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2-07-02 16:51:07

야인시대

야인시대 관련 둘러보기 틀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color:#FFFFFF;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bottom: -15px"
{{{#1D1D1D,#e2e2e2
2001~2005
파일:여인천하 로고.png
(2001~2002)
파일:야인시대 로고.png
(2002~2003)
파일:왕의 여자 로고.png
(2003~2004)
파일:2004 인간시장 로고.png
(2004)
파일:장길산 SBS 로고.png
(2004)
파일:러브스토리 인 하버드 로고.png
(2004~2005)
파일:세잎클로버 로고.png
(2005)
파일:불량주부 로고.png
(2005)
파일:패션 70s 로고.png
(2005)
파일:서동요 SBS 로고.png
(2005~2006)
}}}}}}}}}}}} ||

1990년대 이후 한국 TV 드라마 시청률 순위
{{{#!wiki style="margin: 0 -10px;"
{{{#FFF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bottom: -15px;"
1위 <colbgcolor=#fff,#191919>첫사랑
2위 사랑이 뭐길래
3위 모래시계
4위 허준
5위 젊은이의 양지
6위 그대 그리고 나
7위 아들과 딸
8위 태조 왕건
9위 여명의 눈동자
10위 대장금
11위 파리의 연인
12위 보고 또 보고
13위 진실
14위 질투
15위 바람은 불어도
16위 목욕탕집 남자들
17위 국희
18위 청춘의 덫
19위 토마토
20위 M
21위 폭풍의 계절
22위 주몽
23위 야인시대
24위 엄마의 바다
25위 제빵왕 김탁구
26위 내 이름은 김삼순
27위 야망의 전설
28위 여인천하
29위 아들의 여자
30위 용의 눈물
30위 하나뿐인 내편
31위 별은 내 가슴에
32위 넝쿨째 굴러온 당신
33위 나쁜 친구들
34위 야망
35위 서울의 달
36위 정 때문에
37위 마지막 승부
38위 솔약국집 아들들
39위 내 딸 서영이
40위 이브의 모든 것
41위 왕가네 식구들
42위 댁의 남편은 어떠십니까
43위 신데렐라
44위 인어 아가씨
45위 올인
45위 머나먼 나라
46위 사랑할때까지
47위 찬란한 유산
48위 장밋빛 인생
49위 파일럿
49위 소문난 칠공주
50위 애정의 조건
}}}}}}}}}}}}

파일:야인시대 로고.png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width:300px; min-height:calc(1.5em + 5px); word-break:keep-all"
{{{#!folding [ 관련 문서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colbgcolor=#eee,#333>원작등장인물 · 캐스팅 목록 · 줄거리 · 작중 사건 사고 · 최강자 논쟁 · 비판 (고증 오류)
오프닝야인 1부 전반 · 영웅주의 1부 후반 · 나 사나이다 2부
삽입곡전설의 영웅 · 어깨동무 · 희망가 · 황성옛터 · Odysseus
합성물역사 · 등장인물 · 영상 일람 · 논란 · 내가 고자라니 (대본) · 4달러 · 에엑따 · 폭☆8 · 저작권 논란}}}}}}}}}

파일:SBS 텍스트 로고.svg 대하 드라마
파일:야인시대 로고.png (2002 ~ 2003)
야인시대 / 野人時代 / Rustic Period[1][2][3]
국내 등급 파일:15세 이상 시청가 아이콘.svg 15세 이상 시청가[5]
방송 시간 월요일, 화요일 오후 9시 55분 ~ 11시 10분[6]
방송 기간 2002년 7월 29일 ~ 2003년 9월 30일
방송 횟수 124부작
채널 파일:SBS 로고.svg
장르 시대극, 다큐드라마, 느와르, 피카레스크
제작사 SBS프로덕션[7]
기획 차성모
제작지휘 이현석
프로듀서 김형욱
극본 이환경
해설 이강식
조연출 박경렬, 손재성
연출 장형일
출연 김영철, 안재모, 이창훈, 이원종, 차광수, 최철호, 박준규, 최재성, 장세진, 이혁재, 이재용, 김영호, 정동환, 박영록, 김학철, 조상구, 권성덕, 성동일, 유태웅, 최준용, 김영인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파일:SBS VOD 아이콘.svg 파일:디시인사이드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8]

1. 개요2. 인기3. 등장인물4. 내용
4.1. 2부 배역 전환에 대한 말들
5. 촬영지6. 비판7. 최강자 논쟁8. 잘못 알려진 것9. 관련 매체
9.1. OST9.2. 학습만화9.3. 게임9.4. 소설
9.4.1. 드라마와의 차이점
10. 기타
10.1. 겹치는 출연자
11. 유튜브 공개12. 합성물13. 관련 문서
13.1. 작중 사건 사고13.2. 참고 문서13.3. 외부 링크

[clearfix]

1. 개요

파일:daily020710-2_20020710115120.jpg
파일:야인시대2부.jpg
<colbgcolor=#1f50b5> 왼쪽부터 구마적, 미와 경부, 쌍칼, 김두한 (중년 / 청년), 신마적, 최동열 <colbgcolor=#1f50b5> 왼쪽부터 황병관, 삼수, 이화룡, 맨발의 대장, 시라소니, 홍만길, 김두한, 휘발유, 이정재, 정팔, 정진영, 김천호, 개코, 신영균
야인시대! 그렇다.
그것은 바로 가 몸 바쳐 살아왔던 이 나라 격동기의 또 다른 역사의 한 장이었다.
내레이션
백야의 아들, 조선의 영웅이 되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 어머니를 잃고 방황하는 어린 소년 김두한
그 어린 소년이 후에 겪는 일은 멀고도 험하다, 일제시대와 좌우익의 대립, 6.25 전쟁, 근현대까지
우리의 역사에는 그가 존재했다!
조선의 주먹으로 불의를 처단하라!
우리 근대사에서 당대의 모순이 가장 첨예하게 대립된 지점에 놓여 있던 인물 김두한
독립군 총사령관인 김좌진의 아들로서 일제시대를 살았고
좌·우익의 극한 대립의 한복판에 존재하고 있었으며

독재 대 민주의 치열한 정치투쟁의 현장에 속해 있었던 김두한을
심층적인 접근으로 '인간' 김두한을 그린다

또한 그가 살았던 시대의 진실을 또다른 각도에서 드러낼 것이다

조선의 주먹황제를 소재로 SBS에서 2002년 7월 29일부터 2003년 9월 30일까지 총 124화에 걸쳐서 방송한 근대 사극/대하드라마. 일제강점기부터 광복 이후 대한민국 제4공화국 시대까지의 혼란스러운 시기를 살다 간 실존인물 김두한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다. 극본은 이환경 작가, 연출은 장형일 감독이 맡았다. 둘은 그 전에도 KBS에서 〈무풍지대〉를 같이 한 적이 있었는데, 오랜만에 SBS에서 다시 만나 함께 작업했다.

소설판 서문 등을 종합해 보자면 이환경 작가는 이 작품을 집필하기 위해 수년 동안 준비해왔는데, 기본적으로 김두한의 자서전 격인 《피로 물들인 건국 전야》(1963)와 동아방송의〈노변야화 - 김두한 편〉(1969)을 바탕으로 각색을 가미해 만들어졌다. 후반부 동대문파 관련 이야기는 유지광의 자서전 《대명》에 기반을 상당수 뒀으며, 국회속기록, 김두한과 활동했던 인물들의 증언 등도 참고했다.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부터 광복까지가 1부, 광복 이후부터 자유당 집권 말기인 4.19 혁명5.16 군사정변 직후 제3공화국의 출범, 그리고 유신헌법 투표일(김두한의 사망일)까지가 2부로 구성되어 있다. 본래는 1부와 2부 모두 50화로 하여 총 100화로 기획되었으나, 2부 방송 도중 작가의 요청으로 24화 연장이 결정되어 124화로 마무리됐다. 기사

2022년 기준으로 방영한 지 20주년이 된다.

2. 인기

2.1. 한국

"가장 성공한 2000년대 한국 드라마"를 거론할 때 반드시 꼽히는 흥행작이었다. 종영 이후 전혀 다른 방향으로 유명해져, 종영 [age(2003-09-3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끊임없이 인터넷상에서 회자되는 드라마이다. 역대 회당 최고 시청률로는 25위권 정도에 들지만, 이 드라마가 종영되고 오랜 시간이 지났음을 감안하면 결코 낮은 순위라 할 수 없다.

방영 동안에는 회당 최고 시청률 51.8%(분당 최고 시청률 57.4%), 평균 시청률 30%를 달성하며 일약 신드롬을 일으켰고, 방영 후에도 부천시 상동 야인시대 세트장은 관광지가 되기도 했다. 게다가 2020년대에 들어서도 여전히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당장 나무위키에 개설된 〈야인시대〉 관련 문서의 수와 양만 봐도, 드라마뿐만 아닌 영화, 게임, 애니메이션 등 타 매체로 범위를 넓혀도 〈야인시대〉보다 확실히 많은 관련 문서를 보유한 경우는 찾기 힘들다. 있다 해도 〈닥터 후〉처럼 시즌제로 이루어져 있어 수십 년간 시리즈가 계속 이어져온 작품뿐이다.

1부 방영 당시엔 젊은 김두한을 분한 안재모의 액션활극이 훌륭한 액션연출과 배우들의 뛰어나고 담백한 정극연기, 카리스마 넘치는 다양한 액션 캐릭터들과 탄탄한 구성의 각본이 더해져 1부는 그야말로 그 해를 풍미했을 정도로 가히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특히 본래 사극이나 시대극의 시청자층과는 거리가 먼 아동층에게도 큰 호응을 얻었는데, 매일 악당들을 쓰러뜨리는 김두한의 모습이 유치하지 않고 담백하면서도 엔터테이닝하게 전개되어 마치 〈울트라맨〉이나〈슈퍼전대〉,〈가면라이더〉 같은 특촬물의 성인판을 연상시켰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2002년 당시 미취학 아동들[9] 및 초등학생들[10]은 "나는 김두한이다!", "나는 시라소니다!" 하고 다니는 일이 흔했으며, 싸움 좀 한다는 소리를 듣는 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ㅇㅇ의 김두한"을 자칭하고 다녔고, 살집이 있는 이들은 "ㅇㅇ의 김무옥" 소리를 듣곤 했다. 물론 여학생들은 약간만 새침하게 굴어도 나미꼬 소리를 들었다. 당시 많은 사립초등학교에서는 주조연출들이 입던 코트들 때문에 교복으로 팔던 겨울 코트들이 단종되는 현상이 일어나기도 했다.

물론 〈야인시대〉의 인기는 청소년층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당시 중고등학생들[11]이 본방사수를 위해 집단으로 야간자율학습을 튀는 일이 자주 발생하다 보니, 〈야인시대〉 방영 요일인 월, 화요일에는 감독하는 선생님이 더 충원될 정도였다. 학용품은 물론 각종 게임에서도 학생들을 겨냥한 〈야인시대〉 상품(코트, 중절모 코스튬 등)이 많이 보였다.

그러나 2부에 와서 〈야인시대〉의 시청률은 엄청나게 줄어들었다. 일단 주된 이유로, 1부에서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던 김두한의 배역을 맡은 안재모에서 갑작스레 김영철로 교체된 것을 들 수 있다. 물론 드라마 방영 시작 전부터 김영철이 2부의 주인공이라는 점은 일찌감치 공표가 되었고, 1부의 시작인 1화 또한 김영철이 연기한 김두한의 국회 오물 투척 사건부터 시작하기에 배우 캐스팅이 불미스러운 이유 등으로 예상치 못하게 바뀐 건 아니다. 하지만 1부의 끝인 50화의 마지막에서 김두한이 뒤돌아보며 배역이 바뀌는 신에서 충격받은 사람이 엄청나게 많았고, 이는 오랫동안 '야인시대 시청률 반토막나는 순간' 같은 제목의 유머글로 돌아다녔다. 심지어 훗날 SBS에서는 직접 이 장면을 두고 시청률 떨어진다 꽉잡아!!! 끄아아아아아아!!! 같은 자학개그를 하기도 했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하단 '배역 전환에 대한 말들' 단락을 참조.

