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0-25 12:23:22

불멸의 이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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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KBS1_20180903.png 대하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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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1TV 대하드라마
불멸의 李舜臣
(2004)
파일:attachment/blmleysnsn.jpg
국내등급 15세 이상 시청 가능
방송 시간 토요일, 일요일 밤 9시 30분
방송 기간 2004년 9월 4일 ~ 2005년 8월 28일
방송 횟수 106부작
원작 김훈 <칼의 노래>, 김탁환 <불멸>
방송사 파일:KBS_로고.png
장르 대하사극
제작사 파일:KBS_로고.png 자체제작
연출 이성주,[1] 김정규, 한준서
극본 윤선주, 박영숙, 윤영수,[2] 장기창
주연 김명민, 최재성, 이재룡, 최철호, 김명수
저승사자해설 김종성

1. 개요2. 등장 인물3. 오프닝4. 원작?5. 비판6. 특징7. 이야깃거리들8. 고증오류들9. 관련 문서

1. 개요

충무공 이순신을 주인공으로 하는 KBS 1TV의 대하 드라마. 2004년 9월 4일부터 2005년 8월 28일까지 주말 사극으로 총 104화가 방영되었으며 이후 2부동안의 스페셜 특집이 방송되어 총 106화로 완결되었다.

2014년 영화 명량의 인기로 인해서 9년 만인 2014년 9월 1일부터 2014년 10월 28일까지 매주 월요일 ~ 목요일에 재방영했었다. 방영 내용은 이전의 내용을 33회로 축약하며, 전문가의 해설을 추가로 덧붙여 재편집하여 방영하였다.#

유튜브 Drama KBS 채널에서 2015년 12월 26일까지는 다시 보기가 가능하였으나, 그 다음날인 12월 27일 이후로는 다시 보기를 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 이유는 KBS도 그날(12월 27일)부로 유튜브 영상 국내 서비스를 중단해버렸기 때문이다.

2017년 기준으로 POOQ에서 104회 전편은 물론, 2014년에 특집 방영된 다시 보는 불멸의 이순신 33회차 역시 전부 무료로 시청할 수 있다.
2019년 9월 현재 POOQ 에서 무료 서비스는 중단되었다.

더 편하게 보고 싶다면 KBS my K를 이용하면 된다.

2. 등장 인물

항목 참조

3. 오프닝

불멸의 이순신 오프닝.[3][4]

4. 원작?

원작은 소설인 '칼의 노래'와 '불멸'로 보도되었는데, 칼의 노래는 당시를 풍미했던 베스트셀러였고 불멸은 지명도는 낮았지만 숨겨진 걸작이라는 평을 받기도 했다.

사실상 후술할 내용에서 김훈이 자신의 작품 이름을 빼달라고 하긴 했지만 칼의 노래와 겹치는 부분은 첫회의 고뇌 장면이나 명량 해전 전야 부분. 사실상 이름만 빌려준 셈이고 대부분의 내용은 김탁환의 불멸에서 따왔다. 논란이 될 만한 내용인, 원균 맹장론, 거북선 침몰[5], 역적 가문, 겁쟁이를 넘어선 천하의 개쌍놈[6] 이순신이라는 요소[7]가 포함된 것이 그것이다. '불멸'의 내용에서 그러한 요소가 나온 걸로 보아 해당 소설에서 차용된 것으로 보인다.

김탁환의 불멸의 경우는 사실 김탁환이 연작으로 구상한 허균에 대한 이야기에서 중간 부분에 해당되는 이야기, 김탁환은 허균이 조선을 개혁으로 이끌 반항아이자 혁명가로 묘사했기 때문에 마지막 부분에서 허균이 이순신에게 역성혁명을 유도하는 발언을 하고 이순신은 거기에 솔깃해서 가담하려다가 일이 잘못되어[8] 전사를 가장해 자살하는 것으로 처리되었다.

문제는 이 작품이 드라마화된다는 이야기를 듣자 상당히 많은 독자들과 역사 덕후들의 비판을 받았고, 결국 드라마를 위해서 개작한 10권짜리판으로 개정되었다는 거다.[9] 드라마의 독자적인 이야기를 상당히 많이 넣었고 이순신도 인간적이지만 천하의 개쌍놈은 아닌 것으로 변형, 다만 이순신 가문 역적론[10]이나 원균 맹장론은 그대로 수록했다.

다만 김탁환에 대해서 변명 아닌 변명을 하자면 김탁환 식의 역사 인식은 미국의 포스트모던형 대하 소설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실지로 고어 비달의 "미국 제국사"[11] 등에서 묘사한 역사 서술 방식, 즉 역사적 사실과 현대의 정치사를 (어느 정도의 왜곡을 가미해) 묘하게 대입하는 방법이나 인물 묘사 방법[12]이 비슷하다. 다만 고어비달의 경우는 적어도 현존하는 역사 기록을 대조함으로서 쏟아지는 비판에 대해서 성실하게 반응하고 토론하는 반면, 불멸에 나오는 그 많은 기록에 대해서 김탁환은 거의 무응답을 하는 편.

5. 비판

아무래도 한국 역사상 최고의 영웅 중 하나로 꼽는 인물에 대한 드라마이니만큼 그 관심이 매우 컸고 관심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면들이 보여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 대부분은 고증에 대한 비판이 많고 플롯상의 헛점(몇몇 인물들의 중도 하차 / 공기화, 잦은 노선 변경 등)이 뒤를 잇는다.

처음 홈페이지 인물 소개도나 기획 의도에 의하면 나름대로 명나라나 일본 측 인물들도 기존의 스테레오 타입 대신 선인과 악인을 골고루 배치하여 균형을 잡으려는 기획의도가 있었다고 하나 이순신 영웅 만들기의 일환으로 왜군 장수들이 이순신에게 매번 캐발리고 "(이를 악물며)이이이순신, 이이이이이이이순시이이이인~!!"이라고 이를 가는 로켓단스러운 패턴이 반복된다(...).[13][14] 물론 몇몇 일본 장수는 나름의 개념을 가진 모습도 나오나 대부분은 007 영화의 악역을 못 벗어나는 게 문제. 다만 이 정도였는데도 왜군을 미화한다고 비판이 빗발쳤으며 사실 훨씬 이전에 방영된 조선왕조 오백년에 나온 수많은 일본 측 인물들에 대한 묘사[15]가 더 입체적인 걸 보면 작가의 역량 문제일 수도 있다.

또한 예교성 전투~노량 해전을 다루는 1~4화와 101~104화는 겹치는데, 설정 변경과 여러 문제들로 인해 기존 촬영분을 많이 삭제하고 새로 찍은 장면을 여럿 섞었기 때문에 어색하거나 완전 딴판인 장면이 많다. 이순신이 '소서행장' 과 '고니시 유키나가' 를 섞어서 부르거나 와키자카 야스하루의 갑옷이 고증에 맞게 바뀌었다가 도로 제자리 복귀하는 장면이 대표적.

이순신이 녹둔도 패전 이후 여진족 추장을 사로잡는 공을 세워 부하들의 복수를 갚고 백의종군의 굴욕을 씻은뒤 부하들의 무덤 앞에서 "나는 다시는 지지 않을 것이다"라고 다짐하는 감동적인 연출이 돋보이는 장면이 있는데, 수적으로 불리한 와중에도 적을 패퇴시켰으며 사상자는 10명이라고 기록된 녹둔도 전투를 대패로 취급해 이순신의 최대 오점인 마냥 그렸다는 문제점이 있다. 전투 규모가 적어도 백 단위의 사상자가 나왔을 법 하기에 스케일을 일부러 키웠다고 보면 될 거 갔지만 나레이션은 당당하게 10명 전사라고 말한다.

무엇보다도 가장 문제시된 것은 바로 원균에 대한 미화이다. 원작 소설부터 그랬지만, 원균과 이순신의 관계가 친한 형님과 아우로 그려지고 둘의 우정이 각별하다는 묘사는 길이길이 까일 단초를 제공하였다. 제작진 관련자에 따르면 처음 역사 고증을 위해 초빙한 스파이가 하필 원균 맹장론을 내세우는 사람이라 그렇게 된 거라고 하며, 이후 돌아가는 꼴을 알게 된 사학자들이 "지금 댁들이 무슨 짓 하는지 알기나 합니까?"며 마구 까대자 뒤늦게 수정해 나갔다고 한다. 덕택에 그 이전까지 호방(?)하고 털털(??)하던 원균이 이순신이 전라 좌수사로 임명된 이후 본격적인 찌질이의 길을 걷게 된다. 임진왜란 개전 이후에는 선조급의 악역이 되었지만 그의 장렬한 최후를 보면 알 수 있듯 초반의 설정을 무시할 수는 없어서 결국 역사 왜곡 드라마의 대표적인 예시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이는 원균 역을 맡은 최재성의 포스도 한 몫했는데, 배우의 연기력이 좋은 건 문제가 없지만 드라마가 원균 맹장설을 기초로 스타트를 끊었기 때문에 그에 맞춰 최재성이라는 네임드 배우를 캐스팅해 주인공급으로 띄워줬으며, 배우 본인도 원균 맹장설에 영향을 받아 연기했기 때문에 원균이 멋있게 나올 수 밖에 없었던 것.

여기에 더욱 불을 붙인 것은 KBS가 해명이랍시고 철저히 조선왕조실록에 기반해 집필한다는 드립을 친 것. 실록을 조금만 제대로 읽어봤으면 원균이란 인간이 어떤 종자인지 모를 수가 없는데 누가 봐도 김탁환의 헛소리를 영상화해놓고 이런 변명을 하고 앉았으니 욕을 먹을 수 밖에.

그 결과 드라마 안티 사이트필멸이 만들어졌으며, 임진록 게임 카페에서 불멸 안티 카페가 된 부흥 카페는 이후 역개루 카페와 더불어 네이버를 대표하는 역사 카페로 크게 흥해버린다.[16]

드라마에서 채택했던 이순신 자살설 등을 시청자들이 진짜인 걸로 받아들이는 부작용도 있었다. 작품이 종영되고 방송된 특별 편에서 이순신 역을 맡았던 김명민을 인터뷰했는데, 이 때 받았던 질문 가운데 '이순신 장군을 만난다면 하고 싶은 말은?' 이 있었다. 이에 대한 김명민의 대답은 '왜 그런 선택을 하셨는지 묻고 싶다.' 라는 것. 즉 작가가 무슨 생각으로 대본을 썼든 연기를 한 배우 본인은 이순신이 자살을 한 것으로 이해했다는 소리.

드라마 종영 이후 제작 관계자 중 누군가가 "이 드라마는 만들어지지 말았어야 한다"고 언급한 발언을 담은 기사가 있었다. 기사의 맥락으로 볼 때 드라마 자체의 완성도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너무 사전 계획이 자주 변경되고 출연자들을 막 굴려가면서 주먹구구로 찍은 일에 대한 반감에서 나온 발언으로 보인다. 실제로 김규리 같은 경우는 중요 설정에 비해서 나중에는 거의 공기 비중이었고, 이영남의 경우는 동귀어진하려다가 다시 살아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덕수 이씨 종친회장은 이 드라마를 시청한 후 탄원서 제출이나 방송 중지 가처 분신청 등 용단의 조치를 취할 생각을 할 정도로 노발대발했다.

임진왜란 시기에 일본 극우들이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망언을 하여 반일 감정이 고조될 즈음 옥포 해전이 방영되어 시청률이 상승하는 효과를 보았는데, 하필 해당 화에서 재탕 논란이 일어 비난을 받기도 했다.[17]

김훈은 이 드라마를 보고 나서 방송국에다가 '칼의 노래'가 원작이라고 쓰여 있는 부분을 지워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주연 김명민이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었던 것이 '칼의 노래'에서 나오는 분위기를 그대로 재현한 것이라고 말한 것을 생각하면, 문제가 심각해졌다.

대본 작가의 말버릇인지는 모르지만, 대다수의 등장 인물들이 비슷한 말투를 사용하는 것도 어색한 점이었다. '~하다는 것은 (나/너/장군/전하 등)가 누구보다도 잘 안다', '~할 생각 / 의도가 내게는 없다', '할 것으로 봅니다'[18], '~할 때입니다'[19] 등이 그것으로, 당시에 쓰였던 말투도 아니고 현재 그렇게 자주 쓰인다고 할 만한 말투도 아니라 사투리를 쓰는 김완처럼 특정 캐릭터가 특이한 말투를 쓴다는 설정이었다면 모를까 모두가 이렇게 말하니 다소 어색했던 것.

