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1 15:26:43

부산 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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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노선은 현재 폐선되었습니다.

이 문서에서 서술하는 노선은 현재 폐선되어 더 이상 운행을 하지 않습니다.
파일:대한민국 국장.svg 대한민국의 국가등록문화재
493호 494호 495호
제1회 아시안컵 축구대회 우승컵 부산 전차 러들로 흉판

파일:4eez0nsr.jpg
부산 도시철도 1호선 토성역 인근 동아대학교 석당박물관에 보존전시된 부산전차 차량.[1]

釜山電車 / Pusan Tram

1. 개요2. 역사
2.1. 부산궤도2.2. 일제강점기2.3. 해방 이후2.4. 폐선 이후의 행보
3. 요금제4. 연도별 연간승객수5. 노선6. 역 목록7. 역명과 오늘날8. 부활?

1. 개요

1915년[2]부터 1968년까지 부산직할시에서 운행했던 옛 노면전차 노선.

파일:attachment/부산전차/Noseondo.jpg
1962년 부산의 전차 노선도. 지금의 송공삼거리~교대역 구간의 거제대로를 제외하면 부산 도시철도 1호선온천장역~서대신역 구간과 역 위치까지 거의 일치하며 영도대교를 지나 영도구로 들어가는 지선이 있었다. 7번 국도와도 일치한다 오른쪽으로 90도 회전하면 쉽게 볼수 있다.

2. 역사

2.1. 부산궤도

파일:attachment/부산전차/Guedo.jpg
부산궤도를 달리던 기관차. 역사 교과서에 있는 증기기관차 사진

1909년, 아직 경술국치 이전이었지만 부산을 비롯한 대한제국 땅에는 이미 일본인들이 꽤 많이 들어와 있었다. 일본인들은 온천욕을 매우 중요시했기 때문에 부산 시가지 인근 동래온천을 자주 찾아 수요가 꽤 있었다. 하지만 교통은 불편하다보니 경부선 철도 연선의 부산 시가지에서 동래온천까지 빠르고 편하게 갈 수 있도록 도요타 후쿠타로 등 일본인 유지 몇 명이 모여 궤도를 깔기로 결정했다. 1909년에 건설과 운영을 위한 부산경편궤도주식회사를 세우고 같은 해 11월에 부산진~동래남문, 12월에 동래남문~온천장 구간에 부산궤도 노선이 개통되었다. 그리고 1911년에 조선와사[3] 이를 인수해 4만5천이라는 거금을 들여 1915년 10월에 선로를 전철화하고 궤간을 610mm에서 762mm로 개궤했으며 노선을 부산진역에서 초량, 우편국까지 연장해 본격적으로 노면전차 운행을 시작했다. 몇 달 동안은 궤도와 노면전차가 같은 선로를 달리다가 1916년 3월부터는 기관차 운행을 중단하고 노면전차 전용선으로 바꾸게 되었다.

2.2. 일제강점기

1917년에는 나가테(長手, 현 광복로 일대) 선을 연장 개통해 당시의 부산 시가지(지금의 중구, 동구, 서구 일대)를 도는 순환선이 완성되었다. 1925년 경상남도청이 진주에서 부산으로 이전하면서 도청 방향 연장공사를 시작해, 1928년에 도청이 있는 부민동을 지나 대신동 운동장까지 연장되어 비로소 현재 부산 도시철도 1호선온천장역부터 서대신역의 전신에 해당하는 구간이 완성되었고 이 노선이 훗날 폐선할 때까지 대체로 유지되었다.

지금은 부산 자체가 연담화되어 남포동부터 동래까지 시가지로 쭉 이어진 하나의 도시가 됐지만 당시에는 가운데 서면은 말 그대로 면, 시골이었고 동래는 지금의 남포동 일대의 부산과 따로 시가지를 형성하고 있는 또다른 도시였다. 그렇기에 부산전차는 부산 내에서는 도시철도 역할을 하지만 동래와 부산을 잇는 광역철도 역할도 했는데 부산 시가지 안에서는 쓸 수 없는 대형 차량을 온천장~부산진 구간에 투입해 폭증하는 수요를 겨우 감당했을 정도로 흥했다고 한다. 복선화도 일부 구간에 한해 진행되었다.