하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또 하나의 이유는 드라마의 분위기가 액션 활극에서 정치극으로 노선이 180도 바뀌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2부의 시작인 51화의 시청률은 39.3%로 1부의 평균 시청률을 상회하는 순조로운 출발을 보였지만, 해방 직후의 이념 대립과 정파 싸움 같은 복잡한 서사가 계속 이어지자 1부의 높은 시청률을 견인했던 20대 이하 시청자들의 상당수가 이탈해버렸다. 물론 이렇게 바뀐 2부를 더 좋아해서 챙겨보기 시작한 중·장년층 위주의 시청자들도 있긴 했지만, 이탈한 시청자들을 메꾸기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2부의 시청률은 1부 리즈시절의 절반 수준인 20% 중반대로 주저앉고 만다. 물론 정치극이 20% 중반대 시청률이라는 건 절대적으로 보자면 상당한 수준이긴 했으나, 1부의 시청률이 워낙 높았던지라 그에 비교되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측면이다.

물론 그렇다고 〈야인시대〉가 2부부터 완전히 퇴물 신세가 된 것은 아니었다. 10 ~ 20대들은 거의 다 떨어져 나갔지만[12] 다른 코어층인 30 ~ 40대들의 인기는 건재했고, 오히려 정치적인 얘기로 접어들자 50대 이상 시청층이 유입되는 효과를 가져왔다. 물론 1부보다는 시청률이 많이 떨어진 관계로 SBS가 이 시점부터 〈야인시대〉를 메인 프로그램으로 더 이상 밀지 않았던 건 사실이다.[13] 그러나 당시 시청률로만 따져도 중박 수준은 분명했고, 애초에 SBS가 〈야인시대〉를 정말 실패한 프로그램으로 단정지었다면 작가가 완성도를 위해 연장 방영을 요청해도 받아주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 2부는 오히려 세월이 지나 엄청난 재평가를 받게 된다. 〈야인시대〉 종영으로부터 오랜 시간이 흐른 후 누구도, 심지어 제작진들조차 상상도 못했던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바로 내가 고자라니로부터 시작된 야인시대 합성물의 유행이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심영내가 고자라니가 크게 회자된 것을 시작으로 온갖 패러디 합성물들이 범람하면서 〈야인시대〉는 하나의 인터넷 문화로 자리잡았다. 이에 관련된 상세 내용은 뒷 문단에서 후술한다.

사실 제목만 똑같을 뿐 〈야인시대〉 1부와 2부는 성격 자체가 다르며, 작품의 기획 단계에서 세워진 방향성을 생각하면 〈야인시대〉의 진정한 정수가 담겨 있는 것은 2부라고 봐야 한다. 1부는 선역과 악역이 명확히 나뉘어 있고 우직한 성격의 주인공이 하나하나 장애물을 격파해나가는 단순한 구도의 액션활극이다. 또한 악역들도 격파당하면 패배를 인정하고 조용히 퇴장하는, 마치 게임 같은 단순한 형태다. 그러나 2부부터는 주인공의 절친 중 한 명이 주요 악역으로 등장하며 서로의 애증과 배신, 정치적 이념의 대립과 이로 인한 갈등 등 복잡한 인간관계가 맞물리며, 시대적인 배경으로 인한 요소[14]까지 아우러지며 복잡한 갈등 관계가 일어난다. 물론 2부에서도 전설의 고수인 시라소니나 금강 같은 무협지적 요소가 있지만, 이들의 캐릭터성이나 엮이는 스토리 자체가 단순히 싸움 잘하는 것 외에 더 입체적이 되었다. 사실 〈야인시대〉는 원래부터 복잡한 현대사를 다루기 위해 기획된 역사극이었고, 이런 측면을 더 집중적으로 다룰 계획이었기에 신나는 액션 활극인 1부는 일종의 양념 역할에 가까웠다. 당시 사극에서 하던 것처럼 중년의 유명배우(김영철)을 20대 초중반 시절 김두한(2부 시작)부터 역할을 맡기고 아직 젊고 많이 유명하지 않은 안재모를 청년 역할에 캐스팅한 것만 봐도 어느 부분을 강조했는지는 명확하다.[15] 그런데 의외로 단순한 주먹 싸움 얘기가 인기를 끌자 본말이 전도된 것.

2.1.1. 인터넷 문화

〈야인시대〉는 컬트적인 부분에서도 대한민국 드라마사(史)에 엄청난 한 획을 그었다. 합성에 써먹기 좋은 요소가 워낙 풍부해 과거 디시인사이드합필갤은 독창적인 야인시대 합성물을 쏟아내며 영상합성 문화를 주도했다. 비록 내가 고자라니 떡밥이 잠시 식으면서 합필갤은 급격히 몰락했지만, 영상 제작자들은 활동 무대를 유튜브로 옮기면서 다시금 야인시대 합성물 흥행에 불을 지폈다. 결국 인터넷 문화로 시작한 "내가 고자라니" 열풍은 역으로 그 〈야인시대〉를 만들어낸 본진인 지상파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출연 배우들도 TV 프로그램, 광고, 유튜브 출연 등이 늘어나 다시 주목받았다.

인터넷에서는 〈야인시대〉 방영 20년을 앞두고 있는 와중에도 관련 합성물이 꾸준히 생산 및 소비되는 중이며, "내가 고자라니", "사딸라", "똥이나 처먹어" 등의 명대사 역시 유행어로서 생명력을 질기게 이어가고 있다. 이 영향으로 〈야인시대〉 방영 당시에는 너무 어렸던 관계로 기억이 없거나 아예 태어나지도 않았던 2000년대 이후 출생자들에게까지 〈야인시대〉는 단순한 옛날 드라마 그 이상의 인지도를 누리고 있다. 그야말로 살아 있는 전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아가 2부 방영 당시에는 신나는 액션은 줄어들고 고리타분한 정치극만 나온다며 외면했던 당시의 어린 팬층이, 나이를 먹은 후 내가 고자라니의 열풍을 타고 원작을 정주행하면서 2부 내용을 재평가하는 등, 여러모로 오랜 세월을 돌아온 역주행까지 불러일으켰다. "어렸을 땐 몰랐는데 지금 보니 2부도 나름 볼만하다.", "재미있는데 왜 그때는 몰랐을까."라는 식으로 뒤늦게 2부의 진가를 알아보게 되었다는 후기도 조금씩 올라오고 있다. 오히려 뻔한 패턴의 방식으로 진행된 1부와는 달리 2부가 더 재미있다는 반응도 나오는 편이다.

이후 오상사 역의 배우 라재웅은 유튜브 채널 〈오상사가 간다〉를 개설해, 과거 〈야인시대〉에 출연했던 배우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영상을 올리고 있다. 조병옥 역의 김학철 또한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고 여러 심영물에 댓글을 남기며 유튜브 활동을 하고 있다. 그러던 와중...
파일:킹두한.jpg
<colbgcolor=#1f50b5> 킹두한 화보 포스터[16]20년 가까이 지났는데 하나도 변하지 않아 화제가 되고 있다.]
김두한 역의 안재모를 주연으로 문영철역의 장세진, 박인애역의 정소영, 쌍칼, 김영태 등이 1부의 배우들이 다시 의기투합해 제작되고 있는 유튜브와 카카오티비 시리즈인 킹두한TV 〈야인 이즈 백〉 을 통해 이번에는 1부가 재조명되고 있다. 밈으로써 개그성만이 넘치는 2부에 비해 이쪽은 오히려 김두한과 박인애의 투샷을 보고 추억에 젖어 1부를 재탕하러 가는 케이스가 많은 편.
파일:킹두한 단체.jpg
<colbgcolor=#1f50b5> 〈야인시대〉 오리지널 멤버들 복귀 단체샷[17]

〈야인 이즈 백〉은 현재 짧은 맛보기 버전은 유튜브, 풀버전은 카카오티비, 넷플릭스를 통해 볼 수 있으며 저 5명 외에도 미와, 가미소리, 하야시, 시바루역을 맡았던 그때 그 시절 배우들이 합류해 빠른 조회수 증가추이를 보이고 있다.[18] 종영한 지 [age(2003-09-30)]년이나 지난 드라마의 거대한 힘을 새삼 실감할 수 있는 부분.

2.2. 몽골

2004년 몽골로 수출되어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무려 시청률 80%라는 믿을 수 없는 대기록을 세우고[19], 주연인 안재모는 나차긴 바가반디 대통령에게서 국빈으로 방문 초청을 받기까지 하였다. # 장정들이 활극을 펼치는 모습이 몽골 정서와 잘 맞았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야인시대의 인기로 몽골에 '김두한'이라는 이름의 식당까지 생겼다고 했다.

2.3. 북한

북한에서도 중후반부의 반공성향에도 불구하고 몰래 보던 주민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다고 했다. 그런데 북한에서 〈야인시대〉를 보다가 간부에게 들켜 총살형을 당한 주민이 있었다는 소식이 보도된 바 있는 걸 보면 역시나 북한 측에선 대대적으로 금지한 듯. 당연하게도 애초에 북한에선 예술작품 또한 체제를 선전, 찬양하는 도구이기에 해외, 특히 남한의 작품을 열람 혹은 청취하는 것이 철저히 금지되어 있다.[20]

2.4. 일본

<colbgcolor=#1f50b5> 2010년에 발매된 일본판 DVD 광고
일본 KNTV에서도 〈野人時代 -将軍の息子 キム・ドゥハン(야인시대: 장군의 아들 김두한)〉[21]이라는 제목으로 2008년 5월부터 2009년 7월까지 자막 방송되었다.

어지간한 외화는 전부 더빙해서 들여오는 일본의 사정을 고려하면[22] 아무래도 1부가 일제강점기를 다루고 있는 터라 반일 정서가 노골적으로 드러난 것 때문에 흥행을 기대치 않고 자막판으로만 방영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 방영분에서는 무슨 이유에선지 원판과는 다른 BGM이 쓰였다.

3. 등장인물

4. 내용

요약하면 1화 ~ 8화는 김두한의 어린 시절, 9화 ~ 50화는 일제강점기 아래 청년 김두한(안재모)의 항일운동(이라 쓰고 주먹활동이라고 부른다) 시기, 51 ~ 76회까지는 미군정 아래 해방 직후 절친이던 김두한과 정진영의 이념 대립, 76 ~ 90회까지는 이념 대립에 따른 좌우익 싸움과 6.25 전쟁, 90회 ~ 122회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김두한의 정치인생과 명동 VS 자유당의 힘을 업은 동대문의 싸움, 122 ~ 124회까지는 박정희 정권기 및 김두한의 말년이라고 할 수 있다.