신진 사극 작가들이 투입되고 이전의 KBS 정통 사극들과는 좀 궤를 달리하는 면이 많이 보여서, 익숙하지 않은 요소가 기존의 시청자들에게 크게 어필하지 못한 면도 있었다.

6. 특징

문제점이 있더라도 불멸의 크리넥스라든지. 역사적인 고증 오류들을 제외하면 명작이라는 호평이 많았다. 일단 빠른 전개를 들 수 있다. 이는 이 드라마를 좋아하는 외국인들의 평에서도 종종 언급되는데, 상대적으로 KBS의 정통 사극에 비해서는 전개가 빠르고 감정선의 굴곡이 크다. 이는 트렌디한 사극들을 비롯한 비교적 최근 사극의 경향이며 이 드라마도 새로운 사극 시청층의 입맛에 맞는 편이다. 당시 이순신으로 캐스팅된 김명민이 탁월한 연기력을 보여주었고 그 덕분에 젊은 층이나 여성들도 사극에 관심을 갖는 계기도 되었다.

CG 활용 역시 많이 칭찬받는데 요즘 보자면 상당히 어색한 CG이지만 당시 한국 드라마에서 이 정도로 CG를 적극 활용한 경우는 없었다.[20] CG는 해상 전투에서 주로 사용되었는데 총통을 발사하거나 수많은 전선들을 표현할 때 사용되었다. 물론 육지에서의 전투도 CG를 많이 활용했다. 다만 방영 도중에 제작비 수급 문제로 CG의 활용과 촬영 규모는 초반과 후반부에 집중되어 있고 중반부에는 조금 부실한 편이다.

또한 한국 사극 매니아들이 전투신 볼만하다고 많이 추천한다. 해상전의 경우 동일 소재였던 MBC 조선왕조 오백년 임진왜란 편의 미니어쳐 전투신과 달리 쉐이키 캠CG를 적극 활용한 전투신을 보여주었는데 퀄리티가 나쁘지 않다. 함포 사격 때 일부러 고증을 무시하면서까지 대포알이 폭발하도록 표현하여 격렬한 전투를 묘사하였다.[21] 적어도 전투씬의 호쾌함과 박진감으로만 따진다면, 한국 사극 중에서는 역대급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단 문제점은 해상전을 지휘하는 함장과 제독 등의 지휘 구호와 지시가 대부분 "방포하라"와 "적선을 분멸하라"거나 "힘을 내라" 등 고무하는 것 외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배의 선회 각도나, 포격 지점, 닻과 노, 돛의 상세한 조작에 대한 지시 등이 없으며 총대장이자 제독격인 이순신조차도 각 함선에 대한 지시가 부재하거나 모자라다.[22] 이 점은 육지전에서도 마찬가지.

그밖에 녹둔도 전투를 제외한 이순신 장군과 관련없는 육지에서의 전투도 촬영했는데[23], 용인 전투, 이치 전투, 진주성 전투, 평양성 전투 등 지상 전투들을 상당히 공들여 찍었다. 문제는 제작진이 공들여서 찍었다는 것이지 시청자들이 보기에도 그렇다는 이야기는 아니며(...), 상술했듯이 총 제작비 분배가 잘못되어 제작비 수급이 부족하여 육지 전투 중 몇몇은 인원 부족이 두드러지게 눈에 띌 정도였다. 개중에서 충분한 CG로 커버된 것이 많지만, 그것조차 모자랐던 신이 많다. 어찌됐건 이런 전투신의 발전은 후에 대조영에 이르러 정점에 이른다. 그러나 근초고왕에서 이런 노하우를 깎아먹었다. 하지만 정도전으로 부활했다.

재미있는 점은 전투시 먼치킨 장수들의 무쌍 난무가 나오긴 하나 보통 사극에서 장수들에게 픽 하고 베이는 졸개 역할만 하던 졸병들에게 비중을 많이 뒀다. 전투 장면에서 병사들끼리 엎치락 뒤치락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는 식. 그리고 용인 전투 장면의 경우 보통 사극처럼 도망갈 때 그냥 후다닥 도망가는게 아니라 몇몇은 가다가 넘어지고 쓰러진 동료 부축하다가 같이 베어죽거나 하는 안습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고 명량 해전에선 으로 미친듯이 일본군을 패죽여대는 분노한 조선 수군의 모습을 보여준다. 거기에다 졸병들만의 액션도 많이 나온다. 몇몇 병졸들은 아예 약방의 감초격으로 비중이 상당히 높다. 가끔은 장수들보다 졸병들이 더 잘 싸우는 느낌이 들 정도. 하지만 이후 나오는 사극들은 이런 장면들을 잘 보여주지 않는다. 그리고 잘 언급되지는 않지만 의외로 액션이 나쁘지 않다. 장수의 통상적인 가로세로 베기에 갑옷 입은 잡졸들이 픽픽 쓰러지는 전통적인 묘사도 많이 나오지만 적의 허리에 꽂힌 칼을 뽑아서 찌른다거나 밀착 상황에서 장도를 짧게 잡고 목을 벤다거나 하는 창의적인 액션도 심심찮게 나온다. 칼에 꽂히기 직전 발로 적을 차서 공격을 저지하기도 하며 을 들고 어깨를 서로 맞춘 병사들이 을 든 적들을 협동해서 찌르거나 넘어진 상황에서 죽창으로 다리를 타격해 넘어뜨리는 것도 예전 사극에서는 잘 안 나오는 '현실적인' 액션이었다. 1화나 100화의 황세득의 칼부림이나 104화의 배 위의 액션은 특히 볼만한 편.

다만, 이렇게 개개인의 무력이나 액션의 묘사에 치중한 나머지 집단전으로서의 특징은 전혀 못살렸는데, 당시 한국 사극들 공통 사항이지만, 육지전에서도 특별히 대열없이 싸우고, 연출이나 안전상의 문제였는지 혹은 노하우의 부족인지 거의 대부분의 전투씬이 개인과 개인의 격투씬 위주였다. 다만 이 특징은 이 작품만 그런 것이 아니라 한국 연출 풍토가 전체적으로 그런 탓…

시나리오 작가의 특징인지 몰라도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묘사 및 극적 긴장감이 탁월한 것도 장점으로 꼽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녹둔도 전투에서 조선군 진지가 여진족에게 함락되는 편에서 방어 측의 처절함에 대한 묘사는 시청자들에게 '있었을법한 현장감'을 느끼게 해준 모양이다.[24] 이 장점은 칠천량 해전에서 명량 해전 종료 때까지의 편에서 극대화 되었다. 여기에는 영상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OST도 한 몫 했다. 굳이 시대를 감안하지 않아도 음악의 퀄리티는 대단히 훌륭한 편이다. 거북선 출격 브금은 흡사 거대로봇이 진격할 때 나오는 음악 같다 카더라

또한 예고편의 연출 수준이 상당히 높다. 옥포 해전, 명량 해전 등의 해전이나 진주 대첩 등 중요한 지상전의 예고편에는 예고 영상과 함께 전투에 대한 의미를 담은 시적인 문구를 집어 넣는데, 특유의 함축성과 배경 음악이 잘 어울린다[25]. 명량 해전과 노량 해전에서는 원작 중 하나인 칼의 노래에서 그 문구를 따오기도 했다. 명량해전 예고에서는 '오라, 나의 적이여, 물살 우는 울돌목으로'라는 부분이 있고, 노량 해전에서는 '오라, 아득한 적이여, 내 마지막 바다 노량으로'라는 부분이 있다.

세키가하라 전투를 염두에 둔 듯한 장면이 있는데 그것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와키자카 야스하루에게 "임진왜란 때려치우고 너는 내 부하가 되셈"이라는 발언을 한 것이다. 실제로 와키자카는 임진왜란 종전 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도도 다카토라, 가토 기요마사, 후쿠시마 마사노리, 구로다 나가마사 등 임진왜란 때 조선으로 출병을 갔던 다른 무장들이 동군으로 편을 서자 덩달아 동군으로 편을 섰다.[26] 이는 암시 하나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비록 와키자카 야스하루를 이순신과의 경쟁에서 정정당당히 겨뤄 승리를 하기 위해 고뇌하는 장수로 그려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어차피 승산이 없는 싸움 따윈 일찌감치 접으라고 종용하지만 와키자카 야스하루는 전사하는 한이 있더라도 이순신과의 대결을 피하지 않는 남자다운 모습으로 묘사했다.

캐릭터성도 상당히 칭찬해줄 만하다. 녹둔도 편의 수하들의 캐릭터 빌드업이라든지, 고니시 유키나가, 그리고 원균마저도 상당히 입체적인 캐릭터를 그려낼 수 있었다. 특히 원균은 까이기도 하지만, 맹장설을 유지하면서도 찌질함을 무시하지 않는다는 취지에서 꽤나 개연성 있는 캐릭터 체인지를 주려고 노력한 모습도 보였다.[27]

거기에 조선 시대를 사극이지만 배경 상황을 묘사하기 위해 조선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고 일본과 명나라에 대해 자세하게 서술한 점은 높이 평가할만하다. 특히 조선 사극 역사상 최초로 오다 노부나가가 등장했다는 점은 상당히 기념비적인 요소다. 이 오다 노부나가 역에는 야인시대에서 김영태 역을 담당한 바 있는 박영록이 담당했다.

무엇보다도, 전투씬에서 느껴지는 카타르시스는 아주 일품이다. 작중 배경 자체가 임진왜란인데다가, 조선의 암담하기 그지 없는 내부 상황, 적에게 유린당하는 백성들, 그런 적과 맞서 싸우기 위한 장수들의 고뇌와 준비조차 여의치 않은 암울한 상황, 그에 반해 강대하기 그지없는 적의 모습 등을 묘사하는데 상당히 공을 들였기 때문에, 적과 맞서 싸워 승리하는 전투씬은 그야말로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같은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 준다.

아무래도 좋은 사실이지만, 이 사극에서는 등장 인물들이 주연, 조연 할 것 없이 꼬박꼬박 투구를 쓰고 나온다. 물론 간혹가다 안 쓰는 경우도 있지만[28], 대부분은 그렇다. 최근에 고증 면에서 꽤 호평받은 정도전조차도 투구를 잘 쓰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하면…

