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6-03 15:49:59

최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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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트윈스 암흑기의 4번 타자.
이름 최동수(崔東秀)
생년월일 1971년 9월 11일
출신지 서울특별시
학력 서울봉천초 - 강남중 - 광영고 - 중앙대 [1]
포지션 1루수, 3루수, 포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94년 2차지명 4라운드 (전체 30순위, LG)
소속팀 LG 트윈스 (1994~2010)
SK 와이번스 (2010~2011)
LG 트윈스 (2012~2013)
지도자 LG 트윈스 육성군 타격코치 (2014~2018)
휘문고등학교 인스트럭터 (2019~ )
등장곡 Linkin Park - 'What I've Done'
응원가 LG시절 : Queen - 'We will rock you'[2]
링크
SK시절 : 원곡 추가바람[3]
아틀란티스[4]
2002년 한국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 MVP
홍원기(두산 베어스) 최동수(LG 트윈스) 김원형(SK 와이번스)
LG 트윈스 등번호 32번
김상모(1992~1993) 최동수(1994~2010) 윤상균(2010~2011)
윤상균(2010~2011) 최동수(2012~2013) 김선우(2014)
SK 와이번스 등번호 25번
여건욱(2009~2010) 최동수(2010) 이영욱(2011~2013)
SK 와이번스 등번호 32번
박윤(2010) 최동수(2011) 김민식(2012~2013)

1. 소개2. 선수 커리어
2.1. LG 트윈스 1기
2.1.1. 긴 무명 시절2.1.2. 2009 시즌
2.2. SK 와이번스 시절
2.2.1. 2010 시즌2.2.2. 2011 시즌
2.2.2.1. 포스트시즌
2.3. LG 트윈스 2기
2.3.1. 2012 시즌2.3.2. 2013 시즌
3. 지도자 경력4. 연도별 주요 성적5. 기타

1. 소개

LG 트윈스의 내야수.

별명은 팔뚝옹, 동수옹, 도웃옹[5], 당겨쳐당 당수[6], 대기만성, 유땅선생[7], 로또 2호기(...)[8]근데 최동수가 더 나이 많은데.... 등이 있다.

1994년 데뷔 이래 2001년부터 두각을 나타내 오랜 기간 동안 LG 트윈스를 지켜온 베테랑으로, 뒤늦게나마 프로 세계에서 눈을 뜬 이래 이종열처럼 화려하지 않지만 묵묵히 팀을 위해 뛰는 모습으로 LG 트윈스의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선수. 류택현과 더불어 김성근 감독을 통해 프로에서 눈을 뜬 대표적인 LG 선수이기도 하다.

빠따형과의 인터뷰

2. 선수 커리어

2.1. LG 트윈스 1기

2.1.1. 긴 무명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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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수 시절.

전형적인 노력형, 대기만성형 선수로서 데뷔 후 방위병 복무까지 마쳐도 몇 년간 그저 그랬던 전형적인 2군 선수였었고, 처음으로 1억원 대 연봉을 넘긴 해가 프로 15년차인 2008년일 정도로 그의 야구 인생은 고난의 길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원래 포지션인 포수에서는 언제나 김동수, 김정민, 조인성 등에 밀렸기 때문에, 주로 대타로 출장했다.

그래도 꾸준히 노력하였던 그는 김성근 수석코치가 감독 대행을 맡은 2001년부터 프로 세계에 눈을 뜨기 시작하면서 타격으로서는 꽤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그가 진정으로 풀 타임 1군 선수가 된 건 2007년이었다. 이 해 그는 3할 6리에 58타점을 올리면서 4번 타자로서 활약했다. 2008년에는 부상으로 고생했지만 62타점을 올리면서 활약했다. 쿨가이는 찬물 같은 걸 끼얹고(…), 페땅볼발만 빠른 애가 스탯 관리에 여념이 없을 때, 난세영웅과 더불어 그나마 좀 쳐 주던 그 당시 뒤늦게, 정말 뒤늦게, 선수 생활의 거의 황혼기에 관심을 받기 시작한다. 선수 생활 전체 커리어를 보더라도 1990년대와 2000년대의 성적이 확연하게 다르며, 1990년대의 성적이 일천한 관계로 통산 타율은 .270이 안 되고, 통산 홈런 개수도 2012 시즌까지 합쳐서 90개에 불과하다.

