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16 20:40:37

광주동성고등학교 야구부

2019년 고교야구 주말리그 전라 B
파일:external/67.media.tumblr.com/tumblr_o8n8v2LQ4t1sqk8veo4_r1_250.png 군산상업고등학교 파일:D0GcVeV.jpg 광주동성고등학교 영산고등학교 파일:external/www.hifive.go.kr/K-439.gif 영선고등학교
파일:TH6ImKR.jpg 인상고등학교
파일:D0GcVeV.jpg
광주동성고등학교 야구부
(Gwangju Dongsung High School)
창단 1956년/1970년
소속 리그 전라권
감독 김재덕
연고구단 KIA 타이거즈
우승 기록[1] 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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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 우승 준우승 4강
대통령배2회(1988, 2005) 2회(1980, 2006) -
청룡기2회(2003, 18) 1회(2004) 2회(1986, 2008)
황금사자기1회(1977) - 5회(1983, 2006, 07, 13, 17)
봉황대기2회(1979, 2004) 3회(1985, 99, 2006) 3회(1974, 80, 98)
협회장기 - - 1회(2013)
1977년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신일고등학교 광주상업고등학교 신일고등학교
1979년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서울고등학교 광주상업고등학교 북일고등학교
1988년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
북일고등학교 광주상업고등학교 부산고등학교
2003년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광주제일고등학교 광주동성고등학교 성남고등학교
2004년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경남고등학교 광주동성고등학교 유신고등학교
2005년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
인천고등학교 광주동성고등학교 장충고등학교
2018년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
배명고등학교 광주동성고등학교 유신고등학교

1. 연혁2. 야구대제전3. 출신선수

1. 연혁

1956년에 광주상업고등학교 야구부가 생겼다고 하는데, 정작 활동한 기록은 별로 없고, 본격적으로 활동이 보이는 것은 고교야구가 전성시대에 접어든 1970년대였다. 1970년대 군산상고, 광주일고가 우승하면서 시작된 호남야구의 발전에 한 몫 거들면서 야구부의 역사가 시작되는데, 그 출발한 1977년 황금사자기 우승이었다. 그리고 2년 뒤 봉황대기에서 다시 우승을 차지하면서 짧은 기간에도 불구하고 좋은 경력을 이어갈 수 있었다. 1980년 대통령배 결승에 오르지만, 아쉽게도 동향의 라이벌 광주일고에게 패하면서 분루를 삼켜야 했고, 봉황대기 4강에서는 이상군에게 밀리면서 4강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리고 이 것이 일단 광주상고 야구부의 첫 전성기였다.

광주상고 야구부 두 번째 전성기는 1980년대 중후반으로 1985년 봉황대기에서 신동수를 앞세워 결승까지 올랐지만, 박동희가 이끄는 부산고에 밀려 우승을 놓쳤다. 그러나 이 때 쌓아올린 커리어는 1988년 대통령배에서 발휘되어 대구상고를 격파하고, 대회 첫 정상에 오르는데 성공하며 이어졌다. 하지만 이 때 이후로 다시 광주상고 야구부의 커리어는 한 동안 침체기를 경험하게 되는데 아무래도 광주일고에 철저히 밀린 영향이 컸다.

1999년 봉황기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면서 반전을 시작한 광주상고는 1979년 봉황대기 우승의 주역인 윤여국 감독[2]의 지도 아래 팀 전력이 급격하게 상승했다. 일반계 고등학교로 전환한 후에도 그 전력은 유지되어 2003년 청룡기에서 김수화의 순천효천고 상대로 막판 대역전극[3]을 펼치면서 청룡기 첫 우승에 성공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고교 무대에서 150Km을 던지는 한기주의 등장은 그야말로 날개를 달아준 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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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주

2학년 한기주는 2004년 청룡기 준우승을 이끌고, 봉황기 우승을 이끌면서 이미 초고교급 투수의 상징이 되었고, 3학년 때는 대통령배 우승을 이끌어 내면서 동성고에게 영광을 선사했고, 그 자신은 계약금 10억을 받으면서 2017년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는 기록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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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현종[4]

한기주가 졸업한 후, 2006년 1년 후배인 좌완 에이스 양현종을 앞세워 정상에 도전했지만 아쉽게도 대통령배에서는 장충고에게, 봉황대기에서는 덕수정보고에게 패하면서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2007년과 2008년에도 4강에 오르면서 꾸준한 동성고 야구부의 저력을 보여주는가 싶었지만, 2010년대 접어들면서 다소 침체기인 경향이 짙다. 그리고 새로 창설된 대한야구협회장기에서 4강에 진출했다. 2017년 첫 전국대회인 황금사자기에서 4강에 진출했으나 전년도 우승 팀 덕수고와 승부치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아쉽게 패했다.

