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01 17:24:50

미국 전차 스캔들

파일:미국 전차 스캔들.gif

미네소타미니애폴리스의 사진이다. 미니애폴리스 TCRT 최후의 노면전차가 불타는 가운데 James Towley가 한통속인 바지사장 Fred Ossanna에게 수표를 전달하는 유명한 사진이다. 풍자를 위해 합성한 사진이 아니다. 둘이 서로 일을 마쳤다는 걸 인증하는 사진이다.

1. 개요2. 배경3. 음모론 - 빼앗긴 대중교통
3.1. 전차를 버스로3.2. 독점의 재앙
4. 재판 결과 - 시대의 흐름
4.1. 도시 구조의 변화4.2. 버스가 실제로 우월하다4.3. 수요의 변화4.4. 공공사업이 아닌 사유철도
4.4.1. 만약 공공사업이었다면?
4.5. GM이 본 이득?
5. 결과6. 관련 문서

1. 개요

Vox, 왜 미국의 대중교통은 나쁜가?[1]
미국 전차 스캔들(Great American Streetcar Scandal)은 20세기 초중반에 미국에서 일어난 노면전차 폐선 관련 스캔들이다. 제너럴 모터스가 주도한 일이라서 General Motors Streetcar Conspiracy라고도 불린다.

GM이 스캔들을 공모해서 막대한 피해를 끼친 건 사실이지만 이 스캔들이 대중교통 자체를 몰락시키려는 GM의 계획이었다는 건 음모론에 불과했음이 이미 1947년 재판을 통해 입증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미국을 중심으로 음모론이 성행하고 있다. 1947년 재판 결과는 이에 상충되지만 음모론이 널리 알려졌기 때문에 음모론도 기재하도록 한다.

이 사건 이후 미국 대중교통은 그 발전이 정체되었으며 이 사건이 미국을 자가용의 나라로 만드는 데 기여했다.

2. 배경

현대에 와서는 대중교통의 불모지이자 자동차의 나라로 불리는 미국은 원래 20세기 초중반까지만 해도 대중교통과 노면전차의 천국이었다. 각 도시들의 교통망을 거미줄처럼 이어 주는 노면전차들 덕에 미국 시민들은 현대처럼 대기오염에 찌드는 일도 드물게 도시를 돌아다닐 수 있었다.

그러나 1920년에 설립된 내셔널 시티 라인즈, 퍼시픽 시티 라인즈, 그리고 아메리칸 시티 라인즈라는 3개의 회사는 1937년부터 각 도시들의 노면전차 회사들을 마구 사들이기 시작했고 공교롭게도 일본의 사유철도처럼 노선 확장보단 부동산을 통해 더 많은 수익을 올리던 서부 노면전차 회사들[2]은 수익성이 낮은 노면전차 노선들을 팔아치우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이 약 10년간 진행되자 이들은 노면전차 노선들을 폐선하고 버스 노선으로 대체하기 시작했다.

20세기 중반부터 수많은 도시들의 노면전차 노선들이 사라져 가기 시작했으며 일부 도시들은 1970년대 초반까지도 살아남았지만 곧 대부분의 노면전차 노선들은 역사속으로 사라져 버리고 만다.

3. 음모론 - 빼앗긴 대중교통

전차 스캔들은 미국 대중교통을 사보타주하여 자신들의 이익을 증대시키기 위한 대기업의 횡포였다는 음모론은 다음과 같은 논리로 구성되어 있다.

3.1. 전차를 버스로

당시 제너럴 모터스, 스탠더드 오일 등의 자동차 관련 회사들(자동차+타이어+정유 등)은 자가용버스를 팔아먹어 이윤을 남기기를 원했고 그런 그들에게 대도시부터 소도시까지 850여개 도시들에 쫙 깔려 있던 편리한 교통수단은 거대한 장애물이었다. 타겟이 정해지자 이들은 활동을 개시했다. 노면전차 노선을 폐선한 뒤 새로운 시대의 '우수한' 교통 수단이라며 버스로 노면전차를 대체하기 시작했다.

