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8-17 11:34:03

강명구

파일:나무위키+유도.png   동명의 프로게이머에 대한 내용은 강명구(프로게이머)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 align=center><table width=320><table bordercolor=#074CA1> 파일:SL_emblem.png 삼성 라이온즈
2020 시즌 코칭스태프
}}} ||
{{{#!wiki style="color:#074CA1"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1px; color:#000000"
'''71 조동찬 · 72 이윤효 · 74 박재현 · 75 조규제
· 76 이영수 · 77 김종훈 · 78 강봉규 · 79 박진만
· 85 최태원 · 88 오치아이 · 89 이정식 · 90 권오원
· 91 정현욱 · 97 강명구 · 98 채상병 · 99 황두성 · - 허삼영 [[감독#s-1.1|
]] · - 김용달'''
코칭스태프투수포수내야수외야수
다른 KBO 리그 팀 명단 보기
}}}}}}}}} ||
강명구의 수상 이력 / 역대 등번호
{{{#!folding [ 펼치기 · 접기 ]
한국시리즈 우승 반지
2005 2006 2011
2012 2013

파일:external/66.media.tumblr.com/tumblr_o72v3jpgxR1sqk8veo5_r6_250.png
2009 KBO 퓨처스 북부리그 타격왕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9번
김승권(2002) 강명구(2003~2007) 김경모(2008)
임익준(2009) 강명구(2010~2014) 이영욱(2015)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97번
정우양(2016) 강명구(2018~) 현역
}}} ||

파일:sMQ99Ua.jpg
2012년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주루로 득점한 뒤 포효하는 모습. 컴투스 프로야구 for 매니저에서 프로필 사진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파일:external/cfs3.tistory.com/download.blog?fhandle=YmxvZzU5MzkwQGZzMy50aXN0b3J5LmNvbTovYXR0YWNoLzIvMjA5LkpQRw%3D%3D.jpg
영광의 현역 시절 모습들.

파일:external/a2e96d776cea36b101dc056c3e25b841743af0169f7b74c5c1247fbb389c513c.jpg
전력분석원 시절
삼성 라이온즈 No.97
강명구(姜明求 / Myeong-Koo Kang)
생년월일 1980년 10월 25일
출신지 광주광역시 동구
학력 광주중앙초 - 광주진흥중 - 광주진흥고 - 탐라대
포지션 내야수[1]
투타 우투좌타[2]
프로입단 2003년 2차 1라운드 지명(전체 7번, 삼성)
소속팀 삼성 라이온즈 (2003~2014)
지도자 삼성 라이온즈 2군 주루코치 (2018)
삼성 라이온즈 1군 주루코치 (2018. 6. 26.~ )
등장곡 The Chainsmokers - #Selfie
응원가 산울림 - 《개구쟁이링크[3]

1. 소개2. 선수 생활
2.1. 2011 시즌2.2. 2012 시즌2.3. 2013 시즌2.4. 2014 시즌2.5. 연도별 성적
3. 지도자 시절4. 이모저모

1. 소개

방망이는 믿을 게 못 돼요. 근데 발에는 슬럼프가 없어요.
SBS Sports 다큐멘터리 '야구의 기술 4회 스틸, 도루는 열정이다'에서 인터뷰했을 때 말한 것이다.
아 이 망할 야구장!
ㅡ 2011년 4월 16일 대구구장 정전 사태때 한 말.

삼성 라이온즈 소속 내야수[4]이자, 한국프로야구를 대표했던 대주자. 현재는 삼성 1군(2018년 7월) 코치이다.

선발로 나오는 일은 거의 없지만, 빠른 발이라는 1툴만으로 경기 후반 승부처에 항시 대기하고 있어서 삼성 1군 붙박이 멤버로 활동했다. 단순히 발만 빠른 게 아니라 주루 센스 또한 뛰어나서, 통산 도루 성공률이 82%에 달했다.(111도루 24도실)[5] 덕분에 승부처에서 대주자로 올라와 상대 배터리를 강하게 흔들고 추가 득점을 내주는 스페셜리스트 역할을 맡았다. 타격 능력이 떨어지는 대신 다른 능력을 극대화시켜 궂은 일을 도맡아한 좋은 서브 선수였다는 점은 김재걸과 같았지만, 김재걸과 달리 수비 툴은 없었고 오직 주루 능력 하나로 살아남았다는 점에서 그 희소성이 더욱 부각되었던 선수였다.

