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01 16:39:24

김재현(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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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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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현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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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보직
대표이사 김재섭 · 단장 김재현
운영팀장 송태일 · R&D 팀장 신민철
데이터 센터
센터장 한승진 | 김대진 · 이흥련
스카우트 팀
팀장 조영민 | 김재현 · 남윤성 · 박진우 · 진상봉
프런트코칭스태프투수포수내야수외야수군 입대 선수등록 선수육성선수
다른 KBO 리그 구단 명단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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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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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72c,#d3dade
<rowcolor=#fff> 초대 2대 3대 4대 5대
명영철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0~2002)
최종준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3~2005)
명영철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6~2007)
민경삼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0~2016)
염경엽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7~2018)
<rowcolor=#fff> 6대 7대 8대 9대
손차훈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9~2020)
류선규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21~2022)
김성용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23)
김재현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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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현의 수상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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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LG 트윈스 우승 엠블럼 V2.svg파일:SK 와이번스 우승 엠블럼 V1.svg파일:SK 와이번스 우승 엠블럼 V2.svg파일:SK 와이번스 우승 엠블럼 V3.svg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반지
1994 2007 2008 2010


파일: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 로고.svg
2018 자카르타 • 팔렘방 아시안게임 야구 종목
금메달(코치)
2018

파일:WBSC 프리미어 12 엠블럼.svg
2019 프리미어 12
은메달(코치)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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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야수 부문 수상자
(1982~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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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d0ad67> 1982 1983
김성관
롯데 자이언츠
김준환
해태 타이거즈
양승관
삼미 슈퍼스타즈
김종모
해태 타이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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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라이온즈
<rowcolor=#d0ad67> 1984 1985
김종모
해태 타이거즈
장효조
삼성 라이온즈
홍문종
롯데 자이언츠
박종훈
OB 베어스
이광은
MBC 청룡
장효조
삼성 라이온즈
<rowcolor=#d0ad67> 1986 1987
김종모
해태 타이거즈
이광은
MBC 청룡
장효조
삼성 라이온즈
김종모
해태 타이거즈
이광은
MBC 청룡
장효조
삼성 라이온즈
<rowcolor=#d0ad67> 1988 1989
이강돈
빙그레 이글스
이순철
해태 타이거즈
이정훈
빙그레 이글스
고원부
빙그레 이글스
김일권
태평양 돌핀스
이강돈
빙그레 이글스
<rowcolor=#d0ad67> 1990 1991
이강돈
빙그레 이글스
이정훈
빙그레 이글스
이호성
해태 타이거즈
이순철
해태 타이거즈
이정훈
빙그레 이글스
이호성
해태 타이거즈
<rowcolor=#d0ad67> 1992 1993
김응국
롯데 자이언츠
이순철
해태 타이거즈
이정훈
빙그레 이글스
김광림
쌍방울 레이더스
이순철
해태 타이거즈
전준호
롯데 자이언츠
<rowcolor=#d0ad67> 1994 1995
김재현
LG 트윈스
박노준
쌍방울 레이더스
윤덕규
태평양 돌핀스
김광림
쌍방울 레이더스
김상호
OB 베어스
전준호
롯데 자이언츠
<rowcolor=#d0ad67> 1996 1997
김응국
롯데 자이언츠
박재홍
현대 유니콘스
양준혁
삼성 라이온즈
박재홍
현대 유니콘스
양준혁
삼성 라이온즈
이병규
LG 트윈스
<rowcolor=#d0ad67> 1998 1999
김재현
LG 트윈스
박재홍
현대 유니콘스
전준호
현대 유니콘스
이병규
LG 트윈스
정수근
두산 베어스
호세
롯데 자이언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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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타자 부문 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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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d0ad67> 1982 1983 1984 1985 1986
신설 전 양세종
OB 베어스
김용희
롯데 자이언츠
김봉연
해태 타이거즈
<rowcolor=#d0ad67> 1987 1988 1989 1990 1991
유승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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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철
롯데 자이언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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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호
삼성 라이온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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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d0ad67> 1992 1993 1994 1995 1996
김기태
쌍방울 레이더스
김기태
쌍방울 레이더스
김기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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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태 타이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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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d0ad67> 2002 2003 2004 2005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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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라이온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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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베어스
김기태
SK 와이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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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와이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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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라이온즈
<rowcolor=#d0ad67> 2007 2008 2009 2010 2011
양준혁
삼성 라이온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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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베어스
홍성흔
롯데 자이언츠
홍성흔
롯데 자이언츠
홍성흔
롯데 자이언츠
<rowcolor=#d0ad67> 2012 2013 2014 2015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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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라이온즈
이병규
LG 트윈스
이승엽
삼성 라이온즈
이승엽
삼성 라이온즈
김태균
한화 이글스
<rowcolor=#d0ad67> 2017 2018 2019 2020 2021
박용택
LG 트윈스
이대호
롯데 자이언츠
페르난데스
두산 베어스
최형우
KIA 타이거즈
양의지
NC 다이노스
<rowcolor=#d0ad67> 2022 2023 2024
이대호
롯데 자이언츠
손아섭
NC 다이노스
최형우
KIA 타이거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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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MV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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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 1983 1984 1985 1986
김유동
OB 베어스 / 외야수
김봉연
해태 타이거즈 / 내야수
유두열
롯데 자이언츠 / 외야수
-[a] 김정수
해태 타이거즈 / 투수
1987 1988 1989 1990 1991
김준환
해태 타이거즈 / 외야수
문희수
해태 타이거즈 / 투수
박철우
해태 타이거즈 / 내야수
김용수
LG 트윈스 / 투수
장채근
해태 타이거즈 / 포수
1992 1993 1994 1995 1996
박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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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범
해태 타이거즈 / 내야수
김용수
LG 트윈스 / 투수
김민호
OB 베어스 / 내야수
이강철
해태 타이거즈 / 투수
1997 1998 1999 2000 2001
이종범
해태 타이거즈 / 내야수
정민태
현대 유니콘스 / 투수
구대성
한화 이글스 / 투수
퀸란
현대 유니콘스 / 내야수
우즈
두산 베어스 / 내야수
2002 2003 2004 2005 2006
마해영
삼성 라이온즈 / 지명타자
정민태
현대 유니콘스 / 투수
조용준
현대 유니콘스 / 투수
오승환
삼성 라이온즈 / 투수
박진만
삼성 라이온즈 / 내야수
2007 2008 2009 2010 2011
김재현
SK 와이번스 / 지명타자
최정
SK 와이번스 / 내야수
나지완
KIA 타이거즈 / 외야수
박정권
SK 와이번스 / 내야수
오승환
삼성 라이온즈 / 투수
2012 2013 2014 2015 2016
이승엽
삼성 라이온즈 / 내야수
박한이
삼성 라이온즈 / 외야수
나바로
삼성 라이온즈 / 내야수
정수빈
두산 베어스 / 외야수
양의지
두산 베어스 / 포수
2017 2018 2019 2020 2021
양현종
KIA 타이거즈 / 투수
한동민
SK 와이번스 / 외야수
오재일
두산 베어스 / 내야수
양의지
NC 다이노스 / 포수
박경수
kt wiz / 내야수
2022 2023 2024
김강민
SSG 랜더스 / 외야수
오지환
LG 트윈스 / 내야수
김선빈
KIA 타이거즈 / 내야수
[a] 삼성 라이온즈의 전후기 통합우승으로 인한 한국시리즈 미개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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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MV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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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 1997 1998 2000 2001
김인호
현대 유니콘스 / 내야수
김상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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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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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2003 2004 2005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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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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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이글스 / 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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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진
한화 이글스 / 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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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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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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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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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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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재원
두산 베어스 / 내야수
정수빈
두산 베어스 / 내야수
2022 2023 2024
안우진
키움 히어로즈 / 투수
김영규
NC 다이노스 / 투수
임찬규
LG 트윈스 / 투수
* 준플레이오프는 1989년에 시작했지만, MVP는 1995년부터 수상하기 시작했다. 1999년은 양대리그제로 준플레이오프 미개최. }}}}}}}}}