애초에 이들이 노면전차를 폐쇄한 것은 노면전차의 단점 때문이 아니라 단지 자기들의 이윤, 그것도 도시들의 기초 인프라를 파괴하면서까지 얻는 이윤을 위해서였을 뿐이다. 게다가 별다른 대책도 없이[3] 노면전차를 폐선해 버린 탓에 어지간한 미국 도시들의 대중교통은 그야말로 없는 거나 다름없는 수준으로 변해 버렸고[4] 이 상처는 아직까지 복구되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로스앤젤레스 같은 대도시마저도. 사실 이들 입장에서 이에 대한 대책이나 대안은 상관이 없었다. 대중교통이 버스로 대체되면 단순히 버스가 잘 팔릴 뿐이지만 대중교통이 마비되면 사람들이 자동차를 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거대한 만행을 저지르고 배를 두둑히 불렸던 제너럴 모터스는 훗날 천벌을 받았는지 석유 파동이 터지면서 크고 아름다운 차만 만들다가 일본독일 등 연비가 좋은 외국계 자동차 제조사들의 공세에 줘터졌다. 결국 하락세를 걷다가 2008년 금융위기에 제대로 당해 21세기에는 파산보호 신청을 해서 정부에서 관리를 해 줘야 할 정도로 몰락했다. 그리고 강력한 구조조정과 체제개편으로 다시 부활한다. 다만 요새는 크라이슬러 계열보다 세계적으로 실적도 떨어진다...

3.2. 독점의 재앙

미국 대중교통을 말아먹는 것이 애당초 GM을 비롯한 미국 자동차 관련 기업들의 의도가 아니었다 치더라도 GM이 이 사태로 일어난 재앙에서 가장 큰 책임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애당초 3개의 회사 중 나머지 두 개의 모회사였던 내셔널 시티 라인즈의 설립 배경에는 GM이 자리잡고 있었으며 즉, 실상 이 3개 회사의 노면전차 노선 무차별 매입은 GM의 미국 전국의 노면전차 노선 독점화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애당초 GM이 노면전차 노선을 독점하지 않았다면 약 10여년 정도에 걸쳐 노면전차를 죄다 때려부수고 버스로 대체했다가 해 놓고 보니 버스가 생각보다 좋은 교통 시스템이 아니라서 대중교통 자체가 망해 버리는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벌어질 일도 없었을 것이다. 어느 쪽이나 GM은 이 사태에 대한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유럽을 비롯한 세계 각지의 도시들이 기존 노면전차를 개량하여 대중교통으로 아직까지 잘 굴려먹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볼 때 이들의 행각이 자동차 더 팔아먹으려고 했든, 그냥 효율성 떨어지고 수익성이 낮아서 그랬든 간에 수많은 도시들이 자신의 대중교통 체계를 효율화할 기회를 날려먹게 하고 말았다.

4. 재판 결과 - 시대의 흐름

1947년 연방 법원의 판결문에서도 볼 수 있듯 GM이 대중교통 독점을 통해 고의로 노면전차를 밀어 버린 것은 아니고 이미 노면전차 회사들은 본업보다 부동산 분야로 수익을 창출하고 있었다. 전차 스캔들이 터지지 않았다고 해도 어차피 노면전차는 다른 나라에서의 역사와 해당 스캔들과 관련은 없었지만 비슷한 시점에 망해 버린 인터어반의 운명이 증명하듯 쇠퇴해 갈 운명이었다.

4.1. 도시 구조의 변화

동부에선 20세기 초반에 대공황의 직격탄을 맞아 수익성 악화가 시작되었으며 동시에 대공황이 유발한 도심지 주요 지점의 지가 상승 및 공공서비스가 부족한 지역의 슬럼화로 인해 도심이 양극화됨에 따라 도심은 더 이상 중산층이 살 만한 지역이 되지 못하였다.

게다가 서부에선 역설적으로 노면전차 노선이 너무 성공적으로 부설되었던 바람에 20세기 극초반부터 자동차가 급격하게 늘어나기 좋은 도시 환경이 갖춰져 있었다. 캘리포니아에서는 앞서 전개 단계에서 설명한 부동산으로 돈을 벌던 노면전차 회사들은 고의적으로 도심에서 떨어진 지역에 주거단지를 조성하고 도시 도로계획에 노면전차들이 다니기 좋도록 보행자와 차량이 구분되어 다니는 도로가 지어지도록 압력을 넣고 있었다.[5][6]