2. 선수 생활

제주 탐라대학교[6] 출신으로 진흥고 시절에는 그렇게까지 두각을 나타낸 선수가 아니었지만, 대학 리그에서 빠른 발과 괜찮은 타격 실력을 자랑하는 유격수로 성장했다. 일설에는 두산 베어스김민호의 후계자로 눈독을 들였으나, 삼성이 먼저 채갔다고. 비록 승부수를 띄울 때 대주자로 주로 나왔던 선수였지만, 삼성답게 2차 1순위 지명 선수로 재미를 꽤 본 케이스 중 한 명이다. 대신 두산은 그 해 신고선수손시헌을 건졌다.

빠른 발이 특징이어서 거의 대주자로 뛰었으며, 주루 스피드가 이대형보다도 빠르다는 평가도 나왔다. 레알 풀 타임 기회만 주어지면 50~60도루는 가능했을 정도. 그러나 타격은 그 이대형보다도 못했기 때문에...사실 2007년 이대형은 타격도 제법 했었고 골글 수상자였다.

하지만 빠른 발 덕분에 2006년에는 단 1안타만 치고도 대주자로 나와 21도루를 기록했다. 흠좀무. 2004년 한국시리즈 9차전에서는 미친 듯이 주루해서 앞 주자를 추월하는 바람에 앞 주자가 아웃되기도 했다.[7] 그리고 똑같은 일이 2012년 한국시리즈에서도 일어날 뻔했다.

2007년 시즌 종료 뒤 상무에 입대했다. 이후 0.385의 타율2009년 2군 북부리그 타격 1위에 올랐으며, 39도루를 기록해 북부리그 도루왕도 차지했다. 당시 북부리그 2위였던 하지호와는 무려 13도루 차이였다.

2009년 10월 22일 이정식과 동반 제대하였다. 과연 삼성 라이온즈의 진정한 발야구를 실현할지 기대를 모았지만, 2010년에 도루는 단 7개를 기록했다. 하지만 .270의 타율을 기록, 확실히 타격은 군입대 전보다 업그레이드되었다! 역시 남자는 군대를 갔다 와야

두산 베어스와의 2010년 플레이오프에서 2, 3, 5차전에 대주자로 출장하여 2득점을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3승 2패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SK 와이번스와의 2010년 한국시리즈에서 1차전은 대수비, 2차전은 대타로 출장하여 1타수 무안타, 타율&장타율&출루율 0을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4패로 준우승에 그쳤다.

2010년 12월 4일에 결혼했다.

2.1. 2011 시즌

2011년 4월 27일 잠실 두산전에서 홍상삼을 상대로 선수 생활 유일한 홈런을 쳤다. 홈런을 쳤을 당시 기준 KBO 공식 최고령 데뷔 홈런.[8] 2년 후 홍삼삼성에게 2일 연속으로 끝내기 얻어맞았다


5월 25일 기준으로 도루를 11회 시도하여 모두 성공했다. 고로 성공률 100%라는 황당한 스탯을 기록했다. 이후 도루 성공률 100%는 깨졌지만, 대주자로 자주 나온다는 점에서도 굉장히 특이하면서도 대단한 기록이다.

9월 20일 두산전에서 11회 말 페르난도 니에베의 폭투를 틈탄 주루 플레이로 팀의 역전을 이끌며 자신의 대주자로서의 가치를 입증했다. 2루에서 출발한 강명구가 3루를 돌아 홈으로 향하자 페르난도가 홈 커버를 왔을 때, 그의 태그를 피해 베이스를 터치하는 장면은 압권.

