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5-16 18:31:01

박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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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시즌 외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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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박찬도 · 24 김기환 · 31 이현동 · 33 박한이 · 34 김헌곤
· 37 황선도 · 38 김동엽 · 55 이성곤 · 58 박해민 · 59 최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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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이의 수상 경력 / 보유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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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리즈 우승 반지
2002 2005 2006 2011
2012 2013 2014

보유 기록
2000~2016 16년 연속 100안타[1]
52점 포스트시즌 통산 최다 득점
54개 포스트시즌 통산 최다 사사구
48개 포스트시즌 통산 최다 볼넷
63개 한국시리즈 통산 최다 경기 출장
280타석 한국시리즈 통산 최다 타석
229타수 한국시리즈 통산 최다 타수
57개 한국시리즈 통산 최다 안타
28점 한국시리즈 통산 최다 타점
38점 한국시리즈 통산 최다 득점
41개 한국시리즈 통산 최다 사사구
36개 한국시리즈 통산 최다 볼넷
79루타 한국시리즈 통산 최다 루타
46삼진 한국시리즈 통산 최다 피삼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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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외야수 부문 골든글러브 2006 외야수 부문 골든글러브

파일:5p4rcEr.png KBO 한국시리즈
2013 한국시리즈 MVP

파일:5p4rcEr.png KBO 포스트시즌
2010 플레이오프 MV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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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KBO 리그 최다 안타왕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280px-KBO_League.svg.png
2006 KBO 리그 득점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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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이의 역대 등번호 /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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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1983 1984 1985 1986~1988 1989~1990
배대웅 천보성 함학수 장효조 박승호
1991~1992 1993~1994 1995~1996 1997 1998
김용국 강기웅 이종두 류중일 양준혁
1999 2000 2001 2002~2003 2004~2008
류중일 김기태 김태균 김한수 진갑용
2009 2010 2011~2012 2013~2014 2015
박진만 강봉규 진갑용 최형우 박석민
2016 2017 2018 2019~
박한이 김상수
박해민(임시 주장)
김상수 강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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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32번
정경주(2000) 박한이(2001) 박봉수(2002)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33번
이정호(2001) 박한이(2002~ ) 현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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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구회
회원번호 기록 가입년도 비고
13 2,155안타 2016년 현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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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라이온즈 No.33
박한이(朴漢伊 / Han-Yi Park)
생년월일 1979년 1월 28일 ([age(1979-01-28)]세)
신체 182cm, 91kg
출신지 부산광역시 동구
학력 초량초 - 부산중 - 부산고 - 동국대
포지션 중견수, 우익수, 좌익수[2], 1루수[3]
투타 좌투좌타
프로입단 1997년 2차 6라운드 지명(전체 44번, 삼성)[4]
소속팀 삼성 라이온즈 (2001~)
연봉 2억 5000만원 (2019년)
등장곡 노브레인 - Radio Radio
응원가 Steam - Na Na Hey Hey Kiss Him Goodbye (2003~2017)[5][6][7]
구단 자작곡 (2019)[8]


1. 소개2. 선수 경력3. 플레이 스타일4. 타격 준비동작5. 박한이 부부 협박 사건6. FA 잔혹사
6.1. 2009년 첫 번째 FA6.2. 2013년 두 번째 FA6.3. 2018년 세 번째 FA, 하지만 본인의 포기
7. 기타8. 연도별 성적

1. 소개

파일:gTu7d2T.jpg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 소속 외야수. 외야의 주인이 수없이 바뀌는 와중에도 묵묵히 대구의 외야를 지키고 있는 삼성의 프랜차이즈 스타. 리그를 주름잡았던 좌타 선배들에게 묻힌 소리 없는 강자.[9] 삼성 라이온즈의 모든 한국시리즈 우승의 주역.[10] 데뷔 이래 16년 연속으로 세 자릿수 안타를 기록한 유이한 선수.[11]

위에서 서술한 내용처럼 삼성 라이온즈의 프랜차이즈 스타이다. 팀 역사는 물론이고 한국프로야구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선배들과 동시대에 뛰는 바람에 매우 저평가를 받고 있다. 임팩트 있는 몬스터 시즌이 없는 점, 감독의 홀대 등으로 저평가가 더 심해졌다. 심지어 어떤 기사에서는 이호준, 이진영보다 급이 낮은 선수로 평가받고 있다. 기사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박한이의 영구결번은 "모호하다"고 해놓고선, "성적만 놓고 보면 충분히 영구결번 영광을 얻을 레전드들"로 이호준, 정성훈, 이진영, 정근우를 거론하고 있다. 정근우와 박한이의 WAR는 비슷하지만 정근우는 2루수 올타임 넘버 1이니 납득이 되고, 정성훈 또한 박한이보다 WAR가 유의미하게 높으니 이해가 되지만[12] 이호준과 이진영은 박한이와 WAR가 10 가까이 차이가 난다. 물론 박한이가 더 높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삼성 팬들조차 박한이를 저평가하고 있으니, 한국프로야구 진정한 저평가의 끝판왕이 아닐까 싶다.

큰 경기에 다소 약한 모습을 보였던 80~90년대 삼성의 선배들과 달리 가을에 정말 강했다. 물론 포스트시즌 박한이의 클래식 스탯이나 WAR, wRC+ 같은 세이버 지표를 놓고 보면 그렇다고 말할 수 없겠지만, 승부처에 한방 해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단기전의 특성을 생각해본다면 삼성 가을야구 역대 최고의 클러치 히터라 할 수 있다. 대충 굵직한 것들만 언급하면 다음과 같다.

2010년 플레이오프 1차전 8회 말 역전 쓰리런 (투수: 정재훈)
2013년 한국시리즈 5차전 8회 초 2타점 역전 적시타 (투수: 정재훈)
2013년 한국시리즈 6차전 7회 말 쐐기 쓰리런 (투수: 더스틴 니퍼트[13])
2014년 한국시리즈 3차전 9회 초 역전 투런 (투수: 한현희)

별명은 "카니", "바카닉", "바카니", "킁킁이", "킁킁갑", "하니"[14], "하마"[15], "정신병자"[16] 등 그리고 2013년 FA 계약 이후에는 시장에 거품이 잔뜩 낀 와중에 일찌감치 삼성과 비교적 싸게 재계약하면서 착한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선수 본인은 "착한이"라는 별명을 가장 좋아한다고.

2018시즌이 끝나고 박정진임창용이 은퇴를 선언하면서, KBO리그에서 뛰는 선수 가운데 현역 최고령 선수[17] 에 올랐다. .

2. 선수 경력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박한이/선수 경력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 플레이 스타일

박한이의 선수 생활은 꾸준함 하나로 설명된다. 통산 타율이 2할 9푼을 넘길 정도로 준수하나 최다안타 한 번만을 기록해 보았고 수위타자는 한 번도 차지한 적이 없다. 하지만 16년 연속 세 자릿수 안타[18]라는 대기록에서 박한이의 진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20홈런은 한번도 못쳐봤고 15홈런을 넘긴 적도 딱 한 번 있을 정도로 장타와는 인연이 없는 선수지만, 통산 홈런은 130개를 앞뒀다는 점도 꾸준함을 증명하는 대목이다. 또, 사사구도 86개 골라낸 한 시즌 있는게 고작이지만, 통산 사사구가 2016시즌에 1,000개를 넘었다는 점도 그러하다. 부상이 있었던 2015시즌을 제외하면 전 시즌 100경기 이상 꾸준하게 출장해 왔다.