주인공인 김두한에 비길 수 있는 인물은 1부의 하야시, 2부의 시라소니 정도이지만, 동대문사단 결성부터 사형 전까지는[23] 이정재가 사실상 주인공으로 봐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이정재 역시 큰 비중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100회 정도를 지나면서 사실상은 극중의 중요한 일은 거의 다 동대문의 이정재, 임화수, 유지광과 이기붕, 곽영주 위주로 나온다. 김두한은 자유당과 이정재의 동대문파가 난동을 부리면 신문으로 그 소식을 접하고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하고 탄식하는 역 정도. 또 2부에서도 이 이정재가 중심인 2부 중반 이후 분량은 김두한 개인의 일대기 이상으로 대한민국 제1공화국 시기를 전체적으로 조명해서 흡사 〈공화국 시리즈〉의 〈제1공화국〉 같은 느낌이 난다. 이는 유지광의 동명의 자서전에 기초한 이환경 작가의 전작인 〈무풍지대〉의 영향이 크며, 2.5부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

2부는(51화 ~ 124화) 1부의 화려한 액션 느낌은 많이 퇴색되고 정치적인 싸움이 중심이 된 바람에 인기가 반토막으로 떨어졌다. 특히, 2부 파트 가운데 대부분은 정진영과 김두한-자유당, 이정재와 김두한, 명동파의 파벌 싸움을 묘사하는 데 할애되어 있어서 화려한 액션의 재미는 반감되고 애초에 그 시대가 정치적으로 상당히 혼란스러운 시대였기에 비장함과 무거운 분위기가 다소 루즈함이 느껴졌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1부에서 한때 40 ~ 50%대의 높은 시청률을 거둬서 인기가 하락했어도, 평균 20 ~ 25% 정도의 괜찮은 시청률을 기록하긴 했다.[24][25] 장년층들에게 나름의 추억물 드라마로도 인기가 있던 듯하다.친구(영화)〉에 비해 〈친구2〉가 망했다지만 300만 가까이가 본 것과 유사하다

그렇지만 지금은 2부가 1부보다 내용면에서 고평가받는다. 합성물의 주 내용이 모두 2부 시점이라는 사실을 생각해보자. 2부도 인기가 아주 바닥까지 떨어졌던 건 아니다. 당장 위 문단에서부터 어린이들이 흉내냈던 인물이 김두한과 시라소니였는데, 시라소니는 1부에 없었다가 2부에 등장한 인물이었다.

2부 초중반, 즉, 공산당이 주된 악역인 파트에서 작중 비중있게 등장하던 주연들이 대부분 죽어나간다. 제일 먼저 김무옥이 죽고 또 얼마 못 가서 개코가 죽는다. 그리고 우미관패의 배신자이자 공산당 파트의 최종 보스라고 할 수 있는 정진영의 죽음은, 알다시피 본작에서 손꼽히는 비극적인 장면이다. 그나마 오래 살아있었던 문영철도 6.25 전쟁통에 결국 전사한다.

사실 새드 엔딩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주요 등장인물 대부분이 영 좋지 못한 결말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김두한은 국회 오물 투척사건 이후로 옥고를 치르면서 몸이 매우 쇠약해졌다. 때가 때인지라 김두한은 중정에 끌려가서 수난을 당했다. 이종석 교수가 어느 강연회에서 말한 걸 옮기면 희대의 협객도 중정에 끌려간 후로 흐물흐물해져서 생을 마감한다는 것. 그리고 일제강점기 파트에서는 김두한이 표면상으로나마 일본에 저항하였고, 그 과정에서 일본 헌병대에 본인과 부하들이 고문당한 때 번개가 전기고문으로 감전사했고, 와싱톤 역시 김두한의 자수로 인한 석방 후에 조용히 우미관패에 벗어났다.[26] 그리고 우미관패 두목인 김두한이 정치에 입문하면서 해산하였던 우미관패 사람들은 김두한이 따로 지원해 줄 형편이 못 되어 사회의 최하류계층으로 떨어져 병사(신영균[A]), 알콜중독으로 인한 병(김관철[A], 홍만길[A])과 정신병원(휘발유[A], 아구), 자살(갈치), 이민(김영태), 군부에 의한 체포 및 재판(김삼수[31]) 등, 좋지 않은 결말을 맞게 된다.[32] 또한 김두한 역시 나중에 사기를 당하게 되어 처지가 곤란해지고 고혈압과 심근 경색이 악화되어[33] 1972년 11월 21일, 길거리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장례식 때 우미관 원년멤버 중 휘발유만 등장한 것으로 보아, 한국에 남아있던 원년 우미관패 중에선 휘발유만 생존했거나 적어도 움직일 수 있었던 상태였던 것으로 보인다.[34]

그의 장례식에 참여한 최동열 기자는 김두한이 활약했던 시기를 되짚어보며 '그것이 바로 야인시대'라는 말과 함께 드라마는 마무리된다. 참고로 최동열 기자는 작가의 극중 개입용 캐릭터로, 김두한보다는 20살 남짓 많다. 흔히 김두한보다 30~40살 정도 많다고 오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정동환 씨가 최동열의 학생시절부터 연기를 하다 보니 생긴 오해다. 실존 인물이었다고 해도, 70대 중후반 정도였을 것이다(사망 당시 김두한은 향년 55세).

다만, 김두한 패거리 대부분이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는 것은 드라마의 창작이며,[35] 실제 역사에서는 김두한, 문영철, 정진영을 제외한 대부분이 요절하지 않고 천수를 누리고 세상을 떠났다.

4.1. 2부 배역 전환에 대한 말들

<colbgcolor=#1f50b5> SBS 공식채널에 올라온 영상(...).
SBS 스스로 제목으로 자학개그를 할 정도로 임팩트(?)있는 장면이다.
원래 〈야인시대〉는 중년 김두한의 정치 인생을 다룬 2부가 중심이었고, 〈야인시대〉 제작진은 싸움꾼 김두한이 아닌 정치인 김두한을 보여주려 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정치 얘기를 하면 시청률을 얻기가 어려울뿐더러 텔레비전 드라마는 일정 수준의 시청률이 나오지 못하면 조기종영을 당하기 때문에, 제작진은 어떻게 하면 시청률을 상승시킬 수 있을 지 머리를 싸매며 고민해야 했다고 한다. 〈야인시대〉 역시 예외는 아니었기 때문에 〈야인시대〉 제작진은 조기종영을 당하지 않도록 드라마를 1부와 2부로 나누어서 구성했다. 1부의 시청률이 매우 탄탄하면 2부에서 1부보다 인기가 못하더라도 고정 시청률은 확보할 수 있고, 어느정도의 고정 시청률만 보장된다면 조기종영은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36] 어쨌든 김두한의 생애에서 주먹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었기에,〈야인시대〉 제작진은 김두한의 주먹 시절을 중점으로 다룰 1부에 시청률을 견인하기 위할 요소들을 집중적으로 배치했다. 즉, 1부는 2부를 이끌어 줄 베이스가 될 인기를 확보하기 위한 서막이었다. 따라서 1부는 〈장군의 아들〉처럼 액션 활극 위주로 흘러갔고, 김두한을 중심으로 액션을 이끌어나가기 위해 실제로는 맞붙지도 않은 김두한 vs 신마적을 비롯해서 주요 인물들 과반수가 차례차례 김두한과 맞붙도록 묘사했다. 당연히 시청자들은 열광했다. 이는 〈야인시대〉가 MBC 드라마 〈복수혈전〉 이래로 최고의 액션 드라마로 각광을 받는 요소로 크게 작용했고, 〈야인시대〉 제작진이 처음에 의도했던 계획은 성공한 듯했다.
<colbgcolor=#1f50b5> MBC 〈라디오스타〉에서 당시 배역전환에 대해 얘기하는 청년 김두한 역의 안재모
MBC 〈라디오스타〉에서 당시 배역전환에 대해 얘기하는 장년 김두한 역의 김영철
그러나 실제로는 2부 전환 후 시청률이 반토막났다. 〈야인시대〉를 순수하게 액션 하나 때문에 보던 시청자들이 대거 이탈함으로 인해 시청률이 떨어진 탓이 가장 컸지만 갑자기 팍 늙어버린 김두한의 모습에 시청자들이 거부감을 느낀 탓도 매우 컸다.[37] 8.15 광복 당시 김두한의 실제 나이는 28세였는데, 〈야인시대〉가 1부에서 2부로 넘어갈 무렵의 안재모는 25세, 김영철은 51세였기 때문. 게다가 장년기의 정진영(차광수), 개코(성동일)[38], 이정재(김영호)[39] 등을 맡은 배우들은 당시 30대 후반이라 큰 위화감이 없었던 것도 시청자들이 받은 큰 충격에 한 몫 했다. 2부 개시와 동시에 김영철로 바뀐 것이 아니라 김두한이 아직 젊었던 시기인 미군정 시기부터 6.25 전쟁까지는 안재모가 계속 연기하다가 1954년 정도를 기점으로 해서[40] 김영철로 바뀌는 것이 시청자들에게는 좀 더 쉽게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다만 이에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은게 안재모가 30대 중반까지 나왔다면 좌익에도 몸담아야 하고 우익깡패로 민감한 활동을 보여줘야하는데, 일제시대에 맞선 협객으로 나온 인물이 진짜 깡패로 나온다면 시청자들이 납득을 할 수 있었겠냐는 의견도 많다. 게다가 2부 초반에만 위화감이 컸지 김영철의 연기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라 6.25전쟁 때부터 배우에 대한 위화감 논란도 거의 없었다.
<colbgcolor=#1f50b5> SBS 〈가로채널〉에서 당시 배역전환에 대해 얘기하는 장년 김두한 역의 김영철
김영철 본인도 〈가로채널〉에 출연해서 '궁예 때는 시청률 견인기였는데 〈야인시대〉에서는 오히려 시청률이 반토막이 났다'는 양세형의 질문에 "그때 50살인 자신한테 28살 김두한 역을 맡겼으니 반토막 안 나고 배기냐"고 너스레를 떨었으며 〈라디오 스타〉에서는 "결국 (사딸라 짤방으로) 살아남은 건 2부의 김두한이니 승자는 자신"이라며 유머 감각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야인시대 1부와 2부는 애초 기획부터 시대 배경, 등장 인물[41], 극의 방향점과 분위기 등 많은 부분이 달랐다. 1부는 일제강점기이며, 일본인들과 독립운동가들이 많이 나왔고, 김두한이 주먹패 오야붕이 되는 과정 및 주먹으로 일제에 항거한다는 것이 주제라면, 2부는 광복 이후 정치인들이 많이 나오고 김두한이 정치에 발을 들이면서 공산당독재에 맞선다는 내용이다. 그래서 배우 교체 시기는 오히려 해방 직후가 적절했다. 그나마 한국전쟁 전까지는 여전히 김두한의 액션을 중심으로 스토리가 진행되었으나, 이 액션 장면마저도 배경음악으로 주로 야인 또는 영웅주의가 이 깔리던 1부와는 달리, 중후하면서도 위압적인 성악풍의 나 사나이다가 깔리면서 바뀐 분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줬을 정도. 배우도 1부는 청년 배우들이, 2부는 중년 배우들이 많이 나왔다. 그러니 1부와 2부는 같은 이름의 다른 드라마로 봐야 할 정도이다.

