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13 19:34:27

야인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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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대하드라마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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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인시대}}}}}} (2002)
野人時代 / Rustic Period
[1]
파일:Yainsidaelogo.png
국내 등급 파일:tv15.png 15세 이상 시청가[3]
방송 시간 월요일, 화요일 오후 10시 ~ 11시 10분[4]
방송 기간 2002년 7월 29일 ~ 2003년 9월 30일
방송 횟수 124회
채널 파일:SBS로고.png
장르 시대극
제작사 SBS프로덕션[5]
기획 차성모
제작지휘 이현석
프로듀서 김형욱
극본 이환경
해설 이강식
조연출 박경렬, 손재성
연출 장형일
출연 김영철, 안재모, 이창훈, 정동환
링크 공식 홈페이지 다시 보기 야인시대 마이너 갤러리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ffffff><#fff><:> 파일:Yainsidaelogo.png
원작 : 등장인물 | 캐스팅 목록 | 작중 사건사고 | 비판 (고증 오류)
합성물 : 본문 (역사, 등장인물) | 내가 고자라니 (동영상) | 4달러
오프닝 : 야인1부 초반 | 영웅주의1부 후반 | 나 사나이다2부
삽입곡 : 전설의 영웅 | 어깨동무 | 희망가 | 황성옛터 ||


1. 개요2. 기획의도3. 내용4. 작가의 의도5. 촬영지6. 비판7. 최강자 논쟁8. 잘못 알려진 것9. 관련 매체
9.1. OST9.2. 학습만화9.3. 게임9.4. 소설
10. 오프닝11. 기타12. 인터넷에서13. 관련 문서
13.1. 등장인물 목록13.2. 작중 사건사고13.3. 참고 문서13.4. 외부 링크

1. 개요

파일:daily020710-2_20020710115120.jpg 파일:야인시대2부.jpg
왼쪽부터 구마적, 미와 경부, 쌍칼, 김두한 (중년 / 청년), 신마적, 최동열 왼쪽부터 황병관, 김삼수, 이화룡, 맨발의 대장, 시라소니, 홍만길, 김두한, 휘발유, 이정재,
정팔, 정진영, 김천호, 개코, 신영균
야인시대! 그렇다.
그것은 바로 가 몸 바쳐 살아왔던 이 나라 격동기의 또 다른 역사의 한 장이었다.

내레이션

SBS에서 2002년부터 방송되었던 시트콤근대 사극/대하드라마. 일제강점기 1924년부터 1945년 광복 이후 대한민국1972년 11월 21일까지의 혼란한 사회를 살다 간 실존인물 김두한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다.[6]

그야말로 한 시대를 풍미한 드라마. 시청률이 최고 57.1%, 평균 30%대나 되는 등, 신드롬을 일으켰으며, 방영 동안은 물론 방영 후에도 부천시 상동 야인시대 세트장은 관광지가 되기도 하였다. 당시 어른들 사이에서의 인기는 물론이고 본방사수를 하려는 중고딩들이 집단으로 야간자율학습을 튀는 바람에 월, 화요일에는 감독하는 선생님을 충원하기도 했고 학용품은 물론 각종 게임에선 학생들을 겨냥한 야인시대 상품(대부분 코트, 중절모 코스튬)을 팔기도 했다. 동시에 수많은 합성에 써먹기 좋은 요소가 노다지로 들어있는 작품이라 과거 디시인사이드의 인터넷 문화 최전성기를 이끌었던 합필갤이 주도했던 영상합성 문화의 뿌리가 되는 작품이다.[7]

그 인지도와 인기는 종영한지 16년이 지났는데도 대단한 수준으로, 당장 나무위키에 개설된 관련 개별 문서의 숫자와 양만 보아도 이 야인시대를 능가하는 드라마는 없다고 할 정도다. 내가 고자라니, 사딸라, 똥이나 처먹어 등의 명단어 명대사가 여전히 인터넷 유행어로서의 생명력을 가지고 있고 현재 2019년에도 계속해서 패러디물이 만들어지고 있으니 그야말로 살아있는 전설이라 불리울만 하다.[8]

본디 초반부엔 안재모의 액션활극이 중심이 되어 인기가 폭발적이었다. 매일 악당의 부하, 두목을 쓰러뜨리는 김두한의 모습이 마치 울트라맨이나 가면라이더 같은 특촬물스러웠는지 본래 사극 시청자층과는 거리가 먼 어린이들에게도 많은 인기를 끌었다. 필살기는 김좌진 장군의 회상. 2003년 당시 겨우 초등학교 1, 2학년 학생들[9]도 "나는 김두한이다! 나는 시라소니다!" 하고 다녔었다. 이들은 2019년 기준 20대 중반이 되어 지금은 심영물이랑 김두한 합성물을 보며 희희낙락하게 된다.[10] 드라마가 방영될 당시에는 1부가 2부보다 훨씬 인기가 있어서 시청률은 1부가 훨씬 높았다.

2부에서는 김영철이 김두한을 연기했다. 시점으로는 광복 직후부터, 이때 뒤돌아보는 신에서 충격받은 사람이 엄청나게 많았다. 왜냐하면 광복 당시 김두한의 실제 나이는 28세였는데, 야인시대가 1부에서 2부로 넘어갈 무렵의 안재모는 25세, 김영철은 51세였기 때문. 게다가, 장년기의 정진영(차광수), 개코(성동일)[11], 이정재(김영호)[12] 등을 맡은 배우들은 당시 30대 후반이라 당시 큰 위화감이 없었던 것도 시청자들이 받은 큰 충격에 한 몫했다. 2부 개시와 동시에 김영철로 바뀌는 것이 아니라 김두한이 아직 젊었던 시기인 미군정기에서 한국전쟁까지는 안재모가 계속 연기하다가 1954년 정도를 기점으로 해서[13] 김영철로 바뀌는 것이 시청자들에게는 좀 더 쉽게 받아들여졌을 것이다.[14][15]

하지만 야인시대 1부와 2부는 애초 기획부터 시대 배경, 등장 인물[16], 극의 방향점과 분위기 등 많은 부분에서 너무나도 다르게 설정되었기 때문에[17] 김영철의 비중을 줄이면서까지 안재모를 해방 이후의 배역으로 내세우기가 애매했다고 했다. 그렇다고 많이들 바뀌는데 주인공이 안 바뀌기도 좀 그러니… 1부와 2부는 같은 이름의 다른 드라마라는 말도 아마 연기자의 무게감 차이 때문일지도. 그래도 몇 년 후라는 이야기도 없이 그 시점에서 갑자기 나이를 먹고 배우가 바뀌어버리면 어색할 수 밖에 없는 점은 어쩔 수 없긴 하다.

다만, 골수팬들 사이에선 2부가 더 재밌다는 의견도 많다. 또 당시 학생이었던 사람들이 성장하고 나서 '어렸을 때는 잘 몰랐는데 정치싸움이 주먹싸움보다 훨씬 치열하다는 걸 알고 나서 2부를 재평가하게 됐다.' 라는 의견이 자연스레 많아진 것도 있다. 세월이 흘렀어도 여전히 이야깃거리나 합성 패러디물 등으로 이 드라마의 생명력을 유지해 온 데는 2부의 공이 훨씬 크며 인지도도 역전된 상태다. 드라마로서 전무후무한 굉장히 특이한 케이스.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부터 광복까지가 1부고, 광복 이후부터 자유당 집권 말기인 4.19 혁명 및 5.16 군사쿠데타 직후 제3공화국의 출범, 그리고 유신헌법 투표일(김두한의 사망일)까지가 2부.