약팀의 4번 타자라 불릴 만하다. 말그대로 공포의 4번 타자의 포스에는 조금은 부족한 느낌. 하지만 6번이나 7번이라면 KBO 최고의 6번 타자라고 불릴 수 있을 만큼 발군의 타격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장타력이 매우 좋은 선수였으며, 풀타임시 원래 잠실에서 홈런 15개, 재박존이 설치된 잠실에서는 18~20개 정도는 충분히 기대할 수 있는 선수였다. 특히 클러치 능력이 매우 좋은 선수였기에 타점도 준수했고 대타로서도 능력이 출중한 편이었다. 로베르토 페타지니가 4번으로 들어오면서 괜찮은 5번 타자로 클래스 체인지를 했었다.

하지만 발이 무척이나 느리기에 2009 시즌에는 리그 1위를 기록할 정도로 병살타를 자주 쳤으며, 빠른 공에는 강했지만 상대적으로 변화구에 약했다. 1루 수비는 그냥저냥 하는 수준이었고 나이가 꽤 되다 보니 체력 문제도 있었다. 쉬고 나오면 좋은 타격감을 보였지만, 풀 타임을 뛰기엔 무리였다.

실제로 보면 덩치도 매우 좋고 어깨빨과 굵고 아름다운 팔뚝에 웃음이 매력적이라서 이대형이나 심수창 보려고 잠실에서 게임 끝나고 기다리던 처자들이, 오히려 최동수 선수의 간지에 빠져서 우르르 몰려들어서 최동수 선수의 자태에 감탄했다고 한다.

아무튼 팔 힘이 엄청나게 센 선수라, 한 번은 대타로 나온 뒤 삼진당하자, 나는 이것밖에 안 되는 남자인가!!!(…)라는 의미가 담긴 듯한 배트 부러뜨리기를 시전했다. 실제로 보면 정말 놀랍다.

2.1.2. 2009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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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와이번스와의 512 대첩에서, 연장 12회초에만 6실점하며 제대로 불지르던 우규민이 2사 3루 1볼 상황에서 던진 공이 타자 모창민의 등을 맞아서 우규민이 퇴장당했다.[9] 그런데 이날 LG는 불펜 투수들을 총동원한 터라 남은 투수가 선발 요원인 심수창밖에 없었고, 결국 최동수가 마운드에 올라왔다!!![10] 포수를 보아야 할 김정민이 이미 좌익수로 서 있었을 정도였는데, 최동수마저 투수가 됨으로써 LG는 수비 포지션이 제대로 파괴되었다.

최동수가 던진 초구는 시속 130km/h짜리 스트라이크!!! 그리고 상대 타자 박경완의 자비(?)로 2구만에 2루수 뜬공으로 잡아 내며 통산 평균자책점 0.00의 무적 투수가 됐다. 이로써 한국프로야구에서 김재박에 이어 2번째로 내야수투수, 포수 포지션을 경험한 선수가 됐다. 참고로 3번째는 최정. 당시 박경완은 “차마 제대로 칠 수가 없었다. 그냥 가만히 서 있으면 안 될 것 같아 대충 휘둘러서 아웃됐다”며 웃었다. 그 경기에서 이진영은 최동수를 보고 “오승환인 줄 알았다. 돌직구를 던지더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리고 2009년 12월, 39세[11]의 나이에 드디어 결혼했다. 그런데 방출되었던 동갑내기 미혼 투수2012년에 플레잉코치가 되어 돌아왔다... 이런 배신자 그리고 그 동갑내기 투수코치도 2015년 말 결혼에 골인하였다. 준혁이형, 재홍아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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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신랑인지 인지 구분이 안가지만, 최동수 옹 결혼식 사진 맞다. 누가 보면 이대형 결혼식인 줄 알겠다.