7. 이야깃거리들

  • 2004년 무렵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의 문제로 중국에 반일 감정이 고조됐을 때, 이 드라마의 1화 ~ 4화의 분량을 인터넷을 통해 보고 자국 방송국에서 수입해줬으면 하는 중국 쪽 네티즌들도 있었다고 한다. 그 외에 화려하면서도 자주 등장하는 해전씬들에 혹한 서양 쪽의 팬들도 있는 모양.[29] 일본 2ch에서는 '비열한 가토 기요마사가 정의로운 이순신에게 일방적으로 당하는 건가…. 왠지 보고 싶을지도'라는 식의 반응이 있었다(…) 자폭 물론 가토 기요마사는 역사상으로도 그랬듯이 작중에서 이순신과 직접 대면하여 싸운 적은 없다. 이순신 때문에 보급로가 끊겨 화내는 장면은 있었지만. 수군 Vs 육군
  • 워낙 이순신의 실제 인생 역정이 드라마틱한지라 시나리오상의 논란이나 이런저런 고증 오류에도 불구하고 임진왜란에 대해 자세하게 알지 못하던 외국인들에게는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드라마를 비판하는 사람들의 입장이 대부분 드라마가 충무공의 공적들을 한낱 신화로, 역사 왜곡을 통해 까내리고 있다는 주장들이기 때문에, 드라마의 고증오류를 비판할수록 이순신 제독 본연의 위대함이 꿰뚫고 튀어나오는 상황(...).
  • 총 제작비는 350억 ~ 400억 수준으로 이 정도의 제작비라면 중반 이후 30%는 꾸준히 유지했어야 제작비를 만회하고 수익을 얻을 수 있는데 몇몇 전투나 마지막회를 제외하곤 30%를 넘기지 못했다.
  • 원래 이순신 역은 최민수, 송일국, 정준호 등이 물망에 올랐었다. 그리고 당시 무명 배우였던 김명민이 이순신 역으로 낙점되었고 이 선택이 김명민이라는 노력파 / 연기파 배우를 음지에서 끌어올리게 되었다. 이 작품을 계기로 김명민이 대상을 받고 서서히 뜨기 시작했고 하얀거탑베토벤 바이러스 등으로 연기 본좌의 반열에 올라섰다.
  • 아울러, 원균(최재성 분) 역에는 김상중 박상민 등이, 미진(김규리 분) 역에는 김태연, 김보경 등이, 이순신의 아내 방연화(최유정 분) 역에는 이민영이 한때 거론된 바 있었다.
  • 다른 사극 3편과 함께 일본에 수출되었다. 야 신난다. 한류에 관심없던 일본 중장년 남성층의 관심을 모았으며, 한국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 위대한 인물의 일대기는 비록 자국군을 패퇴시켰더라도 감명을 준 듯하다. 오히려 일본에서 듣보잡와키자카 야스하루가 주역으로 등장하는 바람에 "이만큼이나 분전한 맹장을 우리가 몰랐었다니 부끄럽다"는 감상도 있었다고. 사실 이건 이 드라마에서 좀 과장되어서 그런것일 뿐 그렇게까지 유명한 장수는 아니었고, 실제로 임진왜란에 참전했던 장수들 중 진정 유명한 장수들은 이 드라마에선 잘 나오지 않았다. 와키자카의 경우 이순신의 라이벌 캐릭터가 되는 바람에 엄청난 버프를 받은 셈.[30] 특히 마지막 노량해전에서 이순신의 대장선과 맞장뜨러 가다가 전위군이 조란환에 맞아죽으며 그를 보호하자 그 전위군을 모세가 바다를 가르듯 양편으로 밀쳐 치워버리고 당당하게 앞에 서는 장면은 그야말로 폭풍 간지. 일본 시청자들의 감상 중 하나 또한 이 드라마 내 해전 장면 중 일부는 일본 사극에서도 쓰였는데, 엄연히 KBS 측으로 NHK가 허가받은 것이다. 이렇게 많은 오류들로 인해 비판도 많은 드라마이긴 하지만 연기나 대사, OST 등에서는 수작으로 평가받을 점이 많아서 수많은 팬들을 양산해 냈다. 일명 불빠. 디시인사이드에 최초로 생긴 드라마 갤러리가 불멸의 이순신 갤이기도 하다. 윤 작가 사극 드라마의 공통점인 것 같기도 하다.
  • 이들은 보통 불빠[31]라고 부르며 디씨인사이드 불갤 (불멸의 이순신 갤러리)에서 유명한 짤방들을 배출하고 디시 전체 갤러리들 중 활동량으로 치면 순위권에 들었을 정도. 불갤의 불빠들을 주축으로 강력한 요구 덕분에 거의 무산되어 가던 OST를 포함한 DVD가 발매되었다. 하지만 OST는 포함되었으나 드라마는 축약본으로 편집되어 많은 실망을 샀다. 그리고 여기서 갈라져 나와서 김명민 갤을 세우게 되는데 불갤러들의 무수한 짤방 러쉬와 사람들의 수많은 댓글에도 불구하고 김유식이 끈질기게도 갤을 만들어주지 않자, 만두 조공을 통해서 갤이 겨우 만들어지게 되었다.
  • 미국인 온리 콤판은 이 작품을 보고 감동해 관련 서적을 뒤지고 관련 지역에 직접 방문 조사 등을 해 시나리오를 만들고, 여기 다른 여러 사람들이 살을 붙여 만화 '이순신 : 전사 그리고 수호자'를 출간했으며 2015년 11월 국내에서 싸인회도 했었다.유튜브 영상 미국의 한 판타지 소설 작가도 인터뷰 중에 이 드라마를 언급하며 보편적인 비극적 영웅상에 대한 표현으로 평가했다. 실제 이순신에 대한 짤막한 언급으로 보아 드라마적 각색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드라마가 묘사하는 영웅담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듯.
  • 등장 인물의 90%가 남자고[32], 나름대로 미남형 / 호남형인 얼굴이다 보니 사극으로서는 부녀자 계층이 활발히 활동한 사극이기도 하다. 당연히 역사적 인물이자 성웅인 이순신을 BL 소재로 쓴다고 반발도 있었지만 부녀자들은 그런 거 상관 없이 커플링 활동을 계속 했다. 국내 온리전도 개최되었다. 국내 최초 & 유일 정통 사극 온리전. 이후에 많은 사극 동인 행사가 열렸지만 '퓨전 사극' 말고 '정통 사극'이 동인에서 활발한 적은 없었다.
  • 여담으로 주인공인 이순신 역을 맡은 김명민 씨는 정작 이 작품에 출연한 성인 남성 배우 중에서는 광해군 역을 맡은 이준을 제외하면 가리포 첨사 이영남 역을 맡은 유태웅 씨와 함께 가장 연소자였다고 한다. 심지어는 설정상 한참 나이 차이가 나는 날발 역을 맡은 이한갈 씨도 김명민 보다 1살 연상.
  • 무수한 까임을 받는 불멸의 작가인 김탁환은 해군사관학교에서 교수를 맡았던 일이 알려져 어이없다는 반응들이 나왔다.[33] 더욱이 SBS에서 나온 프로그램 방영 내용 중 해사 방문했을 때 사관 생도들이 환영하는 장면에 어이가 없다는 이들도 생겨났다. 사실 불멸이 비난받는 것도 한국 해군 수뇌부의 무개념적 환영 행사가 불난 집에 기름 퍼부은 꼴이나 다름없다. 다만 작가로서의 실력은 탁월하여 이광수의 환생 아니냐(...)는 말이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 드라마의 주요 무대인 전라 좌수영, 경상 우수영, 행궁, 왜군 진지 등은 전북 부안군의 드라마 촬영장에 세트를 제작해 촬영했다. 드라마를 제작하기 전 촬영장 후보지로 이순신과 관련있는 지역인 전남 여수시, 경남 통영시 또한 고려했으나 세트장 및 교통 여건 등을 고려해 볼 때 부안군이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했다고.
  • 똑같은 시기를 다룬 징비록이 2015년 2월 14일부터 방영 되었는데 이 작품에 출연한 주요 배우들 일부가 가토 기요마사 역의 이정용, 권율 역의 김영기를 제외하고 징비록에서 다른 역할로 출연한다.
  • 방영 당시 높은 인기 덕택에 특집 프로그램까지 방송되었다. 이 방송에 의하면, 가장 비싼 의상은 김명수가 연기한 와키자카 야스하루의 갑옷이었으며, 작 중 가장 많이 나온 대사는 "장군"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가장 많이 나온 대사는 "방포하라!"였다고.(...) 그 외에도 명량 해전 편에서는 조선군이 시간을 알기 위해 해 시계를 쓰는데 반해 와키자카는 고양이의 눈을 보는 장면이 나온적 있는데, 이게 실제로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했다.
  • 이것을 토대로 만들어진 플래시 게임이 존재한다. 불멸의 이순신 게임 문서 참조. 부엌칼 사기론. 유상철의 분노도 사기....
  • KBS는 <불멸의 이순신> 후속으로 서울 1945를 2005년 8월 20일 내보낼 예정이었는데 이 과정에서 송일국, 채림의 캐스팅이 거론되었으나 제작비 탓인지 보류되었으며 결국 KBS는 2001년 2TV에서 방영된 명성황후를 재방송할 예정이었지만 시청자들의 반발과 내부적인 사정으로 편성이 취소되자[35] KBS는 100부작이었던 <불멸의 이순신>을 4부 늘린 104부작으로 끝냈으며 당시 <서울 1945> 자리에는 칭기즈칸(드라마)이 편성된 바 있었다.
  • KBS 1TV <UHD 명품역사관>(2000년 이후 방영된 KBS 1TV 대하 드라마 중 1작품씩 골라 KBS 1TV에서 재방송) 재방송 물망에 한때 거론되었으나 극중 센노 리큐 역을 맡았던 정욱이 KBS 출연 금지 명단에 올라 있어서(유사 수신 행위 규제법 위반) 탓인지 좌절됐다.[36]
  • 태영호 전 주영 북한 공사가 말하길 김정일이 최고위급 간부들에게 애국심 고양 차원에서 <불멸의 이순신>을 보라고 말했다고 한다.
  • 흑인용병이나 스페인 신부등 실제 임진왜란때 조선에 온 서양인에 대해선 다뤄지지 않았다.
  • 무인시대나 야인시대 출신 배우들이 많이 나왔다. 그도 그럴것이 원래 사극전문 배우들이나 악역전문 배우들, 액션배우들은 작품이 서로 겹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드라마가 방영하기 시작한 시기가 무인시대나 야인시대가 종영한지 1달도 채 안됬거나 1년이 채 안된 시점이엇다보니 더욱 배우들이 겹치기 쉬웠던 면도 컸다.
  • 드라마 초반에 신립이 수군 폐지를 주장하는 일화가 나오는데 실제로 야사인 통제사이충무공유사에 신립이 수군 폐지를 주장했다는 기록이 있다.

8. 고증오류들

아래는 대표적으로 지적되는 고증오류들이다. 다만 제작 시스템적 한계나 드라마의 예산적 한계도 있고, 쌓인 노하우도 적고, 이런저런 고증을 납득이 갈만하게 해줄 전문가도 공짜로 일을 해주는 것도 아니다. 제작 과정에서 천사람이 한마디씩만 해도 천가지가 되는 수많은 피드백(혹은 불평)을 최대한 수용하려 노력한 흔적도 보이기 때문에 개선된 점도 많다.