6.25 전쟁 전후로 김무옥문영철이 퇴장한 이후 김두한은 국회에 입성하면서 파이터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해방 후 10년도 채 되지 않은 시점에서의 국회 입성이다보니 김영철의 비중을 줄이면서까지 안재모광복 이후의 배역으로 내세우기가 애매한 부분이 확실히 있다. 게다가 다른 인물들이 거지반 다 바뀌는데 주인공이 안 바뀌기도 좀 그러니… 그래도 몇 년 후라는 이야기도 없이 그 시점에서 갑자기 나이를 먹고 배우가 바뀌면 어색해지는 건 어쩔 수 없긴 하다.[42]
파일:daily020710-2_20020710115120.jpg
<colbgcolor=#1f50b5> 1부 포스터
김영철의 김두한이 진 주인공인 것은 1부의 스틸컷을 봐도 알 수 있다. 분명 1부 스틸컷인데, 2부에만 나오는 김영철이 안재모를 제치고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다. 1부 오프닝에서도 제일 먼저 비추는 인물이 안재모가 아닌 김영철이다. 이런 구도는 진짜 야인시대의 주인공은 김영철이 연기한 김두한이라는 것을 각인시키기 위함이었다.[43]

작가의 의도는 국회 오물 투척사건을 1화 첫 장면에 넣은 것으로도 알 수 있다. 만약 김두한의 주먹 인생을 중점으로 다룰 것이었으면 종로의 오야붕으로 군림한 상태에서 과거를 회상하는 식으로 묘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정치사에 '김두한'이란 이름을 강하게 남긴 국회 오물 투척사건을 드라마 시작 부분에 두고, 그 후 취조받을 때 과거를 회상하는 형식으로 스토리를 전개함으로서 건달이 아닌 정치인으로서의 김두한의 인생을 주 내용으로 다룰 것을 암시한 것이다.

즉, 정리하자면 1부는 애피타이저이고 2부가 메인 메뉴인데, 애피타이저가 너무 맛있는 바람에 정작 메인 메뉴가 상대적으로 죽어버렸다는 소리다. 그나마 세월이 지나고 심영의 열연으로 재평가를 받았기에 망정이지.

아무튼 김영철 배우는 본인 역시 1부의 인기를 봐왔기 때문에 저 장면에서 시청률이 당연히 떨어질 것이라 예상했다고 했다. 다만 설마 그정도까지 확 떨어질 줄은 몰랐다고.

5. 촬영지

<colbgcolor=#1f50b5> 야인시대 촬영장이었던 부천 판타스틱 스튜디오를 다룬 영상.
한 때 종로 이문설농탕집과 더불어 야인시대 투어코스 중 한 곳으로 각광받았던 장소였다.
상동영상문화단지에 SBS 드라마 야인시대 세트장 - 2002년 2월 10일 더부천 기사. 기사 본문에 당시 건설중인 화신백화점 세트장 사진이 있다. 부천에 30년대 종로거리 재현…SBS드라마 ‘야인시대’ 세트장 - 2002년 3월 3일 《동아일보》 기사

드라마 〈야인시대〉의 촬영을 위해 SBS는 2001년에 대규모 오픈세트장을 건설할 것을 계획하였다. 부천시에서 22억의 자금을 전액 지원하여 부천 상동에 건설되었다. 2002년 3월 5일에 개장한 야인시대 세트장은 메인건물인 화신백화점 세트장과 함께 우미관종로경찰서는 물론, 청계천 움막과 수표교, 원노인의 설렁탕집인 사동옥, 김두한 패거리들이 자주 드나드는 술집인 종로회관, 나미꼬가 운영하는 카페인 사쿠라 카페, 그리고 백병원(!) 등의 건물이 설치되었다. 1930년대 종로거리를 다니던 전차 2량을 제작하기도 했다. 세트장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화신백화점 건물과 전차 2량이 동시에 움직이는 종로거리의 풍경은 이 세트장의 특징이자 대표적인 풍경인 셈.

방영 당시 야인시대 출연자들이 인천시 선관위의 주도로 대통령 선거를 홍보했다.[44] 후에 야인시대 세트장 옆으로 〈하류인생〉과 〈태극기 휘날리며〉의 세트장이 설치되면서 부천 판타스틱 스튜디오라는 명칭으로 규모를 확대하기도 했었다. 부천시 야인시대 세트장은 야인시대 방영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는데, 애초에 오픈세트장으로 설계되어 일반관람이 가능했고, 드라마의 인기와 함께 지리적인 이점으로 부천시의 대표적인 관광지가 되기도 했었다. 한창 인기였을 때는 야간개장을 하여 화신백화점 세트를 비롯하여 불 밝힌 화려한 종로거리를 걸으면서 여름밤을 보낼 수 있었을 정도. 2004년에는 이곳에서 토이스타에서 신제품 홍보이벤트로 서바이벌 게임을 개최해 당시 서바이벌 게임 유저들에게 화제가 되었다.

그러나 드라마 종영과 함께 인기가 시들해진 영향에 원래 세트장이라는 특성상 콘크리트로 지은 영구건물이 아니라 목조로 만든 가건물이 대다수였으므로 빠르게 노후화되면서, 태풍피해와 화재 등으로 인해 2011년 8월 4일을 끝으로 운영을 종료하였고 2012년 3월 5일에 철거되었다.

철거 과정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세트장 건물 5동이 전소되는 피해를 입기도 했다. 철거 후에는 캠핑장으로 조성되었는데 '야인시대'라는 명칭은 유지하여 야인시대 캠핑장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세트장을 철거하면서 기념비석을 세웠고, 당시 촬영 세트장 건물 일부와 전차 2량, 보신각, 혼마치 입구 간판을 남겼다. 한국만화박물관 뒤편 한옥마을과 그 일대 농지근방(부천 문화동산)이 원래 세트장의 위치였던 것. 2018년 초에도 혼마치 입구 간판 등이 흔적으로 남아있는 모양이다. 한국만화박물관에서 안내하는 야인시대 세트장 흔적

2020년부터 야인시대 세트장 자리인 부천 상동영상문화단지의 재개발이 추진되면서 그나마 남아있는 세트장의 흔적도 근시일 내에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다행히 전차 2량은 2017년부터 인근에 위치한 부천시 한국만화박물관 입구로 옮겨져서 보존 중이다.

6. 비판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야인시대/비판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분명히 드라마상 각색된 건달들의 일화를 실제인 것인 양 믿는 바람에 그들의 미화되거나 영웅화된 내용을 고대로 믿는 사람들이 나타나게 되었다는 것. 그 때문인지 시시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이후로는 조폭미화물들이 줄줄이 퇴짜를 맞게 되었다.

야인시대 합성물이 고인드립 논란이 있음에도 아무도 이를 비판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치깡패에 불과한 사람들을 좀 희화화한다고 따지면 조폭 실드친다고 역으로 욕먹기 딱이다.

드라마 방영 당시 전국의 각급 학생들 사이에서는 '야인시대 놀이\'가 유행한 적이 있다. 룰은 가지각색이지만 대표적으로 여러명이 빙 둘러싸고 극중의 싸움 장면을 재현하거나, 단체로 패싸움 시늉을 하는 것이다. 가끔씩 신문지를 말아 일본도라 하며 혼마찌 패거리를 흉내내는 이들도 있었다. 그런데 그냥 싸우는 시늉하면서 노는 것도 모자라 2002년 12월 광주에서 중학생 15명이 드라마를 모방하여 패싸움한 사건이 일어났다.

7. 최강자 논쟁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야인시대/최강자 논쟁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네이버 지식인드래곤볼 다음가는 VS놀이로 미와 Vs 왕눈이, 박인애 Vs 설향, 와싱턴 Vs 눈물의 곡절[45] 등등 별별 해괴한 질문이 올라오기도 한다. 심지어 원노인 Vs 최동열[46]도 존재한다.[47] 이런 장난성 질문을 제외한 vs 질문놀이들은 종영한 지 10년이 넘은 2014년에도 수시로 올라온다! 심지어는 5년 전 글에서 키배를 뜨기도 한다. 지식인 문서에도 있는 8년 키배는 이미 전설.

2021년 기준 합성물 팬덤을 제외하면 아직까지 남아있는 〈야인시대〉 팬덤은 대다수가 VS놀이를 하는 사람들이라 보면 된다.

8. 잘못 알려진 것

구마적, 마루오까, 김영태, 박인애 등, 실제인물 사진이라며 인터넷에 유포되기도 했는데 잘못 알려진 내용은 아래와 같다.

실제 김두한의 정신적 지주는 부친 김좌진이다. 마루오까라는 인물 사진은 한호산이며 첫사랑이라는 인물사진은 본처 이재희다. 구마적이라는 인물 사진은 이원조[48]이며 박정희와 찍은 사진을 비롯해 권력과 손잡았다는 사진은 1962년 3월 1일, 건국훈장 수여 뒤에 박정희를 비롯한 여러 인물들과 찍은 기념사진이다. 마지막으로 부인과 함께 찍었다는 김영태의 사진은 1944년 부인과 함께 찍은 최영의다. 또한 실제 최동열이라고 알려진 사진 또한 해방직후의 박헌영 사진이다.

무엇보다도 심영은 고자가 아니었다. 실제론 상하이 조가 아닌 김두한에게 하복부를 저격당한 것뿐이며, 김두한의 자서전을 각색한 〈야인시대〉에서 이환경이 직접 각색한 내용 중 하나다.

9. 관련 매체

9.1. OST

<colbgcolor=#1f50b5> 1부 오프닝
2부 오프닝
대부분의 OST가 종영 [age(2003-09-30)]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인지도를 가지고 있다. 드라마 자체가 워낙에 유명했고, OST 자체가 주먹 다툼 하는 남자들의 심금을 울리거나, 근현대사의 격동을 표현하기에 너무 적절했기 때문. 전체적으로 남성적이고 사나이의 감정을 울리는 노래들이 많다.

강성이 부른 주제가 〈야인〉은 청년 파트에서 싸움할 때 자주 흐르던 곡이라 그런지 이후 각종 매체에서 싸움하는 장면이 나오면 이 노래가 나오기도 했다. 초반에는 가사가 없는 연주곡만 나왔다. 김두한이 한창 세력을 키우던 도중 술에 취해 구마적의 부하들에게 털릴 때도 이 노래가 나오는데 주인공 일행이 얻어맞는 장면에서 주제가가 나오니 기분이 묘하다. 보통 그런 분위기의 장면에서는 아리엘 돔바슬(Arielle Dombasle)의 〈Odysseus〉 가 나왔다.[49] 참고로 '야인'은 한 회차당 절대로 2번 이상 나오지 않으며, 김두한 외의 다른 인물의 결투 장면에선 나오지 않는다. 이 때는 2대 주제가라 봐도 되는 〈영웅주의〉나 전술한 〈Odysseus〉가 나온다.

2부에서는 〈나 사나이다〉가 주제가로 바뀌었으며, 굳이 김두한 결투 장면이 아니더라도 결투 장면에선 어지간해선 나오며 야인과는 달리 한 회차당 몇 번이고 나온다. 차이점이라면 가사가 있고 없고의 차이. 후반부에는 거의 연주곡만 나온다.

OST는 1부와 2부가 나뉘어졌으며 1부는 CD로 출시되었으나 이혁준이 발매한 2부는 디지털로 발매되었다.

이외에도 같은 주제를 바탕으로 변주된 여러 테마들이 있었지만, 음악에 참여한 작곡가들이 자료가 담긴 하드디스크를 분실하며 아쉽게도 시리즈 사운드트랙 상당 부분이 소실되었다고 한다. 그 와중에 음악감독 이혁준 본인이 2013년 사비를 털어서 미발표곡들이 담긴 사운드트랙 앨범을 발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본인은 저작권료를 얼마 받지도 못했고, 야인시대 음악들은 알아도 작곡가 이름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는 게 아쉬운 부분. 그나마 이후 평창의 꿈으로 유명세를 많이 올린 것이 불행 중 다행. 여기서 발매된 음악들은 모두 2부의 OST다.

오상사돼지를 상대할 때 고유 OST를 재생하며[54], 유지광 역시 수련 장면들과 망치를 상대할 때 고유 OST를 사용한다. 그런데 오상사의 OST는 야인시대 OST 앨범에 등장하지 않는다. 이는 제작진이 자료가 담긴 하드디스크를 분실했거나, 실수로 소각했다는 말이 있다. 만약 보존이 되었다면, YTPMV 같은 소리매드에서 자주 쓰였을 거라는 말이 된다.