2.2. SK 와이번스 시절

2.2.1. 2010 시즌

2010년 7월 28일 자로 SK 와이번스트레이드되었다. LG와 SK의 4:3 트레이드.
권용관, 최동수, 안치용, 이재영윤상균[12], 박현준, 김선규

16년 동안 LG에 있었던 프랜차이즈 스타였던 최동수가 SK로 간다는 점이 팬들을 아쉽게 하지만, 본인은 새로운 기회가 있고 무엇보다 그가 존경하는 김성근 감독이 이끌고 있었던 SK 와이번스로 가는 것을 굉장히 반겼다. LG 수석코치 및 감독 시절에 가장 훈련을 열심히 하던 노력파 최동수를 아꼈던 김성근 감독이 최동수를 트레이드 카드로 특별히 원해서 챙겼다고 한다. 그 성실함은 대단해서, 2001년 당시 엄청난 양의 훈련으로 유명한 김성근 감독이 "너 이제 연습 그만하고 좀 쉬어라" 라고 말한 유일한 선수가 최동수였다. 당시 오죽했으면 특타로 인해 굽어 버린 최동수의 손을 김성근 감독이 손수 펴 줬다고 할 정도라고 한다.[13]

최동수의 노력에 관한 일화로, 과거 팀이 부진한 행보를 거듭하고 있을 때 후배들을 세워놓고 "요즘 팀 분위기가 많이 안 좋으니까, 내일은 일찍 나와서 특타를 한 번 하자" 라고 말했지만 정작 그 다음 날에는 딱 한 명만 나왔다(…). 그 이름은 박경수였다. 근데 나름대로 한다고 하시는 이 두분은 항상 멘도사 라인 근처에서 노시는 분이라 혼자 나온 것보다 더 슬프다. 야구는 원래 잘 하는 놈이 잘해

여담이지만 트레이드 당일 최동수가 김성근 감독에게 전화하니까, 김성근 감독은 팀이 훈련 중인 고등학교 운동장으로 바로 나와서 특타하라고 지시하여 SK 선수단에 합류했다. 그리고서 그 날에 있었던 잠실 LG전에서 1군에 바로 등록되자마자 8번 타자 1루수로 선발 출장하였고 6회 초 김광수를 상대로 쫓아가는 3점 홈런을 날렸다. 그 날 최동수는 4타수 1안타 4타점을 올렸지만, 권용관이 끝내기 실책을 저지르면서 팀이 패하고 말았다. 그 날 경기에서는 트레이드 맞상대 투수들인 김선규, 박현준, 이재영을 제외하고 트레이드 맞상대 타자들이 모두 출장하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8월 8일 경기 8회말에 쐐기를 박는 솔로 홈런을 기록했으나 이후 부진으로 2군에 가 있는 기간이 늘어났고, 비슷하게 생긴 1호기와 함께 쌍로또로 까였다.

하지만 9월 26일 2010년 마지막 경기에 출장, 8회초에 3루수로, 9회초에는 2루수로 의도치 않은 멀티 플레이어가 되었으며 9회말 1사 1, 2루 상황에서 2010년 페넌트레이스를 끝내버리는 안타를 쳤다!

과연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를 한국시리즈 우승을 경험할 수 있을까 싶었지만, 결국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들지는 못했다. 다만 그 때와 달리 이번에는 당당히 1군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다. 그가 데뷔한 1994년은 LG 트윈스가 한국시리즈에서 태평양 돌핀스를 꺾고 우승한 해이지만 2군에만 있었기 때문에 코시 우승을 함께하지 못했다.(2002년 한국시리즈가 유일한 출전 기록이다.) 1994년과 2010년 모두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들어가 활약한 김재현의 경우와는 정반대다. 그래도 대만전과 한일 클럽 챔피언십에는 나왔다. 국제전은 이번이 첫 경험. 대만전은 출전은 못했지만.

2.2.2. 2011 시즌

2011 시즌을 앞두고 나주환-모창민의 입대와 권용관의 수술로 내야 자원이 부족해지자 3루수 훈련을 하게 되었다. 김성근 감독의 뜻으로 보이며, SK로 온 안경현이 2루수 연습을 했던 것과 같이 주전은 무리일지라도 백업으로서의 역할을 기대했던 듯. 만약 최동수가 선발 3루로 나오는 일이 발생하면 둘 중 하나일 것이다. 그가 스프링캠프 동안 지옥훈련으로 회춘했거나, 그게 아니라면 기존 3루수 자원인 최정, 김연훈의 상태가 몽땅 시망했던가(…).

