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9-18 21:46:19

대구상원고등학교 야구부

2019년 고교야구 주말리그 경상 A
파일:external/67.media.tumblr.com/tumblr_o8j59qdJcK1sqk8veo2_250.png 경북고등학교 파일:r542oyv.gif 김해고등학교 파일:external/67.media.tumblr.com/tumblr_o8j59qdJcK1sqk8veo6_r1_250.png 대구고등학교 파일:ES9qlOs.jpg 마산고등학교
파일:external/65.media.tumblr.com/tumblr_o8j59qdJcK1sqk8veo5_r1_250.png 물금고등학교 파일:QiXxmjQ.jpg 상원고등학교 파일:f4zaGZt.png 용마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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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상원고등학교 야구부
(Daegu Sangwon High School)
창단 1928년 3월
소속 리그 대구경북권
감독 이종두
연고구단 삼성 라이온즈
우승 기록[1] 12회

대회 우승 준우승 4강
대통령배2회(1973, 93) 5회(1974, 76, 78, 88, 2009) 1회(1998)
청룡기6회(1950, 70, 77, 99, 2011, 2015) 6회(1962, 66, 68, 69, 98, 2000) 3회(1971, 78, 2010)
황금사자기2회(1973, 98) 2회(1974, 2015) 2회(1981, 90)
봉황대기2회(1973, 74) 1회(1975) 4회(1971, 80, 97, 2018)
협회장기 - - -
1950년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광주서중등학교 대구상업중등학교 인천고등학교[2]
1970년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선린상업고등학교 대구상업고등학교 경북고등학교
1973년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
경북고등학교 대구상업고등학교 경북고등학교
1973년, 1974년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배명고등학교 대구상업고등학교 경북고등학교
1973년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군산상업고등학교 대구상업고등학교 경남고등학교
1977년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경남고등학교 대구상업고등학교 부산고등학교
1993년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
부산고등학교 대구상업고등학교 대전고등학교
1998년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신일고등학교 대구상업고등학교 군산상업고등학교
1999년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경남고등학교 대구상업고등학교 성남고등학교
2011년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경남고등학교 상원고등학교 덕수고등학교
2015년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
덕수고등학교 상원고등학교 덕수고등학교

1. 개요2. 연혁
2.1. 경북지역의 최강자(1928~1945)2.2. 영광의 시대(1960~1973)2.3. 중흥기2.4. 2010년 이후
3. 출신 선수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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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사진 왼쪽에서 두번째, 모자 안쓴 아이가 양준혁

2. 연혁

2.1. 경북지역의 최강자(1928~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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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3월[3] 대구상업학교 시절에 생겼던 팀으로 다른 일제시대에 생긴 팀에 야구부가 유명무실해진 것과 달리 비록 팀은 약했을지라도 야구부의 명맥은 꾸준히 이어간 팀이다. 그래서 여타 팀들과 다르게 80년 넘는 역사가 꾸준히 이어져 온 것이 팀의 자랑거리 중 하나다.

창단 당시에는 팀원 대다수가 일본인 학생들으나 조선인 학생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최초 창설 당시 기록상으로 확인되는 인물들은 편순윤(片順潤), 표문철(表文哲), 오명오(吳命五) 등이 외야수로 활약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창단 첫해였던 1928년 5월 24일에 대구춘계쟁패전에서 대구실업을 꺾고 첫 우승을 달성했으며, 창단 첫해에는 은근 콩라인 기질이 있었는데 1929년 제9회 조선중등학교대회겸 제15회 전국중등우승대회 조선예선전[4]에서 평양중에게 패배(5:0)하며 준우승, 10월 12일 제3회 조선신궁중등학교대회에서도 경성사범에게 패배(6:4)하며 준우승.

그러나 이듬해인 1930년에는 그들의 해로 만들었다. 제16회 고시엔 조선예선에서 우승하며 조선대표로 고시엔에 출전하기도 했다. 고시엔 진출 당시 1회전에서 요나코(米子)중학을 4-0으로 격파하고 2회전에 진출했으나 마쓰야마(松山)상업에 2-4로 패해 탈락했다. 그리고 그해 10월 18일에 열린 제4회 조선신궁중등학교대회에서는 경성중을 5:4로 꺾은 후 평양중을 꺾고(3:2)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5] 1931년에는 용산중(4:1), 경성산업(3:2)을 차례로 꺾고 제5회 조선신궁중등학교대회를 재패했다.

