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2-04-24 16:55:27

박원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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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대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 NGO 지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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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대의 각 해마다 시사저널이 각 분야의 전문가 1000명에 칸타퍼블릭과 함께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한국을 움직이는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을 선정했으며, 최대 3명까지 중복응답이 가능하였다. 해당 틀에는 1위만 기재함.
2010 2011 2012 2013 2014
박원순
2015 2016 2017 2018 2019
반기문 한비야 안진걸 한비야 미조사
같이 보기: 한국에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종합) / 여권 정치인 / 야권 정치인 / 법조인 / 경제인 / 언론인 / 문화예술인 / 연예인 / 스포츠 스타 / 종교인 / 국제 인물 / NGO 지도자 / 잠재력 있는 정치인 / 대통령에 영향력 있는 인물 / 언론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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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대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 잠재력 있는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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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ae1932><colcolor=#fff> 제35-37대 서울특별시장
박원순
朴元淳 | Park Won-soon
파일:20210308000843_0.jpg
출생 1955년 2월 11일[1]
경상남도 창녕군 장마면 장가리[2]
사망 2020년 7월 9일[3] (향년 65세)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 산25-1 숙정문[4]
묘소 경상남도 창녕군 장마면 장가리 산40-3[5]
본관 밀양 박씨[6]
재임기간 제35-37대 서울특별시장
2011년 10월 27일 ~ 2020년 7월 9일
서명 파일:박원순_서명.svg[붓펜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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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3a3c,#ddd {{{#!folding [ 펼치기 · 접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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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ae1932><colcolor=#fff> 부모 아버지 박길보, 어머니 노을석
형제자매 2남 5녀 중 차남
배우자 강난희[8] (1957년생)
자녀 딸 박다인(1983년생)[9]
아들 박주신(1985년생)[10]
학력 경기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사회과학계열 / 중퇴)
단국대학교 (사학 / 학사)
병역 파일:대한민국 육군기.svg 대한민국 육군 이병 소집해제 (방위병)[11][12]
종교 무종교[13]
신체 170cm, 71kg, A형[14]
최종 당적

파일:더불어민주당 흰색 로고타입.svg
약력 제2회 법원행정고등고시 합격
춘천지방법원 정선등기소장
제22회 사법시험 합격
제12기 사법연수원 수료
대구지방검찰청 검사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
한겨레신문 논설위원
포스코 사외이사
참여연대 사무처장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제35·36·37대 서울특별시장[15]
서울시립대학교 운영위원장
제12대 전국시도지사협의회 회장
별명 친절한 원순씨, 스나이퍼 박, X발아저씨, X발갑, 킁킁좌, 박원숭, 원숭이, 몽키박 }}}}}}}}}}}}

1. 개요2. 일생3. 박원순계4. 비판과 논란5. 저서
5.1. 본인 저작5.2. 타인 저작
6. 소속 정당7. 선거 이력8. 관련 유머9. 여담10. 수상 내역11.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변호사여성운동가, 시민사회운동가 출신 정치인. 제35-37대 서울특별시장을 역임하였다. 임기 중에 성희롱 가해자로 피소된 이후 스스로 생을 마감하였다.

2. 일생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박원순/일생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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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성운동의 역사에서 박원순은 정말로 첫손에 꼽아요. 둘째가라면 서러울 사람이에요. 모든 장면에 다 있었어요, 박원순은.
정춘숙 시사인 2020년 8월 10일
1980년 사법시험 합격 후 검사로 임용됐지만 6개월 만에 사표를 쓰고 그로부터 6개월 뒤에 퇴임했다. '사람 잡아넣는 일'이 체질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이후 변호사로 활동을 시작한 박원순은 1980년대 부천 경찰서 성고문 사건1990년대 서울대 조교 성희롱 사건 등 대한민국 여성운동사의 가장 중요한 사건들을 도맡아 변호하였다. 특히 서울대 성희롱 사건은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직장 내 성희롱 소송 및 유죄를 이끌어 낸 역사적인 사건이며, 대한민국 여성운동 역사에서 가장 큰 획을 그은 사건으로 언급된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그는 여성인권을 대표하는 인권변호사로서 명망을 쌓았고, 여성단체들로부터 대한민국 여성운동에서 첫손에 꼽히는 인물이라는 찬사를 받아왔다.

1994년 박원순은 참여연대를 설립, 초대 사무처장을 맡으며 시민운동계에 투신했다. 그는 참여연대를 통해 '압박 시민단체' 모델을 대한민국에 태동시키고 정착시켰다.[16] 박원순은 참여연대를 통해 낙천·낙선 운동, 재벌개혁을 위한 소액주주 권리 찾기 운동, 검찰, 법원 개혁 등 사법개혁운동 등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참여연대의 낙선운동은 시민단체의 지나친 정치 개입으로 논란을 낳기도 했다. 참여연대의 낙선운동은 특정 정당에 편향되어 있었다. 박원순은 이에 대해 "현존하는 法만 지켜야 한다는 것은 공안검사의 논리와 다름없다"라며 법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법이 지켜져야 한다면 시대착오적인 법률이 언제까지나 우리를 속박할 것이라고 주장했다.[17] "惡法(악법)이 法(법)일 수는 없다" 말하며 악법이라 할 수 있는 현행 선거법을 무시해도 상관없다고 주장하며 낙선운동을 더욱 강력하게 추진했다. 하지만 참여연대의 낙선운동은 결국 대법원에 의해 선거법 위반 확정 판결이 내려졌다.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 기간에는 돌연 정부 비판 활동을 중단하고 사회 활동에 주력했다. 재벌 개혁 추진과 관련 정부와 열린우리당의 행보를 지원했고, 위법 논란에도 불구하고 (야당) 낙선 운동을 벌였다. 2001년 '아름다운재단'과 2002년 '아름다운가게', 2006년 '희망제작소'를 설립하여 노무현 정부가 끝나는 2008년까지 박원순은 대정부 투쟁을 거의 하지 않고 사회적 활동에만 주력했다. 그 당시 대표적인 활동으로는 아름다운재단과 네이버와 협력하여 기부사이트 해피빈을 출범 및 성공적으로 정착시키기도 했다.# 한편 반미 운동에 활발히 나섰다. 2002년 효순이 미선이 사건 때에는 SOFA 개정을 외치며 촛불집회를 주도했다. 2003년에는 정부의 이라크 파병 반대 운동을 펼쳤는데, 이 반미 투쟁이 그가 노무현 정부에 반대한 유일한 활동이었다. 이 시기 민주당계 정당 등에서 정치입문에 대한 요청을 끊임없이 받아왔으나 박원순은 이를 거절하고 사회운동에만 주력하였다.