장타력에 대해서 더 이야기를 하자면, 팀의 사정때문에 재능이 꽃피지 못했다는 말도 충분히 가능하다. 김응용감독도 그 부분에 대해서 아쉬워하는 인터뷰를 한적도 있었으니... 데뷔 첫 해 2001년에는 15개의 홈런을 때려내며 어느 정도의 갭파워는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2000년대 초반 삼성의 클린업이 어떤 존재였는가? 그리고 클린업이 그렇다 치더라도, 기본적으로 삼성이라는 팀은 창단 이래로 기동력이라는 부문에 있어선 함량미달이었다. 2015 시즌 전까지 팀 통산 도루 1위가 193개의 양준혁이었다. 2015 시즌 후 33년 구단 역사에 단 한 번도 나온적이 없었던 도루왕 타이틀 보유자가 195개를 기록하며 넘어섰지만 오히려 이는 그동안 삼성이 기동력이 약했다는 것을 대놓고 증명한 것이었다. 이는 80년대 삼성의 1번타자였던 류중일의 통산 도루가 190개도 채 되지 않는다는 소리다. 그리고 이것이 삼성이 한국시리즈를 단 한 번도 제패해내지 못했던 이유 중 하나였다. 타격에는 사이클이 존재하는데다, 집요한 분석이 더해지는 포스트시즌에선 방망이는 믿을게 못된다는 속설이 완벽하게 통한다. 하지만 기동력은 사이클이없다. 해태가 김일권, 이순철, 이종범같은 사기적인 대도들을 앞세워 억지로 한점 한점을 짜내고 강력한 불펜진으로 걸어 잠궈댈때, 사이클이 떨어진 김성래, 이만수, 장효조등이 장타를 갈기지 못하면 삼성은 점수를 낼 방법 자체가 거의 없었다. 물론 방망이가 신나게 터질때도 최동원같은 굇수들에게 농락당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좀더 자세히 이야기 하자면, 80년대 삼성의 우승실패는 김시진, 이만수. 정규시즌중에는 엄청난 영웅들이었던 이 사람들이 가을만 되면 엄청나게 부진했던 것이 가장 컸다. 하지만 90년대 이후로 넘어오면 투수력의 부재 만큼이나 타선의 부진이 엄청난 악재로 작용했음을 알 수 있다. 당장 93년도 한국시리즈는 3차전 박충식이 15이닝 완투를 하고도 그 2점을 못내서 무재배, 그후 5,6,7차전에서 합계 5점을 뽑았던 타선(투수진은 4점으로 막았다.)의 부진이 컸고, 90년도 한국시리즈는 (1,4차전은 투수진이 있는대로 털렸지만)4경기동안 단 6점밖에 뽑지 못했다. 삼성이 4대0으로 스윕을 당한 한국시리즈가 3번인데, 셋 모두 투수진의 삽질보단 타선이 안 좋았음을 볼 수 있다. 타선이 잘했는데도 투수들이 시리즈를 완전히 망친건 2001년 한국시리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그나마 기동력을 가지고 있었던 박한이가 1번으로 이동해서 테이블세터 역할을 맡을 수 밖에 없었는데, 최대한 출루에 집중하고 1번타자 롤을 지속적으로 수행한 댓가는 장타력의 약화였다. 사실 박한이 이전에 삼성 테이블세터진을 맡은 외야수들은 꽤 수준급이였다. 최익성,신동주,강동우 등인데 셋다 두자릿수 도루와 홈런이 가능했던 호타준족들이였다. 이들만 봐도 리빌딩 직후 삼성은 외야수 복을 제대로 받은 셈이다. [19] 말하자면, 팀의 사정때문에 장타력이 각성하지 못했다는 말이 더 어울릴 것이다.[20]

대학 때나 아시안게임 대표팀 때 뛰어난 타격 실력을 보여주며 입단 후부터 주전자리를 꿰차곤 1번타자로서 활약했다. 발이 느려 1번에 적합하지 않다는 평가를 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실제로 수비할 때의 모습을 보면 박한이의 발은 그렇게 느린 편은 아니었다. 박한이의 발이 느리다는 평가는 주루에서 나오는데, 주루에서 정신병자본헤드 플레이가 자주 나오고 쓸데없는 기습번트라던가, 본인이 호타준족이라는 평가를 듣고싶어하는 탓인지 무리한 도루를 하다가 도루사 당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렇다. 사실 박한이는 프로 데뷔 첫 타석에서 번트안타로 출루했다. 상대 투수는 송진우. 송진우는 투구 후 수비를 잘하기로 유명했다. 게다가 4할에 육박하는 출루율은 1번 타자의 기본 덕목. 다만 주루 센스가 부족해 도루의 시도 횟수는 물론 성공 횟수도 적다. 주루센스 부족은 대학 시절이나 프로 온 후나 여전했다. 하지만 볼을 잘 고르고 불리한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걷어내며 살아나가려 하기 때문에 투수 입장에서는 굉장히 짜증나는 선수. 도루까지 마구 해댔으면 정말 엄청난 선수가 되었을 것이다.

플레이 스타일은 레벨 스윙으로 공을 맞추는 데 집중하는 교타 스타일. 보통 거포들은 물론이고 교타자들도 축족 반대쪽 다리를 조금씩이나마 드는데, 박한이는 오른다리를 거의 들지 않고 타격한다. 때문에 스윙이 간결하고 빠르며 공을 끝까지 보기 때문에 출루율이 높지만, 큰 덩치에 비해 장타력이 부족하다는 평을 듣는다. 선수생활 초기엔 1번 타자로 나서다 조동찬, 이영욱 등의 다른 1번 타자감이 등장하면서 선동열 감독하에서는 3번이나 5번 타자로도 가끔 나섰지만, 채태인 - 최형우 - 박석민이승엽까지 가세한 류중일 체제에서는 2번으로 주로 나서고 중심타자 넷 중 한명이 빠질 때는 6번에 배치되는 경우가 대부분.