다만 드라마적 허용을 감안해도 심각한 고증 오류를 저지른 다소 좋지 않은 선례가 많아서 앞으로 영원히 까일 것으로 보인다.원균 맹장론은 말할 것도 없는 레전드이며 거북선 침몰 사건 등 심각한 오류가 여럿 있었다. 오죽하면 김명민의 연기만으로 모든 걸 다 덮었다라는 평이 나오기도 한다.
  • 임진왜란 이전에 조선에 사신으로 파견된 소 요시토시와 겐소 등이 광해군과 몰래 만나 조총의 성능을 시연하는 장면이 있는데, 여기에서 광해군과 그를 수행하는 내시는 물론 유성룡까지도 총의 성능에 크게 놀라는 것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해당 장면 바로 이전에 선조가 말했듯이 당시 조선에는 조총보다 크고 위력도 강한 총통이 여럿 있었기 때문에 놀랄 이유는 없었으며, 당시 조선 조정에서는 조총에 대해 잘 모르기는커녕 위력은 분명 강력하지만 장전하는 데 오래 걸리며 명중률이 낮다는 단점이 있음도 충분히 숙지하고 있었다. 조선군이 임진왜란 초기에 조총에 맥을 못 추었던 것은 일본군이 조총을 효율적으로 대량 사용한 데 있었지, 조총이라는 신무기를 썼기 때문이 아니었다. 다만 무거운 화포나 숙달되기엔 시간이 걸리는 활과 다르게 그나마 대량으로 찍어내는게 쉬운 조총과 훈련받은 조총병의 조달이 쉬울 뿐이다.
  • 39화에서 황윤길과 김성일의 직책을 각각 '첨지중추부사', '부사' 라고 표기했는데, 한 쪽은 조선에서 현재 지내고 있는 관직이고 하나는 통신부사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게 문제인 이유는, 통신사직은 일시직이었고 첨지중추부사와 같은 관직은 상설직으로서 서로 겸직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즉 '첨지중추부사', '사성' 이라고 표기하거나 '(통신)정사', '(통신)부사' 라 표기했어야 한다. 또 본작에서 성격이 다소 괄괄한 것으로 묘사는 김성일이 황윤길에게 하오체를 쓰는데, 당시 황윤길은 정 3품, 김성일은 종 3품이었던데다 나이도 황윤길이 두 살 위였으므로 다소 애매하기는 하나 그래도 존대를 하는 것이 더 적합했을 것이다.
  • 대포의 반동이 전혀 없다. 지적을 받고 중반부 이후 방영분에서는 대포 발사 후 뒤로 튕기지만 노하우가 없어서인지 반동이 좀 어색하며 그마저도 반동이 일어나는 장면과 없는 장면이 혼용되어 나온다.
  • 포탄이 폭발한다. 그 당시 조선군의 총통은 비격진천뢰와 같은 일부 무기 이외에는 운동 에너지만으로 적을 살상하는 쇳덩어리 포탄이 쓰였다. 이 점을 시청자들에게 지적받았는지 중반부 이후 방영분에서는 포탄이 폭발하는 대신 아스팔트 내지 우레탄 파편(?)이 튀기 시작했다. PD의 인터뷰로 보아 고증과 시각적 연출 사이에서 의도적으로 후자를 택한 듯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이 또한 말이 안된다고 봐도 된다. 정확한 고증을 한다면 폭발하지 않는 대부분의 포탄들 사이에 폭발하는 포탄이 조금씩 섞여 있는 모습으로 나오는 게 맞지 않겠냐 인데, 고폭탄을 쏜다고 총통이 폭발하는 경우가 벌어졌다면 바로 난중일기에도 남겼을것이다. 정말 고증대로 따지면 방패와 함체를 꺠부수는 쇳덩이 포탄과, 왜병들을 노리기 위한 조란환등을 섞어서 발포하고 여기에 화공까지 끼얹으면 불을 끈답시고 우왕좌왕하는 왜군을 잡으면서 왜선을 불태우는 방식이 기본이라고 봐야할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하면 뭔가 화끈하게 터진다는게 없이 왜선들이 활활 불타오르거나, 왜군들이 벌집이되며 처참하게 죽어나가는걸 보게된다.심의 등급이 올라간다는 뜻이다 정말로 폭발하는건 신기전쪽.
  • 대장군전 역시 4화에서는 생긴대로현대 미사일처럼 폭발하지만 104화에서는 적선에 구멍을 뚫어 물이 새어들어오는 장면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대장군전을 측면에서 엄청나게 쏴갈기며 압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실제로는 대장군전을 쏘는 천자총통은 주력 화기가 아니다. 조금 사이즈가 작긴해도 차대전이라고 있다. 지자총통이나 현자총통들이 조선수군의 주력화포. 천자총통의 경우에는 화약을 굉징히 많이 소모했다.
  • 조선군의 갑옷 문제. 여러 견해가 많지만 간단히 축약하자면 조선군은 갑옷이 아예 없고 군복(잘 알려진 "포졸족")만 입고 있지만 일본군은 죄다 갑옷을 빠방하게 착용하고 있다.[37][38] 다만, 그 당시 서양에도 네덜란드를 제외하면 군복을 통일했던 나라가 없던 것을 상기하자. 임진왜란기 갑옷의 비율은 미지수라는 것이 정답이고, 이 때까지 찰갑이 주류였다가 실전 경험으로 주류가 두정갑으로 바뀐 것이 아닌가 추정하는 정도이다. 당장 승정원일기에 이순신이 당시 수군이 갑옷을 다 벗고 싸웠는데 왜 입히냐고 말하는 기록도 있어서 기록이 상충된다. 고로 이 드라마에서 포졸복을 입힌 것은 전혀 잘못된 고증이 아니며, 고증의 선택에 불과할 뿐이다. 동시에, 갑옷이 있었어도 오히려 갑옷을 벗고 싸웠다고 하는 것이 의복 고증 방법에서는 더 맞다. 이런 상황에서 의복 고증은 가장 가까운 시대의 고증과 그 당시 다른 국가들의 복식과 비교해가면서 맞추는 것이므로 포졸복으로 해도 비판할 여지는 없다. 물론 갑옷 보유량을 보았을 때 병사들이 갑옷을 기피했을 수는 있지만 이 드라마에 나온것처럼 아무도 안 입지는 않았을 것이다. 화약 무기가 일반화된 조선 후기의 그림을 가지고 이 시대를 그리는 것은 좀 무리이다. 조선군이 갑옷을 많이 입고 다녔다는 뚜렷한 증거도 없지만 시대상이나 전투 방식상 아예 안 입었을리도 없다. 즉, 일본군과 조선군의 갑옷 비율이 지나치게 차이가 많이 난다는 것은 옳은 지적이 될 수 있다. 많은 지적을 받았는지 이후 같은 작가의 사극 대왕 세종에서는 조선군이 환골탈태한다(...).[39] 일본군의 복장 역시 틀린 부분이 많은데, 장군들의 갑옷은 헤이안 시대, 가마쿠라 시대, 무로마치 시대 갑옷이 난무한다.[40] 이에 대해 태클이 들어왔는지 와키자카 야스하루의 갑옷은 본디 헤이안 시대 풍의 갑옷이었다가 이후 전국시대 풍의 뿔 갑옷을 입게 된다.
  • 무기 비율도 문제가 있는데, 일본군은 원거리-조총, 근접-검으로 통일했으며 조선군은 원거리-활, 근접-당파,명나라는 언월도이다. 동서고금을 가리지 않고 옛날 군대의 주 무기는 창이였으며, 일본군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일본군의 절반 이상이 창으로 무장했지만 드라마에서는 죄다 일본도만 들고 나오며 창은 공들여 만든 1~4화에서 몇번 나오고 활 역시 코빼기도 비치지 않다가 명량 해전 즈음에서야 쓴다. 또한 조선군도 활만 쓰지 않고 전쟁이 장기화될수록 조총 비율을 늘려갔지만 여기선 조선군이 조총을 쓰는 장면 따윈 절대 나오지 않고, 칼도 부산 해전쯤 되어서야 쓴다.[41] 훗날 징비록에서는 일본군이 창을 사용하는 장면이 불멸의 이순신 때보다는 많이 나왔으며(칼을 더 많이 사용하긴 하지만), 조선군 또한 당파가 아닌 장창을 쓴다.
  • 임란 전 전라 좌수영에서의 거북선 침몰 같은 사건은 없었다. 충격을 먹은 사람들이 많아서 여러 신문에도 나오기도 했을 정도로 말이 많았다. 임진왜란 7년 내내 이순신 휘하에서 전사한 병사는 100명이 채 안 되는데 거북선이 한 번 가라앉아서 200명 가량이 죽었다고 하니 실제 있었던 일인지 의아해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임진왜란에 관심이 있었던 시청자들은 격분하여 줄줄이 항의글을 남겼다. 이 부분은 윤선주 작가가 해당 내용을 집필했으므로 사극에서 무리수 창작요소를 집어넣는 윤선주 작가 특유의 문제점이다.
  • 가상 인물인 조수창이 관복을 입는 장면에서 좌수영 지휘관들과 병졸들, 같은 도편수들에 이르기까지 '천출이 어찌 관복을...!' 이라는 식으로 반발하고 이순신이 수군만의 과거를 치러 병졸들을 군관으로 삼으려는 대목에서도 선조를 비롯한 대신들이 뒤집어지는데, 실제로는 아무리 천민이라도 공을 세우면 그만큼 대접을 하고 심지어 이미 죽은 사람이라도 다시 조사해서 상을 내리는 게 조선 사회였다. 세종 대에 장영실을 호군으로 임명하는 논의를 하는 자리에서도 '태종 때부터 천민으로서 호군 이상의 관직에 제수된 경우 많습니다' 라는 말이 나왔고, 이 외에도 실록에서 免賤이라고 검색하면 관련 기사가 수백 건 나온다. 즉 조정에 보고도 하지 않고 다짜고짜 철릭부터 입힌 것이 문제라면 모를까 일단 허락만 떨어진다면 건조장에 임명을 하든 어디 만호로 임명을 하든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 일이었고, 이순신이 병졸들을 군관으로 임명한 것도 엄연히 선조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광해군의 허가를 받았기 때문에 신임 통제사 되자마자 '천출들에게 입혔던 관복 즉시 회수해!' 라고 소리지른 원균의 명령이 오히려 이상한 것이었다.
  • 해전이 벌어지면 수군 장수들이 치어리더가 된다. 수군이라는 특징 덕에 지휘관이 최전방에서 칼질하는 병폐를 답습하지는 않았지만, 전투 와중에 한다는 말이 방포하라~! / 단 한 명의 적도 살려보내지 마라~!!라는 것 뿐이다. 실제 전투 상황에서는 단순한 용어로 명령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고는 하지만, 그 명령이라는 것도 "적선의 하단을 겨냥하라!" 라든가 "적의 기함에 집중 포격하라!" 등 전술 상의 지시지 응원은 아니다[42]. 영화 명량을 보면 지휘관들이 여기보단 훨씬 바빠 보일 것이다. 그래도 뭔가라도 하는게 낫지. 배도 없는 장수들은 일개 사부로 참전했다는 기록도 있다. 특히 칠천량 패전 이후의 명량 해전때. 그리고 이것도 잘 따지고보면 고증오류라고 하기에도 애매한게 이순신 통제사도 처음 수영에서 근무하면서 판옥선을 늘릴때 그 판옥선들마다 다 탈것이고 병력들도 직접 골라내겠냐는 권준의 조언도 있었다. 막말이 될 수도 있지만, 그렇게 따지면 내내 백병전으로 싸우려고 들었던 원균이 들어맞게된다. 현실에서는 장수든 병졸이든 사람이지, 게임에서 나오는 양산형 유닛들보다 강한 영웅유닛같은게 아니다.
  • 몇몇 해전에서 참전하지도 않았던 장수들이 참전하는 것으로 나온다. 대표적인 예로 노량 해전에 멀쩡히 싸우고 있는 와키자카 야스하루, 명량 해전에서 이순신의 지휘 아래에서 전투하고 있는 가리포 첨사 이영남, 충청 수사 권준[43], 순천 부사 우치적이 있다. 그 와중에 짤린 사람은 이운룡. 계속해서 새로운 인물을 추가하기가 부담스러워서 그랬던 것으로 보인다.
  • 조선 북부 지방의 장면에서 수군들이 나온다. 그냥 포졸복을 입히면 될 걸 괜히 수군복장을 입혀서 내보낸 촌극. 굳이 따지면 함경도는 별도의 수군이 없기 때문에 그냥 대충 입힌 것으로 보이며 문제의 장소인 녹둔도는 원래 정규군이 항시 주둔하는 곳이 아니고 인접한 병력이 파견되는 곳으로 녹둔도를 포함하여 조산보 관할 구역 내의 조선군은 육군 토병 48명에 남도에서 파견되는 부방군 30명을 합쳐 육군 78명이 항시 배치되며 이는 녹둔도 전투 당시 기준의 편제표이다.
  • 압도적인 병력차를 뒤집고 적을 물리친 녹둔도 전투가 졸지에 패전, 이순신 최대의 콤플렉스로 둔갑했다.[44] 기록에는 10명 전사했다고 되어 있지만 여기선 연출을 중요시해 임진왜란 체험판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의 스케일이 된건 덤.
  • 육군 영주였던 시마즈 요시히로가 수군 총대장으로 둔갑한다. 애초에 일본군에는 해군 영주, 육군 영주 이런 개념 따윈 없었다. 다만 당시 왜군의 다이묘들 중에서 그나마 해적출신인 구루지마 미치후사나 해군 영주라고 불러도 맞긴하지만 왜국의 전국시대 대부분이 육상전이었다.(...) 시마즈 가문이 당시 서쪽 다이묘들 중엔 제일 유명하고 용맹해서 총대장으로 지목한듯. 다만 시마즈가 전력 대부분을 노량 해전에서 잃은 건 사실이다.
  •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아주 광인으로 묘사해놨다. 처음에는 위엄있는 관백의 모습이였지만 부산 해전 이후 이에야스에게 능멸을 당하자 그날 밤에 미친듯이 분노하는걸 시작으로 점점 맛이 가기 시작했으며, 최후도 고함을 치다가 빗속에서 피를 토하며 죽는 등 구루지마 미치유키, 선조 뺨치는 또라이가 되었다. 다만 임진왜란 당시 도요토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았는지는 일본 학자들조차 모르겠다 할 정도인데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장본인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아주 납득이 안 되는 수준까지는 아니다.