{{{#!wiki style="margin: -5px -10px"<tablealign=center><tablewidth=100%><tablebordercolor=#002561><tablebgcolor=#002561> 파일:KBO 심벌마크(화이트).svgKBO 리그
역대 출루율 1위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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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1982 1983 1984 1985 1986
백인천
MBC 청룡 / 0.497
장효조
삼성 라이온즈 / 0.475
장효조
삼성 라이온즈 / 0.424
장효조
삼성 라이온즈 / 0.467
장효조
삼성 라이온즈 / 0.436
<rowcolor=#fff> 1987 1988 1989 1990 1991
장효조
삼성 라이온즈 / 0.461
김성래
삼성 라이온즈 / 0.459
한대화
해태 타이거즈 / 0.409
한대화
해태 타이거즈 / 0.432
장효조
롯데 자이언츠 / 0.452
<rowcolor=#fff> 1992 1993 1994 1995 1996
김기태
쌍방울 레이더스 / 0.461
양준혁
삼성 라이온즈 / 0.436
이종범
해태 타이거즈 / 0.452
장종훈
한화 이글스 / 0.424
홍현우
해태 타이거즈 / 0.453
<rowcolor=#fff> 1997 1998 1999 2000 2001
김기태
쌍방울 레이더스 / 0.453
양준혁
삼성 라이온즈 / 0.450
이승엽
삼성 라이온즈 / 0.458
장성호
해태 타이거즈 / 0.436
호세
롯데 자이언츠 / 0.503
<rowcolor=#fff> 2002 2003 2004 2005 2006
장성호
KIA 타이거즈 / 0.445
심정수
현대 유니콘스 / 0.478
브룸바
현대 유니콘스 / 0.468
김재현
SK 와이번스 / 0.445
양준혁
삼성 라이온즈 / 0.445
<rowcolor=#fff> 2007 2008 2009 2010 2011
김동주
두산 베어스 / 0.457
김현수
두산 베어스 / 0.454
페타지니
LG 트윈스 / 0.468
이대호
롯데 자이언츠 / 0.444
이대호
롯데 자이언츠 / 0.433
<rowcolor=#fff> 2012 2013 2014 2015 2016
김태균
한화 이글스 / 0.474
김태균
한화 이글스 / 0.444
김태균
한화 이글스 / 0.463
테임즈
NC 다이노스 / 0.497
김태균
한화 이글스 / 0.475
<rowcolor=#fff> 2017 2018 2019 2020 2021
최형우
KIA 타이거즈 / 0.450
박병호
넥센 히어로즈 / 0.457
양의지
NC 다이노스 / 0.438
박석민
NC 다이노스 / 0.436
홍창기
LG 트윈스 / 0.456
<rowcolor=#fff> 2022 2023 2024
이정후
키움 히어로즈 / 0.421
홍창기
LG 트윈스 / 0.444
홍창기
LG 트윈스 / 0.447
}}}}}}}}}

}}} ||
김재현의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bordercolor=#ce0e2d><tablebgcolor=#ce0e2d> 파일:SSG 랜더스 엠블럼.svgSSG 랜더스
역대 주장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000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rowcolor=#fff> 2000 2001 2002 2003 2004
최태원 양용모 박계원 김기태 조원우
<rowcolor=#fff> 2005 2006 2007 2008 2009
강성우 김재현 김원형 이호준김원형 박경완김재현
<rowcolor=#fff> 2010 2011 2012 2013 2014
김재현 이호준 박정권 정근우 박진만
<rowcolor=#fff> 2015 2016 2017 2018~2019 2020
조동화 김강민 박정권 이재원 최정
<rowcolor=#fff> 2021 2022 2023 2024 2025
이재원
한유섬 (임시 주장)
한유섬 한유섬오태곤 추신수 김광현
}}}}}}}}}}}} ||

{{{#ffffff [[LG 트윈스|LG 트윈스]] 등번호 7번}}}
김재박
(1982~1991)
김재현
(1994~2004)
김상현
(2007~2008)
{{{#ffffff [[SK 와이번스|SK 와이번스]] 등번호 7번}}}
신주일
(2004)
김재현
(2005~2010)
박진만
(2011~2015)
{{{#ffffff [[한화 이글스|한화 이글스]] 등번호 85번}}}
장종훈
(2013~2014)
김재현
(2015~2016)
최계훈
(2017~2019)
}}} ||
}}} ||
파일:2023김재현.jpg
<colbgcolor=#ce0e2d><colcolor=#fff> SSG 랜더스 단장
김재현
金宰炫 | Kim Jae-hyun[1]
출생 1974년[2][3] 10월 28일 ([age(1974-10-28)]세)
서울특별시 성동구[4]
국적
[[대한민국|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파일: 기.svg
속령
]]
학력 성동초등학교 (졸업)
신일중학교 (졸업)
신일고등학교 (졸업)
경희사이버대학교 (스포츠경영학 / 학사)
신체 177cm | 83kg[5] | A형[6]
포지션 좌익수[7][8], 지명타자[9], 1루수[10]
투타 좌투좌타
프로 입단 1994년 고졸 연고구단 자유계약 (LG)
소속팀 LG 트윈스 (1994~2004)
SK 와이번스 (2005~2010)
지도자 그레이트 레이크스 룬즈[11] 연수 코치 (2011)
요미우리 자이언츠 2군 타격코치 (2012)
한화 이글스 1군 타격코치 (2015~2016)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타격코치 (2017~2021)
프런트 LG 트윈스 전력강화 코디네이터 (2023)
SSG 랜더스 단장 (2023~)[12]
해설 위원 SBS ESPN 야구 해설위원 (2013~2014)
SPOTV 야구 해설위원 (2017~2022)
경력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기술위원 (2020~2021)
등장곡 SK 시절: Mary Mary - The Real Party (2005~2012)
응원가 LG 시절: 동요《모두 다 뛰놀자[13][14]
SK 시절: 뚜띠 - 짝짝짝[15]
가족 배우자 김진희(2004년 12월 16일 결혼~현재)
(2007년생)
1. 개요2. 선수 경력3. 플레이 스타일4. 은퇴 후
4.1. 해설자 경력
4.1.1. 1기 SBS ESPN4.1.2. 2기 SPOTV
4.2. 지도자 경력4.3. 프런트 경력
4.3.1. LG 트윈스 전력강화 코디네이터4.3.2. SSG 랜더스 단장
4.3.2.1. 2024 시즌
5. 이야깃거리
5.1. 고관절 수술과 지명타자 전향
6. 기타7. 논란 및 사건 사고
7.1. 세 번의 음주운전
8.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前 야구 선수. 現 SSG 랜더스 단장. 선수 시절 포지션은 지명타자, 좌익수.

데뷔 시즌부터 활약하며 고졸 신인으로서 20-20 클럽에 가입하는 등 인상적인 모습을 보였고, 팀 우승에 큰 기여를 하였다. 이후에도 뛰어난 타격을 보이며 리그를 대표하는 좌타자로 성장하였으나 고관절 문제로 수비와 주루툴을 잃어버리고[16] 은퇴 위기까지 몰렸었지만 그럼에도 타격 능력을 유지해 본인의 가치를 꾸준히 보여주었으며, LG의 신바람 야구와 SK 왕조에 큰 기여를 한 스타 플레이어로 양팀의 많은 팬들의 지지를 받았던 선수였다.

2. 선수 경력

김재현의 선수 경력
통합 선수 경력: 김재현(1975)/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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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시절 2005년 2006년 2007년
2008년 2009년 2010년 은퇴

3. 플레이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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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 시절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배트 스피드와 호쾌한 타격 폼[17] 덕분에 힘이 잔뜩 실린 타구를 많이 만들었고, 그 타구가 마치 대포를 쏘는 것 같았다 하여 \'캐넌 히터\'란 별명을 갖고있다. 타구 궤적이 큰 포물선을 그리지 않고, 낮고 강하게 관중석을 향해 날아가는 라인 드라이브성 홈런, 일명 '캐넌포' 또한 그의 트레이드마크.[18]

사실 김재현의 최대 장점은 바로 엄청난 선구안으로, 통산 타출갭이 0.108에 달하며 사륜안이란 별명도 있다.[19][20] 은퇴한 시점에서 통산 사사구 역대 3위.

하지만 수비는 타격과는 정 반대로 영 좋지 않았다. 흔히들 고관절 부상 이후로 수비가 급락했다고 알려져 있으나 원래부터 돌글러브로 유명했다. 잠실 좌익수 쪽 외야석에서 김재현의 수비를 직관한 모 관중은 눈이 썩는 수비였다고 평하기도. 뜬공 처리가 심하게 약했지만 그나마 빠른 발과 강한 어깨를 활용해 수비를 해왔으며 외야 뎁스가 강하고 본인도 고관절 부상으로 수비를 뛰기 어려워진 LG 후반부터 수비는 대수비 수준으로나 간간이 나왔고 SK 이적 이후로는 풀타임 지명타자가 되어 사실상 수비를 전혀 뛰지 않았다. 이 수비력 때문에 주전 경쟁에서 간간히 손해를 보기도 했다. 2007년 김성근 감독 부임 후로 플래툰으로 기용된 이유도 바로 이 때문.

4. 은퇴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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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 현역 시절 입었던 유니폼과 배트가 인천 SSG 랜더스필드 안에 위치한 L's 갤러리[21] 레전드 플레이어 존에 진열되어 2022년 박물관이 폐관될 때까지 전시됐었다. 이 외에도 L's road와 구장 곳곳에 김재현의 흔적이 현재까지도 남아있다. 대표적으로 2007년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3회말 결승 솔로홈런을 날린 후 두손을 번쩍 들고 있는 김재현의 실루엣 등. 문학구장의 스카이박스에는 김재현이 현역 시절 사용했던 등번호 7번과 김재현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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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에는 SK의 '희망Talk콘서트'의 첫 번째 희망나누미로 참가하여 부상 등으로 인한 슬럼프, 이른 은퇴 결정 등 좌절할 수도 있었던 상황 속에서 역경을 극복했던 본인의 인생스토리를 담담하게 전했고 SK 팬들과 추억을 나누고 희망을 전달했다.