9.2. 학습만화

특이하게도 대원씨아이를 통해 학습만화로도 나왔다. 이 만화는 <천재들의 합창>과 <학습만화 한국사/세계사> 등을 낸 베테랑 작가인 오수 화백이 지었으나 그러나 내용은 전혀 딴판에 생략에 알 수 없는 일 투성이. 전형적 양산형 학습만화에 가깝다. 막말로, 돈에 눈이 먼 출판사가 흥행에 편승하기 위해서, 평생 주먹질이나 하면서 깽판치고 다니던 사람을 가지고 위인전 비스무리한 학습만화를 뽑아내는 뻘짓을 한 것.

내용은 광복 이전의 소년기와 청년기 김두한 일생기를 다루고 있으며 드라마 2부에 해당되는 광복 이후 이야기는 마지막 장에서 간략하게 다룬다. 당연히 심영은 나오기는커녕 언급도 안 됐다.

9.3. 게임

게임 리뷰

2003년에 드라마 1부를 바탕으로 제작된 PC 패키지 게임. 제작사는 아트록스로 악명 높은 조이맥스.

드라마와는 좀 다르게 젊은 시절의 시라소니도 등장한다. 그 시절은 아동용 벨트스크롤 액션 게임 장르 붐이 일었던 시기인데, 이것역시 그러한 유행에 편승하여 양산된 게임으로, 부족한 게임성 등으로 여러 혹평을 받으며 흑역사가 되었다. 게다가 게임 내에 나오는 캐릭터의 스프라이트 그래픽 등을 다른 일본 액션 게임에서 그대로 따오는 등, 표절 행태까지 보여 더더욱 질타를 받았다. 특히 김두한은 아예 복장, 기술 등, 대놓고 꽁지머리만 없는 로버트 가르시아다.[55]

까일 만한 요소에 대해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 부족한 게임성 - 들 수 있는 무기가 없다. 작중에서도 가미소리 패거리와의 결투 빼고 든 적이 없지만서도. 아이템도 별로 없었다.
  • 캐릭터 표절 - 위의 각주 참고.
  • 뜬금없는 스토리 - 어디가 습격을 받았다→거기로 간다→공격한다. 끝. 중간에 이벤트 영상 그런 거 없다.
  • 패치가 패치가 아니다 - 패치라고 했더니 기껏 미와가 나오는 스테이지 하나만 추가해 놓았다. 그 외에는 미와 경부의 캐릭터나 공격에 대한 디자인이 장난 수준이다. 권총을 쏘는데 페이크 공격으로 태극기가 나온다든지 고개 돌리고 주먹을 휘두르거나 물건을 던져댄다든지… 이거 80년대 게임 아니다. 또한 이 패치 파일에는 웜 바이러스가 감염되어 있었기도 해서 답이 없다(...)

그러나 호쾌한 멜로디의 하드락을 중심으로 한 배경음악만큼은 좋은 평가를 받는다. 잠뿌리의 리뷰에서도 배경음악에만큼은 '돼지 목에 진주' 라는 평가를 내렸을 정도. 이 배경음악들은 Studio EIM이라는 업체에서 제작했는데 이 업체는 이후 국내 굴지의 게임 음악 업체가 된다. 문서 참고.

영어판 위키피디아에는 드라마 문서 대신 이 문서만 작성되어있고 영어로 검색하면 구글 이미지 검색에도 드라마 관련 사진보다 게임 스크린샷이 더 많이 뜨는 등 드라마 야인시대의 인지도가 전무한 외국에서는 오히려 게임을 아는 사람이 더 많다. 하지만 이후 2016년 5월 12일에 드라마 문서도 만들어졌다.

차라리 김두한과 주먹패들 자체를 다룬 게임을 하려면 본작보다는 1990년대에 FE사에서 제작한 야화1을 하는게 훨씬 낫다. 게임 난이도가 높다고 알려져 있으며 이쪽은 경영적인 요소가 많지만 전투 역시 벨트스크롤로 진행된다.

그 외에 겜티즌[56]이라는 사이트에서 만든 플래시 게임이 있다.

9.4. 소설

작가가 쓴 소설도 있으며 7권까지 출판되었다. 다만 엄청난 인기를 끈 드라마와 달리 딱히 존재감이 없다. 게다가 구하기도 어렵다. 내용은 드라마와 비슷하나 차이점도 많다.

9.4.1. 드라마와의 차이점

전체적 줄거리는 같지만 설정, 내부 요소들이 살짝 다르다.
  • 소설판에선 김좌진과 박계숙이 어떻게 만났는지 몇 장 씩이나 길게 언급되지만 드라마판에선 1917년에 숨어다니던 김좌진이 박계숙의 집에 도피해있다가 정을 나눴다고 간략하게 설명했다.
  • 개코가 양코라는 이름으로 나오고 왕눈이가 갈치[57]로 나온다. 발음에 의한 차이인진 모르겠지만 와싱턴이 톤으로 나미꼬마루오까는 나미코, 마루오카로 애란은 아이란으로 불린다. 그런데 정작 오민섭은 차민섭이라고 제대로 나온다.
  • 소설판에선 왕발이 등장하지 않고, 드라마판에서 초반에 잠깐 등장했다가 배우 손호균의 스케쥴 문제로 증발한 구마적패의 상하이 박이 그의 역할을 대신한다. 한마디로 소설판에선 왕발이 상하이 박으로 대체된 것이다.[58] 두 인물의 행적과 리타이어 과정은 똑같지만 상하이 박은 김두한에게 굴욕을 당한 이후, 또다시 종로로 돌아와 독자적 주먹패를 만들어 반항하다 김두한에 의하여 잡힌 다음에 수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손목을 도끼에 잘린다. 드라마에선 보여주기 너무 잔인한 장면이라 삭제한 듯.[59]
  • 빡빡이가 소설판에선 '셔츠'로 이름이 변경되어 등장한다.
  • 드라마판에서는 구마적신마적은 김두한에게 패한 이후 종로를 떠나며 극에서 하차하지만, 소설판에선 김두한이 마루오까와의 대결에서 승리한 시점에 잠깐 등장해 김두한을 치켜세워주는 것으로 나온다. 물론 그 이후로 등장이 없는 것은 동일하다.
  • 드라마판에선 황병관이 스쯔끼의 발을 밟지만 소설에선 그 반대.
  • 나미꼬가 차린 사업장의 이름이 드라마에선 사쿠라지만 소설에선 파라다이스.
  • 몇몇 등장인물들의 최후 또한 다르다. 가미소리는 드라마에서 장충단 혈투 이후 할복하지만, 소설판에선 하야시가 막았고 광복까지 잘만 살다 시바루와 조선을 떠난다. 또 개코와 양코의 사망이 다르다. 개코는 강간당했다고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죽으며 마지막에 김두한의 품에서 비극적인 유언을 남기지만, 양코는 정말로 강간을 했으며 헤드샷을 당해 그냥 즉사한다. 그리고 드라마와 달리 정진영이 개코의 장례식에 등장한다. 애기보살 역시 납북되지 않고 요정을 쭉 운영하다가, 죽기 전 불교에 귀의해 전 재산과 저택을 절에 기부했다고 나온다.
  • 말단간부들의 비중이 달라졌다. 소설판에서 병수는 마루오까가 등장하는 시점에서도 출연하고 털보와 번개는 죽었다는 언급도 없이 어느 순간 사라진데다 와싱턴은 양코의 죽음 이후 이념에 실의를 느끼며 떠나지만 드라마판에서 병수는 뭉치의 습격 이후부터 사라지며 번개는 김두한의 스즈끼 대위 폭행 사건때 끌려가 고문받다 죽으며 털보는 2부부터 등장하지 않는다. 와싱턴은 개코의 사망 루트 변경으로 인해 번개의 죽음 이후 퇴장.
  • 김두한이 미군정 시기 재판 당시 할복할 때 드라마에선 그냥 피가 흐른다고 묘사되었지만 소설판에서는 피가 분수저럼 쏟아졌다고 묘사된다(...).[60]
  • 드라마에선 중앙극장 습격 사건 이후 김두한과 우미관패가 직접 백병원에 있는 심영을 찾아가서 전향서를 받아내지만, 소설판에선 심영이 고자가 된게 짧은 언급으로만 나온다. 그러나 심영이 고자인 것은 소설판에서도 마찬가지다.
  • 드라마에선 문영철만이 6.25 전쟁 때 사망하지만 소설판에선 김무옥도 같이 사망한 것으로 나온다.
  • 김관철이 감찰부장 시절때 드라마에서는 홍영철이 공격을 한 적이 없지만, 소설판에선 김관철을 2방컷 시켰다고 한다.
  • 국회 오물 투척 사건이후 김두한이 호텔로 가서 쉰 이후 그다음 날 이발소에서 면도를 하고 있는데 그가 정부의 모사를 받은 두 정치깡패에 의해 칼로 위협 받으며 국회의원 직을 사퇴하라는 협박을 받는 내용과 사퇴전에 이미 국회에서 의원 사퇴 결의안이 통과되는 장면과 구속되는 내용도 소설에선 나오나 드라마에선 바로 구치소로 들어간 모습만 나온다.
  • 김두한의 죽음 묘사도 다르다. 드라마에선 조일환과 절에 다녀온 후 헤어지면서 길가에서 쓰러져 사망하는 것으로 나오지만, 소설판에선 정체 모를 괴한에게 습격당한 후 고혈압으로 사망하는 것으로 나온다. 이로 인해 딸 김을동이 성우 녹음 중 김두한이 위중하다는 연락을 받기도 하는 내용도 나온다.