이명박 정부로 정권이 교체된 직후부터 다시 강경 대정부 투쟁에 나섰다. 이미 선거 때부터 이명박 정부의 대운하 공약을 맹비난했고,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지 몇개월이 채 되지도 않은 시점에서 나라를 완전히 뒤집어 놓았던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를 주도했다. 당시 '광우병국민대책회의' 사무실이 참여연대 1층에 마련되었다.[18] 천안함이 침몰하자 그는 정부의 대북 강경책이 천안함 침몰의 원인이라고 주장하며 이명박 정부가 천안함 장병을 죽였다고 주장하며 정부를 맹비난했다. 천안함 사건에 대해 2011년 선거 때 북한 소행이냐라는 질문에 대답을 하지 않았다.[19] 참고로 이명박은 서울시장 재임 시절에 박원순의 '아름다운재단'에 서울시장 급여 전액을 기탁했었다.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의 급여 전액이 4년 동안 매달 자동이체로 아름다운재단에 자동이체되었다. # 또 이명박은 서울시장 시절 '아름다운 가게' 행사에 여러 차례 참석하고 본부 사무실을 방문해 미래 발전방향 브리핑을 듣기도 했고, 명예고문이 되기도 하는 등 아름다운재단에 물심양면 지원을 아끼지 않았었다. # 박원순의 아름다운재단과 가게를 적극적으로 도와 준 이명박을 박원순이 맹공격하자 아무리 정치판이라 하더라도 이건 좀 사람의 예를 벗어난 것 아니냐며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에 대해 박원순은 이명박이 아름다운재단을 적극 도와줘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지만, 대통령이 된 후 자신을 사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분노하고 180도 생각을 달리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명박이 박원순을 사찰하기 전 광우병 촛불집회를 열어 먼저 이명박을 공격한 것은 박원순이었다.

2010년에는 결식 제로운동을 펼치며 무상급식 실시 문제로 오세훈 서울시장과 극한 대립하고 있던 서울시의회를 지원했다. 민주당의 저지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 오세훈 시장은 자신의 정치 생명을 걸고 주민투표를 실시했으나, 시민들의 무관심 속에 주민투표 투표율 미달로 개표조차 못했다. 오세훈은 약속대로 서울시장직을 자진 사퇴하고 말았다. 박원순은 오세훈의 사퇴로 공석이 된 2011년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했다. 지지율이 5%에 머물며 사실상 당선 가능성이 없었던 군소 후보 중 한명이었지만, 당시 유력 주자였던 안철수가 박원순 후보를 지지를 선언하며 자진 사퇴하자 안철수 지지자들의 표를 대거 흡수하여 제1야당 민주당과 단일화하여 야권단일후보[20]으로 서울시장에 당선되는 대이변을 연출했다. 그리고 오세훈 시장이 반대했고 시장직에서 물러난 계기가 된 전면 무상급식을 시장 취임후 첫 업무로 결재했다. 2012년 2월 당선 4개월만에 민주당(민주통합당)에 입당하였다.

서울시장 집권 기간 동안 개발과 토목 공사를 극도로 싫어하여 '반토목 시장'이라 불리었다. 박원순 시장은 서울시의 재건축재개발을 극도로 제한하며, 대신 도시재생 정책을 내세웠다.[21] 이러한 도시재생 정책은, 오세훈 시장 때 추진되던 마곡공원 계획을[22] 변경하여 서울식물원을 개관[23]하고, 오세훈 시장 때 논란과 비판의 대상이 된 세빛둥둥섬을 문화공간으로 변화시키고, 폐쇄된 석유비축기지를 문화비축기지로 만들어 국제 건축상을 타는 등의 성과도 있었다. 그러나 세빛둥둥섬 등은 사실상 오세훈 시장 때 추진되던 사업인데 이를 전시 행정이라고 비판해오던 박원순이 본인이 시장이 된 후 계획을 변경하여 개관 후 본인의 업적으로 내세운 것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시각도 있다.[24] 또한 재생을 강조한 나머지 슈즈트리 같은 흉물 전시물 논란이 발생되기도 했다. 시장 기간 동안 개발을 제한하고 보존 및 재생 위주의 정책으로 용적률도 크게 제한받았고, 재개발 허가 또한 대단히 받기 힘들어졌다. 이러한 개발 억제정책은 필연적으로 집값 폭등을 야기하였고 그가 사망하기 이전 이미 서울시 집값은 뉴욕, 도쿄, 런던 등을 세계적인 대도시들을 제치고 OECD 최고로 치솟았다.[25] 재개발을 엄격히 규제하는 상황에서 집값이 치솟으며 비판이 쏟아지자, 2018년 박원순은 도로와 주차장 위에 공공임대주택을 건설하여 집값을 잡겠다고 발표했으나 여론은 물론이고 오마이뉴스, 한겨레를 포함한 언론과 전문가들로부터 숱한 비난을 들었다. 하지만 이러한 비난에도 불구하고 2019년 8월, 북부간선도로 위에 청년과 신혼부부를 위한 공공아파트를 지어 2025년까지 입주시키겠다는 계획까지 발표했으나 결국 무산되었다. 또 취임하자마자 공사가 진행중이던 양화대교 보수 공사를 중단하고 영구 보존(방치)할 것을 주장하여 물의[26]를 빚은 것을 시작으로 반토목을 내세우며 각종 사회기반시설 공사 예산을 대거 삭감하여 서울에 예정되어 있던 도로 신설, 확장 공사가 대거 취소되거나, 축소, 지연되었다. 이로 인해 원래 예정되어 있거나 추진 중인 간선도로 공사가 대거 취소, 축소되어 서울의 교통난은 갈수록 심각해졌다. 그나마 박원순 시장 재임 기간 동안 추진된 몇 안되는 인프라 사업조차 과거 본인이 그토록 비판하던 민자로 추진된 경우가 허다했다. 그리하여 개통된 서부간선지하도로[27], 신월여의지하도로[28] 등은 시내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료도로로 개통되어 통행료[29]를 받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안전속도 5030 정책을 앞장서서 추진하여 서울시내 차량 제한속도를 시속 60km에서 시속 50km로 낮추어 서울시의 교통난이 갈수록 심해진다는 논란을 받았다.[30] 취임 직후 오세훈 전임 시장이 추진하던 서울시의 경전철 7개 노선 계획을 백지화시켰다.[31] 그러나 서울시장 선거 직전 2013년 7월 돌연 경전철 10개 노선을 추진한다고 깜빡 발표하여 지지자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오세훈 전 시장은 '내가 시장일 때는 전시성 토목행정이라며 반대하더니 본인이 하면 착한 사업이냐'라며 박원순의 내로남불을 지적하며, 경전철을 취소했다가 재추진하면서 결국 수천억원의 기회비용 손실이 생겼다고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 프레시안 등의 언론은 박원순이 본인의 과거 발언을 뒤집고 토목사업을, 그것도 민자로 추진하겠다는 점을 비판했다. 이러한 비판에 대해 박원순은 "강남이 발전한 것은 결국 지하철을 잘 놨기 때문"이며 본인의 경전철 계획을 옹호했다. 그러나 선거가 끝나자 기존에 공사중이던 우이선, 서부선을 제외하고 나머지 노선은 제대로 추진되지 않았다. 또 오세훈이 추진하던 서울 공공자전거시스템이 암초를 맞게 되었다. 원래는 오세훈의 계획대로라면 2011년까지 자전거도로가 완공되어 2011년부터 공공자전거택시 사업을 진행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박원순은 시민과 충분한 공론화 과정이 없었다는 이유 등으로 오세훈이 추진한 공유자전거 사업을 중단하였다. 박원순은 오세훈이 인구밀도와 지형, 교통량 고려없이 자전거 도로를 다수 설치하였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오세훈의 자전거도로의 문제점이 아예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전임자를 비판하려고 불필요할 정도로 많은 부분을 뜯어 예산을 낭비한다고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었다. # 박원순은 이후 시민의 참여라는 명목으로 시민단체 및 시민과 공론화 과정을 대거 포함시켜 사업을 재추진했고[32] 2015년부터 따릉이를 탈 수 있게 되었다. #

