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30 22:55:58

손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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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f00> 1982 1983~1984 1985 1986 1987
이길환 하기룡 정삼흠 오영일 김건우
<rowcolor=#ffff00> 1988 1989 1990 1991 1992
김용수 김기범 최일언 김용수 김기덕
<rowcolor=#fff> 1993~1994 1995~1996 1997~1998 1999 2000~2001
김태원 이상훈 김용수 손혁 해리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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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자니오 이승호 장문석 최상덕 박명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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켈리 플럿코 켈리 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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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혁의 수상 경력 /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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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코치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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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fff> 1대 2대 3대
이광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8)
김시진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9~2012)
감독대행
김성갑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2)
염경엽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3~2016)
<rowcolor=#ffffff> 4대 5대 6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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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2019)
손혁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20)
감독대행
김창현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20)
홍원기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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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트윈스 등번호 38번
김원식
(1995)
<colcolor=#fff> 손혁
(1996~1999)
김광수
(2000~2004)
해태/KIA 타이거즈 등번호 47번
김정수
(1986~1999)
<colbgcolor=#09081c> 손혁
(2000~2001)
가내영
(2002~2003)
KIA 타이거즈 등번호 38번
오우진
(2001)
손혁
(2002)
소소경
(2003~2004)
두산 베어스 등번호 91번
김평호
(1996~1998)
손혁
(2003~2004)
이주영
(2008)
넥센 히어로즈 등번호 80번
김동수
(2010~2014)
손혁
(2015~2016)
마정길
(2018~2020)
SK 와이번스 등번호 83번
허웅
(2017)
손혁
(2018~2019)
박정권
(2020~2023)
키움 히어로즈 등번호 83번
노병오
(2019)
손혁
(2020)
노병오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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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손혁단장.jpg
<colbgcolor=#ff6600><colcolor=#fff> 한화 이글스 단장
손혁
孫奕 | Son Hyuk
출생 1973년 6월 25일[1] ([age(1973-06-25)]세)
충청남도 공주시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공주중동초등학교 (졸업)
공주중학교 (졸업)
공주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사범대학 (체육교육학 92 / 학사)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교육학[2] / 석사[3])
신체 186cm, 85kg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 입단 1996년 2차 1라운드 (전체 7번, LG)
소속팀 LG 트윈스 (1996~1999)
해태-KIA 타이거즈 (2000~2002)
두산 베어스 (2003~2004)
볼티모어 오리올스 산하 마이너 (2007)
[ 펼치기 · 접기 ]
노폭 타이즈 (2007) / AAA
지도자 한화 이글스 투수 인스트럭터 (2009)
넥센 히어로즈 1군 투수코치 (2015~2016)
SK 와이번스 1군 투수코치 (2018~2019)
키움 히어로즈 감독 (2020)[4]
프런트 한화 이글스 전력강화 코디네이터 (2022)
한화 이글스 단장 (2022~)
해설위원 MBC SPORTS+ 야구 해설위원 (2012~2014, 2017)
소속사 스포스타즈[5]
링크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가족 아버지 손재정
배우자 한희원, 아들

1. 개요2. 선수 경력3. 연도별 주요 성적4. 해설자 경력5. 지도자 경력6. 프런트 경력
6.1. 한화 이글스 전력강화 코디네이터6.2. 한화 이글스 단장
7. 평가8. 기타9.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야구인이자 現 한화 이글스 단장.

선수 출신임은 물론 코치, 프런트, 해설위원, 감독 그리고 지금 맡고있는 단장직 까지 야구인으로써 할 수 있는 보직은 두루 다 해본 경력을 가지고 있다. 같은 경우로 양상문, 염경엽, 이숭용이 있다.