이미 포드 T형이 보급되던 시절부터 캘리포니아는 자동차도 아닌 노면전차 부설 때문에 스프롤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으며 자동차 대중화를 계기로 20세기 초반부턴 전차를 위한 길에 자동차들이 더 많이 돌아다니는 상황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결국 자신들의 도시계획으로 인해 노면전차 사업에서 버는 돈보다 부동산으로 돈을 벌게 된 노면전차 회사들은 수익성이 떨어진 노면전차 관리를 점차 소홀히 하기 시작했고 이는 자동차 보급을 더더욱 폭발적으로 늘리게 되었으며 이 시점에서 노면전차 회사들은 노면전차 노선을 부설하지 않아도 버스와 같은 유동성이 높고 설비 투자 비용이 적은 대중교통으로도 자신들이 원하는 스프롤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20세기 중반에 접어들면 동부에서도 서부에서 볼 수 있었던 교외화로 인한 스프롤 현상이 상당히 진행되었던 상황이고 도심 내부의 주거, 상업 지대를 연결해 줌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노면전차의 아이디어는 대부분의 도시에서 적용되기 힘든 모델이었다.

이렇게 도심지의 단거리 대량 운송이 도태됨에 따라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자가용버스를 중심으로 한 중/장거리 소량 운송과 일부 대도시의 넓은 도심 내지는 아직까지 도심 거주지가 유지된 도시에서 유지된 일부 노면전차밖엔 없었다.

즉, GM을 비롯한 이 사건의 주동자들이 노면전차를 강제 폐선시키지 않았더라도 결국 노면전차는 미국 도시 구조의 변화로 인해 대부분의 도시에서 점차 사라져 갈 운명이었다는 것이다.

4.2. 버스가 실제로 우월하다

전술한 도시 구조의 변화, 그 중에서도 교외 지역의 확장을 동반한 스프롤 현상은 미국 대중교통 수요의 구조를 도심 근처에 넓게 흩뿌려 놓았다. 이러한 환경에서 대중교통 수요를 커버하려면 버스만한 대중교통 수단이 없었고 노면전차 회사들도 이미 스프롤로 인해 수익성이 없었던 상황에 수익의 대다수를 부동산에서 끌어오고 있었다.

아이러니한 건 이 스프롤 현상을 진두지휘한 노면전차 회사들은 자신들의 노선을 이용하게끔 유도하기 위해 이 일을 진행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캘리포니아를 위시한 미국 서부 도시들은 노면전차 회사들이 자사 서비스를 효율적으로 활용하고자 보행자와 차량을 구분한 도로망을 적극 보급하기까지 했는데 이건 현대의 자동차 중심도로와 정확하게 같은 개념이었고 포드 T형 보급과 함께 서부 도시들의 도로를 자동차가 뒤덮기 시작했다. 이미 세기 초반부터 서부의 노면전차 회사들은 스스로의 목숨줄을 죄고 있었다.[7]

앞서 스캔들이 있었다는 측에서 사례로 든 버스전용차로나 지하철 등의 인프라는 현대 한국의 아파트 단지로 표상되는 도심 거주 형태에서 나오는 집약된 대규모 수요에 어울리지 당시 미국의 스프롤 현상에는 그리 적합한 대응은 아니다. 도심을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낮은 밀도의 거주지가 퍼져나가는 미국의 스프롤 현상에서는 보다 저비용으로 장거리를 뛸 수 있는 수단이 필요했고 선로나 가선이 필요한 노면전차와 무궤도전차는 이러한 상황에서 비용 상승만 불러올 뿐이다. 결국 스프롤 현상으로 인해 대중교통 수익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교외지역에 제공할 수 있는 최소한의 대중교통이 버스인 것.

게다가 전술한 과정으로 인해 빈약해진 교외-도심간 연결로 자동차를 타고 도심에 들어오는 운전자들은 환승저항과 주차공간 문제로 인해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힘들어졌고 도심 대중교통 수요도 상당히 축소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면전차는 버스에 비해 저렴하지 않다.[8] 이러한 상황에서 수요가 줄어들어 수익성이 떨어진다면 노면전차가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GM이 자사 버스 세일즈에 써먹었긴 하지만 결국은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4.3. 수요의 변화