서울시장 재임기간 동안 특정 성향의 시민단체들에 대한 지원을 대폭 늘렸다. 시민단체에 수천억원이 지원되었다.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오세훈 후보는 박원순 시장 시절 시민단체에 지원한 보조금이 1조원에 달한다고 말했다. 또 서울시의 각종 시설들을 시민단체에 제공했다. 반정부 성향 단체들의 반정부 집회가 2017년 5월까지 서울시의 공공건물에서 자주 열렸다.

서울시장이 된 이후 그는 이명박 정부 및 박근혜에 대해 맹렬한 공격을 아끼지 않았다. 재개발, 재건축, 청년수당, 천안함, 메르스, 사드 등 수많은 현안에서 사사건건 정부 정책을 비난했다. 국감, 관훈클럽 등에서 정부에 대한 맹비난을 쏟아냈다. 서울시와 직접 관련이 없는 정부 시책에 관해서도 내내 사사건건 반대해 왔으나, 2017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후에는 이런 행동을 완전히 멈추었다. 뿐만 아니라 오히려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는 야당을 공격했다. 촛불 국정농단에 책임이 있는 야당이 감히 남탓을 한다며 야당의 비난을 원천 봉쇄로 뭉개었다. 물론 당시 국정농단 사태의 영향으로 야당의 지지율이 박살이난 상황이라, 박원순에게 큰 영향은 없었다. 사망 직전인 2020년에는 코로나 팬데믹을 맞아 서울시와 정부의 과도한 추경과 나라 빚에 대한 야당의 비판이 있자, 평소에 맹비난하던 미국일본의 채무비율을 들며 반박했다.

그러나 2020년 7월 8일, 박원순 시장의 전직 비서가 그를 성추행 혐의로 고소했고[33] 성추행 가해자로 피소당한 다음 날인 7월 9일 실종되어 북악산 숙정문 부근에서 사망했다. 사인은 자살로 결론지어졌다. 이 사건은 박 시장 본인의 사망으로 공소권 없음 처리되었으나, 국가인권위원회와 법원에서는 공식적으로 그의 성폭력[34] 범죄 사실을 인정했다.

2.1.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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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박원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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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비판과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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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자질 및 행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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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성폭력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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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저서