2. 기획의도

우리 근대사에서 당대의 모순이 가장 첨예하게 대립된 지점에 놓여 있던 인물 김두한
독립군 총사령관인 김좌진의 아들로서 일제시대를 살았고
좌·우익의 극한 대립의 한복판에 존재하고 있었으며

독재 대 민주의 치열한 정치투쟁의 현장에 속해 있었던 김두한을
심층적인 접근으로 '인간' 김두한을 그린다

또한 그가 살았던 시대의 진실을 또다른 각도에서 드러낼 것이다

3. 내용

요약하자면 1회~8회는 김두한의 어린 시절, 9회~50회는 일제시대 하 청년 김두한(안재모)의 일본에 대한 저항, 51~76회까지는 미군정 하 해방 직후 절친이던 김두한과 정진영의 이념 대립, 76~90회까지는 이념 대립에 따른 좌우익 싸움과 6.25 전쟁, 90회~124회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김두한의 정치인생과 명동 VS 자유당의 힘을 업은 동대문의 싸움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100회 정도를 지나면서 사실상 극중 중요한 일은 거의 다 동대문의 이정재, 임화수, 유지광과 이기붕, 곽영주 위주로 나온다. 김두한은 자유당과 이정재의 동대문파가 난동을 부리면 신문으로 그 소식을 접하고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하고 탄식하는 역 정도.

2부는 (51회 ~124회) 1부의 화려한 액션 느낌은 많이 퇴색되고 정치적인 싸움이 중심이 되기 시작하는 바람에 인기가 반토막으로 떨어졌다. 특히, 2부 파트 중 대부분은 정진영과 김두한-자유당, 이정재와 김두한, 명동파의 파벌 싸움을 묘사하는 데 할애되어 있어서 화려한 액션의 재미는 반감되고 애초에 그 시대가 정치적으로 상당히 혼란스러운 시대였기에 비장함과 무거운 분위기가 다소 루즈함이 느껴졌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1부에서 한때 40~50%대의 높은 시청률을 거둬서 인기가 하락했어도, 평균 20~25% 정도의 괜찮은 시청률을 기록하긴 했다. 장년층들에게 나름 추억물 드라마로도 인기가 있었던 듯하다.

그렇지만 지금은 2부가 1부보다 내용면에서 고평가받는다. 합성물의 주 내용이 모두 2부 시점이라는 사실을 생각해보자. 2부도 인기가 아주 바닥까지 떨어졌던 건 아니다. 당장 위 문단에서부터 어린이들이 흉내냈던 인물이 김두한과 시라소니였는데, 시라소니는 1부에 없었다가 2부에 등장한 인물이었다.

2부 초중반, 즉, 공산당이 주된 악역인 파트에서 작중 비중있게 등장하던 주연들이 대부분 죽어나간다. 제일 먼저 김무옥이 죽고 또 얼마 못 가서 개코가 죽는다. 그리고 우미관패의 배신자이자 공산당 파트의 최종 보스라고 할 수 있는 정진영의 죽음은, 알다시피 본작에서 손꼽히는 비극적인 장면이다. 그나마 오래 살아있었던 문영철도 6.25 전쟁통에 결국 전사한다.

사실 새드 엔딩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 주요 등장 인물 대부분이 영 좋지 못한 결말을 맞이했다. 김두한은 국회 오물 투척사건 이후 옥고를 치르면서 몸이 매우 쇠약해졌다. 때가 때인지라 김두한은 중정에 끌려가서 수난을 당했다. 이종석 교수가 어느 강연회에서 말한 걸 옮기자면 희대의 협객도 중정에 끌려간 후 흐물흐물해져서 생을 마감하게 된다는 것. 그리고 일제시대 파트에서는 김두한이 표면상으로나마 일본에 저항하였고, 그 과정에서 일본 헌병대에 본인과 부하들이 고문당할 때 번개가 전기고문으로 인한 감전사로 죽었고, 와싱톤 역시 김두한의 자수로 인한 석방 이후 조용히 우미관패를 떠났다.[18] 그리고 우미관패 두목인 김두한이 정치에 입문하면서 해산하였던 우미관패 사람들은 김두한이 따로 지원을 해줄 형편이 못 되어 사회의 최하류계층으로 떨어저 병사(신영균[19]), 알콜중독으로 인한 병(김관철[20], 홍만길[21])과 정신병원(휘발유[22], 아구), 자살(갈치), 이민(김영태), 군부에 의한 체포 및 재판(김삼수[23])등, 좋지 않은 결말을 맞게 된다.[24] 또한 김두한 역시 이후 사기를 당하게 되어 처지가 곤란해지고 고혈압과 심근 경색이 악화되어[25] 1972년 11월 21일, 길거리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된다. 장례식 때 우미관 원년멤버 중 휘발유만 등장한 것으로 보아, 한국에 남아있던 원년 우미관패 중에선 휘발유만 생존했거나 적어도 움직일 수 있었던 상태였던 것으로 보인다.[26]

그의 장례식에 참여한 최동열 기자는 김두한이 활약했던 시기를 되짚어보며 그것이 바로 야인시대라는 말과 함께 드라마는 마무리된다. 참고로 최동열 기자는 작가의 극중 개입용 캐릭터로, 김두한보다는 20살 남짓 많다. 흔히 김두한보다 30~40살 정도 많다고 오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정동환 씨가 최동열의 학생시절부터 연기를 하다보니 생긴 오해다. 실존 인물이었다고 해도, 70대 중후반 정도였을 것이다. (사망 당시 김두한은 향년 55세)

다만, 김두한 패거리 대부분이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는 것은 드라마의 창작이며[27], 실제 역사에서는 김두한, 문영철, 김무옥, 정진영을 제외한 대부분이 요절하지 않고 천수를 누린 뒤 세상을 떠났다.

4. 작가의 의도

야인시대 제작진은 원래 2부에 중점을 둬서 촬영하려 했고 1부는 2부를 이끌어 줄 기본 인기를 확보해서 탄탄한 인기를 바탕으로 2부를 시작하기 위해 만든, 일종의 장치였다. 야인시대의 대본작가가 원하는 방향은 싸움꾼 김두한이 아닌 정치인 김두한을 보여주려 했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정치 얘기를 하면 시청률을 얻기가 어렵기에[28] 야인시대 제작진은 1부는 오직 인기를 얻기 위한 작업만으로 전념했고 그렇게 1부에서 얻은 인기를 어느 정도 2부로 끌고 가려 했었고 그래서인지 2부 초반까지도 액션이 제법 나온다.
파일:daily020710-2_20020710115120.jpg
1부 포스터.
1부의 인기를 2부로 이어가기 위해서 1부의 스틸컷에는 2부에만 등장하는 김영철이 등장한다. 그러니까 1부 스틸컷이 좀 이상한 게 김두한이 2명(안재모, 김영철) 나오는데, 김영철 버전 김두한을 굳이 1부 스틸컷에 등장시킨 것은 진짜 야인시대의 주인공은 김영철의 김두한이라는 것을 각인시키기 위함이었다. 2부 김두한이 이 스틸컷의 정중앙에 서 있는 것은, 전술한 작가의 의도를 이 스틸 컷 한 장에 고스란히 담은 것이었다.

작가의 의도는 국회 오물 투척사건을 1화 첫 장면에 넣은 것으로도 알 수 있다. 만약 김두한의 주먹 세계를 중점으로 다룰 것이었으면 이미 종로의 오야붕으로 군림하여 거기서 과거로 돌아가는 식으로 장면을 집어넣어도 되었다. 하지만 정치사에 김두한이란 이름을 강하게 남기게 한 국회 오물 투척사건을 둠으로써 김두한의 정치 인생을 주된 내용으로 다룰 것을 암시한 것이다.

그러므로 1부는 에피타이저이고 2부가 메인 메뉴인 것이다.

따라서 1부는 장군의 아들처럼 액션 활극 위주로만 진행되었고 김두한을 중심으로 액션을 이끌어나가기 위해 실제로는 맞붙지도 않은 김두한 vs 신마적을 비롯해서 주요인물들 과반수가 김두한과 현피로 맞붙도록 묘사했다. 당연히 팬들은 열광했다. 이는 야인시대가 MBC 드라마 복수혈전 이래로 최고의 액션 드라마로 각광을 받는 요소로 크게 작용했고 야인시대 제작진이 처음에 의도했던 대로 흘러가는 듯했다.

