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설농탕 里門雪濃湯 | |
로고 | |
창립일 | 1902년 (이문식당, 광무 6년)[A] |
업종 | 한식당 (한식 일반 음식점업) |
영업시간 | 월요일 ~ 토요일: 08:00 ~ 21:00 (준비시간 15:00 ~ 16:30) 일요일: 08:00 ~ 20:00 (준비시간 15:00 ~ 16:30) 명절 휴무 |
수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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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
서울특별시 종로구 우정국로 38-13 (견지동) | |
링크 | 공식 사이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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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문설농탕(里門雪濃湯)은 대한제국, 일제강점기 및 대한민국의 설렁탕 전문점이다. 고종 치세인 1902년[A] 한성부(현 서울특별시)에 개업하여 [age(1902-01-01)]년째 이어지며, 현존하는 대한민국의 가장 오래된 음식점으로 여겨진다.2. 역사
같은 종로에 있는 해장국 전문점인 청진옥(1937년 개업)이나 곰탕 전문점인 하동관보다 30년 오래된 전통적 설렁탕 전문점으로 알려졌으며, 1920년에 창간한 《조선일보》나 《동아일보》보다 18년 더 오래된 가게이다. 1897년(건양 2년)에 설립한 조흥은행(현 신한은행)이나 1899년(광무 3년)에 설립한 우리은행보다 3 ~ 5년 늦은 정도로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개업 당시 이름은 "이문식당(里門食堂)"이었고 후에 "이문설농탕(里門雪濃湯)"으로 바뀌어 오늘에 이른다. #[3]긴 역사에 걸맞게 주인과 가게의 위치도 몇 차례 바뀌었다. 이문설농탕을 처음 개업한 사람은 홍씨(이름 미상)로, 1902년부터 50년 동안 가게를 운영했다. 당시 가게의 위치는 피맛골 이문고개 근처였는데 여기서 가게의 상호명이 유래했다. 그 다음에는 양씨(이름 미상)가 가게를 넘겨 받았는데, 이때 공평동으로 가게를 이전했다.
1960년, 양씨가 미국으로 이민을 가면서 유원석 여사에게 가게를 넘겼다. 유원석 여사는 이화여자전문학교 가사과를 졸업한 인텔리 여성이었는데, 가사과 출신답게 요리 솜씨가 좋아서 이전에도 부산에서 식당을 운영한 경험이 있었던 베테랑이었다. 유원석 여사는 이문설농탕을 넘겨 받고 나서도 고유의 조리법을 존중하고 유지한 덕분에 단골들로부터 "점주가 바뀌었는데도 설렁탕의 맛은 전혀 바뀌지 않아 좋다"라고 호평을 받았다고 한다.
2002년 유원석 여사가 작고하자 그 아들인 전성근 대표가 아내 전혜령 여사와 함께 뒤를 이어 이문설농탕을 운영하게 되었다. 전성근 대표는 건국대학교 축산학과를 졸업하고 아버지와 함께 낙농업에 종사하며 목장을 운영했다. 그는 이미 1980년부터 몇 년간 모친을 도와 가게에서 일을 해본 적이 있었다. 다만 전성근 대표도 2010년경에 건강이 악화되어 현재는 경영만 맡아 보고 있다고 한다.
<colbgcolor=#81634b> 공평동 당시 가게 외관. |
견지동으로 이전한 뒤의 모습. |
비교적 최근까지도 공평동 한옥식당에서 영업을 해 왔으나 오세훈 서울특별시장(1기 시정)의〈강북 4대문 지역 도심재개발사업(도시환경 정비사업)〉에 따라 2011년 공평동 가게를 떠나 견지동의 현대식 조그만 가게로 이전했다. 기존에 쓰이던 100년 넘은 한옥 건물은 등록문화재급 가치가 있는 건축물이었으나 깔끔하게 밀려버리고 재개발되었다.[4]
100년이 넘는 시간에도 오직 설렁탕을 고수해온 집으로 종로 토박이 음식점으로 알려져 있다. 현 주소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우정국로 38-13 (견지동). 가장 가까운 전철역 출입구는 1호선 종각역 3-1번이다.
3. 메뉴
식사 메뉴는 설렁탕, 도가니탕, 머리탕이다. 각 탕마다 특 사이즈가 있는데 일반 탕보다 3,000원 정도 비싸다.[5] 숟가락이 탕에 들어가 있고 밥도 미리 말아져 있는 것도 특징. 설렁탕에 들어가는 고기는 다양하다. 양지, 머리, 마나[6], 볼기살, 우설[7] 등이 있고, 도가니탕과 머리탕에는 말 그대로 도가니와 머릿고기만 들어간다. 설렁탕과 머리탕은 같은 뚝배기에 담겨 나오며, 도가니탕 뚝배기는 설렁탕 뚝배기보다 약간 작다.술안주 메뉴로는 수육, 도가니, 혀밑, 소 머리 고기, 마나, 수육무침[8]가 있다. 물론 술과 같이 먹지 않아도 주문해서 먹을 수 있다.