5.1. 본인 저작

박원순은 1년 안에만 2~3권 씩을 써내면서 정치인 중에 제일 다작을 하는 축에 들었다.[35] 정치인이 되기전에는 법이나 시민운동 서적이 주를 이뤘고, 서울시장이 된 이후에는 주로 본인홍보용 저작인 것이 특징이다. 자신을 3인칭화하여 항상 박원순 본인의 이름이 제목에 들어가며, 표지도 자신의 사진이 크게 들어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 저작권법 - 법경출판사 (1986)
  • 국가보안법 연구 (총 3권) - 역사비평사 (1990)
  • 아직도 심판은 끝나지 않았다 - 박원순 지음, 한겨례 출판사 (1996)
  • 역사를 바로 세워야 민족이 산다 - 박원순 지음, 한겨례 출판사 (1996)
파일:469942g.jpg* 내 목은 매우 짧으니 조심해서 자르게[36] - 박원순, 세기의 재판이야기 - 박원순 지음, 한겨레출판사 (1999) #
  • NGO 시민의 힘이 세상을 바꾼다 - 박원순 지음, 위즈덤하우스 (1999)
  • 악법은 법이 아니다 - 박원순 지음, 프레스 21 (2000)
  • 박원순 변호사의 일본시민사회 기행 - 박원순 지음, 아르케 (2001)
  • 성공하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습관...나눔 - 박원순 지음, 중앙M&B (2002)
  • 한국의 시민운동 프로크루테스의 침대 - 박원순 지음, 당대 (2002)
  • 세상은 꿈꾸는 사람들의 것이다 - 박원순 변호사 참여연대 실천경영론 - 박원순 지음, 나남 (2002)
  • 부패추방 어떻게 하나 - 박원순 지음, 나남 (2002)
  • 역사가 이들을 무죄로 하리라(한국인권변론사,가시밭길을 선택한 변호사들) - 박원순 지음, 두레 (2003)
  • 독일사회를 인터뷰하다 - 박원순 지음,논형 (2005)
파일:f0be2a1372f22879bb7aa8e385b23063.png* 고문의 한국현대사 - 야만시대의 기록 (총 3권) - 박원순 지음, 역사비평사(2006)
  • 프리윌(스스로 움직이게 만드는 힘) - 박원순지음, 중앙북스 (2007)
  • 고속도로 통행권에 복권을 붙이면 정말 좋겠네 - 전유성, 박원순, 박준형, 희망제작소 지음, 위즈덤하우스 (2007)
  • 견디지 않아도 괜찮아 - 박원순 지음, 샘터 (2008)
  • 글쓰기의 최소원칙 - 박원순 지음, 룩스문디 (2008)
  • 이런 바보 또 없습니다 아! 노무현 - 진중권, 홍세화, 유시민 외 지음[37] (2009) #
  • 마을에서 희망을 만나다 - 박원순의 희망 찾기 1 - 박원순 지음, 검둥소 (2009)
  • 희망을 심다(박원순이 당신께 드리는 나눔) - 박원순 지음, 알마 (2009)
  • 원순씨를 빌려 드립니다 - 박원순 & 스티브 잡스의 공통점은? 새로운 발상으로 세상을 바꾸는 CEO! - 박원순 지음, 21세기북스 (2010)
  • 아름다운 세상의 조건 - 나눔과 희망의 전도사 박원순 에세이 - 박원순 지음, 한겨레출판사 (2010)
  • 마을이 학교다, 함께 돌보고 배우는 교육공동체 - 박원순의 희망 찾기 2 - 박원순 지음, 검둥소 (2010)
  • 마을 회사,공동체를 살리는 대안 경제 - 박원순의 희망 찾기 3 - 박원순 지음, 검둥소 (2011)
  • 마을 생태가 답이다, 환경을 생각하는 생활문화 공동체 - 박원순의 희망 찾기 4 - 박원순 지음, 검둥소 (2011)
  • 박원순의 아름다운 가치사전 - 박원순 지음, 위즈덤하우스 (2011)
  • 희망제작소 박원순 상임이사의 로마인 이야기 로마 천년 제국을 이룬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 박원순 지음, 석세스티브이 (2011)
  • 올리버는 어떻게 세상을 요리할까 - 소셜 디자이너 박원순의 영국 사회혁신 리포트 - 박원순 지음, 이매진 (2011)
  • 희망을 걷다 - 박원순의 백두대간 종주기 - 박원순 지음, 하루헌 (2013)
  • 정치의 즐거움 - 오연호가 묻고 박원순이 답하다 - 박원순, 오연호 지음, 오마이북 (2013)
파일:6000825595_1.jpg* 박원순의 어린이를 위한 응원 - 권경률, 박원순, 엄윤숙 지음, 생각을담는어린이, (2015) #
  • 경청 - 박원순의 대한민국 소통 프로젝트 - 박원순 지음, 서울시청 사진, 휴먼큐브 (2014)
파일:241A85F1-66F6-4EA1-ADF3-BF30A0D00395.jpg* 원순씨, 배낭 메고 어디가세요? - 지금껏 우리가 보지 못한 새로운 선거 이야기 - 박원순, 하승창 공저 (2015) # - 시간이 지나 제목이 매우 부적절하게 되었는데, 그의 사망 직전 배낭을 매고 어디론가 종종걸음으로 가는것이 포착 되었기 때문이다.[38]
  • 박원순과 도올, 국가를 말하다 - 도올 김용옥, 박원순, 지승호 지음, 통나무 (2016)
  • 국민에게만 아부하겠습니다 - 따뜻한 커피 한 잔과 함께 가슴에 담아두고 싶은 박원순의 말과 생각 - 박원순, 김홍국 지음, 더봄 (2016)
  • 박원순, 생각의 출마 - 나라다운 나라,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한 정책과 비전 - 박원순 지음, 더봄 (2017)
  • 몰라서 물어본다 - 박원순의 퇴근길 청춘수업 - 박원순 지음, 행복한책읽기 (2018)
  • 한국 경제규칙 바꾸기(Rewriting the Rules of the Korean Economy) - 박원순, 전병유 지음, 서울연구원 (2018)

5.2. 타인 저작

  • 청소년을 위한 박원순의 가상 콘서트 - 박원순의 응원 - 원순씨 청소년에 답하다 - 권경률 지음, 폴머 (2012)
  • 박원순의 서재 - 박원순 책에서 더불어 사는 삶을 찾다 - 권안 지음, 푸른영토 (2013)
  • 박원순이 걷는 길 - 임대식 지음, 한길사 (2015)
  • W캠프의 비밀 - 서울시장 3선, 박원순을 만든 사람들의 이야기 - 이인수 지음, 21세기북스 (2018)
  • 박원순 죽이기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황세연 지음, 중원문화 (2020)
  • 박원순의 죽음과 시민의 침묵 - 이일영 , 이인미 , 이재경 , 도이 , 황인혁 지음, 지식공작소 (2020)
  • 비극의 탄생 - 50인의 증언으로 새롭게 밝히는 박원순 사건의 진상 - 손병관 지음, 왕의서재 (2021)
  • 박원순은 살아있다 - 흑서, 잃어버린 9년에 대한 서울시정 평가 - 나연준 , 여명 , 우성용 , 이순호 , 이옥남 , 이종원 , 주한규 , 허현준 , 김재원 지음, 글통 (2021)
  • 서울을 바꾸다(혁신가 박원순의 도시혁명 10년) - 서왕준, 김수현, 김영준, 김용창, 윤순진, 이태수, 정선애, 유창복, 이창현 지음, 비타베이타 (2021)
  • 서울10년혁명(박원순 서울시정 10년 기록) - 혁신네트워크디딤 지음, 해피스토리 (2021)