그래서 2부는 한국전쟁 전까지는 여전히 액션이 중심이 되어 드라마가 진행되었으나, 한국전쟁 전후로 김무옥과 문영철이 퇴장하고 그 이후 김두한이 국회에 입성하면서 파이터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한다. 문제는 이 야인시대를 순수하게 액션 하나 때문에 보던 시청자들이 대부분이었던지라 이 과정에서 시청률이 꽤나 줄어든다는 점. 때문에 김두한이 국회에 입성한 2부 후반부터 과거의 영광을 무색케 할 정도로 시청률이 처참하게 떨어지게 된다.

그로부터 몇 년 후. 야인시대의 제작진들이 상상조차 못했던 일이 벌어지게 된다. 바로 내가 고자라니로부터 시작된 야인시대 합성물의 유행.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심영의 내가 고자라니가 크게 회자된 것을 시작으로 야인시대는 인터넷에서 역주행을 하게 된다. 이 파급효과는 대단했는데, 야인시대 합성물이 크게 범람하면서 결국 지상파에도 크게 영향을 끼치게 되었으며 푸른거탑 등에서 계속 패러디가 되었다. 현재는 고자라니가 시발점이 된 합성물 때문에 되려 2부의 인기가 압도적이다. 이는 야인시대 대본작가에게 뜻하지 않은 호재로 작용했다. 사실 고자라니의 인기에 힘입어 재주행하는 시청자가 말하길 특촬물 같은 1부보다 정치 스릴러극인 2부가 더 재미있다고. 실제로 2부에서 또 다른 인기요소는 4딸라고, SBS 다시 보기 홈페이지에서도 저 주요장면들을 썸네일로 쓴다.

5. 촬영지

부천에 30년대 종로거리 재현…SBS드라마 ‘야인시대’ 세트장 - 2002년 3월 3일 동아일보 기사

드라마 야인시대의 촬영을 위해 SBS는 2001년에 대규모 오픈세트장을 건설할 것을 계획하였는데, 부천시에서 22억의 자금을 전액 지원하여 부천 상동에 건설되었다. 2002년 3월 5일에 개장한 야인시대 세트장은 메인건물인 화신백화점 세트장과 함께 우미관종로경찰서는 물론, 청계천 움막과 수표교, 원노인의 설렁탕집인 사동옥, 김두한 패거리들이 자주 드나드는 술집인 종로회관, 나미꼬가 운영하는 카페인 사쿠라 카페, 그리고 백병원(!) 등의 건물이 설치되었고, 1930년대 종로거리를 다니던 전차 2량을 제작하기도 했다. 세트장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화신백화점 건물과 전차 2량이 다니는 종로거리의 풍경은 이 세트장의 특징이자 대표적인 풍경인 셈.

방영 당시 야인시대 출연진들이 인천시 선관위의 주도로 대통령 선거를 홍보했다.[29] 후에 야인시대 세트장 옆으로 하류인생태극기 휘날리며의 세트장이 설치되면서 부천 판타스틱 스튜디오라는 명칭으로 규모를 확대하기도 했었다. 부천시 야인시대 세트장은 야인시대 방영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는데, 애초에 오픈세트장으로 설계되어 일반관람이 가능했고, 드라마의 인기와 함께 지리적인 이점으로 부천시의 대표적인 관광지가 되기도 했었다.

그러나 드라마 종영과 함께 인기가 시들해진 영향에 원래 세트장이라는 특성상 콘크리트로 지은 영구건물이 아니라 목조로 만든 가건물이 대다수였으므로 빠르게 노후화되면서, 태풍피해와 화재 등으로 인해 2012년 3월을 끝으로 철거되어 캠핑장으로 조성되었다. 캠핑장이 되고 나서도 '야인시대' 라는 명칭은 유지하여 야인시대 캠핑장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부천도시공사 야인시대 캠핑장 이용안내

세트장을 철거하면서 기념비석을 세웠고, 당시 촬영 세트장 일부였던 전차와 보신각, 혼마치 입구 간판을 남겼다. 한국만화박물관 뒤편 한옥마을과 그 일대 농지근방 (부천 문화동산)이 원래 세트장의 위치였던 것. 전차 2량은 인근에 위치한 부천시 한국만화박물관 입구로 이전설치되었고, 2018년 초에도 혼마치 입구 간판 등이 흔적으로 남아있는 모양이다.

토이스타에서 신제품 홍보이벤트로 2004년도에 이곳에서 서바이벌 게임을 개최해 당시 서바이벌 게임 유저들에게 화제가 되었다.

6. 비판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야인시대/비판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7. 최강자 논쟁

김영인 VS 김영철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야인시대/최강자 논쟁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8. 잘못 알려진 것

구마적, 마루오까, 김영태, 박인애 등, 실제인물 사진이라며 인터넷에 유포되기도 했는데 잘못 알려진 내용은 아래와 같다.

실제 김두한의 정신적 지주는 부친 김좌진이다. 마루오까라는 인물 사진은 한호산이며 첫사랑이라는 인물사진은 본처 이재희다. 구마적이라는 인물 사진은 이원조[30]이며 박정희와 찍은 사진을 비롯해 권력과 손잡았다는 사진은 1962년 3월 1일, 건국훈장 수여 뒤에 박정희를 비롯한 여러 인물들과 찍은 기념사진이다. 마지막으로 부인과 함께 찍었다는 김영태의 사진은 1944년 부인과 함께 찍은 최영의다.

무엇보다도 심영은 고자가 아니었다. 상하이 조가 아닌 김두한에게 하복부를 맞은 것뿐이며, 김두한의 자서전을 각색한 야인시대에서 이환경이 직접 각색한 내용 중 하나다.

9. 관련 매체

9.1. OST

강성이 부른 주제가(야인)는 청년 파트에서 싸움할 때 자주 흐르던 곡이라 그런지 이후 각종 매체에서 싸움하는 장면이 나오면 이 노래가 나오기도 했다. 초반에는 가사가 없는 연주곡만 나왔다. 김두한이 한창 세력을 키우던 도중 술에 취해 구마적의 부하들에게 털릴 때도 이 노래가 나오는데 주인공 일행이 얻어맞는 장면에서 주제가가 나오니 기분이 묘하다. 보통 그런 분위기의 장면에서는 Arielle Dombasle의 'odysseus' 가 나왔다.[31] 참고로 '야인'은 한 회차당 절대로 두 번 이상 나오지 않으며, 김두한 외의 다른 인물의 결투 장면에선 나오지 않는다. 이 때는 2대 주제가라 봐도 되는 영웅주의나 전술한 'odysseus'[32]가 나온다.

2부에서는 나 사나이다가 주제가로 바뀌었으며, 굳이 김두한 결투 장면이 아니더라도 결투장면에선 어지간해선 나오며 야인과는 달리 한 회차당 몇 번이고 나온다. 차이점이라면 가사가 있고 없고의 차이. 후반부에는 거의 연주곡만 나온다.

이외에도 같은 주제를 바탕으로 변주된 여러 테마들이 있었지만, 음악에 참여한 작곡가들이 자료가 담긴 하드디스크를 분실하며 아쉽게도 시리즈 사운드트랙 상당 부분이 소실되었다고 한다. 그 와중에 음악감독 이혁준 본인이 2013년 사비를 털어서 미발표곡들이 담긴 사운드트랙 앨범을 발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본인은 저작권료를 얼마 받지도 못했고, 야인시대 음악들은 알아도 작곡가 이름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는 게 아쉬운 부분. 그나마 이후 평창의 꿈으로 유명세를 많이 올린 것이 불행 중 다행.

9.2. 학습만화

특이하게도 학습만화로도 나왔다. 그러나 내용은 전혀 딴판에 생략에 알 수 없는 일 투성이. 전형적 양산형 학습만화에 가깝다. 막말로, 돈에 눈이 먼 출판사가 흥행에 편승하기 위해서, 평생 주먹질이나 하면서 깽판치고 다니던 사람을 가지고 위인전 비스무리한 학습만화를 뽑아내는 뻘 짓을 한 것.

내용은 광복 이전의 소년기와 청년기 김두한 일생기를 다루고 있으며 드라마 2부에 해당되는 광복 이후 이야기는 마지막 장에서 간략하게 다룬다. 당연히 심영은 나오지도 못했다.

