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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장 권한대행 • 일제강점기 및 미군정 서울특별시장 |
<colcolor=#ffffff> 서울특별시장 서울特別市長 Mayor of Seoul Metropolitan Government | |
현직 | <colbgcolor=#ffffff,#1f2023>오세훈 / 제33·34·38·39대 (민선 4·5·7·8기) |
취임일 | 2021년 4월 8일 |
정당 | |
공관 | 서울특별시장 공관 |
[clearfix]
1. 개요
서울특별시장은 서울특별시를 대표하고, 그 사무를 총괄하는 광역자치단체장이다. 임기는 4년이며, 최대 3선까지 연임할 수 있다.[1] 중임에는 제한이 없으므로, 중간에 낙선하거나 중도 퇴임한 기록이 있으면 연속 재임 기록이 중단되고, 이후 다시 출마할 수 있다.[2]2. 특수성
우리나라의 수도인 서울특별시라는 상징성과 많은 인구 규모만큼이나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권한[3]과 나라에 미치는 영향력도 매우 크며, 정치적 비중도 아주 크다.[4] 다른 광역자치단체장들이 높아봐야 차관급으로 대우받는데 비하여, 서울특별시장만큼은 유일하게 장관급이라는 아주 높은 대우를 받는다.[5] 서울특별시는 "서울특별시 행정특례에 관한 법률"에 의거해서 행정안전부장관의 지휘를 받지 않고 국무총리가 직할하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장관급의 대우를 받으며, 의결권은 없지만 국무회의에 직접 참석하여 발언이 가능하다. 이는 옛날 조선 때도 비슷했는데, 관찰사(지금의 도지사) 등은 참판(차관)급(종2품) 대우를 받았지만, 한성부판윤(지금의 서울시장)은 판서(장관)급(정2품)이라는 높은 대우를 받았다.[6] 일제강점기에는 경성부가 된 특성상 경성부윤이라고 불렸다.2000년대 중반 이후 경기도의 인구가 서울특별시를 추월하기는 했지만, 서울특별시장의 특별 대우는 여전하다. 서울특별시장은 '수도의 시장'으로서 정치적 영향력 외에도 지방자치법에서 특례를 인정받아 지방자치법과 '서울특별시 행정특례에 관한 법률'을 통해 일부 특례를 적용받지만, 경기도지사는 다른 도지사들처럼 지방자치법만을 적용받기 때문이다. 다른 광역자치단체들의 경우 지방채 발행이나 자치사무의 감사를 행안부장관이 하지만 서울시는 행안부장관이 국무총리에게 손수 보고해야 한다. 또한 국가공무원의 임용 및 징계 등은 해당 주무부처 장관에게 있으나 대통령령에서 정하는 범위 내에서는 서울특별시장이 행사할 수 있다.[7]
다만 장관급의 대우를 받는다고 해서 명목상 서열까지 다른 광역자치단체장보다 높은 건 아니다. 전국시도지사협의회에서 서울특별시장이라고 특별히 권한이 더 크지도 않으며, 발언권도 똑같이 공평하게 받는다.
서울특별시가 설립하고 운영 중인 서울시립대학교의 운영위원장도 당연직으로 맡고 있다. 이 운영위원장을 이사장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심심찮게 보이는데, 서울시립대학교는 아직 법인화가 되지 않았으므로 이사장은 잘못된 표기이다.
2.1. 우여곡절의 정치 커리어
<rowcolor=white> 선거 | 낙선자 | 비고 |
1995년 | 박찬종2 | <colbgcolor=#ffffff,#1f2023>계속된 낙선[8] 후 정계 은퇴 |
정원식3 | 낙선 후 정계 은퇴, 소속 정당인 민주자유당 참패 여파로 김대중의 정계 복귀 | |
1998년 | 최병렬2 | 노무현 탄핵 소추안 제출 후 가결로 인한 정치적 역풍으로 한나라당 대표직 사퇴, 이후 정계 은퇴 |
2002년 | 김민석2 | 지방선거 패배 후 새천년민주당의 대선 후보였던 노무현의 지지율이 떨어지자 탈당하여 정몽준 캠프로 이적하였지만 이후 노무현으로 단일화되며 복당하였고, 이로 인해 철새 이미지가 생기며 원내 복귀까지 장장 18년 소요[9] |
2006년 | 강금실2 |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불출마 선언, 사실상 정계 은퇴 |
박주선3 | 이후 광주광역시 동구로 지역구 옮김, 4선까지 성공하며 국회부의장 자리까지 오르지만, 본인의 소속 정당인 민생당의 몰락과 3위 낙선으로 5선에는 실패[10] | |
2010년 | 한명숙2 | 이후 민주통합당 대표 역임과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참패, 불법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복역, 사실상 정계 은퇴 |
노회찬3 | 이후 정의당 원내대표, 2018년 드루킹 불법 정치자금 수수 사건에 연루되어 수사 중 투신 자살 | |
지상욱4 | 본인의 소속 정당인 자유선진당의 몰락, 새누리당으로 흡수 합당[11], 이후 20대 총선을 통해 원내 입성에 성공하지만 21대 총선에서는 낙선[12] | |
2011년 | 나경원2 | 선거 기간 동안 제기된 각종 의혹과 논란으로 인한 이미지 추락, 이후 동작 을로 지역구를 옮겨서 4선 의원까지 성공하고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를 지내며 재기하였으나, 연이은 선거에서 패배[13] |
2014년 | 정몽준2 | 버스비 70원, 정몽주니어 논란 등으로 인한 이미지 추락, 이후 20대 총선에 불출마하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계기로 새누리당을 탈당하며 정계 은퇴 |
2018년 | 김문수2 | 강성 친박으로 전향[14], 박근혜 석방 집회 참석과 전광훈과의 커넥션으로 인한 극우 이미지 고착화와 사실상 제도권 정계에서의 축출[15] |
안철수3 | 막스 플랑크 혁신과 경쟁 연구소로 연수 후 정계 복귀, 차기 대선 지지율 급락[16] | |
2021년 | 박영선2 | 선거 기간 동안 잦은 실언과 네거티브 전략으로 인한 이미지 추락과 큰 표차로 참패하며 정치적 입지 좁아짐[17] |
2022년 | 송영길2 | 정치적 입지 좁아짐[18] # |
특이하게도 서울시장 선거 패자는 그걸 끝으로 아예 정계를 떠나서 잊혀지거나, 정치 생활은 연명하되 상승세는 확 꺾이는 경우가 상당히 많이 보이는데, 다음은 그 목록이다. 위첨자 표시된 숫자(2, 3 등)는 서울시장 선거 순위이다. 당선인들 역시 이명박 전 시장 이후로 계속 끝이 안 좋다.[19]
다만 위에서 거론된 사례들을 비교해 보면 각 낙선자의 사례간에 차이가 커서 일률적으로 일일이 비교하기는 어렵고, 특이한 징크스라기보다는 그냥 서울특별시장이라는 직위 자체의 특수성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할 수도 있다. 일단 서울특별시장 자체가 선출직 공무원 중에서는 수도이자 인구 천만 명 도시의 특수성 때문에 대한민국 대통령에 이어 두 번째로 정치적 위상이 높은 자리[20]이고, 정치적으로도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를 비롯한 주요 선거들마다 승패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표밭으로 여겨지는 서울(수도권)의 지지를 얻어야 당선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비수도권 거주자도 서울시장만큼은 누군지 알지만, 반대로 수도권 거주자는 경기도지사나 인천광역시장 정도만 알지 충청도나 전라도, 강원도, 경상도, 제주도, 대전, 광주, 대구, 울산, 부산 등 지방 지역들의 시장이나 도지사는 누군지도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하지만 정작 현재 기준으로 (민선) 서울시장을 거쳐 대통령에 이른 인물이라곤 겨우 이명박밖에 없는데, 이는 6공 이후 우리나라의 정치 제도 특징상 서울시장은 국내의 선출직 공무원 중에서는 사실상 2인자로서 소통령이라고 불릴 정도지만, 실제 업무라곤 지방자치단체의 장으로서 중앙 정계와는 한 발짝 떨어져 있다는 특성을 가지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대통령으로 이르는 정치적 경력을 착착 밟아나가고 있는 유력 대권후보급 주요 정치인의 입장에서 보면 중앙 정계에서 물러나 서울시장에 도전하기보다 국회의원이나 장관 등 중앙 정계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것이 더 매력적이고 안정적인 선택지로 여겨질 가능성도 충분히 높은 것.
실제로 역대 서울시장 선거에 도전한 주요 정치인들의 사례를 보더라도 성공적인 경력(대표적으로 국회의원 당선)을 이어가고 있던 도중 서울시장 선거에 도전한 사례보다는[21], 일시적 정치 활동 중단이나 낙선 등으로 인해 기존 경력이 중단된 상태에서 다시 정치 무대에 복귀하기 위한 토대로써 지방선거에 도전하는 경우가 많았음을 알 수 있다. 대표적으로 역대 서울시장 중 가장 성공적인 정치적 경력인 대통령을 거친 이명박의 경우를 보더라도 15대 총선 당시의 불법 선거 운동으로 의원직을 상실당할 위기에 쳐하자 자진 사퇴한 후 결국 피선거권을 박탈당했다가 사면 복권된 후 서울시장 도전으로 정계 복귀를 시도한 뒤 성공한 케이스다. 16대 국회 당시 정치에 갓 입문한 초선 국회의원에 불과하였던 오세훈 서울시장 역시 17대 총선 불출마 선언을 하고 정계와 잠시 거리를 두고 있다가, 2006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정계에 복귀한 뒤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해 당선된 케이스다.
이런 점을 종합해 보면 서울시장 선거에서 패배한 사람은 그것을 끝으로 정계를 떠나서 잊혀지거나 설사 정치 생활은 연명하되 상승세가 확 꺾이고 입지도 좁아지는 경우가 많은 이유가 무엇인지 쉽게 짐작해 볼 수 있다. 서울시장 자체가 선출직 공무원들 중 사실상 2위의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 만큼 서울시장에 도전했던 정치인이 정치적 상승세를 보이려면 먼저 대권주자급이 되어야 한다. 즉, 서울시장 후보급에서 경력이 상승할 길[22] 자체가 워낙 좁으니 그 좁은 길로 들어가지 못하면 상승세가 확 꺾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서울시장 후보급 경력의 정치인 정도라면 이미 정치 경력 자체가 상당히 긴 원로급 정치인일 가능성이 높고, 나이 역시 적지 않을 가능성이 높으니 선거에서 패배하면 재기와 재도전을 하지 못하고 정계 은퇴 수순을 밟게 되더라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더구나 지방자치단체장인 서울시장에 도전하는 정치인 중 중앙 정계에서의 경력이 단절되어 지방선거를 통해 정계에 복귀하려는 이들의 비중이 상당하다는 점도 생각하면 정계 복귀에 실패하면 정치적 은퇴 수순을 밟게 되는 것 역시 이상한 일이 아닌 셈.
뿐만 아니라 이명박 이후 서울시장을 거친 이들은 어째 말년이 안 좋다. 이명박 전 시장의 경우 임기를 무사히 마쳤고 대통령까지 당선되었으나, 각종 범죄 사실들로 인해 징역형을 선고받아 수감 생활을 했다가 2022년 연말에 사면되었다.[23] 오세훈 시장은 2011 서울특별시 무상급식 주민투표 개표 무산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재선 임기 시작 1년 1개월 만에 사퇴했다가 서울시장으로 복귀할 때까지 10년을 야인으로 지내야 했으며, 박원순 전 시장은 여비서 성추행 사건으로 피고소된 후 자살했다.
대선 출마를 위해 중도 사퇴를 한 초대 민선 시장 조순 전 시장을 제외하면 초선 기준으로는 모두 임기를 무사히 마쳤다. 하지만 이명박, 고건 전 시장을 제외하면 재선까지 포함했을 때 임기를 무사히 마치지는 못했다.
그러나 진보정당 출신으로 출마한 정태흥, 김종민, 송명숙, 권수정 등의 경우(김종철, 노회찬 후보 제외)에는 이러한 은퇴 수순이라는 징크스가 발동하지 않아 민주당계 정당 및 보수정당에게만[24] 한정된 징크스라고 볼 수 있다.
2.2. 서울특별시장 선거 100% 적중 지역
<rowcolor=white> 서울특별시장 선거 적중 지역 결과 | |||||
연도 | 당선인 | 중구 | 양천구 | 영등포구 | 강동구 |
1995년 | 조순 (42.4%) | 조순 (44.1%) | 조순 (41.8%) | 조순 (41.7%) | 조순 (39.8%) |
1998년 | 고건 (53.5%) | 고건 (54.9%) | 고건 (54.5%) | 고건 (53.9%) | 고건 (52.1%) |
2002년 | 이명박 (52.3%) | 이명박 (50.1%) | 이명박 (52.6%) | 이명박 (50.9%) | 이명박 (55.1%) |
2006년 | 오세훈 (61.1%) | 오세훈 (59.6%) | 오세훈 (61.5%) | 오세훈 (60.8%) | 오세훈 (64.6%) |
2010년 | 오세훈 (47.4%) | 오세훈 (47.6%) | 오세훈 (47.5%) | 오세훈 (47.5%) | 오세훈 (50.0%) |
2011년 | 박원순 (53.4%) | 박원순 (52.0%) | 박원순 (53.5%) | 박원순 (53.6%) | 박원순 (51.6%) |
2014년 | 박원순 (56.1%) | 박원순 (55.3%) | 박원순 (57.6%) | 박원순 (56.3%) | 박원순 (54.5%) |
2018년 | 박원순 (52.8%) | 박원순 (52.3%) | 박원순 (53.2%) | 박원순 (52.1%) | 박원순 (52.7%) |
2021년 | 오세훈 (57.5%) | 오세훈 (56.8%) | 오세훈 (57.5%) | 오세훈 (58.4%) | 오세훈 (59.2%) |
2022년 | 오세훈 (59.1%) | 오세훈 (58.5%) | 오세훈 (58.8%) | 오세훈 (60.1%) | 오세훈 (60.6%) |
득표율 차이(%p) | 1995 | 1998 | 2002 | 2006 | 2010 | 2011 | 2014 | 2018 | 2021 | 2022 | 평균 |
양천구 | 0.6 | 1.0 | 0.3 | 0.4 | 0.1 | 0.1 | 1.5 | 0.4 | 0.0 | 0.3 | 0.47 |
영등포구 | 0.7 | 0.4 | 1.4 | 0.3 | 0.1 | 0.2 | 0.2 | 0.7 | 0.9 | 1.0 | 0.59 |
1987년 민주화 이후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부터 서울특별시장 선거는 총 10번을 진행하였다. 지방선거 8번, 재보궐선거 2번.
서울은 자치구가 25개 있는데, 25개 자치구 중 10번의 서울시장 선거를 정확히 예측한 100% 적중 지역, 즉 구 개표 결과 1위와 서울특별시장 당선인이 일치한 지역은 딱 4개 구가 있다. 나머지 지역은 거의 대부분 2010년 지방선거에서 한명숙 후보를 더 많이 지지하여 떨어졌다.중구와 영등포구는 대표적인 상업지구로 지역 주민보다 외지인들이 더 많은 곳이고, 목동이 있는 양천구와 둔촌동이 있는 강동구는 주거지역이다. 중구를 제외하고 나머지 3곳 모두 한강 이남에 있다. 서울시장 선거와 득표율까지 가장 가까이 맞히는 지역은 바로 양천구. 특히 2021년의 경우에는 소수점 단위까지 일치하여 득표율까지 동률이 되었다. 아래는 서울 전체 득표율과 해당 구의 득표율 차이를 정리해 놓은 것이다.
3. 법적 권한
서울특별시 행정특례에 관한 법률
제4조(일반행정 운영상의 특례)
⑤ 서울특별시 소속 국가공무원의 임용 등에 관한 「국가공무원법」 제32조제1항부터 제3항까지, 제78조제1항ㆍ제4항 및 제82조에 따른 소속 장관 또는 중앙행정기관의 장의 권한 중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항은 서울특별시장이 행사하며,[25] 이와 관련된 행정소송의 피고는 같은 법 제16조에도 불구하고 서울특별시장이 된다. <개정 2011.5.30.>
⑦ 서울특별시 소속 공무원 등에 대한 서훈(敍勳)의 추천은 「상훈법」 제5조제1항에도 불구하고 서울특별시장이 한다. <개정 2011.5.30.>
제4조(일반행정 운영상의 특례)
⑤ 서울특별시 소속 국가공무원의 임용 등에 관한 「국가공무원법」 제32조제1항부터 제3항까지, 제78조제1항ㆍ제4항 및 제82조에 따른 소속 장관 또는 중앙행정기관의 장의 권한 중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항은 서울특별시장이 행사하며,[25] 이와 관련된 행정소송의 피고는 같은 법 제16조에도 불구하고 서울특별시장이 된다. <개정 2011.5.30.>
⑦ 서울특별시 소속 공무원 등에 대한 서훈(敍勳)의 추천은 「상훈법」 제5조제1항에도 불구하고 서울특별시장이 한다. <개정 2011.5.30.>
국무회의 규정
제7조(대리 출석) ① 국무위원이 국무회의에 출석하지 못할 때에는 각 부의 차관(행정안전부의 재난안전관리사무에 관하여는 이를 담당하는 본부장을 포함한다)이 대리하여 출석한다.