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

공주중동초, 공주중, 공주고 출신으로 박찬호, 홍원기가 동기다.[6] 공주고 시절 에이스로 활약하여 박찬호보다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알려져 있으나 아마야구 동호인들의 말로는 상당부분 과장됐다고 한다. 왜냐하면 대학진학이 걸린 8강전이나 전국구 팀과의 승부에서 등판은 대부분 박찬호가 맡았기 때문.[7] 거기다가 박찬호와 달리 국가대표로 발탁된 적도 없다. 공주고 졸업 후 고려대학교 체육교육학과(92학번)에 입학했지만, 동기 조성민과 1년 후배 손민한에 밀려 등판 기회를 많이 잡지는 못했고 프로 진출이 다가온 4학년 때나 되어서야 간신히 기회를 잡을 정도였다.

하지만 대학야구선수권대회 결승전에서 한양대에 맞서 승리투수가 되는 등 깜짝 활약을 펼치고, 거기에 마침 벌어지고 있던 현대 피닉스의 스카우트 파동에 힘입어 당시로선 엄청난 계약금 2억 3,000만 원에 LG 트윈스에 2차 1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2.2. LG 트윈스

파일:lg 손혁.jpg

첫해는 3경기 출장에 그치며 그해 1차 지명자 이정길과 세트로 먹튀 취급을 당했지만[8], 다음 해인 1997년 급성장세를 보이며 선발진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이어 1998년 11승, 1999년 10승을 올리며 LG의 주축 선발투수로 전성기를 보냈다. 다만 1998년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이숭용에게 홈런을 허용해 패전 투수가 된게 아쉬울 따름.

2.3. 해태-KIA 타이거즈

파일:기아 손혁.jpg

2000 시즌이 개막하기 직전인 3월 양준혁 vs 손혁 + 현금 5억 조건으로 해태 타이거즈로 트레이드 되었다. 여기서부터 손혁의 선수 인생이 꼬이기 시작했다. 트레이드 다음날 해태 선수단 합류를 거부한 뒤 양쪽 구단에 은퇴를 선언하며 선수 의향이 반영되지 않은 트레이드에 반발[9][10]했고, 결국 4월 해태는 손혁을 임의탈퇴 공시했다.[11]

돌연 은퇴를 선언한 후 야구계와 연락을 죄다 끊고 미국으로 건너가 유학을 계획했으나, 고려대 선배이자 LG 트윈스 시절 같이 뛰던 이상훈의 따끔한 충고를 듣고[12] 은퇴 의사를 철회, 같은 해 11월 김응용 감독 후임으로 임명된 김성한 감독의 설득에 따라 우여곡절 끝에 임의탈퇴가 해제되며 해태로 복귀했으나 좋은 성적을 거두지는 못했다. 2001년 3월 25일 친정팀 LG와의 광주 시범경기에 등판했으나 패전투수가 되었는데, 이 경기 후 어깨 부상을 당해 이 경기가 손혁이 해태 유니폼을 입고 출전한 처음이자 마지막 경기가 되고 말았다. 2002년 8월에는 어깨 수술까지 받았다.

결과론이지만 손혁이 해태로 갑작스럽게 트레이드당했던 경험은 먼 훗날인 23년 후 한화 단장으로서 김강민의 마음을 가장 잘 이해하게 된 밑거름이 되었다.

2.4. 두산 베어스

파일:0391532.jpg
두산 베어스 시절.[13]

2003년 1월 16일 외야수 김창희와 함께 진필중을 상대로 두산 베어스에 현금 트레이드되어 그 해 4승을 올리는 등 재기를 위해 고군분투했지만, 2004년에는 2경기(선발 1경기)에 나와 부진한 끝에 그 해 4월 21일에 돌연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은퇴 선언 후 두산에서 임의탈퇴 공시되었고, 아내 한희원을 뒷바라지 해줄 겸 유학을 위해 미국으로 건너가게 되었다.

투수로선 정밀한 제구를 바탕으로 타자와의 수 싸움을 유도하는 타입이었다. 구속이 느려서 피홈런 개수가 꽤 되는 편이다. 연재하던 칼럼에 아들은 강속구 투수가 됐으면 하는 바램을 드러냈는데 스스로 자신의 구속에 아쉬움이 많았던 모양.