  • 다른 일본 영주들이 수군 총대장인 구키 요시타카에게 충성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도도 다카토라는 이순신에게 패한 직후 구루지마 미치유키에게 개갈굼당한다.[45] 일본의 영주간에 세력차가 있는것을, 중앙 집권적 국가와 그 역사에 익숙한 한국에서 이해하지 못했거나 드라마의 특징상 나온 케이스인 듯하다. 만약에 군소영주인 구루지마가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대영주에 히데요시를 직접적으로 섬기는 도도한테 이런 짓했으면 뒷일을 감당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다카토라가 7만석이긴 하나 도요토미 히데나가 휘하의 1인자였고, 히데나가 사후에도 그 재능을 높게 본 히데요시가 직접 발탁해서 멍청한 조카에게 붙여 줄 정도로 능력있는 사람인데 반해 구루지마는 걍 듣보잡이었다. 당시는 일본이 통일되긴 했어도 안정되지 않은 시대라 구루지마 같은 약소 다이묘는 강대 다이묘들의 눈치를 봐야 했다. 뿐만 아니라 와키자카의 휘하에 있는 도공인 장평이 도도와 동감하자, 와키자카의 세력이 무서워서 감히 장평의 말에 뭐라고 토를 달지 않는 이중성도 있다. 차라리 구루지마가 도도 앞에서는 겉으로나마 예의바른 모습을 보이면서 도도가 없을 때 도도에 대해 뒷담화를 하는 식으로 묘사하는 게 나았을 듯하지만 도도 다카토라도 그렇게 편하게 출세한 사람은 아니다.
  • 작중에서도 언급이 되었고 이후 조선 통신사들도 기록을 했던 바와 같이[46] 전근대 일본은 조선에 비해 검을 훨씬 중시했고, 따라서 개인차는 있겠지만 그래도 일본군이 조선군에 비해 백병전에 더 능하다고 할 수 있는데[47] 임진왜란 당시의 연출을 보면 경험이 없는 신병인 조선 병사가 일본군과의 백병전에서 막상막하로 싸운다. 이순신이 아군의 백병전 능력에 우려를 표하면서 정운 등 수하 지휘관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포격전 위주의 전술을 채택하게 된 주 원인이 바로 이것이었는데, 막상 붙어 보니 막상막하라면 조금 애매하지 않은가. 특히나 다 늙어서 김완이나 어진이 종종 걱정하기도 하는 어영담이나 노회한 조정 대신인 이원익이 무쌍을 찍는 어이없는 연출도 나온다. 그나마 울산성 전투에서 류성룡이 칼질을 하는 장면을 내보내지 않은 것은 다행.
  • 조총의 성능이 반자동 소총 정도는 되는 듯한 묘사가 종종 보인다. 5초에 한번 쏘는 건 기본이고 연발 사격도 심심찮게 하며, 심지어 조총만 들고 적진에 돌격해 총검술돌려 쳐 동작을 정확히 구사해 적을 제압하기도 한다.[48] 이렇게 백병전에서 적을 제압하면 거기다 대고 총을 쏘는 것으로 마무리. 사실 개머리판도 없었다. 기록에 따르면 뺨이나 가슴으로 견착해서 쐈다고. 게다가 조총도 장전이 꽤나 복잡했다.
  • 함대 간의 거리에도 문제가 좀 있다. 총통의 사거리가 1km정도 된다고 극 중에서 언급했으며 판옥선의 길이가 20m 좀 넘는 걸 생각해 보면 양 함대의 거리는 1km는 커녕 200m정도밖에 안 되는걸로 보인다. 유효 사거리를 감안해 좀 더 접근했다 쳐도 200m는 와키자카가 도선해서 모조리 도륙하는 그림이 나왔을 듯. 이 부분은 사실성을 살린답시고 안택선과 판옥선간의 거리를 500m ~ 1000m로 설정했다면 배가 너무 작아보여 재미가 없었을 것이니 그럴만 한 연출이라고 보면 될 듯.
    파일:attachment/불멸의 이순신/Example.jpg
    (반론) 위 내용은 과거의 통념에 입각한 서술이기는 하나, 이를 오류라고 단정하기는 곤란하다. 1km는 천자총통의 유효사거리가 아니라 최대사거리인데, 역사상 어떤 전투에서도 최대사거리에서 전면사격을 개시한 예는 없다. 명중률이 형편없어져 화약과 포탄의 낭비이기 때문. 일본군 주력 전투선인 세키부네의 길이가 10~20m 가량이고 기함급인 아타케부네의 길이가 30m 가량이라는 점에 비추어 보면, 1km 거리에서 이를 명중시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즉 명중률이 어느 정도 담보되는 거리는 200~300m 남짓이고, 최대한으로 보더라도 400m 이하였을 것이다. 드라마 방영 이후 그 내용이 알려지기 시작한 수조규식에도 적선이 200보(步) 내로 접근하면 총통으로 사격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장전속도를 높이거나 드라마에서 나온 것과 같이 평저선인 판옥선의 특징을 이용한 선체 회전사격[49]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 물론 이 드라마 제작 당시에 수조규식의 내용이 널리 알려져 있지는 않아 이를 참고해서 만든 것은 아니겠지만, 결과적으로 위 화면의 내용에는 큰 문제가 없는 것. 총통이 많이 동원된것도 사실이지만, 활도 많이 쓰인만큼 꽤나 가까운 거리에서 교전을 벌였다고 봐야하는게 맞다.
  • 전라 좌수영 지휘관들에 비해 전라 우수영이나 경상 우수영 지휘관들이 너무 적게 나온다. 이순신이 직접 통솔했던 전라 좌수영 소속 인물들의 비중이 대단히 높은 것이야 당연한 일이지만 전라 우수영이나 경상 우수영 측은 인물 자체가 많이 나오지를 않아서[50] 삼도 수군이 죄다 모인 자리에서도 절대 다수가 전라 좌수영 소속이다. 하다못해 엑스트라들이라도 주욱 앉혀놓아도 되었을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아쉬운 부분. 또한 칠천량 이후 조선 수군이 이순신 아래에 완전히 결집되었을 때에도 전라 우수영과 경상 우수영은 찬밥 신세인데, 당상관인 경상 우수사 무의공 이순신이 신병들을 접수하는 잡일을 맡는 모습을 보여준다[51].
  • 일본 수군이 보유한 전선들은 소조선, 세키부네(관선), 아타케부네(안택선) 등이 있는데 드라마에서는 작은 어선연락선을 제외하고는 죄다 아타케부네만 나와서 해전이 항상 판옥선과 아타케부네만 싸운다. 실제 일본군의 주력은 판옥선보다 작은 세키부네였으며 극 중 일본군 주력인 아타케부네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52] 정확히 말하자면 세키부네 자체는 본작에도 많이 나오긴 했으나, 세키부네에 탑승한 일본 병사들의 모습을 자세히 찍기 위한 세키부네 세트장을 따로 만들지 않은 탓에[53] 세키부네를 멀리서 촬영한 모습은 많이 나오면서도 세키부네를 타고 해전에 임하는 일본 병사들의 모습이 자세히 묘사되지는 않았으며, 해전에 임하는 일본 병사들의 모습이 자세히 묘사된 일본 군함은 모두 아타케부네였다. 물론 실제로도 정유재란 때는 판옥선에 대항하기 위해 아타케부네가 많이 투입되긴 했으나, 그래봤자 세키부네에 비하면 여전히 적은 편이었다. 실제로는 세키부네들도 사이즈가 들쭉날쭉하기도 했다. 문제는 당시 수군들이 왜군 함선들을 보는 족족 깨부숴서 그걸 왜에서 생산량을 따라 가기가 힘들었다. 오죽하면 도요토미 본인이 직접 군선 건조에 개입했겠는가.
  • 부산포 해전에서 녹도 만호 정운이 함선에 떨어진 비격진천뢰를 몸으로 막아 전사하는 것으로 묘사되었는데, 실제로는 상륙하여 돌격하던 도중에 머리에 총을 맞고 전사했다는 것이다. 정운의 장례식이 나오고 그의 기일이 부산 시민의 날로 제정되었다는 자막까지 나오는 걸 보면 의도적으로 그의 희생을 부각시킨 듯.
  • 칠천량 해전에서 조선 수군의 함선 거의 전부가 격침당한 것으로 나온다. 명량 해전 직후 함대를 재건하는 속도가 비정상적으로 빨랐던 등 여러 가지 정황을 따져봤을 때 실제로는 조선의 함선 대다수가 격침당했다기보다 그냥 버려지거나 뿔뿔이 흩어졌다고 보는 게 정설이지만 본작에서는 죄다 분멸된 것으로 묘사했다.[54] 또한 일본군의 포격에 침몰한 배도 족히 수십척으로 보이는데, 당시 왜선의 설계 자체가 함대간 포격전에는 어울리지 않다는 점은 작중에서도 수 차례 언급되는걸 보면[그래서] 수없이 떨어지는 포탄은 살짝 과한 감이 있다. 그러나 와키자카가 "기만술에 기습 포격전!!" 드립을 치면서 이순신에게 당한 방식을 그대로 조선수군에게 돌려 준다는 컨셉을 잡았으니 이를 위한 연출로 보는 게 맞으며 나중에는 "우리 일본군의 방식"이 있다면서 도선 후 몰살시키고 불을 싸지르는 장면이 나왔으니 틀린 건 아니다.
  • 명량 해전에서 철쇄로 이긴다. KBS 역사 스폐셜에서 철쇄설이 등장한 이후 떡밥이 됐는데, 현대에도 이런 쇠사슬을 치기 힘들다는 걸 생각해보면 근거 없는 주장에 불과하다.[56]
  • 명량 해전에서 이순신이 직접 칼을 뽑고 싸우면서 적장을 베어 쓰러뜨리는데, 이에 대해서는 이순신이 직접 검을 휘두를 정도는 아니었다는 비판이 있으나 난중일기에 쓰인 표현으로 보아 충분히 있었을 법한 일이라는 반박도 있다. 여기서 포인트는 구루시마 미치후사를 이순신이 벤 것으로, 실제로는 모종의 이유로 죽어서 떠내려 가는 걸 항왜 준사가 발견하고 김돌손이 건져낸 뒤 구루지마의 모가지를 썰어 장대에 내걸었다는 난중일기의 기록이 있기 때문에 오류가 맞다. 이 역시 표현을 위한 허용으로 봐야 하는데, 단순 전투가 아닌 칼부림을 하면서 그동안 자신을 괴롭혀온 세상의 모순과 인생의 역경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다가 적장과 함께 모두 베어버리고 승리를 얻는 감동적인 장면이기 때문.
  • 명량 해전에서 난중일기의 기록으로 미루어봐서는 상당한 시간을 이순신의 상선 혼자 싸운 것으로 추정되지만, 극중에서는 (위에도 언급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명량 해전에 참가하지도 않은) 권준, 우치적, 이영남 등 몇몇 부하들이 처음부터 같이 죽기로 싸운다. 이 세 장수는 드라마상에서 이미 이순신과 죽음을 함께 할 정도로 돈독한 신뢰 관계를 쌓은 사이인데 이런 자들까지 뒤에서 놀고 있으면 드라마의 방향과도 맞지 않기 때문에 이순신과 처음부터 같이 싸우는 것으로 묘사된 것. 안위, 김응함 등은 실제 역사대로 초요기가 올라간 뒤에야 합류한다.그렇다고 명량 해전에서 이순신의 기함이 혼자 싸우는 장면을 몇 화에 걸쳐서 길게 넣을수도 없고...
  • 노량 해전에서 이순신이 와키자카 야스하루와 대결을 벌이지만 실제로 와키자카는 노량 해전에 참전하지 않았다. 불멸의 이순신에서는 주인공과 시종일관 대립하는 인물이 필요한 것으로, 그 인물을 와키자카로 정하여 각색한 부분이다. 근데 이 각색은 10년 후인 징비록에서도 거의 고쳐지지 않았다. 다만 징비록에서의 와키자카는 불멸의 이순신에서 이영남과 동귀어진이 아닌 영혼까지 탈탈 털려 멘붕 상태가 된 채로 철군하는 것이 다른 점. 이후 임진왜란 1592에서 와키자카 야스하루가 노량 해전에 참전하지 않은 것으로 묘사되어 불멸의 이순신 및 징비록에서의 이러한 문제점이 개선되었다.
  • 노량 해전에서 명나라 수군의 묘사도 고증에 오류가 있다. 실제 역사에서 진린은 왜군에게 포위당하여 위기를 맞았다가 이순신에게 구출되는데 드라마에서는 전혀 묘사되지 않았다. 게다가 이 해전에서 전사한 등자룡이 드라마에서는 전사하지 않고 살아있다.
  • 일본 활을 거꾸로 들고 쏘는 장면이 있다.
  • 왜군이 총통을 썼다. 조선 수군이 총통을 쏘면서 왜군이 조총으로만 반격하는게 그림이 영 안나오는지 왜군도 총통을 쏘는 장면을 넣었지만, 작중에서도 배가 약해서 다수의 총통을 쓰기 어렵다고 보고하는 장면도 나오고 나름 배를 새로 건조하는 장면도 보이지만 실제로는 왜군은 전쟁 끝까지 화포를 운용하지 못했다. 세키부네들은 삼나무로 만든 반면 참나무나 소나무등 단단한 나무로 만든 판옥선과 비교하기에도 당장 판옥선으로 들이받아도 세키부네가 박살날 정도다. 여기에 이순신 통제사께서 선조에게 장계를 올릴때마다 걱정하던것이 왜군들이 큰배와 더불어서 화포를 장착하고 싸운다면 맞설 재간이 없다고 걱정을 했지만 그러지도 않았을 뿐더러 왜국의 전국시대도 거의 육상전이 다수였음을 감안하면 그렇게 조선수군 정도의 해군을 만들어내지도 못한 셈이다 왜군이 함포를 운용하면서 함대를 만들었다면 전국시대의 승자는 오다 노부나가가 아니었을 것이다
  • 원균의 수하이자 이순신과 사사건건 대립하는 인물로 우치적(이재포 분)이 대두되었는데, 사실 우치적은 이순신이 백의종군할 때도 울며 전송하며 노자를 보탤 만큼 이순신과 친한 인물이었다. 칠천량 해전 이전에 순천 부사로 재직해서 직책상 원균과 가까이 지내야 했던 경우[57]는 있었지만, 충무공의 백의종군 시기의 일기를 보면 순천 부사 우치적이 초계로 자주 찾아와 원균의 망령됨을 하소연 하는 장면이 몇 군데 나온다. 그러나 드라마에서는 원균의 북방 시절부터 충직한 심복으로 출연해, 원균이 죽고 나서야 그의 유지를 따라 이순신의 충직한 부하가 된다는 설정으로 고인드립에 해당될 만큼 심한 왜곡을 저질러 버렸다. 여러모로 원균 맹장설을 억지로 드라마에 끼워 넣으려는 시도에 희생된 듯.
  • 우치적과 함께 사극 최대 피해자 2호는 바로 윤두수 (정동환 분)라는 얘기가 있다. 유능한 장면은 아예 안 나오고 부정적인 씬만 나와서 이미지를 깎아먹었다는 것. 그러나 관직 생활 초부터 뇌물을 받아서 탄핵된 기록이 있는 데다가 원균을 고금에 둘도 없는 명장이라고 하기도 하고 평양성을 지키겠다고 호언장담하는 건 물론 제멋대로 장문포 해전을 기획하여 다 말아먹거나 조정에서 이순신을 못마땅해하는 선조에게 편승하여 전시에는 지휘관을 바꾸면 안 되지만 이순신은 반드시 체직시켜야 한다는 주장까지 한다. 그것도 정확한 근거조차 없이 그저 김응서 같은 잡신(雜臣)의 말만 듣고 저렇게 주장한 것이다. 그리고 칠천량 해전 이후 비보를 접한 조정에서 대책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통제사를 임명하지 말고 각지의 수사들이 고을 단위로 방어하게 하자는 주장을 하는 등[58] 삽질을 워낙 많이 하긴 했지만 관료로서는 유능한 인물이였는데 그저 사악한 권신으로 묘사되었다.[59]