② 대리 출석한 차관은 관계 의안에 관하여 발언할 수 있으나 표결에는 참가할 수 없다.
제8조(배석 등) ① 국무회의에는 대통령비서실장, 국가안보실장,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 국무조정실장, 국가보훈처장, 인사혁신처장, 법제처장, 식품의약품안전처장, 공정거래위원회위원장, 금융위원회위원장, 과학기술혁신본부장, 통상교섭본부장 및 서울특별시장이 배석한다. 다만, 의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중요 직위에 있는 공무원을 배석하게 할 수 있다.
② 의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중앙행정기관인 청(廳)의 장으로 하여금 소관 사무와 관련하여 국무회의에 출석하여 발언하게 하거나 관계 전문가를 참석하게 하여 의견을 들을 수 있다.
제7조(대리 출석) ① 국무위원이 국무회의에 출석하지 못할 때에는 각 부의 차관(행정안전부의 재난안전관리사무에 관하여는 이를 담당하는 본부장을 포함한다)이 대리하여 출석한다.
② 대리 출석한 차관은 관계 의안에 관하여 발언할 수 있으나 표결에는 참가할 수 없다.
제8조(배석 등) ① 국무회의에는 대통령비서실장, 국가안보실장,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 국무조정실장, 국가보훈처장, 인사혁신처장, 법제처장, 식품의약품안전처장, 공정거래위원회위원장, 금융위원회위원장, 과학기술혁신본부장, 통상교섭본부장 및 서울특별시장이 배석한다. 다만, 의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중요 직위에 있는 공무원을 배석하게 할 수 있다.
② 의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중앙행정기관인 청(廳)의 장으로 하여금 소관 사무와 관련하여 국무회의에 출석하여 발언하게 하거나 관계 전문가를 참석하게 하여 의견을 들을 수 있다.
서울시장은 국무회의에 배석할 권리 혹은 의무(과거)가 있다. 이는 대한민국 출범 후 참여정부 시기를 제외하고 서울시장에게 주어진 의무 혹은 권리였다. 단 참여정부는 서울시장(당시 32대 한나라당 이명박, 33대 한나라당 오세훈)의 국무회의 참여를 금지했다.[26]
4. 상세
임명직 시장 시절부터 현행 선출직 시장까지 국무회의에도 참석이 가능하며, 발언권은 있지만 의결권은 없다. 실제로 박원순 전 시장도 의결권이 없다는 것을 발언한 적이 있다. 관련 기사 국무회의에서 발언권과 표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국무위원들은 모두 국무회의 부의장의 제청에 따라 국무회의 의장이 임명한 자들이고 그 외의 다른 배석 인원들은 모두 국무회의 의장이 직접 임명한 자들이다. 또한 모든 국무회의 안건들은 의장이나 부의장, 그리고 국무위원들에 의해서 제의되기 때문에 국무회의를 이끄는 주류에 반대 입장을 내는 참석자는 야당 소속 서울특별시장 밖에 없다. 그래서 가끔씩 반대 의견이 나오면 이런 이유에서다.장면 내각 시절에는 민선 서울시장도 각의(현재의 국무회의)에 의무적으로 참석했다. 이때 민선 서울시장이 김상돈 한 명뿐이고 임기도 몇 달 못 갔다는게 함정이지만. 5.16 군사정변으로 지방자치제도가 폐지되고 난 관선제 시절에는 당연히 서울시장도 국무회의에 의무적으로 참석했고, 1995년에 다시 민선 서울시장이 들어오면서 권리로 약화된 것이다. 그래도 민선 1기 조순 전 시장과 민선 2기 고건 전 시장은 다른 일정이 없는 한 화요일 정례 국무회의에 매주 참석했다. 2002년에는 이명박이 서울시장이 되면서 정무부시장을 대타로 보내는 등 조금씩 출석율이 떨어졌다. 그러다가 참여정부 시기(2003~2008)에는 서울시장의 국무회의 참석을 금지시켰다가 2008년에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다시 국무회의에 배석되어 당시 오세훈 시장(2006~2011)은 국무회의에 꽤 자주 참석했다. 3개월에 1회는 정례적으로 참석하고[27], 보통은 정무부시장을 배석시켰다. 그러나 박원순 전 시장 때는 정무부시장도 보내지 않아 국무회의 참석율이 10% 아래로 떨어지기에 이른다. 지금은 정말로 예산시즌 아니면 아예 서울시장이 국무회의에 찾아가질 않지만 정권이 교체되었고, 오세훈 시장은 이전부터 국무회의에 잘 참석했으므로 추이는 지켜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규정은 서울특별시장이 배석한다이지 배석할 수 있다가 아니다. 즉 현재까지도 규정상 서울시장은 의무적으로 국무회의에 참석해야하는 존재이다. 서울시장한테 출석 의무를 달아놓은 규정은 2008년 2월 29일에 생겼다. 이렇게 대통령령 개정으로 서울시장에게 국무회의 출석 의무를 지워놓은 인물은 바로 서울시장 출신 이명박이다.
여하간 정치적 위치와 상징성 때문에 서울특별시장은 사실상 차기 대권주자로 보내기에 딱 좋은 위치이어서 뭇 사람들의 관심이 쏠린다. 정치에 관심 많은 전국의 시민들이 서울특별시장 선거에 많은 관심을 쏟는 것도 다음 차기 대선후보를 점칠 수 있는 지표 중 하나라서 그런 것이다. 이 테크가 아니어도 전·현직 시장이 가지는 정치적 가치는 어마어마해서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유력한 차기 대선 후보로 전·현직 서울특별시장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은 정치계에선 당연한 일로 자리를 잡았다. 아래 주요 서울특별시장만 봐도 한국 정치사에 크나큰 영향을 미친 사람들임을 알 수 있다.
윤보선, 이명박이 서울시장을 지낸 뒤에 대통령이 되었고, 허정과 고건은 국무총리로 지내다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기도 했다. 특이한 점으로 서울시장 출신 총리는 허정, 고건 둘밖에 없어서 서울시장 출신 총리 = 대통령 권한대행이라는 것이다.
1994년 10월 21일 성수대교 붕괴 사고로 전임 시장(이원종)의 경질 이후, 후임 시장에 취임했던 우명규는 취임하자마자 첫 임무를 무겁게 시작했다. 그러나 성수대교 건설 당시 서울특별시청 건설본부장으로서 실무 총책임자였다는 게 밝혀져 11일 만에 자진 사퇴[28]하고 최병렬이 시장으로 임명된다. 그러나 최병렬 전 시장도 퇴임 전날에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가 일어나, 조순 전 시장은 취임식하자마자 바로 사고 현장으로 달려가서 상황을 살피고 첫 임무를 무겁게 시작했다.
역대 최연소 서울시장은 경성부윤 취임 당시 39세였던 김형민 전 시장이며, 그 다음은 40세였던 김현옥 전 시장이다. 민선 기준으로는 초선 취임 당시 45세였던 오세훈 시장이 있다.
시장에게는 재임 기간 동안 거처할 수 있는 공관이 제공된다. 위치는 종로구 혜화동에서 삼청동 공관촌과 가회동 서울재동초등학교의 인근으로 이전하였다. 기존의 공관은 서울 한양도성 전시안내센터로 리모델링되었다.
참고로 민선 구청장 및 시의원 출신은 아직 없는게 특징이다. 구청장 출신은 시장은 물론 주요 정당의 시장 후보로조차 선출되는 일이 없다시피한데, 구청장의 권한이 동급인 자치시장보다 확연히 적고 반대로 서울특별시장은 동격인 광역시장이나 도지사에 비해서도 위상이 높다 보니 구청장 정도로는 서울시장을 노리기에 부족하다고 여겨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서울시내의 구청장만 해도 25명이나 되다 보니 서울 전체에서 단 1명 뿐인 서울특별시장을 노리기에는 정치적 관심도나 언론 노출 빈도가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기도 하다. 시의원은 시정을 견제하는 역할을 하지만, 권수정 10대 서울시의원이 유일하게 출마하였다.
호남 출향민 비중이 높은 서울로 비록 초대 서울시장이 호남 출신이지만 민선 서울시장 중 호남 출신은 아직까지는 고건[29] 한 명뿐이다. 다만 호남 출향민들을 의식해서인지 박원순 전 시장은 임기 중 서울 부시장 3인을 호남 출신으로 기용한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30] 또한 역대 민선 서울시장 중 위의 고건의 경우를 제외하면, 순수 서울 출신은 오세훈 한 명 뿐이다.
역대 서울시장 선거에서 적중률 100%의 승패 판독기 역할을 한 자치구는 중구, 양천구, 영등포구, 강동구다. # 이 4개의 자치구는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부터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까지 각 선거의 서울시장 당선인들이 모두 승리한 지역이다. 다시말해 해당 지역에서 승리한 후보들은 모두 서울시장에 당선되었다는 의미다. 이 중에서 특히 양천구와 영등포구는 각 후보의 해당 지역에서의 득표율과 서울 전체 득표율이 비슷하게 나온 적이 많아 서울시장 선거 때 특히 주목을 받는다. #
그 외에도 송파구가 서울시장 선거의 판독기 역할을 했는데, 이는 송파구의 인구가 많은 것도 있지만[31] 다른 지역에서 인구가 많이 유입된 지역이기 때문이다.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접전 끝에 패배한 한명숙은 25개 지역구 가운데 17곳에서 승리하고도 오세훈에 패배했는데 오세훈이 승리한 지역 8곳 중 하나가 송파구였다. # 하지만 2011년 하반기 재보궐선거 당시에는 박원순이 아닌 나경원이 송파구에서 1위를 기록하면서, 적중률 100%의 족집게 지역에서 탈락했다. 그래도 재보궐선거를 제외한 정식 선거에서의 승자는 모두 맞혔기 때문에, 위의 4개 자치구와 함께 족집게 지역으로 종종 거론된다.
5. 주요 인물
- 김형민: 초대 시장. 시작은 경성부윤이었다가 서울특별자유시장으로 직함명이 바뀌었다. 후임자가 대통령까지 돼서 워낙 유명해지는 바람에 상대적으로 묻혔으나 우남시가 될 뻔한 현 서울시 지명을 지켜내었고 그 외 다수의 일제 잔재 지명을 바꾸는 데에 기여한 인물이다.
- 이기붕: 제3·4대 시장. 재임 중에 서울시의 정식 명칭이 현재의 서울특별시로 확정되면서 4대 임기부터 서울특별시장으로 불리기 시작한다. 이후 대한민국 부통령 선거에 나갔으나 그 선거가 3.15 부정선거였던 탓에 당선이 무효화되고, 4.19 혁명 후 아들에게 살해된다.
- 허정: 제8대 시장. 재임 중에 미국 필라델피아 시장의 초청을 받아 미국의 여러 도시들을 시찰하고 오기도했다. 훗날 4.19 혁명 직후 국무총리 겸 외무부장관으로서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아 과도내각의 수반이 되었다.
- 김현옥: 제14대 시장. 5.16 군사정변에 가담하여 제12대 경상남도 부산시장에 임명되었으며 부산시를 직할시로 승격시키고자 부산과 중앙을 새벽 열차로 왕래하면서 직할시 승격 필요성을 역설한 끝에 중앙의 승인을 획득하여 직할시 승격에 성공하고[32] 첫 직할시장(대수로는 12·13대)이 되었다가 몇 년 뒤 이 자리로 이임하였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 재임시절 가졌던 불도저 시장이라는 별명의 원조가 되는 인물로, 파리의 오스만 시장에 버금가는 서울 대개조 사업을 벌였다. 이는 비단 서울시장 시절 뿐만 아니라 부산시장 재임 중에도 마찬가지였다. 1960년대 말 서울의 주거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판잣집을 철거하고 시민아파트를 짓는 개발 정책을 주도했고, 서울전차 폐선[33]과 서울 지하철 기본 계획 수립도 이 사람이 했다. 오늘날 우리나라 아파트 문화를 연 장본인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너무 개발 정책에만 목을 맨 나머지 대형 참사를 일으키고 사임하였다. 나중에 내무부장관으로 영전한다.
- 양택식: 제15대 시장. 두더지 시장이란 별명으로 유명하다. 이 사람 임기에 그 악명 높은 광주대단지사건이 터졌다. 앞의 별명에서 알 수 있듯이, 서울 지하철 1호선의 공사를 총지휘했던 시장인데 하필이면 1호선 완공 당일 육영수 여사가 비명횡사하여 얼마 후에 사퇴하였다.
- 구자춘: 제16대 시장. 전임자가 만든 서울 지하철 계획을 자기 입맛에 맞게 적절하게 변형하여 지금의 서울 지하철 2호선, 서울 지하철 3호선, 서울 지하철 4호선의 서울시내 구간을 만들어냈다. 특히 2호선 계획 당시 지도에 줄 그어서 30분 만에 순환선으로 만들었다는 전설이 나름 유명.[34] 이러한 서울 지하철 계획 변경으로 인해 강남 개발이 가속화 되었다. 별명은 황야의 무법자였다. 훗날 내무부장관을 지냈다.
- 박영수: 제18대 시장. 임기 중에 1988 서울 올림픽 유치에 성공하기도 하였으나 1982년 4월 서울 지하철 3호선 무악재 구간 공사장에서 붕괴 사고가 일어나 경질되었다.
- 염보현: 제20대 시장. 치안본부장(현 경찰청장) 출신이다. 재임 기간 서울 지하철 2, 3, 4호선을 완공했고, 한강종합개발을 추진했으며, 가락동 농수산물시장 개장, 목동신시가지 건설 등 수많은 업적을 남겼다. 경희궁, 보라매공원, 종묘공원, 석촌호수 공원계획을 수립하고 추진하기도 하였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의 성공은 실질적으로 염보현의 공적이라 보는 사람이 많다. 부임 중에 이규동 대한노인회장 등 전두환 전 대통령의 친인척과 연루됐던 비리로 인해 1988년 구속되었다.
- 고건: 제22·31대 시장. 관선과 민선으로 2번 시장을 한 특이한 사례.[35] 임기 초부터 제일 중요한 시정 현안은 교통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교통관련 정책을 많이 펼쳤다. 2기 지하철과 동부간선도로를 개통시키고, 서울 시내버스에 천연가스버스를 도입해 당시 심각했던 서울의 대기오염을 대폭 감소시키는데 기여했다. 뒷날 국무총리 재임 중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았다.
- 최병렬: 제29대 시장. 마지막 관선 시장이다. 성수대교 붕괴 사고 직후부터 퇴임 전날의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즉 '사고에서 시작하여 사고로 끝난' 비운의 서울시장이다. '최틀러'라는 별명이 무색하게 사고 현장에서 너무 기가 막혀 눈물만 흘렸다고 한다. 민선제가 도입된 이후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당시 야당 후보로서 여당의 고건 후보에 맞섰지만 패배하였다. 훗날 한나라당 대표가 되어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을 주도하기도 하였다.
- 조순: 제30대 시장. 최초이자 5공 이전의 유일한 민선 서울시장이었던 제11대 김상돈 전 시장(2공)의 뒤를 잇는 민선 서울시장인 동시에 6공 최초의 민선 서울시장이다. 안타깝게도 시장에 당선된지 2일 후에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가 발생하는 바람에 취임식도 대폭 축소하여 간소하게 치르고 바로 사고 현장부터 가서 상황을 살핌으로써 첫 임무를 무겁게 시작하였다. 임기 중 통합민주당 후보로서 15대 대선에 출마하기 위해 시장직에서 사퇴하였으나 지지율이 정체되며 대선 후보직에서 사퇴하였다. 직후에는 신한국당과 합당하여 한나라당을 창당하며 초대 총재가 된다.
- 이명박: 제32대 시장. 재임기간 동안 청계천 복원, 서울광장 개장, 서울 대중교통 체계 개선 등으로 김현옥 이어 제2의 불도저 시장으로 불리며 성과가 크게 부각되어 이후 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에 당선된다.