6. 소속 정당

<rowcolor=#fff> 소속 기간 비고


[[무소속|
무소속
]]
2011 - 2012 정계 입문


[[민주통합당|
파일:민주통합당 연두 로고타입.svg
]]
2012 - 2013 입당


[[민주당(2013년)|
파일:민주당(2013년) 흰색 로고타입.svg
]]
2013 - 2014 당명 변경


[[새정치민주연합|
파일:새정치민주연합 흰색 로고타입.svg
]]
2014 - 2015 합당[39]


파일:더불어민주당 흰색 로고타입.svg
2015 - 2020 당명 변경
사망

7.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2011 하반기 재보궐선거 서울특별시장

[[무소속|
무소속
]]
2,158,476 (53.40%) 당선 (1위) 초선[40]
2014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새정치민주연합|
파일:새정치민주연합 흰색 로고타입.svg
]]
2,752,171 (56.12%) 재선
2018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파일:더불어민주당 흰색 로고타입.svg
2,619,497 (52.79%) 3선[41]
역대 선거 벽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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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0월 재보선 (서울특별시장) 6회 지선 (서울특별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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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회 지선 (서울특별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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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관련 유머

8.1. 씨발드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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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스나이퍼 박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스나이퍼 박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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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9. 여담

  • 2019년 국제돌봄엑스포에서 "나는 페미니스트"라며 "82년생 김지영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고 말했다. 정작 본인은 성추행으로 자살하면서 모순적인 상황이 되었다.
  • 2009년 100분 토론에서 손석희 앵커의 고별 방송을 했을 때 영상으로 출연했는데 이때 손석희에게 굴욕을 당하기도 했다. 손석희 앵커와 나이가 동갑[42]인데도 나이가 많이 차이 나 보인다며 손석희의 동안의 비결이 뭐냐고 질문했는데 이에 대해 손석희의 대답은 "굳이 답변을 드리자면, 제가 동안이라기보다는 박 변호사님이 노안이십니다"였다. 그리고, 손석희가 저 발언을 하기 전에 노회찬 전 의원을 가리키면서 "여기 노회찬 대표님도 저랑 동갑이십니다."라고 팩트로 2연타를 때렸다. 물론 분위기상 손석희와 박원순 모두 가벼운 농담을 한 것이다.[43][44]
이후 JTBC에 특별 출연했을 당시 또 같은 이야기가 나왔는데, 이때는 "나는 나이에 맞는 외모고 손 사장이 비정상인 거다"라고 해명하기도 했다. 참고로 현임 강원도지사최문순은 조금 더 심한 상태로 방송국 시절부터 손석희로부터 능욕을 당했다.[45] 박원순 본인은 손석희와의 해프닝이 꽤 기억에 남았는지 그 뒤로도 틈만 나면 손석희의 동안이 문제라는 말을 꺼냈다. 참고로 더 알자면 위에 언급되다시피 이때 나왔던 박원순이 1955년생, 노회찬, 손석희는 1956년생이고 얼굴로 따지면 손석희가 막내다. 여기에 최문순 강원도지사와 자유한국당 소속인 신상진 의원도 56년생이다. 게다가 홍의락 대구광역시 경제부시장은 박원순, 노회찬, 최문순 보다 1살 더 많다.
파일:PYH2014041201490001300_P2.jpg* 문재인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동기였다고 한다. # 당시에는 둘이 서로 변호사였기 때문에 박변 문변이라는 표현을 써서 친하게 지냈다고. 하지만 19대 대선 때 양측 간의 네거티브 전이 재개되는 등 사이가 소원해지기도 했다.
  • 평소에 자신이 워크홀릭임을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하급자에게 정도가 지나칠 정도로 과중하게 업무 부담을 주는 것으로 악명 높았다고 한다. KBS 인간의 조건에서 양상국을 만났을 때도 예전에는 책을 많이 읽었는데 시장이 된 이후에는 책을 읽을 시간이 거의 없다고 언급했다.[46]
    • 유시민의 저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따르면, '희망제작소'와 '아름다운재단'에 몸담았던 시절에는 실무자들 사이에서 악명이 높았는데 그 이유가 보고서를 읽다가 궁금한 것이 있으면 새벽 2시에도 불쑥 전화를 걸어 실무자들이 멘붕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 정의당의 공식 팟캐스트 방송인 노유진의 정치카페 시즌 2에 출연해 했던 인터뷰에서 서울시장이 된 후에도 앞서 말한 방식으로 일을 했더니 서울시 공무원들이 줄줄이 병원에 실려간다는 하소연이 많아 지금은 일하는 스타일을 바꾸어 칼퇴근을 하는 등 아랫 사람들에게 숨 쉴 틈을 최대한 열어주는 쪽으로 바꿨다고 한다. 21분 21초부터
    • KBS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에서는 비서관을 새벽 6시까지 출근시켜 자신의 사적인 조깅에 동행시키더니 밤 11시, 12시까지 부려먹다가 퇴근시키는 갑질을 해서 비판을 받기도 했다.
    • 박원순은 이런 갑질 상사 짓을 부끄러워하기 보다는 워커홀릭이라고 미화하며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 KBS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에서 여러 비판이 있자, 자신을 스스로 옹호하다가 약간은 자제하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 박원순은 자신이 워크홀릭임을 과시하며 사석이나 인터뷰에서 과로사하는 것이 자신의 꿈이라는 말을 자주 했다. 하지만 실상은 자신이 과로하는 것이 아니라 아랫 사람들을 과로사시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 2015년 한국과학기술원 방문 때 스트레스 측정을 받은 결과, 심각 단계라고 오마이뉴스 기사가 실렸다.
  • "하버드 도서관 지하3층부터 7층까지 책을 다 읽었다."고 말하여 논란을 일으켰다.