9.3. 게임

게임 리뷰

2003년에 드라마 1부를 바탕으로 제작된 PC 패키지 게임. 제작사는 아트록스로 악명 높은 조이맥스.

드라마와는 좀 다르게 젊은 시절의 시라소니도 등장한다. 그 시절은 하얀마음 백구가 대박이 난 이후 아동용 벨트스크롤 액션게임 장르 붐이 일었던 시기인데, 이것역시 그러한 유행에 편승하여 양산된 게임으로, 출시 전부터 "시대에 역행한다"[37]며 많이 까였고 출시 후에도 절대 부족한 게임성 등으로 여러 혹평을 받으며 흑역사가 되었다. 게다가 게임 내에 나오는 캐릭터의 스프라이트 그래픽 등을 다른 일본 액션 게임에서 그대로 따오는 등, 표절 행태까지 보여 더더욱 질타를 받았다. 특히 김두한은 아예 복장, 기술 등, 대놓고 꽁지머리만 없는 로버트 가르시아다.[38]

까일 만한 요소에 대해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 부족한 게임성 - 들 수 있는 무기가 없다. 작중에서도 가미소리 패거리와의 결투 빼고 든 적이 없지만서도. 아이템도 별로 없었다.
  • 캐릭터 표절 - 위의 각주 참고.
  • 뜬금없는 스토리 - 어디가 습격을 받았다→거기로 간다→공격한다. 끝. 중간에 이벤트 영상 그런 거 없다.
  • 패치가 패치가 아니다 - 패치라고 했더니 기껏 미와가 나오는 스테이지 하나만 추가해 놓았다. 그 외에는 미와 경부의 캐릭터나 공격에 대한 디자인이 장난 수준이다. 권총을 쏘는데 페이크 공격으로 태극기가 나온다든지 고개 돌리고 주먹을 휘두르거나 물건을 던져댄다든지… 이거 80년대 게임 아니다. 또한 이 패치 파일에는 웜 바이러스가 감염되어 있었기도 해서 답이 없다(...)

그러나 호쾌한 멜로디의 하드락을 중심으로 한 배경음악만큼은 좋은 평가를 받는다. 잠뿌리의 리뷰에서도 배경음악에만큼은 '돼지 목에 진주' 라는 평가를 내렸을 정도. 이 배경음악들은 Studio EIM이라는 업체에서 제작했는데 이 업체는 이후 국내 굴지의 게임 음악 업체가 된다. 문서 참고.

영어판 위키피디아에는 드라마 문서 대신 이 문서만 작성되어있고 영어로 검색하면 구글 이미지 검색에도 드라마 관련 사진보다 게임 스크린샷이 더 많이 뜨는 등 드라마 야인시대의 인지도가 전무한 외국에서는 오히려 게임을 아는 사람이 더 많다. 하지만 이후 2016년 5월 12일에 드라마 문서도 만들어졌다.

차라리 김두한과 주먹패들 자체를 다룬 게임을 하려면 본작보다는 1990년대에 FE사에서 제작한 야화1을 하는게 훨씬 낫다. 게임 난이도가 높다고 알려져있으며 이쪽은 경영적인 요소가 많지만 전투 역시 벨트스크롤로 진행된다.

그 외에 겜티즌[39]이라는 사이트에서 만든 플래시 게임이 있다.

다른 게임으로 심영의 모험, 심영의 모험 2, 하스피탈스톤도 있다

9.4. 소설

작가가 쓴 소설도 있으며 7권까지 출판되었다. 다만 엄청난 인기를 끈 드라마와 달리 딱히 존재감이 없다. 게다가 구하기도 어렵다. 내용은 드라마와 비슷하나 차이점도 많다.

10. 오프닝



11. 기타

일단 컬트적인 부분에서 대한민국 드라마사(史)에 엄청나게 큰 한 획을 그은 드라마이다. 인터넷 상에서는 온통 야인시대 합성물이 도배를 하고 있으며 이게 지나칠 정도로 심해서 야인시대에 출연한 배우들의 다른 작품까지 합성대상이 되어 야인시대 합성물에 포함되었는데 어른 김두한 역의 김영철이 배역한 태조 왕건의 궁예,[40] 상하이조 역의 조상기가 배역한 미지왕의 왕창한, 신마적 역의 최철호가 배역한 천추태후의 경종과 불멸의 이순신의 선조와 대왕의 꿈의 비담, 김좌진 역의 최동준이 배역한 여러 배역들, 심영 역의 김영인의 모든 다른 작품들 등이 이에 해당된다.

2004년, 몽골에서도 방송되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여 김두한의 담당 배우 안재모가 나차긴 바가반디 당시 몽골 대통령에게 국빈 초청을 받기도 했다. 심지어 몽골에 김두한이라는 이름의 식당까지 생겼다고.

일본 KNTV에서도 야인시대: 장군의 아들 김두한(野人時代 -将軍の息子 キム・ドゥハン)[41]이라는 제목으로 2008년 5월부터 2009년 7월까지 인기리에 방송되었고 2010년에 DVD 수출까지 되었다. 일본 측에선 자국의 정서와 많이 동떨어진 작품이라 흥행하지 못 할거라 여겼는지 일본어 더빙없이 자막으로만 방영했다.[42]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상당히 선방했다.

북한에서도 중후반부의 반공성에도 불구하고 몰래 보던 주민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43]

하지만 안재모는 이후 일본에서 가수로 활동하려고 5년 동안 준비했으나 소속사와의 분쟁으로 계약 기간 10년 동안 활동하지 못했다. 그리하여 진출하려고 했던 일본은 물론 야인시대로 올라간 인지도가 잊힌 이름이 되어버렸다. 일본에서 앨범도 내고 가수로도 활동하려고 했건만… 이후 내리막길을 걷다가 2014년에서야 정도전에 이방원 역으로 출연하면서 재기의 불씨를 틔웠다. 또한 메인 OST를 부른 가수 강성은 원 히트 원더로만 기억되면서 배우로 전향, 간간이 드라마에 출연하다가 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을 통해 재조명되었다.

네이버 지식인드래곤볼 다음가는 VS놀이로 미와 Vs 왕눈이, 박인애 Vs 설향, 와싱턴 Vs 눈물의 곡절(오민섭) 등등 별별 해괴한 질문이 올라오기도 한다. 심지어 원노인 Vs 최동열[44]도 존재한다.[45] 이런 장난성 질문을 제외한 vs 질문놀이들은 종영한지 10년이 넘은 2014년에도 수시로 올라온다! 심지어는 5년 전 글에서 키배를 뜨기도 한다. 지식인 문서에도 있는 8년 키배는 이미 전설.

또한, 지식인을 잘 검색해보다 보면 원래 없는 내용을 있다고 주장하는 유저들도 가끔 있다 예를 들면 극중 나온 고대생 습격 사건에서 김두한과 함께 일하던 학생인 이찬오가 동대문패와 싸워서 이겼다고 하거나 맹수파라는 없는 조직을 만들어내는 등.

부작용이라면 사실 드라마상 각색된 건달들의 일화를 실제인 것인 양 믿는 바람에 그들의 미화되거나 영웅화된 내용을 고대로 믿는 사람들이 나타나게 되었다는 것. 그 때문인지, 이제는 시시해서인지 이 이후로는 조폭미화물들이 줄줄이 퇴짜신세가 되었다.

드라마 방영 당시 전국의 각급 학생들 사이에서는 '야인시대 놀이\'가 유행한 적이 있다. 룰은 가지각색이지만 대표적으로 여러명이 빙 둘러싸고 극중의 싸움 장면을 재현하거나, 단체로 패싸움 시늉을 하는 심플한 것이다. 가끔씩 신문지를 말아 일본도라 하며 혼마찌 패거리를 흉내내는 이들도 있었다. 그런데 그냥 싸우는 시늉하면서 노는 거라면 모를까 2003년 광주에서 중학생 15명이 드라마를 모방하여 패싸움한 사건이 일어났다.