10. 기타

  • 〈야인시대〉에 등장했던 배우들 중 몇몇은 영 좋지 않은 일로 텔레비전에 나오지 않고 있다.
    • 김무옥 역의 이혁재는 룸살롱에서 폭행을 저지른 이후부터는 텔레비전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 시라소니 역의 조상구는 〈야인시대〉 종영 직후 영화에 캐스팅되었는데 그 영화라는 게 하필이면 대한민국 영화 역사상 전체 최악의 영화인 〈주글래 살래〉였다. 〈주글래 살래〉가 망하는 바람에 출연 배우들의 커리어가 모조리 절단났다. 참고로 이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 중 아직도 활동하는 배우는 독고영재 혼자 뿐이다.
    • 시바루 역의 이세창은 하필이면 본인과 닮은 외모의 리마리오가 〈웃음을 찾는 사람들〉에 나와서 본인에게 느끼한 이미지를 강렬하게 박아놓은 탓에 이후 배우 생활에 큰 난항을 겪었다.
  • 안재모는 드라마 이후 일본에서 가수로 활동하려고 5년 동안 준비했으나, 소속사와의 분쟁으로 계약 기간 10년 동안 제대로 활동하지 못했다. 그리하여 진출하려고 했던 일본은 물론 〈야인시대〉로 올라간 인지도가 잊혀지면서 그렇고 그런 배우(?)가 되어 버렸다. 일본에서 앨범도 내고 가수로도 활동하려고 했건만… 이후 내리막길을 걷다가 2014년에서야 〈정도전〉에 이방원 역으로 출연하면서 재기의 불씨를 틔웠다.
  • BGM이 왠지 묘한 장면들이 몇 있다. 대표적인 경우로 이승만의 3선 출마 결의와 선언 장면은 엄연한 자유당과 이승만의 독재를 담는 장면임에도 불구하고 나오는 배경음은 희망찬 느낌이 강하다. 자유당 당원들이 이승만에게 대통령 출마를 설득하느라 온갖 수를 다 쓰다가 이승만이 '그래, 그럼 출마할 수밖에' 라고 결정하자 자유당 당원들이 기뻐하고 환호하는 장면이어서인데, 사실 이 드라마에서 자유당은 악역이기 때문에 배경음이 좀 묘하긴 하다.
  • 총기 고증에 오류가 있다. 극중에 베레타 92 모델이 등장하는데 이 권총이 처음 공개된 시기가 김두한이 사망하던 1972년이라 드라마의 시대적 배경(1930~60년대)과는 맞지 않다. 뭐 지나가는 장면에 잠깐씩 나왔던 데다 총덕들이 아니면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 부분이기에 대부분은 잘 모를 것이다. 6.25 전쟁과 김동진을 습격하는 장면에서 나온다. 그리고 유년 시절의 김두한이 원노인과 함께 아버지 김좌진 장군을 만나러 가던 도중 마적에게 쫒길 때에도 마적들이 당시(1920-30년대)에 등장하지도 않았던 MP40 기관단총을 들고 등장한다. 유명한 사딸라 장면에서도 김두한과 김종원이 서로 권총을 겨눌때 나오는 총이 CZ75다. CZ75는 김두한이 사망한 후인 1975년에 처음 등장했다.
  • 2부 들어선 아무래도 정치적인 사건들이 주로 등장하므로 내레이션이 계속 등장하여 여러 사건을 해설하거나, 사건에 대한 여러 역사가들의 의견이 분분하다는 걸 설명해주기도 하는데, 내레이션의 십중팔구는 '그랬다'로 시작하여 '○○했던 것이었다', '○○했다고 한다'로 끝난다.
  • 이창훈이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에 출연하여 밝힌 바에 따르면, 처음에 이창훈은 악역을 하기 싫어서 하야시 역을 하지 않으려 장형일 감독을 피해 도망다녔다고 한다. 그러다가 장형일 감독이 자신이 촬영한 영화 〈4발가락〉의 시사회까지 찾아와서 신사적이고 정의롭게 그리려 한다고 하자, 수락했다고 한다. 시사회에서 영화를 같이 본 장형일 감독에게 이창훈은 마침 〈4발가락〉에 동반출연한 이원종박준규를 적극적으로 추천했고, 이에 따라 장형일 감독은 두 사람을 각각 구마적쌍칼 역으로 캐스팅했다고 한다. 이창훈은 오히려 둘은 그러한 비화를 모를 것이라고 덧붙였다.#
  • 출연배우 중에는 실제 혈연 지간인 케이스도 4쌍이나 있었다.
    • 부자(父子)지간 : 고노에役(남일우) - 곽영주役(남성진), 백의사 염동진役(이대로) - 김윤도 검사役(이지형)
    • 모자(母子)지간 : 정진영의 어머니役(배미자) - 갈치役(강민호(당시 강성하))
    • 부녀(父女)지간 : 2부의 홍만길役(정일모) - 백장미役(정소이)
  • 이 작품의 제작대행사인 SBS 프로덕션은 작가 이환경이 쓴 KBS 1TV용의 눈물〉이 끝난 뒤 이환경을 1999년 스카우트하여 KBS 1TV 대하드라마과 경쟁하기 위해 주말 특별기획 드라마로 편성할 예정이었으나, 이환경과 KBS와의 관계가 끝나지 않자 무산됐다.[62] 이후, 〈야인시대〉는 뒷날 사극 월화드라마 여인천하〉 후속으로 편성될 예정이었는데 다른 점이 있다면 〈여인천하〉가 SBS 자체제작이었던 것과 달리 〈야인시대〉는 SBS 프로덕션 제작대행이었다. 하지만, 〈야인시대〉 제작대행사인 SBS 프로덕션 측은 이 작품이 100회나 되는 긴 드라마인 데 이어 MBC, KBS의 미니시리즈와 맞붙게 될 경우 편성상 불리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에 주말 특별기획드라마로 되돌렸지만 당시 이환경 작가가 집필하고 있었던 KBS 1TV 대하드라마 〈제국의 아침〉과 같은 시간대에 방송되어 한 작가의 드라마가 다른 채널을 통해 동시 방영되는 전례 없는 상황이 발생된다는 이유 탓인지 〈여인천하〉 후속 월화드라마로 기획된 미니시리즈 〈라이벌〉과 편성을 맞바꿨다.
  • 제16회 한국방송작가상 드라마 부문 최종 후보에 한때 거론되었으나 "작가가 심사위원으로 임명된 작품은 수상이 불가피하다", "한번 드라마 작가상을 받은 작품은 재수상이 불가능하다."[64]는 규정에 걸려 탈락했다.
  • 유일하게 〈야인시대〉 21화만 19세 이상 시청가였다.#[65] 그 외에도 1부는 흡연 장면이 많이 나왔지만, 2부 시작인 51화부터는 금연 규제의 영향으로 줄어들었다.
  • 드라마부터 SBS 드라마는 SBS 지역 네트워크 협정을 맺은 모든 지역민방에서 볼 수 있게 되었다.
  • 지금 보면 충격적이고 남세스러운 장면이 하나 나오는데, 어린 개코가 어떤 상인을 놀릴 때 바지를 내리고 엉덩이까지 보여주는 장면이다. 모자이크도 하지도 않은 채 적나라하게 나오는데, 아마 현재 시점에 이런 장면이 대놓고 나온다면 제작진이 징계를 먹었을지도 모르며, 지금 나왔다면 혀 내밀고 얼굴을 찡그리며 놀리는 것으로 대체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다만, 현재의 방송 심의가 너무 억센 감이 없진 않지만...
  • 김두한의 친구로 알려진 김동회 역은 〈장군의 아들〉에 등장했음에도, 야인시대에 등장하지 않는다. 한때 이 부분으로 비판받은 적이 있었다.
  • 최태환 무술감독은 김두한 역 및 시라소니 역의 액션 대역을 맡았다. 본래 조상현 무술감독이 시라소니를 맡았는데, 시라소니 vs 금강의 격투를 촬영하다가 부상당하여 시라소니의 대역을 최태환 무술감독에게 넘겨주었다. 이후 낙화유수의 대역을 맡았다고 한다.
  • 2부에 홍만길 역으로 출연했던 배우 정일모에 따르면 현대 대한민국에서 실존했던 인물을 드라마화하기 위해서는 본인 혹은 본인이 사망했을 경우 유족들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데, 김두한의 아들인 김경민은 드라마 제작을 반대하며 동의서에 서명하지 않으려 했다고 한다. 이에 김경민과 친분이 있던 정일모를 통해 김경민을 설득해 동의서에 서명을 받아서 드라마를 제작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김경민은 드라마가 종영된 지 4년 뒤인 2007년, 자신이 반대하고 동의하지 않았음에도 드라마가 제작되었다며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지만 패소했다. 그 후 2008년에도 언론을 통해 같은 주장을 했지만 그 이후 다른 소식은 없었다.
  • 상술한 것처럼 실존인물의 유족들 동의도 문제였으나, 김두한의 활동시기 때문에 방영 당시 생존인물도 꽤 있었다. 이만섭, 김태련, 김대중 등등의 인물이 해당되는데, 생존인물들은 큰 트러블이 없었다고 한다. 심지어 이만섭은 방영중에도 국회의원이었는데, 직접 챙겨봤다고 한다.
  • 김두한의 장녀이자 김좌진 장군의 손녀으로 알려진 배우 김을동은 김두한의 큰 어머니 역을 제안했지만, 드라마 출연을 고사했다.
  • 〈야인시대〉에 맘충, 미투운동 등을 예견하는 대목이 있었다. 7화에서 김두한한테 응징당한 일본 학생들의 어머님들이 사동옥에 찾아왔다. 이는 1920년대 일본에도 맘충이 있었다는 걸 암시한다. 이어 74화에서 개코가 미투 운동에 희생되어 최후를 맞았다는 평이 있다. 여공들은 개코의 행위를 다 봤다고 주장한다.
  • 수레바퀴는 야인시대의 필수 요소이다. 격투 중 공격을 받아 넘어진 사람은 꼭 수레바퀴에 착지한다.

10.1. 겹치는 출연자

이환경이 작가를 맡은 〈태조 왕건〉과 후속작 〈제국의 아침〉에 출연했던 배우들이 야인시대에도 다수 등장했다. 두 작품에 등장한 배우들 다수가 사극이나 정치 드라마에 자주 출연하였기 때문에, 두 작품을 본 시청자들에게 익숙한 얼굴들이 야인시대〉에도 보일 수밖에 없던 것. 해당 출연자들은 다음과 같다.
배우 〈태조 왕건〉 〈제국의 아침〉 〈야인시대〉
김영철 궁예 김두한
정동환 최지몽[66] 최동열 공교롭게도 둘 다 최 씨이다.[67]
전미선 신명순성왕후 유씨 김두한의 생모
정영숙 신명순성왕후 유씨 김두한의 할머니
오승명 명천공 최상우
한춘일 아자개의 집사 백성 개성 일본순사/조봉암
서현석 정진영
양형호 1인 4역 문달영
손호균 원회 상하이박/이석재
박승호 신훤 미우라
남일우 김악 고노에
전무송 최승우 사이코 마코토
손종범 호족/의원 나석주
고진명 백성 머슴/식산은행 경비원
배미자 김위홍 부인 정진영의 어머니
조재훈 임춘길 상록수 편집국장
이성용 경문왕 서봉 홍명희
허기호 김염 김성수
서동수 군관 털보
황덕재 양길 큰사위 대전별감 작두
김홍수 고려측 부장 당태종 종로서 사법계 형사
최재성 정종 마루오까
이원종[68] 1인 3역 전의 이재희의 아버지
나재균 설문우 공장 감독관/인민군 군관
박종설 1인 3역 김무옥의 아버지
정일모 정종의 내군장군 홍만길
김기복 김락 황보숭 장권
함석훈 1인 4역 황병관
이대로 도선대사 서필 염동진
김학철 박술희 조병옥
임혁주 박영규 장택상
이효정 쌍기 유진산
이원발 환향식 우장군 사고야마
김동석 1인 12역 김견술의 부장 김형사
김태형 1인 3역 아편밀수 담당형사
나기수 철원성 인부 아편밀수 담당형사
임병기 신덕[69] 최행귀 박헌영
문회원 경애왕 김규식
김윤형 기훤 여운형
송금식 대야성 수비무장 장단설 김후옥
나한일 변사부 금강
유순철 백성 공창수
김경하 무진주 도독/추언규 장사장
한태일 1인 4역 최린
남영진 한현규 채병덕
이광기 신검 이억일
방형주 방효태 서경 공사 고릴라
이영재 왕건 대전내관 홍영철
기정수 파달 단게 경무국장/현도 스님
이철민 고려 병졸 순군부 장수/광종 정찰병 정팔 부하/권상사
오성열 1인 4역 상단 행수 김상도
이일웅 오다련 초선 부하 이갑성
신원균 1인 6역 내군장교 야당의원 구타 형사
이계영 철원성 장수/윤신달 손소 시라소니 주치의
이지형[70] 최승로 김윤도
김기진 명길 자유당 간부
유태술 김총 조충서/김득만
정국진 왕식렴 왕욱[71] 이만섭
양재원 1인 3역 지방 장수 이기붕 수행부관
강경헌 후광주원부인 왕씨 경무대 여비서
차기환 염흔/김언의 부장 식회 최영규
전병옥 능애 김책/혁명 정부 검사
이기철 송악성 수문장/양길 작은사위 서경반란대 대장 군검찰관
이용진 1인 4역 박승위 중앙정보부 과장
강신조 포석정 군관/파달군 군관 부역군 반란대장 오기자/김두한 담당검사
트리플 크라운이 꽤 보인다.