또 몰래 준비된 팬들의 깜짝 메시지로 인해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사전에 받은 팬들의 편지와 사진, 영상 편지로 구성된 동영상을 보고 감동한 김재현 위원은 팬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옛 생각도 많이 나고, 팬 여러분들의 따뜻한 사랑을 느낄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전했다.

4.1. 해설자 경력

4.1.1. 1기 SBS ESPN

2013년 시즌부터 SBS ESPN에서 해설가로 일하게 되었다. 초보 해설자이면서도 꽤나 달변가의 면모를 보여주면서 일단은 호평. 그리고 5월 17일 롯데 자이언츠SK 와이번스의 경기가 SBS 중계로 잡히면서 처음으로 지상파 해설을 맡게 된다.

평가가 상당히 엇갈리는 해설 중 하나인데, 일단 목소리 톤은 상당히 좋다는 평. 해설가 데뷔 첫해임에도 긍정적인 평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경기 중에 화장실에서 선수를 만나 이야기를 하는 썰을 자주 푼다. 그리고 출신은 속일 수 없는지 LG의 경기에서 실책 또는 아쉬운 플레이가 나왔을 경우 해설 중에 한숨을 쉬는 모습이 포착되며 SK에도 우호적인 해설을 많이 하는 편이라 LG나 SK의 상대가 된 팀의 팬들은 꺼리는 반응을 보이고, 특히 롯데 팬들은 김재현 해설을 굉장히 싫어한다. 차라리 양준혁이 낫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 또한 어법에 안 맞는 말을 자주 구사하여 답답하다는 평도 많다.

SPOTV로 이적한 후에는 표현력도 개선되고 편파중계 문제도 나아졌다는 평과 여전히 고질적인 문제점이 남아있다라는 평이 갈린다. 그렇지만, 경험이 쌓여가면서 초창기보다는 확실히 나아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4.1.2. 2기 SPO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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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앜. 넘어갔어요.[22]

2017 시즌부터 SPOTV에서 다시 KBO 리그 해설을 하고 있다. 해설은 전체적으로 SBS 시절보다는 많이 나아지고 있다는 평. 게다가 해설할 때의 톤과 목소리가 여전히 좋아서 평가가 확실히 좋아졌다. 사투리가 문제가 되는 해설자들과 달리 언어 구사력 및 어휘 선택 등의 문제이기에 개선의 여지가 있었고 실제로 그렇게 되고 있다.

2022년 7월 5일, 두산 베어스키움 히어로즈의 경기에서 두산의 내야수 강승호가 9회초 2아웃 만루 상황에서 게임을 터트리는 송구 실책을 저질러 역전이 되자 귀신이라도 본 듯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아악

현직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타격코치답게 세세한 타격 분석 위주로 해설한다. 본인이 몸 담았던 LG, SK, 코치로 2년을 보냈던 한화 경기 중계를 하게 되면 추억팔이도 상당히 많이 하는 편. 특히 코치 시절 지도했던 선수들에게는 애정 어린 쓴소리도 자주 한다. "우리가 알던 하주석 선수가 저랬나요? 드립도 자주 구사한다. 아재요

그러나 아직도 답답하고 문장의 흐름이 부자연스러운 해설을 하여 약간씩 까이는 중이다.[23] 타격에서 가장 강조하는 내용은 타석에 들어서기 전 칠 구종을 미리 생각하고 들어가라는 것. 특히 신인급의 타자들에게 강조하는 방법이다.[24]

4.2. 지도자 경력

4.2.1. 연수 코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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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시즌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한 뒤 SK 와이번스의 주선을 통해 미국으로 건너갔고,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산하 싱글 A 그레이트 레이크스 룬즈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게 되었다. 이후 미국에 체류하면서 코치 연수를 받다가 시즌 도중 자신의 은퇴식 참여를 위해 잠시 귀국을 하기도 했다. 코치 연수를 마치고 현역 시절 마지막을 보냈던 SK 와이번스에서 코치 생활을 할 것으로 예측됐으나[25] 은사인 김성근 감독이 시즌 도중 경질당한 여파인지, 김재현도 SK로 복귀하지 않았다.

2012년에는 일본에서 조금 더 공부하라는 김성근 감독의 권유를 받아들여 이번에는 일본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기로 결정했고, 요미우리 자이언츠 2군 타격코치로 부임해 연수 과정과 병행했다. 국내 야구인 중 미국과 일본 양쪽에서 모두 지도자 연수를 받은 사례는 거의 없는 걸 생각하면 상당히 이례적인 셈. 당시 김성근과 SK 구단은 서로 간의 기싸움과 시즌 도중 경질 등으로 인해 사이가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김재현의 요미우리 행만큼은 합심해서 적극적으로 나선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2년 3월 9일부터 요미우리 2군에 합류, 등번호는 111번을 배정받았다.

2012년 시즌 후 코치 연수를 마치고 귀국, 김재현이 어느 팀 유니폼을 입고 코치 생활을 할 지 잠시 주목받기도 했지만, 결국 SBS ESPN의 해설위원으로 영입되면서 지도자 대신 해설위원의 진로를 선택하게 된다.

4.2.2. 한화 이글스 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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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11일, 김성근 감독의 부름을 받고 한화 이글스의 코치로 부임하면서 한국에서의 첫 지도자 생활을 한화에서 하게 됐다.#

한화에서의 보직은 쇼다 코우조와 함께 1군 타격코치를 맡게 됐다. 한편 코치로서 첫 발을 뗀 만큼 팀에 얼마나 보탬이 될지는 미지수지만, 일단 김성근 감독 밑에서 선수 생활을 한 만큼 감독이 원하는 것을 잘 알고 있고, 현역 시절 깔끔한 타격폼과 빠른 배트 스피드, 훌륭한 선구안 위주의 타격 스타일을 보였으며, 은퇴 기념으로 구단이 보내주는 몇 개월짜리 해외 나들이가 아닌 자기 돈을 들여가면서 장기 연수를 받을 정도로 열성이었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코치로서 한화 선수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높다.

사람들은 더 이상 김재현의 해설을 안 들어도 된다는 것에 기뻐하였고(...)[26] LG 팬들은 이상훈에 이어 왜 또 레전드 출신 코치를 타팀에 빼앗기냐고 프런트에 불만을 늘어놓았다. 반면에 SK 팬들은 김재현이 은사 김성근의 요청을 받고 한화로 부임했기 때문에 오히려 좋아하는 분위기였다.

흥미로운 점은 두산 2군 투수코치가 된 야생마와 한화 코치로 온 캐넌 사이의 공통점이 있는데, 둘 다 LG의 1994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었으며, 모두 6668587667 초반에 LG에서 SK로 이적하여 은퇴했다는 것이다. 거기다가 같은 시기에 원 소속 팀이 아닌, 완전 다른 팀의 코치로 프로 현장에 복귀했다는 것도 일치한다. 차이점은 이상훈은 잠실 라이벌 팀 2군에서 코치 역량을 검증받은 후 친정으로 복귀했다는 것.

2016년 시즌 후 사임 의사를 밝히며 팀을 떠났다.기사 일본인 코치 3명도 김성근 감독의 야구관에 비판을 표하며 스스로 물러난 것으로 보아, 김재현도 비슷한 이유로 결별했을 가능성이 크다.

한화에서 나온 후 삼성 라이온즈가 그에게 1군 타격코치 자리를 제의했으나, 서로의 입장 차이가 있어서 영입이 힘들다는 기사가 떴다.

4.2.3.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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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을 앞두고 선동열 감독을 보좌할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의 타격코치로 선임됐다. 선동열호 시절에는 처음으로 참가했던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에서는 대한민국이 준우승을 차지했고,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에서도 금메달을 받으면서 좋은 성적을 이끌었다. 이후 선동열 감독이 자진 사퇴하고 대표팀 감독이 김경문으로 바뀐 뒤에도 그동안의 활약을 인정받아 타격코치를 계속 맡게 됐다.

김경문호 첫 대회였던 2019 WBSC 프리미어 12에서는 대한민국이 결론적으로는 준우승을 차지하면서 2020 도쿄 올림픽 진출을 확정지었지만, 슈퍼라운드 최종전과 메달 결정전에서 일본한테 연달아 2연패를 하는 등 아쉬움도 남겼고, 이후 김경문 감독이 사실상 퇴진함에 따라 대표팀 코칭스태프에서 자연스레 물러났다.

4.3. 프런트 경력

4.3.1. LG 트윈스 전력강화 코디네이터

2023년 1월 29일, LG의 전력강화 코디네이터에 임명되면서, 2004년 FA로 SK 이적 이후 19년 만에 LG로 돌아오게 되었다. 이와 관련된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는데, 원래는 염경엽 해설위원이 이 자리에 내정되어 있었으나 2022 KBO 플레이오프에서 LG의 무기력한 탈락 및 피업셋으로 구본능 LG 구단주대행의 극대노를 유발하여 류지현 감독이 재계약 불가로 당초 LG의 전력강화 코디네이터로 합류할 예정이있던 염경엽이 후임 감독으로 낙점되면서 추후 김재현이 이 자리를 맡게 된 것이다.