- 오세훈: 제33·34·38·39대 시장. 최초로 재선에 성공한 민선 시장이다. 뚜렷한 행정 성과, 반듯한 이미지와 외모로 강력한 차기 대권 후보로 거론됐지만 재선 때 승리 아닌 승리를 거두며[36] 불안한 모습을 보이더니 2011 서울특별시 무상급식 주민투표 패배로 사퇴하였다. 그러나 중도 사퇴 후 10년 간의 공백기를 보낸 뒤 2021년 재보궐선거로 서울시장에 다시 당선되어 박원순에 이은 헌정사상 두 번째 3선 서울시장이 되었고, 2021년 4월 8일 제38대 서울특별시장으로 취임하여 현재까지 시정을 이끌고 있다. 2022년 6월 2일,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헌정 사상 최초의 민선 4선 광역자치단체장, 최초의 4선 서울특별시장 자리에 올랐다.
- 박원순: 제35-37대 시장. 위의 오세훈 시장의 사퇴로 열린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되었다. 첫 출마 당시 아름다운가게와 참여연대 설립에 참여한 인권변호사 이력에 비해 인지도가 높지 못해 5% 정도의 인기 없는 후보였으나, 당시 야권 후보 안철수의 양보 및 적극적인 지원으로 인하여 극적으로 시장에 당선되었다.[37] 2011년 10월 27일에 취임하여 2014년 재선에 성공하였고 재선 임기 3년차에 들어서면서 조선 건국 이래 최장기간을 재임하는 서울의 책임자(한성판윤과 경성부윤 포함)였으며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로 연속 3선에 성공한 서울시장이다. 그러나 재임 중 여비서를 성추행한 사건으로 피고소된 후 2020년 7월 9일 밤 북악산 부근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다.
6. 역대 시장 목록
역대 시장의 사진과 주요 업적에 대해서는 서울시 홈페이지의 이 문서를 참고. 서울시 측에서는 초대 시장을 김형민으로 삼고 있다.조선시대의 판한성부사 -> 한성부 판윤을 거쳐간 인물 2016명의 명단 중 일부는 이 곳에서 볼 수 있다.[38] 다른 자료로 서울특별시 조직변천사I(1987)의 부록[39] 있는데, 이 자료에서는 총 인원이 현재 시장인 39대 오세훈 시장까지 포함해도 1430명 밖에 되지 않는다.
6.1. 한성판윤
6.2. 경성부윤
<rowcolor=white> 일제강점기 조선 경기도 경성부윤[40] | ||||
<rowcolor=white> 대수 | 이름 | 임기 | 당적[41] | 비고 |
초대 | 오바 간이치 (大庭寛一) | 1910년 10월 1일 ~ 1912년 3월 31일 | 조선총독부 | [42] |
2대 | 가나야 미쓰루 (金谷充) | 1912년 4월 1일 ~ 1919년 12월 3일 | [43] | |
3대 | 사이토 레이조 (斎藤礼三) | 1919년 12월 4일 ~ 1921년 8월 4일 | [44] | |
4대 | 요시마쓰 노리오 (吉松憲郎) | 1921년 8월 5일 ~ 1923년 2월 23일 | [45] | |
5대 | 다니 다키마 (谷多喜磨) | 1923년 2월 24일 ~ 1925년 6월 14일 | [46] | |
6대 | 마노 세이이치 (馬野精一) | 1925년 6월 15일 ~ 1929년 1월 20일 | [47] | |
7대 | 마쓰이 후사지로 (松井房治郎) | 1929년 1월 21일 ~ 1929년 12월 10일 | [48] | |
8대 | 세키미즈 다케시 (関水武) | 1929년 12월 11일 ~ 1930년 12월 11일 | [49] | |
9대 | 안도 게사이치 (安藤袈裟一) | 1930년 12월 12일 ~ 1931년 9월 22일 | [50] | |
10대 | 이노우에 기요시 (井上清) | 1931년 9월 23일 ~ 1933년 12월 4일 | [51] | |
11대 | 다테 요쓰오 (伊達四雄) | 1933년 12월 5일 ~ 1936년 5월 20일 | [52] | |
12대 | 간자 요시쿠니 (甘蔗義邦) | 1936년 5월 21일 ~ 1937년 7월 2일 | [53] | |
13대 | 사에키 아키라 (佐伯顕) | 1937년 7월 3일 ~ 1938년 11월 8일 | [54] | |
14대 | 다카하시 사토시 (高橋敏) | 1938년 11월 9일 ~ 1941년 1월 23일 | [55] | |
15대 | 야노 모모로 (矢野桃郎) | 1941년 1월 24일 ~ 1942년 5월 21일 | [56] | |
16대 | 후루이치 스스무 (古市進) | 1942년 5월 22일 ~ 1945년 5월 1일 | [57] | |
17대 | 이쿠타 세이자부로 (生田清三郎) | 1945년 5월 2일 ~ 1945년 6월 15일 | [58] | |
18대 | 쓰지 게이고 (辻桂五) | 1945년 6월 16일 ~ 1945년 8월 15일[59] | [60] | |
<rowcolor=white> 미군정 조선 경기도 경성부 군정부윤[61] | ||||
초대 | 제임스 킬러프 (James S. Killough) | 1945년 9월 9일 ~ 1945년 11월 16일 | 미군정 | [62] |
2대 | 제임스 윌슨 (James Willson) | 1945년 11월 17일 ~ 1946년 9월 27일 | [63] | |
<rowcolor=white> 미군정 조선 경기도 경성부 민정부윤[64] | ||||
초대 | 이범승 (李範昇) | 1945년 10월 25일[65] ~ 1946년 5월 9일[66] | 미군정 | [67] |
권한대행 | 김성환 (金聖煥) | 1946년 5월 10일 ~ 1946년 6월 29일 | [68] | |
2대 | 김형민 (金炯敏) | 1946년 6월 30일[69] ~ 1946년 9월 27일 | [70] |
6.3. 역대 서울특별자유시장
<rowcolor=white> 관선 서울특별자유시장 | |||||
<rowcolor=white> 대수 | 사진 | 이름 | 임기 | 당적[71] | 비고 |
초대 | | 김형민 (金炯敏) | 1946년 9월 28일 ~ 1948년 12월 14일 | 미군정 | [72] |
2대 | | 윤보선 (尹潽善) | 1948년 12월 15일 ~ 1949년 6월 5일 | 이승만 정부 | [73] |
3대 | | 이기붕 (李起鵬) | 1949년 6월 6일 ~ 1949년 8월 14일 | [74] |
6.4. 역대 서울특별시장
6.4.1. 관선 1차
<rowcolor=white> 관선 서울특별시장 | |||||
<rowcolor=white> 대수 | 사진 | 이름 | 임기 | 당적[75] | 비고 |
4대 | | 이기붕 (李起鵬) | 1949년 8월 15일 ~ 1951년 5월 8일 | 이승만 정부 | [76][77] |
5대 | | 김태선 (金泰善) | 1951년 6월 27일 ~ 1952년 7월 23일 | [78] | |
6대 | 1952년 8월 29일 ~ 1956년 7월 5일 | [79][80] | |||
7대 | | 고재봉 (高在鳳) | 1956년 7월 6일 ~ 1957년 12월 13일 | [81] | |
8대 | | 허정 (許政) | 1957년 12월 14일 ~ 1959년 6월 11일 | [82] | |
9대 | | 임흥순 (任興淳) | 1959년 6월 12일 ~ 1960년 4월 30일 | [83] | |
10대 | | 장기영 (張基永) | 1960년 5월 2일 ~ 1960년 12월 30일 | 허정 내각 | [84] |
6.4.2. 민선 1차
<rowcolor=white> 민선 서울특별시장[85][86] | |||||
<rowcolor=white> 대수 | 사진 | 이름 | 임기 | 당적[87] | 비고 |
11대 | | 김상돈 (金相敦) | 1960년 12월 30일 ~ 1961년 5월 16일 | | [88] |
6.4.3. 관선 2차
<rowcolor=white> 관선 서울특별시장 | |||||
<rowcolor=white> 대수 | 사진 | 이름 | 임기 | 당적[89] | 비고 |
12대 | | 윤태일 (尹泰日) | 1961년 5월 20일 ~ 1963년 12월 16일 | 국가재건최고회의 | [90] |
13대 | | 윤치영 (尹致暎) | 1963년 12월 17일 ~ 1966년 3월 30일 | 박정희 정부 | [91] |
14대 | | 김현옥 (金玄玉) | 1966년 3월 31일 ~ 1970년 4월 15일 | [92] | |
15대 | | 양택식 (梁鐸植) | 1970년 4월 16일 ~ 1974년 9월 1일 | [93] | |
16대 | | 구자춘 (具滋春) | 1974년 9월 2일 ~ 1978년 12월 21일 | [94] | |
17대 | | 정상천 (鄭相千) | 1978년 12월 22일 ~ 1980년 9월 1일 | [95] | |
18대 | | 박영수 (朴英秀) | 1980년 9월 2일 ~ 1982년 4월 27일 | 전두환 정부 | [96] |
19대 | | 김성배 (金聖培) | 1982년 4월 28일 ~ 1983년 10월 14일 | [97] | |
20대 | | 염보현 (廉普鉉) | 1983년 10월 15일 ~ 1987년 12월 29일 | [98] | |
21대 | | 김용래 (金庸來) | 1987년 12월 30일 ~ 1988년 12월 4일 | [99] | |
22대 | | 고건 (高建) | 1988년 12월 5일 ~ 1990년 12월 26일 | 노태우 정부 | [100] |
23대 | | 박세직 (朴世直) | 1990년 12월 27일 ~ 1991년 2월 18일 | [101] | |
24대 | | 이해원 (李海元) | 1991년 2월 19일 ~ 1992년 6월 25일 | [102] | |
25대 | | 이상배 (李相培) | 1992년 6월 26일 ~ 1993년 2월 25일 | [103] | |
26대 | | 김상철 (金尙哲) | 1993년 2월 26일 ~ 1993년 3월 4일 | 문민정부 | [104] |
27대 | | 이원종 (李元鐘) | 1993년 3월 8일 ~ 1994년 10월 21일 | [105] | |
28대 | 우명규 (禹命奎) | 1994년 10월 22일 ~ 1994년 11월 2일 | [106] | ||
29대 | | 최병렬 (崔炳烈) | 1994년 11월 3일 ~ 1995년 6월 30일 | [107] |
6.4.4. 민선 2차
<rowcolor=white> 민선 서울특별시장 | ||||||
<rowcolor=white> 대수 | 사진 | 이름 | 임기 | 당적[108] | 출신지 | 비고 |
30대 | | 조순 (趙淳) | 1995년 7월 1일 ~ 1997년 9월 9일 | | 강원 강릉 | [109][110] |
권한대행 | | 강덕기 (姜德基) | 1997년 9월 10일 ~ 1998년 6월 30일 | 행정1부시장 | 경남 진주 | [111] |
31대 | | 고건 (高建) | 1998년 7월 1일 ~ 2002년 6월 30일 | [[새정치국민회의| | 서울 종로 | [112][113] |
32대 | | 이명박 (李明博) | 2002년 7월 1일 ~ 2006년 6월 30일 | | 일본 오사카[114] | [115][116] |
33대 | | 오세훈 (吳世勳) | 2006년 7월 1일 ~ 2010년 6월 30일 | | 서울 성동 | [117][118] |
34대 | 2010년 7월 1일 ~ 2011년 8월 26일 | [119][120] | ||||
권한대행 | 권영규 (權寧奎) | 2011년 8월 27일 ~ 2011년 10월 26일 | 행정1부시장 | 경북 안동 | [121] | |
35대 | | 박원순 (朴元淳) | 2011년 10월 27일 ~ 2014년 6월 30일 | [[무소속| 무소속 ]] | 경남 창녕 | [122][123][124] |
36대 | 2014년 7월 1일 ~ 2018년 6월 30일 | [[새정치민주연합| | [125][126] | |||
37대 | 2018년 7월 1일 ~ 2020년 7월 9일 | | [127][128] | |||
권한대행 | 서정협 (徐正協) | 2020년 7월 10일 ~ 2021년 4월 7일 | 행정1부시장 | 울산 | [129][130] | |
38대 | | 오세훈 (吳世勳) | 2021년 4월 8일 ~ 2022년 6월 30일 | | 서울 성동 | [131][132] |
39대 | 2022년 7월 1일 ~ 현재 | [133] |
7. 역대 선거 결과
| ||||||
1960 | 1995 | 1998 | 2002 | 2006 | ||
민주당 | 민주당 | 새정치국민회의 | 한나라당 | 한나라당 | ||
김상돈 | 조순 | 고건 | 이명박 | 오세훈 | ||
2010 | 2011 | 2014 | 2018 | 2021 | ||
한나라당 | 무소속 | 새정치민주연합 | 더불어민주당 | 국민의힘 | ||
오세훈 | 박원순 | 오세훈 | ||||
2022 | ||||||
국민의힘 | ||||||
오세훈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구분 | 주요 후보 득표율 | ||||
1960년 | 1위: 김상돈 60.25% 2위: [[무소속| 무소속 ]] 장기영 32.35% | |||||
1995년 | 1위: 조순 42.35% 2위: [[무소속| 무소속 ]] 박찬종 33.51%3위: [[민주자유당| | |||||
1998년 | 1위: [[새정치국민회의| 2위: 최병렬 43.99% | |||||
2002년 | 1위: 이명박 52.28% 2위: [[새천년민주당| | |||||
2006년 | 1위: 오세훈 61.05% 2위: [[열린우리당| | |||||
2010년 | 1위: 오세훈 47.43% 2위: [[민주당(2008년)| | |||||
2011년 | 1위: [[무소속| 무소속 ]] 박원순 53.40%2위: 나경원 46.21% | |||||
2014년 | 1위: [[새정치민주연합| 2위: [[새누리당| | |||||
2018년 | 1위: 박원순 52.79% 2위: [[자유한국당| 3위: [[바른미래당| | |||||
2021년 | 1위: 오세훈 57.50% 2위: 박영선 39.18% | |||||
2022년 | 1위: 오세훈 59.05% 2위: 송영길 39.23% | }}}}}}}}} |
7.1. 1960년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계성범(桂性範) | 388 | 6위 |
[[무소속| 무소속 ]] | 0.85% | 낙선 | |
2 | 안학순(安鶴淳) | 266 | 10위 |
[[무소속| 무소속 ]] | 0.36% | 낙선 | |
3 | 최주열(崔柱烈) | 301 | 9위 |
[[무소속| 무소속 ]] | 0.58% | 낙선 | |
4 | 정인해(鄭寅海) | 180 | 14위 |
[[무소속| 무소속 ]] | 0.09% | 낙선 | |
5 | 송태희(宋泰熙) | 124 | 15위 |
[[무소속| 무소속 ]] | 0.05% | 낙선 | |
6 | 이석점(李錫漸) | 374 | 7위 |
[[무소속| 무소속 ]] | 0.73% | 낙선 | |
7 | 오인환(吳仁煥) | 341 | 8위 |
[[무소속| 무소속 ]] | 0.64% | 낙선 | |
8 | 문용채(文容彩) | 456 | 5위 |
삼민당 | 1.01% | 낙선 | |
9 | 김상돈(金相敦) | 217,475 | 1위 |
| 60.25% | 당선 | |
10 | 백준관(白陖寬) | 181 | 12위 |
[[무소속| 무소속 ]] | 0.16% | 낙선 | |
| | 사퇴 | |
[[무소속| 무소속 ]] | |||
12 | 이희운(李熙雲) | 228 | 11위 |
[[무소속| 무소속 ]] | 0.20% | 낙선 | |
| | 등록 무효 | |
| |||
14 | 김헌(金憲) | 2,088 | 4위 |
한국실업자협회 | 2.68% | 낙선 | |
15 | 장기영(張基榮) | 117,145 | 2위 |
[[무소속| 무소속 ]] | 32.35% | 낙선 | |
16 | 김득조(金得照) | 150 | 13위 |
조국봉찬회 | 0.12% | 낙선 | |
17 | 정준(鄭濬) | 22,794 | 3위 |
[[무소속| 무소속 ]] | 6.30%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226,079 | 투표율 32.73% |
투표 수 | 401,338 | ||
무효표 수 | - |
7.2. 1995년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정원식(鄭元植) | 1,001,446 | 3위 |
[[민주자유당| | 20.67% | 낙선 | |
2 | 조순(趙淳) | 2,051,441 | 1위 |
| 42.35% | 당선 | |
3 | 박홍래(朴弘來) | 25,054 | 5위 |
| 0.51% | 낙선 | |
4 | 고순복(高順福) | 10,488 | 7위 |
| 0.21% | 낙선 | |
5 | 김명호(金明豪) | 9,992 | 8위 |
[[무소속| 무소속 ]] | 0.20% | 낙선 | |
6 | 김옥선(金鈺仙) | 17,728 | 6위 |
[[무소속| 무소속 ]] | 0.36% | 낙선 | |
7 | 박찬종(朴燦鍾) | 1,623,356 | 2위 |
[[무소속| 무소속 ]] | 33.51% | 낙선 | |
8 | 정기용(鄭基用) | 6,156 | 9위 |
[[무소속| 무소속 ]] | 0.12% | 낙선 | |
9 | 황산성(黃山城) | 97,709 | 4위 |
[[무소속| 무소속 ]] | 2.01%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7,438,025 | 투표율 66.18% |
투표 수 | 4,922,210 | ||
무효표 수 | 78,840 |
- [서울특별시장 구별 개표 결과 보기]
- ||<-6><tablealign=center><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tablebordercolor=#d82634><bgcolor=#d82634><color=#ffffff>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서울특별시장 구별 개표 결과 ||
<colbgcolor=#eeeeee,#333333> 정당
[[민주자유당|]]
[[무소속|무소속]]격차 투표율 후보 정원식 조순 박찬종 (1위/2위) (선거인/표수) 득표수
(득표율)1,001,446
(20.67%)2,051,441
(42.35%)1,623,356
(33.51%)+428,085
(△8.84)66.18% 종로구 21.87% 45.09% 29.47% △15.62 66.45% 중구 23.47% 44.11% 29.05% △15.06 67.16% 용산구 23.01% 41.18% 32.32% △8.86 65.80% 성동구 20.36% 44.01% 31.97% △12.04 66.04% 광진구 19.23% 43.04% 34.41% △8.63 66.05% 동대문구 20.68% 41.84% 33.90% △7.94 66.30% 중랑구 19.41% 40.56% 36.11% △4.45 65.33% 성북구 20.64% 43.60% 31.97% △11.63 66.06% 강북구 18.71% 45.20% 31.35% △13.85 64.39% 도봉구 19.11% 42.16% 35.34% △6.82 66.21% 노원구 19.62% 41.12% 35.59% △5.53 67.51% 은평구 19.69% 43.27% 33.48% △9.79 65.49% 서대문구 20.89% 44.64% 30.88% △13.76 66.73% 마포구 21.11% 42.83% 32.60% △10.23 66.23% 양천구 20.37% 41.80% 34.52% △7.28 67.35% 강서구 22.11% 39.64% 34.69% △4.95 66.57% 구로구 18.78% 41.60% 35.48% △6.12 65.98% 영등포구 20.60% 41.89% 34.31% △7.58 65.96% 동작구 21.31% 43.72% 32.08% △11.64 66.23% 관악구 18.15% 48.30% 30.32% △17.98 66.79% 서초구 23.96% 38.46% 35.35% △3.11 66.26% 강남구 25.27% 38.65% 33.29% △5.36 65.70% 송파구 21.27% 41.84% 33.83% △8.01 66.09% 강동구 20.33% 39.79% 36.47% △3.32 66.44%
7.3. 1998년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최병렬(崔秉烈) | 1,512,854 | 2위 |
| 43.99% | 낙선 | |
2 | 고건(高建) | 1,838,348 | 1위 |
[[새정치국민회의| | 53.46% | 당선 | |
4 | 이병호(李丙昊) | 87,495 | 3위 |
[[무소속| 무소속 ]] | 2.54%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7,377,751 | 투표율 47.13% |
투표 수 | 3,477,105 | ||
무효표 수 | 38,408 |
7.4. 2002년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이명박(李明博) | 1,819,057 | 1위 |
| 52.28% | 당선 | |
2 | 김민석(金民錫) | 1,496,754 | 2위 |
[[새천년민주당| | 43.02% | 낙선 | |
3 | 임삼진(林三鎭) | 28,034 | 5위 |
| 0.80% | 낙선 | |
4 | 이문옥(李文玉) | 87,965 | 3위 |
[[민주노동당| | 2.52% | 낙선 | |
5 | 원용수(元容秀) | 12,982 | 6위 |
| 0.37% | 낙선 | |
6 | 이경희(李京熹) | 34,313 | 4위 |
[[무소속| 무소속 ]] | 0.98%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7,665,343 | 투표율 45.80% |
투표 수 | 3,510,898 | ||
무효표 수 | 31,793 |
제17대 대통령 선거 당선인인 이명박이 당선된 선거다.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의 열기로 인한 투표율 저하로 인해 관악구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이겼다.