그런데...3월 16일 한화 이글스와의 시범경기에서 10년 만에 포수 마스크를 썼다. 이유는 사람이 없어서(...) 박경완, 정상호가 모두 부상으로 빠져 있었고 3rd였던 김정남은 그 전날 부진했다. 3회부터 최경철 대신 맡았는데 초반엔 많이 흔들렸지만 김경언을 홈에서 블로킹으로, 한상훈의 도루 저지도 잡아내는 등 10년간 포수를 쉬었던 선수 치고는 훌륭히 역할을 잘 수행했다. 포수 보느라 타격이 시망이 된 건 생각하지 말자

참고로 LG 트윈스 갤러리의 반응은 "우리도 그런 짓은 안했는데..."(안습) # 하지만 본인은 장난으로 포수를 맡았던 건 아닌 듯하다.

2011년 4월 10일 삼성전에서 패전 처리조로 투입되어 비교적 안정적으로 포수로서 기능을 수행했다.

2011년 4월 13일 정상호가 부상당하고 박경완이 1군에 등록됐는데 박경완의 건강이 안 좋았던 탓에 5회부터 경기 끝까지 포수를 보게 되었다.(...)

4월 20일 LG와의 김광현 선발 경기에서 정상호가 앉아서 중전 2루타를 상대에게 헌납하자 물론 김연훈의 베이스 커버 문제도 있었지만 1회에 교체 투입 포수에 4번 타자로...경기를 치룬다. 이날 SK는 LG에게 도루 8개를 허용하면서...(물론 도루 저지도 하나 기록.) 지고 만다.

2010년 준플레이오프 5차전의 강민호 송구에러를 떠올리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경기 후 김성근 감독은 "정상호가 그 상황에서 그렇게 던지는 게 맞다, 그를 교체한 것은 볼배합의 문제때문이었다"고 했다. 실드 쳐 준 듯하지만 보는 이들은...

그리고 분노한 도웃옹은 친정팀의 라카룸으로 #1 #2

그리고 5월 5일, 10년만에 포수로 선발출장하게 되었다. 관련 기사 결과는 도루저지 하나에 쓰리런 하나! 이 활약으로 당일 MVP도 되었다. 원래 LG에서도 평판이 좋은 사람이었는데 SK로 이적한 뒤 3루수에 포수까지 보면서 분투하는 모습이 많은 사람들에게 호감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5월 13일 두산전에서는 대타로 출정하여 1타점을 기록했다. 5월 14일 두산전에선 매그레인 선발에 맞추어(...) 선발 포수로 나왔고 두산에게 2:0으로 패했다.

그 이후 큰 활약이 없었다가 정근우가 부상으로 빠지면서 1군에 복귀 그리고 솩갤은 아수라장 8월 4일날 선발 출장, LG의 투수 이대환의 공을 받아쳐 SK의 2011시즌 첫 만루 홈런을 만드는 쾌거를 이룩했다. 4:1의 상황에서 쐐기포가 된 극적인 홈런.

그리고 만루포를 계기로 긁혔는지 8월 5일 KIA 타이거즈 전에서 2011시즌 최강의 포스를 뽐내고 있는 윤석민에게 만루상황에서 2타점 적시타까지 쳤다. 이 날 경기에서는 MLB 스카우터가 와서 경기를 봤다고 하던데 윤석민이 MLB에서 1선발 가능하다고 했으니 최동수는 그럼!

만루포 이후로 타격감이 좋아서 8월 14일 기준으로 팀 타점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2군에 있었을 때 타격 폼을 수정을 했는데 최정의 타격폼을 참고했다고 한다. #

그런데 김성근 감독 경질 후 이만수가 감독이 되자 분명 잘 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대타로 나오거나 경기 초반 1루수로 나와서 잠깐 수비하고 한 타석 정도 나오고 나면 빠진다거나 하는 경우가 많았다. 안치용도 마찬가지로 플래툰을 돌았다…. 유다를 죽입시다. 유다는 나의 원수 SK팬뿐만 아니라 LG팬들도 안타까워하였다.