파일:attachment/부산전차/Daesin.jpg

1934년에는 영도대교가 개통, 영도로 가는 지선도 같은 해 운행을 시작했다.[4]

1937년에는 대흥전기주식회사 등 한반도 남부의 6대 전기회사가 합병해 남선합동전기주식회사가 되었고 조선와사전기의 노면전차와 버스는 이 쪽으로 넘어갔다.

일제강점기 시절에는 각종 사건사고가 민족간 갈등과 얽혀 벌어진 바 있다. 전차가 조선인 여럿을 치어죽여 기관사와 조선인 간 폭행사건으로 이어지고, 내려달라는 조선인 부탁을 무시하거나 대부분 일본인인 기관사가 일본어 안내방송만 해서 잘못 내리고 할수 없이 돈을 더 내는 조선인이 허다했다.

2.3. 해방 이후

8.15광복으로 비로소 부산전차는 한국인의 손으로 돌아왔지만 자재 부족, 정비 불량이 겹쳐 초기에는 문제가 많았다. 관리하던 일본인들은 노하우를 전수하지 않고 다 본토로 도망가버렸다보니... 해방 당시에는 61대의 일제 차량이 있었는데 차량 노후화, 정비불량으로 인해 실제로 굴릴 수 있었던 건 38대뿐이었다고...이후엔 더 심각해져서 1946년에는 13대, 1947년에는 8대밖에 굴러가는 놈이 없었다.[5]

당시 미국은 마침 로스앤젤레스의 노면전차 노선이 미국 전차 스캔들로 인해 대거 폐선되어 남는 잉여 차량을 대한민국, 칠레, 이집트 등에 공짜로 보내주었다. 한국에는 100대를 보냈는데 부산에는 32대가 왔다.[6] 이후에도 애틀랜타 등지에서 원조 차량을 보내주어 미국제 전차의 비율이 대폭 높아졌다.

파일:attachment/부산전차/migukmark.jpg
미국 마크가 옆에 찍힌 원조차량.

1952년 부산우체국 앞 대로에서 충돌사고가 발생했고 안 그래도 대청로(부산)를 지나는 선로가 노후화가 심해서 1953년 전후로 대청로 선로를 폐선했다.[7] 이 때부터 개통 초창기의 원도심 순환선 형태를 잃고, 현재의 1호선처럼 원도심을 U자를 그리며 지나가는 한 줄 노선으로 운행한다.

1961년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당시에는 윤보선 대통령이 아직 현직이었다.)이 전력회사들을 정리하면서 부산전차도 남선합동전기에서 한국전력주식회사로 경영권이 넘어갔다.[8]

파일:attachment/부산전차/jidonoseondo.jpg
지금의 지도 위에 표시한 1962년 노선도. 1963년에는 일본의 후지샤료에서 만든 신차 10대를 사서 8대는 서울에 2대는 부산에 보냈다.

파일:attachment/부산전차/sago.jpg[9]
1950~60년대가 되자 노후화도 많이 됐고 슬슬 늘어나는 자동차에 치이면서 사고도 부쩍 늘기 시작했고 장사가 안 되는 일부 노선이 폐지되었다.

이후 도로교통의 발달로 전차는 자동차 앞에서 길막이나 하는 애물단지 취급을 받다가 결국 1968년 5월 20일에 완전히 폐선되었다. 같은 해 11월 30일 서울에서도 전차가 폐선되어 한반도에서 노면전차 노선은 한때 모두 사라지게 된다.[10]

파일:attachment/부산전차/last.jpg
부산일보에 실렸던 '1968년 5월 20일 마지막 영업을 마치고 서면 차고지에 돌아오는 차량을 맞아주는 직원들'

2.4. 폐선 이후의 행보

1968년 폐선된 이후 352호 전차는 다시 미국 라스베가스로 보내져 거기서 스파게티 레스토랑으로 사용되다가 1988년 오렌지 엠파이어 철도박물관에 기증되었고, 현재 메인 주 Kennebunkport에 있는 Seashore Trolley Museum에 전시되어있다.