본래는 뛰어난 선구안을 바탕으로 한 출루율이 강점이었으나 FA시장에서 찬밥 신세를 당한 후로는 좀더 컨택에 중점을 두게 되었다고 한다. 심지어 구단 수뇌부에 박한이 때문에 이긴 경기를 못봤다라는 말을 한 인사모지리가 있었다고도. 그러나 반대로 말하면 박한이가 저평가되는 가장 큰 원인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꾸준하지만, 뭔가 두드러지는 임팩트는 없는 타자라는것. 아무리 그래도 삼성에서만 뛴 프랜차이즈 선수에게 너무 박한 게 아닌가 싶다. 사실 콩단장이 출루율이 뛰어난 타자를 수집했던 건 몸값에 비해 효율이 좋았기 때문인데, 이 말을 돌려 말하면 '저평가 받고 있다' 라는 뜻이 된다. 즉 박한이 처럼 출루율이 뛰어난 타자들은 저평가를 받고 있다는 것. 우리나라에서 비슷한 예로 장성호도 출중한 실력에 비해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출루율에 대한 인식이 바뀌면서부터 평가가 올라갔다. 재밌는 점은 장성호와 박한이 둘 다 출루율이 뛰어난 타자면서 커리어에 비해 저평가를 받고 있는 타자들인데, 장성호는 전성기 시절이 기아의 암흑기라 묻힌 감이 있다면 박한이는 같이 활동했던 팀 동료들이 너무 임팩트가 강렬하여 묻힌 감이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하지만 현재는 연속 세 자릿수 안타로 대표되는 꾸준함과 류중일 감독 부임 후 삼성왕조의 주축, 2013년 한국시리즈 MVP, 무엇보다 그가 데뷔 후 삼성 라이온즈를 떠난적이 없는 원팀맨이기 때문에 구단 관계자들의 박한이에 대한 이미지도 과거에 비해 매우 좋아졌다. 관련기사

문제는 컨택에 집중하면서 기복이 심해진 것. 바깥쪽 볼을 골라 나가기보다 쳐서 나가려는 모습을 보이다 보니 컨디션이 좋을 때는 4할타자지만 컨디션이 조금만 안 좋으면 폭삭 망해 버린다는 문제가 있다. 그러다보니 기록상의 성적은 결국 비슷하다(...)

그래도 박한이의 존재감은 상당하다. 외야수비 실력으론 크보에서도 최상위권에 속한다. 스피드는 빠른 편이라고 할수 없지만, 빠른 타구판단 능력과 예측수비등으로 어려운 타구도 쉽게 잡아낸다. 게다가 3루에서 언더베이스하는 정수빈을 잡아낼 정도로 어깨도 준수한 편. 공격도 폭망한 1,2년을 제외하고는 꾸준히 2할 후반대 이상의 성적을 찍고 있으며, 통산 출루율도 3할 8푼 이상이다. 심지어 아무리 폭망한 해라도 출루율이 .350 이하로 떨어진 적이 없다. 또한 데뷔 이후 지금까지 계속 100안타 이상을 치고 있고, 결국 2016시즌 2000안타를 돌파했다. 뭔가 확 튀는게 없어서 그렇지 누적성적으로 보자면 KBO 역대급 외야수 중 한명에 꼽혀도 무리가 없는 수준.

또한 박한이가 입단한 이후 삼성은 3을 제외하곤 모두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커리어 14년 중 한국시리즈 10회 출장, 7회 우승. 후에 왕조라 불릴만한 이 삼성 라이온즈 최대 황금기동안 꾸준히 외야 한자리를 지켜왔다. 그의 능력이 절대적이라 할 순 없지만, 그의 꾸준함과 출루능력도 삼성의 호성적에 한몫했다고 볼수 있다.

4. 타격 준비동작

파일:external/image.chosun.com/2015030800233_0.jpg
타격 시 준비자세가 유난히 긴 선수로 유명하며 모 스포츠신문에 따르면 평균 준비시간이 24초라는(요즘에는 15~20초 정도 걸리는 듯하다) 소리가 있으며 그 준비동작은 다음과 같다. 킁킁이
양 손 장갑 고쳐끼면서 동시에 발 밑 고르기 → 오른쪽 소매로 땀닦기 → 헬멧 벗어서 앞머리 쓸어올리기[21] → 헬멧 다시 고쳐 쓴 다음 왼손으로 허벅지를 치면서 오른손으로 든 방망이로 홈플레이트 앞에 밑줄긋기 → 한두번 휘두르기 → 방망이를 어깨 위에 올렸다가 본격적인 준비자세를 잡으며 마무리 → 그리고 타격
여기에 타석에 들어왔을 때 배트를 수직으로 들고 점프하며 두 발을 부딪혀 신발의 흙 털기가 추가될 때가 있다.

이 동작을 매 투구마다 행하며 그 때문에 시간을 오래 잡아먹는다 하여 버퍼링박, 헬멧을 벗어서 다시 쓰는 동작이 헬멧 냄새 맡는다고 하여 박킁킁이라는 별명도 있다. 셋팅의 달인이었던 박태민을 떠올리게 한다.[22] 게다가 2아웃 상태인데 3아웃인 줄 알고 내려오다가 다시 돌아가거나 공을 못 잡고 자빠지거나 뜬금없이 견제사를 당하는 등 각종 기행이 더해져 예전 김응용 감독이 한 '박한이는 정신병자다' 라는 말이 다시금 주목받기도 하여, '정신병자'란 별명이 추가되기도 했다. 실제로 저 준비 동작을 생략해 본 적이 있으나 단 한번도 안타를 치지 못해서 옛날 동작으로 돌아갔다. 요새는 준비동작으로 옛날처럼 까이지는 않는 모양이다. 익숙해져서 그런가 팬들도 포기했다

사실 박한이에게 이런 버릇이 생긴건 2003시즌 초반부터로 타석에서 자신감이 떨어져 죽을 쑤고 있었는데 당시 코치였던 류중일 감독이 베이스에 선도 그려보고 차분하게 하라는 조언을 한 이후부터라고, 근데 정작 류감독은 그 일을 잊어먹고 있었단다.(....)

2010시즌부터는 그의 버퍼링을 제대로 못 보게 되었다. 프로야구의 룰이 바뀌어서 타자가 준비하는 시간은 이제 12초 리미트가 걸려버렸다. 전지훈련 가서 홈플레이트만 방망이로 긋고 시작하는 연습을 했다고 한다. 일단 본인 왈 15초까지 줄였다곤 하고 이후로는 6-7초 걸린다고. 2010년 신 버퍼링 풀버전(…)은 다음과 같다.
발 모았다 떼는 뜀뛰기 한번 → 타석에 진입 → 홈플레이트 긋기 → 배트 한번 휘두르기 → 허리 양쪽으로 톡톡 튕기기.
아무래도 12초룰을 의식하기 때문인지, 뜀뛰기 혹은 허리 튕기기를 가끔 스킵하는 경향을 보이며, 스킵할때보다 버퍼링이 풀버전일때 안타가 잘 난다(…). 그리고 파울볼이 나거나 볼이 나거나 기회만 되면 모자 냄새를 맡는다!

원체 버퍼링으로 유명하다보니 2015년 스피드업 조항이 신설되었을 때 제일 먼저 팬들 입에 오르내렸다. 그러나 사실 박한이는 신설 & 강화되는 규정에 전혀 위배되지 않는데, 저 버퍼링이 죄다 타격 박스 안에서 이뤄지기 때문. 기사에 의하면 배트박스를 벗어나는 것이 더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다고 한다. 일단 본인은 규정에 위배되진 않으나 그 취지를 존중하여 스피드를 올리는 연습을 하겠다고 밝혔다. 앞의 기사에선 H 구단의 K 선수가 박한이보다 더 긴 시간을 잡아먹는다고 하는데 댓글은 이 선수가 김태균이란 것을 다 알고 있다.

실제로 2014시즌 각 팀당 가장 많은 타석에 들어선 타자 9명씩 뽑아 총 81명의 투수의 공을 맞이한 뒤 다시금타격자세를 취하는데 걸리는 시간 평균을 구했을 때 박한이는 놀랍게도 15.7초81명중 59위를 차지했다. 앞서 말했듯이 과정은 번거롭지만 타석을 벗어나는 일이 없어서 오히려 걸린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던 것. 출처 하지만 아직까지도 스피드업 하면 박한이를 이야기하며 매도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이 글을 본 위키러들은 그런 사람들에게 잘못된 점을 바로 잡아주도록 하자.

