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5-21 07:05:24

김태원(야구선수)

파일:나무위키+넘겨주기.png   관련 문서: 야구 관련 인물(KBO)

파일:attachment/kimtaewontwins.jpg
이름 김태원(金兌源 / Tae-won Kim)
생년월일 1964년 1월 28일
출신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학력 서울재동초 - 휘문중 - 배재고[1] - 성균관대[2]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86년 MBC 청룡 1차 2순위 지명
소속팀 MBC 청룡-LG 트윈스 (1986~1998)
한국시리즈 우승 반지
1990 1994

1. 개요2. 선수 시절3. 지도자 시절4. 기타5. 역대 성적

1. 개요

MBC 청룡-LG 트윈스에서 활약했던 우완 투수. 현역 시절 등번호는 35번. 부활의 리더이자 기타리스트김태원과 동명이인이라 불암콩콩코믹스에선 그의 모습으로 출연했다.

2. 선수 시절

성대 교육학과(1982학번) 시절만 해도 한희민에게 밀린 무명의 파이어볼러였으나, 190cm의 큰 체구를 앞세운 강속구 투수라는 장점을 본 김동엽 당시 MBC 청룡 감독이 1차 지명자로 낙점했다. 김동엽 감독이 김태원을 언급하면서 "우리 팀에는 선동열급의 신인이 있다"고 말했을 정도였으니.

그러나 문제는 너무나 새가슴이라서 주자만 나가면 투구가 흔들렸다. 김태원의 부진은 김동엽 감독이 잘리는 데 일조했다. 게다가 방위 복무 등으로 인해 4년 동안 잉여 전력이었다. 전지훈련 소개에서 감독 인터뷰를 하면 "올해는 김태원이 기대된다. 김태원만 활약하면 우승할 수 있다." 는 말을 듣는 게 연례행사였다.

그러다가 MBC에서 LG로 바뀐 동시에 백인천 감독의 부임 첫 해인 1990년에 포텐셜이 폭발해 18승을 기록, 팀의 에이스로 자리잡게 된다. [3] 김태원뿐만 아니라 정삼흠도 이 즈음에 포텐셜이 터져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반 LG 트윈스의 기둥 투수로 활약한다.[4][5] 1993년 9월 9일 對 쌍방울전에서는 노히트노런(4탈삼진, 3사사구)을 기록하기도 했다. 1993년에 LG 김태원과 해태 조계현의 맞대결이 몇 번 있었는데, 이 때는 잠실이 매진되기도 할 명승부였다. 당시 조계현은 LG에 무척 강해서 LG를 상대로 12연승을 할 정도였다. 번번히 김태원은 호투하고도 조계현에게 주눅든 팀 타선 때문에 매번 1~2점차로 지며 5전 1승 4패를 기록했다.

1994년 이광환 감독의 스타 시스템을 앞세운 LG는 우승을 차지했는데, 이 때 김태원은 당시 정규 리그에서 16승을 거두며 이상훈, 정삼흠과 함께 선발 트로이카를 갖추고 거기에 신인 10승의 인현배까지 가세한 강력한 선발진을 구축했다. 스타 시스템으로 대변되는 LG 트윈스의 전성기에서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투수가 되었는데, 1990년부터 1995년까지는 짝수 해에만 10승을 거뒀다. 1996년까지 매년 규정 이닝을 채우는 꾸준한 활약으로 LG의 2선발 자리를 지키다가 1998년에 은퇴했다. 약간 일찍 은퇴한 케이스.

통산 성적은 87승 77패 5세이브, 평균자책점 3.43이다.

한편, 1989년 9월 24일 열린 해태 타이거즈와의 동대문 더블헤더 2차전에서 선발승을 거둬 동대문야구장에서 열린 마지막 프로야구 경기 승리투수가 되기도 했다.

3. 지도자 시절

은퇴 후 친정 팀 LG에서 코치를 맡았지만, 2002 시즌 종료 후 해임되었다. 이후 통닭집, 주유소를 경영했으나 모두 사업에 실패했다고 한다.

이후 선배인 윤여국 동성고 감독의 추천으로 야구계로 돌아와서 2004년부터 광주동성고에서 일했다. 이 때 한기주양현종을 조련하여 동성고는 2004년 봉황대기 우승, 2006년에는 봉황대기와 대통령배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이후에도 문양식, 윤명준을 키워 내어 투수코치로서의 능력을 인정받아 KIA 타이거즈서정환 감독 아래서 투수코치로 영입되었다. 일설에 의하면 한기주 전담 코치였다고 한다.