더군다나 GM이 노면전차를 뜯어낸 도시라도 수요만 충분히 있다면 이를 대체할 교통수단이 주정부 혹은 시정부의 예산이 투자되어 부활한 경우가 많다. 레일만 없을 뿐 노면전차와 유사한 특성을 지니는 무궤도전차가 도입되거나(시애틀의 사례) 도시철도 개념인 인터어반을 연장하여 도심 서비스를 커버한 사례도 존재하였고 로스앤젤레스 메트로 블루라인처럼 수십년의 텀을 두더라도 수요가 발생하면 인터어반 및 노면전차 인프라를 재활용해서 노선을 꾸리는 사례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상술한 인터어반은 대공황 이후 변화한 도시구조로 인해 고객 수요가 미달하여 화물서비스만 유지하다가 대부분 60년대를 넘기지 못하고 망해 버렸다. 노면전차와 공존했던 이 교통수단은 도시구조의 변화와 자동차의 보급으로 인해 20세기 극초반부터 재정적자에 시달리기 시작했으며 거기에 더해 노면전차보다 육중했기 때문에 철도차량의 하중 및 도로 손상을 이유로 지역사회의 천덕꾸러기가 되었다. 결국 적자운영 와중에 하필이면 20세기 극초반 등장한 T형 포드광란의 20년대로 불리는 미국의 호황이 겹친 덕에 자동차 보급이 급진전[9]되는 바람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어 대부분이 화물서비스로 전업을 희망하거나 폐업했고[10] 여객 서비스가 살아남은 회사들도 대부분 대공황기에 파산했으며 화물 서비스라도 유지하던 소수는 제2차 세계 대전 승전 후 호황기에 파산해 버렸다. 결국 문제는 수요였다. 이러한 이유로 미국 철도교통 덕후들 중 인터어반을 아는 사람들은 인터어반의 흥망성쇠를 근거로 전차 스캔들이 대중교통을 망쳤다는 주장을 음모론으로 여긴다.

4.4. 공공사업이 아닌 사유철도

대부분의 한국 독자들에겐 생소해겠지만 미국의 노면전차 사업자들은 인터어반 사업자들과 같이 사유철도에 해당한다.[11] 연방정부, 주정부, 시정부의 예산이 들어가지 않고 그들이 얻는 승객과 화물 수익만으로 노선과 차량, 부속시설을 관리하는 비용을 충당해서 순익을 내야만 한다. 반면 이들이 있었던 자리를 뒤늦게 대체하게 된 후발주자들은 공공사업으로 공적자금이 투자되었거나 아예 버스처럼 정부가 인프라 유지보수의 대부분을 대행해 주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관계로 사업성이 공익성보다 우선되는 사철은 사업성 악화로 철수하거나 노선을 매각하는 데 더 자유롭고 이를 막으려면 공적 자산을 투자하여 공공화를 시켰어야 했으나, 스캔들 시기의 집권당이었던 미국 공화당의 정치 스탠스는 정부개입보단 자유경쟁에 방점이 찍혔으며, 시민들도 1920년대에 급속 팽창한 자동차 보급률 덕에 낡아 가는 노면전차를 세금까지 들이면서 되살리자는 정치담론에 동의하기 힘들었다.[12][13]

사철만 아니었다면 철거를 추진하는 주체가 선로 소유권과 운영권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그렇게 특정 인프라를 해체하는 일이 가능했을 리는 없었겠지만 안타깝게도 노면전차는 철저하게 사철이었고 철도의 관리마저 그들 스스로가 해냈어야 할 정도로 공공사업과는 거리가 멀었다. 비슷한 시기에 재정적자를 이유로 어려움을 겪었던 인터어반은 주정부에서 공익을 위해 운영을 유지할 것을 요구했는데도 이를 무시하고 자산을 매각하는 사례가 부지기수였으니 같은 사철인 노면전차가 폐선하고 시설을 파괴하는 것을 주정부에서 막을 명분도 없었고 막기 위한 공적 자금도 투자할 수 없었다.

4.4.1. 만약 공공사업이었다면?

노면전차를 없앨지 말지부터 시작해서 받은 보상금을 어느 예산으로 돌릴지까지 해결해야 하는 거대한 정치담론이 시작되어 GM은 선로 독점을 완수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당시 정치 흐름상 불가능 했겠고 노면회사 및 인터어반 회사들의 경쟁 등을 고려하면 제값보다 훨씬 더 많은 자금이 필요했겠지만 만약 주정부 혹은 시정부가 공공의 이익을 이유로 사태 초기에 개입하여 노면전차를 공공화할 수 있었다면 이미 정부 예산이 들어간 이상 그것을 뜯어내거나 팔아 버리기엔 매우 까다로워진다.