여담이지만 그 터무니없는 버퍼링 때문에 성준과 엮여서 개그가 된 적도 있다. # 또한 2013년 희망더하기 자선야구대회에서 이여상이 이를 똑같이 따라해 웃음을 주었다.

파일:박한이_유라.gif
걸스데이 유라가 따라한 박한이 타격 준비 동작. 원본은 게임 광고이다.원본

EBS에도 등장했다

2018년 5월 9일 경기에서는 뭐가 마음에 안들었는지 중간에 타임요청을 하고 왼쪽허벅지 치는 부분부터 루틴을 다시 했다.[23]

2019년 3월 31일 구단 공식 유튜브에서 직접 바카니 쓰앵님의 루틴교실 동영상을 올렸다. 그리고 헬멧 냄새를 맡는 게 아니고 눈에 땀이 들어가 경기에 집중이 안 되어서 닦는 거라고.

5. 박한이 부부 협박 사건

여러 논란거리가 연쇄적으로 일어났던 2015년 6월 25일 새벽에 삼성라이온즈 공식 팬페이지에 한 글이 올라왔다.[24] 그야말로 6월 25일의 대미를 장식했다(...) 요약해서 이야기하자면 박한이에게 룸살롱을 1억원어치 쏠만큼 가까웠던 글쓴이가 잠시 깜빵에 갔다온 사이 박한이의 부인 조명진이 자신의 집에 들어와서 물건을 훔치는 절도죄를 저질렀다는 것. 절도죄 부분은 법원의 판결문까지 첨부해서 사실임이 증명되었다. 이어서 야갤에 연달아 2차, 3차 글이 올라왔었고, 현재는 삭제되었다.. 글쓴이는 대구북부경찰서로부터 공갈 협박 및 명예훼손 혐의로 구속 영장이 신청되었다.

박한이 측 주장에 의하면 부인 조명진이 허락을 받고 한씨의 동거녀의 물품을 가져간 것을 한씨가 돈 내놓으라고 협박해서 법원까지 끌고 간 것이라고 한다.[25] 한씨는 이전에도 사기죄로 수감된 경력이 있어 돈을 노리고 올린 글이라는 여론이 힘을 싣는 중.
무엇보다도, 경찰의 조사 결과 박한이가 룸을 간다는 이야기가 사실무근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조명진이 물품을 훔쳐간 걸 사실이라고 가정해도, 박한이가 룸을 간다는 게시글의 내용은 완전한 허구라는 것. 관련 기사[26]

결국 2015년 8월 2일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가 끝난 후 삼성 라이온즈 공식 홈페이지의 회원 게시판에서 협박범의 사과문이 올라옴으로써, 박한이 부부는 이 사건의 피해자라는 것으로 완전한 결론이 났다.[27]

삼성 라이온즈 공식 홈페이지 회원 게시판에서 두번째 사과문이 올라왔다. 당연히 팬들의 반응은 절대로 선처하지말라는 여론이다.꼬시다

더불어 이것 관련으로 박한이를 비방하는 삼성 안티팬들에게도 고소 중에 있다.

결론은 박한이 부부는 이 범인의 자작극에 완전히 농락당한 셈이다.

6. FA 잔혹사

6.1. 2009년 첫 번째 FA

2009 시즌 후 첫 번째 FA 자격을 얻었지만, 당시 감독이던 선동열은 세대교체를 염두에 두고 박한이를 내칠 작정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원 구단과의 협상은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시장으로 나왔다. 하지만 그 해 FA 시장은 유난히 차가웠으며, 일본으로 가버려서 팀 사정이 어려운 한화 이글스에서 영입을 시도하고자 했지만[28] 당시 한화 감독이자 전 삼성 수석 코치인 한대화가 "박한이는 내가 잘 안다"[29]라는 희대의 명언을 남김에 따라 시장에서의 협상도 실패했다.

결국 FA 미아가 되기 직전에 전 소속팀과의 협상 마지막 날인 1월 10일[30]에 1년 계약금 3억원, 연봉 3억원, 옵션 5,000만 원 총액 6억5000만원 이라는 FA 치고는 적은 돈으로 삼성에 잔류했다.

6.2. 2013년 두 번째 FA

4년이 지난 2013년 시즌 후 두 번째 FA 자격을 획득하게 된다. 이번에는 아예 금액 논의도 하지 않고, 아시안 시리즈에 따라가더니[31] 이후 11월 15일 계약금 10억 원 및 연봉 4억 5천만 원등 4년간 총액 28억 원을 받는 계약으로 삼성에 잔류하였다.[32] 일단 같은 날 계약이 발표된 장원삼이 4년 총액 60억 원이었던지라 장원삼에 비해 비교적 짠 것 아니냐는 의견이 많기는 많았다. 하지만 나이와 포지션을 감안했을때 장원삼과 박한이를 비교하면 분명 양쪽의 상품가치가 꽤 차이가 있는 것은 사실이고[33], 1979년생, 2014년이면 한국나이로 36세가 되는 노장에게 4년 계약에 옵션 없는 순수 보장금액으로만 28억인 점을 감안하면 마냥 짜게 굴었다고 보기도 뭣한 상황이었다. 때문에 다들 4년 보장에도 성공하고, 금액 면에서도 1차 FA에서의 굴욕을 어느 정도 만회한, 그런대로 괜찮은 FA계약으로 생각하는 분위기가 일반적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지만, 적어도 원소속구단 우선협상이 종료되기 전까지는 진짜 그랬다. 그리고 여기까지였으면 참 좋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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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막 계약 할 때만 해도 이랬다.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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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안되는 계약으로 대검 수사를 앞두게 된 바콰니 선수 기자회견 옆에는 이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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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ㅗㅓ인ㅁㄹㄹ아이 이기 뭐꼬ㅁㄴㄴㅇㄹ ㅠㅠㅠ 쌤숭 푸런트 나온나ㄴ밈ㄴ;ㅇㄴㅁ;ㅇㄴ 20억만 더 부를걸 꺼이꺼이ㅠㅠ

안타깝게도 2013년 FA 시장은 역대 FA 사상 유례가 없었던 희대의 인플레이션이었고, 그 뒤에 계약한 선수들의 계약 규모는 다음과 같다.
  • 이대수 : 4년 총액 20억 원(한화 잔류)
  • 정근우 : 4년 총액 70억 원(SK → 한화)
  • 이용규 : 4년 총액 67억 원(KIA → 한화)
  • 이종욱 : 4년 총액 50억 원(두산 → NC)
  • 손시헌 : 4년 총액 30억 원(두산 → NC)
  • 이대형 : 4년 총액 24억 원(LG → KIA)
  • 최준석 : 4년 총액 35억 원(두산 → 롯데)

1주일 정도만 시간을 가지고 지켜봤더라면 최소 15억 정도의 계약금이 늘어났을 것이다

그래도 이 중 정근우와 이용규는 강민호, 장원삼과 함께 2013년 FA Big 4로 꼽히는 상황이었고[34] 나이도 아직 젊은 편인데다가 노리는 팀들이 많았기 때문에, 당연히 박한이와 어느 정도는 금액이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면 이대수나 손시헌은 뭐냐고 볼 수도 있겠지만, 이대수와 손시헌은 일단 유격수라는 수비 부담이 매우 큰 포지션이고, 계약한 팀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어느 정도 비싼 가격을 감수하고라도 계약할 만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에 그냥 그 두 선수들의 운이 좋은 것이지 박한이가 불운한 정도까지는 아니라고 보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거기에, 이대수의 경우 외부 FA로 인한 팀 케미스트리의 손상을 막고 짠돌이 구단이라는 이미지를 탈피할 필요성이 있었으며 답이 나오지 않는 암흑기에 그나마 좀 사람같이 야구했던 선수 [35] 라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으며, 손시헌과 이종욱은 신생팀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멘토가 될 수 있을 만한 베테랑[36] 구하는 동시에, 취약 포지션에 대한 보강이라는 의미가 있기 때문.