공교롭게도 류지현 감독이 재계약 불가 선언을 받고 퇴단한 타이밍에 코디네이터로 선임되면서 류지현과의 불화설에 관한 우스갯소리가 나오기도 했지만, 김재현이 이미 해설위원 시절에 본인 입으로 해명을 했기 때문에 류지현과의 불화는 이제 낭설일 확률이 높다.

2023년 시즌 후 차명석 단장이 퇴임하면 후임으로 김재현이 취임한다는 썰도 있다.

10월 2일 수원에서 펼쳐진 kt wiz와의 경기를 차명석 단장과 함께 경기를 지켜보며 오랜만에 현장에 방문하였다.

이후 삼성 라이온즈의 차기 단장 면접을 봤다는 썰이 나왔는데, 이후 삼성은 이종열 SBS 스포츠 해설위원을 단장으로 임명하면서 없었던 일이 되었다.

4.3.2. SSG 랜더스 단장

4.3.2.1. 2024 시즌
2023년 12월 15일, 김성용 단장의 좌천 및 경질로 공석이 된 SSG 랜더스의 단장으로 선임되었다. 이로써 2010년 SK 와이번스에서 은퇴한 이후 무려 13년 만에 SSG로 돌아오게 되었다. 현역 은퇴와 동시에 구단에서 주선해준 해외 코치 연수를 가면서 반드시 팀에 돌아오겠다는 말을 전하기도 했는데, 은사 김성근 감독이 경질되면서 당시에는 이루어지지 못했으나 결국에는 약속을 지키게 되었다.

일단 선임에 대한 SSG 팬들의 전반적인 여론은 긍정적인 편으로, 흔들리는 팀의 분위기를 안정화하기에 적합한 인물이라는 평이다. 팀의 핵심인 김광현, 최정과 이미 현역 시절부터 함께했던 인물이어서 구단 장악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고, 김성용과 달리 이리저리 휘둘리지도 않는 성격이라 깔끔한 일처리가 기대된다. 비선실세 의혹 등을 구단도 모를 리가 없으니 아예 논란의 여지가 없을 만한 인물을 단장으로 선임한 것으로 보인다.[27]

김재현은 단장 취임 후 뉴스1과의 인터뷰에서 현역 시절 좋은 기억이 많았던 팀에서 성적과 육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싶어 (단장으로) 결정을 내렸다며, 중요한 시기에 막중한 임무를 맡게 된 만큼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고 밝혔다. 과거 여러 팀을 거치며 느꼈던 좋은 점들을 SSG에 많이 도입하려 한다고 덧붙혔고, 야구단 모그룹이 바뀌면 그에 맞는 색깔을 새로 입히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고 밝혔다.[28] 그러나 그 이전에 팀이 갖고 있던 장점을 지울 필요는 없다면서 시대의 흐름에 맞게 바꿀 것은 바꾸면서도 좋은 부분은 계속해서 살릴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 보겠다고 설명했다.

내부 FA 김민식 계약과 2차 드래프트로 인한 김강민한화 이글스 이적 등 여러 내홍에 빠진 구단을 얼마나 잘 수습할 것인지가 최대 관건이다.

스토브리그에서 작년 괜찮은 활약을 보여주었던 외국인 선수 기예르모 에레디아로에니스 엘리아스와의 재계약에 성공하면서 나쁘지 않은 첫걸음을 뗐다. 또한 이재원의 방출, 이흥련의 은퇴, 김민식의 FA 협상 난항에 따라 포수층이 급격하게 부족해진 상태에서 보상 선수 대신 지명권으로 키움 히어로즈에 보상을 주고 포수 이지영을 영입하게 되었다.

1월 16일, 김민식과 2년 5억에 재계약했다. 당초 김민식을 3년 15억에 잡으려고 했으나 김민식 측에서 해당 조건을 거부하였고[29], 이후 시장 상황이 악화되면서 김민식이 구단에게 굴복한 것이다. 다른 포수들의 계약 금액을 고려한다면 준주전급 포수임을 감안해도 엄청난 염가 계약으로 평가받는다.

1월 20일 내야수 김성현과 계약 기간 3년, 총액 6억 원에 다년 계약을 맺었다. 김성현의 인터뷰에 의하면 처음에는 구단에서 계약 기간 2년을 제시했으나 김성현이 3년을 요구했고 이를 들은 구단 측에서 흔쾌히 들어줬다고 한다.

비시즌 동안 오키나와에서 자체 캠프를 열어 몸을 만들고 있던 김광현과 이로운, 신헌민, 백승건, 오원석, 이기순을 찾아가 격려했다. 김재현은 김광현이 후배들을 이끌고 열심히 해주고 있으니 밥 한 번 사주러 갔다며, 김광현이 지난 해 후반기엔 구위가 떨어지는 등 아쉬운 모습을 보였는데 겨우내 열심히 훈련하고 있어 벌써 기대가 된다고 덧붙혔다.

스토브리그가 끝난 현 시점에서 보면 부임하자마자 팀의 고질적인 약점인 포수 문제를 해결하고, 다른 베테랑 선수들을 다독이면서 팀을 진정시키는데 성공했다고 평할 수 있다. 팬들도 이번 스토브리그 최대 성과는 김재현 단장 선임이라고 이야기할 정도.

부임 후 외국인 투수인 로버트 더거가 팀에게 민폐만 끼치다가[30] 방출되었는데, 김재현 단장이 취임하기 한참 전에 계약한 선수여서 김재현 단장의 실책은 아니다. 이후 드류 앤더슨을 영입했다.

이후 또 다른 외국인 투수였던 엘리아스가 부상으로 장기 이탈하자 빠르게 대체 외국인 선수 제도를 이용하여 시라카와 케이쇼를 즉시 영입하는 등 누구와는 달리 신속하면서도 훌륭한 성과를 연달아 내면서 모처럼 팬들에게 칭송받는 단장이 되었다.

2024 시즌이 시작되면서 전임 김성용 단장이 데려온 이숭용 감독과 강병식, 송신영 코치[31]가 최악의 성적 부진을 기록하며, 김재현 단장이 직접 경질을 해야 한다는 랜더스 팬들의 비판 여론이 나오고 있다. 거기다 박지환의 외야 전향을 프런트 측에서 동의했다는 소식이 나오면서 비판의 목소리가 더욱 커졌으며, 현장의 부실한 선수 관리와 최상민 등 사건 사고를 일으킨 선수들의 중용을 방치한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고 있다. 시즌 종료가 얼마 안 남은 시점에서 내년 스토브리그까지 이 상황을 어떻게 수습하느냐에 따라 이전의 호평을 다 까먹을 무능한 단장이 될지, 아니면 다시 한 번 좋은 일처리로 수습에 성공할지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2024년 9월 11일 열린 2025 KBO 신인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전체 8순위로 강릉고 포수 이율예를 지명했다. 일부 전문가로부터 다소 이례적인 결정으로 평가를 받기도 했는데[32][33] 김재현은 "이율예가 청소년 대표팀 2학년 때부터 주전 포수로 활약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선수들 장단점을 파악해 경기 운영한 능력을 높이 평가했다. 현대 야구는 스피드(주루)가 중요한데 그 스피드 잡을 선수가 이율예"라며 "2028년 청라 스타필드 돔 시대를 맞이해 이율예를 간판으로 만들겠다"라고 설명했다.

10월 1일 수원 케이티 위즈 파크에서 열린 SSG 랜더스kt wiz와의 정규시즌 5위 결정전민경삼 대표이사와 함께 스카이박스에서 관람했다. 경기 후반 김광현이 역전 쓰리런을 허용하자 표정이 어두워졌으며[34], 9회초 어깨 부상으로 인해 일상생활도 힘든 상황[35]추신수를 대타로 내보내자 얼굴이 빨갛게 상기되기도 했다.[36]

5위 결정전에서 SSG가 패하면서 이젠 김재현 단장의 스토브리그가 중요해졌다. 내부 FA중 두 명이 리빙 레전드 최정, 이번 시즌 홀드왕을 기록한 노경은이기에 무슨 일이 있어도 단속해야 한다. 그리고 외국인 선수 에레디아, 엘리아스, 앤더슨과 재계약을 하거나 또는 새로운 외국인 선수를 영입해야 한다. 거기에 이숭용 감독의 경기를 직접 직관한 만큼 이숭용 감독의 경질 여부도 생각해야 한다. 직관 당시 막장 운영에 분노한 모습으로 보아 경질 여부는 불확실해도 은 잘라버릴 가능성이 높다.[37] 이것 이외에도 최상민의 방출 여부, 김강민의 은퇴식 개최 여부 등 해야 할 일이 매우 많아졌다.

스포츠조선의 박재호 기자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야구부장에 따르면 "아직 구체화는 안 되었으나 SSG 랜더스 프런트 내부적으로 김강민의 은퇴를 위해 준비하고 있는 게 있다"라며 "팬들 여론을 구단도 다 알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38] 또 FA를 앞둔 최정에 대해서는 최근 김재현 단장과 함께 식사 자리를 가졌으며, 최정이 팀에 대한 충성심이 워낙 높기 때문에 FA 시장을 나오게 되더라도 90% 이상 잔류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39]

10월 5일 본격적인 선수단 정리에 나서며. 고효준, 박민호, 강진성, 최경모[40]총 10명을 방출했다. 고효준은 이번시즌 좋지못한 활약으로[41] 구단은 은퇴를 원했지만 선수본인이 현역 연장 의지가 강해 풀어줬을 가능성이 크다. 최상민의 경우 방출되지는 않았으나 그와 유사하게 팬들에게 비판을 받던 최경모에게 방출 통보를 하면서 혼란스러운 구단 상황에서도 나름대로 수습에 나서고 있다.

