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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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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경
(1986~1989)
김상엽
(1989~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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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트윈스 등번호 60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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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
김상엽
(2000~2001)
김세중
(2002~2003)
{{{#fff [[NC 다이노스|NC 다이노스]] 등번호 79번}}}
팀 창단 김상엽
(2012~2019)
조영훈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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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김상엽 감독.jpg
경일대학교 야구부 No.
김상엽
金相燁 | Kim sang-Yeop
출생 1970년 5월 11일 ([age(1970-05-11)]세)
대구광역시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대구수창초 - 경복중 - 대구고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 입단 1989년 고졸 연고구단 자유계약 (삼성)
소속팀 삼성 라이온즈 (1989~1999)
LG 트윈스 (2000~2001)
지도자 영남대학교 야구부 투수코치 (2003~2010)
NC 다이노스 투수코치 (2012)
NC 다이노스 1군 불펜코치 (2013~2016)
NC 다이노스 1군 투수코치 (2017)[1]
NC 다이노스 2군 투수코치 (2017)[2]
NC 다이노스 잔류군 투수코치 (2018~2019)
경북고등학교 야구부 투수코치 (2020)
경주고등학교 야구부 감독 (2021~2022)
경일대학교 야구부 감독 (2022~)
1. 개요2. 선수 경력3. 피칭 스타일4. 여담5. 은퇴 이후6. 연도별 주요 성적7.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삼성 라이온즈 소속이었던 투수로 등번호는 30번. 김시진 이후 90년대의 삼성 라이온즈를 대표하는 투수 중 한 명으로 박충식, 성준(야구선수)과 함께 배영수가 등장하기 이전 삼성의 에이스 투수였다.

별명은 '만딩고'[3], 격년제 에이스. 장원삼이 짝수 해에만 강했다면 이 선수는 홀수 해에만 강했다. 특히 해태에게 유독 강해 '달구벌 폭격기'라는 별칭도 있었다.

1990년대 초중반, 우리나라에서 1년에 몇 차례나 최고구속 150km/h가 넘는 이른바 광속구를 던진 세 명[4]중 한 명이다.[5] 이승엽, 양준혁 등과 함께 1990년대 삼성 라이온즈 선수단의 주축이었으며, 현대 유니콘스의 에이스 투수였던 정민태와는 아마추어 시절부터 라이벌 관계였다.

2. 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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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피칭 스타일

주무기는 최고 152km의 묵직한 패스트볼과 130km대의 파워 커브로, 전형적인 정통파 강속구 투수였다.

과거에 대한 과장과 허풍이 섞이면서 1990년대에도 150km를 던지는 투수가 흔했던 것처럼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1990년대 중반까지 시즌 투구 최고구속 순위를 매기면 145km를 넘는 투수가 채 6~7명에 불과한 시절이었다. 저때 150km는 지금 기준으로 160km에 가까운 공이었다.
이상훈이 150km를 펑펑 뿌린 것처럼 알고 있었던 사람들이 많으나, 실제 이상훈은 프로 시절 간간히 150km를 던졌을 뿐[6] 마무리로 뛸 때도 시즌 최고구속은 147~8 정도였으며 구대성이 부상에서 본격적으로 복귀한 96년 153km를 던져 세간의 화제가 되었다. 오히려 LG에서 구속이 가장 빠른 건 김태원으로 150을 쉽게 던지는 것은 김태원[7]이었다. 그래서 91년도에 김태원, 박동희와 함께 마음먹으면 150km를 넘길 수 있던 몇 안되는 투수라고 볼 수 있다.

또한 당시 선동열의 경우도 어깨이상의 조짐과 함께 팔의 각도가 내려오며 시즌 최고구속이 146~7km정도까지 떨어져 있었고, 1992년을 결국 어깨건초염으로 통째로 날린다. 그러다 1993년에 마무리(지금으로 치면 중무리)로 복귀, 153km의 광속구를 선보이며 재기에 성공했다.

또한 그의 파워 커브는 그 당시 구사하는 투수가 거의 없어서 마구급의 위력을 보였다.[8]
당시 삼성은 메이저리그를 통해 기술이전을 시도했는데 마티 디메리트 코치를 영입하며 국내에 최초로 파워커브와 투심을 전수했고 그 수제자가 바로 김상엽이었다.

당시 각 팀의 웬만한 선발투수들은 최고구속 140km를 채 못던지는 선수가 다수였고, 보통 제구력이 뒷받침되면 135~138km 정도의 패스트볼 구속으로도 충분히 타자를 상대해 왔는데, 김상엽의 파워커브는 최고 137km까지 나올 정도로 웬만한 투수의 패스트볼만큼의 속도로 날아오다 수직으로 뚝 떨어지는 그야말로 마구였다.