미담으로, 2017년에 양현종이 모교 야구부에 버스를 기증했다는 훈훈한 소식을 전해왔다. 관련기사

2017년, 당시 2학년 에이스 김기훈을 앞세워 여러번 정상에 도전하였지만 황금사자기와 청룡기 모두 덕수고에게 각각 4강, 8강에서 패하면서 결승전에도 못 올라갔다. 삼수끝에 봉황대기에서 16강에서 덕수고에게 김의준(현 LG 트윈스)의 호투로 0:7로 이기면서 8강에 올랐지만, 8강에서 만난 충암고에게 0:5로 패하면서 또다시 우승의 꿈이 물건너갔다. 김기훈은 2학년때 부터 에이스 노릇을 하면서 결국 2019년 KIA 타이거즈의 1차 지명을 받게됐고, 양현종의 광주동성고등학교 12년 직속 후배로 김기훈의 롤모델 또한 양현종이다.

2018년 첫 전국대회인 황금사자기에서는 김기훈이 대상포진으로 빠진 가운데 1회전에서 북일고에 패해 탈락했다. 김기훈이 정상 가동된 청룡기에서는 설악고, 개성고, 신일고, 장충고를 차례로 꺾고 결승에 올랐다. 포항제철고와 치른 결승에서는 전날 준결승에서 규정 한계투구수(105개)까지 소화해 규정에 따라 등판하지 못한 김기훈이 우익수로 선발 출장해 2점홈런을 날리는 활약을 보이며 4-2로 승리하고 15년 만에 이 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2019년 황금사자기에서는 8강전에서 지역 라이벌 광주일고에게 패했고 청룡기에서는 16강전에서 황금사자기 우승 팀 유신고에 0-4로 패하며 2년 연속 우승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2. 야구대제전

  • 역대전적 : 9승 4패(부전승 2승 포함)
  • 최고기록 : 우승(2013 야구대제전)

광주상고 시절 참가한 1회 야구대제전에서는 부전승으로 16강에 진출, 이만수, 우용득, 김시진을 앞세운 대구상고와 만나서 4:4 접전끝에 9회초 우용득의 결승홈런으로 5:4로 아쉽게 패배했다. 2회 야구대제전에서는 1회전에서 부산상고와 만났는데 박노삼이 7이닝 2실점 호투를 펼쳤으나 8회와 9회에 급격히 무너지며 9실점을해 윤학길김용철이 버틴 부산상업고등학교에 11:2로 대패했다. 3회 야구대제전에서는 16강에서 인천고를 만나 타격전을 벌였으나 7회 1사 3루에서 인천고 김호인이 결승타를 치며 4:3으로 패배했다.

32년만에 부활한 야구대제전에 참가해 덕수고(4:3), 경남고(2:0), 세광고(6:8)을 차례로 꺾고 결승에 진출, 양현종을 앞세워 성남고와 접전 끝에 7대3으로 승리하며 우승을 차지했다. MVP는 당시 두산 베어스 2군 포수인 윤도경이 받았다.

2014 야구대제전에서는 개성고, 부산고를 꺾고 진출한 8강에서 마산용마고를 만나 아쉽게 패배했다.

3. 출신선수[5]