7.5. 2006년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강금실(康錦實) | 1,077,890 | 2위 |
[[열린우리당| | 27.31% | 낙선 | |
2 | 오세훈(吳世勳) | 2,409,760 | 1위 |
| 61.05% | 당선 | |
3 | 박주선(朴柱宣) | 304,565 | 3위 |
[[민주당(2005년)| | 7.71% | 낙선 | |
4 | 김종철(金鍾哲) | 117,421 | 4위 |
[[민주노동당| | 2.97% | 낙선 | |
5 | 임웅균(任雄均) | 14,111 | 5위 |
[[국민중심당| | 0.35% | 낙선 | |
6 | 이귀선(李貴仙) | 4,790 | 7위 |
[[시민당(동음이의어)|]] | 0.12% | 낙선 | |
7 | 이태희(李泰熙) | 4,481 | 8위 |
| 0.11% | 낙선 | |
8 | 백승원(白承元) | 13,808 | 6위 |
[[무소속| 무소속 ]] | 0.34%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7,983,648 | 투표율 49.82% |
투표 수 | 3,977,842 | ||
무효표 수 | 31,016 |
- [서울특별시장 구별 개표 결과 보기]
- ||<:><-5><tablealign=center><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tablebordercolor=#0095da><bgcolor=#0095da><color=#ffffff>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서울특별시장 구별 개표 결과 ||
<colbgcolor=#eeeeee,#333333> 정당
[[열린우리당|]]
투표 수
(투표율)후보 강금실 오세훈 전체 1,077,890
(27.31%)2,409,760
(61.05%)3,977,842
(49.82%)◁ 33.74%p ▶ 종로구 19,369
(27.48%)41,992
(59.59%)71,240
(52.9%)◁ 32.11%p ▶ 중구 15,382
(28.03%)32,708
(59.62%)55,369
(51.7%)◁ 31.59%p ▶ 용산구 26,087
(27.45%)58,427
(61.48%)95,809
(51.1%)◁ 34.03%p ▶ 성동구 35,842
(27.42%)77,631
(59.40%)131,927
(49.4%)◁ 31.98%p ▶ 광진구 39,716
(28.36%)83,209
(59.42%)141,079
(48.1%)◁ 31.06%p ▶ 동대문구40,952
(26.92%)92,583
(60.87%)153,571
(50.3%)◁ 33.95%p ▶ 중랑구 41,950
(27.17%)94,016
(60.90%)155,626
(46.8%)◁ 33.73%p ▶ 성북구 52,218
(28.66%)107,844
(59.21%)183,552
(49.7%)◁ 30.55%p ▶ 강북구 37,446
(28.20%)75,788
(57.07%)133,339
(47.8%)◁ 28.87%p ▶ 도봉구 41,460
(28.27%)88,101
(60.08%)147,638
(50.6%)◁ 31.81%p ▶ 노원구 70,050
(29.40%)140,438
(58.95%)239,926
(51.5%)◁ 29.55%p ▶ 은평구 50,411
(29.30%)100,572
(58.45%)173,479
(47.2%)◁ 29.15%p ▶ 서대문구40,422
(29.55%)80,851
(59.11%)137,876
(49.7%)◁ 29.56%p ▶ 마포구 46,057
(30.07%)88,818
(57.98%)154,442
(49.4%)◁ 27.91%p ▶ 양천구 52,456
(27.34%)117,983
(61.49%)193,234
(51.7%)◁ 34.15%p ▶ 강서구 59,119
(28.18%)126,548
(60.32%)211,567
(49.2%)◁ 32.14%p ▶ 구로구 47,384
(29.09%)96,508
(59.25%)164,398
(50.1%)◁ 30.16%p ▶ 금천구 28,326
(29.24%)54,833
(56.62%)97,796
(48.9%)◁ 27.38%p ▶ 영등포구45,339
(27.91%)98,766
(60.81%)163,818
(50.4%)◁ 32.90%p ▶ 동작구 48,416
(29.33%)95,686
(57.97%)166,416
(50.7%)◁ 28.64%p ▶ 관악구 66,667
(31.85%)110,710
(52.90%)210,854
(48.8%)◁ 21.05%p ▶ 서초구 33,010
(20.18%)117,293
(71.70%)164,426
(51.9%)◁ 51.52%p ▶ 강남구 39,314
(18.22%)160,646
(74.45%)216,768
(50.0%)◁ 56.23%p ▶ 송파구 57,435
(24.35%)155,062
(65.76%)237,313
(50.8%)◁ 41.41%p ▶ 강동구 43,062
(24.68%)112,747
(64.64%)175,779
(49.3%)◁ 39.96%p ▶
당시 열린우리당은 참여정부의 낮은 지지율 + 잇따른 재보궐선거 패배로 조직력이 아작난 상황이였고, 여기도 마찬가지였다. 실제로 오세훈 후보가 25개구 522개 동 전역에서 강금실 후보를 눌렀다. 이로써 3당 합당 이후 치른 지방선거에서 서울특별시에서 60%p 넘게 득표한 유일한 후보가 되었다.
7.6. 2010년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오세훈(吳世勳) | 2,086,127 | 1위 |
| 47.43% | 당선 | |
2 | 한명숙(韓明淑) | 2,059,715 | 2위 |
[[민주당(2008년)| | 46.83% | 낙선 | |
3 | 지상욱(池尙昱) | 90,032 | 4위 |
[[자유선진당| | 2.04% | 낙선 | |
7 | 노회찬(魯會燦) | 143,459 | 3위 |
[[진보신당| | 3.26% | 낙선 | |
8 | 석종현(石琮顯) | 18,339 | 5위 |
[[미래연합|]] | 0.41%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8,211,461 | 투표율 53.90% |
투표 수 | 4,426,182 | ||
무효표 수 | 28,510 |
- [서울특별시장 구별 개표 결과 보기]
- ||<-4><tablealign=center><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tablebordercolor=#0095da><bgcolor=#0095da><color=#ffffff>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서울특별시장 구별 개표 결과 ||
<colbgcolor=#eeeeee,#333333> 정당
[[민주당(2008년)|]]투표 수
(투표율)후보 오세훈 한명숙 [[서울특별시| 전체]]2,086,127
(47.43%)2,059,715
(46.83%)4,426,182
(53.90%)표차 +26,412
◀ 0.60%p ▷[[종로구| 종로구]]35,476
(46.04%)36,910
(47.90%)77,812
(56.01%)표차 -1,434
◁ 1.86%p ▶[[중구(서울특별시)| 중구]]28,648
(47.55%)28,410
(47.16%)60,763[134]
(55.74%)표차 +238
◀ 0.39%p ▷[[용산구| 용산구]]53,285
(51.15%)44,706
(42.91%)105,005
(53.02%)표차 +8,579
◀ 8.24%p ▷[[성동구| 성동구]]63,448
(47.22%)63,966
(47.60%)135,277
(54.04%)표차 -518
◁ 0.38%p ▶[[광진구| 광진구]]72,749
(46.08%)76,420
(48.41%)158,963
(52.70%)표차 -3,671
◁ 2.33%p ▶[[동대문구| 동대문구]]74,536
(46.77%)76,032
(47.71%)160,497
(54.00%)표차 -1,496
◁ 0.94%p ▶[[중랑구| 중랑구]]80,577
(47.13%)81,517
(47.68%)172,251
(50.10%)[135]표차 -940
◁ 0.55%p ▶[[성북구| 성북구]]91,907
(45.19%)99,316
(48.83%)204,667
(53.36%)표차 -7,409
◁ 3.64%p ▶[[강북구| 강북구]]63,231
(44.84%)70,115
(49.72%)142,061
(51.43%)표차 -6,884
◁ 4.88%p ▶[[도봉구| 도봉구]]74,594
(46.98%)74,789
(47.10%)159,958
(54.62%)표차 -195
◁ 0.12%p ▶[[노원구| 노원구]]119,567
(45.58%)124,603
(47.50%)264,044
(56.14%)표차 -5,036
◁ 1.92%p ▶[[은평구| 은평구]]85,737
(44.77%)95,666
(49.95%)192,939
(51.26%)표차 -9,929
◁ 5.18%p ▶[[서대문구| 서대문구]]64,769
(44.42%)72,788
(49.92%)146,827
(55.00%)표차 -8,019
◁ 5.50%p ▶[[마포구| 마포구]]75,267
(43.79%)85,882
(49.97%)172,905
(55.13%)표차 -10,615
◁ 6.18%p ▶[[양천구| 양천구]]101,350
(47.47%)100,272
(46.96%)214,849
(56.19%)표차 +1,078
◀ 0.51%p ▷[[강서구(서울특별시)| 강서구]]111,082
(46.05%)116,689
(48.37%)242,758
(53.34%)표차 -5,607
◁ 2.32%p ▶[[구로구| 구로구]]83,846
(44.85%)92,666
(49.57%)187,965
(55.35%)표차 -8,820
◁ 4.72%p ▶[[금천구| 금천구]]44,702
(43.45%)52,451
(50.99%)103,679
(52.60%)표차 -7,749
◁ 7.54%p ▶[[영등포구| 영등포구]]84,999
(47.45%)83,982
(46.88%)180,352
(54.75%)표차 +1,017
◀ 0.57%p ▷[[동작구| 동작구]]81,914
(44.72%)90,859
(49.60%)184,233
(56.58%)[136]표차 -8,945
◁ 4.88%p ▶[[관악구| 관악구]]93,184
(39.34%)128,444
(54.23%)238,367
(53.92%)표차 -35,260[137]
◁ 14.89%p[138] ▶[[서초구| 서초구]]109,446
(59.07%)65,626
(35.41%)185,981
(54.44%)표차 +43,820
◀ 23.66%p ▷[[강남구| 강남구]]138,390
(59.94%)79,094
(34.26%)231,886
(51.21%)표차 +59,296[139]
◀ 25.68%p[140] ▷[[송파구| 송파구]]149,228
(51.28%)125,414
(43.09%)292,420[141]
(54.18%)표차 +23,814
◀ 8.19%p ▷[[강동구| 강동구]]104,195
(49.99%)93,098
(44.66%)209,723
(54.08%)표차 +11,097
◀ 5.33%p ▷
선거 이전 여론조사들에서는 오세훈 후보가 넉넉히 우세를 점하고 있었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출구조사에서 오세훈 47.4% VS 한명숙 47.2%로 두 후보 간 예상 득표율 격차가 0.2%밖에 나지 않는 반전이 일어났다. 뒤이은 실제 개표 과정에서도 두 후보의 순위만 4번이 뒤바뀌는 광역자치단체장 선거 역대 최고의 접전 승부[142]가 벌어졌다.
개표 초반에는 한명숙 후보가 앞서 나갔고, 한 때 2만표 이상 격차까지 벌어졌기에 자정을 넘긴 시각 한명숙 후보는 자체적으로 승리를 선언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도 잠깐, 개표율이 낮던 강남3구의 개표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며 이곳에서만 12만표 이상의 격차가 벌어졌고, 새벽 4시를 넘겨 오세훈 후보가 역전하였다. 최종적으로 오세훈 후보 0.6%p, 2만 6천여 표의 차이로 진땀승을 거두며 당선되었다.
당시 오세훈 후보는 서울 25개 자치구 중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 양천구, 영등포구, 강동구, 중구, 용산구 단 8개 구에서만 이겼다. 하지만 상당수의 민주당 우위 지역에서 5%p 이내 격차로 상당히 선방했고[143], 무엇보다도 강남3구에서 10~20%p 정도의 격차로 크게 이기면서 역전승에 기여했다.
한명숙 후보는 서울 17개 자치구에서 승리했지만 한날 한시에 치른 서울 기초자치단체장 선거에서 민주당 구청장 후보들이 크게 승리한 만큼 격차를 벌리지 못하며 상대적으로 부진했고[144], 결정적으로 강남3구의 몰표에 막혀 낙선의 고배를 마셔야 했다.