미국으로 건너간 뒤에는 공부 겸 한희원 뒷바라지에 신경 쓰느라 야구와 잠시 담을 쌓고 지냈다. 그러다가 당시 피칭 이론으로 유명했던 톰 하우스와 인연이 닿게 되었고,[14] 톰 하우스가 운영하는 NPA(NatIonal Pitching Association)이라는 유명 피칭 클리닉에 등록해 연수 겸 훈련을 받던 중 손혁의 몸상태와 구위를 본 톰 하우스가 현역으로 뛰어보라고 조언을 하며 그의 투구 영상을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에게 보냈고, 마지막 도전이라는 심정으로 메이저리그 도전을 선언, 2006년 말 KBO 리그에서 뛰지 않는다는 조건으로[15] 현역으로 복귀했다.

2.5. 볼티모어 오리올스 산하 마이너

2007년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으며 깜짝 현역 복귀를 하였고, 오리올스 산하 트리플 A 팀인 노폭 타이즈[16]에서 뛰며 평생 꿈이었던 메이저리그 재도전을 선언하였고, 트리플A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이상하게 몸이 덜그럭거려서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 보니 쇄골에 좀 심각한 문제가 생겨서 메이저리그 진출이 힘들다고 하여 결국 그냥 투수 인스트럭터로 돌아왔다. 실제 이 당시 은퇴한 지 몇 년이 지나 공백기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트리플A까지 올라갔을 정도로 여전히 구위가 괜찮았던 걸 생각하면[17] 미국 무대 도전은 상당히 아쉽게 끝난 셈.

3.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 성적
<rowcolor=#ffffff> 연도 소속팀 경기 이닝 승률 ERA ERA+ 피안타 피홈런 볼넷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1996 LG 3 10⅓ 1 0 0 0 1.000 6.10 58.6 14 1 6 4 7 7 1.94
1997 24 112 8 5 0 0 0.615 4.18 93.0 101 9 49 66 58 52 1.34
1998 26 143⅓ 11 8 0 0 0.579 3.70 104.4 136 17 40 88 66 59 1.23
1999 26 142⅔ 10 9 0 0 0.526 4.29 113.3 153 18 54 75 71 68 1.45
<rowcolor=#ffffff> 연도 소속팀 경기 이닝 승률 ERA ERA+ 피안타 피홈런 볼넷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01 KIA 7 10⅔ 0 0 0 0 - 1.69 281.7 11 1 4 2 2 2 1.41
2002 5 19⅓ 2 1 0 0 0.667 3.72 114.3 19 4 7 11 11 8 1.35
<rowcolor=#ffffff> 연도 소속팀 경기 이닝 승률 ERA ERA+ 피안타 피홈런 볼넷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03 두산 12 61⅔ 4 6 0 0 0.400 3.65 114.0 60 9 9 27 29 25 1.12
2004 2 8 0 2 0 0 0.000 10.13 41.4 11 2 2 3 9 9 1.63
KBO 통산
(8시즌)
<rowcolor=#1f2023> 107 508 36 31 0 0 0.537 4.07 102.2 505 61 171 276 253 230 1.33

4. 해설자 경력

파일:external/www.mbcplus.com/panels_img.jpg

2012년 MBC SPORTS+에서 메이저리그 해설자가 되었다. 하지만 발음이 너무 졸립고 충청 방언의 영향으로 말투가 느린데다 말주변도 좋은 편도 아니라 평이 매우 안 좋았다. 얼마나 졸린 스타일인지는 다음의 영상을 보자. 잠이 안 올 때 틀어 두면 숙면을 취할 수 있을 정도다.


팬들은 김형준메이저리그 해설을 더 좋아했다. 다만 국내 야구 해설은 아는 영역이라서 그런지 평이 나쁘지 않다. 그리고 2014년 10월 24일에는 2014년 월드 시리즈 해설 관계로 미국 출장을 떠난 허구연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MBC 지상파에서 중계하는 준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해설을 맡게 되었다.

2016 시즌 종료 후 넥센 히어로즈 코치직에서 사임하고 MBC SPORTS+에 2017 시즌 야구 해설위원으로 복귀했다. 그러나 간간히 넥센이나 KIA전 해설 때 편파해설 논란이 터지는 편.