1952년 미국 애틀랜타에서 운행되던 중고 전차를 무상원조받은 차량 가운데 1량[11]동아대학교 설립자 겸 초대 총장이었던 석당 정재환[12]의 요청으로 학습용으로 기증받아 부산광역시에 위치한 동아대학교 구덕캠퍼스에 보관하고 있었으나 40여 년간 일반인들에게 관람용으로 공개되지는 않았다.[13] 별다른 관람 시설 없이 옛 법대 건물 뒤 쪽 간이보관소에 보관되던 이 전차는 관리 소홀로 인한 부식과 훼손 등으로 1980년에 전후면부 철판 완전교체, 지붕과 내부 목재 완전교체와 도색작업 등 대대적인 수리작업을 받았고 2009년 3월 동아대학교 부민캠퍼스 완공과 서구청의 임시수도기념거리 조성에 맞춰 2010년 12월 보존처리 과정을 거쳐 2011년 7월부터 일반에 공개 중이다. 2012년 4월 18일 문화재청등록문화재 제494호로 지정되었다. 문서 참고. 내부관람은 동아대학교 석당박물관 경비실에서 무료로 배부하는 티켓을 받아서 가능하다.[14]

1968년에 부산전차가 폐선된 이후 부산에서 궤도교통이 다시 들어오게 된건 17년이 지난 이후로, 이때 생긴 궤도교통이 다름아닌 부산 도시철도 1호선이다.

2016년부터 6월과 10월 경에 서구 부민동에서 열리는 피란수도 부산야행 행사 시즌 때는 티켓 발부 없이 방문객들에게 전면 무료로 개방되며 해설사가 해설 및 안내를 해 준다.

2017년 11월 20일부터 전차 내 바닥 안정성문제와 흔들림이 증가하여, 안전진단과 보전계획 수립을 위해 잠정적으로 내부관람이 중단된 상태이다. 밖에서 들여다보는 관람은 가능하다.

3. 요금제

1929년 기준. 부산역에서 시내순환선 내는 1구간, 구내는 5전 단일요금이었다. 부산역에서 초량고관까지 1구간, 초량고관에서 부산진까지 1구간, 부산역에서 동래온천까지 5구간으로 나눠져 있었다.

4. 연도별 연간승객수

연도 연간승객수
1920 2,362,537
1921 3,094,151
1922 3,957,763
1923 4,400,758
1924 4,767,135
1925 7,970,737
1926 6,103,081
1927 9,754,867
1928 7,526,876
1929 7,733,780
1930 7,131,788
1931 6,832,539
1932 6,510,702
1933 6,673,483
1934 7,475,992
1935 8,482,698
1936 9,904,903
1937 11,561,087

5. 노선

크게 5개의 기종점[15]을 두고 이 구간들을 연결하는 식으로 운행되었다. 일제강점기 중반에는 시내 순환선이 있었으나 노선을 조금씩 바꾸면서 없어졌다.

노선 계통 및 연장은 일제강점기였던 1924년 기준 다음과 같다.
  • 범일정선[16](凡一町線, 3.979km)
  • 목도선[17](牧ノ島線, 1.966km)
  • 장수선[18](長手線, 3.376km)
  • 대청정선[19](大庁町線, 1.488km)
  • 동래선(東莱線, 10.906km)

6. 역 목록

  • 소재지 행정구역은 1962년 기준이다. 따라서 사대앞역~신좌수영역 구간이 있었던 연제구가 당시에는 동래구에 포함되어 있다. 연제구 분구는 1995년에야 이루어졌으니 한참 뒤이다.
역명 승강장 환승노선 소재지
형태 횡단
0.0 온천장 溫泉場 동래구
서문구 西門口
동 래[20] 東 萊
사대앞 師大앞
남문구 南門口
거제리 巨堤里
신좌수영 新佐水營
부 전 釜 田 동해남부선 부산진구
서 면 西 面
(서면)차고앞 車庫앞
광무교 光武橋
범일동 凡一洞 동구
시장앞 市場앞
좌천동 佐川洞
부산진역앞 釜山鎭驛앞 경부선
고관입구 古館入口
초 량 草 梁
초량입구 草梁入口
영주동 瀛州洞 중구
부산역앞 釜山驛앞 경부선
대교동 大橋洞 영도선
시청앞 市廳앞
남포동 南浦洞
충무동 忠武洞 서구
토성동 土城洞
시립병원앞 市立病院앞
재판소앞 裁判所앞
부용동 芙蓉洞
대신동 大新洞
운동장 運動場
18.1 차 고 車 庫
역명 승강장 환승노선 소재지
형태 횡단
0.0 대교동 大橋洞 본선 중구
영도입구 影島入口 영도구
영 도 影 島
(영도 차고)종점 影島終點

