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7-09 18:05:54

임익준

임익준의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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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라이온즈|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64번
이재덕
(2006)
임익준[1]
(2007~2007.4.6.)
채태인
(2007.4.7.~2008)
[[삼성 라이온즈|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9번
김경모
(2008)
임익준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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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임익준
(2010~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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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이글스|한화 이글스]] 등번호 53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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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임익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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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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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익준
(2013~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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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익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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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2016)
임익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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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현상
(2016~2017)
임익준
(2018~2018.8.26.)
조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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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일:(주)본아이티_스코어본하이에나들_임익준코치님.jpg
임익준
林翼晙|Lim Ik-Joon
출생 1988년 3월 15일 ([age(1988-03-15)]세)
광주광역시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광주화정초 - 충장중 - 광주동성고
포지션 내야수[2]
투타 우투우타
프로 입단 2007년 2차 3라운드 (전체 24번, 삼성)
소속팀 삼성 라이온즈 (2007~2011)
한화 이글스 (2012~2018)
지도자 스코어본 하이에나들 주루코치 (2021)
광주제일고등학교 야구부 코치 (2022~2023)
부천고등학교 야구부 코치 (2024~)
병역 상무 피닉스 야구단
(2006년 11월 27일~2008년 11월 10일)
정보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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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동생 임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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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2.2. 삼성 라이온즈 시절
2.2.1. 2007~2008 시즌2.2.2. 2009 시즌2.2.3. 2010 시즌2.2.4. 2011 시즌
2.3. 한화 이글스 시절
2.3.1. 2012 시즌2.3.2. 2013 시즌2.3.3. 2014 시즌2.3.4. 2015 시즌2.3.5. 2016 시즌2.3.6. 2017 시즌2.3.7. 2018 시즌
3. 지도자 경력4. 연도별 주요 성적5.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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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前 야구 선수이자 現 광주제일고등학교 야구부 코치.

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

투수 양현종과 광주동성고 동기로, 고교시절 유격수3루수로 활약했다. 2006년에는 대한민국 U-18 야구 국가대표팀에 차출되어 IBAF 세계청소년야구대회에 참가, 결승전에서 미국을 상대로 9회말 마지막 공격에서 끝내기 안타를 뽑아 통산 4번째 우승에 기여했다. 당시 대표팀에는 김광현도 있었는데 화려한 투수진의 뒤에는 탄탄한 내야진이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활약으로 인천고의 김남형, 덕수고의 김민성과 함께 고교 3대 유격수로 꼽히던 유망주였다.

2.2. 삼성 라이온즈 시절

파일:/image/poktannews/2010/06/24/201006241814779760_1.jpg

2.2.1. 2007~2008 시즌

좋은 컨택에 빠른 발, 준수한 야구 센스를 갖춰 삼성 라이온즈 키스톤 콤비의 미래로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삼성의 유격수는 박진만(...).

일단 병역을 해결하기 위해서 고교졸업 후 입단하자마자 곧바로 상무에 입대하여 병역을 해결했다. 원래는 송승준을 위한 자리였는데 송승준올림픽을 노리고 군 입대를 연기하는 바람에 한 자리가 비었고, 이 TO를 채우기 위해 임익준이 대신 입대했다. 2007~2008 2시즌을 상무에서 보내고 2009 시즌을 앞두고 전역,[5] 만 21세에 군필 선수가 되면서 동 나이대 선수들에 비해 상당히 빠른 나이에 병역 문제를 해결했다.

2.2.2. 2009 시즌

2009년에는 퓨처스리그 올스타로 뽑힐 정도로 활약을 했지만, 정작 1군에서는 올라왔다가 내려가는 등 별다른 활약이 없다.[6] 2009년 프로필 사진을 보면 동생 임익현이 신 유니폼을 입고 찍은 사진이 있는데, 정작 본인은 구형 유니폼을 입고 있다(95 유니폼). 그런데 2010년에 신형 유니폼(2008 유니폼)을 찍은 사진이 나왔다.

2009 시즌 2군 남부리그에서 25개의 도루를 기록, 한화 신석기(35개)에 이어 남부리그 도루부분 2위를 했다.

2.2.3. 2010 시즌

2010년 4월 25일 양신의 대주자로 나와 첫 1군 출장했다. 그런데 최잉여가 땅볼을 치는 바람에...