11. 유튜브 공개

2019년 10월 18일, 《SBS DRAMAi CLASSIC》에서 실시간 재방송을 하기 시작했다.[72] # 그리고 대망의 64회, 65회가 12월 2일부터 3일까지 방송되었는데 심영이 나올 때마다 실시간으로 시청자수가 폭등하고 채팅창이 들썩였으며 그리고 2019년 12월 3일 새벽 2시에 전설의 야인시대 64화가 방영되면서 채팅창이 폭☆8했다.[73] 그 장면에서는 3,000이 넘는 시청자수를 자랑하기도 했었다. 그 밖에도 64화 이전에도 심영이 나오거나 필수요소가 등장할때마다[74] 채팅창이 들썩였다,

하지만 시청자들이 채팅창에서 저속한 대화를 나누는 문제가 발견되면서, 11월 11일에 채팅창 운영을 중단했다가 11월 20일에 재개했다. 관리자는 채팅창에서 저속한 내용 등을 작성할 경우 채팅창 이용 금지 처분을 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75]

2부 첫 공개 이후 엔딩 시그널이 나올 때마다 채팅창에서 떼창을 하는 경우도 보이고 있다.

12월 25일 크리스마스, 공지도 없이 방송 펑크가 났으나 단순한 지각으로 12시 25분 정상적으로 방영하기 시작했다.

거기다 제대로 〈야인시대〉를 보지 못한 사람들이나 심영물로만 알아온 사람들이 전편을 보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소스들이나 별명들이 붙기 시작했는데 2부 후반부 항상 사건이 터지고 난 후 명동파들이 한데 모여 사건을 이야기하는 부분이 반복되면서 '명동TV : 정치평론'이라고 불린다던가 2부 공산당 세력중 김해숙을 보고 '공산당 북화요비'라고 이름 붙이곤 했다.[76]

2020년 3월 31일 오후 6시에[77] 스트리밍이 사실상 종료되었다. 그냥 무한반복 해달라는 요청이 많았지만 들어줄 수가 없다고 한다. 채팅창 관리를 직원이 해야 하며, 기타 걸림돌이 있어서 광고도 어렵고 수익을 내기도 어려운 구조라 한다.

이후로 해당 채널에서 공식 심영물을 몇 차례 업로드하기도 했으며, 구독자 이벤트로 야인시대 관련 문구가 적힌 굿즈를 배포하기도 했다. 문구는 각각 오렌지병, 폭★8, 야인.

12. 합성물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야인시대/합성물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13. 관련 문서

13.1. 작중 사건 사고

※ 연도 순으로 작성하였다.

파일:야인시대 로고.png
야인시대 작중 사건 사고
{{{#!wiki style="margin:-0px -11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일제강점기동척 · 식은 투탄 의거 사건
(5회)
일장기 말소 사건
(16회)
조선어학회 사건
(46회)
부민관 폭탄 의거 사건
(49, 50회)
미군정기중앙극장 습격 사건
(64, 65회)
정판사 위조지폐 사건
(67회)
제1공화국6.25 전쟁
(81~89회)
사사오입 개헌
(103회)
단성사 저격 사건
(104, 105회)
황금마차 습격사건
(110, 111회)
장충단집회 방해 사건
(116회)
충정로 도끼 사건
(118회)
고대생 습격 사건
(121회)
4.19 혁명
(121회)
제3공화국혁명재판
(122, 123화)
한국독립당 내란 음모 사건
(124화)
국회 오물 투척 사건
(1, 124화)
}}}}}}}}} ||