7. 역명과 오늘날

  • 위 노선표의 '동래역'은 현 지하철 동래역이 아니라 수안역 부지에 더 가까이 있었다. 다름 아닌 동해선 동래역과 연계되는 역이었기 때문이다.
  • '사대앞역'의 '사대'는 해당 지역에서 현재까지 부산교육대학교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이 '사대앞역'이라는 곳이 '교대역'이 되기까지는 참으로 많은 일이 있었다. 부산교육대학교는 1946년에 설립된 부산사범학교와 1955년 설립된 부산사범대학에서 시작되었다. 사범학교는 고등학교 과정에 해당하는 중등교육 기관이었기 때문에 사범'대학'과는 개념이 약간 다르고 사범대학보다 한 단계 아래였다. 당시 부산사범학교는 초등교사, 부산사범대학은 중등교사를 양성하였는데, 1961년에 두 학교를 통합하여 중등교사 양성 기능은 없애고 초등교사 양성 기능만 남은 2년제의 신제 부산사범대학으로 개편하였다. '사대앞역'이 된 이유가 바로 이 부산사범대학 때문이었다. 부산사범대학은 1962년에 부산대학교 병설로 전환되었다가 1963년 1월 1일 도로 독립하면서 부산교육대학이 되었다. 그래서 전차 폐선 전의 이 역은 '교대(앞)역'이 되었어야 하나 사범대학 시절의 잔재 때문에 계속 이름을 유지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부산교육대학은 1981년 3월 1일부로 4년제로 승격하였고, 1985년에 부산 도시철도 1호선이 개통하면서 드디어 교대역이 역사에 이름을 올렸으며 1993년에 현재의 이름인 '부산교육대학교'로 개칭되었다.
  • '서면차고지'의 부지에는 현재 한국전력공사 부산울산본부가 자리잡고 있고, 부산 도시철도 1호선의 상행선 1단계 구간 종점이었던 범내골역과 서면차고지의 중간 지점에 부산교통공사 사옥이 있다.
  • '시장앞역'의 '시장'은 부산진시장을 말하며 다만 시장 바로 앞이 아닌 현 부산진시장지하차도 삼거리 앞에 위치해있었다.[21]
  • '부산역앞'은 초량동이 아닌 중앙동이였다. 부산역전 대화재 때 전소되어 초량동 부지로 이전하였다.
  • '시청앞역'에는 말 그대로 부산광역시청 광복동 청사가 있었다. 구 시청 부지에 지금은 롯데백화점 광복점이 입점해 있다. 부산시청은 1998년연제구 연산동으로 이전하였다.
  • '시립병원앞역'의 '시립병원' 부지에는 부산대학교병원이 있다. 그래서 향토대백과와 부산대학교병원 홈페이지에서는 부산시립병원을 부산대학교병원의 전신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부산대학교병원은 시립이 아니라 부산대학교 의과대학 부속의 국립 병원이기 때문에 부지만 그대로인 물리적 후신일 뿐 직계 후신으로 보기는 어렵고, 부산시립병원의 실질적 직계 후신은 같은 시립으로 병원장을 부산시장이 임명하는 부산의료원이다. 부산의료원은 연제구 거제동에 있다.[22]
  • '재판소앞역'의 '재판소'는 부산지방법원을 말하며 부산지법이 연제구 거제동의 법조타운으로 이전한 후 빈 건물을 동아대학교에서 인수해 동아대학교 석당박물관으로 바뀌었다.
  • '운동장역'의 '운동장'은 구덕운동장을 일컫는다. 사직운동장 개장 전까지만 해도 부산의 유일한 종합운동장이었다. 구덕종합경기장만 남아있고 노후된 실내체육관은 헐어내어 주차장을 만들었으며 야구장을 헐어내고 부산시민체육공원을 만들어 시민들이 편리하게 이용 할 수 있도록 하였다.
  • '대신차고지'는 구덕운동장 내의 부산시민체육공원맞은 편에 있는 대신문화아파트 자리에 있었다.

8. 부활?

