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4-18 01:19:08

홍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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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움 히어로즈 No.78
홍원기(洪源基 / Won-ki Hong)
생년월일 1973년 6월 5일
출신지 충청남도 공주시
본관 남양 홍씨 당홍계[1]
학력 공주중동초-공주중-공주고-고려대
포지션 3루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96년 1차 지명 (한화)
소속팀 한화 이글스 (1996~1999)
두산 베어스 (1999~2005)
현대 유니콘스 (2006~2007)
지도자 넥센-키움 히어로즈 1군 수비코치 (2009~ )
프런트 우리 히어로즈 전력분석관 (2008)
한국시리즈 우승 반지
2001
키움 히어로즈 등번호 78번(2009~)
김정수(2008) 홍원기(2009~) 현직
2001년 한국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 MVP
양대리그 홍원기(두산 베어스) 최동수(LG 트윈스)

1. 소개2. 선수 경력3. 지도자 시절4. 기타5. 통산성적

1. 소개

前 프로야구 선수이자 현 키움 히어로즈 1군 수비코치. 한화 이글스두산 베어스를 거쳐서 현대 유니콘스에 은퇴한 내야수로 주로 내야 유틸리티 백업으로 활동했다.

2. 선수 경력

2.1. 한화 이글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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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포토로)

박찬호, 박재홍, 정민철, 조성민, 임선동, 염종석, 송지만, 이영우, 박종호. 차명주, 김종국, 최기문, 손혁 등과 함께 한국 야구 최고의 황금세대로 꼽히는 전설의 92학번중 한명이었다.

박찬호, 손혁공주고 동기생으로[2] 고려대학교를 거쳐서[3], 1996년 1차 지명으로 한화 이글스에 입단했다. 한화의 주전 유격수로 기대를 모았지만, 결국 3루수로 뛰게 되었다. 하지만 파워 포지션인 3루수치고는 거포도 아니고 그렇다고 정교한 3할 타자도 아니고 그저 2할 6푼 ~ 2할 7푼 정도의 어중간한 타율을 기록하는 타자라서 확실하게 주전을 꿰차지는 못했다. 하지만 클러치 능력은 어느정도 있어서 3루수 포지션을 반 고정으로 맡았으며 타선은 주로 하위타선에 기용되었다. 선발 출장을 하지 않을 때에는 대타로도 종종 기용되었다. 화끈한 타격과 세밀한 주루플레이로 한화의 주축으로 떠오른 입단 동기인 이영우송지만에 비해서는 다소 아쉬운 부분이다.

2.2. 두산 베어스 시절

파일:external/photo.isportskorea.com/20010515185823176A5.jpg
(출처: 포토로)

1999 시즌 중 전상렬과 묶여서 김경원과의 2:1 맞트레이드를 통해서 두산 베어스로 이적했다. 그러나 3루에는 김동주, 2루에는 안경현이 버티고 있는 두산의 내야진에선 좀처럼 자리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내야 유틸리티 백업으로 쏠쏠한 활약을 보여주면서 입지를 굳히기 시작했다. 1999년엔 박정태의 31경기 연속안타 행진을 끝낸 다이빙 캐치를 선보이기도 하였다.[4] 2000년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는 3연패를 당해 팀 분위기가 어두웠지만 선취점을 얻는 안타를 쳤고 그 후 팀은 3연승을 거두어 7차전까지 이끌고 갔다. 2001년 포스트시즌에선 주전 유격수인 김민호가 부상으로 이탈하자, 그 자리를 메우면서 수비 면에서는 아주 완벽하지는 않았어도 공격면에서 맹활약하면서 2001년 준 PO MVP에 오르는 등, 2000년과 2001년 두산에서 나름대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5]

2.3. 현대 유니콘스 시절

파일:external/photo.isportskorea.com/20070330180754018.jpg
(출처: 포토로)