최준석까지만 해도 수긍은 할 수 있다. 그야말로 답이 안 나올 정도로 망가진 타선에서 홀로 사람역할을 하던 손아섭의 뒤를 받쳐줄 사람[37]이 필요했던 걸, 그리고 당 시즌 포스트 시즌에서 우즈가 생각 날 정도로 미친 활약을 보여준 걸 감안하면, 부상위험이 좀 크고 페넌트레이스에서 보여준게 그렇게 크지 않을 지라도, 해야 할 이유가 있는 계약이다. 그것을 감안해도 가격이 비싸지 않나 의문이 들긴 하지만, 최준석의 영입 자체는 타당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대형까지 오면 이미 시장이 미쳤다는 사실이 보인다. 순수 보장액만 22억. 박한이의 나이를 거론하면서 충분한 계약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당장 이대수가 1981년생, 손시헌이 1980년생 이대형은 1983년생이긴 하지만 나이고 뭐고 이다. 딱히 나이를 따지기도 애매하다. 게다가 최근 3년간의 타율을 보면 오히려 가장 나이 많은 박한이가 제일 양호하다. 박한이는 2011년에 주춤했다가 2012년부터 다시 반등하고 있는데, 나머지 둘은 2011년 이후로 하락세가 뚜렷한 상황. 급기야 이런 기사들까지 나와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탈쥐효과가 발동되는데...

이전의 FA와 비교했을 때 참고할 만한 선례로는 LG의 박용택, 이진영, 정성훈의 직전 FA 계약이 있을 것이다. 나이도 비슷한 이 셋이 모두 4년 34억이라는 금액에 LG와 사인한 전력이 있는데, 통산 성적이 이들에 비해 떨어지는 박한이가 4년 계약에 순수 보장금액 28억이면 충분히 좋은 계약이 맞다고 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거품이 잔뜩 낀 FA 시장에 박한이가 동참을 하지 않은 것일 뿐. 그러니까 계약 자체만 따졌을때는, 이전까지의 선례와 비교해봤을때 적정한 보장금액에 4년 계약까지 합의한, 이전 FA에서 홀대받았던 프랜차이즈를 예우해준 계약이 맞는데, 단지 며칠 뒤에 KBO 역사상 유례가 없는 역대급 거품시장이 열린 것이 문제일 뿐이다(...). 이건 그냥 FA에 있어서만큼은 박한이가 운이 너무도 지독하게 없었고 영원히 고통을 받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다음해인 2014년 FA 시장에서 팀 동료 조동찬이 박한이와 동일한 금액인 4년 28억에 잔류함에 따라 일격을 날렸고,그리고 먹튀행 동갑내기인 좌타 외야수 박용택[38] 4년 50억을 받으며 또 한번 결정타를 맞았다(...)이쯤되면 착한게 아니라 그냥 바보멍청이(...)가 따로없다ㅠㅠ 급기야 화폐단위가 된 꽃미남 선수의 뒤를 이어 하니 지수라는 말까지 나왔을 지경. 그리고 지난 2년간 방어율 7점대를 찍으며 완전히 폭망한 송은범감독 빽으로 4년 34억을 받으며 쐐기를 박았다. 다만 나주환이 1+1년 5억5천만으로 자신의 09년도 FA와 비슷한 계약을 하게되면서 위안으로 삼게됬다.동지여...

그리고 다시 그 다음해, 자신이 2차 FA 계약을 맺을때와 같은 나이인 동국대 3년 후배 유한준kt wiz60억 계약을 맺으면서 박한이는 다시 애도의 대상이 되고 있다(...) 기록을 보면 알겠지만, 유한준은 크레이지 모드였던 직전 2년을 제외하면 박한이와 클래스 차이가 있는 선수였고, 통산으로 따져도 박한이보다 급이 높다고는 볼 수 없는 선수임에도[39] 불구하고 무려 박한이의 2배 이상의 계약을 맺은 것. 1한준=2.14한이

2017 시즌이 끝나면 또 한번 FA 자격을 얻지만 FA 인플레이션 효과는 받기 힘들 것이다. 이미 구단은 내외적으로 상황이 매우 암담하며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리빌딩 아닌 리빌딩을 해야하는 구단은 2015 시즌 후에는 박석민을, 2016 시즌 후에는 최형우를 전혀 잡을 의지를 보이지 않으며 내보냈다. 영구결번까지도 확실한 30대 초반[40]의 그 둘을 안 잡은 구단이 불혹의 박한이를 잡는 데 적극적으로 의지를 보일 확률은 매우 낮다. 물론 박한이가 자기 의지로 어떻게든 디스카운트를 하며 남을 확률이 높고 또 아예 FA 신청을 하지 않을수도 있으며, 그럼 당연하게도 박한이는 마지막 FA도 대박은 불가능하다는 뜻이다.한이 형 안습[41]

그리고 이종욱과 박석민이 NC에서 먹튀로 전락하는 동시에 이용규가 2019년 트레이드 거부+참가활동정지 크리를 받으며 2019년 회춘과 함께 박한이의 4년 28억 FA는 날이 갈수록 재평가되고 있다. 이 정도면 구단에서 보상으로 뭐라도 좋은 거 줘야...

6.3. 2018년 세 번째 FA, 하지만 본인의 포기

위 문단의 예상과는 다르게 2017 시즌 출전이 너무 적은 탓에 FA자격을 얻지 못 했고, 그 다음 해인 2018년에서야 FA자격을 얻었다. 같은 FA로는 손주인, 김상수, 윤성환이 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나이 때문인지 FA를 신청해도 17 최준석처럼 미아가 될 위험도 있어 대부분의 팬들도 FA에 회의적이었다.

그러나 결국 박한이는 다른 팀에 가지 않고 삼성에서 마지막까지 뛰겠다며 직접 FA를 포기했다. 어느 정도는 예상이 확실한 선택이기는 했지만 작년에 이어 올해도 FA 시장에서 노장들에게는 결코 호의적이지 않아서 시장에 나가봤자 결과는 뻔하니 명분을 챙기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볼 수 있다. 팬들도 어차피 알면서도 딱히 불만일 이유도 없고 하니까.