5. 지도자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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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프런트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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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소온혁.jpg
손혁의 프런트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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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 프런트 경력 : 손혁/프런트 경력
전력강화 코디네이터 2022년 202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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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한화 이글스 전력강화 코디네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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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한화 이글스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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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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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기타

  • 2003년에 결혼한 아내이자, 전직 프로골퍼인 한희원의 캐디로 활동하기도 했었다. 이후 최원호가 한희원의 사촌동생인 프로골퍼 한희진과 결혼하여 최원호와는 사촌 동서지간이 되었다. 거기에 한희원의 아버지, 즉 손혁의 장인은 리틀야구연맹 회장인 한영관이다. 이래저래 야구와 연결된다. 공교롭게도 손혁이 2020년부터 키움 감독이 된 뒤 손아래 사촌동서인 최원호가 시즌 중 한화 감독대행을 맡게 되면서 사촌동서끼리 팀을 이끌고 맞대결하게 되었고 2022 시즌부터는 한화에서 같이 지도자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2023년 5월 11일 카를로 수베로를 경질하고 최원호가 정식 감독으로 선임되며 동서와 같은 구단에서 단장과 감독으로 만나게 되었다. 다만 가족 관계인 사람이 감독으로 앉는 데 관여했고, 전임 감독 경질이 석연치 않은 면이 있어 최원호와 한 세트로 비난당하는 신세다.
  • 2014년 시즌 후반기 네이버에서 '손혁의 투수놀음' 이라는 칼럼을 연재했다. 주로 류현진 경기 전후 투구 분석에 대한 내용인데, 내용 자체도 치밀하고 정성이 한땀한땀 가득하여 큰 호평을 받았다. 링크
  • 트레이드를 거부해서 선수 생활이 사실상 끝난 특이한 케이스로, 이것 때문에 2000년대 초반 타이거즈 팬들에게 평가가 좋지 못했다. 반면 LG팬을 포함한 일부 야구팬들 가운데는 "좋아하는 팀에서 선수 생활을 끝내고 싶다"는 선수 본인의 의향을 존중하고 지지하는 층도 있었다. 본인도 이것을 후회하는지 2013 시즌 정우영, 박재홍과의 3인 중계 도중에 2000년 트레이드 직후 해태에서 뛰기를 거부하고 은퇴한 과거에 대해서 늦게나마 태업논란이 있었던 박재홍과 함께 KIA 팬들에게 공개 사과하였다. 이후 KIA로 트레이드된 김세현을 다룬 칼럼 말미에서도 타이거즈 팬들에게 사과의 뜻을 전하기도 했다. 