10월 15일 결국 김강민의 은퇴식을 2025년에 개최한다 발표해 팬들의 여론은 급속도로 좋아지는 중이다.[42] 같은 날 전신 SK 와이번스에서 활약했던 이명기이영욱, 그리고 SK 와이번스와 SSG 랜더스에서 배터리 코치를 역임한 바 있는 세리자와 유지를 코치로 영입했고 기존 2군 코치진에서 이대수, 김종훈, 김이슬, 김동호, 임재현, 윤인득, 구본학에게 재계약 불가 의사를 전달했다.[43] 정세영 SSG 랜더스 전담 기자에 따르면 1군 코치진에도 변화가 있을 예정이라고 한다.

10월 18일 최정 에이전트에게 최종 제시금액을 제시했고 이젠 구단은 최정의 선택을 기다리는 중이라고 밝혔다.

10월 24일 1군 코치진이 확정되었는데, 손시헌은 2군 감독에서 1군 수비코치로 보직이 이동되었고 경헌호세리자와 유지가 각각 투수코치와 배터리 코치로 내정되며 어느 정도 변화를 주긴 했지만, 오준혁강병식은 그대로 타격코치로 남으며 송신영은 다시 수석코치로 돌아가는 등 2024 시즌에 여론이 좋지 않았던 코치들은 그대로 살아남았다. 김성용 전 단장이 영입한 2군 코치들에게 재계약 불가 의사를 밝히긴 했지만 이숭용 체제에서 1군 코치진을 다 바꿀 수는 없기에 2025 시즌 후의 코치진 변화가 어떻게 될지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다.

10월 31일 오원석KT 위즈로 보내고 김민을 받아오는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좌완 선발 자원을 보내고 우완 불펜을 받아와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는 비판론과 4년을 기다렸는데 실력이 늘지 않는 건 보내주는 게 맞다는 옹호론이 공존한다. [44][45]

11월 4일 구단 측에서 최정과의 계약 자체는 합의했으나 계약의 형태가 비FA 다년계약이 아닌 FA 계약이 될 것임을 공식 발표했다. 급한 불은 끈 셈인데 6일 새벽 0시 FA 시장이 열리자마자 1호 계약이 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그리고 11월 6일 4년 총액 110억으로 최정 FA 계약에 성공했다. 이제 노경은 계약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11월 16일 엘리아스의 대체 외인으로 미치 화이트를 100만달러에 영입했다.

11월 22일 노경은과 2+1년 25억으로 계약에 성공했다, 그럼으로 내부 단속은 성공했다

11월 25일 에레디아와 180만[46] 달러에 재계약했다.

5. 이야깃거리

5.1. 고관절 수술과 지명타자 전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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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관절 부상[47]으로 선수 생명이 끝났다는 말까지 나왔지만 수술을 받고 기적적으로 재활에 성공한 케이스이다. 일반인이 아닌 운동선수인지라 무리하다 재수술을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원래 포지션인 외야수 수비는 거의 보기 힘들게 되었고, 이후 지명타자로 주로 출장했다. 부상 복귀 이후에도 수비에 많이 나섰다면 은퇴가 더 일렀을 수도 있다. 그리고 데뷔 시즌에 20-20을 기록했을 정도의 준족이었지만 고관절 부상 이후 도루 능력을 거의 상실한 것도 아쉬운 점이다. 헌데 알려진 이미지는 다르게 김재현이 17시즌 동안 두 자릿수 도루를 기록한 시즌은 4시즌에 불과하며, 지명타자 전환 이후 은퇴 시즌까지 통산 성적을 보면 알겠지만 도루 숫자가 매년 5개~8개 정도를 꾸준히 기록한 걸 보면 그럭저럭 준수한 발은 유지한 듯하다.

사실 고관절 부상 이전에 외야수를 보던 시절에도 우수한 타격과는 별개로 외야 수비 능력은 가장 수비가 쉽다는 좌익수 포지션에서도 그닥 좋지 못한 편이었다.[48] 부상 이후 지명타자로 고정한 것은 본인의 커리어를 위해서도 잘한 일이다. 1990년대에 LG 트윈스에서 좌익수로 뛰었을 당시에 상당한 미남으로 팬들에게 인기가 많아 잠실 3루 외야 쪽 좌익수 자리가 홈팀 자리보다도 먼저 찼다고 알려져 있지만, 정작 거기에 모여있던 팬들도 김재현의 수비력에 대해서는 좋은 소리를 하지 않았다. 2005년 SK 와이번스로 이적한 후 2010년 은퇴까지 6시즌을 치르면서 소화한 수비 이닝은 고작 24이닝으로, 그마저도 대부분 교체로 인한 대수비 출장이었다. 2005년과 2006년은 수비 출장 기록은 없고, 2007년 중견수로 1경기 2이닝, 2008년 우익수로 2경기 11이닝, 2009년 1루수와 좌익수로 각각 4경기 7이닝과 2경기 2이닝, 2010년 1루수와 좌익수로 각각 1경기 1이닝씩 나섰다. 그래도 수비 연습은 꾸준히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2009 시즌 1루 대수비로 나와 그것도 플라이를 놓치는 실수를 저질렀고, 그 후 수비 연습도 안 끼워준다며 한숨을 쉬기도 했다(…). 2010 시즌에도 한 번 좌익수로 나온 적이 있었다. 당시 유격수를 보던 김연훈이 좌익수 수비 위치까지 달려가 플라이를 잡아냈는데 그때 김재현의 표정이 오묘했다.

고관절 괴사의 원인[49] 중에 약물이 있기 때문에 즉각적인 장타력 상승을 위한 스테로이드계 약물 복용이 의심되는 선수 중 하나로 지목되곤 한다. 하지만 김재현의 홈런 커리어 하이는 21개를 친 데뷔 시즌인 1994년[50]과 1999년[51]으로 발병 시점에 비해 상당히 과거의 일이다. 발병 직전 시즌에는 오히려 홈런을 8개밖에 못 쳤을 만큼 장타력이 떨어져 있었으므로 약물 복용설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또한 약물 복용의 대표적인 부작용인 급격한 체중 증가 또한 현역을 넘어 은퇴한지 10년이 다 되어가는 현재까지도 김재현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다. 게다가 SK 구단부터가 아시아 시리즈에 두 번 참여하면서 도핑 테스트도 받았기 때문에 KBO 리그 팀 중에선 약물에서 그나마 깨끗한 팀일 가능성이 높다. 결국 김재현 약물설은 호사가들의 의혹일 뿐 확실히 알려진 바 없는 음모론 수준에 가깝다.

그래도 LG에 있을 때는 두 자릿 수 홈런을 곧잘 치고 3할 타율도 쓰고 그랬다. 단지 구장이 국내에서 가장 넓은 잠실 야구장이라 손해를 볼 수밖에 없었다. 비슷한 케이스로 성적을 좀 까먹어도 어마어마하게 기록을 쓴 동기 라이벌 심정수[52], 김동주도 비슷했다.[53]

오히려 이 고관절 부상에 가장 유력한 요인으로 입에 오르내리는 것은 소싯적 문란한 사생활(…)이다. 후술하겠지만 LG 시절 음주운전에 2차례 적발된 바 있고, 1990년대 후반 LG에서 심재학, 최향남[54]과 더불어서 가장 잘 노는 선수였던 만큼 술집, 나이트 등 목격담도 수두룩하며, 고관절 악화가 과다한 음주 등에 의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약물보다 오히려 가능성은 높은 편이다. 일례로 당시 한 집에서 같이 살던 장인어른[55]이 참다못해 김재현의 차 키를 압수했다는 유명한 카더라가 있고, 가끔 구리 시내에서 LG 2군 경기장을 가기 위해 택시를 타면 나이 지긋하신 기사분 중에 젊을 때 김재현이 워커힐에서 술이 쩔어서 택시를 타고 숙소로 데려다 줬다는 증언도 나온다고 한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서 김성근 감독과 그 당시 LG로 트레이드됐었던 양준혁을 만나 많은 걸 배웠고, 그 이후로 베테랑급이 된 뒤에는 팀의 정신적 리더로 발돋움하였다.[56]

그리고 김재현의 고관절 부상과 지명타자 전업은 앞에서도 말했듯 그가 LG에서 이병규에게 밀리는 계기를 제공[57]했으며, SK에서도 플래툰 시스템으로 묶이면서 누적 스탯을 상당히 손해봐야 했다.