BGM이 왠지 묘한 장면들이 몇 있다. 대표적인 경우로 이승만의 3선 출마 결의와 선언 장면은 엄연한 자유당과 이승만의 독재를 담는 장면임에도 불구하고 나오는 배경음은 희망찬 느낌이 강하다. 자유당 당원들이 이승만에게 대통령 출마를 설득하느라 온갖 수를 다 쓰다가 이승만이 '그래, 그럼 출마할 수밖에' 라고 결정하자 자유당 당원들이 기뻐하고 환호하는 장면이어서인데, 사실 이 드라마에서 자유당은 악역이기 때문에 배경음이 좀 묘하긴 하다.

방영 당시 서대문 개고기 김이라는 단역 배우의 NG 퍼레이드가 화제였다. NG가 계속될 때마다 나오는 이원종의 반응도 백미.

정동환은 극중 최동열 기자로 야인시대에서 김두한 역의 안재모를 취재했는데, 재미있게도 2010년 방영된 KBS드라마 자유인 이회영에서는 안재모정동환의 배역이 바뀌어서 안재모가 기자로, 정동환이 인터뷰이(interviewee)로 나오게 되었다.

총기 고증에 오류가 있다. 극중에 베레타 92 모델이 등장하는데 이 권총이 처음 공개된 시기가 김두한이 사망하던 1972년이라 드라마의 시대적 배경(1930~60년대)과는 맞지 않다. 뭐 지나가는 장면에 잠깐씩 나왔던 데다 총덕들이 아니면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 부분이기에 대부분은 잘 모를 것이다. 6.25 전쟁과 김동진을 습격하는 장면에서 나온다. 그리고 유년시절의 김두한이 원노인과 함께 아버지 김좌진 장군을 만나러 가던 도중 마적에게 쫒길 때에도 마적들이 당시(1920-30년대)에 등장하지도 않았던 MP40 기관단총을 들고 등장한다. 유명한 사딸라 장면에서도 김두한과 김종원이 서로 권총을 겨눌때 나오는 총이 CZ75다. CZ75는 김두한이 사망한 후인 1975년에 처음 등장했다.

2부 들어선 아무래도 정치적인 사건들이 주로 등장하므로 나레이션이 계속 등장하여 여러 사건을 해설하거나, 사건에 대한 여러 역사가들의 의견이 분분하다는 걸 설명해주기도 하는데, 나레이션의 십중팔구는 '그랬다' 로 시작하여 '○○했던 것이었다', '○○했다고 한다' 로 끝난다.

성우들이 일부 출연하기도 했는데 제일 강렬했던 것은 일본 총독 미나미 지로를 맡았던 오세홍과 젊은 시절 김영삼을 맡았던 정명준. 그리고 훗날 반란군 때려잡는 장군으로 열연했던 김기현(박인애의 친일파 아버지)과 서윤석(공산단 사상검증관), 이주창(공산당으로 위장한 김기홍과 동석한 사람) 또한 출연하였다. 특히 미나미 지로를 더빙한 오세홍은 후덜덜 그 자체(출연은 30화). 사실 목소리 출연인데, 실사 배우와 전혀 다르게 생겼음에도 직접 출연했다고 잘못 알려져 있다. 얼굴이 잘 알려지지 않았을 때 퍼진 오해인 듯. 오세홍 성우 출연영상1, 오세홍 성우 출연영상2 참고로 두 번째 영상 후반에 김기현의 출연분량도 있다.

그리고 출연배우 중에는 실제 부자(父子)지간, 모자(母子)지간, 부녀(父女)지간인 경우도 있었다.
  • 부자(父子)지간 : 고노에役(남일우) - 곽영주役(남성진), 백의사 염동진役(이대로) - 김윤도 검사役(이지형)
  • 모자(母子)지간 : 정진영의 어머니役(배미자) - 갈치役(강민호(당시 강성하))
  • 부녀(父女)지간 : 2부의 홍만길役(정일모) - 백장미役(정소이)

이 작품의 외주제작사인 SBS 프로덕션은 작가 이환경이 쓴 KBS 1TV 용의 눈물이 끝난 뒤 이환경을 1999년 스카우트하여 KBS 1TV 대하사극과 경쟁하기 위해 주말 특별기획 드라마로 편성할 예정이었으나 이환경과 KBS와의 관계가 끝나지 않자 무산됐다.[46] 이후, <야인시대>는 뒷날 사극 여인천하 후속으로 편성될 예정이었는데 다른 점이 있다면 <여인천하>가 SBS 자체제작이었던 것과 달리 <야인시대>는 SBS 프로덕션 외주제작이었다.

하지만, <야인시대> 외주제작사인 SBS 프로덕션 측은 이 작품이 100회나 되는 긴 드라마인 데 이어 MBC, KBS의 미니시리즈와 맞붙게 될 경우 편성상 불리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에 주말 특별기획드라마로 되돌렸지만 당시 이환경 작가가 집필하고 있었던 KBS 1TV 대하사극 제국의 아침과 같은 시간대에 방송되어 한 작가의 드라마가 다른 채널을 통해 동시 방영되는 전례 없는 상황이 발생된다는 이유 탓인지 <여인천하> 후속 월화드라마로 기획된 미니시리즈 라이벌과 편성을 맞바꿨다.

이환경이 작가를 맡은 태조 왕건에서 출연했던 배우들이 야인시대에 다수 등장했다. 야인시대에 등장한 배우들 다수가 사극이나 정치 드라마에 자주 출연하였기 때문에, 태조 왕건을 본 시청자들에게 익숙한 얼굴들이 야인시대에도 보일 수 밖에 없던 것. 왕건 초반부에 등장했던 인물들이 주를 이루는데 왕건에서 궁예 역을 맡은 김영철은 말할 것도 없고 이석재 역의 손호균은, 기훤의 부하장수 원회 역으로, 염동진 역의 이대로는 도선대사 역으로, 이억일 역의 이광기는 신검 태자 역으로, 조병옥 역의 김학철은 박술희 역으로, 사고야마 역의 이원발은 환향식 역으로, 박헌영 역의 임병기는 신덕으로, 단게 경무국장 역과 유지광의 절간 스승 역의 기정수는 후백제의 파달 장군 역으로, 이만섭 역의 정국진은 왕식렴 역으로 등장한다. 이 외에도 조역과 엑스트라 중에 전작 태조 왕건에 등장했던 인물들이 꽤 많다.

그리고 태조 왕건에 묻혀서 그렇지 태조 왕건과 야인시대 중간에 낀 제국의 아침에도 출연한 배우들 역시 찾아보면 많다. 대표적인 예가 최동열 역의 정동환. 제국의 아침에서는 최지몽 역으로 후반부 광종에게 숙청당할 때까지 계속 출연했고, 야인시대에서는 말할 것도 없이 전회차 출연했다.[47] 공교롭게도 둘다 최씨다 염동진 역의 이대로는 서필 역으로 출연했고, 또한 위에 부자지간이라고 써놓은 4명 중에 남성진을 제외하고 전부 제국의 아침에 출연했는데 고노에 역의 남일우[48] 는 김악 역으로, 김윤도 역의 이지형은 최승로 역으로 출연했고, 김후옥 역의 송금식은 장단설 역으로, 사고야마 역의 이원발은 우장군 역으로, 박헌영 역의 임병기는 최행귀 역으로, 이만섭 역의 정국진은 대종 왕욱으로 출연했다. 이외에도 많고 바로 위의 태조 왕건 문단부터 잘읽어보면 태조 왕건부터 제국의 아침, 야인시대까지 같은 작가 다른 작품에 3연속 출연한 배우들을 찾을 수가 있다.

정영숙, 고두심, 전미선 바로 이 세 명은 당시 동시기에 방영됐던 어떤 임모 작가가 탄생시킨 M본부 레전설격의 복수극 드라마에 역시 같이 출연한다.

제 16회 한국방송작가상 드라마 부문 최종 후보에 한때 거론되었으나 "작가가 심사위원으로 임명된 작품은 수상이 불가피하다", "한번 드라마 작가상을 받은 작품은 재수상이 불가능하다."[49]는 규정에 걸려 탈락했다.