이름 포지션 프로입단 경력
김종모 내야수, 외야수 1982년 원년 멤버 영남대-제일은행-해태(1982~1992)
이순철 외야수 1985년 1차 지명 연세대-해태(1985~1997)-삼성(1998)
장채근 포수 1986년 1차 지명 성균관대-해태(1986~1994)-쌍방울(1994~1995)
신동수 투수 1986년 1차 지명 해태(1986~1993)-LG(1993~1997)-OB(1998)
홍현우 내야수 1990년 고졸연고계약 해태(1990~2000)-LG(2001~2004)-KIA(2005)
김재덕 외야수 1991년 고졸우선지명 입단 해태(1991~1998)
신경호 외야수 1992년 신고선수 입단 해태(1992~1994)
박충식 투수 1993년 2차 1라운드 경희대-삼성(1993~1999)-해태/KIA(2000~2003)
임동규 투수 1999년 2차 5라운드 동국대-삼성(2003~2010)
박준서[6] 내야수 2001년 2차 3라운드 SK(2001~2002)-롯데(2002~2015)
제춘모 투수 2002년 2차 1라운드 SK(2002~2014)
김다원 외야수 2008년 신고선수 입단 성균관대-한화(2008~2010)-KIA(2010~2018)
김주형 내야수 2004년 1차 지명 KIA(2004~)
임창민 투수 2008년 2차 2라운드 연세대-넥센(2008~2012)-NC(2013~)
허승민 외야수 2008년 2차 4라운드 건국대-삼성(2008~2015)
이원석 내야수 2005년 2차 2라운드 롯데(2005~2008)-두산(2009~2016)-삼성(2017~)
최주환 내야수 2006년 2차 6라운드 두산(2006~)
한기주 투수 2006년 1차 지명 KIA(2006~2017)-삼성(2018~)
신영재 포수 2011년 신고선수 입단 경성대-넥센(2011~2012)-삼성(2015)
양현종 투수 2007년 2차 1라운드 KIA(2007~)
임익준 내야수 2007년 2차 3라운드 삼성(2007~2011)-한화(2012~2018)
노진혁 내야수 2012년 드래프트 특별라운드 성균관대-NC(2012~)
윤명준 투수 2012년 1라운드 고려대-두산(2012~)
고장혁 내야수, 외야수 2013년 5라운드 성균관대-KIA(2013~)
문선재 내야수, 외야수 2009년 2차 7라운드 LG(2009~2018)-KIA(2019~)
윤효섭 외야수 2009년 2차 6라운드 KIA(2009~2015)
임익현 투수 2009년 2차 6라운드 삼성(2009~2010)
문동욱 투수 2014년 2차 1라운드 건국대-롯데(2014~2017)-한화(2018~)
문진제 내야수 2014년 2차 9라운드 원광대-두산(2014~2018)
유경국 투수 2010년 3라운드 LG(2010~2017)
신희섭 투수 2011년 신고선수 입단 송원대-삼성(2011)-경찰(2012~2013)
강경학 내야수 2011년 2라운드 한화(2011~)
문우람[7] 외야수 2011년 신고선수 입단 넥센(2011~)
김원중 투수 2012년 1라운드 롯데(2012~)
이성규 내야수 2016년 2차 4라운드 인하대-삼성(2016~)
박규민 투수 2014년 2차 1라운드 SK(2014~2018)-kt(2019~)
이태훈 외야수 2018년 2차 4라운드 홍익대-삼성(2018~)
김민혁 내야수 2015년 2차 2라운드 두산(2015~)
방건우 투수 2015년 2차 4라운드 두산(2015~2018)
김홍빈 투수 2016년 육성선수 입단 넥센(2016~2017)
남기효 투수 2016년 2차 7라운드 삼성(2016~2017)
신범수 포수 2016년 2차 8라운드 KIA(2016~)
김진호 투수 2017년 2차 2라운드 NC(2017~)
김석환 외야수 2017년 2차 3라운드 KIA(2017~)
박진수 외야수 2017년 2차 7라운드 한화(2017)
이주형 투수 2017년 2차 9라운드 한화(2017~)
김의준 투수 2018년 2차 6라운드 LG(2018~)
한준수 포수 2018년 1차지명 KIA(2018~)
김기훈 투수 2019년 1차지명 KIA(2019~)


[1] 4대 메이저 + 협회장기[2] 언더스로 투수였으며 당시 광주상고 유격수는 이순철이었다. 성균관대와 실업야구팀 한국화장품을 거쳐 지도자의 길로 들어섰다. 광주상고(광주동성고)를 거쳐 배명고, 전주고의 지휘봉을 잡았다.[3] 2대9로 지고 있던 경기를 10대9로 뒤집었다. 포수 명정주가 끝내기 안타를 치면서 경기 종료. 김주형의 동기이기도 한 명정주는 한양대를 거쳐 육군 장교의 길을 걸었다.[4] 사진은 졸업 후 야구대제전에서의 투구 모습이다.[5] 나무위키에 등재된 선수 한정. 졸업 연도 순.[6] 2009년 박남섭에서 개명.[7] 승부조작 혐의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