그 위력을 가장 잘 보여준 경기가 1993년 LG와의 플레이오프 1차전으로, 파워 커브가 워낙 잘 들어가서 LG 타자들은 거의 공략하지 못하였고 결국 겨우 볼 93개로 1안타 완투승을 거두었다.1993년 플레이오프 삼성 vs LG 1차전 관련 뉴스 영상. 1990년대 초반에는 패스트볼 파워 커브, 투피치로 우직하게 던졌지만, 허리 부상이 심화된 1990년대 중반에는 파워 커브의 조준점을 낮춰 포크볼처럼 사용해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또한 우리나라에서 투심 패스트볼을 거의 처음으로 실전에서 사용한 선수인데 이 역시 마티 코치에게서 배운 것이다.
또 투심에서 손가락을 더 벌려 스플리터처럼 사용하기도 했는데 이게 선수생명을 갉아먹네 마네 하며 당시에는 스포츠신문 1면에 나는 등 큰 논란이 되었다.
미국에서 개발된 신구종들이 우리나라에 익숙하지 않아서 투심이나 스플리터를 사용하는 투수[9]가 거의 없었기에 벌어진 촌극이었다.
마티 코치는 당시 삼성의 에이스이자 체격조건이나 힘이 미국선수 못지 않았던 김상엽을 특히 아껴서 투심, 파워커브등을 아낌없이 전수했다. 다른 선수들은 힘이나 악력문제로 제대로 소화해내지 못했던 것도 있었다.

선수시절 마운드에서 잘 흥분하는 것이 단점으로 꼽히기도 했다. 실제로 야수의 에러가 나오거나 볼 판정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얼굴이 붉어지면서 화 난 기색을 보이기도 했다. 진짜 열받으면 혼자 공을 공중에 살짝 던졌다가 받기도 하였다.

또한 유리몸으로 인해 격년제 에이스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꾸준히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기도 했는데 부상 사유가 어처구니 없게도 1991년 시즌을 앞두고 전지훈련때 늦게 들어온 입단동기가 실수로 김상엽의 발을 세게 밟아 큰부상을 입은게 결정타였다고 한다. 훗날 김상엽은 아직도 그 일이 열이 받았었는지 룸메이트를 직접 손봐줄까 하다 참았다.

4. 여담

1990년대에는 당시 보기 드물게 야구 선수로서 삼성물산의 패션 사업부[10]에스에스패션의 신사복 빌트모아 TV CF에도 출연하였을 정도로 큰 인기를 구가하였으며, 삼성 라이온즈에서 최초로 연봉 1억원을 돌파한 한국 출신 선수이기도 했다.[11] 정확히 말하면 1996년 선동열 이후 7명의 억대연봉자가 등장했는데 그 중 한 명이다.[12] 그만큼 당대 삼성에서 김상엽이 갖는 입지와 상징성은 컸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 모르는 사실이지만, 이병규의 홈런성 타구를 강동우가 캐치하다가 펜스 사이의 틈새에 끼어서 골절상을 입었던 1998년 플레이오프 2차전 당시 마운드에 있었던 투수가 김상엽이었다. 그리고 그 경기는 김상엽의 마지막 포스트시즌 경기가 되었다.

선발로 등판했을 때 1회 초구의 스트라이크 여부가 그날 경기를 좌우할 정도로 매우 중요했다고 한다. 그만하면 상대 1번 타자는 1회 초구를 노릴 법도 하지만, 전성기 때는 볼이 워낙 좋았으니...

한 가지 불명예 기록이 있는데, 투수 한 경기 최다 실책이 그 기록이다.1990년 4월 8일 인천 태평양 전에서 3실책을 저질러 작성했는데, 금민철이 2014년 6월 25일 타이를 작성하면서 재발굴되었다.

5. 은퇴 이후

은퇴 이후에는 야구와 잠시 거리를 두고 살다가, 2003년 1월 권영호 당시 영남대학교 감독의 제안으로 영남대학교 야구부 투수코치로 영입되어 2010년까지 재임했다. 2011년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이승엽, 박찬호가 소속된 오릭스 버팔로즈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았다.[13]

2011년 10월 10일 최일언과 함께 NC 다이노스 코치로 부임하였다. 2011년 인터뷰 대구고등학교 후배이기도 한 이재학 등의 NC의 신예 선수들에게 구질을 전수하는 등 1군 불펜코치로 활동했다. 2017년에는 잠시 1군 투수코치를 맡았으나, 토종 선발진의 부진 책임을 지고 5월 20일 2군 투수코치로 내려갔다. 2018년부터 2019년까지는 NC 다이노스 D팀(재활군) 투수코치를 맡았다.

2020년 경북고등학교 야구부 투수코치로 부임했고, 시즌 종료 후 김용국 감독의 후임으로 경주고등학교 야구부 감독을 맡았다.

2022년부터 경일대학교 야구부 감독으로 재임 중이다.