2018 국민의 선택에서는 "서울시대"라는 바이폰으로 패러디되었다. 야인시대를 패러디해 서울시 각 자치구별 투표율, 실제 개표에서는 서울시장 각 자치구별 개표상황을 전한다. https://youtu.be/fcGIv7S_E5I

유일하게 야인시대 21화만 19세 이상 시청가였다. #[50] 혹시 다른 화도 있다면 추가 바람

이 드라마부터 SBS의 드라마는 모든 지역민방에서 볼 수 있게 되었다.

12. 인터넷에서


한동안 맹위를 떨치던 조폭미화물이 사장되고, 야인시대 역시 '그때 그 드라마'로 잊히는 듯 했다. 그러나 종영된 지 몇년 후 디씨인사이드에서 심영내가 고자라니 소스가 발굴되는 바람에 과거의 명작 드라마들보다 더한 인지도를 얻는 것에 성공하였다. 이런 이유로 청년 시절 안재모 파트보다 중년 시절 김영철 등장 파트가 더욱 유명해졌다.[51]

인물별로 합성대상을 분류하자면 제일 먼저 심영이 고자라니로 시작, 김두한의 4달러가 발굴되면서 합성의 명맥을 이어갔다. 이후엔 야인시대 2부 전체가 소스화되면서 심영과는 접점이 없는 조병옥, 시라소니, 이승만 등도 나오기 시작했다. 심지어 드라마 종영 직전에나 등장하는 박정희도 이 대열에 합류했고, 얼굴 없는 나레이션 양반마저 추가되는 기염을 토했다.[52] 그러니까 야인시대 2부의 등장인물이라면 너도나도 추가되는 셈이다.

심영 소스를 밀어주던 합필갤이 망하면서 합필갤과 더불어 오래 못 갈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유튜브로 활동 무대를 옮긴 영상 제작자들의 힘으로 인해 생존에 성공했다. 오히려 디시에서 유튜브라는 양지로 나오는 과정에서 과도하게 정치적인 요소나 디씨 내수용 험한 밈들이 대부분 필터링되면서 심영이나 놀려먹다 사라질 수도 있었던 합성물이 합필갤 시절보다 더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제작자들이 본격적으로 영상만으로 개그를 짜려는 연구 덕에 이제는 단순한 심영물이 아닌 더욱 다채로운 야인시대 합성물로 진화했다.

초창기에는 내가 고자라니의 장면만 쓰이면서 여타 극중 인물들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64~65화, 넓게 잡아도 62~65화까지의 소스만 활용했다. 그러다가 심영물이 계속 만들어지면서 음원요소, 짤보다는 극의 상황을 비틀어 다양한 상황을 연출하는 스토리적 요소가 가미되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범위를 넓혀나가다 4달러가 발굴된 이후 '중공군이라고?! 어림도 없다! 암! 아아아아암!!!'하는 장면[53]이나 조병옥, 시라소니 등 심영과는 무관한 인물들까지 합성에 동원되기 시작했으며, 더 나아가 이제는 유년기나 청년기 에피소드, 김두한의 사망 장면까지 활용되더니 백병원 앞을 지나가는 지프차와 지프차가 지나갈 때 들리는 음성, 야인시대 OST까지 활용되면서 야인시대라는 드라마 자체가 전체적으로 소스화되기 시작했다.

게다가 다시금 재조명된 4달러의 협상장면과 김두한 역을 맡은 김영철분의 다른 배역인 궁예도 만만찮은 인지도와 캐릭터성을 자랑하고 있어서 야인시대 소스에 더욱 탄탄한 효과를 주어 인기를 올리는데 한몫했다. 이게 발전해서 야인시대 배우분들이 출연한 타 작품의 소스[54]나레이션 조교[55]와 대화까지 활용하는 등 그 범위를 최대한 확장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발견으로 야인시대에서 가려졌던 등장인물들의 색다른 모습들이 보이기 시작했는데, 작중의 묘사에 비해 창작자들의 아이디어로 너프를 먹이면서 원작의 캐릭터성과는 전혀 상관없이 캐릭터를 재창작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대표적인 예로 떼쟁이 이승만, 안습한 시라소니[56], 동네북 김두한[57], 폭발물 심영, 변태 조병옥[58] 등 새로운 소스들이 재발견되었다. 보통의 유행어나 필수요소들이 길어도 1~2년 정도밖에 흥하지 못하는데 반해 야인시대는 2008년 즈음에 발굴되어 10년이 넘게 관련 합성물이 제작되고 있다. 물론 중간에 심영 배역을 맡으신 김영인분의 언급으로[59] 약간의 정체기가 있었지만 얼마 뒤 디씨 인터뷰에서 대범하게 넘어가셨고 합성물을 직접 허락하시면서 다행히 지속될 수 있게 되었다.

별다른 문제가 없다면, 야인시대 합성물은 앞으로 수년 정도는 롱런할 것으로 보인다. 야인시대의 종영일이 2003년 9월 30일이므로, 2023년에 '종영 20주년'을 맞는다. 2019년 기준 성인인 2000년생만 해도 야인시대를 잘 기억하지 못하며(종영일 기준 4살), 중학교 3학년(2004년생) 이하는 야인시대 본방송을 '물리적으로' 볼 수 없는 나이다. 당시 야인시대는 중, 고등학생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자랑했는데, 2003년 당시 중학교 1학년은 1990년생이다. 2019년 기준 90년생은 30세이고, 85년생(당시 고등학교 3학년)은 35세이기에 결혼을 일찍 했다면 초등학생 자녀 한 둘 있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다. 이는 4달러, 고자라니 드립을 치며 노는 초등학생이 있다면, 그 아이의 아버지는 친구와 야인시대 등장인물 싸움 순위를 매기거나 야인시대에 묘사되는 결투 흉내[60]를 내며 놀았을 가능성이 상당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자세한 내용은 야인시대/합성물 참고.

13. 관련 문서

13.1. 등장인물 목록

13.2. 작중 사건사고

※ 연도순으로 작성하였다.

파일:Yainsidaelogo.png
야인시대 극중 사건사고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11px;margin-bottom:-7px"
부민관 폭탄의거 사건 중앙극장 습격 사건
(64, 65화)
정판사 위조지폐 사건
6.25 전쟁 단성사 저격 사건 황금마차 습격사건
장충단집회 방해 사건 충정로 도끼 사건 고대생 습격 사건
혁명재판
(122, 123화)
한국독립당 내란 음모 사건
(124화)
국회 오물 투척 사건
(1, 124화)
}}}}}} ||