7. 기타

  • 동국대 시절에는 꽤나 알아주는 장타자였다. 인조잔디 공사 전의 펜스 상단에 야구공 여러개가 꽂혀 있었는데, 박한이가 프리배팅으로 꽂았다는 전설이 있었다. 참고로 동국대 운동장의 펜스는 우측에 자리잡고 있으므로, 좌타자인 박한이의 뛰어난 타격능력을 보여준다. 대학 3학년 때까지 알루미늄 배트를 썼다는 점은 감안해야 하겠지만.
  • 양준혁 은퇴 등 삼성 프랜차이즈 박대하기로 유명한 선동열이 유난히 미워하고 홀대한 선수로 유명했다. 오죽하면 선동열이 지금 내가 마운드에 서도 너(박한이) 정도는 삼진잡는다며 모욕을 주었고, 박한이를 내치기 위해 최형우와 강봉규를 대놓고 편애하기도 했다. 하지만 박한이가 더 나은 모습을 보이자 마지못해 쓰긴 했다. 물론 최형우야 4번타자라는 중책에 세대교체 측면도 있다지만, 나이도 있고 박한이의 통산 성적에 미치지 못하는 강봉규를 밀어준 것은 선동열의 부족한 야수안목을 잘 나타내는 사례.
  • 2005년 서부정류장 한 막걸리집을 찾은 박한이는 일행과 함께 전하나 막걸리하나 총 7,000원치를 먹고 자신을 알아보는 사장한테 서비스를 요구하나 막걸리집 사장은 뭐 먹은게 있어야 주지 라고 하면서 면박을 들었다고 한다. 정신병자 맞구만
  • 2007년 4월 초에 대구 북구 칠성동2가 홈플러스대구점 앞에서 안전벨트를 매지 않고 차를 몰아서 벌금을 문 적이 있다. 그런데 스티커 끊은 의경은 그가 박한이인줄 뒤늦게 알았다고 한다.
  • 알 만한 사람은 다 알지만 2007 올스타전에서 열린 인사이드 파크 호텔허용야수조연이기도 하다. 이택근이 친 타구가 당시 우익수였던 박한이 쪽으로 갔었는데 시야에 라이트(조명)이 들어왔는지 박한이는 그 공을 잡지 못하고 엉거주춤해버린 사이에...라이트에 눈이 들어갔어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이후 2013년 9월 21일 인사이드 파크 모텔로 복수하는 데 성공했다. 넥센이 5-4로 앞선 6회초 2사 1·2루에서 이택근이 박한이가 날린 중전안타 타구를 앞으로 달려오면서 잡으려다 그만 공을 뒤로 흘린 것, 전진 수비 시프트라 좌익수와 우익수는 인플레이와 동시에 내야 쪽으로 대시한 상황이었고 따라서 이택근이 알을 깐 순간 수습하러 올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타자 주자 박한이까지 홈으로 들어오면서 삼성은 순식간에 3점을 추가했고 이날 경기의 흐름은 인사이드 파크 모텔 랜드마크가 세워지면서 삼성 라이온즈 쪽으로 급격히 기울었다.
  • 놀랄 만한 기록으로, 한국시리즈 최다 경기 출장, 타석, 타수, 안타, 최다 타점, 최다 득점, 최다 루타, 최다 사사구, 볼넷 , 피삼진[42]의 기록 보유자이다.[43] 홈런도 이승엽, 우즈에 이어 3위. 덤으로 포스트시즌 통틀어서도 최다 득점, 최다 사사구, 최다 볼넷[44]이라는 기록을 보유중이다. 한국시리즈를 10회나 밟고도 2013년에야 처음으로 MVP를 받은 한편 온갖 누적 기록을 죄다 휩쓰는 것이 꼭 팀 선배인 양준혁을 닮았다.[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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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2013년 한국시리즈 6차전을 관람 중인 아내와 딸
  • 동갑내기[46] 부인 조명진 씨는 탤런트로 대단한 미인이다. 시대극 제5공화국에서 5.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사망한 시민의 아내로 분했다. 사극 주몽에서는 무덕이 역으로 출연한 적이 있어 팬들 사이에선 무덕여신으로 불린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미실 고현정의 편에 서서 음모를 꾸미는 무녀 역으로 나오기도 했다. 참고로 양준혁이 소개시켜 줬다고 한다. 연애 중이던 시절 야구도 잘하는데 여자친구도 예쁘다면서 야갤러들의 질투를 받기도 했는데, 안타깝게도 조명진씨가 야구장을 찾을 때마다 박한이는 떡실신을 당하는 새로운 징크스가 생기기도 했다. 결혼 후에는 깨진 듯 싶으며 2013년 한국시리즈 6~7차전 때 부인 조명진과 딸 박수영 양이 직관을 와 열심히 응원했고 박한이는 한국시리즈 MVP를 수상하며 대활약했다.
  • 여담으로 조명진과 연애하던 초반 두 달간 매일 통화하면서 전화통화로 딱 세 마디만 했다고 한다.
    (조)"여보세요? → (박)"어데고?" → (조)"집" → (박)"밥은?" → (조)"먹었는데?" → (박)"알았다 쉬고 내일 얘기하자…" → 통화 끝

    하도 짜증나서 이후론 조명진이 전화 받자마자,
    (조)"집인데 밥은 먹었고 이제는 쉬려고" → (박)"그거 물어보려고 전화한 거 아이고" → (조)"그럼 뭔데?" → (박)"뭐 먹었는데?" → (조)"김치찌개" → (박)"알았다. 그만 쉬고 내일 통화하자." → 통화 끝

    그야말로 전형적이며 편견 속의 경상도 남자의 표본 그대로다.(…)
  • 2013년 양준혁 자선경기 때도 가족이 경기장에 왔었다. 그런데 유희관이 장난삼아 수영 양이 아끼는 삼성 어린이 회원용 배트를 타석에 들고 나가 휘둘렀다가 부러져버렸다.(…)[47]. 참고로 저때 유희관은 원래 배트도 들고 갔었다. 즉 이도류 이 후 해설과의 인터뷰에서 해설자들이 수영 양의 방망이는 어쩔꺼냐고 묻자 "두산걸로 새로 사주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물론 농담삼아 한 소리고 애초에 수영 양의 방망이를 들고 간 것도 박한이에게 허락을 맡은 부분이다.
  • 지금은 은퇴한 프로농구 선수 김승현과 동국대 동기이며[48] 김승현이 출연하는 아프리카 KBL 개인 해설방송에서 대학시절 박한이가 자신들이 놀고있는 노래방에 조용히 찾아와 말없이 술마시고 노래를 불렀다는데 음치중에서도 음치였다고..
  • 탈모 증세가 있는 듯하다. #
  • 부산 태생이고 고등학교까지 부산에서 나왔지만[49]삼성의 팬들 중에서는 박한이가 대구 순수혈통인줄 아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일부 올드 팬들에게 경고 아이가? 상고 아이가?이런 질문을 가끔 듣는다고 한다.부고인데요사실 김한수[50] 김상수[51] 혈통문제로 대구아재들의 마수를 피하지 못했다.
  • 2017년 3월부터 대구 동구, 으뜸병원과 함께 저소득층 노인 무릎 수술 지원 협약을 맺었다고 한다. 박한이가 안타 10개를 칠때마다 지역 내 저소득 노인 한 명이 무릎 수술을 받을 수 있고, 동구가 수술이 필요한 노인을 찾아서 주선해주면, 무릎 수술비는 박한이가, 재활 치료비는 으뜸병원이 지원한다고 한다. 근데 이형 7월 말인데도 안타 12개
  • 현역으로서는 같은 팀의 윤성환과 오승환, LG 트윈스의 박용택, 롯데 자이언츠의 이대호와 손아섭, SK 와이번스의 김광현과 최정, 한화 이글스의 김태균과 류현진, KIA 타이거즈의 양현종과 함께 영구결번 이야기가 가장 많이 나오는 선수이다. 팀의 한국시리즈 우승 7번을 모두 선수로 경험하면서[52] 2010년 플레이오프나 2013년 한국시리즈 등 중요한 장면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점, 통산 2000안타, 16년 연속 100안타 등 꾸준한 활약을 보인 점, 배영수, 권혁, 차우찬, 최형우, 박석민 등 FA로 팀을 떠난 선수들과 달리 팀에 남은 점, 한국시리즈 여러 누적 1위 기록을 가진 점 등을 근거로 영구결번이 가능하다는 팬과, 이만수, 이승엽, 양준혁 등 다른 영구결번 사례들에 비해 무게감이 떨어진다며 부정적인 팬의 의견이 맞서고 있었다. 그러나 2018년 시즌 후 FA신청을 하지 않고 팀에 남겠다고 선언하자, 그동안 FA때 매번 푸대접을 받았음에도 팀을 위해 헌신한 점이 부각되고, 그 외 다른 미담 사례도 많아지면서, 영구결번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여론이 강해졌다.