SK와의 2011년 한국시리즈 1, 2차전은 결장하고 3, 4차전은 대주자로 출장하여 4차전에서 득점을 올렸다. 팀은 시리즈 전적 4승 1패로 우승하였다.

2.2. 2012 시즌

역시나 작년과 똑같은 대주자 전문. 타석에 들어서는 일은 거의 없었고 수비도 거의 하지 않았다. 철저히 경기 후반 승부처에 나오는 대주자 전문이었다.

7월 19일, 한화 이글스와의 대전 원정 경기에서 팀이 스코어 3:5로 지고 있던 8회초에 진갑용의 대주자로 기용되어 들어갔다. 그리고 이지영의 안타 때 열심히 홈으로 달렸으나, 홈에 먼저 공이 들어가 있었고 슬라이딩도 하지 않고 그냥 걸어들어갔다가 아웃 처리되었다. 이 때문에 스코어 5:5가 될 상황이 4:5가 되었고, 그와 김재걸 3루 코치는 괜히 까였다. 그리고 바로 9회초에 교체되었다.

9월 5일, LG 트윈스와의 대구 홈 경기에서 스코어 0:0이던 7회말 이지영대주자로 1루에 들어갔다. 이후 정형식, 조동찬의 진루타로 2사 3루 상황. 타석에는 김상수. 리드 폭을 길게 잡으면서 홈 스틸을 시도했는데, 선발 투수 리즈가 이를 보고 깜짝 놀라 보크를 범했다. 그렇게 리즈를 강하게 흔들어 놓은 강명구는 홈인에 성공했다.[9] 결국 이 득점이 결승 득점으로 되어 삼성 라이온즈는 9회에 오승환이 뒷문을 단속해서 스코어 0:1로 LG 트윈스를 이겼고, 강명구에게 흔들린 리즈는 완투패를 당했다. 강명구는 이 날 경기의 수훈 선수에 선정되어, 사인하고 인터뷰까지 했다.

SK 와이번스와의 2012년 한국시리즈에서도 엔트리에 포함되어 1, 3, 4차전에 대주자로만 출장, 2득점을 기록했다. 대구에서 열린 1차전에서 팀이 스코어 1:2로 앞선 7회 초 무사 2루에서 이지영의 대주자로 출장, 다음 타자이자 1번타자인 배영섭의 내야안타 때 과감하게 홈으로 들어와 쐐기 득점을 하여 왜 자신이 KS 엔트리에 포함되었는가를 증명해 냈다. 이 결승 득점으로 윤희상은 결국 완투패를 당했다. 팀은 시리즈 전적 4승 2패로 우승하여 2년 연속 페넌트레이스&한국시리즈 우승을 달성했다.

2.3. 2013 시즌

작년과 똑같이 대주자 역할로 개막전 엔트리에 들어갔으나 4월 2일 1군에서 말소되었다. 4월 18일 SK와의 경기를 앞두고 박석민의 허벅지 부상으로 인해 다시 1군에 등록되어 바로 7회말 진갑용의 대주자로 나가서 도루 1개를 기록했다. 하지만 9회말 무사 1루 상황에서 병살타를 침으로써 팀이 한 경기 최다 병살타 타이 기록(4개)을 세우는 데 한몫을 했다. 타구 질은 나쁘지 않았으나 상대 유격수 박진만이 잘 잡아냈다. 하지만 이후엔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한 가운데 4월 24일 LG와의 경기 도중 대주자로 나섰다가 런다운 상황에서 발목 부상을 입어서 4월 25일 다시 2군으로 내려갔다.

5월 12일 자로 손목 통증으로 인해 2군으로 내려간 박한이를 대신해서 다시 1군으로 올라왔으며 5월 15일 두산과의 경기에서 본인의 통산 100번째 도루를 달성하였다. 이 날까지의 도루 100개 가운데 96개가 교체되어 출장한 경기에서 기록한 것이나 가히 대주자 장인이라 할 만하다.