13.3. 참고 문서

13.4. 외부 링크


[1] 일단 SBS의 공식 영문 제목은 이렇게 되어있는데, 외국에서 더 유명한 게임판 야인시대는 'Age of Wanderers'라는 제목으로 나왔다. 또 Rustic에 '거친, 투박한'이란 의미도 있어 뜻이 통하기는 하지만, 문제는 '목가적인, 시골의, 소박한'이라는 뉘앙스가 더 강하다는 점. 격동의 시대 속에서 싸워나가는 인물을 그린 드라마라고는 연상되지 않는 생뚱맞은 느낌의 제목이다. 외국의 한국 드라마 팬들은 아예 그냥 'Yainsidae'로 부르기도 한다.[2] 왼쪽부터 하야시, 장년 김두한, 청년 김두한[3] 2001년 2월 1일방송 프로그램의 등급 분류 및 표시 등에 관한 규칙이 일부 개정됨에 따라 22화부터 15세 이상 시청가로 방영하였다. 유일하게 21화만 19세인데, 술집 싸움 장면에서의 많은 잔인한 장면 때문인 듯하다. 종영 이후 유료방송 등에서 재방송을 했을 때는 20화 이전 방송분도 15세 이상 시청가로 소급 분류하였다. 사실은 단순한 15금으로 보긴 어렵다. 성불구자 희화화, 조폭 미화 등이 나오기 때문이다. 또한 실제로 모방범죄가 발생하기도 했다.[4] 단, 38, 40회는 10시 35분에 방송했고, 45회와 46회는 연속 방송되었다. 그리고 104회는 10시 5분에 방송했다.[5] 제작사업 부문은 SBS Plus(당시 SBS 드라마 플러스)로 합병되었으며, 유통 및 기타사업부문은 SBSi와 합병하여 SBS콘텐츠허브가 되었다.[6] 드라마에서 주요 묘사하는 시기는 주로 1920년대 중후반 ~ 자유당이 집권하던 가. 극본은 이환경 작가, 연출은 장형일 감독. 2002년 7월 29일 ~ 2003년 9월 30일까지 총 124화에 걸쳐서 방송되었다. 이환경 작가와 장형일 감독은 KBS에서 훠어이 훠어이(기업극화)를 같이 했고, 이후 유지광의 자서전인 대명을 토대로 한 무풍지대 를 같이 하다가, 오래간만에 SBS에서 야인시대를 같이 작업했다.[7] 그 전까지는 영상이 아닌 짤방합성 문화가 대부분이었다. 다만, 내가 고자라니의 떡밥이 식으면서 합필갤은 급격히 몰락하게 되는데, 영상 제작자들은 활동무대를 유튜브로 옮기면서 다시 야인시대 합성물 흥행에 불을 지피게 된다. 자세한 사항은 후술.[8] 하지만 그만큼 논란이 제기되기도 하다. 밑에 비판 문서를 볼 수 있듯이 여러 의미로 문제작으로도 불리고 있다.[9] 당시 기준 1995, 96년생[10] 당시 많은 전국 사립초등학교에서 자체 내에서 교복으로 팔던 겨울 코트들이 단종되는 현상이 일어났다. 주조연출들이 입던 코트들 때문.[11] 이 둘은 외모로썬 너무나 청년기와 장년기의 위화감이 없었다. 개코는 그냥 그대로 나이 든 것 같았다. 다만, 정진영의 경우 외모의 변화는 자연스러우나, 열렬한 공산주의자로써의 모습이 부각되어 성격은 많이 변했다.[12] 이정재는 위화감이 좀 있었다. 외모의 차이도 그렇고 1부의 이정재가 과묵하고 카리스마적인 모습만 나왔다면 2부 초반의 이정재는 털털한 동네 형같은 느낌이었기 때문. 물론 6.25 이후 동대문을 중심으로 조직을 만든 뒤부터는 보스의 카리스마가 제대로 터졌다.[13] 1954년은 실제 역사에서 김두한이 37세의 나이로 국회의원에 당선된 해다. 37세면 방영 당시 기준으로 안재모와 김영철의 딱 중간 정도에 위치하는 연령대이며, 마침 김두한의 직업이 주먹패에서 정치인으로 바뀌기도 했고 시대상 또한 한국전쟁 직후인 만큼 배우를 변경하기 아주 적절한 타이밍이었을 것이다.[14] 하지만 이것은 작가가 의도적으로 이렇게 한 것이다. 부자연스럽다는 것을 각오하고 이렇게 한 것은 후술할 작가의 의도 단락에도 나오겠지만 야인시대를 제작한 진짜 의도는 정치인 김두한이기 때문이다. 안재모 김두한의 인기가 상당했기에 그 인기를 김영철 김두한이 어느 정도 등에 업기 위해서 부자연스러운 것을 각오하고 2부가 시작하자마자 김영철 김두한으로 바꾼 후 초반에만 안재모 김두한과 비슷한 행보를 보이게 한 것이다. 만약, 1954년 정도를 기점으로 김영철로 바꾼다면 시청률이 한순간에 확 잘릴 가능성이 있다. 안재모 김두한과 김영철 김두한이 완벽하게 따로 놀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작진은 부자연스럽더라도 인기를 그대로 끌고 가는 쪽을 택한 것이다.[15] 54년 기점이 극중에서 김영철 비중이 너무 낮아지는 것이면 50년 한국전쟁 발발 시기(김두한 33세)가 배역교체 기점이었어도 조금 나았을 것이다. 김영철씨가 당대 50대긴 했지만 분장에 따라 더 젊게 인식 할 수는 있었다.[16] 물론 1부에서 이어져 2부에도 출연한 배우나 캐릭터들이 있긴 했지만, 극 전체로 보면 소수나 다름없다.[17] 1부는 일제 강점기이며 일본인들과 독립운동가들이 많이 나왔고 김두한이 주먹패 오야붕이 되는 과정 및 주먹으로 일제에 항거한다는 것이 주제였다면, 2부는 해방 이후 정치인들이 많이 나오고 김두한이 정치에 발을 들이면서 공산당과 독재에 맞선다는 내용이다.[18] 원작 소설에는 해방 이후 미군정기 좌우익 대립 시기에도 남다가 친한 후배였던 양코(드라마의 개코와 동일 인물)의 죽음에 충격을 먹어 이념 대립에 실의를 느껴서 김두한에게 자신이 쓴 편지를 전해준 후, 우미관패를 떠났고, 나중에 언급된 바로는 본인이 시골에서 여자들을 후리며 살기 시작한 듯하다. 삼수, 개코, 번개와 같은 말단이었던 병수털보는 따로 생사가 언급되지 않고 1부에서 증발하였다.(병수는 21회, 털보는 50회가 마지막 등장. 아마도 배우의 사정으로 조기하차한 듯.)[19] 실제로는 1987년에 경향신문에 우익단체 활동 관련 증언을 한 것을 볼 때 1990년대 이후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며, 오히려 김두한보다도 훨씬 오래 살았다. 다시 말하면 신영균이 병사했다는 것은 야인시대에서 각색된 것.[20] 위가 녹았다고 언급하는 걸 보니 위궤양으로 추정됨.[21] 간에 혹이 생겼다고 언급하는 걸 보니 간경화로 추정됨[22] 김두한의 장례식장에 멀쩡한 모습으로 참여한 것으로 보아 알코올 중독을 치료한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김두한이 서대문 형무소에서 나온 것이 1967년이고, 사망이 1972년이니 그런 가정이 불가능 한 것은 아니다.[23] 명확히 어찌 되었는지는 나오지 않았으나, 혁명 재판 이후엔 언급이 전혀 없다. 결국 처형당했거나, 살아남았더라도 옛 동료들과 인연을 완전히 끊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다만, 원작 소설에서는 김두한의 장례식에 참여하는 등, 김두한을 배신하지 않고 끝까지 살아남았다.[24] 해방 이후부터 6.25 전쟁 당시까지 포함하면 김무옥은 좌익과의 총격전 중에 사망했고, 개코는 여공들에 의해 강간 누명을 쓰고 김두한으로부터 자결을 종용받다가 김두한에 의해 억울한 죽음을 맞게 되었고, 정진영은 좌익에 투신하여 활동하다가 붙잡혀 대한민청 본부에서 김두한에게 총(사실 빈총이었다.)을 겨누며 같이 죽자며 김두한을 자신의 길동무로 삼으려다가 김두한에 의해 사살되었고, 문영철은 6.25 전쟁에서 전투 중 사망했다.[25] 야인시대 마지막화를 보면 콜록거리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결핵도 앓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26] 되려 김두한이 정치인 시절에 밑에 있었던 이들인 정대발(기술 배워서 먹고 산다고 말함.), 채원기(실존인물 김두한의 비서실장으로 드라마에서 밝히기를 작은 사업을 한다고 말함.), 그리고 김두한과 연을 맺은 이찬오(이 사람은 현대자동차 부사장까지 올라간 인물이며, 드라마에서도 현대에 입사했다고 나온다.) 