6. 기타

  • SK 선수였던 이진영이 LG로 옮긴 후 SK와의 홈 경기 때 SK 선수들에게 찾아와 "LG 선수들은 팬서비스를 위해 항상 펜을 들고 다녀. 사인해 줘야 하거든."이라고 말하자, 옆에서 보고 있던 김재현이 "야, 팬들에게 싸인이 아니라 승리를 줘라."는 말을 하여 이진영을 한 큐에 넉다운시킨 적이 있다. 이는 OBS 불타는 그라운드에 방송된 장면.[58]
    짤이 처음 나온 2000년대 후반에는 성적은 제대로 못 내면서 연예인 행세만 하고 다니는 선수들에 대한 일침으로 주목받았지만, 팬 서비스의 중요성이 부각되기 시작한 2010년대 중후반부터는 이진영의 발언 또한 팬을 대하는 선수들의 기본 자세로 재평가를 받게 되었다. 세월의 변화를 엿볼 수 있는 부분. 그리고 김재현이 당시 저렇게 말하긴 했지만, 왕년의 잠실 아이돌답게 팬 서비스에도 결코 소홀하지 않았던 선수였다. 후배 이진영 역시 사인해줄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는 말만큼이나 팬서비스는 좋은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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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쓴소리의 대가. 워낙 쓴소리를 잘 해서, 앞서 말한 이진영을 단번에 넉다운시킨 승리 발언은 뭐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다. 하지만 어쩌면 그런 똑 부러진 성격 때문에 친정인 LG에 제대로 찍혔을지도.
  • 목소리가 대단히 좋은 편이다. 해설자로서 첫 시즌을 보냈을 때 호평받는 이유 역시 거북하지 않게 나오는 목소리 덕분일 것이다.
  • SBS 해설자 시절 정말 말도 안 되는 비문 표현이 많아서 당당히 최악의 해설자로 꼽혔다. 특히 김정준과 더블해설이라도 하는 날에는 늘 포털사이트 중계창 댓글에는 둘의 해설을 욕하는 댓글이 폭발했었다.(...) 반대 예로는 양준혁 위원 & 이동근 아나운서가 있는데 양 위원[59]은 그렇다 치는데... 이 위원은 왜인지는 의문. 당시에도 가끔은 정우영 아나운서 톤이 비슷하다고 해서 까이는 것도 그럴 듯하다.
  • 조인성신일중, 신일고 동문이며 둘이서 신일고 야구부의 26연승을 이끌었다. 여담으로 조인성은 중학교 때부터 앉아쏴를 시전했다고 증언했다. 사실 '앉아쏴'는 당시 신일중 감독이었던 양승호의 작품인데, 당시 조인성이 비만이라 제대로 일어나지를 못해서 앉아쏴를 가르쳤다고 한다(...).[60] 그리고 함께 LG의 한국시리즈 경험을 한 적 있다. 이듬해는 6668587667가 시작되는 것도 같이 하였다.
  • 워낙 LG와 SK 양 팀에서 쌓은 스탯이 출중한지라 마구마구 게임에서 어느 쪽의 레전드로 나오는지가 논란거리였는데 결국은 LG 레전드로 나왔다. 아무래도 출장연차나 누적 스탯에서 LG 시절이 앞섰기 때문이었던 듯. 더구나 홈런 커리어 하이가 94년과 99년의 21홈런이고, 통산 타율이 3할에 육박하며 장타율이 4할 6푼인 전형적인 교타자를 카드 팔아먹기 위해서 파워형으로 내놓았다. 덕분에 LG올, M-L올, LG 세트덱 유저들에게 거의 필수 카드가 돼버려서 김재현 레전드카드는 한때 300만 거니가 넘는 고가에 거래되기도 했다. 뭐 살 사람은 다 산 지금은 싸다. 이후 본래 가장 출전이 많았던 좌익수로의 듀얼 포지션도 추가.
    2014년 듀얼 레전드 추가로 SK 레전드 카드도 추가 되었다. 능력과 포지션 모두 기존의 레전드와 동일.[61]
    최고등급 카드인 블랙도 LG와 SK 전부 나왔다.[62] 게다가 포지션도 레전드와 똑같이 우익수에 좌익수 듀포까지. LG 카드는 현역시절과 유니폼은 맞는데. SK 카드는 초기 입단 했던 푸른색 유니폼이지만, 이미지 컷 타격자세는 붉은색 유니폼 그림...
  • 박동희 기자와 인터뷰가 올라왔다. 여기서 그는 2007 시즌이 끝나고 자신을 트레이드해 줄 것을 김성근 감독에게 직접 요청했다고 한다. 인터뷰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그동안 사람들이 막연히 김성근 감독 부임 초기에 김성근 감독과 약간의 마찰이 있는 정도로만 알려졌지만, 김재현의 인터뷰에서 김성근 감독과 매우 심각할 정도의 수준의 불화가 있음이 확인되었다. 물론 김재현이 마음을 다잡고 야구에 전념하여 2007년 한국시리즈 MVP까지 탔지만. 그리고 인터뷰 말미에서 2009년 최정을 패전투수로 만든 6.25 대첩 때문에 결과론적으로 후반기 막판에 연승 신기록을 세우고도 정규시즌 1위를 못한 것을 지적했다. 그 경기가 1년 농사를 좌우하는 중요한 경기임을 역설하면서 김성근 감독의 실책임을 시사하는 뉘앙스를 풍겼다. 다만 이 인터뷰만으로 '김재현과 김성근이 실제로는 견원지간이었다!'라고 보는 것은 지나친 억측이고, '그 다음 해 삼성과 한국 시리즈를 보고 그런 야구를 하고 싶어 지도자의 길을 걷겠다'고 한 점, 저렇게 심각한 불화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제일 존경하는 지도자중 한 명으로 뽑은 점을 통해 실제로는 애증관계라고 보는 것이 옳다. 2015년 김재현이 한화 이글스 1군 코치를 맡아 다시 한 번 김성근 밑에서 야구를 하게 된 점 때문에 적어도 증오하는 사이는 아니라는 것이 확실히 입증된 상황.[63]
  • 컴투스 프로야구 2012의 02년 레전드 카드로 올라왔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사진이 SK 때 사진이다.
  • '나는 야구감독이다'에서는 05김재현이 SK덱 코레기(...)로 꼽힌다.
  • 컴프매에서 02 김재현과 05 김재현은 각각 LG 올스타와 SK 올스타에서 주전으로 쓰인다. 두 카드 모두 출루에 강점이 있다고 평가받는다.[64]
  • 야구 팬들이라면 모두가 아는 대로 류지현과 김재현은 선수시절부터 서로 성향이 정반대라 너무 맞아서 사이가 안 좋았고, 은퇴 뒤에도 김기태가 LG 감독으로 있을 때 김재현이 해설위원 자격으로 구장을 찾아왔다가 류지현이 대놓고 언짢은 표정을 지어서 김기태 감독까지 무안하게 만들기도 했다.[65] 김재현이 LG 코치를 하려면 류지현이 LG를 떠나야 한다는 농담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2017년 APBC 대표팀에 코치로 함께했을 때 서로 "지현 씨", "재현 씨" 하고 호칭한 걸 보면 여전히 서먹하다는 걸 알 수 있다.[66][67]2019년 1월 9일 94년 우승멤버들 모임에 전원이 모이면서 자연스럽게 류지현과 자리를 함께했다. 기사참조 최근 들어서는 모임에서 자주 만나는 것도 그렇고 류지현 코치와의 소통도 많이 늘어난 모습들이 계속 보이고 있어서 '김재현과 류지현은 견원지간'이라고 보는 시선이 많이 줄어들었다. 2020년 현재에도 김재현 위원이 해설하는 도중 류지현 코치에 대한 칭찬을 종종 한다.
    • 2021년 9월 30일 LG와 두산의 경기에서 이 불화설에 대해 직접 해명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류지현 감독과 사이가 나쁜 줄 알고 있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이야기를 했으며, 선수 때는 핑클 노래에 맞춰 같이 춤을 췄을 정도로 류 감독과는 잘 지냈다고 밝혔다.[68] 팬들의 의견으로는 보통 둘의 관계가 정말 멀어진 것은 2000년 선수협 사태 때의 일로 보는 편. 당시 김재현은 선수협 찬성 측이었고 류지현은 선수협 자체는 찬성하지만 노조 전환, 구단 비인정 상황은 반대하는 쪽이었는데, 양준혁, 강병규 등의 강경파와 충돌하며 류지현이 선수협 반대파로 돌아섰다. 이 과정에서 선수협 창립 총회 당시 선수협에 찬성하는 김재현을 제외한 LG 선수 전원을 류지현이 총회에서 끌고 나오면서 둘의 관계가 멀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 2023년 전력강화 코디네이터로 LG에 복귀하면서 인터뷰를 통해 4번 정도 LG에서 코치 제의가 있었는데, 그때는 스스로 준비가 부족하다고 생각해 수락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남들이 볼땐 류지현이 팀을 떠나자마자 영입되었기 때문에 타이밍이 절묘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69] 그러나 류지현과의 관계 문제가 아닌 실제로 준비가 부족했을 가능성이 높다.[70]
  • 선수시절 잘생긴 외모로 여성팬들에게 인기가 매우 많았고 류지현, 서용빈과 함께 신인 3인방으로 활약하였다.선수 은퇴한 지금도 외모는 거의 변하지 않았다.
  • 엘린이 출신이다. 2023년 LG 전력강화 코디네이터로 영입되고 엘튜브 영상에서 어릴때부터 좋아하던 팀에 복귀하게 되었다고 했다.