  • 조선 관료들이 일본어 능력자도 아니니 일본 장수들을 한국식 한자 발음으로 불렀을 텐데, 대부분 일본식으로 불렀다. 이게 왜 문제가 되냐면 도요토미 히데요시, 고니시 유키가나, 가토 기요마사를 수길, 행장, 청정이라고 잘만 불러놓고 후반부에는 히데요시, 고니시 유키나가 등으로 호칭이 바뀌었기 때문. 그래서 99화부터 104화까지는 1~4화에 나왔던 장면을 재활용한 부분과 새로 촬영한 부분이 섞여 나온 99~104화에서는 이순신이 고니시 유키나가와 소서행장을 섞어 쓰며, 와키자카 야스하루 같은 경우에는 협판안치라고 칭하는 부분이 단 한 번도 없다. 아이러니한 것은 요시라(가케하시 시치다유)의 경우 조선인들과 일본인들에게 모두 한국식 한자 발음인 요시라로 불렸다는 것(...). 근데 이것은 편의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시마즈 요시히로를 예로들자면, 심안돈, 심안돈오, 도진의홍 등등 벼라별 이름으로도 불렸다. 님을 뜻하는 도노도 이름이라고 착각해버린 경우.
  • 휘하 장수들이 이순신을 부르는 호칭이 '장군' 으로 잘못되어 있다. 일반 병사들이야 순박하고 잘 모르니 장군이라고 할 만하지만 무관들이 왜란 전에는 좌수사 영감이라고 잘만 불러놓고 갑옷을 입으니까 장군으로 호칭이 바뀌는가 하면 가선대부와 정헌대부로 품계가 올라갔으면 대감이라고 불러야 하는데 극중에서 이순신을 대감이라고 부르는 장면은 단 한번도 없다.[60] 정3품 당상관에 해당하는 무관을 '장군' 으로 지칭하는 것은 큰 결례이다. 이 또한 위에서 나온 현대인들의 시점에서 벌어진 경우.
  • 일본 무장들이 서로를 "가토 장군", "고니시 장군" 등 '장군' 이라는 칭호로 부르는데 이는 명백한 오류이다. 일본에서 장군은 쇼군, 즉 세이다이쇼군(정이 대장군) 1명 뿐이며, 겐지의 후예가 아니면 감히 쓸 수 없는 호칭이었다. 만약 극중에서처럼 서로를 장군으로 부른다면 이는 반역으로 체포되어 사형을 면하기 어려운 중죄에 해당했다. 그 히데요시마저 쇼군을 칭하지 못하고 공경의 양자가 되어 관백을 칭했다. 물론 극중에서 나오는 일본어는 "하이", "하", 빠가야로밖에 없으며 일본사람들도 죄다 한국말을 쓰기 때문에[61] 굳이 일본어까지 제대로 번역할 필요까지는 없다. 그래서 시청자들에게 익숙한 장군 호칭을 쓴 모양.[62] 이 또한 위에서 나온 현대인들의 시점에서 벌어진 경우.
  • 나고야가 잘못 나와 있다. 일본군의 본진이 있는 나고야를 오와리의 나고야로 인식하여 화면에서 나고야 성을 비출 때 오와리의 나고야 성을 영상에 띄우고, 전략회의 장면에서도 나고야를 언급하며 오와리 나고야가 있는 일본 중부 지역을 가리키고 있다. 그러나 실제 일본군의 본진이 있던 곳은 규슈 히젠에 있는 나고야로 코앞에 대한해협이 있는 곳이며, 일본 중부의 나고야와 히젠의 나고야 간 거리는 서울-부산 간 거리보다도 멀다. 상식적으로 조선 쳐들어가는데 제일 가까운 데서 쳐들어가지 빙 돌아서 쳐들어갈까?
  • 도도 다카토라가 엄청 중후한 인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주인을 7번 바꾼 걸로 유명하고[63] 도쿠가와 이에야스한테 붙어 많은 공을 세우지만 이에야스조차 너무 아첨이 심해서 마음에 안든다고 할 정도였다. 이는 고증 오류라기보다는 도도가 딱히 누구에게 아첨할 만한 상황 연출을 할 필요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배역을 맡은 최동준 씨가 무게감 있는 연기를 많이 해서 생긴 사례로 보인다. 다만 도도 다카토라는 본인 항목에서도 나오지만 떡집에서 문전걸식하다가 다이묘가 된 만큼 능력은 있었던 사람이었다.싸움 실력은 별개지만
  • 듣보잡에 가까운 일본 무장들은 마치 일본에서 대단한 위치에 있는 것 마냥 설명했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에서 참전한 높은 위치에 있던 무장은 드라마에선 잘 언급되지도 않던 고바야카와 다카카게, 모리 데루모토, 시마즈 요시히로, 도도 다카토라 등으로, 불멸의 이순신에서 띄워준 장수들은 신인 무장 or B급 무장이었다. 가토나 고니시, 구로다 등등은 전쟁에서 잔뼈가 굵긴 했지만 A급은 아니었고 오히려 당시 잘나가는 신예 느낌이 강했다. 오히려 진정한 A급 이상은 콩라인 다테 마사무네와 이 당시 일본 전체 최강자인 장수풍뎅이 혼다 타다카츠, 그리고 그 혼다의 주인인 S급의 도쿠가와 이에야스이다. 하지만 혼다는 자신의 주인을 따라서 아예 임진왜란 자체를 불참했고 다테는 임진왜란에 참전했다고는 하지만 참전한 전투가 고작 제2차 진주성 전투 정도에 불과했으며, 때문에 여기서 띄워준 장수들 항목에는 와카자카나 고니시보다는 전술한 도도 다카토라나 시마즈 요시히로가 들어가야 맞다. 이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오다 노부나가의 세력을 계승했기도 했지만, 반대로 전부 휘어잡지 못했다는 뜻이다.
  • 진주 대첩에서 전사한 김시민은 시체 아래에 있던 왜병에게 저격당하는 것이 아니라 분전 중에 총 맞고 쓰러지는 것으로 나온다.
  • 명군의 긍정적인 부분은 거의 드러나지 않고 부정적인 요소만 나타난다. 항목에 나와 있듯이, 명군은 조선에 민폐만 끼친 존재는 아니었다. 일본 제국이 임진왜란 당시의 도요토미 정권과 병자호란 당시의 청나라를 매우 높이 평가했음을 감안하면 조선 중기 당시의 명나라를 조선에 도움은 안 주고 피해만 준 한심한 나라로 여기면서 당시 명나라에 대한 조선의 사대를 병자호란의 유일한 원인인 것처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한국인들의 역사관은 식민사관의 잔재일 가능성도 있다. 일본의 입장에서 명나라는 자신들의 조선 침략을 막은 나라라서 좋게 평가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 부산진 전투의 지휘관이었던 정발은 흑의 장군 즉, 검은 갑주를 입고 부산진 방어에 참전했는데 드라마에서는 청색 갑옷이다. 10년 후 징비록에서는 검은 갑주를 입고 나타난다.
  • 왜란 전 수군의 훈련 상태가 개잉여로 묘사된다. 수군은 육군과 다르게 함선 위에서 전투를 치르는 전문직이기 때문에 훈련의 난이도가 육군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그래서 수군에서 쌩고생을 하느니, 차라리 육군에 지원하겠다는 생각에 수군 입대를 피하려는 생각이 대부분이었다. 조선 수군이 이순신이 수장이 된 후 전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한 건 맞지만 드라마에서 표현된 것처럼 노도 제대로 못다루는 격군화포 장전도 모르는 포수 같은 잉여들은 아니었다. 부임 당시 병사들의 군복도 없거나 12척 있어야 할 배가 꼴랑 두 척밖에 없다는 암담한 상황을 잘 묘사한 건 좋았는데 살짝 오바한 셈이기도 하지만 당시 유교의 실정상, 바다에 빠져죽으면 그대로 장례를 치렀기 때문에 무덤도 없는걸 받아들이지 못했다.
  • 노량 해전 당시 이미 짤린 인물들이 그 직책을 그대로 역임하고 있다. 정운의 후임 녹도 만호인 송여종도 등장하지 않는 걸 보면[64] 새로운 인물을 캐스팅하기에는 여건이 맞지 않은 듯 하다.
  •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당시 일본에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쌍벽 수준의 실력자임에도 불구하고 불멸의 이순신에서는 히데요시의 띠꺼운 부하 정도로 묘사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을 때 도쿠가와 이에야스 등에게 후사를 부탁했지만 불멸의 이순신에서는 그냥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빡치게 하는 바람에 홧병으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는 걸로 묘사된다. 물론 히데요시가 죽은 뒤 이에야스가 뒤통수 쳐버린 것은 사실이며, 위에서 보듯 이를 암시하고 있다.
  • 분명 웅치 전투를 조선군의 패배로 묘사하고 나레이션이 "패배했다"고 말하는데 이치 전투 승리 후 병사들이 환호성을 지르는 장면에서 나오는 해설은 이치 전투와 웅치 전투를 세트로 묶어서 승리했다고 말한다. 아마 일본군의 전라도 진격을 저지하는데 성공한 전술적 승리를 말하는 듯.
  • 6대 국왕이었던 단종 임금이라는 명칭이 불쑥 튀어나오는데 노산군으로 강등되었던 단종이 단종이라는 묘호를 받게 된것은 불멸의 이순신에서 백 년 뒤인 숙종 24년(1698년)의 일이다. 단종과 더불어 김종서 또한 만고의 충신으로 표현하는데 김종서가 역적에서 충신으로 복관된 것은 이로부터 거의 150여년 뒤인 영조 시기이다. 즉, 선조 시기인 이 시대에서 단종은 아직 노산군이었고 김종서는 역적 취급이었으므로 명백한 고증 오류. 선조는 단종에게 전혀 호의적이지 않았고 단종에 대한 동정 여론 형성에 크게 기여한 남효온의 육신전을 보고 역정을 냈다. 그냥 단종과 그의 신하들에 대한 언급 자체를 하지 말지 그랬냐?
  • 이덕형이항복을 부를 때 '오성' 이라 부르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오성'은 이항복이 받은 군호인 '오성 부원군'에서 딴 것일 뿐, 가 아니다. 이항복의 는 '백사' 이므로 정상적이라면 '백사'라 불렀어야 한다. 오성과 한음의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이후 징비록에서는 이항복이 백사 이항복으로 나옴으로써 이러한 문제점이 개선되었다.
  • 거제 현령 안위를 비롯한 충무공 휘하 장수들의 임관 시기가 크게 잘못되어 있다. 드라마의 묘사를 보면 거제 현령 안위는 칠천량 해전 이후, 명량 해전 직전에 조선 수군에 보직 발령을 받고 다시 수군 통제사에 기용된 이순신을 처음 만나는 것처럼 행동하며 자기 소개를 하는데, 어이없게도 안위는 이순신의 파직 이전에 이미 임관하여 부산 왜영에 불까지 지른 인물이다(...)[65]
  • 이순신진린의 첫 대면도 고증 오류이다. 진린은 이순신을 때린 적도, 모욕을 준 적도 없었다. 이순신이 품계상 상급자이기 때문에 그럴 수 없었기 때문.[66]
  • 원래 명나라로 끌려가 사형당했어야 할 요시라가 고니시 유키나가와 함께 본국으로 도망가는것으로도 모자라 고니시 유키나가 밑에 종군하며 마지막회까지 출연한다. 심지어 이순신에게 항복을 권유하는 사절로 오기도 한다.
  • 고니시 유키나가가 흔히 알려진 붉은 십자가 깃발을 사용한다. 원래 고니시가 붉은 깃발을 사용하기는 했지만,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천주교 금지령으로 임진왜란 시기에는 십자가 깃발을 사용하지 않았다.
  • 도도 다카도라 등 일본 다이묘들이 망원경으로 조선 수군을 관측하는데, 망원경은 1608년에 발명되었으므로 1592년에 이걸 사용하는 건 명백한 오류이다. 뭐, 어때. 휴지도 있는데
  • 비중 있는 조연을 맡은 배우들의 애드리브[67]에도 문제가 있다. 가령 87화에서는 마 군관(마영갑)을 비롯한 병졸들이 일본에 파견됐던 통신사를 수행하여 돌아오는 부분이 있는데, 감시초소에서 배가 돌아오는 것을 본 정대만이 '영갑이 성... 아니아니, 마 군관님 아녀?!' 라고 외친다. 그런데 마영갑이 군관으로 임명된 것이 84화였으니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불과 얼마 전으로 느낄 수 있는데, 85~86화에서 전염병 에피소드가 다루어진 뒤 87화가 시작될 때 '1596년 8월 8일(2년 후)' 라는 자막이 뜬다. 즉 정대만은 두 달도 아니고 2년 동안 마 군관이라는 칭호가 입에 붙지 않은 셈. 또 칠천량 해전이 다루어진 92화에서 정대만은 이순신이 복직된다는 소식을 듣고 조수창과 마영갑 등과 짧은 만담을 하는데, 문제는 해당 화 초반에 짝보가 전사하는 신이 나온 것. 몇 년간 단짝이었던 녀석이 안 보인다면 곧바로 수소문하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다 당시 조선군은 항구에 정박한 상태였기 때문에, 아무리 봐도 어색하다[68]. 한편 97화에서 살아돌아온 김완은 99화에 왜교성으로 진군할 때 일본군과 오랜만에 붙게 됐다며 흥분하는데, 99화 초반에 절이도 해전이 벌어진데다 왜교성 공격도 다섯 번째라는 내레이션이 나왔기 때문에 오랜만 운운하는 것은 배우의 실수라고밖에 볼 수 없다[69].
  • 마지막 화에서 유성룡이 광해군에게 징비록을 바치면서 전란을 잊지 말고 강한 나라를 만들 것을 당부한다. 문제는 징비록이 1604년에 완성된 책인데 광해군에게 징비록을 건넨 시점은 유성룡이 사직하고 이순신이 노량에서 대기하던 그 시각이라는 것.

