련기사] 까지 3관왕을 차지하면서 한 시대를 완벽하게 제압했다. 마지막 황금사자기 결승에서 광주일고를 제압한 것이 그들의 시대를 알리는 백미 중의 백미. 이 황금 시대는 2학년이던 봉중근이 더 강해지면서 1998년에도 계속되지 않을까 싶었지만, 1997년 봉중근이 세계청소년선수권 대회 MVP를 차지하고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 계약을 맺으면서 고교 무대를 떠나면서 그렇게 끝이 났다.안치용의 회고

2.4. 황금세대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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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지완 김현수

황금세대 이후 신일고는 그 화려했던 시절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꾸준한 강팀으로 이름을 날렸다. 2003년 장호연 감독의 지도 아래 황금사자기 우승을 차지하면서 과거의 명성을 입증했고, 2009년 청룡기에서는 박주환의 호투 속에 북일고를 누르고 우승하면서 팀 창단 후 두 번째 청룡기를 차지했다. 2010년 자율형사립고에 지정된 후 직속 팜이었던 신일중학교 야구부가 해체되는 등 선수 수급이 예전에 비해서 원활하게 돌아가지 않는 가운데에서도 강팀의 면모를 잃지 않고 있다. 가장 아쉬웠던 해는 2012년으로 이윤학을 앞세워 대통령배와 청룡기 모두 결승에 올랐지만, 두 번 모두 결승에서 패하면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5년 동안에는 한 번도 준결승에 오르지 못하며 침체기를 보냈다. 이러한 성적 부진의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본교가 자율형사립고로 전환된 이후 선수육성에 필요한 자금 조달이 힘들어져 선수단의 인원을 축소했기 때문이라는게 중론이다. 배재고나 중앙고처럼 곧바로 투자를 줄인 게 아니라 서서히 지원이 줄다 보니 뒤늦게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을 뿐. 과거에는 유망주들을 장학금으로 대거 데려올 수 있었지만, 지금은 본교 이외의 다른 학교들도 장학금 등 많은 혜택으로 유망주들을 데려가려하기 때문에 예전처럼 강한 선수단을 꾸리기가 빠듯해진 것도 이유로 들 수 있다. 그러다가 2018년에는 황금사자기 16강, 청룡기 8강으로 조금씩 올라오더니 대통령배와 협회장기에서 모처럼 전국대회 4강에 올랐다.

3.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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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일고 3대 X신이라는 사진이 넷상에서 유명하다. 왼쪽부터 차례로 이형진[8], 임한용, 크고 아름다운 모상기. 남윤성이라고 알려진 사진은 본인의 다른 사진들과 대조만 해봐도 전혀 다른 사람인걸 알수 있으나 실제 인물이 듣보잡인 관계로 잘못 알려져 있다.
  • 학교 부지가 광활해 2개의 축구장과 1개의 전용 야구장을 보유했으나 야구장을 성신여자대학교에 매각하고 메인 운동장에 인조잔디, 조명탑, 파울망을 설치했다.

4. 출신선수[9]