  • 경상남도 출신이다 보니[47] 같은 당에서 서울특별시장에 출마할 의향을 드러냈던 민병두 의원과 PK의 몇몇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에게 경상남도 도지사 중에 강력한 인물이 필요하다며 서울특별시장 3선 대신 경상남도 도지사에 출마할 것을 권유받은 적이 있었다. 거기다가 외모가 왠지 경남 아저씨 같다는 평도 있다. 그러나 박원순 시장은 각자 소질 있는 분야가 다르다면서 당의 몇몇 인물들이 박원순에게 경남도지사 출마를 권유한 것을 일축하고 서울특별시장 3선으로 간다는 의사를 표현했고,# 역대 최초로 민선 3선 서울특별시장이 되었다. 그리고 경남지사는 친문 김경수 전 의원[48]이 차출되었고, 역대 최초로 민주당 당적으로 경남지사에 당선되었다.
  • 그의 아들 박주신의 병역 복무에 관련해 명예훼손 및 허위사실 유포 사건으로 일베 유저 16명을 고소한 것으로 보아 박원순 서울시장 측에서도 일베를 모니터링하는 것은 사실로 보여진다. 심지어 일베에서도 비교적 관심을 받지 못했던 게시글도 비슷한 이유로 고소당했다고 한다.
파일:sP4Ml4Q.jpg* 커원저 대만 타이베이 시장인데,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정치 이념 및 행보가 비슷한 사람으로 중화권에서 유명하다.[49] 마침 2015 광주 하계 유니버시아드2017 타이베이 하계 유니버시아드 개최지 대표 자격으로 방문한 김에 서울에도 찾아가 회담을 가졌다.
  • 노무현 전 대통령과도 그렇게 친하지는 않았지만 친분이 있는 데다, 개인적으로도 노무현을 호평하는지라 2016년에는 서울시에 노무현 거리(노무현 루트)를 만들 계획이 있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2020년에 박원순이 사망할 때까지 실현되지는 않았다.
  • 잘 알려져있지 않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때, 조문을 와서 추도사를 읽기도 했었다. 상당히 슬퍼했었다고 한다. #, # 추후에 문재인이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 박원순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정치폭력 행사로 인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살했다고 하면서 이명박 측에서 정치 보복이란 말을 쓸 자격이 있냐며 비난했다.
  • 앞에서 서술했다시피 박원순은 한때 이명박하고도 상당한 친분이 있었는데, 반 이명박 기치를 내걸고 서울시장이 된 직후로는 이명박을 맹비난하기 시작했다. 이명박은 그래도 청와대로 박원순을 직접 불러 독대하면서까지 지난 추억을 회상하기도 했지만 박원순은 친 노무현 반 이명박으로 정치 노선을 굳히게 된다. 실제로 2017년 7월에 냄비받침이란 KBS 프로그램에 박원순이 출연했을 때 이명박 전 대통령과의 관계가 좋다는 얘기가 나오자마자 곧바로 크게 반발하면서 이명박과의 관계는 '과거 지인일 뿐이다' 라는 뉘앙스로 얘기하면서 이명박을 싫어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아마 박원순 본인으로선 이해할 수 없는 명박산성 같은 것들에게서 촉발됐을 거라는 게 정설. 당시 박원순은 광화문광장을 개방하지 않았던 오세훈 또한 비판한 적이 있다.
  • 19대 대선 경선에 출마해서 서울대를 사실상 폐지하고 국공립대학교 통합 캠퍼스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또 "매년 5000억 원을 들여 52개 국공립대학교에 반값 등록금을 시행하겠다"고 공약을 걸었던 적이 있다.#
  • 문재인 정부에서 대 아세안 특사로 파견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문희상, 이해찬, 송영길, 박주민과 함께 외모패권주의의 희생양 아니냐는 농담을 들었다. 실제로 전술한 4인 모두 외모가 정부 관료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족한(?) 사람들이다 보니 이런 소리가 나오는 편. 7회 지방선거 이후에는 당선자들 중에서 외모는 최하위권이라는 말도 있었다.
  • 지(知)동남아파로 분류되며, 결국 문재인 정부 들어서 아세안(ASEAN) 특사로 지명되었다. 서울시장 재임 동안 동남아 정부 관계자와 네트워크를 쌓아왔으며 문재인 대통령은 대(對)아세안 및 인도와의 협력 관계를 미국 등 4강과 동등한 수준으로 격상시키려 하기 때문이다. 이후 외부자들에 출연하여 "아세안 국가에 도시 외교를 통해 관광객 유치를 목적으로 가는 김에 문재인 대통령의 친서를 가지고 가는게 좋겠다 생각하여 청와대에 먼저 연락을 했다. 그러자 청와대 측에서 이왕 가는 김에 특사로 갔다 오라고 했다."며 비하인드 스토리를 소개했다.#
  • iPhone을 사용하는 것이 목격된 적이 있다. 그리고 자살사망 당시에 iPhone XS 시리즈를 사용하였다고 경찰이 보도하였다.
  • 별명으로는 '원순씨'[50]가 있다. 그 외에 '박원숭', '박원숭이', '몽키박' 등이 있는데 이는 이름(박원순)에서 따온 다소 비하적 별명으로 박원순을 싫어하는 쪽에서 거의 사용한다. 입이 돌출입인 것도 한몫한다. 박원순은 이 별명에 대해 '그 원숭이 한 번 되어볼게요'라며 받아넘겼다. 원숭이띠이기도 하다. 그리고 '씨발아저씨', '씨발갑'이라는 별명이 있는데 박원순 욕쟁이 드립이란 밈에서 나온 것이다. 박원순 욕쟁이 드립은 문서 참조 바람. 박원순이 지지를 받았던 이유는 아마 이런 대인배 행보를 보여줬기 때문인 듯 하다. 이런 점이 노무현과 비슷하다는 의견이 있다. 노무현 또한 대통령 임기부터 온갖 비하에 갖은 비난을 다 받았지만 그냥 웃어넘기기도 했었다. 노무현 비서관의 자서전에 따르면 그보다 더한 것도 겪어봐서 별 신경 쓰지 않았다고 하는데 아마 80년대 안기부에게 감시 당한 것을 말하는 듯. 성범죄를 저지르고 자살한 이후로는 '킁킁이', '야스좌' 등으로도 불린다.
  • 문재인 대통령정봉주 전 의원을 복권 조치했는데 박원순이 정봉주가 패널로 있는 외부자들 스튜디오에 직접 축하 화환을 보냈다. 그런데 그 화환에는 '서울특별시장 내리2선 웬순씨'라고 적혀 있었다.
  • 개그맨 안윤상이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아저씨 패러디로 박원순 시장의 성대모사를 선보였다. 특유의 말투가 압권.#
  • 탈모가 심했었다. 시장 출마 당시에도 머리가 점점 빠지던 상황이었고 2018년초까지는 정수리가 듬성듬성했었다. 2018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갑자기 정수리가 풍성해져 모발이식 수술을 받았다는 소문이 돌았다. 하지만 박원순은 유튜브에 직접 출연하여 수술설을 부인하면서, 머리숱이 많아진 것은 흑채 덕분이라고 해명하면서 직접 본인의 머리에 헤어롤을 말고 흑채를 뿌리는 모습을 시연해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2020년 4월 월간 조선 기사에 따르면, 박원순이 강남의 한 성형외과에서 모발이식을 받았다는 증언이 나왔다. 복수(複數)의 관계자가 강남구 신사동의 모 성형외과에서 박원순이 2018년 2월 모발이식 수술을 받았다고 증언했다. 양측의 입장을 들어보면, 기자가 병원 측에 “박원순 시장이 그곳에서 모발이식을 한 게 사실이냐”고 물어봤더니, 병원 측은 망설임 없이 “환자 개인정보는 알려줄 수 없다”고 응답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보고를 올렸지만, 개인적인 문제라 답변이 어렵다는 회신을 받았다”고 했다.[52]
  • 이른바 '박원순 유니버스'란 짤방들도 있다. 서울특별시장으로 오래 활동하면서 남긴 사진들이 하도 많아서 생긴 밈이다.
  • 과거 사법연수원 사람들과의 등산에서 "정치란 보여주는 걸 잘해야 한다고" 라고 말했다고 한다.
  • 사망한 모습으로 발견된 때인 2020년 7월 10일 0시, 공교롭게도 《박원순 죽이기》라는 제목의 책이 출간되었다. 어그로성 제목과는 달리 박원순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 및 평가를 한 책인 듯하다. 어마어마한 우연의 일치라는 것. 시기가 너무 절묘했다.#

