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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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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attachment/Jangmoonsuk.jpg
이름 장문석(張文碩)
생년월일 1974년 12월 15일 (만 [age(1974-12-15)]세)
출신지 부산광역시
학력 부산대신초 - 부산대동중 - 경남상고 - 동아대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97년 2차지명 1라운드(LG 트윈스)
소속팀 LG 트윈스(1997~2005)
KIA 타이거즈(2006~2009)
LG 트윈스 등번호 26번
신윤호 (1994~1996) 장문석 (1997~2005) 강상수 (2006)
KIA 타이거즈 등번호 24번
조규제 (2004~2005) 장문석 (2006) 조경환 (2007)
KIA 타이거즈 등번호 26번
홍세완 (2000~2006) 장문석(2007~2009) 서재응 (2010~2015)

1. 소개2. 선수 시절3. 역대 성적4. 흑역사

1. 소개

LG 트윈스, KIA 타이거즈에서 활동했던 투수.

2. 선수 시절

1997년 LG 트윈스의 2차 1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하며 상당한 기대를 모았으나, 기대에는 크게 미치지 못하였다. 2000년에는 두산과 LG의 플레이오프에 등판해서 김용수가 다 잡아놓은 경기를 불을 지르며 한국시리즈 진출을 놓치기도 했다.

이전 버전의 2000년에 특히 부진했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 실제 2000년은 6연승에 잠시나마 탈삼진 1위도 해보기도 했고, 심화지표로는 스탯티즈 기준 ERA+ 130.9(커리어 2위), FIP+ 130.7(커리어 3위)에 WAR은 커리어하이인 2002년보다 더 높은 4.36이다. 이 정도면 또다른 커리어하이, 못해도 준 커하 시즌이라 봐도 이상하지 않다. 그냥 막판에 못한 게 이미지로 굳어버렸을 뿐. 이 시즌 장문석은 잦은 보직이동[1]으로 인해 후반기에는 거의 퍼져버린 상태였다. 플레이오프에서 탈락의 원흉이 된 데는 2차전에서는 김동주에게 강습타구를 맞았고, 5차전에서는 심정수에게 역전 홈런을 맞는 등 부진했음에도 불구, 그것을 감안하지 않고 올려버린 이광은 감독의 책임도 있다.

LG가 6668587667이라는 비밀번호를 찍기 전 마지막 한국시리즈를 경험하였던 2002년에는 이동현, 이상훈과 함께 든든한 승리조가 되기도 했다. 이 때의 기록은 무려 10승 3패 4세이브 9홀드 평균자책점 1.60. 참고로 이 사람, 59경기에서 100이닝 넘게 소화했다. 이동현신윤호에 비해서 해당 선수가 묻혀서 그렇지 원조 살려조라고 봐조 무방한 수준.

그러나 526 대첩 항목과 아래 흑역사에서도 볼 수 있듯이 한 번에 와르르 무너지는 경향이 매우 강했고, 또한 부상에 줄곧 시달리기도 했다.

2005 시즌이 끝난 후 손상정, 한규식과 함께 마해영, 서동욱, 최상덕을 상대로 KIA 타이거즈트레이드되었다.[2] 하지만 이 때부터 본격적인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하여, KIA 이적 후의 성적은 4년간 1승 3패 15세이브. 이 기록은 전부 2006년 한 해에만 기록한 것이며, 2007년과 2009년에는 1군 경기 출전 기록이 없다. 2008년에는 밑의 통산 기록에서 보다시피 승패 없이 패전처리조 격으로만 나와 승, 패, 세이브, 홀드 중 아무것도 기록하지 못하였다. 게다가 김진우에게 노장진을 소개시켜 나쁜 물을 들였다고 기아팬들에게 이미지도 안 좋다. 김진우의 해명에는 한두 번 만난 게 다였다곤 하지만.

결국 2009 시즌 후 KIA에서 방출당했다. 이후 자신의 스승인 김성근 감독 밑으로 들어와 재기하기 위해 SK 이적을 시도하였으나, 무릎 부상이 재발해 결국 은퇴하고 말았다.[3]

은퇴 후 모교인 부경고등학교(경남상고에서 바뀜)의 코치를 지냈고, 이후 감독을 맡기도 했으나 오래 가지 못했다.