9월 21일 사직 롯데전에서 결승 2타점 적시타를 날리며 대타 타율 5할을 채웠다. 경기후 이만수 감독대행이 인터뷰에서 최동수를 선발로 쓰면 대타감이 없어서 선발로 쓰지 않고 대타로 쓴다고 했다. 선발로 나와서 점수 많이 내고 대수비로 박정권이 들어가면 되잖아 만수 바보야!
2.2.2.1. 포스트시즌
어쨌든 간에 그는 포스트 시즌 엔트리에 등록되어 무려 9년 만에 포스트 시즌을 경험하게 됐다. 2011년 10월 8일 인천문학경기장에서 열린 KIA 타이거즈와의 2011년 준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9회말 대타로 나와서 윤석민을 상대로 솔로 홈런을 쳤다. 이는 포스트시즌 최고령 홈런이다. 참고로 이전까지의 최고령 홈런기록은 양준혁. 덕분에 팀은 윤석민의 완봉승을 막고 1:5로 완투패를 당하였다.

최동수는 2011년 준 플레이오프에서 8타수 2안타 1볼넷 1타점 1득점 타율 .250, 장타율 .625, 출루율 .333을 기록하였다.

최동수는 롯데 자이언츠와의 2011년 플레이오프에서 9타수 1안타 1도루 1타점 타율, 장타율, 출루율 모두 .111을 기록하였다.

팀이 시리즈 전적 2패로 지던 2011년 10월 28일 인천문학경기장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와의 2011년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팀이 0:1로 앞서고 있던 5회말에 저마노를 상대로 솔로 홈런을 날려서 자신이 갖고 있던 포스트시즌 최고령 홈런 기록을 20일만에 경신했다. 최동수는 이날 3타수 1안타 1홈런 1타점 1득점을 기록하였고, 팀은 스코어 1:2로 이겼다.

2011년 10월 29일 문학 야구장에서 열린 2011년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팀이 스코어 5:1로 지던 7회말에 박재상의 뜬금 3점포로 5:4로 따라잡은 순간에 안지만을 상대로 1사 1, 3루 상황에서 통한의 병살타(…)를 쳐 버렸다. 역시 로또2호기 최동수는 이날 4타수 1안타를 기록하였고, 결국 7회 말에 추격의 동력을 잃은 SK 와이번스는 8회, 9회 박희수이승호가 연속으로 무너져 스코어 8:4로 패하고 말았다.

최동수는 2011년 한국시리즈에서 14타수 4안타 1홈런 1타점 1득점 타율 .286, 장타율 .571, 출루율 .286을 기록하였고, 팀은 시리즈 전적 1승 4패로 준우승에 그쳤다.

최동수의 2011년 포스트시즌 성적은 31타수 7안타 2홈런 1볼넷 1도루 3타점 2득점 타율 .226, 장타율 .452, 출루율 .250.

2.3. LG 트윈스 2기

2.3.1. 2012 시즌

2011년 11월 22일 2차드래프트에서 친정 팀 LG 트윈스 도로 이적했다. 이로써 한 시즌 반 만에 친정 팀으로의 컴백이 확정되었다!!!

동계훈련 체력 테스트를 단번에 통과하며 큰 기대를 끌기도 했다.

2012년 시즌이 시작되기 직전 이종범의 은퇴로 동갑내기인 류택현과 함께 최고령 선수에 등극했다. 그런데 KIA 타이거즈에서 같은 1971년생인 최향남을 재영입하면서 그보다 생일이 비교적 빠른 최향남이 최고령 선수가 되어 최동수는 졸지에 뒤로 밀려났다(…). 그래도 2012년 시즌 기준 KBO 최고령 타자.

1루로 되돌아온 작은 이병규와 함께 상대팀 선발투수에 따른 1루 플래툰을 하였다. 주전으로 나오지 못하더라도 장타력이 있기 때문에 대타로서도 유용하게 기용되었다. 4월 20일 기준으로 타율이 무려 3할이다. 이는 박용택, 이대형보다 높은 수치. 다만, 나이가 많다보니 실수를 조금 하더라도 더 많이 까였다.