8. 연도별 성적

  • 붉은 글씨는 1위 기록. 진한 표시는 리그 5위 내 기록.
역대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1 삼성 130 420 .279 117 25 3 13 61 77 17 72 .445 .384
2002 133 504
(4위)
.272 137 24 2 10 47 89 13 66 .387 .355
2003 133 528
(1위)
.322 170
(1위)
34
(4위)
1 12 59 113
(2위)
17 71 .458 .399
2004 132 503
(2위)
.310 156
(4위)
26 2 16 63 81 13 74 .465 .397
2005 123 471
(3위)
.295 139
(3위)
21 0 9 59 62 12 64 .397 .377
2006 126 471
(4위)
.285 134 21 2 6 43 89
(1위)
15 86
(공동 2위)
.376 .393
2007 123 479
(공동 1위)
.267 128 12 1 2 27 68 10 71 .309 .359
2008 104 370 .316 117 17 2 4 41 57 5 64 .405 .414
(5위)
2009 110 334 .311 104 29 2 2 36 48 7 51 .428 .399
2010 128 379 .301 114 21 2 11 63 64 5 76 .454 .413
2011 121 429 .256 110 19 2 4 30 77 8 65 .338 .353
2012 111 388 .304 118 19 4
(4위)
1 51 61 4 59 .381 .393
2013 112 394 .284 112 12 3 6 55 56 4 52 .376 .366
2014 125 472 .331 156 22 2 9 80 83 7 66 .443 .409
2015 94 367 .300 110 17 4 11 52 62 6 54 .458 .389
2016 110 349 .301 105 21 0 14 69 57 1 42 .481 .372
2017 68 118 .263 31 9 0 4 14 14 0 13 .441 .333
2018 114 342 .284 97 16 0 10 43 47 5 43 .418 .363
KBO 통산
(18시즌)
2097
(5위)
7318
(4위)
.294 2155
(5위)
365 32 144 893 1205
(4위)
149 1089
(5위)
.412 .384