7.7. 2011년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나경원(羅卿瑗) | 1,867,880 | 2위 |
| 46.21% | 낙선 | |
| | 등록 무효 | |
[[기독자유민주당| | |||
9 | 배일도(裵一道) | 15,408 | 3위 |
[[무소속| 무소속 ]] | 0.38% | 낙선 | |
10 | 박원순(朴元淳) | 2,158,476 | 1위 |
[[무소속| 무소속 ]] | 53.40% | 당선 | |
계 | 선거인 수 | 8,374,067 | 투표율 48.56% |
투표 수 | 4,066,557 | ||
무효표 수 | 24,793 |
- [서울특별시장 구별 개표 결과 보기]
- ||<-4><tablealign=center><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tablebordercolor=#808080><bgcolor=#808080><color=#ffffff> 2011년 하반기 재보궐선거 서울특별시장 구별 개표 결과 ||
<colbgcolor=#eeeeee,#333333> 정당
[[무소속|무소속]]투표율 후보 나경원 박원순 전체 1,867,880
(46.21%)2,158,476
(53.40%)48.56% 종로구 31,926
(45.62%)37,770
(53.97%)49.5% 중구 26,564
(47.65%)28,965
(51.96%)49.9% 용산구 50,847
(51.82%)46,923
(47.82%)47.4% 성동구 54,059
(45.32%)64,766
(54.30%)48.0% 광진구 63,128
(43.81%)80,449
(55.83%)47.4% 동대문구65,140
(45.24%)78,221
(54.32%)47.6% 중랑구 68,501
(44.75%)83,870
(54.80%)44.4% 성북구 81,902
(42.74%)108,976
(56.87%)48.5% 강북구 54,531
(42.58%)72,981
(56.98%)45.2% 도봉구 64,110
(44.87%)78,179
(54.72%)48.5% 노원구 104,251
(44.08%)131,293
(55.51%)50.3% 은평구 78,252
(42.63%)104,533
(56.96%)46.2% 서대문구55,181
(43.03%)72,542
(56.57%)49.0% 마포구 67,297
(42.01%)92,375
(57.66%)49.9% 양천구 89,227
(45.97%)103,780
(53.47%)50.4% 강서구 95,934
(44.13%)120,537
(55.45%)47.4% 구로구 71,850
(43.15%)94,015
(56.46%)48.5% 금천구 36,194
(41.12%)51,418
(58.42%)44.3% 영등포구73,833
(46.01%)86,069
(53.63%)48.7% 동작구 73,341
(43.60%)94,283
(56.05%)50.8% 관악구 78,473
(36.85%)133,587
(62.74%)47.9% 서초구 111,014
(60.12%)73,139
(39.61%)53.1% 강남구 140,109
(61.33%)87,657
(38.37%)49.7% 송파구 140,183
(51.12%)133,087
(48.53%)50.3% 강동구 92,033
(47.98%)99,061
(51.64%)48.2%
강남3구와 용산구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서 박원순이 승리를 거두었다. 세부적으로 보면 박원순 후보는 우세 지역에선 표 차이를 더 벌렸고, 스윙스테이트인 강동구, 중구, 양천구, 영등포구를 빼앗고 용산구에서 3,924표 차, 송파구에서 7,096표로 표차를 1/2 정도로 줄이는 데 성공하였다. 나경원 입장에선 강북에서 선전은 못한 건 물론 스윙스테이트였던 4개 지역을 뺏기고, 송파구, 용산구에서 표차가 반토막이 난 것이 패인이 된 것이다.
7.8. 2014년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정몽준(鄭夢準) | 2,109,869 | 2위 |
[[새누리당| | 43.02% | 낙선 | |
2 | 박원순(朴元淳) | 2,752,171 | 1위 |
[[새정치민주연합| | 56.12% | 당선 | |
3 | 정태흥(鄭泰興) | 23,638 | 3위 |
[[통합진보당| | 0.48% | 낙선 | |
4 | 홍정식(洪貞植) | 17,603 | 4위 |
| 0.35%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8,441,594 | 투표율 58.63% |
투표 수 | 4,948,897 | ||
무효표 수 | 45,616 |
세월호 참사 이후 아무래도 여당에게 불리한 상황인데 정몽준의 아들인 정예선이 세월호 참사 관련으로 미개 발언을 하는 바람에 더 불리해졌다. 그리고 결국 박원순이 13.10%란 넉넉한 격차로 정몽준을 꺾음으로써 재선에 성공하였다.
특히 강남3구에서 엄청난 선전을 했는데, 강남구와 서초구에선 47%를 득표했고, 송파구에선 아예 52%로 정몽준을 꺾었다.
7.9. 2018년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박원순(朴元淳) | 2,619,497 | 1위 |
| 52.79% | 당선 | |
2 | 김문수(金文洙) | 1,158,487 | 2위 |
[[자유한국당| | 23.34% | 낙선 | |
3 | 안철수(安哲秀) | 970,374 | 3위 |
[[바른미래당| | 19.55% | 낙선 | |
5 | 김종민(金鍾珉) | 81,664 | 5위 |
[[정의당| | 1.64% | 낙선 | |
6 | 김진숙(金眞淑) | 22,134 | 6위 |
[[민중당(2017년)| | 0.44% | 낙선 | |
7 | 인지연(印志涓) | 11,222 | 8위 |
[[대한애국당|]] | 0.22% | 낙선 | |
8 | 신지예(申智藝) | 82,874 | 4위 |
[[녹색당(대한민국)| | 1.67% | 낙선 | |
9 | 우인철(禹仁喆) | 11,599 | 7위 |
[[우리미래|]] | 0.23% | 낙선 | |
10 | 최태현(崔泰賢) | 4,021 | 9위 |
[[친박연대(2017년)| | 0.08%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8,380,947 | 투표율 59.89% |
투표 수 | 5,019,098 | ||
무효표 수 | 57,226 |
어떻게 보면, 역대 선거에서 가장 역사적인 단일화를 이루어냈다는 2011년 하반기 재보궐선거 이후, 7년 만에 다시 만난 셈인데, 김문수와 안철수는 처음부터 네거티브 공세가 상당히 강했고, 박원순은 역대 최악의 네거티브를 입었다고 할 정도로 네거티브 공세가 심해져 있었다. 하지만 19대 대선에서 문재인의 압도적인 승리에 힘 입어서 민선 서울특별시장 최초로 3선에 성공했다. 3선 임기까지 마치게 된다면 조선 시대 한성판윤까지 올라가도 박원순보다 오래 임기를 유지하는 이는 없다.[145]
자유한국당은 막판까지 서울에서 압승할 거라는 행복회로를 돌렸다. 하지만, 박원순의 시정평가는 중위권에서 아래로 내려간 적은 없는 편이다. 심지어 예전의 5회 지방선거에서 보이듯, 자유한국당이 서울시장 선거에서 이기려면 강남3구에서 압도적으로 이겨야 하는데, 강남3구에서도 박원순에 대해 괜찮아하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146] 사실, 이렇게 된 건 오세훈의 실책이 컸다. 강남 워터파크의 문제도 있었고, 오세훈은 강남구에서 국회의원을 하고 강남구민의 전적인 지지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한번도 물난리 문제를 개선하지 않았다. 그나마 공약을 안 했음 밉지나 않은데 토론에서 물난리를 개선하겠다고 말을 해놨으니 오세훈에 대한 부정 평가가 심할 수 밖에 없다.
여기다 DDP, 고척 스카이돔, 세빛섬은 오세훈 시정 때 디자인 서울 정책의 일환으로 추진되어 이후 박원순 시정이 출범하면서 수익성이 있는지 감사원에다 의뢰한 결과 모두 엄청난 적자가 예상되었다. 이에 DDP는 무료시설을 없애고 모두 수익 시설로 돌려놓으며 자립시켰고, 고척 스카이돔은 원래 예산보다 더 쓰면서까지 설계를 변경하고[147] 반강제로 넥센 히어로즈를 입성시키고 나서 나름 성공하게 되면서 다른 지역에서도 돔구장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148] 세빛섬은 마땅한 사용처를 찾지 못 해 방치되다가 영화 어벤져스 촬영지로 활용됐음에도 불구하고 무료로 입장하는 관광객이 늘었을 뿐이라 자립은 불투명한 상황이다. 이 외에도, 오세훈은 공군과 롯데월드타워에 관해서 군사적인 문제로 수차례 대립한 전례가 있었다.[149]
여튼 박원순은 (서울로7017 정도의 예산 낭비를 제외하면) 심야버스를 도입해 총알택시에 지친 직장인들을 상대로 대성공을 거뒀고, 실사판 타요 버스를 아이코닉스와 콜라보해서 스티킹을 해 운행하는 프로젝트도 성공하게 된다. 그 외에도 라바 지하철도 생겼다. 당연히, 아이들의 인기가 폭발했으며 타보겠다고 지방에서 올라오는 사람도 있는 모양. 결국 이 타요버스는 전국적으로 확대되었다.
박원순은 이번의 당선으로 수많은 최초 기록을 얻었다. 최초의 3선 서울특별시장인 것도 있지만, 민선 최초로 비 정치인 출신이 무소속[150]으로 광역자치단체장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된 이후, 나온 선거까지 포함 모두 과반수의 득표율로 전승한 전무후무한 사례. 그 전설의 3+2+3=8전 전승 신화를 이루어 낸 이시종도 3선 충주시장을 하고 지역구 국회의원도 두 번이나 한 끝에 충청북도지사 3선을 한 것과 50%를 넘은 적이 단 두 번 있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최초의 민선 서울특별시장이였던 김상돈도 국회의원 경력이 있었고, 1회 지방선거 당선자인 조순을 빼면[151], 고건, 이명박, 오세훈 또한 국회의원 경력이 있었다.
김문수의 경우 큰 득표율 차로 2위로 낙선하긴 했지만 두 가지 면에서 선전했다고 볼 수 있다. 첫째, 관악구와 노원구를 제외한[152] 서울 23개 구에서 20%를 넘기면서 안철수 후보를 누르고 2위를 차지했다는 점이다. 19대 대선에서 홍준표가 강남구, 서초구, 용산구, 종로구를 제외한 21개 구에서 안철수에 밀리면서 3위를 기록해 자유한국당이 수도권에서 3위로 밀리는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는데 김문수는 강남3구 외 지역에서도 서울 전반적으로 2위를 기록하며 이와 같은 우려를 불식시켰다.[153] 다음으로 부촌 지역의 보수표를 재결집시키는데 성공했다. 서울에서 가장 보수세가 강한 부촌인 압구정동의 경우 19대 대선 홍준표 41.93%에서 7회 지방선거 김문수 52.11%로 10.18%나 상승했으며 강남구의 대치2동과 개포2동, 서초구의 반포본동과 반포3동, 용산구의 이촌1동의 결과를 뒤집으면서 중구의 을지로동과 회현동을 빼앗겼음에도 자유한국당의 1위 동을 13개동에서 16개 동으로 늘렸다. 이와 같은 부촌 지역의 자유한국당 재결집은 김문수 후보의 적극적 재개발 공약의 영향이 컸다는 분석이다.
가장 피해가 큰 대상은 바른미래당의 안철수이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안철수는 비록 콘크리트 지지층을 자기 편으로 삼은 홍준표에게 밀려 종합 3위를 차지했으나, 적어도 서울에서는 2위였다. 그런데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홍준표보다 지지층이 월등히 좁은 김문수에게 밀려버렸다. 호사가들은 안철수는 어차피 질 선거, 적어도 서울에서 의미 있는 스코어를 보이며 2등을 차지해 최소한 야권의 대권 주자로 자리매김하려고 서울시장 선거에 나섰다고 추측했다. 만약 그렇다면 안철수는 결과적으로 최악의 선택을 하고 만 셈이다. 안철수의 서울 득표율은 1년 전 대선과는 다른 양상을 띄었는데 대선에서는 지역구인 노원구 및 인근의 강북구, 도봉구 등의 지역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득표율을 올렸으나 이번 지방선거의 경우 강남3구 및 용산구 등 부촌 지역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득표율을 올렸다. 특히 근소한 득표율 차로 강남구가 아닌 서초구에서 서울 득표율 1위를 기록했다는 점은 대선에서의 유승민의 경우와 거의 비슷한데 안철수 개인의 성향도 중도 보수 성향이 강해지기도 했고 바른정당과의 합당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한편 노원구의 경우 대선 출마로 인한 사퇴 논란이 있었지만 그래도 전 지역구라고 주민들이 나름 밀어준건지 안철수의 득표율이 서울 내에서 서초구, 강남구에 이어 3번째로 높았다.
어찌 됐든 더불어민주당은 서울에서 시의회와 기초자치단체장을 휩쓰는데 성공했고 그 결과 박원순은 가히 서울의 타노스라고 불리기 부족함이 없는 힘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7.10. 2021년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박영선(朴映宣) | 1,907,336 | 2위 |
| 39.18% | 낙선 | |
2 | 오세훈(吳世勳) | 2,798,788 | 1위 |
| 57.50% | 당선 | |
| | 사퇴[154] | |
[[국민의당(2020년)| | |||
6 | 신지혜(申智惠) | 23,628 | 5위 |
[[기본소득당| | 0.48% | 낙선 | |
7 | 허경영(許京寧) | 52,107 | 3위 |
[[국가혁명당| | 1.07% | 낙선 | |
8 | 오태양(吳太陽) | 6,483 | 9위 |
[[미래당| | 0.13% | 낙선 | |
9 | 이수봉(李守峯) | 11,196 | 8위 |
| 0.23% | 낙선 | |
10 | 배영규(裵永奎) | 634 | 12위 |
| 0.01% | 낙선 | |
11 | 김진아(金珍芽) | 33,421 | 4위 |
[[여성의당| | 0.68% | 낙선 | |
12 | 송명숙(宋名淑) | 12,272 | 7위 |
| 0.25% | 낙선 | |
13 | 정동희(鄭東熙) | 1,874 | 10위 |
[[무소속| 무소속 ]] | 0.03% | 낙선 | |
14 | 이도엽(李度燁) | 1,664 | 11위 |
[[무소속| 무소속 ]] | 0.03% | 낙선 | |
15 | 신지예(申智藝) | 18,039 | 6위 |
[[무소속| 무소속 ]] | 0.37%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8,425,869 | 투표율 58.19% |
투표 수 | 4,902,630 | ||
무효표 수 | 35,188 |
- [서울특별시장 구별 개표 결과 보기]
- ||<-5><tablealign=center><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tablebordercolor=#e61e2b><bgcolor=#e61e2b><color=#ffffff> 2021년 재보궐선거 서울특별시장 구별 개표 결과 ||
<colbgcolor=#eeeeee,#333333> 정당
투표 수
(투표율)후보 박영선 오세훈 전체 1,907,336
(39.18%)2,798,788
(57.50%)4,902,630
(58.19%)◁ 18.32%p ▶ 종로구 32,309
(41.26%)43,255
(55.24%)78,852
(59.6%)◁ 13.98%p ▶ 중구 25,958
(39.98%)36,881
(56.81%)65,391
(57.4%)◁ 16.83%p ▶ 용산구 39,280
(33.36%)74,689
(63.44%)118,460
(57.9%)◁ 30.08%p ▶ 성동구 55,941
(37.17%)89,924
(59.76%)151,520
(58.7%)◁ 22.59%p ▶ 광진구 69,179
(39.77%)98,620
(56.69%)175,342
(57.2%)◁ 16.92%p ▶ 동대문구69,406
(40.46%)96,340
(56.16%)172,922
(57.3%)◁ 15.70%p ▶ 중랑구 81,450
(43.45%)99,555
(53.10%)188,880
(53.9%)◁ 9.65%p ▶ 성북구 94,055
(42.79%)117,596
(53.50%)221,414
(58.5%)◁ 10.71%p ▶ 강북구 66,451
(45.17%)75,327
(51.21%)148,390
(54.4%)◁ 6.04%p ▶ 도봉구 68,848
(42.37%)88,274
(54.33%)163,628
(57.5%)◁ 11.96%p ▶ 노원구 111,652
(42.02%)145,073
(54.60%)267,498
(60.0%)◁ 12.58%p ▶ 은평구 104,281
(44.85%)119,068
(51.21%)234,238
(56.0%)◁ 6.36%p ▶ 서대문구67,277
(42.02%)86,375
(53.95%)161,388
(59.1%)◁ 11.93%p ▶ 마포구 77,948
(40.66%)105,676
(55.12%)193,234
(59.7%)◁ 14.46%p ▶ 양천구 91,182
(39.63%)132,189
(57.46%)231,478
(60.5%)◁ 17.83%p ▶ 강서구 120.310
(42.56%)152,517
(53.95%)284,823
(56.4%)◁ 11.39%p ▶ 구로구 89,385
(43.73%)108,763
(53.21%)205,837
(57.7%)◁ 9.48%p ▶ 금천구 48,743
(44.82%)56,238
(51.71%)109,584
(52.2%)◁ 7.69%p ▶ 영등포구75,376
(38.33%)114,765
(58.36%)198,145
(58.3%)◁ 20.03%p ▶ 동작구 81,367
(40.06%)114,862
(56.55%)204,664
(59.3%)◁ 16.49%p ▶ 관악구 106,896
(44.44%)122,604
(50.97%)242,935
(53.9%)◁ 6.53%p ▶ 서초구 60,029
(26.74%)159,433
(71.02%)225,574
(64.0%)◁ 44.28%p ▶ 강남구 66,907
(24.32%)202,320
(73.54%)276,485
(61.1%)◁ 49.22%p ▶ 송파구 114,468
(33.28%)219,812
(63.91%)346,139
(61.0%)◁ 30.63%p ▶ 강동구 88,638
(37.83%)138,632
(59.17%)235,809
(59.3%)◁ 21.34%p ▶
전 자치구에서 이겼으며, 세부적으로 보면 5개 동을 제외한 나머지 동에서 전부 오세훈 후보가 이겼다. 그리고 이 선거로 인해 오세훈은 최다 득표수로 당선된 서울시장, 역대 가장 높은 득표율[155]61.05%의 득표율로 당선되었다.]로 당선된 서울시장이란 타이틀을 모두 갖게 되었다.