5월 13일 삼성전에서 7회초 1사 3루인 상황에 이승엽의 1루 땅볼 타구를 무릎을 꿇으며 잘 막고 3루에 있던 진갑용을 잡으러 홈으로 던졌는데, 포수가 주자와 등을 지고 있는 상황이라 잡을 수 없었다. 주자는 세이프해서 역전점도 허용하고 1루 찍는걸 깜빡해서 이승엽까지 살려줘 버렸다. 2사 주자 없음이, 1사 1루로 둔갑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5월 15일~16일 연달아서 뇌수비를 선보이면서 제대로 까였다. 16일 SK전에서는 1루 주자 조인성의 리드 폭이 큰 것을 간파한 투수 이동현견제구를 던졌고 조인성은 귀루하지 못했지만 태그할 생각도 않고 멍때리다가 주자를 살려주는 뇌수비를 보여줬다. 여기에 흔들린 이동현은 번트 타구를 더듬으면서 졸지에 무사 1,2루가 되었고 적시타를 맞으며 지고 있던 경기를 완전히 넘겨줬다. LG팬들 사이에서는 채태인이 빙의한거 아니나며 욕을 날렸고 최동수의 실책이 패배로 직결되기도 해서 수비문제로 이래저래 까였다. 포구에서도 문제를 보이는 터라 내야진의 실책도 덩달아 늘었다.

5월 23일 넥센전을 앞두고 한 "돈 없다고 봐줬더니…"란 드립을 쳤다가 넥센 팬들에게 죽어라 까였다. 까이는 이유는 '디스에 대해 카운터를 쳐도 칠 게 따로 있지 남의 구단 재정상황(게다가 넥센은 그 상황으로 인해 너무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으로 디스하다니 제정신이냐' 는 게 대부분. 고참이 이따위니까 과연 DTD라는 등등…. 정작 LG는 이날도 넥센에게 승리를 조공하며 넥센을 단독 1위에 올려주고 자신들은 5위로 내려갔다(…). 덕분에 본인 모양새만 굉장히 안 좋게 됐다. 원래는 기사가 있었으나 기사가 뜨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수정 관련 기사로 바뀌었다.

결국 2012 시즌을 252타수 70안타 타율 .278 홈런 1개 타점 37점 출루율 .346 장타율 .321 OPS .667로 시즌을 마감했다.
나이가 나이다 보니 장타력이 눈에 띄게 준 모습도 보이고, 1루 수비도 많이 쇠퇴하였다.

2.3.2. 2013 시즌

출장 기록이 없다시피하다. 얘기에 의하면 선수로 뛰는 건 거의 접었고, 육성군에서 코치 수업을 받고 있다고 한다. 2013년 문학 야구장에서 열렸던 개막 2연전에서 2타석만 뛰었고, 2013년 막바지에 비선수로 선수들과 동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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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5일 두산전을 마치고 은퇴식을 열었다. 그 날 LG 트윈스두산 베어스꺾고 플레이오프에 직행하여 의미 있는 경기가 되었다.

3. 지도자 경력

현역 은퇴를 선언한 후 2013년 12월 30일 KBO에서 주관하는 프로야구 지도자 마스터스 시험에 합격해서 정식으로 지도자 자격을 취득, 2014년부터 LG 트윈스의 잔류군 담당 배터리 겸 타격코치로 부임하게 되었다.[14] 한동안의 포수 경력 때문인지, 배터리코치를 겸임하게 되었다.

그리고 LG 팬들은 2군 감독으로 선임되어 사실상 LG 2군 야수들의 타격을 총괄하게 된 김무관의 코칭 기술을 최동수가 스펀지처럼 흡수하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나 2018 시즌의 주변 평가와는 상반되게 2018년 10월 19일 새 단장으로 차명석 해설이 임명됨과 동시에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았다. 팬들은 좀 이해하지 못하는 분위기.

2019년에는 팀 선배였던 김영직 휘문고 감독의 부름을 받고 휘문고등학교 야구부 인스트럭터를 맡게 됐다.