13.2. 참고 문서

13.3. 외부 링크




[1] 일단 SBS의 공식 영문 제목은 이렇게 되어 있는데, Rustic에 '거친, 투박한'이란 의미도 있어 뜻이 통하기는 하지만, 문제는 '목가적인, 시골의, 소박한'이라는 뉘앙스가 더 강하다는 점. 격동의 시대 속에서 싸워나가는 인물을 그린 드라마라고는 연상되지 않는 생뚱맞은 느낌의 제목이다. 차라리 'Turbulent'가 쓰였다면 좀 더 나았을 것이다. 외국의 한국 드라마 팬들은 아예 그냥 'Yainsidae'로 부르기도 한다.[2] 서양에서는 드라마보다 게임판이 더 유명한데, 이 게임판은 〈Age of Wanderers〉라는 제목으로 알려져있다. 이혁준의 야인시대 OST 음반집인 〈Dramatic 1.5〉에는 영문 표기를 'The Age of Wild Men'라고 해놓았다. 이 두 영문 표기가 원제의 뜻을 더 잘 살린 편이다.[3] 한편 아래의 유튜브 채널에서 올라오는 영상의 영어 번역은 'The Age of Barbarians'로 나와있다.[4] 왼쪽부터 하야시, 장년 김두한, 청년 김두한.[5] 2002년 5월 1일방송 프로그램의 등급 분류 및 표시 등에 관한 규칙이 일부 개정됨에 따라(다만, 6개월 유예가 적용되었기 때문에 실질적인 시행일은 2002년 11월 1일이었다.) 22화부터 15세 이상 시청가로 방영하였다(관련 기사). 유일하게 21화만 19세 이상으로 분류되어 있었는데, 술집 싸움 장면에서의 많은 잔인한 장면 때문인 듯하다. 종영 이후 유료방송 등에서 재방송을 했을 때는 20화 이전 방송분도 15세 이상 시청가로 소급 분류하였다.[6] 단, 38, 40화는 10시 35분에 방송했고, 45화와 46화는 연속 방송되었다. 그리고 104화는 10시 5분에 방송했다.[7] 제작사업 부문은 SBS Plus(당시 SBS 드라마 플러스)로[8] SBS 고전 드라마를 실시간 스트리밍하고 하이라이트 클립을 업로드 하는 SBS 공식 유튜브 채널이다.[9] 1996년생 ~ 1997년생. 현재 [age(1997-12-31)]~[age(1996-01-01)]세.[10] 1990년생 ~ 1995년생. 현재 [age(1995-12-31)]~[age(1990-01-01)]세.[11] 2002년 당시 중학생(1987년~1989년생, 현재 [age(1989-12-31)]~[age(1987-01-01)]세) 고등학생(1984년~1986년생, 현재 [age(1986-12-31)]~[age(1984-01-01)]세), 2003년 당시 중학생(1988년~1990년생, 현재 [age(1990-12-31)]~[age(1988-01-01)]세) 고등학생(1985년~1987년생, 현재 [age(1987-12-31)]~[age(1985-01-01)]세)[12] 이때 떨어져 나간 시청자층은 아이러니하게도 훗날 합성물을 통해 다시 컴백(...)하게 된다.[13] SBS는 2부 전환시기에 수목드라마 올인이 대 히트를 치면서 메인으로 밀었다.[14] 전쟁과 정치인들과의 인연 등[15] 안재모는 방송 이전에도 탄탄한 아역 커리어와 더불어 성인 연기자로서도 신인상을 탈 정도의 배우였지만, 궁예로 전국적인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대상까지 탄 김영철에 비할 바는 못 되었다.[16] 김두한 역의 안재모의 얼굴이 〈야인시대〉 이후[17] 킹두한 TV 〈야인 이즈 백〉이 넷플릭스와 카카오, 유튜브를 통해 화제가 되고 결국 김영태역의 배우까지 합류해 포스터 화보를 찍었다.[18] 카카오티비 쪽은 조회수가 벌써 수백 만은 기본으로 넘어가고 있다.[19] 한국 방송 역사를 통틀어 역대 최고의 시청률을 자랑한 1998년 프랑스 월드컵 한국vs멕시코 전의 79.2%를 능가하는 엄청난 수치이며, 전세계의 시청률 기록을 뒤져봐도 찾기 힘든 대기록이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한국 vs 멕시코 전 당시에 길거리에서 사람이 아예 보이지 않았다시피 한 걸 생각하면...[20] 탈북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북한 고위간부들도 한국 드라마를 즐겨 시청했고, 어느 정도 눈감아주는 건 있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야인시대〉의 장르가 장르인 만큼 눈감아주긴 힘든 상황이었을 듯.[21] 로고의 한문 서체가 미묘하게 다르다.[22] 이환경 작가의 전작 〈태조 왕건〉 또한 일본어로 더빙 방영되었다.[23] 87 ~ 123회 정도.[24] 당대 기준으로도 평균 시청률을 20 ~ 25%나 찍는 드라마는 지금처럼 초대박까지는 아니어도, 나름은 선방하는 편에 속했다. 〈겨울 연가〉, 〈상도〉, 〈여인천하〉의 방영분이 완전히 겹치던 10주간 3개 드라마가 모두 25%를 넘긴 적은 단 한 번도 없고, 3개 드라마의 시청률이 전부 20%를 넘겼던 적도 총 20회차 중 절반도 되지 않는 8화에 불과하다. 〈여인천하〉가 〈야인시대〉의 바로 직전 방영작이므로 TV의 위상은 〈야인시대〉 방영 당시와 차이가 없는 것은 물론이다.(오히려 같은 시기 경쟁하던 〈상도〉조차도 망했다고는 하지 않았다.) 세 드라마는 모두 흥행에 성공했다고 평가되는 드라마들임은 물론이다.[25] 다음으로 2004년 방영작 〈미안하다, 사랑한다〉의 사례를 보자. 〈미안하다, 사랑한다〉의 평균 시청률은 20.3%다. 그러나 흔히 알려진 내용과는 다르게 당시나 지금이나 미사는 흥행에 성공한 드라마로 평가된다. 따라서 앞선 서술과 달리 시청률 평균 20~25% 정도 찍는 드라마는 TV의 위상이 높았던 2000년대 초 기준으로도 절대 그냥 그런 수준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시청률이 유지된 것이 대체로 50~60년대를 실제로 살았던 중장년층 덕분이고, 1부에 열광하던 어린 시청자들이 대부분 이탈해버렸던 것은 사실이다.[26] 원작 소설에는 해방 이후 미군정기 좌우익 대립 시기에도 남다가 친한 후배였던 양코(드라마의 개코와 동일한 인물)의 죽음에 충격을 먹어 이념 대립에 실의를 느껴서 김두한에게 자신이 쓴 편지를 전해준 후, 우미관패에서 나갔고, 나중에 언급된 바로는 본인이 시골에서 여자들을 후리며 살기 시작한 듯하다. 삼수, 개코, 번개와 같은 말단이었던 병수털보는 따로 생사가 언급되지 않고 1부에서 증발하였다(병수는 21화가, 털보는 50화가 마지막 등장. 아마도 배우의 사정으로 조기하차한 듯).[A] 실제로는 1987년에 경향신문에 우익 단체 활동 관련 증언을 한 것을 볼 때 1990년대 이후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며, 오히려 김두한보다도 훨씬 오래 살았다. 다시 말하면 병사하거나, 죽느니만 못한 수준이 된 것은 야인시대에서 각색된 것. 그나마 휘발유는 유일하게 병이 완치되었다는 묘사가 나오긴 했다.[A] [A] [A] [31] 명확히 어찌 되었는지는 나오지 않았으나, 혁명 재판 이후엔 언급이 전혀 없다. 결국 처형당했거나, 살아남았더라도 옛 동료들과 인연을 완전히 끊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다만, 원작 소설에서는 드라마와 다르게 김두한의 장례식에 참여하는 등, 김두한을 배신하지 않고 끝까지 살아남았다.[32] 해방 이후부터 6.25 전쟁 당시까지 포함하면 김무옥은 좌익과의 총격전 중에 사망했고, 개코는 여공들에게 의해 강간 누명을 쓰고 김두한에게서 자결을 종용받다가 김두한에게 의해 억울한 죽음을 맞게 되었고, 정진영은 좌익에 투신하여 활동하다가 붙잡혀 대한민청 본부에서 김두한에게 총(사실 빈총이었다.)을 겨누며 같이 죽자며 김두한을 자신의 길동무로 삼으려다가 김두한에게 의해 사살되었고, 문영철은 6.25 전쟁에서 전투하다 사망했다.[33] 〈야인시대〉 마지막화를 보면 콜록거리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결핵도 앓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34] 되려 김두한이 정치인 시절에 밑에 있었던 이들인 정대발(기술 배워서 먹고 산다고 말함.), 채원기(실존인물 김두한의 비서실장으로 드라마에서 밝히기를 작은 사업을 한다고 말함.), 그리고 김두한과 연을 맺은 이찬오(이 사람은 현대자동차 부사장까지 올라간 인물이며, 드라마에서도 현대에 입사했다고 나온다.) 등이 본인의 옛 조직원들보다 더 잘 살게 된다. 원작 소설보다 더 비참하게 끝났는데, 우선 1부에서 죽은 번개는 헌병대에서 석방된 시점에서도 살아남았고, 나중에도 남아 있다는 언급이 있었으며, 와싱톤 역시 2부까지 남아있다가 퇴장했고, 김무옥은 용산 철도파업이 아닌, 한국전쟁에서 문영철과 마찬가지로 전사했으며, 신영균 역시 끝까지 살아남아 김두한의 장례식에 참여하였고, 김삼수는 원작 소설에서는 드라마와 다르게 배신하지 않고 살아남아서 김두한의 떠나는 길을 지켰다. 김영태는 미국으로 이민했단 건 동일하나 드라마와는 달리 장례식에 참여하였다. 참고로 여기서 아구와 갈치가 언급되지 않았는데, 이 셋은 소설판에 등장하지 않은 드라마 오리지널 인물이다.[35] 〈야인시대〉가 조폭을 소재로 한 드라마였던 이상 조폭들의 결말이 좋게 묘사되는 것이 금기시되어 있다보니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것으로 묘사하는 것이 불가피했다.[36] 결론적으로 제작진 예상은 적중했다. 시청률이 엄청 좋았던 1부에 비해 시청률이 반토막 난거지 시청률은 20%대로 안정적이었다.[37] 김영철의 인기 문제는 아니었다. 김영철은 그 직전에 KBS 대하드라마 〈태조 왕건〉에서 궁예 역을 맡아 주인공 왕건조차 묻어버리는 큰 인기를 누렸고, 이 때문에 〈야인시대〉에 캐스팅될 때 기대도 컸다. 그러나 예상 외로 인기를 끌었던 〈야인시대〉 1부는 더 이상 시대극이라고 보기 힘들었고, 주 시청자들과 이들이 기대하는 것도 달랐다. '김영철 주연 시대극'을 볼 만한 시청자 상당수는 이미 액션활극이 되어버린 〈야인시대〉를 안 보고 있었고, 그동안 〈야인시대〉 애청자들은 액션활극을 보고 열광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한 순간에 드라마의 성격이 바뀌니 시청률이 떨어지는 건 지극히 당연한 결과였다.[38] 이 둘은 외모로썬 청년기와 장년기의 위화감이 크지 않았다. 개코는 그냥 그대로 나이 든 것 같은 이미지에, 배우가 베테랑 성동일인 것을 보고 오히려 기대하는 시청자들도 많았다. 다만, 정진영의 경우 외모의 변화는 자연스러우나, 열렬한 공산주의자로서의 모습이 부각되어 상당히 차가운 이미지에 성격 또한 매우 달라졌다.[39] 이정재는 위화감이 좀 있었다는 의견도 있다. 외모의 차이도 그렇고, 1부의 이정재가 과묵하고 카리스마적인 모습만 나왔으면 2부 초반의 이정재는 털털한 동네 형같은 느낌이었기 때문(물론 6.25 이후로 동대문을 중심으로 조직을 만든 뒤부터는 보스의 카리스마가 제대로 터졌다.). 하지만 이 문장의 요지는 나이 측면에서 김두한처럼 말도 안되게 삭은 건 아니란 얘기이다. 두 배우의 나이 차는 7살 차이로 다루고 있는 시대를 감안하면 상당히 적절한 나이였다.[40] 1954년은 실제 역사에서 김두한이 37세의 나이로 국회의원에 당선된 해다. 37세면 방영 당시 기준으로 안재모와 김영철의 딱 중간 정도에 위치하는 연령대이며, 마침 김두한의 직업이 주먹패에서 정치인으로 바뀌기도 했고 시대상 또한 한국전쟁 직후인 만큼 배우를 변경하기 아주 적절한 타이밍이었을 것이다.[41] 물론 1부에서 이어져 2부에도 출연한 배우나 있긴 했지만, 극 전체로 보면 소수나 다름없다.[42] 게다가 일제시대에 협객으로 나온 인물이 갑자기 정치깡패로 돌변하면 그 위화감도 무시 못한다.[43] 스틸컷은 최동열 기자를 제외하고 전부 1부에만 나오는 인물들이다. 배우 김영철과 2부에서도 엮이는 최동열역을 맡은 배우 정동환뿐인데 스타일이 영락없는 1부라 야인시대 주인공은 김영철이다를 공표한 셈이다.[44] 세트장은 경기도 선관위 및 부천시 선관위 관할 지역이지만 지리적인 특성으로 인해 인천시 선관위(또는 부평구 선관위)가 왔다.[45] 그나마 이는 쉽게 답변을 할 수 있다. 평범한 성인 남성보다도 신체능력이 떨어지는 눈물의 곡절보단 적어도 졸개쯤은 정리할 실력을 지닌 와싱톤이 훨씬 강하다. 사실 이건 와싱톤이 워낙에 개그캐릭터여서 생긴 오해로, 그는 김영태와 비슷한 짬을 지닌 주먹패로서 건달생활로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반면 눈물의 곡절은 깡패의 비서일뿐 깡패도 아니고 오히려 인텔리라서 일반인들보다 약하니 비교대상이 될 수 없다.[46] 둘 다 김두한과는 우호적 관계의 인물이다. 원노인은 김두한의 은인이고 최동열은 김두한을 돕는 조언자 정도의 위치.[47] 도축업에 오래 종사해 온 이들의 완력과 칼 다루는 솜씨는 어마어마하며 최동열은 일생을 펜대만 굴려 온 인텔리이다. 다만 동시대에 둘 간의 나이 차이가 워낙 나는 점도 감안하면 승부는 미궁 속으로.[48] 2번 문단. 이육사의 동생이다.[49] 해당 노래의 String 버전을 사용했다. 링크 하야시의 처제인 나미꼬와 김두한의 첫 대면 장면에서도 카페 BGM으로 깔린다.[50] 청년기 후반 〈영웅주의〉가 많이 나왔지만 〈야인〉도 간간히 나왔다.[51] 참고로 가사없는 버전은 이미 2화부터 나왔다.[52] 122회부터 마지막회(124회)까지는 예고를 방영하지 않았다.[53] 영턱스클럽의 멤버 임성은이 불렀다. 다만 이때는 본명이 아닌 MIZ라는 예명으로 불렀다.[54] 사실 엄밀히 말하면 이 곡 자체는 시라소니 복수전에서 이석재와의 단독 액션씬에서도 사용되었으며 황금마차 습격사건이 나온 회차(111회)에서 한번 더 쓰였다. 단 오상사가 돼지를 상대할 때는 약간의 리믹스/편집이 추가된 것.[55] 로버트 가르시아의 비연회전각이나 환영각 등을 김두한이 그대로 쓴다. 사실상 김두한이 쓰지 않는 로버트 가르시아의 기술이라고는 용격권패왕상후권밖에 없다. 나머지는, 심지어는 용호난무도 쓴다.[56] 당시 인티즌이라는 사이트의 게임 커뮤니티. 현재는 커뮤니티 부분을 드림위즈에 매각하고, 게임 부분(군주 온라인)은 그대로 남아 엔도어즈가 되었다.[57] 당연히 드라마의 갈치와는 별개의 인물이다.[58] 드라마판에선 정반대다.[59] 사실 이외에도 소설판을 보면 너무 잔인하거나 야해서 드라마에선 삭제된 부분 몆가지가 있다. 대표적으로 장충단 결투 시작전 김두한과 나미꼬가 하룻밤을 보내며 검열삭제를 하는 내용이 있다.[60] 피가 분수처럼 쏟아지려면 그가 할복할 때 쓴 캔뚜껑 가지고는 어림없다.[61] 성우 중 〈야인시대〉에서 가장 많이 출연한 성우는 장경근 역할을 맡은 김강산 성우.[62] 결국 SBS의 주말 특별기획 드라마 부활작은 〈유리구두〉가 됐다.[63] MBC는 〈인어 아가씨〉에 앞서 〈해바라기 가족〉을 내보낼 예정이었지만, 이승연, 이영후, 지수원, 노주현, 도지원, 신애라, 유동근, 전광렬 등의 캐스팅이 실패하여 좌절됐으며, 결국 2002년 11월 4일부터 2003년 1월 30일까지 경인방송에서 월~목 9시 30분에 간신히 편성됐는데 〈야인시대〉 출연자로 참여했던 윤용현, 이영후 등은 〈해바라기 가족〉의 MBC 편성설 당시 캐스팅 물망에 한때 거론됐다.[64] 집필자 이환경 작가가 KBS 1TV 〈태조 왕건〉으로 14회 드라마 부문 수상.[65] 구마적패의 종로 2정목 습격사건으로 인해 등급이 올라갔다.[66] 여기서 알아야 할 것은 〈제국의 아침〉이 2002년 3월부터 2003년 1월까지 방영했고, 〈야인시대〉가 2002년 7월부터 방영했다는 것이다. 〈제국의 아침〉이 끝날 무렵 〈야인시대〉는 1부에서 2부로 넘어가는 중이었는데, 같은 작가 다른 작품에 출연한 완벽한 시기였다.[67] 다만, 최지몽은 실제 낭주 최씨이지만 〈야인시대〉의 최동열은 가상인물이라는 점.[68] 구마적 이원종이 아닌 1944년생 원로배우 이원종.[69] 당시 '임진일'이라는 예명으로 활동했다.[70] 이대로의 아들.[71] 당시 '정태수'라는 예명으로 활동했다.[72] 2020년 1월 31일 《빽드》라는 이름으로 채널명이 변경되었다.[73] 실제로 채팅창에 "이젠 대하드라마가 시트콤으로 보인다", "원본이 합성물들보다 웃기네" 등의 반응이 올라왔다.[74] 대표적으로 박용직이 나오면 채팅창이 대도서관으로 가득찼으며 염동진이 등장하면 벌처로 가득찼다.[75] 자세한 이유를 모르겠지만, MBC마이 리틀 텔레비전 시리즈〉의 인터넷 생방송처럼 형법 제243조, 제33장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44조의 7,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3조 등을 근거로 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정치적 발언을 금지하는 것도 작품 내용의 특성상 정치적 중립을 준수하는 것은 물론 국가보안법에 저촉될 수 있는 내용을 단속하려는 의도로 보인다.[76] 그 외에도 전위대: 북켓단, 홍만길: 리오넬만길, 임화수+곽영주: 'DIE'나믹 듀오, 이석재: 난타클로스, 최동열: NPC, 김상태: 북태우 등 다양한 별명과 드립들이 난무했다.[77] 최종회가 아닌 정해진 시각에 종료를 하다보니 마지막 장면은 시라소니가 동대문파에게 집단 린치를 당하고 병원에 실려가는 장면이 되었다.[78] 여기서 옥의 티가 있는데 부민관 사건은 7월 여름에 일어났는데 당시 촬영배경은 겨울이다.[79] 이 사건도 1월인 겨울에 일어났지만 촬영 당시에는 여름이었다.

분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