이름 포지션 프로입단 경력
박종훈 외야수 1983년 1차 고려대-상업은행(1982)-OB(1983~1989)
김정수 외야수 1983년 1차 고려대-MBC(1983~1986)
양승호 내야수 1983년 2차 3라운드 고려대 중퇴-상업은행(1982)-해태(1983~1985)-OB(1986)
구천서 내야수 1982년 원년 멤버 상업은행(1981)-OB(1982~1993)
김형석 외야수 1985년 1차 중앙대-OB(1985~1997)-삼성(1998)
박흥식 외야수 1985년 1차 한양대-MBC/LG(1985~1993)
민경삼 내야수 1986년 1차 고려대-MBC/LG(1986~1993)
김태형 포수 1988년 2차 4라운드 인천전문대-단국대-OB/두산(1990~2001)
동봉철 외야수 1992년 2차 1라운드 중앙대-삼성(1992~1996)-해태(1996)-LG(1997~1998)-한화(1998)-쌍방울(1999)
박재용 외야수 1994년 2차 3라운드 단국대-포스콘-해태(1994~1998)-쌍방울(1999)-SK(2000)
김광현 포수, 외야수 1994년 2차 2라운드 단국대-OB(1994~1997)-삼성(1998~1999)-SK(2000)
김지훈 포수 1998년 2차 3라운드[10] 고려대-상무-삼성(1998~2001)-KIA(2001~2004)
설종진 투수, 외야수 1996년 2차 2순위 중앙대-현대(1996~2001)
조성민 투수 1996년 일본프로야구 입단 고려대-요미우리(1996~2002)-한화(2005~2007)
강혁[11] 1루수 1993년 고졸연고지명 한양대-현대전자(1997~1998)-두산(1999~2000)-SK(2001~2007)
백재호 내야수 1997년 2차 1라운드 동국대-한화(1997~2007)
김재현 외야수 1994년 고졸연고지명 LG(1994~2004)-SK(2005~2010)
조인성 포수 1998년 1차지명 연세대-LG(1998~2011)-SK(2012~2014)-한화(2014~2017)
조현 외야수 1995년 고졸연고지명 LG(1995~1996)-해태(1997~1998)-한화(2002)
강병식 1루수, 외야수 1996년 2차 8라운드 고려대-상무(2000~2002)-현대(2002~2007)-넥센(2008~2012)
이계성 외야수 1996년 2차 9라운드 삼성(1996~1998)-쌍방울(1999)-삼성(2000)-롯데(2001~2005)
전근표 외야수 1996년 2차 5라운드 한양대-현대(2000~2007)-넥센(2008~2009)-한화(2010)
안치용 외야수 1998년 고졸우선지명 연세대-LG(2002~2010)-SK(2010~2014)
현재윤 포수 1998년 2차 4라운드 성균관대-삼성(2002~2012)-LG(2013~2014)
김광삼 투수 1999년 고졸우선지명 LG(1999~2016)
봉중근 투수 1997년 아마추어 자유계약(ATL)/
2007년 1차지명
ATL(1997~2003)-CIN(2004)-LG(2007~2018)
한상훈 내야수 1999년 2차 6라운드[12] 경희대-한화(2003~2015)
윤승균 외야수 2005년 육성선수 입단 홍익대-두산(2005~2008)
채병용[13] 투수 2001년 2차 4라운드 SK(2001~)
김현수 투수/외야수 2002년 2차 2라운드 삼성(2002~2005)-두산(2010)
나지완 외야수 2008년 2차 1라운드 단국대-KIA(2008~)
임훈 외야수 2004년 2차 5라운드 SK(2004~2011)-롯데(2011)-SK(2011~2015)- LG(2015~2018)
서동환 투수 2005년 2차 1라운드 두산(2005~2013)-삼성(2014~2016)
김상수 투수 2006년 2차 2라운드 삼성(2006~2009)-넥센/키움(2010~)
김정훈 포수 2010년 3라운드 경희대-SK(2010~2016)
김현수 외야수 2006년 신고선수 입단 두산(2006~2015)-BAL(2016~2017)-PHI(2017)-LG(2018~)
남윤성 투수 2006년 아마추어 자유계약(TEX)
2017년 2차 6라운드
TEX(2006~2012)-고양(2012)-SK(2017~2018)
모상기 내야수 2006년 2차 6라운드 삼성(2006~2014)-KT(2015~2016)
임한용 내야수 2010년 4라운드 건국대-KIA(2010~2017)
이준수 내야수 2007년 신고선수 입단 KIA(2007~2008)-한화(2012~2016)-kt(2017~)
한윤기 투수 2007년 2차 4라운드 SK(2007~2010)-NC(2012~2013)-kt(2014)
김기현 투수 2012년 신고선수 입단 충청대-원광대-NC(2012)-한화(2014~2017)
박세혁 포수 2012년 5라운드 고려대-두산(2012~)
박해민 외야수 2012년 신고선수 입단 한양대-삼성(2012~)
이대은 투수 2007년 아마추어 자유계약(CHC)/
2019년 2차 1라운드
CHC(2008~2014)-치바 롯데(2015~2016)-경찰(2017~2018)-kt(2019~)
정두산 외야수 2012년 신고선수 입단 대불대-삼성(2012~2018)
조덕길 투수 2013년 7라운드 한양대-넥센/키움(2013~)
김동영 내야수 2009년 신고선수 입단 삼성(2009~2013)
임정호 투수 2013년 3라운드 성균관대-NC(2013~)
양석환 내야수 2014년 2차 3라운드 동국대-LG(2014~)
이창열 내야수 2014년 2차 7라운드 건국대-한화(2014~)
윤영수 내야수 2015년 2차 8라운드 동국대-삼성(2015~)
하주석 내야수 2012년 1라운드 한화(2012~)
계정웅 내야수 2017년 육성선수 입단 건국대-두산(2017~)
김영환 내야수 2013년 2라운드 삼성(2013)-kt(2014~)
이윤학 투수 2013년 3라운드 LG(2013)-kt(2014~2015)-KIA(2016~2018)
최동현 투수 2017년 1차지명 동국대-두산(2017~)
김태진 내야수 2014년 2차 4라운드 NC(2014~)
이승헌 투수 2018년 2차 9라운드 고려대-NC(2018~)
최민창 외야수 2015년 2차 2라운드 LG(2015~)
정우석 투수 2018년 2차 9라운드 두산(2018~)
추재현 외야수 2018년 2차 3라운드 넥센/키움(2018~)
김도환 포수 2019년 2차 2라운드 삼성(2019~)
김이환 투수 2019년 2차 4라운드 한화(2019~)
문보경 내야수 2019년 2차 3라운드 LG(2019~)


[1] 본교 출신으로 2017년 10월부터 감독으로 있다. 강혁, 백재호와 동기.[2] 4대 메이저 + 협회장기[3]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아보지 못하긴 했지만, 마이너리그에서 뛴 이대은도 있다.[4] 그외 학교로는 부산고등학교추신수(2000년 시애틀 입단), 차승 백(1998년 샌디에이고 입단)을 배출했고, 경기고등학교오승환(2016년 세인트루이스 입단)과 황재균(2017년 샌프란시스코 입단)을 배출해 냈다.[5] 이 때 옮겨 온 대표적인 선수가 뒤애 해태-KIA의 스카우트 및 스카우트 팀장을 지내는 김경훈이다.[6] 신일고등학교 농구부는 2000년대 초반에 재창단해 주태수를 배출하기도 했으나 오래 지나지 않아 다시 해체되었다.[7] 현재 신일고 별관 복도에 걸려있는 사진이 바로 이것[8] 프로로 데뷔하지 못했다.[9] 나무위키에 등록된 선수만. 졸업 연도 순.[10] OB 베어스에서 지명했으나, 지명권 양도로 데뷔는 삼성 라이온즈에서 했다.[11] 신일고 수석코치를 거쳐 2016년~2017년에 감독을 맡았다.[12] 지명은 받았지만 경희대학교로 진학하면서 데뷔는 2003년에 했다.[13] 원래는 한서고에 진학했다가 2학년 때 신일고로 전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