사전 투표에서도 오세훈 후보가 약 10만 표차로 승리하였다. 세부적으로 자치구별 사전투표 결과를 보면 25개 구 중 11개 구[156]에서 박영선 후보가 승리했다. # 그리고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는 전체 425개 동 중에서 420곳에서 이겼고,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후보는 5곳에서 이겼다.
7.11. 2022년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송영길(宋永吉) | 1,733,183 | 2위 |
| 39.23% | 낙선 | |
2 | 오세훈(吳世勳) | 2,608,277 | 1위 |
| 59.05% | 당선 | |
3 | 권수정(權秀靜) | 53,840 | 3위 |
[[정의당| | 1.21% | 낙선 | |
4 | 신지혜(申智惠) | 12,619 | 4위 |
[[기본소득당| | 0.28% | 낙선 | |
5 | 김광종(金光宗) | 9,000 | 5위 |
[[무소속| 무소속 ]] | 0.20%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8,378,339 | 투표율 53.17% |
투표 수 | 4,455,161 | ||
무효표 수 | 38,242 |
- [서울특별시장 구별 개표 결과 보기]
- ||<-4><tablealign=center><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tablebordercolor=#e61e2b><bgcolor=#e61e2b><color=#ffffff>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서울특별시장 구별 개표 결과 ||
<colbgcolor=#eeeeee,#333333> 정당
<colbgcolor=#e61e2b>
투표 수
(투표율)후보 송영길 오세훈 [[서울특별시| 전체]]1,733,183
(39.23%)<colcolor=#ffffff> 2,608,277
(59.05%)4,455,161[157]
(53.17%)표차 875,094
◁ 19.82%p ▶[[종로구| 종로구]]28,327
(40.45%)40,145
(57.33%)70,657[158]
(54.4%)표차 11,818
◁ 16.88%p ▶[[중구(서울특별시)| 중구]]23,811
(39.92%)34,866
(58.45%)60,323[159][160]
(53.8%)표차 11,055
◁ 18.53%p ▶[[용산구| 용산구]]34,614
(33.26%)67,579
(64.93%)104,787[161]
(52.6%)표차 32,965
◁ 31.67%p ▶[[성동구| 성동구]]51,996
(37.55%)84,320
(60.90%)139,761[162]
(55.5%)표차 32,324
◁ 22.45%p ▶[[광진구| 광진구]]62,217
(40.45%)90,734
(58.31%)157,005[163]
(51.4%)표차 28,517
◁ 17.86%p ▶[[동대문구| 동대문구]]63,157
(40.63%)89,470
(57.55%)156,964[164]
(52.0%)표차 26,313
◁ 16.92%p ▶[[중랑구| 중랑구]]76,660
(43.61%)96,447
(54.86%)177,701[165]
(51.0%)표차 19,787
◁ 11.25%p ▶[[성북구| 성북구]]85,825
(42.80%)110,962
(55.34%)202,235[166]
(53.3%)표차 25,137
◁ 12.54%p ▶[[강북구| 강북구]]58,962
(44.69%)70,747
(53.62%)133,390[167]
(49.7%)표차 11,785
◁ 8.93%p ▶[[도봉구| 도봉구]]61,946
(42.09%)83,072
(56.44%)148,579[168]
(52.9%)표차 21,126
◁ 14.35%p ▶[[노원구| 노원구]]102,771
(42.35%)135,812
(55.96%)245,152[169]
(55.5%)표차 33,041
◁ 13.61%p ▶[[은평구| 은평구]]95,155
(44.50%)114,391
(53.49%)215,968[170]
(51.6%)표차 19,236
◁ 8.99%p ▶[[서대문구| 서대문구]]61,182
(41.99%)81,312
(55.80%)146,970[171]
(54.1%)표차 20,130
◁ 13.81%p ▶[[마포구| 마포구]]70,936
(40.83%)98,271
(56.57%)175,023[172]
(53.9%)표차 27,335
◁ 15.74%p ▶[[양천구| 양천구]]82,777
(39.73%)122,449
(58.77%)209,694[173]
(55.4%)표차 39,672
◁ 19.04%p ▶[[강서구(서울특별시)| 강서구]]108,938
(42.10%)145,128
(56.09%)260,947[174]
(51.7%)표차 36,190
◁ 13.99%p ▶[[구로구| 구로구]]78,250
(42.02%)104,643
(56.20%)188,094[175]
(53.2%)표차 26,393
◁ 14.18%p ▶[[금천구| 금천구]]46,314
(44.24%)56,374
(53.85%)105,833[176]
(49.7%[177])표차 10,060[178]
◁ 9.61%p ▶[[영등포구| 영등포구]]68,663
(38.22%)107,910
(60.06%)181,102[179]
(53.3%)표차 39,247
◁ 21.84%p ▶[[동작구| 동작구]]74,678
(40.13%)108,122
(58.11%)187,383[180]
(54.4%)표차 33,444
◁ 17.98%p ▶[[관악구| 관악구]]100,445
(44.76%)119,009
(53.03%)226,801[181]
(50.4%)표차 18,564
◁ 8.27%p[182] ▶[[서초구| 서초구]]50,545
(26.47%)138,050
(72.31%)191,862[183]
(56.0%[184])표차 87,505
◁ 45.84%p ▶[[강남구| 강남구]]58,734
(24.45%)178,621
(74.38%)241,549[185]
(53.6%)표차 119,887[186]
◁ 49.93%p[187] ▶[[송파구| 송파구]]105,890
(34.04%)201,217
(64.69%)313,297[188][189]
(55.0%)표차 95,327
◁ 30.65%p ▶[[강동구| 강동구]]80,390
(37.85%)128,626
(60.56%)214,084[190]
(53.9%)표차 48,236
◁ 22.71%p ▶
오세훈 시장이 역대 2번째[191]로 서울 25개 자치구 424개 동에서 모두 승리하는 등 송영길 후보를 압도하며 압승했다. # 59.05%의 득표율을 얻어 송영길 후보를 19.82%p 차이로 이겼는데, 이 격차는 2021년 재보궐선거 당시 박영선 후보와의 18.32%p 격차보다 더 벌어진 결과다. 심지어 당시는 박원순 성폭력 사건, 한국토지주택공사 직원 부동산 투기 사건이란 큰 악재 2개가 있어서 더불어민주당에게 매우 불리한 선거였고, 그 때도 5개 행정동에선 근소하게나마 이긴 걸 감안하면 송영길 후보 입장에선 매우 굴욕적인 결과를 만든 거나 마찬가지가 되었다.[192]
이로써 역대 민선 광역자치단체장 중 유일하게 4선을 한 광역자치단체장이 탄생했다.
8. 역대 정당별 전적
민주당계 정당 | 보수정당 | 제3후보[193] | |
1회 | 조순 | 정원식 | 박찬종[194] |
| [[민주자유당| | [[무소속| 무소속 ]] | |
당선 42.35% | 낙선 20.67% | 낙선 33.51% | |
2회 | 고건 | 최병렬 | - |
[[새정치국민회의| | | ||
당선 53.46% | 낙선 43.99% | ||
3회 | 김민석 | 이명박 | - |
[[새천년민주당| | | ||
낙선 43.02% | 당선 52.28% | ||
4회 | 강금실 | 오세훈 | 박주선[195] |
[[열린우리당| | | [[민주당(2005년)| | |
낙선 27.31% | 당선 61.05% | 낙선 7.71% | |
5회 | 한명숙 | 오세훈 | 노회찬[196] |
[[민주당(2008년)| | | [[진보신당| | |
낙선 46.83% | 당선 47.43% | 낙선 3.26% | |
재보선 | - | 나경원 | 박원순[197] |
| [[무소속| 무소속 ]] | ||
낙선 46.21% | 당선 53.40% | ||
6회 | 박원순 | 정몽준 | - |
[[새정치민주연합| | [[새누리당| | ||
당선 56.12% | 낙선 43.02% | ||
7회 | 박원순 | 김문수 | 안철수[198] |
| [[자유한국당| | [[바른미래당| | |
당선 52.79% | 낙선 23.34% | 낙선 19.55% | |
재보선 | 박영선 | 오세훈 | - |
| | ||
낙선 39.18% | 당선 57.50% | ||
8회 | 송영길 | 오세훈 | - |
| | ||
낙선 39.23% | 당선 59.05% |
9. 역대 후보별 순위
- 사퇴, 사망, 등록 무효 후보 제외.
<rowcolor=#000,#fff> | 1위 | 2위 | 3위 | 4위 | 5위 | 6위 | 7위 | 8위 | 9위 | 10위 | 11위 | 12위 |
1회 | 조순 | 박찬종 | 정원식 | 황산성 | 박홍래 | 김옥선 | 고순복 | 김명호 | 정기용 | |||
2회 | 고건 | 최병렬 | 이병호 | |||||||||
3회 | 이명박 | 김민석 | 이문옥 | 이경희 | 임삼진 | 원용수 | ||||||
4회 | 오세훈 | 강금실 | 박주선 | 김종철 | 임웅균 | 백승원 | 이귀선 | 이태희 | ||||
5회 | 오세훈 | 한명숙 | 노회찬 | 지상욱 | 석종현 | |||||||
재보선 | 박원순 | 나경원 | 배일도 | |||||||||
6회 | 박원순 | 정몽준 | 정태흥 | 홍정식 | ||||||||
7회 | 박원순 | 김문수 | 안철수 | 신지예 | 김종민 | 김진숙 | 우인철 | 인지연 | 최태현 | |||
재보선 | 오세훈 | 박영선 | 허경영 | 김진아 | 신지혜 | 신지예 | 송명숙 | 이수봉 | 오태양 | 정동희 | 이도엽 | 배영규 |
8회 | 오세훈 | 송영길 | 권수정 | 신지혜 | 김광종 |
10. 역대 후보 득표율 순위
- 3% 이하 득표한 후보는 제외
- 간선제 선거는 제외
- 당선된 후보는 볼드체
<rowcolor=white> 선거 | 후보 | 득표율 | 순위 |
4회 | 오세훈 | 61.05% | 1 |
1960 | 김상돈 | 60.25% | 2 |
8회 | 오세훈 | 59.05% | 3 |
2021 | 오세훈 | 57.50% | 4 |
6회 | 박원순 | 56.12% | 5 |
2회 | 고건 | 53.46% | 6 |
2011 | 박원순 | 53.40% | 7 |
7회 | 박원순 | 52.79% | 8 |
3회 | 이명박 | 52.28% | 9 |
5회 | 오세훈 | 47.43% | 10 |
한명숙 | 46.83% | 11 | |
2011 | 나경원 | 46.21% | 12 |
2회 | 최병렬 | 43.99% | 13 |
3회 | 김민석 | 43.02% | 14 |
6회 | 정몽준 | ||
1회 | 조순 | 42.35% | 16 |
8회 | 송영길 | 39.23% | 17 |
2021 | 박영선 | 39.18% | 18 |
1회 | 박찬종 | 33.51% | 19 |
1960 | 장기영 | 32.35% | 20 |
4회 | 강금실 | 27.31% | 21 |
7회 | 김문수 | 23.34% | 22 |
1회 | 정원식 | 20.67% | 23 |
7회 | 안철수 | 19.55% | 24 |
4회 | 박주선 | 7.71% | 25 |
1960 | 정준 | 6.30% | 26 |
5회 | 노회찬 | 3.26% | 27 |
11. 시정 구호
시장 | <colcolor=#000000,#ffffff> 슬로건 |
조순 | - |
고건 | - |
이명박 | - |
오세훈 | 맑고 매력있는 세계도시 서울 |
시민이 행복한 서울 세계가 사랑하는 서울 | |
박원순 | 희망서울 - 함께 만드는 서울, 함께 누리는 서울 |
함께 서울: 시민과 함께, 세계와 함께 | |
내 삶을 바꾸는 서울 10년 혁명 | |
오세훈 | 다시 뛰는 공정도시 서울 |
동행·매력 특별시 서울 |
12. 창작물에서의 서울시장
- 영화 <특별시민>: 변종구 (최민식 분)
- 서울시장 키우기: 정확히는 2021년 재보궐선거를 패러디한 게임이다.