2010년 4월 30일 대전 한화전에서 박진만을 대신해서 유격수로 나와 처음으로 타석에 들어섰는데 우익수 플라이 아웃으로 물려났다. 경기중에 캐스터가 임익준을 박진만으로 잘못 불렸다. 뭐 듣보니 좀 이해해주자

2010년 5월 5일 신명철을 대신해서 선발 2루수로 나와 5타수 2안타를 기록했다. 득점찬스에서 주루사를 당한게 흠. 다만 유격수 수비면에서는 박진만보다 낫다는 평. 이게 다 박진만의 급격한 먹튀화 때문이다

2010 포스트 시즌을 앞두고 손주인과 내야 유틸 자리를 두고 경쟁했다. 발이 느린 손주인과 달리 대주자로서의 활용 가능성은 있지만 손주인보다 수비 안정성이 떨어진다는 평.

2.2.4. 2011 시즌

2010 시즌 후 마무리훈련 때 내야수 중 가장 많은 기량향상을 보였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정작 2011 시즌에는 2군에만 머물러 있는 데다가 그나마도 부상으로 2달 가량 경기에 못 나왔다. 그리고 박진만의 후계자는 김상수가 대신 차지하였다.

2.3. 한화 이글스 시절

2.3.1. 2012 시즌

2011년 11월 22일 처음으로 시행된 2차드래프트 3라운드에서 한화에 지명되었다. 한대화 감독이 삼성 수석코치 시절 눈여겨 봐두었다고.

하지만 같은 시기에 2차 드래프트를 통해 이적해온 최승환, 이학준과 달리 출장 기회를 거의 얻지 못했다. 시즌 초반 대주자로 간간이 기용된 것이 전부였고, 퓨처스리그에서도 12경기 출장에 그쳤다.

2.3.2. 2013 시즌

그렇게 한 동안 모습을 볼 수 없었는데, 2013년 5월 24일 자로 드디어 1군에 복귀했다. 허나 8회말 대타로 나와서 헛스윙 삼진(...). 주로 3루수로 출장했다.

2.3.3. 2014 시즌

담 증세로 엔트리에서 빠진 김회성을 대신해 6월 28일 시즌 처음으로 1군에 등록되었다.

28일과 29일에 거쳐 1타석만 들어섰고 7월 4일에 다시 말소되었다.

이후 육성선수로 전환되었다.

2.3.4. 2015 시즌

육성선수로 전환되었다가 2015년 6월 28일에 정식선수로 재등록되었다. 이 로스터 조정으로 정민혁이 팀에서 웨이버 공시되었다.

그럼에도 별 활약을 하지 못하고 시즌 후 보류선수에서 제외된 뒤 다시 육성선수로 전환되었다.

2.3.5. 2016 시즌

2016년 7월 29일에 외야수 고동진웨이버 공시되어, 그 자리에 정식선수로 등록되었다. 어찌 매년 반복되는 뫼비우스의 띠 같다. 귀신같이 매년 살아 남는 불사조

2.3.6. 2017 시즌

야수진의 부상으로 3월 31일 개막전 엔트리에 유격수이자 6번 타자로 이름을 올렸으나 키스톤 콤비인 강경학과 자동문 조인성과 함께 도합 4실책을 저지르며 비야누에바의 개막전 무자책 패배의 원흉이 되었다. 결국 다음날 곧바로 하주석이 등록됨과 동시에 말소되어 아름다운 2군행. 수비 요원임에도 수비에서 영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었던지라 팬들도 쌍수를 들고 환영하는 중.

이후 4월 23일에 불미스러운 일로 2군으로 내려간 양성우, 오선진을 대신해 강상원과 함께 1군에 등록됐다....가 26일에 조용히 다시 2군으로 내려갔다. 우스운건 사실 이때 임익준도 오선진, 양성우와 같이 있었다. 하지만 팬들이 못알아봐서 안걸렸다고.[7]

6월 29일 15타수 1안타로 6푼이(...)가 된 오선진이 서산으로 내려가면서 콜업되었다. 7회말 2타점 적시타를 친 최진행의 대주자로 투입되었고 8회 무사 1,2루에서 타석에 섰으나 양성우가 2루에서 3루 도루하다 죽고[8], 자신도 병살타를 치며 이닝을 강제종료시켰다. (...)