10. 수상 내역

  • 1998년 - 여성단체연합 제 10회 올해의 여성운동상
  • 2002년 - 제 15회 심산상 시민운동 및 공로 부문
  • 2002년 - 서울지방변호사회 공익봉사상
  • 2003년 - 시민의 신문 올해의 활동가상
  • 2003년 - 희망 이웃돕기 유공자 포상식 국민포장
  • 2006년 - 제10회 만해대상 실천부문
  • 2006년 - 필리핀 막사이사이상 공공봉사부문
  • 2007년 - 제21회 단재상 학술부문
  • 2009년 - 제15회 불교인권상
  • 2014년 - 세계도시 전자정부평가 특별공로상 서울특별시 수상
  • 2014년 - 매니페스토 약속대상 선거공약분야 최우수상
  • 2016년 - 예테보리 지속가능발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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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부산대구인천광주
박원순[1]허남식김범일송영길강운태
대전울산세종경기강원
염홍철박성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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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한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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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식김문수최문순[3]
충북충남전북전남경북
이시종안희정김완주박준영김관용
경남제주
홍준표[4]우근민

[1] 전임자 오세훈 사퇴. (2011.8.26.)[2] 권한대행, 전임자 박맹우 사퇴. (2014.3.31.)[3] 전임자 이광재 지사직 상실. (정치자금 수수.) (2011.1.27.)[4] 전임자 김두관 사퇴. (201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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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희룡