5월 18일 NC와의 경기에서 9회초 몸에 맞는 볼로 출루한 최형우의 대주자로 교체되고 도루 1개를 기록했다. 그리고 박석민의 2루타로 득점에도 성공하여 동점을 만들어 냈다. 그러나 추가 득점에 실패한 이후 벤치에 남은 외야수가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9회말부터 4번타자 좌익수[10]로 경기에 계속 참여. 10회초엔 평범한 2루수 땅볼로 물러났지만 12회초엔 중전 안타를 때려 1타점을 올리고 다음 타자인 채태인의 안타로 득점도 성공하였으며 9회말과 11회말엔 명수비(?)를 선보이는 등 간만에 주루가 아닌 공수 양면에서 좋은 활약을 해 주었다.

6월 4일 넥센과의 경기에서는 8회초 볼넷으로 출루한 채태인의 대주자로 기용되었지만 한현희에게 견제사를 당했다. 6월 5일 넥센과의 경기에서는 이승엽의 대주자로 들어갔으나 첫 도루 실패를 당했다.

6월 20일 결막염으로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되었고 7월 9일 복귀했다. 7월에 잠깐 김상수의 부상으로 키스톤에 공백이 생긴 적이 있었는데 정현과 함께 시범적으로 기용되었다가 7월 25일 NC 다이노스와의 경기에서는 아예 7번타자 2루수로 선발 출장(!)하여 4타수 1안타 1득점을 기록했다. 타격은 여전히 좋지 않지만 출루해서 배터리를 흔드는 실력만큼은 일품. 7월 26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도 역시 7번타자 2루수로 선발 출장하여 5타수 1안타 1타점 1득점을 기록했다. 6점 차로 크게 앞서다가 한 점차 턱밑까지 추격을 허용한 상황, 앞선 타석에서 병살타까지 나와 자칫 분위기를 넘겨줄 수도 있는 2사 상황에서 천금같은 적시타를 때려냈다. 그 뒤 주자로서도 곧장 3루까지 2연속 도루를 기록하는 발군의 주루를 펼쳐 득점까지 연결시켰다. 이날 경기 승부처의 주인공이라고 할 만한 활약을 선보였다.

두산 베어스와의 2013년 한국시리즈에서 1, 2, 4, 5차전에 대주자로만 출장하여 1타수 무안타 2도루 1득점, 타율&장타율&출루율 0을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4승 3패로 우승하여 3년 연속 페넌트레이스&한국시리즈 우승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했다. 이로써 한국시리즈 우승 반지만 5개째!

2.4. 2014 시즌

오키나와 2차 스프링캠프 도중 머리에 공을 맞아 시범경기에 나오지 않고 휴식을 취하였다. 류중일 감독은 빠르면 개막전 즈음에 등록될 수도 있다고 언급하였다. 하지만 개막전 엔트리 포함은 커녕 2군에도 출장하지 못했고 대신 박찬도, 박해민 등의 신인들이 기회를 얻으면서 강명구가 낄 틈이 좀처럼 생기지 않았다.

5월 22일에서야 2군 경기에 출장하기 시작했고, 5월 27일 김태완을 대신해 1군에 올라왔다. 1군에 올라온 후 대주자로만 2경기 나왔고, 6월 9일 2군으로 내려갔다. 6월 25일 백상원을 대신해 1군에 올라왔다.

8월 1일 조동찬이 복귀하면서 대신 2군으로 내려갔다. 이후 부상이라도 있었는지 8월 14일 이후로는 2군 경기에 출장하지 않았다. 10월 6일 옆구리 통증으로 빠진 박석민을 대신해 1군 엔트리에 등록됐다.

아쉽게도 2014년 한국시리즈에는 부상으로 인해 출전하지 못했다. 시즌 후 보류선수 명단에서 제외되어 방출되었으며, 대신 삼성 라이온즈에서 제안을 받아 전력분석관을 맡게 되었다.