6월 30일 3루수 김태연의 대타로 나온 최진행 대신 대수비로 투입되었다. 그리고 시즌 첫 멀티히트로 활약했다. 무려 3년만에 안타를 친 것이라 한화 팬들 사이에서 CG가 아니냐는 드립이 흥했다.

이후 3루수에 들어가거나 대수비, 대주자로 출장하고 있다.

7월 27일 9회말 롯데전 6대 3 상황에서 2루 주자 김태균의 대주자로 투입되었으나 득점하지 못했다. 이후 지명타자 자리를 이어받아 수비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8월 초까지 1군에 머무르며 수비, 출루, 안타로 활약을 해줬다. 그러나, 히트앤런 사인을 놓쳐서 주자 최재훈이 도루사한 경기 이후 2군행. 그러나 준수한 활약을 해줬기에 최소한 시즌 말 32인 확대 로스터에는 올라올 가능성이 높다.

이후 최태원 3루 코치의 영혼의 울부짖음(...)에도 3루에서 홈으로 뛰지 않는 등[9] 부족한 모습을 보여줬지만 정근우의 부상, 강경학의 몰락 등으로 인해 꾸준히 출전하였다.

2.3.7. 2018 시즌

김경언, 정대훈, 김기현, 김용주, 허도환 등 애매한 능력치를 지닌 애매한 나이대의 선수들이 방출, 2차 드래프트 등으로 팀을 떠나는 와중에 또 다시 살아남았다. ???: 너도? 허나 조지훈, 이창열 등과 함께 육성선수로 전환된 것이 확인되었다.

2018년 8월 12일 임익준 인스타에 은퇴를 암시하는 듯한 글이 올라와 있다. 그리고 8월 23일 공식 홈페이지 선수 명단에서 제외되었다.

3. 지도자 경력

이후 한동안 소식이 없다가 독립야구단 스코어본 하이에나들의 코치로 간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하이에나들이 해체된 뒤에는 고향 광주로 돌아가 광주일고 코치로 자리를 옮겼다.

4.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출장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7 삼성 군 복무 (상무 피닉스 야구단)
2008
2009 1군 기록 없음
2010 64 63 .175 11 0 0 0 5 10 4 0 .175 .172
2011 1군 기록 없음
연도 소속팀 출장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12 한화 10 5 .000 0 0 0 0 0 1 1 0 .000 .000
2013 36 63 .254 16 1 0 0 1 6 1 4 .270 .299
2014 6 10 .300 3 0 0 0 0 2 0 0 .300 .300
2015 4 2 .000 0 0 0 0 1 1 0 0 .000 .000
2016 3 2 .000 0 0 0 0 0 0 0 0 .000 .000
2017 30 36 .250 9 1 0 0 2 7 1 7 .278 .372
2018 1군 기록 없음
KBO 통산
(7시즌)
153 181 .215 39 2 0 0 9 27 7 11 .227 .258

5. 관련 문서


[1] 2007 시즌 개막 하루 후 상무에 입대. 등번호는 역시 시즌 개막 후 정식 입단한 채태인에게 승계되었다.[2] 내야 유틸리티 플레이어였다.[3] 얼마나 즐거운지 몰라요 오! 한화 임익준~ 날려주세요 우리를 위해 한화를 위해~ 얼마나 즐거운지 몰라요 오! 한화 임익준~ 날려줘요 승리가 우리에게로~ 한화에게로~[4] 응원가는 좋은 편인데 1군에서 불려진적이 거의 없어 응원가를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다.[5] 참고로 동생인 임익현은 같은 팀에 입단했다가 2년만에 방출.[6] 선동열 감독이 신인 내야수/툴 좋은 내야수보다는 당장 안정적으로 공을 받아낼 수 있는 선수를 선호하는 경향의 덕도 있다. 철저하게 투수 위주로 야구를 풀어가는 편이라... 물론 2010년 들어서 약간은 변화한 모습이지만서도.[7] 다만 양성우의 증언에 따르면 저때 사진에 찍힌 임익준의 신발이 당시 여자친구가 사줬던 신발이어서, 여자친구에게는 나이트를 갔던게 딱 걸렸고, 이별통보를 받았다고 한다(...)[8] 번트 실패성 플레이+양성우의 리드 폭 조절 실패[9] 뭐 그 경기에서 팀이 이기기는 이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