등이 본인의 옛 조직원들보다 더 잘 살게 된다. 원작 소설보다 더 비참하게 끝났는데, 우선 1부에서 죽은 번개는 헌병대에서 석방 된 시점에서도 살아남았고, 나중에도 남아 있다는 언급이 있었으며, 와싱톤 역시 2부까지 남아있다가 퇴장했고, 김무옥은 용산 철도파업이 아닌, 한국전쟁에서 문영철과 함께 전사했으며, 신영균 역시 끝까지 살아남아 김두한의 장례식에 참여하였고, 김삼수는 배신 안 하고 살아남아서 김두한의 떠나는 길을 지켰다. 김영태는 미국으로 이민 갔단 건 동일하나 드라마와는 달리 장례식에 참여하였다.(여기서 병수, 갈치, 아구가 언급되지 않았는데 이 셋은 소설판에 등장하지 않은 드라마 오리지널 인물이다.)[27] 야인시대가 조폭을 소재로 한 드라마였던 이상 조폭들의 결말이 좋게 묘사되는 것이 금기시되어 있다보니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것으로 묘사하는 것이 불가피했다.[28]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밑바탕이 시청률인지라 PD들은 프로그램을 자기 마음대로 만들지 못하는 고충이 있다. 일정 수준의 시청률이 나오지 못하면 조기종영을 당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시청률을 상승시킬 수 있을 지 머리를 싸매며 고민한다. 야인시대 역시 예외는 아니었기 때문에 야인시대 제작진은 자신들의 의도를 담은 드라마를 제작하기 위해 절대로 조기종영을 당하지 않도록 드라마를 촬영해야만 했다. 그래서 야인시대는 챕터를 둘로 나눠서(챕터 1은 안재모 김두한, 챕터 2는 김영철 김두한) 첫 챕터는 오직 시청률에만 전념하고 작가의 의도를 챕터 2부터 보여주려 했다. 1부의 시청률이 매우 탄탄하면 2부에서 1부보다 인기가 못하더라도 고정 시청률은 확보할 수 있고 고정 시청률만 있다면 조기종영을 당하지 않을 수가 있다. 극단적으로 논하자면, 야인시대는 애초에 돈 벌려고 제작한 게 아니었다. 정치인이 된 이후의 김두한은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것을 보여주려고 만든 작품이었다. 하지만 시청률 문제 때문에 원래 만들려고 했던 횟수보다 2배 이상 많이 만들게 된다.[29] 세트장은 경기도 선관위 및 부천시 선관위 관할 지역이지만 지리적인 특성으로 인해 인천시 선관위(또는 부평구 선관위)가 왔다.[30] 2번 문단. 이육사의 동생이다.[31] 물론 원곡을 그대로 쓰지 않고 도입부 부분을 편곡했다. 하야시의 처제인 나미꼬와 김두한의 첫 대면 장면에서도 카페 BGM으로 깔린다.[32] 전투씬에서는 김두한 Vs 구마적, 작두, 금강, 마포패거리 김영태 Vs 왕발, 장충단 공원 결투, 문영철 Vs 오노 총 7번 깔리며 금강과의 맞짱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풀버전 곡이 깔렸다.[33] 청년기 후반 영웅주의가 많이 나왔지만 야인도 간간히 나왔다.[34] 참고로 가사없는 버젼은 이미 2화부터 나왔다.[35] 122회부터 마지막회(124회)까지는 예고를 방영하지 않았다.[36] 영턱스클럽의 멤버 임성은이 불렀다. 다만 이때는 본명이 아닌 MIZ라는 예명으로 불렀다.[37] 반면에 1997년에 개발한 어쩐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저녁벨트스크롤 액션게임중에서도 손에 꼽을만한 명작으로 지금도 고전게임의 명가 중 하나로 대접받는다. 잘만 만든다면 시대를 역행한다는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38] 아예 KOF 2003의 복장이며, 로버트 가르시아의 비연회전각이나 환영각 등을 김두한이 그대로 쓴다. 사실상 김두한이 쓰지 않는 로버트 가르시아의 기술이라고는 용격권패왕상후권밖에 없다. 나머지는, 심지어는 용호난무도 쓴다.[39] 당시 인티즌이라는 사이트의 게임 커뮤니티. 현재는 커뮤니티 부분을 드림위즈에 매각하고, 게임 부분(군주 온라인)은 그대로 남아 엔도어즈가 되었다.[40] 특히나 둘의 대결이라는 기가막히는 배우 개그까지 나왔다.[41] 로고에서 野자가 미묘하게 다르다.[42] 본편 나레이션도 아닌 DVD 광고 나레이션만 일본어로 녹음되었다. 시라소니를 이시즈카 운쇼가 맡았더라면 꽤 괜찮은 싱크로율을 보여줬을 듯하다..[43] 그런데 북한에서 《야인시대》를 보다가 간부에게 들켜 총살형을 당한 주민이 있었다는 소식이 보도된 바 있다.[44] 둘 다 김두한과는 우호적 관계의 인물이다. 원노인은 김두한의 은인이고 최동열은 김두한을 돕는 조언자 정도의 위치[45] 도축업에 오래 종사해 온 이들의 완력과 칼 다루는 솜씨는 어마어마하며 최동열은 일생을 펜대만 굴려 온 인텔리이다. 다만 동시대에 둘 간의 나이 차이가 워낙 나는 점도 감안하면 승부는 미궁 속으로..[46] 결국 SBS의 주말 특별기획 드라마 부활작은 유리구두가 됐다.[47] 여기서 알아야 할 것은 제국의 아침이 2002년 3월부터 2003년 1월까지 방영했고, 야인시대가 2002년 7월부터 방영했다는 것이다. 제국의 아침이 끝날 무렵 야인시대에서는 1부에서 2부로 넘어가는 중이었는데, 같은 작가 다른 작품에 출연한 완벽한 시기였다.[48] 정동환과 마찬가지로 제국의 아침과 야인시대 방영기간이 겹치는 기간에 출연했다.[49] 집필자 이환경 작가가 KBS 1TV 태조 왕건으로 14회 드라마 부문 수상.[50] 구마적패의 종로 2정목 습격사건으로 인해 등급이 올라갔다. 당시 어떤 가정집에서는 같이 드라마를 보려던 부모님이 19금으로 올라간 등급을 보고 "너 몰래 야한거 보려고 했냐?"라고 화냈다 카더라.[51] 사실 청년파트에 비해 중년 파트가 절반 이상을 차지해서 분량 면에서도 더 긴데다, 실제 김두한에게 있어서도 주먹깡패 시절보다는 국회의원도 해 본 광복 이후가 진짜 리즈 시절이다. 하지만 평균 시청률은 일제강점기, 즉 '김두한의 청년파트'가 더 높다. 50%를 찍은 것도 김두한이 신마적, 구마적과 싸울 때 뿐이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안재모의 청년 파트가 '한 물 간 그때 그 드라마'가 되어 버렸다.[52] 얼굴이 안 나와서 애꿎은 라디오를 프로필 사진으로 사용하고 있다. 라디오의 기종은 제니스 트랜스오셔닉 H500.[53] 물론 이전에도 국회 오물 투척사건 때문에 유명해진 '똥이나 쳐먹어 이 새X들아'는 쓰이기도했다.[54] 대표적으로 바리바리 짱에 출연한 김영인의 장면이 있고, 위에서 서술한 김영철 분의 배역 중 하나인 궁예와도 자주 엮이며, 비주류로써 간혹 상하이조 역할의 조상기가 출연한 골든 타임이나 뮤직비디오 등이 있다.[55] 특히 마지막화 김두한의 사망 장면에 나오는 "1972년 11월 21일, 김두한은 쓰러졌다."라는 대사가 등장인물들의 처형용으로 가장 많이 쓰인다.[56] 원작에서는 주먹계 최강자 급이었지만, 야인시대 합성물에선 까불다가 총에 맞아 죽거나, 면박과 구박을 당하는 역으로 등장한다.[57] 시라소니와 마찬가지로 원작에서는 최강자 급이었고, 내가 고자라니로만 합성하던 시절에도 심영을 제압하는 세계관 최강자 이미지였으나, 드라마 전체로 합성 범위가 확장된 이후로는 세계관 최약체로 완전히 추락했다.[58] 당장 옷 벗으라는 대사가 있다.[59] 충격을 좀 받으셨다고 한다.[60] 일명 상술한 야인시대 놀이[61] 어린 김두한이 사건을 목격하는 장면으로 나온다. 김두한은 나석주의 죽음을 목격하고 독립운동을 결심한 계기가 된다. 물론 현실은 결국 깡패의 길을 걷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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