- 임기 첫날에 게이트가 열렸다 - 한승문
- 재벌집 막내아들 - 최창제
13. 관련 문서
14.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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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 ||||
부의장 | 국무총리 | |||
한덕수 | ||||
| ||||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 | 추경호 |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 이주호 | |
과학기술정보통신부장관 | 이종호 | 외교부장관 | 박진 | |
통일부장관 | 권영세 | 법무부장관 | 한동훈 | |
국방부장관 | 이종섭 | 행정안전부장관 | 이상민 | |
문화체육관광부장관 | 박보균 | 농림축산식품부장관 | 정황근 | |
산업통상자원부장관 | 이창양 | 보건복지부장관 | 조규홍 | |
환경부장관 | 한화진 | 고용노동부장관 | 이정식 | |
여성가족부장관 | 김현숙 | 국토교통부장관 | 원희룡 | |
해양수산부장관 | 조승환 | 중소벤처기업부장관 | 이영 | |
| ||||
과학기술혁신본부장 | 주영창 | 통상교섭본부장 | 안덕근 | |
| ||||
국가안보실장 | 김성한 | 대통령비서실장 | 김대기 | |
국가교육위원회 위원장 | 이배용 | | 한상혁 | |
| ||||
국무조정실장 | 방문규 | 국가보훈처장 | 박민식 | |
인사혁신처장 | 김승호 | 법제처장 | 이완규 | |
식품의약품안전처장 | 오유경 | 금융위원회 위원장 | 김주현 | |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 | 한기정 |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위원장* | 고학수 | |
- | - |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장* | 유국희 | |
| ||||
서울특별시장 | 오세훈 | |||
기타 기관* | ||||
법원행정처장 | 김상환 | 헌법재판소 사무처장 | 박종문 | |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 송두환 | 한국은행 총재 | 이창용 | |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 | 김진욱 | |||
기타 의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하여 배석시키는, 중요 직위에 있는 공무원 | ||||
* 국무회의 규정 외의 법률에 의거하여 국무회의에 출석, 발언권 등이 있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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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급 | 반 | |||||||
반장 |
[1] 3선 연임 단체장이 나온 다른 몇몇 광역자치단체장과 달리 서울특별시장은 12년 연속으로 재임한 사람이 없다. 사상 최초로 3선 서울특별시장이 된 박원순도 2011년 하반기 재보궐선거로 당선되어 초선 임기를 시작했고, 3선 임기 중 성범죄 피소 직전 자살했기 때문이다.[2] 현직 시장인 오세훈이 예시. 민선 4·5기 서울시장직을 수행하다가 민선 5기 출범 1년이 약간 지난 후 2011 서울특별시 무상급식 주민투표에서 투표율이 33.3% 밑으로 뜨자 시장직을 사퇴한 이후, 10년 만에 2021년 재보궐선거에서 민선 7기 시장으로 돌아온 후,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당선되어서 4선 서울시장에 올랐다.[3] 특별시 및 광역시는 상하수도를 비롯한 시군에서 다루는 업무 상당수를 손수 다루므로 도지사보다 그 관할 구역 내에서 더 강한 권한과 위상을 지닌다. 당장 지방소득세만 해도 도 지역에서는 시나 군에 귀속되나, 특별/광역시에서는 시에 귀속된다.[4] 선출직 공무원으로 보면 대통령 바로 다음의 위상으로 정치권의 별칭이 소통령(小統領)일 정도. 경기도지사가 급증한 인구를 기반으로 위상에 도전하고 있으나, 도지사와 시장의 권한 차이 문제로 인해 서울시장에는 아직 우위를 점하지는 못하고 있다.[5] 일반적으로 위상에 있어 정치적 권력이나 실권 측면은 그 이상이라고 보고 있다. 다만 어찌 됐든 지방직이라 국가직 위주의 국가의전서열 목록에는 없다. 서울특별시장이 국가의전서열에서 제외당한 때는 2005년 참여정부 때이다. 그 이전까지는 서울시장도 국가의전서열에 있었는데, 장관급 인사 중에서 제일 마지막 순번이었다.[6] 한성판윤 또는 그냥 판윤으로도 불렸으며, 조선 초에는 한성부윤이 정식 명칭이었으므로 한성부윤 혹은 부윤으로도 불렸다.[7] 이로 인해 서울특별시의 행정부시장 2인과 기조실장의 경우 서울시장이 국무총리를 경유하여 대통령에게 임명안을 상신하여 대통령 명의의 임명장을 받게 되며, 행정안전부에서 국가직을 파견보내는 타 시도와는 달리 시장이 지명한 서울시청 내부 인사가 국가직으로 옷만 갈아입고 부시장 또는 기조실장이 된다. 더불어 서울시 소속 공무원의 상훈 수여도 타 시·도에서는 행안부장관을 경유해야 하는 것과는 달리, 서울특별시장은 대통령에게 다이렉트로 상신할 수 있다.[8] 15대 총선, 1998년 7월 재보궐선거, 16대 총선, 17대 총선.[9] 2002년에 영등포 을 지역구 의원을 사퇴하고 출마한 서울시장 선거에서 낙선한 후, 18년 만인 2020년 21대 총선에서 원래 지역구였던 영등포 을에 출마하여 다시 당선되었다. 선거에서 당선된 것은 20년 만이다. 또한 국회 복귀까지 텀이 길었던 과정에서 개인적으로는 이혼도 하는 등 사생활적인 면에서도 고충을 꽤나 겪었다.[10] 이후 2021년 말, 20대 대선 국면에서는 당시 윤석열 후보를 지지하였고 본선에서 윤석열이 대통령에 당선되며 취임식준비위원장에 임명되었고, 국무총리 하마평에도 올랐지만, 총리로는 한덕수가 임명된다(...).[11] 이후 바른미래당과 새로운보수당을 거쳐 현재는 국민의힘 소속이다.[12] 다만 21대 총선 직후 2020년 6월에는 국민의힘 산하의 정책연구소인 여의도연구원 원장에 임명된다. 수도권 출신의 원외 인사라 당무 집중이 가능한 점이 고려됐다고 한다.[13] 21대 총선 낙선, 2021년 재보궐선거 서울시장 후보 경선 패배, 2021년 국민의힘 전당대회 당 대표 선거 패배.[14] 박근혜 정부 이전에는 철저한 비박 정치인이었다.[15] 그러나 윤석열 정부 출범 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되며 기사회생했다.[16] 2021년 재보궐선거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했으며 서울시장 후보 지지율도 40%대로 다시 급상승하긴 했으나 오세훈과의 범야권 단일화 경선에서 패하여 후보에서 사퇴했다. 그러나 자신이 단일화로 양보해준 오세훈이 당선되어 야권에서 생명의 은인으로 감사를 받고 있고 오세훈도 안철수와의 협치를 약속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윈윈이 되었으며 명예로운 패배가 되어 향후 정치 전망이 다시 밝아졌으며 이후 제20대 대통령 선거 출마 후 지지율이 한때 15%까지 급상승했으나 이후 상승세가 꺾였고 대선 막판에 과정이 매끄럽지는 못했지만 윤석열과 단일화하고 윤석열이 당선된 후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장이 되었고, 2022년 6월 보궐선거 성남시 분당구 갑에 당선되며 3선 국회의원이 되면서 정치적 입지가 넓어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였다.[17] 중소벤처기업부장관까지 사퇴하고 출마한 선거에서 패배하였기에 정치 경력이 끊어졌다. 또한 이 낙선은 박영선 개인에게는 첫 낙선이며, 특히 3선을 한 자신의 정치적 고향과 같은 구로구에서도 오세훈 후보에게 패배했기에 필연적으로 정치적 입지가 좁아질 것이다. 거기다가 이듬해 실시된 대선에서도 이재명 후보가 윤석열 후보를 상대로 패배하여 당 전체가 다운된 상황이라 박영선의 정치적 입지가 되살아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설상가상으로 대선 3개월 후 실시된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이 12년 만에 구로구청장을 탈환하는 등 더불어민주당 입장에서는 악재의 연속이다.[18] 본인이 5선 의원 및 인천광역시장을 하면서 정치의 시작과 끝을 함께 해 오고 다져 온 계양구 을 지역구와 정치적 고향인 인천광역시를 버리고 서울특별시로 거처까지 옮기면서 출마를 강행했으나, 대패하여 뱃지만 잃었다. 세간에서는 향후 정치적 행보가 불투명하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더군다나 2022년 1월에 일찌감치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불출마까지 선언한 상태라서 향후 정치인으로서의 길을 계속 갈지 어떻게 될지 모르게 되었다.[19] 이명박 또한 대통령 퇴임 후에 감옥에 간 만큼 끝이 좋다고 볼 수는 없지만 그래도 서울시장 퇴임 1년 후에 대통령이 되었으므로 서울시장으로서의 끝만 보면 매우 성공적이었다. 반면 오세훈(1·2기)은 무상급식 문제로 불명예 사퇴했고 박원순은 자살했으니 서울시장으로서의 끝이 최악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박원순이 사망하고 오세훈이 10년 만에 서울시장으로 복귀하였다.[20] 국무총리 및 장관직은 임명직이니 선출직의 위상을 가질 수 없고, 대한민국 국회의원의 경우 정수만 300석에 이르는 데 비해 서울특별시장은 단 1석 뿐이다. 물론 다른 광역자치시도의 시장들이나 도지사들까지 합치면 17석이 되긴 하지만, 높아봐야 차관급에 불과한 타 광역자치단체장들에 비해 서울시장은 위에 썼던 것처럼 장관급이라 위상이 명백히 높다. 그리고 차관급인 타 광역자치단체장들도 장관직에 비하면 권한이 매우 강한 편에 속한다. 대표적인 예가 경기도지사.[21] 자치단체장과 국회의원은 겸임이 불가능하므로 시장 선거에 도전하려면 먼저 의원직부터 사퇴해야 한다. 즉, 국회의원 재직 중이라면 일단 의원 경력부터 포기해야 전국동시지방선거에 도전할 수 있다. 반면 장관직의 경우 국회의원과 겸임이 가능하므로 장관+국회의원 경력을 유지한다면 그 위상은 서울시장에 비해 좀 떨어진다 해도 일단 탄탄한 중앙 정계 경력을 지속하고 있는 셈이 된다. 물론 2002년 김민석, 2011년 나경원, 2014년 정몽준, 2022년 송영길처럼 의원직을 포기하고 서울시장에 출마한 사례도 적지 않고, 2021년의 박영선도 출마 당시 의원 신분만 아니었을 뿐 그 직전까지는 정치적 휴식기 없이 내리 4선 의원과 장관직을 역임했기에 성공적인 정치 커리어를 쌓고 있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들의 경우 제각기 특수성이 있는데, 일단 2011년 나경원/2021년 박영선의 사례는 개인의 정치적 커리어 이전에 소속 정당의 서울시장이 자폭하여 열린 재보궐선거라는 특수성이 있다. 즉, 개인의 경력을 위한 도전이기도 하지만, 소속 정당의 입장에서 서울시장이라는 핵심 요직을 상대 당에게 빼앗기는 상황, 특히 처참한 격차로 패배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일단 그 상황에서 경쟁력 있는 정치인에게 '당이 위험하니 험지로 나가달라'고 요청한 성격이 강하다. 즉, 해당 정당 차원에서 커리어상 적절한 정치인을 찾아 공천할 만한 여유도 없는 상황이었고, 어설픈 카드를 내밀었다가는 처참한 패배로 정당 자체가 큰 정치적 타격을 입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두 정치인이 자신들의 희생 가능성을 감수하고 구원투수로 등판한 격이다. 또한 2014년 정몽준의 사례는 2002년의 전성기를 놓친 이후 장기간의 침체기에 빠져 있던 정몽준이 상황 타개를 위해 던진 승부수라는 성격을 가지고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당시 정몽준이 '성공적인 정치 경력을 이어가고 있다'고 보기에는 단지 대한민국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을 이어가고 있을 뿐, 여야를 불문하고 한손에 꼽히는 주요 대권주자 중 하나이자 사실상 무소속이나 다름없는 일인 정당으로 거대 정당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던 전성기의 위세에 비하면 퇴조가 명확했다.[22] 서울시장까지 지낸 정치인 입장에서 정치적으로 더 윗급의 자리는 오로지 대통령 하나 뿐이라고 봐도 무방하고, 비슷한 위상의 자리라고 해도 국무총리, 거대양당 당 대표 정도밖에 없다.[23] 사면은 됐지만, 비리로 인하여 이미 전직대통령 예우는 박탈당해서 사면되었다 해도 경호와 경비를 제외한 모든 예우는 제공받지 못한다.[24] 2018년 지방선거에 출마한 안철수 역시 그의 소속 정당인 바른미래당이 민주당계 정당과 보수 정당이 합당한 결과물이기 때문에 여기에 포함된다.[25] 이 조항에 따라서 서울특별시청에 들어가는 국가직공무원인 행정부시장 2인과 기획조정실장에 대한 인사권 역시 서울특별시장이 사실상 행사하며, 실제로는 시장의 임명제청에 따라 대통령이 임명한다. 따라서 대통령실 인사검증에서 탈락한 경우, 시장의 임명제청을 대통령이 거부할 수도 있다. 2021년 4월 오세훈 시장이 임명제청한 황보연 기조실장 후보자가 청와대 인사검증에 막혀 정식 임명을 거부당한 것이 그 예시.[26] 현안 관련 공무원을 국무회의에 참석시킬 수 있는 규정을 통해 청계천 복원사업 질의와 관련하여 이명박 전 시장을 국무회의에 출석시킨 적은 있다.[27] 보통 예산 문제다.[28] 문민정부 출범 초기 7일 만에 경질된 김상철 전 시장에 이어 두번째로 단명한 서울시장으로 남았다.[29] 그나마도 본적이 호남이어서 호남 출신으로 분류된 케이스이며, 고건 본인은 서울 출신이다. 윤석열이 충남 출신인 부친의 영향으로, 충청 출신으로 분류되기도 하는 것과 비슷한 케이스.[30] 단, 박원순의 마지막 부시장들이었던 서정협(행정1부시장), 김학진(행정2부시장), 김우영(정무부시장)은 모두 비호남 출신이었다. 서정협은 울산광역시, 김학진은 경북 경주시, 김우영은 강원 강릉시 출신[31] 인구가 춘천시, 강릉시, 속초시, 동해시를 합한 것과 비슷하고 중구의 5배 이상이라 총선에서도 개표 속도가 가장 늦다.[32] 다만 당시에는 정식으로 '부산직할시'의 이름은 얻지 못하고 '경상남도'만 빠져서 시장 직함명 역시 1981년 부산직할시 정식 개칭 전까지는 그냥 '부산시장'이었던지라 근래에는 이 시기를 '(정부 직할) 부산시(장)'으로 표기한다.[33] 부산전차도 이때 동시에 폐선되었는데, 부산전차 폐선 계획을 최초로 수립한 사람 역시 김현옥 전 시장이었다. 다만 임기 내에는 실행하지 않고 후임 김대만 전 시장이 실행한 것.[34] 더 엄청난 것은 2호선 계획에서 영등포역 예정지 공사가 당시 기술로는 불가능해서 신도림으로 위치가 바뀐 것을 빼면 난공사라 할 것이 없었다.[35] 비슷한 사례로 서울시장은 아니지만 관선 1번 + 민선 3번으로 4번 도지사를 지냈던 심대평 전 충청남도지사의 사례, 제25대 부산직할시장(관선)과 제31·32대 부산광역시장(민선)을 지낸 안상영 전 부산시장이 있다.[36] 본인부터가 여론조사 결과와는 다르게 매우 아슬아슬하게 이겼고, 서울시의원 선거에서도 한나라당이 크게 패배하며 팔다리가 잘렸다.[37] 이 때 박원순이 서울특별시장 선거에서 깨고 올라간 상대가 다름아닌 나경원이었다.[38] 왜 이렇게 많냐면, 조선 시대의 한성부윤은 임기가 반년도 채 안 됐다.[39] 571p.~606p.[40] 주임관 3~5등으로 보했다. 이는 현재의 2~5급 공무원과 비슷한 지위이며 당시 일본군의 영관급 장교에 맞먹었다. 즉, 일반 시장, 군수와 같거나 위고 도지사보다는 아래인 셈.[41] 선거 당시 당적.[42] 1년 183일. 에히메 현 현지사 등을 역임했다. #[43] 7년 247일. 판한성부사부터 서울시장까지 통틀어 최장 기간 역임자였으나 2019년 박원순이 이 기록을 깼다. 마산부윤 등을 역임했다.[44] 1년 244일. 함경북도지사 등을 역임했다. #[45] 1년 203일. 인천부윤 등을 역임했다. #[46] 2년 112일. 평안북도지사, 경상남도지사 등을 역임했다. #[47] 3년 220일. 함경남도지사, 전라남도지사 등을 역임했다. #[48] 325일. 함경남도지사 등을 역임했다. #[49] 1년. 함경남도지사, 경상남도지사 등을 역임했다. #[50] 285일. 함경북도지사 등을 역임했다. #[51] 2년 72일. 총독부 체신국장 등을 역임했다. #[52] 2년 167일. 경상북도지사 등을 역임했다. #[53] 1년 43일. 직속상관인 경기도지사 등을 역임했다. #[54] 1년 129일. 경기도 경찰부장, 내무부장 등을 역임했다. #[55] 2년 76일. 경상북도지사 등을 역임했다.[56] 1년 118일. 평앙부윤, 부산부윤 등을 역임했다. #[57] 2년 344일. 대구부윤 등을 역임했다. #[58] 44일. 마지막 일제강점기 경기도지사 등을 역임했다. #[59] 공식적으로 미군정에 사표를 제출한 날짜는 1945년 9월 15일이다.[60] 60일. 주로 총독부 본청에서 근무했으며 8.15 광복과 동시에 직무 이탈했다.[61] 미군정부윤(military mayor)과 한국인 민정부윤으로 이원화되어 있었다. 1945년 9월 9일 미군이 서울에 진주하면서 제임스 킬러프(James S. Killough) 소령이 군정부윤으로 시정을 맡았고 1945년 11월 17일 제40 군정중대가 경성부의 행정권을 인수하면서 제임스 윌슨(James E. Wilson) 중령이 맡았다.[62] 69일. 미 육군 소령.[63] 315일. 미 육군 중령.[64] 광복 당시 경성부윤이었던 일본인 쓰지 게이고(辻桂五)가 업무를 놓으면서 김창영(金昌永)이 추대되어 사무를 인계받아 경성부 행정을 담당했다. 김창영은 이후 미군정이 주둔하면서 경성부 부부윤(부시장) 겸 기획실장으로 임명되어 실무를 담당했다. 김창영을 초대 부윤으로 언급하기도 하지만 공식적으로 부윤으로 임명되거나 권한이 위임된 것은 아니다. 일본인 경성부윤과 부서장들은 미군정이 들어오고 나서 1945년 9월 15일에 사표를 제출했다.[65] 서울특별시史의 기록이다. 미군정 문서에는 10월 26일 임명되어 10월 27일부터 업무를 맡았으며 첫 번째 공식 행사는 10월 27일 대회의실에 집결한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연설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66] 신병을 사유로 1946년 5월 9일 사표를 제출하여 수리됨.[67] 197일.[68] 51일. 경성부 총무부장. 이후에는 심계원 차장을 역임했다.[69] 서울특별시史 해방후 시정편의 기록이다. 동아일보 1946년 7월 7일 기사에서는 7월 1일 오후 2시에 취임식을 거행했다고 나온다.[70] 90일. 임기 중 경성부가 서울시로 개칭되면서 초대 서울특별자유시장이 된다.[71] 선거 당시 당적.[72] 2년 78일. 해방 이후 초대 서울시장. 서울(특별자유시)이라는 명칭을 정착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한다. 초창기에는 경성부윤이었으나 곧 '서울시장'으로 개칭되었다. 여담으로 이승만 전 대통령은 미국의 워싱턴 D.C.처럼 서울시를 우남시로 만들고 싶어했다.[73] 172일.[74] 69일.[75] 선거 당시 당적.[76] 1년 266일.[77] 후임 김태선 취임까지 전예용 전 부시장이 권한대행.[78] 1년 26일.[79] 3년 337일.[80] 김태선 전 시장이 내무부장관으로 잠시 자리를 옮겼다가 복귀할 때까지 이익흥 전 부시장이 권한대행.[81] 1년 160일.[82] 1년 179일.[83] 323일.[84] 242일.[85] 장면 내각이 들어서면서 시민들의 선거로 선출되었다. 하지만 얼마 안 있다가 5.16 군사정변이 일어나면서 서울시장은 3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대통령 임명직으로 회귀했다.[86] 이 당시의 지방선거는 시장, 도지사, 군수, 읍장, 면장, 시/도의원, 시/읍/면의원을 선출하였다. 현재의 전국동시지방선거와는 조금 다르다.[87] 선거 당시 당적.[88] 137일. 4.19 혁명으로 장면 내각이 들어서면서 선거를 통해 최초의 민선 시장이 되었다. 날짜를 보면 예상되지만, 1961년 일어난 5.16 군사정변으로 인해 임기를 반 년도 못 채우고 경질된다.[89] 선거 당시 당적.[90] 2년 210일.[91] 2년 104일.[92] 4년 15일. 박정희 전 대통령의 오른팔이자 최측근으로 서울시장에 임명되어 불도저라는 별명답게 서울 대개조 사업을 추진했다. 그러나 와우 아파트 붕괴사고가 일어나 그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93] 4년 139일. 임명직 시장 중 최장기간 재임. 그러나 육영수 저격 사건의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94] 4년 111일.[95] 1년 254일.[96] 1년 237일.[97] 1년 169일.[98] 4년 76일. 1986 서울 아시안 게임과 1988 서울 올림픽 성공의 주역. 재임기간 지하철 2, 3, 4호선을 완공하였다.[99] 340일.[100] 2년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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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자유당|
]] 소속.[101] 53일.[102] 1년 127일.[103] 244일. 새 대통령 취임일에 맞춰 퇴임했다.[104] 7일. 당시 매우 유명했던 인권 변호사 출신에 40대라는 젊은 나이로 참신한 이미지까지 갖추고 있어, 당시 최초의 민주 세력 정부였던 김영삼 정부의 주요 인사로 내세울 만했다. 하지만 시장 취임 후 곧바로 서울 근교에 위치한 수려한 본인 소유의 전원 주택이 그린 벨트를 무단 훼손해서 건축된 사실이 언론 보도로 드러남으로써 1주일 만에 자진 사퇴하였다. 여담으로 김대중 정부 출범 후에는 보수 세력으로 변신하였다. 역대 최단 기간 재임.[105] 1년 227일. 날짜를 보면 알겠지만, 성수대교 붕괴 사고가 일어난 그날 오후 7시에 문책성으로 경질되었다. 후에 민선 충청북도지사를 지냈다.[106] 11일. 경상북도지사를 하던 중에 이원종 전 시장의 경질로 급히 신임 시장에 임명되었지만 11일 만에 자진 사퇴했다.[107] 239일. 마지막 관선 시장.