그러나 서정환 감독이 물러나고 조범현 감독이 부임하자 재계약에 실패한다. 일설에 의하면 성균관대학교 인맥인 장채근 배터리코치, 정재공 구단 사장과의 학연 때문에 조범현 감독이 못마땅하게 여겨서 잘렸다고 하지만, 어차피 감독이 바뀌면 새 감독은 그 아래있는 코치들은 자기와 맞는 사람을 쓰는게 보통이라 조범현이 옹졸했던 것은 아닌 것같다.

이후 광주동성고로 다시 돌아갔다가 2009년에는 대구 상원고(前 대구상고)의 투수코치로 있었고, 2010년에는 공주고의 투수코치로 옮겼다. 2011년에 다시 상원고 코치를 지냈고 2013년부터 2014년까지 전남 세지중학교 야구부 감독을 맡은 것을 마지막으로 근황이 알려지지 않고 있다.

4. 기타

파일:external/photo-media.hanmail.net/20060726171816.904.1.jpg

이름은 어떤 사람과 같은데, 보다시피 이문세를 닮았다. 현역 시절 별명도 야구계의 이문세, 말머리 등 이문세와 관련된 별명이 붙었고, 그 덕에 이문세가 진행하던 일밤LG 트윈스 경기복을 입고서 깜짝 게스트로 들어간 적도 있다. 예상보다 입담이 괜찮아서 반응도 좋았던 편. 서정환 감독은 김태원을 "문세코치"라고 불렀을 정도라고. 참고로 이문세는 자타가 공인하는 골수 LG 팬이다.

5. 역대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1986 MBC 청룡 33 107 2 6 3 0 2.86 87 42 50
1987 10 32 0 2 0 0 8.44 50 12 16
1988 1군 기록 없음
1989 24 98⅔ 2 3 0 0 2.83 85 50 68
연도 소속팀 경기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1990 LG 트윈스 33 193⅓
(3위)
18
(2위)
5 1 0 2.51
(4위)
152 68 127
1991 26 135⅔ 8 8 0 0 4.84 127 62 91
1992 31 177⅓ 10 14 1 0 3.40 180 71 119
1993 25 141⅔ 8 8 0 0 2.42 100 55 84
1994 28 190⅔
(5위)
16
(3위)
5 0 0 2.41
(4위)
142 58 96
1995 22 124 9 11 0 0 5.01 126 41 59
1996 26 156⅔ 9 12 0 0 3.79 140 54 86
1997 7 28 3 2 0 0 5.46 32 13 13
1998 8 15 0 1 0 0 1.80 10 8 10
통산 12시즌 273 1399⅔ 85 77 5 0 3.43 1231 534 819


[1] 원래는 우신고등학교 야구부 소속이었다가 팀이 해체되면서 배재고로 전학했다. 우신고 야구부는 1979, 1980년에만 존속했다가 2019년에 재창단했다.[2] 교육학과(1982학번)[3] 책 'LG 트윈스 때문에 산다' 에 나온 내용에 의하면, 백인천 감독이 윗몸일으키기 100개를 하지 못하면 전지훈련에 보내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김태원이 96개에서 퍼져 버리는 바람에 정말로 전지훈련에 가지 못하게 될 위기에 처했다. 그러자 김태원도 다시 한 번 기회를 줄 수 없겠냐고 부탁해 선배 선수들도 근육을 풀어 주고, 테이핑도 해 주는 등 여러 모로 도움을 주어서 겨우 전지훈련에 가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때 체력 단련을 많이 한 덕분에 포텐셜이 터졌다고. 그 이후 KBS의 한국야구 레전드 백인천 편에서도 이 일화가 소개됐는데, 당시 윗몸일으키기 미니멈 개수는 100개가 아닌 150개였다고 한다. 김태원은 1차시기에서 146개로 전지훈련에 못갈뻔했으나 2차시기에서 150개를 겨우 채웠는데, 개수를 이미 채운 팀원 전체가 합심해서 응원하면서, 백인천이 당시 팀 케미를 강화시키는데 일조한 일화라고 한다.[4] 김태원은 1989 시즌이 끝나고 야구를 그만둔 뒤 지인과 나이트클럽을 경영하려고 했다가, 1년만 더 해 보겠다고 해서 나이트클럽 사업을 미뤘는데 그 1년에서 터졌다!![5] 알다시피 정삼흠은 전년도에 배성서 감독과 대판 싸운 사건으로 인해 제대로 시즌을 치를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