그 뒤로도 준수한 백업으로 활약하다가 2005년 FA 신청을 하였다. 하지만 두산 베어스는 당시 장원진-안경현-손시헌-김동주 라는 내야진이 있었고, 홍원기는 준수한 백업이긴 하지만 점차 나이가 들어 노쇠화 기미가 보인다고 판단해서 굳이 잡으려고 하지 않았으며 이로 인해 하마터면 FA 미아가 될 뻔도 했다. 다행히 사인 앤드 트레이드의 형식으로 장교성을 상대로 트레이드되며 현대 유니콘스로 건너가게 된다. 결국 몇 경기에 못 나왔으며, 2008시즌 초에 박노준 단장에게 전력분석원 제의를 받고 은퇴했다.

한편 현대 팬들과는 여러가지로 감정이 좋지 못했는데, 현대만 만나면 타이론 우즈, 장원진과 더불어 날아다녔을 정도였기 때문이다.[6] 더군다나 2001년 플레이오프에서도 맹활약을 해서 현대를 꺾고 한국시리즈까지 올라갔으니...

3. 지도자 시절

키움 히어로즈 코치진의 양대 철밥통. 키무원

은퇴 후에는 넥센 히어로즈의 전력분석원을 거쳐서 2군 수비 코치로 부임했다. 2011시즌을 앞두고 김성갑 1군 수비코치가 수석코치로 자리를 옮기자, 1군 수비 코치로 보직 이동했다. 2011시즌부터 2015시즌 현재까지 꾸준히 1군 수비코치를 맡고 있지만, 눈에 띄는 성과가 없었다. 팀이 암흑기 탈출의 가능성을 보여준 12시즌 이후 결정적인 순간마다 내야수비가 발목을 잡았지만, 나쁘지는 않았다.

팀 DER수치를 보면 넥센은 항상 하위권이며, 12시즌 이후로는 오히려 매년 퇴보하고 있다. 내야수비진 한명 한명의 이름값은 국가대표 수준이지만, 실제 내야수비 조직력이 좋다고 보긴 힘들며 페넌트레이스나 포스트시즌의 결정적인 고비마다 불안한 수비가 팀을 무너뜨리곤 했다. 그래도 죄만호보다는 나은편이다. 그래도 강정호가 버텨주던 14시즌까지는 표면화되지는 않았지만 강정호가 피츠버그로 떠나고 서건창이 부상후유증으로 수비가 무너진 2015시즌 들어 히어로즈 수비의 실체가 드러나며 까임의 빈도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2015년 히어로즈의 수비율은 0.980으로 뒤에서 세번째이며, 평균 대비 수비 승리 기여라는 스탯은 뒤에서 9위이다.(포지션 조정 포함) 그럼에도 매년 코치진에 잔류하기 때문에 철밥통이라고 불리고 있다.

2015년도 가장 잘한 일로는 김하성을 키워낸 일같다. 그리고 항상 선수들이 주변에 많은 코치인걸 보면 성격이 좋고 친근한 지도자로 활동하고 있다.

2017년 그나마 수비를 잘하던 박정음부터, 무릎부상이후로 수비력이 저하된 서건창도 미숙한 플레이를 종종 보여주면서 다시 까임의 지분이 늘고 있다.

2018년 스프링캠프부터 박찬호를 임시 인스트럭터로 불렀던 사람이라는 사실이 알려졌다. 농담삼아서 "식사 2끼로 수락을 받았다."라고 했다고.##

4. 기타

  • 선수시절때부터 별명이 원기옥이었다. 처음엔 이 별명에 대해 심리적 부담감을 느껴져서 홈런포 못날리면 욕먹을까봐 꺼림직스러웠지만, 세월이 지나고나서 예전부터 동료와 팬들과 오랫동안 정들었던 별명이었기에 익숙해졌다고한다. 이미 별명은 원기옥으로 아예 굳혀진 듯...
  • '넥센팬이 선수에게 준 초콜렛을 선수몰래 빼돌려서 딸에게 선물했고 그걸 아내는 SNS에 인증하는 병크를 저질렀다'는 오해가 있었다. 당시 넥센 히어로즈 갤러리를 비롯한 넥센 팬덤에서 들고 일어났었는데 이후 딸의 sns에 이는 사실이 아니고 그냥 한 투수가 조공받은 물품을 두고 간 걸 가져왔다는 말로 해명했다.