파일:attachment/부산전차/buk.jpg

1968년 이후 부산에서 노면전차는 사라졌지만 50여년이 지난 2014년 1월 7일 북항 트램 노선 계획이 발표되었다. 게다가 의도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오십 년 전 사라졌던 부산 전차와 비슷한 경로를 따라가는 구간이 꽤 있다.[23] 물론 부산전차의 직계 후신은 부산 도시철도 1호선이지만...

자세한 내용은 부산 경전철 문서 및 북항 트램 문서를 참조.

그러나 먼저 시행하는 곳은 이기대 쪽이다. 자세한 내용은 부산 도시철도 오륙도선 참조. 만약 오륙도선이 예정대로 2024년 개통된다면 종운(終運) 56년 만에 부산 시내에서 전차 운행이 부활하는 셈이다.
파일:부산도시철도 오륙도선.png


[1] 1927년 미국 애틀랜타에서 제조된 GP&L 860-899 시리즈 중 893호이며, 전쟁 중 부산에 무상원조로 들어오기 전에 미국 애틀랜타에서 먼저 뛰었던 중고 차량이다. 이 차량의 경우 두 명씩 앉을 수 있는 24개의 의자와 입석을 포함해 약 100명 정도 탈 수 있었으며, 일본 전차나 오늘날의 지하철 좌석처럼 옆으로 긴 롱시트가 아니라, 미국 전차의 영향을 받아 두 명씩 앉는 의자였다. 전차 외부는 앞뒤 모양이 서로 같고, 양쪽에 미닫이문이 2개씩 있었다. 2017년 현재 한국에는 3대의 근대 전차가 보존되고 있는데 서울역사박물관과 국립서울과학관에 일본제 서울전차가 남아있으며, 미국 전차로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다.[2] 직접적인 전신이었던 부산궤도 노선은 1909년부터 1916년까지.[3] 당시 한자로 가스(gas,瓦斯)라는 의미이다.[4] 정작 지금은 부산의 16개 자치구군 중 유일하게 영도구만 도시철도 노선이 없다.[5] 이건 서울전차도 겪고 있던 고질적인 문제. 서울전차는 그나마 나아지긴 했지만 여기는 아무 진전이 없었고 날이 갈수록 상태가 더 막장이 되어갔다(...).[6] 남북분단으로 공산치하에 놓이게 된 평양을 제외하면 남한 땅에 노면전차는 서울과 부산밖에 없었으니 나머지 68대는 당연히 서울로 갔는데 하필이면 바로 그해 6.25 전쟁이 터지는 바람에(...) 거의 다 날려먹었다.[7] 도로 위의 선로 자체는 1959년까지 남아있다가 철거했다. 1959년 3월 15일 부산일보 기사에서 낡아빠진 전체궤도 철거 소식이 나온다.[8] 당시 한국전력공사는 사기업이었다. 공기업으로 전환된 것은 전두환 정부.[9] 신문 기사의 제목을 해석하면, 남서(南署) 앞 전차(電車) 탈선(脫線)으로 해석된다.[10] 평양전차는 6.25 전쟁으로 폐선되었다가 1991년 재도입되었다.[11] 차량 번호는 불명.[12] 리츠메이칸대학 졸업 후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하고 일제 검사로 근무한 이력이 있는 친일반민족행위자였다. 정부 수립 후 제6대 법무부차관을 지냈다.[13] 이 대학의 법대 건물에서 수업을 듣던 학생들은 1층 복도 창문 너머로 흔히 보던 전차였다. 다만 들어가서 만지거나 타 볼 수는 없었다.[14] 단 이 티켓은 일일 수량이 정해져있어 선착순으로 배부하므로 티켓이 모두 매진되면 탑승이 불가능하며 탑승 가능시간이 정해져 있다.[15] 온천장역, 서면역, 영도종점, 시청앞역, 운동장역.[16] 범일동.[17] 해방 이후 영도선.[18] 해방 이후 광복선.[19] 대청동.[20] 이 동래역은 현재의 1호선 동래역보다는 수안역에 훨씬 가까웠다.[21] 과거에는 철길건널목이였다.[22] 부산대학교병원 설립년도가 1956년이지만 부산의료원의 설립년도는 1877년이다.[23] 북항~영도입구 구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