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3-29 22:51:27

하기룡

파일:나무위키+유도.png   군인 출신 범죄자에 대한 내용은 하기룡(범죄자)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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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하기룡(河基龍)
생년월일 1955년 5월 8일
출신지 서울특별시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 입단 프로 원년 멤버
소속팀 MBC 청룡(1982~1989)
개막전에서 MBC에게 질 수 있다고는 상상도 못했어. 더구나 에이스 하기룡도 못 나온 경기였으니까.[1]
배대웅
1. 소개2. 아마 시절3. 프로 시절4. 지도자 시절

1.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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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룡의 영원한 에이스
청룡의 원년 팬들에게는 김건우와 함께 최고의 에이스

나이 때문에 롯데최동원, 삼성김시진의 이름값에 밀려 시대를 잘못 타고난 투수이기도 하다.

2. 아마 시절

특이하게도 전학을 다니며 고등학교를 세 군데나 나왔다. 모든 출신 고등학교에서 선발투수, 그것도 에이스로 활약했다.

아직 한국 프로야구가 생기기 전인 1974년 상업은행 실업야구단에 입단했다. 병역 이행을 위해 잠시 육군 야구단에서 뛰었던 것 외에는 꾸준히 상업은행에서 투수로 활약했고,[2] 3차례나 우수투수상을 받았다.

3. 프로 시절

1982년 MBC 청룡의 창단멤버로 프로에 입문했다. 이 시절 투수들 대부분이 그러했듯 선발과 계투를 오가며 활약한 덕분에 MVP 베이스볼 온라인에서는 이 연도의 하기룡을 계투로 분류했을 정도이다. 1982년에 올스타전에는 서군 투수로 출전했다. 또한 원년도에 세운 진기한 기록은 3연속 완봉승이다.[3] 이런 좋은 활약을 바탕으로 연봉은 이 시절 엄청난 규모인 무려 2,000만원을 받게 된다.[4]

그 다음해인 1983년에도 기록을 세웠는데, 8월 16일 삼성과의 경기부터 9월 16일 해태 타이거즈김준환이 적시타를 칠 때까지 이어진 41이닝 연속 무실점 기록이다. 또한, 이 해에 하기룡은 30승을 기록한 삼미의 장명부를 제치고 평균자책점 1위를 기록하기도 하였다. 이후에도 MBC 청룡에서 선수생활을 하다가 1990년 방출되었고, 곧바로 은퇴 후 같은 해 MBC 청룡을 인수한 LG 트윈스와 투수코치로 계약하였다.

선수시절 통산 기록은 7시즌181경기 817.1이닝 50승 43패 16세이브 28완투 9완봉승, 평균자책점 2.87이다.

4. 지도자 시절

은퇴 후 삼성 라이온즈, LG 트윈스, 현대 유니콘스, 두산 베어스의 투수코치를 지내고, 모교인 배재고의 감독으로 부임하였으나 취임 직후 부터 학교 동문회와 학부모들의 반발로 시끄러웠고, 결국 배재고의 감독에서 물러난 뒤 원광대의 투수코치로 부임하였으나, 2016년 현재는 현장을 떠난 상태다.


[1] 원년 개막전 당시 MBC 청룡선발이길환이었다.[2] 당시에는 상무 야구팀이 없이 각 군별로 야구팀을 운영했다.[3] 이 기록은 후에 송승준에 의해 타이기록으로 변경된다.[4] 이 해의 최고 연봉은 선수 기준으로 김재박이 받은 3,000만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