5. 통산성적

역대기록
연도소속팀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96 한화 이글스 123 382 .262 100 20 0 9 47 46 5 53 .385 .347
1997 90 253 .265 67 13 1 4 30 21 1 20 .372 .318
1998 28 63 .222 14 2 0 2 9 6 1 7 .349 .292
연도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99 두산 베어스 98 118 .161 19 6 0 4 13 14 0 13 .314 .242
2000 113 221 .271 60 8 2 5 30 31 2 31 .394 .360
2001 84 242 .264 64 13 1 6 42 34 1 34 .401 .353
2002 109 170 .171 29 6 0 1 11 17 1 17 .224 .242
2003 124 384 .273 105 13 1 8 42 43 0 57 .375 .365
2004 101 160 .213 34 5 0 2 18 16 0 22 .281 .303
2005 92 139 .230 32 6 1 3 22 17 0 18 .353 .316
연도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6 현대 유니콘스 56 148 .270 40 6 0 4 20 16 0 15 .392 .335
2007 25 28 .071 2 0 0 0 0 2 0 3 .071 .161
통산(12시즌) 1043 2308 .245 566 98 6 48 284 261 11 270 .355 .326


[1] 남양 홍씨 당홍계 36세손 '基'자 항렬, 성우 홍범기의 친척뻘에 해당된다.[2] 박찬호와 손혁, 홍원기 세 사람은 초등학교 시절 부터 야구를 같이한 죽마고우이다. 참고로 공주중학교 2학년 때까지만 해도 박찬호가 3루수, 홍원기가 투수였으나 박찬호가 투수로 전향하자 홍원기가 박찬호 대신 3루수를 보게 되서 홍원기가 타자로 전향하게 되었다. 당시에 박찬호의 투수 전향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특히 투수들의 학부모의 반대가 더욱 심했는데, 더군다나 홍원기는 당시 공주중학교의 에이스였다. 홍원기 본인이나 부모로써는 그야말로 날벼락을 맞게된 셈이라 자연 시끄러울 수밖에 없었고, 결국 세 사람의 졸업 이후 감독은 경질되고 야구계를 떠나게 된다.[3] 고교 동기인 손혁과 함께 진학했으며 조성민, 김종국과 같은 92학번이다.[4] 이 때문에 홍원기는 직후 롯데팬들에게 걸쭉한 욕설을 들어야 했다. 자세한 내용은 마산아재 문서 참조. 하지만 당시 박정태 본인은 오히려 홍원기 때문에 자신의 기록이 더욱 빛날 수 있었다면서 고맙게 여겼다고 한다.[5] KBS N SPORTS 더 레전드 "믿음으로 이룬다 국민감독 김인식"편을 보면 자세히 나온다. 다만 이때는 배경이 PO. 1차전 1:1 동점 상황에서 결정적인 실책으로 분위기를 현대에 내어준 후 5:1로 경기가 종료된 후 홍원기는 메일로 욕을 수십 통 받고 새벽 4,5시까지 못 자고 있었는데 그 다음 날 자신도 모르게 '아 오늘 선발 라인업에 안 들면 어쩌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김인식은 특유의 믿음의 야구를 발휘, 그냥 유격수 9번타자로 넣었다고. 그에 감명받아서 무엇인가라도 보답할 생각이었나 홈런을 계속 때렸다고. 김인식 특유의 믿음의 야구를 잘 보여준 사례로 나온다.[6] 2000년 한국시리즈에서 두산이 우승했다면 MVP는 홍원기가 받았을 것이 유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