3. 역대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ERA 경기 완투 완봉 이닝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1997 LG 13.50 7 0 0 0 2 0 0 12⅔ 19 4 10 2 8
1998 1군 기록 없음
1999 4.21 23 1 1
(5위)
4 3 4 0 62 54 4 39 3 51
2000 3.42 40 0 0 9 8 11 0 137 123 10 50 12 134
2001 7.74 14 0 0 1 3 0 0 43 50 6 35 2 23
2002 1.60 59 0 0 10 3 4 9 101⅓ 75 3 39 3 86
2003 4.40 39 0 0 9 6 0 8 100⅓ 112 12 40 5 53
2004 4.03 28 0 0 10 8 1 0 152 168 15 55 8 75
2005 3.75 27 1
(5위)
0 5 5 7 0 84 93 2 31 5 60
연도 소속팀 ERA 경기 완투 완봉 이닝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2006 KIA 4.36 29 0 0 1 3 15 0 53⅔ 51 4 26 3 36
2007 1군 기록 없음
2008 5.40 21 0 0 0 0 0 0 20 22 0 6 4 11
2009 1군 기록 없음
KBO 통산
(10시즌)
4.05 287 2 1 49 41 42 17 766 767 60 331 47 537

4. 흑역사

선수 본인이 대량실점하며 큰 인상을 남긴 경기가 꽤 있다.

입단 첫 해인 1997년 어린이날 3연전의 두번째 경기인 5월 4일 대구 삼성전 선발로 등판했다가 정경배의 연타석 만루홈런 중 첫 번째를 헌납했고, 1⅓이닝 7피안타 10실점을 기록하며 패전 투수가 되었다. 이 때 LG의 투수력은 가히 막장을 보여 주었던 것이, 삼성과의 3연전 중 홈런 17개를 포함 무려 49점(…)을 내 주면서 시리즈를 스윕당했다. 이 경기 이후에 천보성 당시 LG 감독이 부정배트 의혹을 제기하면서 그 막장성을 더해주었다. 그리고 2000년 플레이오프에서 4-3으로 앞서고 있던 9회초 투아웃에서 김용수로부터 교체되어 등판하였으나 안경현에게 동점홈런을 허용하고, 그리고 연장전에서는 심정수에게 역전홈런까지 맞으며 LG의 21세기 고난의 서막을 열어제꼈다. 또한 2005년 5월 26일 롯데전에서는 무려 1이닝 7실점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 날 경기는 결국 엄청난 난타전이 된 끝에 롯데가 13:11로 승리. 이 경기는 526 대첩으로 기록되었으며, 엘 꼴라시코의 원조격 경기라 할 수 있다. 물론 아래의 짤방은 지금도 야구팬들에게 전설로 회자된다.

파일:attachment/file449804_1.jpg


[1] 마무리로 시작해 5월 선발이 되었다가 8월 다시 마무리로 전업했다.[2] 양 팀 모두 폐품정리 트레이드였다고 봐도 무방했다. 마해영은 기아에서 서정환 감독과 원수도 지고 하락세를 탔으며, 최상덕 역시 2004년을 기점으로 노쇠화로 무너졌다. 둘 다 LG에서 퇴물취급 받고서 2시즌도 안 되서 버려졌다. 그나마 서동욱이 LG에서 오래 뛰었지만, 넥센으로 갔고 10년만에 친정팀으로 가서 포텐셜이 뒤 늦게 터진 노망주가 되었다.[3] 부상 문제와는 별개로, KIA 시절인 2006년 5월 9일 문학 SK전에서 장문석은 SK의 외국인 타자였던 시오타니 가즈히코를 맞췄는데, 시즌 초 SK의 주전 3루수로 타선에서 맹타를 휘두르던 시오타니는 이 때 손가락 골절상을 당하며 방출당했고, 시즌 후 그대로 선수 경력을 접고 말았다. 팀 역시 용병의 갑작스런 전력 이탈로 전체적으로 일정이 꼬이면서 6위로 시즌을 마감했고, 조범현 감독도 물러났다. 그런 장본인을 영입하려는 데 대한 SK 팬들의 여론은 매우 좋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