7. 논란 및 사건 사고

7.1. 세 번의 음주운전

잘 알려지지 않은 흑역사로, 재활 중이던 2003년에 음주 측정 거부로 경찰에 입건된 적이 있다. 참고로 당시 김재현의 차량엔 코치였던 정삼흠이 동승하고 있었는데, 안 그래도 무능한 코치로 팬들 사이에서 원성이 자자했던 정삼흠은 이 일이 결정적인 계기가 돼서 시즌 후 LG의 코치에서 잘렸고 다시는 프로야구계에 발을 못 붙이고 있다.

문제는 김재현의 음주운전 전과가 상습적이라는 점인데 1995년에도 이미 음주운전을 하다가 중앙선을 침범해서 추돌 사고를 낸 적이 있다는 것이다. 그나마 사람을 치지 않아서 망정이지 한 번 그런 사고를 내고 또 다시 그런 일을 저질렀다는 것은 쉴드의 여지가 없는 악질 범죄다. 1995년 음주운전 당시에는 사고 후 5일 뒤에 열린 한국프로야구 올스타전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출장하기도 하였는데 비슷한 시점 광주시내에서 폭행 혐의로 체포돼 구속되었다가 풀려한 홍현우와 대조적 조치가 이뤄지면서 논란이 됐다.

1995년 김재현의 올스타전 출전 강행은 사회적으로 음주운전에 대한 인식이 매우 미비했기에 벌어진 촌극이다. 2005년 김상혁의 그 유명한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하지 않았다 발언과 4년 뒤 두산 선수 김명제의 음주 운전 사고로 인한 하반신 마비, 그 외에도 잇따른 음주운전 사고로 인한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인식 개선 노력 등 여러 가지 요인이 겹쳐 오늘날처럼 음주운전이 중범죄라는 인식이 잡히게 되었다. 요즘 저랬으면 퇴출까지도 가능한 중범죄이고 2017년에는 앞으로 한국야구위원회(KBO)에서 음주운전자들에 대해 선수 자격을 박탈하겠다는 의사까지 표시할 정도로 처벌이 강력해졌으니 시대를 잘 타고난 어찌 보면 본인의 표현대로 운이 좋은 선수이다.