9. 관련 문서




[1] 작가(윤선주)의 차기작인 대왕 세종 연출자로 낙점되었으나 드라마 2팀장으로 발령이 나서 고사했다.[2] 초반 주필을 맡았던 작가인데 원균 옹호론자였기 때문에 드라마 진행이 초장부터 어긋나게 되었다.[3] 1화 방영 당시.[4] 참고로 현재 이 곡은 대한민국 해군에서 행사시 내빈입장곡으로 사용되고 있다.[5] 이건 김탁환의 원작에도 안 나오는, 윤선주 작가의 독자적인 설정이다.[6] 이를테면 개인적 감정으로 적장에게 인질을 준다든가, 주저하고, 원균에게 처맞고, 정치적인 원한이 있는 장수들(이를테면 원균파)을 고의로 작전에서 빼거나 역적 모의를 꿈꾸다가 윤두수에게 디스당하고 자살하는 등.[7] 다만 원작과 달리 이순신 천하의 개쌍놈 부분은 드라마에서는 당연히 많이 편집되었다....... 정도가 아니라 거의 없애버렸다. 애초에 드라마 제목부터가 불멸의 이순신이다(…).[8] 여차저차 윤두수가 그걸 알아서 경고 편지를 보냈다.[9] 최초의 '불멸'(미래지성, 1998년)은 4권이었다.[10] 사실 이 관련 이야기들은 대부분 이문열의 <시인>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다만 시인의 주인공 김삿갓은 진짜 역적 자손. 그리고 이걸 고증을 무시하고 그냥 소설이라 생각한다면 말은 된다. 그렇게 출중한 명장이 두 번이나 과거에 떨어진 거나 조정 등쌀에 평생 고통받았던 것도 그렇고.[11] 미국 건국부터 1960년대까지를 무대로 한 가문의 흥망성쇠를 그린 대하 소설, 한국에서는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만 번역되었다.[12] 대통령 링컨의 경우는 미국에서 상당한 논란거리가 되었다. 정치적으로 약간 비겁한 일을 하고 지나치게 인간화된 링컨이나 제국주의적인 시각으로 남북전쟁을 그렸다는 점.[13] 그런데 실제로도 이순신은 물 위에서 한 번도 진적이 없었으므로 일본이 로켓단이 될 수밖에 없었다.[14] 문제는 원래 센고쿠 시대의 일본 무장들은 적에게도 깎듯이 예의를 갖춰 '~도노'로 불렀다는 것이다. 이런 사정을 아는 역덕들에게 그저 이순신에게 이만 박박 갈아대는 로본단(...)의 모습은 그냥 실소를 자아낼 수밖에 없었다.[15] 나름대로 전쟁에 대해서 고민하는 그레고리오 데 세스페데스 신부나 오타 쥬리아를 만나는 고니시 유키나가, 뛰어난 전략가로 그려진 이시다 미츠나리, 끝판왕의 포스로 일본 측 이야기를 끌고 나간 도쿠가와 이에야스나 죽을 때 허망한 모습을 보여준 도요토미 히데요시 등.[16] 군사 소설가 김경진(소설가)은 드라마를 보고 열받아서 쓴 <임진왜란>에서 원균은 당연히 구제불능의 왕찌질이로 표현했다. 이순신은 위엄과 카리스마를 가진 넘사벽의 인물로 나온다.[17] 문제의 화는 62화인데, 절반은 지난 화에 나왔던 해전 장면이 다시 나왔으며 나머지는 비교적 비중이 높게 나온 병졸들로부터 전라 좌수군의 여러 장수들, 이순신에 이르기까지의 회상 장면이 통째로 잡아먹었다. 첫 승리인 만큼 이 승리를 거두기 위해 그동안 많은 노력을 했음을 감동적으로 연출하고 싶었던 모양인데, 시청자들의 평은 진도는 안 빼고 왜 나왔던 장면이 다시 나오냐는 것.[18] '봅니다만, ㅁㅁ하지 않습니까' 하는 식이 아니고, '봅니다만' 으로 문장이 끝난다.[19] 이것은 그나마 양호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새로운 방법을 모색해야 합니다' 라고 해도 충분할 것을 '~ 모색할 때입니다' 라고 하는 경우가 많았다.[20] 태조왕건에서 CG가 쓰였으나 당시엔 기술력의 한계로 불화살을 표현하는 정도였다.[21] 다만 실제로도 비격진천뢰 등 화약이 폭발할 가능성 자체가 없었다는 것은 아니긴 하다.[22] 특히 이 문제는 충무공에 대한 대중의 인식에 어느 정도 악영향을 끼쳤는데, 마치 충무공이 별다른 전술 없이 화포빨로 이긴 것처럼 보이게 되었다. 적어도 작중 연출만으로 따지면 시청자들이 '짱쎈 조선 화포가 크아아아아앙하고 울부짖기만 하면 일본 수군이 무조건 쓸려나가는구나'라고 오해해도 할말이 없었다.[23] 예외적으로 울산성 전투는 이치 전투 + 평양성 전투 짜집기다.[24] 실제 직업 군인이었다는 한 미국인은 이 장면에서 보여주는 전쟁 묘사와 그 감정에 관해서 자신의 파병 경험에서의 현실을 회상하며 찬사를 하기도 했다.[25] 다만 문구가 지나치게 오글거린다는 평도 있다.[26] 여기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는데 와키자카는 원래부터 도쿠가와 편에서 싸우려는 생각이 있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내전이 시작될 때 서군의 진영인 오사카 성에 있었던 바람에 서군 진영으로 떠밀린 것. 하지만 세키가하라 전투 직전에 도쿠가와에게 편지를 보내 서군 진영으로 참전할 의사가 없음을 밝혀 동군 진영으로 남아 목숨을 보존했다. 더 자세한 내막은 본 항목 참조.[27] 물론 맹장설을 토대로 캐릭터를 짠 것 역시도 엄연히 왜곡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원균의 경우는 실존 인물이 너무 비현실적으로 평면적인 졸장이였기에, 현실감 넘치는(!) 전개를 위해 현실을 왜곡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사실 이건 이순신을 다루는 대중 매체들이 공통적으로 처하는 문제점인데, 현실적이고 재미있는 캐릭터를 위해 이순신은 너프하고 원균은 상향해주는 경우가 많다. 영화 명량에서 이순신을 너프시킨게 그 예.[28] 작중 의병들은 투구를 안 쓰고 나온다. 그래도 한국 사극에서 주연들 투구 쓰는 게 어디야.[29] 당장 아래에 언급될 미국인 만화가 온리콤판도 이 드라마를 보고 작품 연재를 한 사례이다.[30] 아무래도 이순신의 역대 해전들 중에서 가장 첫손으로 꼽히는 한산도 대첩에서 상대 지휘 장수가 바로 와키자카 야스하루였기에 라이벌로 설정한 것으로 보인다. 이순신의 해전들 중에서 명량 해전과 함께 가장 중요하다고 평가되는 해전인데다, 와키자카 야스하루는 명량 해전에도 참군했었기에 더더욱 라이벌 기믹에 적합한 인물이었을 듯. 실제로 드라마에서 한산도 대첩의 연출은 다른 전투들에 비해서 제작진이 공을 많이 들인 티가 난다.[31] 불갤의 불'빠'들은 흔히 말하는 '무개념 빠'라고 부를 수 없으며, 김경진의 임진왜란을 읽고 드라마의 고증 오류에 대해 정확히 알아 이 드라마에 대해 비판할 점은 정확하게 비판했다.[32] 초반부에 선조로 나오다 제작진과의 마찰로 하차한 조민기의 말에 따르면 "대본 연습을 하러 갔는데 군대 제대 후 여자가 이렇게 없는 자리는 처음이었다" 였다고 한다.[33] 단 김탁환은 해사 졸업생이 아니었기 때문에 단기 교수사관이었고 불멸을 쓴 것은 전역 후 훨씬 미래의 일이다.[34] 그나마 장밋빛 인생의 최진실이나 해신의 최수종 정도가 거론되었지만 극소수의 의견에 불과했다.[35] SBS에서 모래시계를 1998년 1월 14일부터 수목-토일 4회 재방영했지만 '밑져야 본전'(수목 시간에는 30% 이상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본 방송 당시의 명성을 재확인시켰으나 주말 시간에는 동시간대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KBS 1TV 용의 눈물 때문에 손해를 봄) 성적에 그친 것도 '명성황후' 재방영 편성 취소의 이유로 풀이된다.[36] 정욱이 출연한 제국의 아침태조 왕건 등은 주요 배우들이 KBS 출연 금지 명단에 올라있는(정욱('제국의 아침' 탄문 역) - 유사 수신 행위 규제법 위반 송영창('태조 왕건' 철원 성주 역) - 원조 교제 나한일('태조 왕건' 변사부 역) - 특정 경제 범죄 가중 처벌법 위반) 탓인지 UHD 명품 역사관 목록에서 제외됐다.[37] 흔히 갑옷설은 일본에서 그려진 조선역해전도나, "프로이스의 일본사에서 묘사하는 조선군은 단단한 가죽 갑옷에 유럽인과 같은 철모를 쓰고 있다고 한다." 라고 하는데, 조선군 갑옷설의 대표적인 근거 사료의 저자인 프로이스는 조선에 넘어온 적도 없고, 조선에서 전해온 소식을 들었을 뿐이다. 프로이스의 일본사를 믿는다면 탄금대 전투의 조선군은 7만명이고 2차 평양성 전투도 일본군이 승리했으니 후퇴했을 뿐이다. 고로 조선군 갑옷 문제는 상당수 역덕후들의 '희망' 때문에 감정적으로 기록을 취사 선택한 감이 크다. 오히려 사극에서 포졸복은 조선 후기를 베이스로 하면 옳은 고증이다. 조선 후기의 숱한 풍속화, 행차도, 전투도 모두가 갑옷을 입지 않았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있다. 