그리고 2023 시즌 종료 후, 김강민이 23년간 몸담아 오던 SSG 랜더스에서 2차 드래프트 보호선수 명단에서 풀려 한화 이글스로 강제 이적하게 되자 한화 단장으로서 김강민을 잘 설득하여 결국 그의 한화행을 성사시켰는데, 손혁이 선수시절 해태로 트레이드당한 경험이 없었다면 김강민의 심정을 잘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 2002년경에 이태원동에서 타이론 우즈와 만나 싸움이 붙었다. 원인은 그 전날 경기에서의 빈볼 시비인 듯하다. 우즈는 손혁이 마른 체형이다 보니까 만만하게 본 것 같지만 손혁이 날렵하게 우즈를 제압했고 제대로 역관광 당했다고 한다. 우즈가 2002 시즌 크게 부진한 이유가 이 일 때문에 심리적으로 위축되었다는 말도 있었다.[18] 후에 구구절절 8회에서 후일담을 밝혔는데, 손혁 코치 말로는 우즈가 당시 많이 취했는지 시비를 걸다 다리가 풀려 혼자서 넘어졌다고.
  • 공주중동초-공주중-공주고 동창인 박찬호와 친하며, 야구 중계 해설 중에도 박찬호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많이 이야기한다.[19]
  • 상당히 유복한 가정에서 자라났다. 아버지 손재정 씨는 공주시에서 건설사를 운영하는 사장이였다. 약간의 과장을 보탠다면 "공주 시내에서 손씨 집안 땅을 밟지 않고서는 공주 한 바퀴를 도는게 어렵다"는 말이 오갔을 정도 였다. 동창의 증언에 따르면, 자가용 차를 보기 드물었던 시기에 부모님 두 분 모두 자가용 차를[20] 몰고 다니셨다고 한다. 유복한 가정 환경에서 자랐고 본인 스스로도 열심히 운동하지 않아도 돈 문제에 구애받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에 이른 나이에 은퇴를 일찍 스스로 결정하지 않았을까 하는 야구팬의 인식이 있다.
  • 2014년에 "손혁 칼럼"이라는 코너를 네이버에 잠시 연재했었다. 한 번은 리틀야구에 대한 칼럼을 썼는데 아들 손대일 군을 150km/h를 던지는 미래의 메이저리거로 키우고 싶다는 절절한 부성을 피력했다. # 같은 해에 한희원이 현역 은퇴를 선언했는데, LPGA 투어를 다니다 보니 장남의 육아를 거의 손혁이 책임져 왔는지라 한희원은 육아를 책임지기 위해 잠시 골프와는 거리를 두겠다고 한다.
  • 2017년 9월 14일 바둑tv에 출연, 김혜민 8단을 상대로 아마 초단에 도전했다. 흑으로 7점을 놓고 두어서 5집 패해 아쉬운 실패. 김영삼 9단과 친해 호형호제한다고 하며, 야구와 바둑의 공통점이 '복기'라고 언급했다.
  • 2017년 말부터 2018년 초까지 방영된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에서 손혁의 책들이 언급되는 장면이 있다. 야구선수와 무관한 대기업 직원 출신인 한 수용자가 투수인 주인공의 운동을 돕는걸 본 교도관이 야구계 출신도 아닌데 야구선수 훈련법을 알고 있는걸 의아해하자 그 수용자가 손혁의 책을 여러권 언급하며 5번씩이나 읽었다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 2020년 키움 히어로즈의 감독이 되면서 한국 프로야구 1군 감독 중 최초로 외자 이름을 가진 감독이 되었다.[22] 물론 굳이 따지자면 2020년 KIA 사령탑으로 손혁보다 먼저 취임한 맷 윌리엄스도 있기는 하지만 이분은 외국인이고, 풀네임으로는 '매슈'라서..
  • KIA 타이거즈맷 윌리엄스 감독이 KBO팀 감독들에게 인사 차 선물로 와인을 주자 KT의 이강철 감독이 빈손으로 받기 그렇다고 답례품으로 연고지 수원의 명물인 왕갈비세트를 답례품으로 선물해 준 것을 시작으로 다음 자신의 차례가 되자 답례품으로 고향인 충남의 전통주인 한산소곡주아내가 직접 고른 전통문양으로 디자인된 와인커버, 안경케이스, 컵받침대 등을 답례품으로 주었다고 한다.
  • 키움 감독 사퇴 이후 같은 에이전시 소속인 양현종과 함께 미국으로 향했는데, 선수 시절 말년의 트리플 A 경험을 바탕으로 양현종의 도우미 역할을 하는 동시에 텍사스 레인저스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았다.