잠깐의 휴식기를 가진 대구 상업은 1935년에 다시 기지개를 폈는데 제15회 고시엔 조선 예선에서는 결승까지 진출했지만 신의주상업에게 22-3로 대패하며 무릎을 꿇었고 1936년 제16회 고시엔 조선 예선에서도 결승에서 인천상업에게 8-4패배하며 고시엔 진출에 실패했다. 제17회와 18회 고시엔 조선 예선에서는 모두 4강에 올랐으나 떨어졌다.[6] 그리고 1941년 개최된 마지막 고시엔 조선 예선에서도 4강까지 진출했으나 용산중에 16-12로 아쉽게 탈락하며 4강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일제강점기 시절의 대구상업은 치열했던 고시엔 예선[7]을 뚫고 심심찮게 결승과 4강을 오가며 경북지역의 최강자로 군림했다.

해방 후에도 전통은 이어져서 1950년 청룡기에서 대회 첫 우승을 차지했다. 당시 학교측에서는 성적이 나올리가 없다는 이유로 출전을 반대했지만 김종경 당시 대구상고 감독의 적극적인 추진으로 출전, 결승전에서 에이스 어지홍[8]을 앞세운 동래고를 2:1로 꺾는 파란을 일으키며 우승을 차지했다.‘돌아오지 않은 학도 야구소년들’ 그러나 그들이 첫 우승을 달성하고 바로 직후에 터진 한국전쟁으로 인해 우승의 영광은 전쟁의 포연 속에 그대로 묻히고 말았다.

2.2. 영광의 시대(1960~1973)

대구상업고등학교 야구부의 강세는 1960년대 본격적으로 꽃을 피웠다. 1962년 정동진이라는 걸출한 포수를 앞세워 청룡기 준우승을 차지한 것을 신호탄으로 이 번에는 류영수 투수와 우용득 포수의 콤비를 앞세워 1968년과 1969년 다시 청룡기 준우승을 차지했다. 세 번의 준우승의 한은 이들이 모두 졸업한 1970년에 풀리는데, 청룡기 우승으로 20년 만에 서울 메이저 대회 우승의 영광을 안았다.

이대로면 대구상고 야구부의 독재 체제가 열리는가 싶었지만, 그렇지도 못한 것이 1971년 동향의 라이벌 경북고가 전관왕을 달성하면서 막을 연 고교야구 전성시대의 최강자로 등극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대구상고도 그들의 라이벌이라는 자격이 있다는 것을 충분히 증명하며, 강태정 감독의 지휘 아래 장효조와 김한근을 필두로 한 막강한 전력을 바탕으로 1973년 고교야구 3관왕을 달성하면서 그들이 한 시대를 지배할 가치가 있는 팀임을 충분히 증명했다. 그리고 1974년 세 차례 결승에 올라 봉황대기에서 우승에 성공하며 전년도의 영광이 결코 허명이 아님을 증명했다.

그들의 영광어린 시대의 마지막을 장식한 인물은 김시진이만수였는데, 불행히도 이 둘이 배터리를 맞출 때는 성과가 영 좋지 않았고, 김시진이 졸업한 1977년에 박영진을 앞세워 다시 청룡기 우승을 차지하고, 1978년 양일환이 에이스로 뛰며 대통령배 준우승을 차지하면서 영광스러웠던 시대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1980년대 대구상고는 무려 양준혁이 졸업하는 등 인재는 나쁘지 않지만, 우승과는 인연이 없는 시대에 접어들게 되었고, 결국 1980년대에는 한 차례의 우승도 차지하지 못하고 시간을 흘려 보내게 되었다.

2.3. 중흥기

1993년 고교 무대에서는 이승엽과 쌍벽을 이뤘다는 오른손 강타자 김승관의 활약 속에 대통령배 우승에 성공하면서 오랜 침묵을 깼다. 이 때의 중흥은 1990년대 말로 이어지는데 장준관이정호라는 거물 고교 투수들이 등장하면서 대구상고는 1998년부터 2000년까지 총 4차례 결승에 올라 두 번 우승에 성공했다. 다만 이 때 우승의 주역이었던 장준관이정호 모두 프로 무대에서는 대성하지 못한 것이 옥의 티라면 티. 이정호는 1차 지명을 받았는데 결국 먹튀로 전락한 채 보상선수로 끌려갔고, 장준관은 2008년에 웨이버 공시되는 굴욕을 당한 후 은퇴했다.