아들한테 선수들을 못가르쳤다고 구박받았다 카더라.[14]

6.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출장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1989 삼성 24 57⅓ 2 5 0 - 0.286 4.40 58 3 59 31 37 28 2.01
1990 44
(3위)
160⅓ 12 6 18
(3위)
- 0.667 2.81 114 12 90 110 60 50 1.20
1991 36 99⅓ 6 6 7 - 0.500 4.62 87 10 73 62 60 51 1.55
1992 41 144 8 12 15
(2위)
- 0.400 4.19 125 9 75 103 71 67 1.36
1993 36 181⅓ 13 6 8 - 0.684 2.58 150 8 82 170
(1위)
64 52 1.25
1994 7 24⅔ 2 2 0 - 0.500 4.74 23 3 17 21 13 13 1.58
1995 27 191⅔
(5위)
17
(2위)
7 0 - 0.708
(3위)
2.30
(4위)
140 12 75 132 53 49 1.06
1996 8 21 3 1 0 - 0.750 3.86 11 2 18 22 9 9 1.24
1997 25 150⅔ 12 6 1 - 0.667 3.35 128 12 73 82 59 56 1.26
1998 8 36⅔ 3 3 0 - 0.500 5.40 38 5 23 17 24 22 1.50
1999 1군 기록 없음
연도 소속팀 출장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00 LG 2 6⅔ 0 2 0 0 0.000 10.80 12 1 6 2 8 8 2.70
KBO 통산
(11시즌)
258 1073⅔ 78 56 49 0 0.582 3.39 886 77 591 752 458 405 1.32
완투, 완봉기록
연도 완투 완봉
1990 2완투 0완봉
1991 1완투 0완봉
1992 5완투 1완봉
(10위)
1993 6완투 3완봉
(5위)
1995 9완투
(3위)
2완봉
(6위)

7. 관련 문서


[1] ~5월 19일[2] 5월 20일~[3] 1975년에 개봉한 명작영화로 흑인노예를 다룬 영화다. 얼굴이 검은 편이라서 이런 별명이 붙었으며, 해당 별명은 마구마구에서도 전용 잠재력으로 구현되어 있다. 만딩고라는 단어 자체로는 만딩카족을 의미한다.[4] 마무리 시절의 선동열, 박동희, 그리고 김상엽.[5] 공교롭게도 세 명 다 선수 또는 감독으로 삼성에 몸담았던 적이 있다.[6] 이상훈이 딱 한 차례 150km를 던졌다는 말도 있는데 이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전성기 시절 종종 최고 151km를 기록했던 것을 LG팬들은 잘 알고 있다. 일반적으로는 148km정도가 최고이나 150km도 자주 찍었다.[7] 김태원 본인이 90년초반 늘상 하던 이야기가 한국야구에 150을 던지는 투수가 세 명있는데 선동열, 박동희 자신이라고 했다. 하지만 삼성의 김상엽과 LG의 김태원은 최고 152 정도로 비슷한 속구를 던졌다.[8] 구사하기 상당히 어려운 구질로, 한국프로야구를 통틀어서 파워커브를 제대로 의미있게 구사한 투수는 김원형, 이대진 그리고 요즘의 김진우 정도이다. 박동희와의 인터뷰에서 김상엽은 지도하던 선수들에게 전수하려고 노력하였으나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다고 한 바 있다.[9] 스플리터를 한국에 최초로 사용한 것은 장명부인데 당시 대학생이던 차동철이 어깨너머로 배워 프로에서 써먹고 문희수에게 전수했다. 이는 차동철이 유튜브 전설의 타이거즈 영상에서 직접 밝힌 내용.[10] 에스에스패션은 1999년 제일모직에 합병됐다.[11] 김상엽 이전 삼성 구단에서의 억대 연봉자는 김일융(1986년, 1억 1250만원), 김기태(1987년, 1억 2천만원)가 있었으며 모두 재일동포 선수였다.[12] 나머지 6명의 선수는 김용수, 이상훈, 김상진, 김기태, 조계현, 장종훈으로 모두가 소속팀 및 당대 리그를 대표하는 선수들이었다.[13] 박찬호가 오릭스와의 계약 조건 중 하나가 대한민국에서 뛰고 있는 아마추어 코치 중 한 명을 오릭스에서 지도자 연수를 해 달라는 것이었고, 이에 여러 후보군 중 최종적으로 김상엽이 선택되었다. 이로 인해 김상엽은 박찬호와의 인연을 맺게 되고, 그 인연은 후에 박찬호의 공주고 선배인 김경문 감독이 있는 NC 다이노스의 창단 투수코치로 임명되는 것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김상엽은 삼성시절에도 김경문과 3년간 한솥밥을 먹은 적이 있다.[14] 의외로 결혼을 늦게 한 편이다. 막 코치 생활을 시작할 무렵에 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