2.5. 연도별 성적

역대기록
연도 출장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3 삼성 라이온즈 9 3 .000 0 0 0 0 0 1 1 0 .000 .000
2004 15 11 .273 3 0 0 0 1 2 0 0 .273 .273
2005 106 44 .250 11 1 0 0 2 30 21 6 .273 .340
2006 91 19 .053 1 0 0 0 1 22 21 5 .053 .250
2007 68 27 .111 3 0 1 0 2 13 13 5 .185 .250
2008 군 복무(상무 피닉스 야구단)
2009
2010 55 63 .270 17 5 0 0 9 17 7 3 .349 .303
2011 89 58 .172 10 1 0 1 5 22 19 5 .241 .234
2012 72 10 .100 1 0 0 0 0 16 15 1 .100 .182
2013 55 58 .190 11 0 1 0 6 22 11 5 .224 .254
2014 21 4 .000 0 0 0 0 0 8 3 0 .000 .000
KBO 통산
(10시즌)
581 297 .192 57 7 2 1 26 153 111 30 .239 .265

3. 지도자 시절

2017년 시즌이 끝난 후 2군 주루코치를 맡아 삼성 선수단에 합류했다.

2018년 주루코치 보직변경을 하며 내려온 김재걸, 박재현코치대신 박진만코치와 함께 주루코치를 맡게 되었다.

4. 이모저모

출전기회가 적은 대주자답게 마구마구에서 모든 시즌이 노말이다. 기용이 많았던 시즌은 노말임에도 덱 보너스와 순속이 되면 쓸만하다. 스피드가 가장 좋은 시즌은 본인 한 시즌 최다 타이 기록인 21도루를 기록한 2006 시즌이다.(2005, 2006년 연속 21도루를 하였다.) 스피드 76.

삼성 시절 권혁도 노말 주제에 직구 스탯이 86인 카드도 있는데 21도루 치고는 짜게 준 감이 있다.

선수 시절 억대 연봉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지만, 우승보너스를 제외한 실제 최고 연봉은 6천만원이었다.


[1] 일단 주 포지션은 2루수3루수유격수, 1루수도 볼 수는 있다. 수비 때 나온다면. 심정수가 있던 시절에는 좌익수도 봤다. 경기 후반 심정수의 대주자로 교체되어 출장하면 공수교대 후 심정수가 맡았던 좌익수로 나왔다.[2] 원래는 좌타자였다가 2007 시즌 스위치 히터로 전향했다. 그러나 우타석에 들어선 적은 없다. 상무 입대 후 다시 좌타자로 변경.[3] 한화 이글스 내야수 정근우SK 와이번스시절 응원가와 같은 곡을 쓴다. 가사는 라이온즈 강명구 뜀을 뛰고 안타치고 놀아요~. 이전에는 포미닛의 《muzik》을 썼다.[4] 2010년대 이후 사실상 내야 백업으로 포지션이 고정되었다. 이후 외야 포지션에 들어간 건 2013년 1차례가 전부.[5] 역대 100도루 이상 선수 가운데서 성공률 2위에 해당한다. 1위는 다소 놀랍게도 조동찬이 83%로 앞선다.참고[6] 제주산업정보대학과 통합하여 2012년부터 제주국제대학교로 변경되었다. 송창현의 모교.[7] 변명을 해주자면, 비가 워낙 심해 앞이 보일 상황이 아니었다. 당시 날씨가 어땠는지는 2004년 한국시리즈 항목 참조.[8] 참고로 이 기록은 7년 후 유재신이 경신하게 된다. 참고로 데뷔 이후 가장 마수걸이 홈런을 늦게 친 선수도 유재신이다. 강명구는 대졸이라서 데뷔가 늦은 편이지만 유재신은 고졸이라 데뷔마저 한참 빠른 편.[9] 정작 강명구 본인은 홈인한 후 리즈의 보크 사실을 알았다고 한다. VOD에서도 잘 보면 주심이 멈칫했던 리즈에게 손 제스쳐로 보크를 지적하는 장면이 나오고, 하일성도 리즈의 보크라고 말했다.[10] 경기에 수비수로 볼 기회가 없어 그렇지 주 포지션은 내야수다. 외야수로의 출장은 2010년 이후 약 3년 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