4. 맛
<colbgcolor=#81634b> 대한원조촌협의회에서 받은 원조집 인정서 |
이처럼 오늘날 사람들이 생각하는 설렁탕과는 모습과 맛이 꽤 다른 편인지라 설렁탕 치고는 맑은 국물과 부속 부위 특유의 향취, 싱겁고 담백한 맛 등에 익숙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이런 기름기 없이 담백한 맛과 독특한 건더기에 적응이 된다면 흔히 먹을 수 있는 설렁탕과는 확연히 다른, 전통 깊은 원조 설렁탕의 맛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입 안에서 은은하게 퍼지는 깊고 부드러운 육수의 맛이 큰 호평을 받고 있다.[9]
100년이 넘은 오래된 전통을 가진 가게인지라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이문설렁탕을 찾아오고 있다. 특히 주로 노인들이 많이 찾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외에도 나이든 단골들만 온다는 편견과는 달리 미쉐린 가이드의 별점 덕분에 외국인 방문객도 많으며, 입소문을 듣고 찾아온 젊은 사람들도 쉽게 볼 수 있다.
그 특유의 담백한 맛 덕분에 다른 설렁탕집들이 분유, 프림, 땅콩버터를 넣는다는 소문이 들리고 실제로 일부가 적발되어 한동안 침체기를 맞던 때에도 이문설농탕만큼은 오랜 전통과 신뢰 덕에 방문객이 끊이지 않았다.
5. 단골인 유명인들
유명한 단골들이 꽤 많았다.이시영 초대 부통령, 1936 베를린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손기정 선수[10], 김두한 의원, 남로당 박헌영, 국어학자 이희승 서울대학교 교수, 국문학자 양주동 동국대학교 교수, 이민우·신도환 전 신한민주당 총재, 최장수 연예인 송해, 유도 하형주·김재엽 선수 등이 이 집을 방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외의 자세한 내용은 기사 참조. 탤런트 김학철도 본인 유튜브 채널에서 소개했다.
6. 여담
- 대한제국 시절부터 개업한 음식점이다보니 허가처도 여러 번 바뀌었다. 창업 당시에는 대한제국 한성부의 허가를 받았다가 1910년 경술국치로 조선총독부와 경기도 경성부의 허가를 거쳐서 1945년 해방 이후 서울특별자유시 종로구청의 허가로 이어졌다. 허가처의 변천만으로도 오랜 역사성을 보여준다.
<colbgcolor=#81634b> 〈야인시대〉에 나온 이문설농탕. '이문식당(里門食堂)' 간판이 큼지막하게 보인다. |
- 2023년 10월 16일 오후 오후 1시 45분경 화재가 발생했다. 방문객 30여 명, 이문설농탕 직원 11명, 인근 광희칼국수 직원 4명 등 45명이 자력 대피했다. 소방당국은 우정국로 1개 차로를 통제하고 진화 작업을 했으며 검은 연기가 일대를 뒤덮었다. 2시간여만인 오후 3시 47분쯤 초진됐다. #1 #2 #3
[A] 1904년 또는 을사조약 이후인 1907년에 개업했다는 일설도 있다. 다만 식당 자체의 상표는 1969년 등록된 우래옥이 가장 오래됐다.[A] [3] "이문옥(里門屋)"이란 이름으로도 있었다고 하나, 그곳은 다른 곳이다.[4] 오세훈 시장은 1기 시정(2006~2011) 동안 도시미관 개선이라는 명분 하에 유서깊은 음식점 건물들 여럿을 이런 식으로 헐었는데, 곰탕으로 유명한 하동관도 그 중 하나이다. 재개발에 소극적이었던 박원순 시장은 비교적 남겨놓는 편을 택했으나 이것 역시 이것대로 많은 사람들의 반발을 샀었고 오 시장은 10년 만에 2기 시정(2021~)으로 돌아온 후 다시 재개발 사업 위주로 가고 있다.[5] 시세에 따라 약간씩 차이가 있다.[6] 소의 비장.[7] 소 혀를 말한다.[8] 새로 추가되었다.[9] 미쉐린 가이드에서 이 가게의 매력에 대해 "큰 무쇠솥에 17시간 동안 고아 기름을 말끔히 제거한 후 남은 뽀얗고 맑은 국물 맛이 이 집의 자존심이라 할 수 있다."라 설명하며 특유의 국물 맛을 높게 평가한 바 있다.[10] 특히 마나를 좋아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