4.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94 LG 트윈스 1 1 .000 0 0 0 0 0 0 0 0 .000 .000
1995 방위병으로 복무
1996 51 85 .200 17 5 0 2 6 9 0 6 .329 .253
1997 54 112 .223 25 5 2 7 21 14 0 15 .491 .310
1998 21 57 .158 9 1 0 0 5 6 0 2 .175 .186
1999 17 23 .217 5 2 0 0 4 2 0 2 .304 .280
2000 29 43 .256 11 1 1 2 7 5 0 3 .465 .304
2001 94 147 .293 43 9 0 6 31 17 1 22 .476 .380
2002 106 268 .243 65 13 0 4 31 28 3 26 .336 .306
2003 91 212 .259 55 11 0 2 26 12 1 24 .340 .331
2004 123 381 .257 98 22 0 15 57 49 1 25 .433 .300
2005 77 210 .319 67 17 0 6 36 20 1 17 .486 .368
2006 54 100 .190 19 2 0 1 13 5 0 8 .240 .245
2007 125 431 .306 132 23 0 12 58 49 1 53 .443 .378
2008 110 381 .265 101 15 0 14 62 32 0 40 .415 .331
2009 108 338 .296 100 16 1 13 65 43 1 38 .465 .360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10 SK 와이번스 56 108 .204 22 2 0 3 13 13 0 10 .306 .265
2011 80 181 .304 55 8 0 2 30 16 0 13 .381 .345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12 LG 트윈스 94 252 .278 70 8 0 1 37 20 0 29 .321 .346
2013 2 2 .000 0 0 0 0 0 0 0 0 .000 .000
통산 19시즌 1293 3332 .268 894 160 4 90 502 340 9 333 .400 .331

5. 기타

권준헌, 김한수와 광영고등학교 동창이었으며, 김한수와는 중앙대학교를 같이 다녔다.

문서 상단의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이호준도플갱어 수준으로 닮았다! 야구 관계자들도 헷갈리는 듯. 기사 솩갤러들도 헷갈려 한다.# 심지어 이호준 딸도 최동수를 보고 "아빠!"하고 달려갔다는 일화도 있다. 왠지 봉중근도 얼핏 닮은 듯하다….

파일:attachment/최동수/dongsu_with_juchan.jpg
기자의 능욕.jpg 김주찬ANG? 그와중에 삼성 의문의 1패


[1] 1990학번[2] 동~수~동~수~최동수!최동수!×2[3] (빰빰빰 빠바바밤) S!K! 최동수!×2[4] 빠밤 최! 빠밤 동! 빠밤 수! 한!방!x2[5] 앞서 언급한 동수옹의 오타로 생긴 별명(...)[6] 극단적인 당겨치기 버릇에서 생긴 별명.[7] 당겨쳐당 당수 별명과 연계된다. 유사별명으로 이 분의 별명인 2땅선생(...)이 있다.[8] 정말 두 사람이 비슷하게 생겼다. 심지어 이호준의 딸이 두 팔을 벌린채 "아빠~"를 외치면서 뛰어갔는데 하필이면 최동수에게 안기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9] 사실 전일수 주심의 엄청난 편파판정때문에 SK가 득점한 것이고 우규민은 실수로 모창민의 몸을 맞춘것에다가 모창민은 몸에 맞는 순간에 배트를 더 갖다 대는 동작을 취했다. 누가봐도 명백한 스윙동작이었으나 전일수 주심이 사구 처리시키고서 우규민을 어거지로 퇴장시킨 것이다.[10] 참고로 이 경기에서 최동수는 지명타자로 선발 출장했다. 그래서 선택된 듯.[11] 만으로는 38살.[12] 2012년 윤요섭으로 개명.[13] 김성근 자서전에 해당 내용이 나온다. 자기가 제시한 훈련 스케줄을 유일하게 전부 소화한 선수는 최동수였으며, 훈련 기간에 1일 5천번의 스윙을 실제로 해냈다고 한다. 5,000번을 휘두를 동안 방망이를 놓질 않아 스윙을 끝내면 배트를 잡은 손이 굳어서 펴지지 않아 누군가 대신 손가락을 펴 줘야 배트를 놓을 수 있었다고. 최동수 선수도 당시에는 훈련이 끝나면 토하는 것 외에는 할 게 없었다고 말했다. 그 노력은 뒤늦게나마 결실을 맺게 된다.[14] 여담이지만 이 시험을 떨어지면 3년 간 지도자 시험 응시를 못 하는 데다가 덕아웃에 있을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늦게까지 선수 생활을 해서 적지 않은 나이에 초보 코치가 된 최동수의 입장에서는 반드시 붙어야 할 시험이기도 했다. 본인도 이 시험 대비한다고 힘들어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