2000년 청룡기 결승전에서 김주철의 성남고에게 패하면서 우승 기회를 놓친 후, 대구상고 야구부는 쭉 하향곡선을 그렸다. 역시 안지만처럼 훗날 포텐셜을 터뜨린 선수들이 존재했을 정도로 인재는 그렇게까지 나쁘지는 않았지만 성과는 나지 않았다. 이는 동향의 라이벌 경북고가 부진한 것과 맞물리면서 대구 지역의 야구 패권을 대구고에 넘겨주는 결과로 이어졌고, 연고 구단인 삼성 라이온즈는 뒷목을 잡으면서 안습한 1차 지명을 찍어야 했다.

2.4. 2010년 이후

2009년 대통령배 결승은 오랜만의 성과였다. 2004년 일반계 전환 후 맞이한 첫 결승전에서 박화랑의 분투에도 불구하고, 덕수고의 야수진의 힘과 심판진의 힘(?)[9] - 특히 9회에 나왔던 여러번의 결정적인 오심논란 - 을 이겨내지 못하고 9:10의 분패를 당하면서 우승의 기회를 놓쳤다. 하지만 2011년 청룡기에서 2학년 좌완 에이스 김성민의 활약으로 정말 오랜만의 우승에 성공하며 화려하게 부활하는가 싶었는데, 그 김성민이 볼티모어 오리올스와의 부정계약 시비로 징계를 받아 팀을 이탈하는 통에 다시 정상권에서 멀어지고 말았다.

2015년 전국 명문고 야구열전 결승전에서 지역 라이벌 경북고에 13-11로 승리를 거두고 우승을 차지했다. 3학년 2루수 이석훈이 최동원선수상[10]을 수상했다.

2015년 제69회 황금사자기에서 결승에 올라 17년만의 황금사자기 제패에 도전했으나 원투펀치 이영하-김대현이 버틴 선린인터넷고에 2:7로 역전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2015년 제70회 청룡기에서 성남고를 에이스 전상현의 활약으로 12:2 로 누르고 4년만에 정상 자리를 탈환하였다. 프로와 아마추어를 통틀어서 고척돔에서 열린 첫 야구대회 우승이다.

3. 출신 선수[11]