9. 관련 문서



[1] 출생신고를 늦게해서 8월 1일로 되어 있다고 한다. 기사[2] 체육교육 전공[3] 석사 학위 논문 : 프로야구 투수유형과 구질과의 관계(2004.8).[4] ~10월 7일[5] 박용택, 양현종, 조동화가 소속되어 있다.[6] 박찬호와 손혁, 홍원기 세 사람은 초등학교 시절 부터 야구를 같이한 죽마고우다. 참고로 공주중학교 2학년 때 까지만 해도 박찬호가 3루수, 홍원기가 투수였으나 박찬호가 투수로 전향하자 홍원기가 박찬호 대신 3루수를 보게 돼서 홍원기가 타자로 전향하게 되었다. 당시에 박찬호의 투수 전향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특히 투수들의 학부모의 반대가 더욱 심했는데, 더군다나 홍원기는 당시 공주중학교의 에이스였다. 홍원기 본인이나 부모로선 그야말로 날벼락을 맞게된 셈이라 자연 시끄러울 수밖에 없었고, 결국 세 사람의 졸업 이후 감독은 경질되고 야구계를 떠나게 된다.[7] 친분도 과장됐다고 보는 게 손혁과 달리 홍원기는 박찬호의 비공개 결혼식에 지인 30명만 초대했을 때 초대받은 유이한 야구인이다. 다른 한 명은 노모 히데오.[8] 대학 시절 팀 내 위치도 매우 비슷한 수준이었다. 동기 조성민과 후배 손민한에 밀렸던 손혁처럼, 이정길은 동기 임선동과 선배 문동환에 밀려 팀의 제3옵션 정도 되는 투수로 대학시절을 보냈다.[9] 예전부터 해태는 타 팀에 비해 상당히 엄격한 분위기와 군기문화로 유명한 팀이었고, 선수들 간 구타나 얼차려도 잦은 편이었다. 이러한 쌍팔년도식 팀 분위기가 해태 말기~KIA 초기였던 2000년대 초반까지도 남아 있었다고 한다. 거기에 IMF 이후 모기업이 부도나면서 구단에 대한 재정 지원이 줄어든 덕분에 시설도 열악한 편이었다. 오죽하면 삼성에 있다가 손혁과 비슷한 시기에 해태로 온 박충식이 해태의 열악한 시설을 보고 경악했을 정도.[10] 결과론이지만 2002년 김성한 구타 사건이 터지면서 손혁의 해태로의 트레이드 반발은 다소 재평가되는 경향이 있다.[11] 한대화 또한 비슷하게 해태로 트레이드를 거부해서 KBO 최초의 임의탈퇴까지 간 케이스이긴 하나, 결국, 복귀해서 김응용의 철저한 관리에 의해, 우승 멤버로 활약했다.[12] 손혁이 미국으로 건너가 당시 보스턴에서 뛰던 이상훈과 연락이 닿게 되자 이렇게 야구 그만둘거면 다시는 자기한테 연락하지 말라고 했을 정도로 손혁에게 따끔한 충고를 했다고 한다.[13] 2003년 당시 약혼자였던 골프선수 한희원과 함께.[14] 당시 한희원의 골프 코치였던 딘 레이븐스의 아들이 야구를 하고 있었는데, 손혁이 야구선수 출신이라는 걸 알고 폼을 봐달라고 하였고, 레이븐스의 아들이 다니는 야구 아카데미를 통해 지도자 교육을 받으려다가 톰 하우스와 인연이 닿았다고 한다.[15] 2004년 은퇴 당시 임의탈퇴로 공시된 상황이어서 마이너리그에서 뛰려면 그의 보류권을 갖고 있는 두산의 동의가 필요한 상황이었다.[16] 고양 히어로즈 항목에서도 언급되어 있지만, 메이저 팀과 마이너 팀은 운영 주체가 나뉘어 있다. 대다수의 야구 팬들에게는 윤석민의 소속팀으로 유명하다.[17] 실제로 볼티모어 캠프 합류 직전 김시진 당시 현대 유니콘스 감독의 도움으로 현대 선수들과 같이 훈련을 했는데 그의 불펜피칭을 지켜본 김시진 감독이 손혁의 투구 내용을 좋게 평가하며 임의탈퇴 신분만 아니었으면 현대로 데려오고 싶다고 할 정도로 여전히 구위가 괜찮은 편이었다.[18]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카더라고, 사실 우즈의 부진의 정확한 이유는 소위 '우즈 존'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심했던 심판의 판정 차별, 그리고 팀(두산)의 우즈에 대한 대우 불만 등이 겹친 게 주 원인이었다.[19] 손혁이 밝힌 공주 어린시절 박찬호와의 에피소드[20] 어머니가 1990년대 초 당시에도 고성능 준중형 세단으로 꼽혔던 현대 엘란트라를 탔다고 한다.[21] 43분부터[22] 참고로 2군 감독 중에는 외자 이름 성준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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