[1] 권한대행, 전임자 권선택 시장직 상실. (2017.11.14.)[2] 권한대행, 전임자 안희정 사퇴. (2018.3.6.)[3] 권한대행, 전임자 이낙연 사퇴. (2017.5.12.)[4] 권한대행, 전임자 홍준표 사퇴. (20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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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공식적으로는 1956년 3월 26일이지만 실제 생년월일은 1955년 2월 11일이라고 한다. 네이버 인물정보에는 1956년 3월 26일으로 되어 있다.[2] 홍준표, 박영선과 같은 경상남도 창녕군 출신인데, 그 옆 동네 남지읍 출신이다. 출생 당시에는 남지면. 인근의 강리와 함께 밀양 박씨 집성촌이다. #[3] 박원순 서울특별시장 사망 사건 참고.[4] 삼청각과 숙정문 중간 지점에서 발견되었다.[5] 선산에 묻혔다.[6] 규정공파 71세손 '순'(淳)자 항렬.[붓펜서명] 파일:박원순 시장 서명.svg[8] 대구 출신으로 계명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였다. 그 인연 때문인지 신일희 계명대 총장의 교육 희년(50주년) 기념 행사 때 박원순이 축사 동영상을 찍어서 보내기도 했다.[9] 실종 당시 실종신고를 했던 인물. 서울 법대를 졸업했으나 미대에서 편입한 거라 논란이 있었다.[10] 2013년 5월 롯데호텔 임원의 딸과 결혼하였다.[11] 1969년 작은할아버지에게 양손으로 입양돼 부선망 독자(아버지가 먼저 사망한 외아들)로 8개월 방위로 병역을 마쳤다.[12] 관련 기사[13] 공식적으로는 무종교인이지만, 불교계와 인연이 꽤 깊었다. 또한 이 외에도 개신교, 원불교 등 타 종교계와도 다양하게 교류했었다. #[14] 중앙일보에서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서울시장 후보들에게 질문한 특집기사에서 다뤄졌다. 네이버 프로필에도 있다. 박원순의 시시콜콜 100문 100답[15] 후술하겠지만 헌정사상 최초의 무소속 (선출직) 서울시장이다. 무소속 신분으로 서울시장이 된 후 2012년 2월에 민주통합당 입당.[16] 참여연대 이전에도 국내에 여러 시민단체가 존재하기는 했지만, 정치에 직접 개입하지는 않았다. 해외 NGO 중에서는 민간인권전선, 그린피스, 씨 셰퍼드같은 사례가 압박 시민단체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17] 2001년 9월17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시민사회 발전을 위한 大토론회」에서 발언한 내용[18]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배후가 누구냐라고 물은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자 이 발언에 대해 엄청난 비난이 쏟아졌다.[19] 다만 2014년 서울시장 선거 때는 북한의 소행이라고 인정했지만, 침몰 원인이 이명박 정부에 있다는 주장을 되풀이했다.[20] 당시 선거에서는 아직 민주당에 입당하기 전이었다.[21] 특히, 재건축 아파트의 층수를 35층으로 제한하는가 하면, 옛 아파트 건물 일부를 문화유산이라며 남겨두는 정책을 고수했다. (결국 이 층수 제한은 박원순 사후 풀렸다.)[22] 오세훈 시장이 야심차게 추진한 마곡 워터프론트사업이 환경파괴 및 수질오염 논란으로 무산되고 한차례 변경된 사업이다.[23] 2021 아시아-태평양 조경상을 수상했다.[24] 박원순이 오세훈 때 추진되던 경전철을 취소했다가 2년 후 본인의 업적으로 재추진하자, 새누리당 박용찬 대변인은 경전철, 세빛둥둥섬, 동대문디자인플라자, 한강 르네상스 프로젝트 모두 박원순이 시장 취임 후 전시행정으로 비판하며 중단시더니 본인이 완성하여 본인의 업적으로 포장하는 것에 대해 위선적이라 비판했다.[25] 오세훈 시장 시절에도 서울 집값이 폭등했다는 반론이 있는데, 이는 사실이다. 하지만 오세훈 시절 초기 집값 폭등은 노무현 정부 부동산 정책의 실패로 인한 것이었다. 때문에 박원순 사망 이후 재보궐 선거에서도 민주당측과 박영선은 네거티브 와중에서도 오세훈 시절이 집값이 올랐다는 것을 쟁점화시키지 않았다. 물론 같은 논리로 박원순 시절 서울의 집값 폭등도 박원순 때문이 아니라 박근혜 및 문재인 정부의 정책 실패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역시 일정부분은 사실이다. 하지만 박원순의 재개발 억제 정책으로 문재인 정부 시절 집값이 지나치게 폭등한 부분도 분명히 있다. 즉 2010년대 후반 서울과 수도권 집값 폭등은 문재인 대통령과 박원순 당시 서울시장의 정책 실패가 콜라보로 부의 시너지 효과를 일으킨 사례이다.[26] 물론 그 이전 오세훈 시장때도 멀정한 다리를 뜯는것이라 논란이 많았다. 그러나 그와 별개로 일단 공사가 시작된 양화대교 공사를 영구 중단하고 공사 중단 상태로 영구 보존하겠다는 박원순의 주장에 대해서는 비판이 제기되었다.[27] 원래 오세훈 전 시장이 2011년 착공 예정으로 추진했으나, 박원순이 시장에 취임한 후 지연되다가 2016년에 착공되었다.[28] 박원순 본인이 직접 추진한 최초의 인프라 사업이었다.[29] 민자 도로라 요금이 상당히 비싼 편이다.[30] 이 정책은 문재인 정부에서 본격 시행되었는데, 박원순은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기 전부터 서울시에서 이를 추진해왔다.[31] 당시 민주당이 장악한 시의회에서조차 경전철 취소에 대해 반대하는 의견이 다수 있었다.[32] 따릉이 명칭 또한 시민과 숙의과정을 통해 정했다.[33] 박원순 성추행 사건 참조.[34] 법원은 성추행, 국가인권위원회는 성희롱 사실을 인정했다. 일반적으로 성희롱은 말로 하는 성폭력에 국한되지만, 법률 상의 용어로서 '성희롱'은 말로 하는 희롱 뿐 아니라 성추행, 성폭행, 강간 등의 범죄를 포괄하는 의미이므로,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성희롱의 의미와는 약간 다르다.[35] 대만리덩후이 전 총통(1.5년에 1권 꼴)을 이겼다.[36] 책 제목은 토마스 모어의 유언에서 비롯되었다.[37] 여러 지식인/정치인들이 노무현 前 대통령에 대해 서술, 회고한 내용인데, 박원순은 '우리는 꿈과 희망을 주는 정치인을 잃었다' 부분을 서술했다.[38] 몇몇 음모론자들은 책의 제목이 삼각형이라며 박원순 사망의 일루미나티 개입설을 주장한다.[39] 새정치민주연합에 흡수 합당[40] 전임자 오세훈 사퇴.
헌정 사상 최초의 무소속 선출직 서울특별시장.
2012.2 민주통합당 입당.
[41] 헌정 사상 최초의 3선 서울특별시장.
2020.7.9 임기 중 사망.
[42] 당시에는 호적상으로 나이를 말해서 1956년생 동갑으로 말하였다.[43] 옆에서 대화를 듣던 노회찬 역시 웃으며 손으로 브이를 그릴 만큼 농담을 받는 모습을 보였다.[44] 노회찬박원순 두 인물 모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45] 참고로 손석희와 최문순은 MBC 동기이기도 하다. 1984년 입사했다.[46] 이때 양상국에게 박원순이 추천해 준 책은 미생이다.[47] PK-TK의 접경지대인 창녕 출신이긴 한데 박원순 본인의 정치 성향 상 PK로 분류되는 일이 훨씬 많다.[48] 이 사람 또한 서부경남 쪽인 고성군에서 태어나 진주시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49] 다만 성격과 시장 당선이후의 상황은 좀 다른데 박원순의 경우 화가 날 법한 상황에서도 말로 대응하는 반면 커원저는 시의회에서 책상을 손으로 내리칠 정도로 성깔있는 타입이다. 그리고 박원순은 높은 지지율로 유례없는 서울특별시장 3선이라는 위업을 달성했지만, 커원저는 낮은 지지율로 재선이 불투명하다가 0.2%P차로 겨우 이기며 매우 고전하는 중.[50]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별명이다.[51] 아마도 서울시장의 지위에 있다 보니 수도방위사령관을 많이 만나게 되고 이로 인해 정보를 얻었을 가능성이 있다. 당시 수도방위사령관은 쿠데타 주도 세력으로 의심받는 구홍모 육군참모차장이었다.[52] 여담이지만, 안철수가 탈모 비하 발언을 했을 때 달렸던 베스트 댓글 중 하나가 ???: 뭐 이 XXX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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