[1] 양준혁과 타이 기록이다[2] 입단 직후에는 중견수를 보다가 허승민, 이영욱의 등장으로 우익수로 옮겼다. 그 후로 중견수는 정형식, 박해민이 이어 받았다. 2017시즌부터 구자욱이 우익수로 옮겨오면서 배영섭, 김헌곤과 함께 좌익수로 출장하고 있다. 2018시즌 구자욱이 허리 부상으로 인해 종종 우익수로도 출장 중이다. 가장 많이 출장한 포지션은 우익수이다.[3] 아시안게임 브레이크 중인 2018년 8월 28일 퓨처스 서머리그에서 1루수로 선발 출장했다.[4] 지명 이후 대학진학, 데뷔는 2001년[5] 안타 안타! 안타 안타! 헤이 헤이 헤이~ 박한이~[6] K리그에서도 사용하는 응원가 중 하나이기도 하다. 대구 삼성에서는 저작인격권 사태로 폐기되었지만, 축구에서는 아직 현역.[7] 대략 2003년 시즌부터 이 응원가를 쓰기 시작한것으로 보인다.[8] 삼성의 박한이 워어어어~ 박~한~이~ 날!려!버!려! ×2[9] 여담이지만 이런 기믹은 김한수의 것이었다. 소리없는 강자는 2000년 초반에 김한수가 듣던 말이었다가 15년 후에는 박한이에게 이 별명이 붙게 됐다.[10] 2013년 한국시리즈에서는 시리즈 MVP까지 차지하였다[11] 데뷔 이래 16년 연속 100+안타는 KBO 최고 기록으로 팀 선배였던 양준혁과 동률이며, 중간에 해태와 LG를 거쳤던 양준혁과는 달리 박한이는 오직 삼성이라는 한 팀에서만 기록을 작성했다. 2017년 부상과 부진으로 출장 기회가 적어지면서 17년 연속 100+안타를 기록하는 데에는 실패했다.[12] 사실 정근우와 정성훈은 주포지션이 각각 2루와 3루라서 기사의 내용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니다.[13] 삼성은 니퍼트에게 최고로 약한 팀중 하나이기에 더욱 유의미하게 느껴질 수 있는 홈런이었다.[14] 달려라 하니의 그 하니 맞다. 이우의 야구수첩에서 하니로 나온다. 2008년 응원단장 김용일이 경기 응원 중 달려라 하니의 주제가로 응원가를 만든 적이 있다고 말했다. 응원가에 대한 박한이의 반응은 "그거 하지 마소."라며 싫어했다고.[15] 큰 엉덩이 때문에 류중일 감독이 붙여준 별명(...).[16] 김응용 감독은 나중에 박한이가 견제도 잘 걸리고 사인 미스도 많아서 하도 화가 나서 그냥 웃자고 한 말이었는데 기자들이 그걸 기사로 써버렸다고 한다. 그래도 박한이가 참 삼성에선 알토란 같은 역할을 많이 했다고 평했다. 기사[17] 차고령자인 박용택은 1979년 4월 21일 생으로 박한이보다 생일이 3달 늦다.[18] KBO 통산 공동 1위. 참고로 다른 1위는 양준혁(16년), 3위는 이승엽(14년), 4위는 김태균김별명(12년). 양준혁은 팀을 옮긴 적이 있고, 이승엽과 김태균은 중간에 일본 진출을 했기 때문에 한 팀에서 16년 연속으로 100안타를 달성한 선수는 박한이가 유일하다.[19] 그러나 강동우는 부상으로 전만큼 실력을 보이지 못했고 최익성,신동주는 감독과 구단과의 마찰로 트레이드되면서 제대로 써먹지도 못했다. 선수 자원이 넘쳐나도 적재적소에 쓰지 못한 잘못된 사례라 할 수 있다.[20] 물론 야마이코 나바로같은 경우는 14시즌 1번에서 31홈런을 때리면서도 20개 이상의 도루를 기록하며 수위급 1번으로 활약하긴 했지만, 이는 14시즌에 박해민, 이지영, 김상수가 하위 타순에서 밥상을 차려줬기 때문에 나바로가 굳이 출루에 목 맬 필요가 없던 것이 컸다. 그 덕에 나바로는 1번 타자면서도 100타점을 기록할 수 있었던 것이고. 반면 이러한 역할을 당시 박정환, 강동우가 수행해내지 못했기 때문에 박한이는 혼자서 테이블세터의 역할을 담당해야 했다.[21] 속칭 냄새 맡는다라고 표현하는, 킁킁이라는 별명의 원천이 되는 그 동작.[22] 이것은 후에 난데없이 MSL 데스크 에서 까이게 되는 계기가 된다.[23] 그리고는 귀신같이 안타...[24] 현재 공식 홈페이지의 원글은 삭제된 상태이다.[25] 유명인 상대로 돈을 뜯어내는 효과적인 수법이다. 즉 친한 척해서 물건을 선물한다거나 빌려줘놓고 절도피해 신고한 다음 고소하는 방식으로 누명을 씌우는 것. 무죄증명이 쉽지 않고 경범죄니까... 하는 식으로 넘어가면 그 때부터 협박을 시작.[26] 어떻게 보면 박한이가 가정적으로 산것에 도움을 받은 셈이다. 만약 박한이가 진짜 룸살롱이나 다니는 사람이었으면 자기 룸 간게 찔려서라도 이렇게 단호하게 나올 수는 없었을 것. 반대로 사기꾼 입장에서 하필 룸사롱을 든 것은 "실제로 많은 남자들이 가고, 반면 들키면 이미지와 가정이 망가지는" 요소라서 들먹인 것으로 보인다.[27] 협박범과 글쓴이의 이름이 다르다는 의견도 있지만, 사과문에 나와있듯이 한씨는 현재 구치소에 수감중이라, 지인을 통해 사과문을 올린것으로 보인다.[28] 당시 한화는 은퇴해서 코치 생활을 하고 있던 선수도 현역을 복귀시켜서 기용할 정도였다.[29] 한마디로 "삼성을 떠나려 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의미.[30] 이 날을 넘어갈 경우 당해 1년간 임의탈퇴 처리되는 규정이 있었다. 다행히도 이 규정은 피자신이 법정 공방을 벌인 끝에 2012 시즌부터 없어졌다.[31] 보통 시즌 후 FA가 되는 선수들은 시즌이 끝나면 구단 행사에 참여하지 않고 국내에 남아서 개인 훈련을 한다. 참고로 같은 해 FA 자격을 얻은 장원삼은 아시안 시리즈에 따라가지 않았다.[32] 이 중간에 OSEN의 삼성 출입 기자인 손찬익 기자의 계약 오보 사건이 있었다.[33] 박한이와 장원삼은 나이도 네 살 차이로 꽤 차이가 있고, 또한 박한이는 두 번째 FA물론 첫 번째 FA에서 홀대를 받은 것은 감안해야 하지만, 장원삼은 첫 번째 FA라는 차이 역시 존재한다. 포지션으로 봐도 박한이는 외야수지만 장원삼은 리그에 얼마 없는 검증된 선발, 그것도 좌완투수이다. 그리고 장원삼은 두 시즌 만에 먹튀가 되었다[34] 여기에 간혹 이종욱을 껴서 Big 5로 부르기도 했다.[35] 한화에서 있었던 4시즌 동안 이대수는 연평균 128경기, 377타수 정도를 소화하면서 0.267의 타율과 5.75개 정도의 뜬금포를(경기수와 타수는 소수 첫자리, 타율은 소수 넷째자리에서 반올림) 쳐줬는데, 이 정도면 최소한 타격에서는 충분히 한 사람 역할을 해줬다고 볼 수 있다.[36] 이들은 한 명은 처음부터 신고선수로 시작해서, 다른 한 명은 지명은 받았지만 군 복무중에 방출을 겪고 나서 신고선수로 다시 시작해 국대까지 승선했던 KBO의 대표적인 근성가이들이다.[37] 용병타자로 충분하지 않냐고 할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확실한 클린업 트리오를 꾸린다는 것과 한 자리가 비어 있다는 것은 무게가 많이 차이 나는지라... 강민호로 채우자는 생각도 있지만, 당 시즌 강민호가 4번에서 보여준 모습을 감안하면 그건 무리한 일이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다.[38] 1979년생 동갑이지만 박한이가 1월생이라 학교를 빨리 가는 바람에 1년 선후배 관계다. 2013년 골든글러브 수상소감에서 박용택은 박한이를 언급할 때 "한이 형"이라고 호칭했었다.[39] 누적은 타석이 2배 이상 차이나므로 당연히 박한이가 우위이며, 비율스탯으로 따져도 박한이 .295 .386 .408 OPS .794 / 유한준 .291 .364 .431 OPS .795로 비슷하다. 타석 대비로 따져봐도 안타수는 비슷하고 홈런은 유한준이 1.4배 정도, 사사구는 박한이가 1.4배 정도 많아서 딱 비율스탯대로 나온다.[40] 박석민은 FA 당시 만 30세, 최형우는 FA 당시 만 32세였다.[41] 하지만 따지고 본다면 미아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자발적으로 을이 되었는데 FA 대박이 나올 가능성은 희박하다. 모름지기 FA는 선수와 구단 모두 납득할 수 있는 계약을 맺으라고 있는 제도다.[42] 피삼진은 안좋은 기록이라고 반박할수 있지만, 최다 피삼진을 기록하려면 그 만큼 경기를 많이 출장했다는 증거로 재반박이 가능하다[43] 63경기, 289타석, 229타수, 57안타, 28타점, 38득점, 79루타, 41사사구, 36볼넷, 46삼진[44] 양준혁과 타이기록[45] 타이틀 복 없는 것도 그렇고 연속 100안타 기록도 그렇고 양준혁과 굉장히 유사한 커리어를 걷고 있다.[46] 다만 박한이는 빠른 79년생인지라 78년생들과 함께 학교를 다녔고 조명진씨는 79년 3월생.[47] 애초에 어린이용 장난감 수준이라 실제 경기용 공보다 강도가 약한 건 당연지사….[48] 김승현의 소속팀이었던 고양 오리온스가 대구가 연고지였던 시절 박한이와 함께 같은 대구 지역 연고 프로 스포츠팀에서 뛴 적도 있다.[49] 고3때 삼성의 지명을 받고 서울 동국대학교로 진학했으며, 대학 졸업 후 삼성에 입단했다. 현재 동국대 야구장은 일산캠퍼스에 있다.[50] 서울 태생으로, 지금은 해체된 광영고 야구부 출신이다.[51] 이쪽은 서울 태생이지만 어릴 때 구미로 이사해서 고등학교는 대구에서 나왔다.[52] 코치로 3번, 감독으로 4번 우승을 함께한 류중일, 선수로 3번 코치로 4번 우승을 함께 김한수, 김재걸 선수로 7번 우승을 함께 한 배영수,진갑용과 동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