[[민주자유당|
]] 소속.[108] 선거 당시 당적.[109] 2년 71일.[110] 1997.9.9. 제15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위해 시장직 사퇴.[111] 293일.[112] 4년.[113] 2000.1.20.
[[새천년민주당|
]]으로 당명 변경.[114] 외국 태생. 실질적 고향은 아버지의 고향인 경북 포항.[115] 4년.[116] 임기 만료로 퇴임 직후 바로 대선에 뛰어들어 당선,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었다. 민선 서울특별시장 출신 첫 대통령. 임명직 서울시장 출신 대통령으로는 2대 시장인 윤보선이 있다.[117] 4년.[118] 민선 기준 최초의 재선 서울특별시장.[119] 1년 56일.[120] 무상급식 주민투표 당시 투표율이 33.3%에 못 미치자 사퇴했다.[121] 60일.[122] 2년 247일.[123] 무소속으로 당선되었으나 사실상 야권의 단일 후보였다. 재보궐선거 당시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를 꺾었고, 시장 취임 후 에 입당한다.[124] 2012.2.23. 입당.[125] 4년.[126] 2015.12.28.
으로 당명 변경.[127] 2년 9일.[128] 최초의 3선 서울특별시장. 역대 최장기간 재임(8년 256일). 재임 중 사망.[129] 272일.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사망으로 인한 서울특별시장 권한대행.[130] 직전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사망 사실이 10일 0시(9일 자정)를 넘겨 확인되었기 때문에 실종 당일인 9일에는 임시로 직무 대리를 맡았던 것. 주된 차이가 시장으로서 현직이 누구냐 정도이다. 결재권자가 현직 시장인데 임시로 현상 유지의 범위 내에서 대결하는 자리가 직무 대리이고 권한대행자가 바로 최종 결재권자가 되는 것이 권한대행이다.[131] 1년 84일.[132] 두번째 3선 서울시장이고 임기 이후 재출마하여 당선된 세 번째 광역자치단체장이다. 이전에는 염홍철 전 대전시장과 우근민 전 제주도지사가 임기 이후 재당선된 사례가 있다.[133] 최초의 4선 서울특별시장. 임기를 정상적으로 마칠 경우 역대 최장기간 재임 기록을 가져오게 된다. (통산 10년 139일)[134] 서울 자치구 중 최소 투표수.[135] 서울 자치구 중 최저 투표율.[136] 서울 자치구 중 최고 투표율.[137] 한명숙 승리 자치구 중 최다 득표수 차.[138] 한명숙 승리 자치구 중 최고 득표율 차.[139] 오세훈 승리 자치구 중 최다 득표수 차.[140] 오세훈 승리 자치구 중 최고 득표율 차.[141] 서울 자치구 중 최다 투표수.[142] 이후 8회 지선 경기도지사 선거가 이 선거를 능가하는 초접전 선거가 되었다.[143] 특히 성동구, 동대문구, 중랑구, 도봉구까지 강북 여러 자치구에서 1%p 이내 초접전을 벌였다.[144] 실제 한명숙 후보가 승리한 17개 구 중 1만 표 이상 차이를 벌린 곳은 관악구와 마포구뿐이었다.[145] 그리고 박원순의 3선 임기는 미완으로 끝나게 되었다.[146] 서울시장 여론조사 박원순의 3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여론조사에서 강남3구의 긍정 평가가 50%를 넘겨버렸다.[147] 구일역의 설계를 변경해가면서 고척 스카이돔 방향 출구를 만들었고, 하필 일대가 헬게이트 터지는 경인로인지라 고척돔 인근의 도로를 다 뜯어고쳤다.[148] 사직 야구장,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 파크 같은 낡은 구장의 신축을 돔구장으로 해야한다는 주장이 있긴 하다.[149] 인근에 서울공항이 있다. 군용기가 공항에 안전하게 착륙하기 위해선 시야 확보=안전 확보가 최우선인데, 롯데월드타워가 세워지게 된다면 이 건물 때문에 시야 확보가 어려워지므로 활주로의 각도를 7도 가량 틀어야 한다며 공군이 반대하자 "공군 의견은 그저 참고사항일 뿐"이라는 소리를 했다. 심지어 이런 논란도 있다. 안보를 외친다는 보수 정당의 서울시장이 현대전에서 지상 전력 만큼이나 중요한 공중 전력의 제공권 확보에 관한 사안을 무시해버린 셈.[150] 물론 당선 뒤로 민주통합당에 입당하지만.[151] 그나마 불출마 후 1998년 재보궐선거에서 강원 강릉시 을에 출마해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니 국회의원 무경력은 박원순 전 시장이 유일하다.[152] 관악구는 서울에서 민주당 세가 가장 강한 지역이고 노원구는 안철수의 전 지역구다.[153] 물론 남경필이나 유정복도 경기도와 인천에서 35%대의 득표율로 2위를 하긴 했지만 김문수의 경우 2위 싸움의 상대가 1년 전 대선에서 서울 2위를 차지한 안철수라는 점이 다르다.[154] 2021년 3월 23일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와 단일화 확정으로 사퇴했다. 후보 등록일 이후 사퇴하였기 때문에 투표 용지에는 인쇄되었으나, 기표란에 사퇴라고 표시되었다.[155]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156] 종로구, 서대문구, 은평구, 성북구, 강북구, 도봉구, 중랑구, 강서구, 구로구, 금천구, 관악구.[157] 무효표 38,242표.[158] 무효표 수 641표.[159] 무효표 수 678표.[160] 서울 지역 내 최소 투표 수.[161] 무효표 수 719표.[162] 무효표 수 1,312표.[163] 무효표 수 1,399표.[164] 무효표 수 1,525표.[165] 무효표 수 1,926표.[166] 무효표 수 1,738표.[167] 무효표 수 1,465표.[168] 무효표 수 1,417표.[169] 무효표 수 2,485표.[170] 무효표 수 2,142표.[171] 무효표 수 1,275표.[172] 무효표 수 1,310표.[173] 무효표 수 1,374표.[174] 무효표 수 2,217표.[175] 무효표 수 1,914표.[176] 무효표 수 1,152표.[177] 서울 지역 내 투표율 꼴찌.[178] 서울 지역 내 최소 득표수 차.[179] 무효표 수 1,459표.[180] 무효표 수 1,337표.[181] 무효표 수 2,408표.[182] 서울 지역 내 최소 득표율 차.[183] 무효표 수 958표.[184] 서울 지역 내 투표율 1위.[185] 무효표 수 1,410표.[186] 서울 지역 내 최다 득표 수 차.[187] 서울 지역 내 최다 득표율 차.[188] 무효표 수 2,280표.[189] 서울 지역 내 최다 투표 수.[190] 무효표 수 1,701표.[191] 공교롭게도 1번째 기록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오세훈 자신이 기록했다. 당시는 522개 동 중 522개 동 전역에서 이겼다.[192] 역시 전 행정동에서 전패한 변성완이나 서재헌이 득표율 상으론 송영길보다 처참한 결과를 만들어냈긴 하나, 적어도 두 명은 영남권이란 보수세가 강한 지역이고 상대 후보와 체급 차이도 어마어마했다. 하지만 송영길은 비록 인천광역시 출신 후보이긴 하나, 엄연히 5선을 한 대권 주자였기에 더 굴욕적인 결과라 봐도 무방하다.[193] 3% 이상 득표자만 기재.[194] 중도 성향 후보.[195] 민주당계 정당 후보.[196] 진보정당 후보.[197] 민주당계·진보 성향 후보.[198] 제3지대 정당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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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자유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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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당명 변경.[127] 2년 9일.[128] 최초의 3선 서울특별시장. 역대 최장기간 재임(8년 256일). 재임 중 사망.[129] 272일.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사망으로 인한 서울특별시장 권한대행.[130] 직전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사망 사실이 10일 0시(9일 자정)를 넘겨 확인되었기 때문에 실종 당일인 9일에는 임시로 직무 대리를 맡았던 것. 주된 차이가 시장으로서 현직이 누구냐 정도이다. 결재권자가 현직 시장인데 임시로 현상 유지의 범위 내에서 대결하는 자리가 직무 대리이고 권한대행자가 바로 최종 결재권자가 되는 것이 권한대행이다.[131] 1년 84일.[132] 두번째 3선 서울시장이고 임기 이후 재출마하여 당선된 세 번째 광역자치단체장이다. 이전에는 염홍철 전 대전시장과 우근민 전 제주도지사가 임기 이후 재당선된 사례가 있다.[133] 최초의 4선 서울특별시장. 임기를 정상적으로 마칠 경우 역대 최장기간 재임 기록을 가져오게 된다. (통산 10년 139일)[134] 서울 자치구 중 최소 투표수.[135] 서울 자치구 중 최저 투표율.[136] 서울 자치구 중 최고 투표율.[137] 한명숙 승리 자치구 중 최다 득표수 차.[138] 한명숙 승리 자치구 중 최고 득표율 차.[139] 오세훈 승리 자치구 중 최다 득표수 차.[140] 오세훈 승리 자치구 중 최고 득표율 차.[141] 서울 자치구 중 최다 투표수.[142] 이후 8회 지선 경기도지사 선거가 이 선거를 능가하는 초접전 선거가 되었다.[143] 특히 성동구, 동대문구, 중랑구, 도봉구까지 강북 여러 자치구에서 1%p 이내 초접전을 벌였다.[144] 실제 한명숙 후보가 승리한 17개 구 중 1만 표 이상 차이를 벌린 곳은 관악구와 마포구뿐이었다.[145] 그리고 박원순의 3선 임기는 미완으로 끝나게 되었다.[146] 서울시장 여론조사 박원순의 3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여론조사에서 강남3구의 긍정 평가가 50%를 넘겨버렸다.[147] 구일역의 설계를 변경해가면서 고척 스카이돔 방향 출구를 만들었고, 하필 일대가 헬게이트 터지는 경인로인지라 고척돔 인근의 도로를 다 뜯어고쳤다.[148] 사직 야구장,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 파크 같은 낡은 구장의 신축을 돔구장으로 해야한다는 주장이 있긴 하다.[149] 인근에 서울공항이 있다. 군용기가 공항에 안전하게 착륙하기 위해선 시야 확보=안전 확보가 최우선인데, 롯데월드타워가 세워지게 된다면 이 건물 때문에 시야 확보가 어려워지므로 활주로의 각도를 7도 가량 틀어야 한다며 공군이 반대하자 "공군 의견은 그저 참고사항일 뿐"이라는 소리를 했다. 심지어 이런 논란도 있다. 안보를 외친다는 보수 정당의 서울시장이 현대전에서 지상 전력 만큼이나 중요한 공중 전력의 제공권 확보에 관한 사안을 무시해버린 셈.[150] 물론 당선 뒤로 민주통합당에 입당하지만.[151] 그나마 불출마 후 1998년 재보궐선거에서 강원 강릉시 을에 출마해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니 국회의원 무경력은 박원순 전 시장이 유일하다.[152] 관악구는 서울에서 민주당 세가 가장 강한 지역이고 노원구는 안철수의 전 지역구다.[153] 물론 남경필이나 유정복도 경기도와 인천에서 35%대의 득표율로 2위를 하긴 했지만 김문수의 경우 2위 싸움의 상대가 1년 전 대선에서 서울 2위를 차지한 안철수라는 점이 다르다.[154] 2021년 3월 23일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와 단일화 확정으로 사퇴했다. 후보 등록일 이후 사퇴하였기 때문에 투표 용지에는 인쇄되었으나, 기표란에 사퇴라고 표시되었다.[155]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156] 종로구, 서대문구, 은평구, 성북구, 강북구, 도봉구, 중랑구, 강서구, 구로구, 금천구, 관악구.[157] 무효표 38,242표.[158] 무효표 수 641표.[159] 무효표 수 678표.[160] 서울 지역 내 최소 투표 수.[161] 무효표 수 719표.[162] 무효표 수 1,312표.[163] 무효표 수 1,399표.[164] 무효표 수 1,525표.[165] 무효표 수 1,926표.[166] 무효표 수 1,738표.[167] 무효표 수 1,465표.[168] 무효표 수 1,417표.[169] 무효표 수 2,485표.[170] 무효표 수 2,142표.[171] 무효표 수 1,275표.[172] 무효표 수 1,310표.[173] 무효표 수 1,374표.[174] 무효표 수 2,217표.[175] 무효표 수 1,914표.[176] 무효표 수 1,152표.[177] 서울 지역 내 투표율 꼴찌.[178] 서울 지역 내 최소 득표수 차.[179] 무효표 수 1,459표.[180] 무효표 수 1,337표.[181] 무효표 수 2,408표.[182] 서울 지역 내 최소 득표율 차.[183] 무효표 수 958표.[184] 서울 지역 내 투표율 1위.[185] 무효표 수 1,410표.[186] 서울 지역 내 최다 득표 수 차.[187] 서울 지역 내 최다 득표율 차.[188] 무효표 수 2,280표.[189] 서울 지역 내 최다 투표 수.[190] 무효표 수 1,701표.[191] 공교롭게도 1번째 기록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오세훈 자신이 기록했다. 당시는 522개 동 중 522개 동 전역에서 이겼다.[192] 역시 전 행정동에서 전패한 변성완이나 서재헌이 득표율 상으론 송영길보다 처참한 결과를 만들어냈긴 하나, 적어도 두 명은 영남권이란 보수세가 강한 지역이고 상대 후보와 체급 차이도 어마어마했다. 하지만 송영길은 비록 인천광역시 출신 후보이긴 하나, 엄연히 5선을 한 대권 주자였기에 더 굴욕적인 결과라 봐도 무방하다.[193] 3% 이상 득표자만 기재.[194] 중도 성향 후보.[195] 민주당계 정당 후보.[196] 진보정당 후보.[197] 민주당계·진보 성향 후보.[198] 제3지대 정당 후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