8. 관련 문서


[1] WBSC 등록명.[2] 호적상으로는 1975년 10월 2일이고 실제로는 1974년 10월 28일이라고 한다. 초등학교 3학년때 1년 유급하였다. 그래서 학교는 1975년생들과 같이 졸업했다. 기사 참조.[3] 1년 유급해서 1975년생인 김동주, 손인호, 심정수, 조인성, 그리고 빠른 1976년생인 이호준이랑도 친구로 지내고, 1974년생인 이병규, 진갑용이랑도 친구로 지낸다.[4]광진구. 그러나 성동구는 아직 존재하고, 1995년 이전까지 성동구 소속이던 화양동, 중곡동, 광장동, 구의동, 자양동, 군자동, 능동 등(동일로 동쪽 지역)이 광진구로 분리되었다.[5] 네이버 프로필 기준.[6] #[7] 마구마구의 영향으로 주로 우익수를 본 줄 아는 사람들이 많지만, 2002년 대퇴골두 무혈성 괴사가 발병하기 전까지 좌익수 출전 비중이 압도적이었으며, 실제로 우익수를 본 적은 거의 없다. 참고로 고교 시절엔 중견수였으나 입단 전부터 인정 받아온 타격에 비해, 수비는 타구 판단을 비롯해 전반적으로 프로에서 주전 중견수를 맞기엔 부족하여 좌익수로 자리잡게 되었다. 여담으로 1990년대 LG의 홈경기가 열린 잠실에는 유독 3루쪽 외야가 먼저 자리가 차곤 했는데, 그 이유가 바로 좌익수 수비를 나섰던 김재현 때문이었다.[8] 출전 경기 수 자체는 외야수보다 지명타자로 출전이 더 많기는 하나 보통 일반적으로 김재현하면 코너 외야수로 유명하다.[9] 고관절 문제가 생긴 2002년 이전까진 8년의 기간 동안 지명타자로 출전한 경기가 30경기가 되지 않았을 정도로 솔리드한 포지션 플레이어였으나, 2002년부터 은퇴할 때까지 지명타자로 고정되며, 결국 선수 생활 중 지명타자 출전 비중이 절반을 근소하게 넘기며 가장 많이 출전한 포지션이 되었다.[10] SK 이적 후 2008년 1경기, 2009년 4경기, 2010년 1경기에 출장하며 총 6경기 출전하였고, LG 시절엔 1루수로 단 한경기도 출전한 적이 없다.[11]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산하 싱글 A[12] 12월 15일~[13] 날려라 날려라 김재현↘~ 날려라 날려라 김재현↗~ 날려라 날려라 김재현↘~ 날려라 날려라 김재현~[14] 이후 이 응원가는 김상현에게 넘어간다.[15] (따단딴단 따~라라라) 김재현! (따단딴단 따~라라라) 김재현! 날려버려 안타! 날려버려 홈런! 캐넌히터 김!재!현! (짠짠짠짠 짠짠짠짠 짠짠짠짠) 홈!런! (짠짠짠짠 짠짠짠짠 짠짠짠짠) 홈!런![16] 이로 인해 2002년부터 은퇴할 때까지 고정 지명타자였다.[17] 코나미컵에서 일본 해설자는 김재현의 타격 폼을 보면서 '가장 완벽하다'라고 극찬했을 정도.[18] 현역/은퇴 선수 중 장효조와 가장 유사한 타격폼을 갖고 있는데, 사실 수많은 타자들이 벤치마킹한 모델이지만 감히 따라하기조차 쉽지 않다. 빠른 배트 스피드와 라인드라이브 타구가 많이 나오는 특징 또한 유사하다. 단 방망이를 굳이 짧게 잡지 않는 것은 차이인데, 컨택능력은 장효조 쪽이, 장타력은 김재현쪽이 낫다고 봐야하겠다.[19] 1999시즌까진 타율 3할과 출루율 4할을 찍은 시즌이 없었고 매시즌 삼진이 볼넷보다 많았으나 양준혁이 LG에 들어온 2000시즌을 기점으로 급격하게 볼삼비가 좋아졌다. 실제로 2000년 이후 고관절 부상으로 인해 후반기에만 나온 2003시즌을 제외하고 은퇴할 때까지 모든 시즌에서 볼넷이 삼진보다 많았다.[20] 다만 1999년 시즌까지도 볼넷 수가 적은 타자는 아니었다. 타출갭 즉 타율과 출루율의 마진이 가장 적은 해인 1998년에도 0.069를 기록했을 뿐 다른 해들도 0.080 이상의 타출갭을 기록했던 것을 생각하면 이전에도 삼진이 많을 뿐 선구안 자체는 양호했지만 2000년 시즌 이후에 더 많은 볼넷을 얻어내는 발전을 했다고 보는게 맞을 것이다.[21] SK 시절부터 이어저 오는 구단 역사관으로 인천야구의 변천사와 구단 역사, 레전드 플레이어존 및 우승 트로피 등이 전시되어 있다.[22] 홈런성 타구가 나올 때 쓰는 특유의 멘트. 다소 무미건조하게 얘기하는 이순철과는 달리 약간 격앙된 톤이 특징이다.[23] 해설 자체는 괜찮아서 해설 능력으로는 비판을 그렇게 많이 받지는 않는 것 같다.[24] 본인도 신인 시절 변화구면 변화구, 직구면 직구 하나만 노리고 타격하던 스타일이었다고 한다. 경험이 부족할 때는 타석에서의 대처가 어렵기 때문에 말하는 것. 선배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뭐 1년차부터 주전+골든글러브+우승이었으니..[25] 본인도 은퇴를 하면서 반드시 SK로 돌아오겠다는 말을 전한 바 있기에 당연한 수순으로 보여졌다. 결국 훗날 돌고 돌아 SK의 후신인 SSG 랜더스의 단장으로 임명되면서 이 일화가 재조명받았다.[26] 다만 해설위원으로서의 연차가 쌓인 현 시점에서는 대체로 좋은 평을 듣고 있다.[27] 후술하듯 현역 시절 그 김성근에게 트레이드를 해달라고 바락바락 이야기할 만큼 이호준 못지않은 쌈닭으로 유명하다. 당시 김재현은 이호준과 함께 덕아웃 리더로서의 역할과 동시에 악명 높던 이진주(속칭 펄녀)를 앞장서서 내쫓는 인물로 알려져 있었다. 실제로 이호준과 함께 둘이서 쌍욕까지 하면서 쫓아냈다고 한다. 이후 아는 형님에 출연한 팀 후배 김광현이 한 이야기로 데뷔 후 20대 초반부터 팀 에이스로 활약했을 때 선배들의 조언으로 야구에만 전념하는 분위기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야구장 이외에 연예인과의 만남이 30대에 출연한 아는 형님 방송이 최초라고 밝힐 정도로 젊은 선수들의 일탈을 막고 과도한 외부 활동에 휩쓸리지 않게 하는 데에 도움이 된 것으로 보인다.[28] 실제로 과거 KIA 타이거즈의 경우 해태 타이거즈 매각 이후 새출발하는 과정에서 레전드 선동열의 영구결번을 해지하고 당시 초특급 신인 김진우에게 등번호 18번을 배정했고 2002년 초까지 18번이 달린 유니폼을 입고 연습경기를 뛰기도 했으나, 결국 팬들의 강한 반발로 무산되어 KIA에서는 선동열의 영구결번이 유지됐다. 실제 사진 LG 트윈스도 구단 인수 후 20년이 지나도록 MBC 청룡과 거리를 두는 모습을 보여줬으나 여러 격변기를 거쳐 어느 정도 팀의 역사가 쌓인 후로는 이벤트를 통해 전신 팀의 유니폼을 오마주해서 입는 등 역사를 챙기고 있다.[29] 정확히 말하면 김민식은 해당 조건에 사인하려고 했는데 그의 에이전트가 거부했다.[30] 먹튀급 성적을 보여줬는데 코칭스태프에게 2번이나 항명했다.[31] 이숭용, 강병식, 송신영은 SSG 팬들에게는 현대라인이라는 멸칭으로 불리고 있으며 키움에서도 선수를 망친다는 평가가 나온 만큼 선수 코칭에 대한 평가가 대단히 안 좋다. 현대가 인천야구 역사에서 어떤 의미인지 안다면 인선부터가 팬들의 반감을 불러일으킨 수준.[32] 이율예는 이번 드래프트에 나온 포수 자원 중 경기상업고의 한지윤, 전주고의 이한림과 함께 대어급으로 평가 받았으나 유독 즉전감 투수 자원이 드래프트에 많이 나온 해였다. SSG는 당시 기준 선발 투수진의 평균자책점이 5.38로 리그 최하위를 달릴 정도로 궤멸한 상황이었기에 1라운드에서 투수를 지명할 것이라는 예측을 받았었다.[33] 다만 SSG의 경우 포수 뎁스 측면에서 평가가 영 좋지 않다. 현 주전인 이지영은 30대 후반, 백업인 김민식은 30대 중반으로 적지 않은 나이이며 구단에서 기대를 걸고 있는 조형우는 성장세가 더딘 상황이다. 2차 드래프트로 데려온 신범수의 경우 타격에서 잠재력을 보여주고는 있으나 수비에서 약세를 보여 사실상 고정 지명타자로 나섰다.[34] 민경삼은 김광현이 홈런을 허용하자 패색이 짙어졌다고 생각했는지 덕아웃으로 내려와 선수단을 격려했다.[35] 시즌 종료 후 수술이 확정된 상태다.[36] 자신도 후술할 고관절 부상으로 선수 생활이 끝장날 뻔했기에 부상 선수를 마구잡이로 굴리고 욕받이로 만드는 행위에 눈이 뒤집힐 만도 했다.[37] 이숭용 감독과 김재현 단장은 입단 동기이나 이숭용 감독이 세 살 연상이다. 위계관계가 확실한 야구계에서 일반적으론 이숭용 감독이 좀 더 힘이 있을 수 있지만 선수시절에 감독에게도 들이받는 성격의 김재현 단장이라 강경하게 나갈 확률이 높다.[38] 김강민이 현역 시절 마지막을 보낸 한화 이글스의 경우 관련 행사를 준비하려다가 그만둔 상태라고 한다.[39] 2차 드래프트에 대비해 보호선수 슬롯을 하나라도 더 만들기 위해 구단과 협의 하에 비FA 다년 계약을 체결하지 않고 일부러 FA 시장에 나오는 경우도 있다. 유사한 사례로는 LG 트윈스오지환이 있다.[40] 서상준,이찬혁,허민혁,김지현,전경원,최유빈[41] 1군에서 ERA 8점대, 2군에서 ERA 6점대로 부진했다.[42] 한편으로는 김성용이 싼 똥을 치우는 것 같아 안타깝다는 여론도 존재한다.[43] 이대수와 임재현 코치를 제외한 나머지는 전부 전임 김성용 단장이 영입한 코치진이다.[44] 추후 엄상백의 한화 이적이 확정되며 오원석 트레이드를 조금만 미뤘다면 조금 더 좋은 선수를 받았으리라는 아쉬움도 존재한다.[45] 신인 드래프트 지명권이라도 받아 왔어야 한다는 여론도 있다.[46] 연봉 $1,600,000 / 옵션 $200,000[47] 정확한 병명은 대퇴골두 무혈성 괴사.[48] 사실 이것도 점잖은 표현으로 눈을 썩게 만드는 수준이었다는 증언이 많다(...).[49] 고관절 괴사의 정확한 원인은 잘 밝혀져 있지 않다. 스테로이드약물이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곤 하지만 스테로이드와 관련이 없는 일반인 중에서도 고관절 괴사가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50] 당시 엄청난 투고타저라서 홈런 5위권이었다. 1위는 25개를 친 당시 방위병 출신인 김기태.[51] 이 해는 KBO 리그 역사상 손꼽히는 타고투저 시절이었다.[52] 단 심정수는 현대 유니콘스로 트레이드되어 잠실에서 실질적으로 있던 시기는 약 7년에 불과했다.[53] 김동주는 풀타임으로 뛰고도 3-4-5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운 것은 덤이다.[54] 특히나 최향남의 경우 그 유명한 해태 타이거즈에 지명받은 선수였다. 그 시절 놀기 좋아라 하는 성격인데 팀은 1980년대 똥군기 시절이고, 툭하면 거의 줄빠따를 맞기 일쑤였다. 오죽하면 해태의 빡센 군기를 피하려 현역병으로 군 문제를 해결했을 정도.[55] 참고로 김재현의 장인은 코스닥 상장기업이자 동국제강 제1협력업체인 기전산업의 김종원 회장이다.[56] 클로저 이상용의 등장인물인 안준민이 이 시기의 김재현을 모티브로 했다는 추측이 있다.[57] 이병규도 역시 LG 2기 시절 국내로 복귀했을 때는 2년간은 풀타임 외야수, 1년은 지명타자와 외야를 겸업했으며, 나머지 시즌에는 아예 지명타자로 전업했다.[58] 2009년도에 방영된 2기 22화 中.[59] 이 분 유튜브에서도 "양준혁 어-예 라고" 검색을 하면 죄다 댓글부터가 가관이다.[60] 정작 조인성은 TV 프로그램 진기명기에서 앉아쏴를 보고 했다가 되길래 그냥 했을 뿐이라고 했다.[61] 논란인 게 SK에서는 지명타자로만 99% 뛰었는데 외야까지 주는 건 좀 상식이 아니지 않냐는 반발성 분위기였는데... 나중에 그냥 값이 떨어지자 주최 측이나 유저 측이나 개돼지가 되었다...[62] LG 카드로 먼저나왔고 추가패치로 SK 카드로도 출시.[63] 김재현은 처가가 준재벌급에 본인 집안도 금수저이므로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 밑에서 억지로 일할 필요가 없다.[64] 실제로 김재현은 연차가 쌓인 후에는 선구안을 이용해 신중한 타격을 하며 출루에 집중했다. 커리어하이 시즌인 94시즌이 잘 쓰이지 않는 것도 출루율이 좋지 못해서이다.[65] 참고로 김기태와 김재현은 2005년 SK에서 한솥밥을 먹은 적이 있었다. 반대로 류지현과 김기태는 선수협 창립총회 때 서로 맞디스 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김기태가 LG 감독을 했을 때 류지현은 함께 있었다.[66] 그러나 본인이 LG 경기를 해설할 때 "류지현 코치에게 물어보니까..."라는 표현을 종종 쓰곤 하는 걸 보면 일반에 알려진 것처럼 견원지간 수준으로 나쁘지 않고 그냥 서먹서먹한 사이일 수도 있다. 물론 이런 부분은 관계자나 동료가 아니면 알 수 없다.[67] 사실 오랫동안 동료로 안본 사이여서 어색해할 가능성도 있다. 과거엔 친분이 있더라도 오랫동안 안보면 어색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럴 만한게 김재현이 LG를 떠난 게 2005년이고 은퇴 때까지 단 한번도 LG로 다시 돌아오지 않은데 반해, 류지현은 2004년 은퇴 이후 쭉 LG에 눌러앉았다. 다시 둘의 인연이 맺어진게 앞서 서술한 것처럼 2017년 APBC에서 코치로 재회했을 때이니, 아무리 우승을 함께한 동기라도 12년 간 접점이 없으니 어색해할만 하다.[68] 사회에서는 류지현이 4살 형이지만 류지현이 대졸 선수이기 때문에 고졸 신인으로 입단한 김재현과 1994년 드래프트 입단 동기이며, 입단하자마자 1994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누렸고 그 뒤로도 10년 간 선수시절을 보냈다.[69] 류지현은 감독에서 물러나고 해설위원을 하고 있다.[70] 애시당초 김재현의 KBO 리그 지도자 경력은 한화 이글스 타격코치가 전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