이름 포지션 프로입단 경력
서영무 내야수 - 경북대-공군
강태정 내야수 - 제일은행-한국전력
류영수 투수 - 제일은행-육군
정동진 포수 - 제일은행-해병대
우용득 포수 1982년 코치 겸 선수 제일은행-한일은행-삼성(1982~1983)
김한근 내야수 1982년 창단멤버 한양대-실업롯데-삼성(1982~1985)-빙그레(1985~1988)-태평양(1989~1990)
장효조 외야수 1983년 1차 한양대-포철-경리단-삼성(1983~1988)-롯데(1989~1992)
김시진 투수 1983년 1차 한양대-경리단-삼성(1983~1988)-롯데(1989~1992)
송진호 투수 1982년 창단멤버 건국대-포철-삼성(1982~1986)
박영진 투수 1982년 창단멤버 성균관대-삼성(1982~1984)
오대석 내야수 1982년 창단멤버 한양대-삼성(1982~1988)-롯데(1989~1991)
이만수 포수 1982년 창단멤버 한양대-삼성(1982~1997)
양일환 투수 1983년 1차 건국대-삼성(1983~1989)
홍승규 외야수 1983년 1차 성균관대-삼성(1983~1990)
김성갑 내야수 1985년 1차 건국대-삼성(1985)-빙그레(1986~1990)-태평양(1991~1995)
김용국 내야수 1985년 1차 한양대-삼성(1985~1993)-태평양(1994~1995)
이강돈 외야수 1985년 1차 건국대-빙그레/한화(1985~1997)
이종두 외야수 1985년 1차 한양대-삼성(1985~1996)-쌍방울(1997)
김정수 외야수 1987년 2차 4라운드 영남대-삼성(1987~1992))
이정훈 외야수 1987년 2차 1라운드 동아대-빙그레/한화(1987~1994)-삼성(1995~1996)-OB(1997)
김태한 투수 1992년 1차 계명대-삼성(1992~2001)-SK(2002~2003)
양준혁 외야수 1993년 1차 영남대-상무-삼성(1993~1998)-해태(1999)-LG(2000~2001)-삼성(2002~2010)
전상렬 외야수 1991년 연고지명 삼성(1991~1996)-한화(1997~1999)-두산(1999~2009)
허삼영 투수 1991년 연고지명 삼성(1991~1996)
전병호 투수 1996년 1차 영남대-삼성(1996~2008)
김승관 내야수 1995년 연고지명 삼성(1995~2004)-롯데(2004~2007)
권도영 내야수 1999년 2차 9라운드 고려대-현대(2003~2007)-넥센(2008~2011)
이영욱 투수 1999년 2차 8라운드 홍익대-SK(2003~2013)-삼성(2014)
차일목 포수 1999년 2차 5라운드 홍익대-KIA(2003~2015)-한화(2016~2017)
강영식 투수 2000년 2차 2라운드 해태(2000)-삼성(2001~2006)-롯데(2007~2017)
박기혁 내야수 2000년 2차 2라운드 롯데(2000~2014)-KT(2015~2018)
용덕한 포수 2004년 2차 8라운드 동아대-두산(2004~2012)-롯데(2012~2014)-KT(2015)-NC(2015~2016)
이영수 내야수 2000년 2차 4라운드 한양대-KIA(2004~2011)-삼성(2013)
장준관 투수 2000년 2차 1라운드 LG(2000~2008)
이정호 투수 2001년 1차 삼성(2001~2004)-현대(2005~2007)-넥센(2008~2010)
안지만 투수 2002년 2차 5라운드 삼성(2002~2016)
곽동현 포수 2003년 2차 7라운드 한양대-삼성(2007, 2011)
조현근 투수 2005년 2차 2라운드 두산(2005~2006)-삼성(2006~2016)
유선정 포수 2006년 2차 6라운드 현대(2006~2007)-넥센(2008~2016)
백정현 투수 2007년 2차 1라운드 삼성(2007~)
이상호 내야수 2010년 육성선수 입단강릉영동대-롯데(2010)-SK(2011)-NC(2012~)
우동균 외야수 2008년 1차 삼성(2008~2017)-가가와 올리브 가이너스(2018)
김민수 포수 2014년 2차 2라운드 영남대-한화(2014)-삼성(2015~)
김정수 외야수 2014년 육성선수 입단 성균관대-한화(2014~2015)
박화랑 투수 2010년 육성선수 입단 삼성(2010~2012)
백승민 내야수 2014년 2차 10라운드 삼성(2014~)
박지규 내야수 2015년 2차 5라운드 성균관대-LG(2015~)
배진호 내야수 2015년 2차 10라운드 고려대-삼성(2015~2016)
조무근 투수 2015년 2차 6라운드 성균관대-kt(2015~2017)-롯데(2018~)
최민구 외야수 2015년 2차 5라운드 영남대-삼성(2015~)
박승욱 내야수 2012년 3라운드 SK(2012~2019)-kt wiz(2019~)
이동훈 외야수 2012년 4라운드 삼성(2012~2016)
김성민 투수 2017년 2차 1라운드 후쿠오카경제대-SK(2017)-넥센/키움(2017~)
김태수 내야수 2017년 2차 7라운드 한양대-삼성(2017~)
이수민 투수 2014년 1차 삼성(2014~)
이창엽 내야수 2018년 2차 9라운드 한양대-kt(2018~)
최채흥 투수 2018년 1차지명 한양대-삼성(2018~)
정용준 투수 2015년 2차 4라운드 넥센(2015~2017)
채현우 외야수 2019년 2차 8라운드 송원대-SK(2019~)
이동훈 외야수 2016년 2차 2라운드 한화(2016~)
전상현 투수 2016년 2차 4라운드 KIA(2016~)
황경태 내야수 2016년 2차 2라운드 두산(2016~)
김현 투수 2018년 2차 5라운드 롯데(2018~)
백선기 외야수 2018년 2차 7라운드 KT(2018~)
배민서 투수 2019년 2차 4라운드 NC(2019~)



[1] 4대 메이저 + 협회장기[2] 1953년 우승팀. 1951~1952년 대회는 6.25 전쟁으로 중단[3] 1924년에 창단 되었다는 말이 있으나 KBO에서 발간한 한국야구사 연표에 따르면 1928년에 창단되었다고 나와 있다.[4] 고시엔 조선 예선.[5] 당시 멤버는 양일득(1루수), 편순윤(3루수), 오명오(좌익수), 니헤이(二甁. 투수), 최달수(崔達壽. 우익수), 스기하라(杉原. 포수), 미토(三戶. 중견수), 나이토(內藤. 2루수), 사다(佐田. 유격수).[6] 17회 용산중에 6-5 패, 18회 인천상업 4-3 패[7] 당시 고시엔 예선에 참여한 학교는 총 36개교 전후였다.[8] 어우홍MBC 청룡 감독의 친동생.[9] 문제의 그 심판은 말 많고 탈 많았던 심태석(심수창의 아버지)이었다.[10] 최동원상과는 다르다. 전국 명문고 야구열전 최우수선수에게 주어지는 상[11] 나무위키 등록 선수만... 졸업 연도 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