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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고등학교 야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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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고등학교 야구부
(Dongnae High School)
창단 1926년/1981년
해체 1962년/1998년
소속 리그 -
감독 -
과거 연고구단 롯데 자이언츠
우승 기록[1] 0회

대회 우승 준우승 4강
대통령배 - - -
청룡기 - 1회(1950) -
황금사자기 - 1회(1949) -
봉황대기 - - -
협회장기 - - -

1. 소개2. 해체3. 출신 선수

1. 소개

야구 도시인 부산광역시의 최고의 명문 학교중 하나로 꼽히는 동래고등학교에는 왜 야구부가 없는지 의아해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2] 동래고에도 야구부가 있었다.

동래고등학교는 일제강점기 시절인 1926년에 고교야구팀을 창단해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던 고등학교였다. 1932년에는 고시엔 조선예선 통과 직전까지 갔을 정도.[3] 그러나 해방 이후 동래고등학교는 축구부를 더 중시하는 경향이 강했고 지역내 다른 고교야구팀들, 특히 경남고부산고, 부산상고에 실력 있는 선수들을 빼앗기며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다.

최고 성적은 2번의 준우승콩라인이 전부. 1949년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에이스 어우홍을 내세워 결승까지 진출했으나 태양을 던지는 사나이, 장태영경남중에게 무릎을 꿇으며 준우승을 기록했고, 이듬해인 1950년에는 청룡기 전국고교야구 선수권대회에서 어우홍의 동생인 어지홍[4]을 앞세워 결승까지 진출했으나 대구상중에게 덜미를 잡히며 준우승에 그쳤다. 그리고 이것이 마지막 동래고등학교의 불꽃이었다. 프로야구 세대 성인들은 박지철이나 문동환있을 때 좀 한 학교정도로 기억하는듯.

이후 1962년에 해체되었다, KBO 리그가 출범하고 연고지 내에 롯데 자이언츠가 창단되면서 1981년에 동래고등학교 야구부가 재탄생했지만 최용수, 세상에서 제일 믿음직스러운 윤성효 등을 발굴해낸 축구부에 비해 모교의 관심도가 떨어지고 지원도 약해서 그저 그런 팀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재창단 후 4대 메이저 전국대회 출전이 지역예선 없이 전국 모든 팀이 참가하는 봉황대기 뿐이었다는 것이 이 팀의 위상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나타낸다. 그러나 롯데 자이언츠의 혼인 박정태, 소년가장이었던 박지철, 롯데 출신임에도 롯데를 싫어했던 99년 롯데 에이스 문동환도 이곳에서 배출해낸 명가 중 한 팀이었다. 그 외에도 쌍방울 레이더스 2차 지명에 계약금 2억 원을 받으며 기대를 모았던 최정환도 동래고등학교 출신. 롯데, 넥센에서 뛰었던 이정훈도 [[동래고등학교 야구부가 해체되기 3년 전에 졸업한 선수로, 그가 2016시즌을 끝으로 선수 생활을 은퇴하면서 동래고 출신 현역 선수는 더 이상 남지 않게 됐다.

2. 해체

IMF가 터진 1998년, 동래고등학교는 야구부를 해체 선언했고, 이로써 부산 지역 고고야구의 큰 불꽃이 하나 사그라 들었다. 야구부가 해체된 가장 큰 이유는 학교의 입지상 튀어나가는 볼에 따른 민원을 주체할 수 없어서라고(...). 학교 바로 앞에 왕복 6차선 도로와 지하철역까지 있는 대로변에 있는지라... [5]

3. 출신 선수

이름 포지션 프로입단 경력
서호진 투수 1989년 1차우선지명 경성대-롯데(1989~1994)
박정태 내야수 1991년 1차우선지명 경성대-롯데(1991~2004)
임주택 외야수 1991년 2차 2라운드 경성대-빙그레/한화(1991~2002)
문동환 투수 1995년 1차우선지명 연세대-현대전자(1995~1996)-롯데(1997~2003)-두산 (2003.12.10)-한화(2004~2009)
이동욱 내야수 1997년 2차 2라운드 동아대-롯데(1997~2003)
박지철 투수 1994년 연습생 입단 롯데(1994~ 2007)-LG(2009)
이정훈 투수 1996년 고졸우선지명 롯데(1996~2010)-넥센(2011~2016)


[1] 4대 메이저 + 협회장기[2] 마찬가지로 역사와 전통이 오래된 부산고등학교경남고등학교는 반대로 축구부가 없다. 부산에서 축구부와 야구부 둘 다 보유하고 있는 고등학교는 개성고등학교부경고등학교 단 둘 뿐이다.[3] 다만 아쉽게 평양중학에게 패하면서고시엔 본선 진출에는 실패했다.[4] 참고로 어우홍은 경남고, 부산상고 야구부 감독직을 지낸 적이 있으며 어지홍도 부산공고의 감독직을 지낸 적이 있지만 동래고에서는 부르지 않았다.[5] 그 외에도 동래고등학교에는 축구부와 테니스부도 있었다. 하나의 학교에 운동부가 너무 많았던 것도 동래고등학교 야구부 해체의 원인이 되었을것으로 추정된다. 축구부와 테니스부도 전국적인 지명도가 있는 전통적 강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