그럼 전기는 다르지 않냐고 할 수 있는데, 전기는 고증이라고 하기에 남은 자료가 너무 부족하다.[38] 조선 전기의 군복 고증은 대왕 세종 항목 참고.[39] 문제는 대왕 세종에서 조선군이 입고 있는 두정갑은 조선 중기부터 입기 시작한 갑옷이다... 조선 초기에는 찰갑 계열 갑옷을 착용하였다.[40] 세월이 흘러 대왕 세종대마도 정벌 장면에서는 반대로 당시 일본이 무로마치 시대였음에도 불구하고 전국시대 갑옷이 나오는 고증오류를 범했다(...). 소 사다모리가 가신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 장면에서 소 사다모리 옆에 전국시대 인물인 가토 기요마사의 갑주가 있고, 전투 장면에서는 소 사다모리가 무로마치 시대 갑옷이 아니라 전국시대 갑옷인 도세이구소쿠를 착용하였다. 대마도 병사들도 전국시대 아시가루들이 쓰던 삿갓형 투구인 진가사를 썼다.[41] 이순신이 전리품으로 조총을 입수해 군졸들이 분해, 연구에 들어가는 장면이 나오긴 했는데 그게 끝이었다. 굳이 조총을 연구 할 것도 없이 승자총통같이 소형무기도 있긴했다.안 나왔지만[42] 임진년에 벌어진 몇몇 해전을 보면 적함의 하단을 노리라는 지시가 몇 번 나오기는 하는데, 갈수록 빈도가 줄어들더니 나중에는 아예 사라져 버린다.[43] 권준은 칠천량 이후 충청 수사로 임명되어 한양 수호를 임명받았기 때문에 그 이후 전투부터는 참가한 적이 없었지만 여기서는 선조에 대한 분노로 복직을 거부하는 권준을 이순신이 직접 설득해 데려가는 것으로 나온다. 또한 충청 수영은 삼도 수군 통제영 휘하로 편제되어 있어서 지휘를 받긴 하지만 칠천량 이후에도 해전에 참가했다고 묘사한 것은 오류.[44] 이로 인해 왜란 전까지 이순신에겐 패전지장이라는 낙인이 찍힌다.[45] 패장이라고 고함을 빽빽 지르는건 기본에 뺨따구를 때리거나당장 내배에서 내려! 빠가야로 드립까지 친다.[46] 가령 임진왜란 이후 파견된 최초의 통신사가 일본의 조총과 검을 구입하고자 했다는 기록이 있다.[47] 일본의 전국시대를 거치면서 칼질에 능할 수 밖에도 없지만, 군공을 세워서 출세를 하던게 당시 일본의 실정이기도 했다.[48] 돌려 쳐 동작은 개머리판으로 적의 안면부(혹은 상체)를 가격하여 내상을 입히는 동작이다. 화승총은 개머리판이 없다. 응?[49]수조규식에도 타수가 배를 부려 주위를 돌며 선회하면서 각 면에 장착된 화기를 적에게 일제 사격한다(舵手制船旋回周轉,使各面所藏火器向的齊放)라는 문구가 나온다.[50] 경상 우수영은 한백록, 우치적, 기효근, 1597년 이후부터 이영남 외에 전혀 보이지 않으며, 전라 우수영은 한 술 더 떠서 이억기와 황세득 외에 나오는 인물이 없다.[51] 이 밖에 충청 수사 권준이나 경상 우수사 이순신이 두석린갑이 아니라 두정갑을 입고 나오는 것도 차별대우를 받는 부분. 명량 이후 권준이 이순신 휘하에 있다거나 두석린갑은 의장용이지 실전용이 아니라는 문제도 있기는 하지만, 적어도 극중에서는 칠천량 이전까지 경상 우수사 원균, 전라 우수사 이억기 모두 전라 좌수사 이순긴과 마찬가지로 두석린갑을 입고 나왔었다. 그런데 명량 이후부터 이순신 이외의 수사들이 두석린갑보다 격이 낮아 보이는 두정갑을 입고 나오니 일관성이 없다.[52] 세트장을 보면 조선 배(판옥선) 하나, 일본 배(아타케부네) 하나 만들어놓고 거기서 줄창 촬영했다. 그러니 판옥선과 아타케부네만 나올 수 밖에.[53] 군함 세트장은 용도별로 두 가지가 있었는데, 하나는 해변에 정박되어 있거나 바다 위를 항해하는 군함의 모습을 찍기 위한 것이었고 또다른 하나는 군함을 탄 수군들의 모습을 자세히 찍기 위한 것이었다. 전자의 경우 판옥선, 거북선, 아타케부네, 세키부네 모두 만들어졌지만 후자는 유독 세키부네만 빠져 있었다(거북선의 경우 윗부분이 철판으로 밀폐된 덕에 KBS 사옥 안의 실내 세트장에서 촬영할 수 있었다).[54] 따라서 명량 해전 이후 흩어졌던 함선들을 긁어모으는 것이 아니라 일일이 건조를 하는 것으로 묘사했다. 명군 도독 진린의 환영연 직후 진린이 부관에게 '함대 재건 속도를 볼 때 허리띠를 졸라매고 뛴 것이 분명하다' 라고 이야기하는 대목이나 사로병진 작전 당시 조선 수군을 그렇게 빨리 재건할 수 있느냐는 명군 지휘관의 물음에 이순신이 '흩어진 배들을 모으면 된다' 가 아니라 '군사들과 백성들의 열의가 때로는 불가능을 가능하게 한다' 라고 이야기하는 대목 등이 그렇다.[그래서] 배 선두에 2문 설치하는게 최대치였다.[56] 조선 시대의 기록인 이중환의 택리지에도 철쇄설이 나타나지만 일차 사료 고증이나, 그 당시 상황이나, 물리적인 문제나 모두 불가능한 이야기지만 이런 말까지 없으면 도저히 믿을 수가 없기 때문에 조선 시대에도 그런 주장이 나왔다는 정도로만 맞다. 그보다 철쇄가 아무리 튼튼할지라도 수백척이나 되는 배들과 해류를 철쇄와 함께 인력으로 버텨야한다. 명량만큼 말도 안되는 경우.[57] 이순신이 파직당하기 전의 직책은 전라 좌도 수군절도사삼도수군통제사였으므로 교체된 원균 또한 전라좌수사 직을 겸임했다. 칠천량 해전 당시 경상우수사는 배설이 맡았다.[58] 이순신을 다시 삼도수군통제사에 앉히기는 싫으나 딱히 대안도 없으니 병력을 분산시켜서 다 털리자는 것.[59] 류성룡의 문집인 서애집을 보면 윤두수의 부음을 듣고 다른 사람에게 보낸 편지에 "이런 사람은 오늘날 쉽게 얻을 수 없다. 지나간 임진년 무렵에 만약 다른 사람에게 그 일을 담당하게 하였다면 우리들은 이미 남아 있지 못했을 것이다. 요사이도 자못 공평한 의론을 주장했는데 갑자기 이 지경이 된 것도 운수이니 어찌하겠는가."라고 안타까워했다는 글이 남아 있다. 출처[60] 이순신이 옥포해전 승리로 가선대부까지 올라간 뒤 통제사로 제수되었기 때문에 '통제사 대감' 이 맞지만 다들 통제사 영감이라고 한다. 물론 파직 후 복직했을 때에는 선조가 정헌대부 품계는 빼고 통제사 관직만 돌려줬기 때문에 '통제사 영감'이 맞긴 하다. 간혹 정3품 품계명이 '절충장군' 이기 때문에 정3품까지를 '장군' 으로 부를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는데, 아무 근거도 없는 소리다. 이렇게 치면 '조선 국왕' 은 '전하' 가 아니라 '국왕' 으로 불러야 한다.[61] 비슷한 경우의 사극이 전세계적으로 많긴 하다. 중화권 사극에서 한족이 아닌 몽골계, 퉁구스계, 한국계, 일본인 등 이민족 황인 캐릭터가 중국어를 쓰는 것과 영미권 사극에서 비영어권 백인 캐릭터가 영어를 쓰는 게 대표적이다.[62] 46화에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요도도노에게 '그는 나의 주군이자 그대의 숙부이신 노부나가 공께서도 매우 아끼셨지...' 라고 말하는 대목이 있다. 대본 작가의 입장에서는 '오다 장군' 이라는 식으로 쓰자니 어색하여 '노부나가 공' 이라고 했겠지만, '기요마사 공', '유키나가 공' 이라고 부르는 것이 고증에 부합한다는 점에서 다소 아쉬운 대목.[63] 막판에 히데요시에게 항명하고 도쿠가와한테 붙는 듯한 모습이 나온다. 그 다음 씬에서는 히데요시가 피를 토하며 사망.[64] 89화에서 기존의 지휘관들이 사직서를 내고 새로운 지휘관들이 부임해 오는 자리에서 등장하기는 했다. 문제는 '녹도 만호 송여종입니다!' 가 첫 대사이자 마지막 대사라, 엑스트라나 다름없다는 것.[65] 안위의 책임은 아니지만, 이 전공 때문에 오히려 이순신은 선조에게 공격을 받았다. 이순신은 안위의 전공을 선조에게 보고하였는데, 정보의 혼선으로 안위의 전공이 사실이 아니라는 잘못된 보고가 올라 오자 선조는 '이순신이 전공을 탐하여 허위로 보고해서 조정을 속였다'며 비난했다. 이후에 안위의 전공이 사실임이 밝혀지자 이번엔 '이순신이 부하 장수의 전공을 가로챘다'며 말을 바꾼다. 근데, 정보 혼선이라고 보기에는 이순신을 까내리기 위해 육하 원칙도 무시한 반론을 통해 정치적 단합을 하였음을 인증한 대표적 인물이 다름아닌 이원익이다. 그렇다고 해서 선조가 안위에게 상을 주지도 않았다.[66] 임란 당시 명군이나 명나라 관리들은 자신보다 2품계 ~ 3 품계 높은 조선 관원에게 무례하게 굴기도 했지만 적어도 이순신에겐 그러지 않았다.[67] 대본에 나온 대로였는지 추가 바람.[68] 심지어 일본군의 총탄에 맞아 하반신이 불구가 된 정대만이 명량 해전에 참전한 것도 짝보나 상남을 비롯한 동료들의 복수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으니 말 다했다.[69] 실제로 절이도 해전은 잠깐 묘사되었기 때문에 화면에 김완이 비치지 않았고, 앞선 네 번의 공격도 내레이션으로만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