노면전차는 반드시 고정된 궤도와 역을 필요로 한다. 노선을 유연하게 조정할 필요가 있을 때는 단점이지만 반대로 대중교통을 약화시키려는 정치적인 움직임이 있을 때는 장점이 된다. 반면 버스는 그렇지 않다. 싸게 때운다면 그냥 노선은 설정만 해 두고 정류장 표지판만 설치하는 걸로 땡이며 좀 더 돈을 들여도 작은 간이지붕이나 벤치 몇 개 설치하는 걸로 땡이다. 좀 더 고급화한다면 BRT 같은 것도 나올 수 있겠지만 이 스캔들이 일어날 때 BRT란 개념은 있지도 않았다. BRT 문서에도 나와 있지만 일반 버스노선에 비하면 어느 정도 고정 인프라를 갖추고 운행하는 BRT조차도 정치적인 반대와 시설 삭감에 매우 취약하다. 그런데 일반 버스는 말해서 무엇할까? 반면 노면전차는 한번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지고 공공화되어 있다면 투자된 공적 자금을 회수하는 문제부터 시설 매각까지 매우 복잡한 정치적 절차를 거쳐야만 하고 대부분의 정치인들은 그렇게 소란을 일으키면서 예산을 가져오느니 있는 시설을 어떻게든 써먹을 생각을 한다.[14]

다른 나라들의 예를 보면 구식 노면전차 그 자체로는 운행이 곤란하더라도 어떻게든 그 인프라가 공공의 소유라면 일부라도 활용해 보려는 노력이 나오기 마련이다. 심지어 이 스캔들이 덮친 미국마저도 인터어반과 노면전차가 한 차례 망하고 소유권 관리가 쉬워진 다음에야 수요가 많은 옛 노선을 주정부나 시정부가 매입한 다음 공익사업으로 경전철을 올려서 운행하는 사례가 꾸준히 나올 정도다. 한마디로 공공사업이었다면 정치적인 공세에 상당히 강했을 교통체계가 사철이었기 때문에 시장논리로 단박에 독점되는 사태에 이르렀던 것.

물론 적자정도에 따라 해당 사업을 추진한 정치인들이 지역정부에 만성적인 적자를 안겼다는 이유로 가루가 될 정도로 까일수는 있으나[15] 적어도 대중교통이 갑자기 증발하듯 사라질 일은 없게 된다. 심지어 스캔들 당시엔 고려되지 않았던 사항이지만 기본적으로 전차선을 이용하는 노면전차와 무궤도전차는 일반 버스보다 석유 파동 같은 유가상승에 훨씬 잘 버티기도 하기 때문에 오일쇼크로 인한 미국의 경제불황으로 서비스가 중단될 염려도 상당히 줄어든다.

다만 50~60년대 당시에 인터스테이트 하이웨이 시스템이 설치되고 제트 여객기가 본격적으로 운항을 시작하며 (특히 미국에서) 철도 자체가 사양 기술로 취급받았기에,[16] 뉴욕 지하철시카고 전철 등의 사례를 미루어보아, 비록 완전 철거와 같은 참사가 일어나진 않더라도 추가 투자가 부족해지거나 관리가 부실해지는 현상이 일어날 가능성은 또 적지 않다.

4.5. GM이 본 이득?

미국은 이미 1939년 연간 자동차 생산량이 400만대를 넘을 정도로 자동차 시장이 확대되던 상황이었고 이 중 150만대를 포드가 생산할 정도로 압도적인 1위였다. 게다가 전술한 도시 구조 변화로 인해 교외에 살던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스캔들이 없었어도 차를 사야만 생활이 가능했다. 이렇게 시장이 성장하는 상황에서 GM이 돈을 투자해서 대중교통을 사보타주해 봤자 시장구조상 경쟁사가 더 득을 보는 구조였다. 이런 상황에서 GM은 포드와는 달리 자사 버스에 상당한 투자를 했는데, 특히 GM 올드 룩 버스GM 뉴 룩 버스로 상당한 판매고를 올렸다.[17] 즉, 자동차 시장확대를 노려 대중교통을 사보타주하기보단 GM이 버스 시장을 노리는 쪽이 경쟁자와의 간격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실제로도 1947년 미국 연방 정부가 내셔널 시티 라인즈를 상대로 한 연방법원의 판결은 대중교통 독점 혐의는 무죄지만 GM이 거대 대중교통 회사를 확보함으로 해당 대중교통 회사의 자회사들에게 독점적으로 GM 버스를 공급하려했음이 밝혀져 유죄가 선고되었다. 즉, GM에게 있어선 자회사들이 자기네 버스만 사주는 이상 노면전차 따윈 아무 신경 쓸 필요도 없었고 실제로도 이러한 이유로 인터어반 시스템은 체계가 완전히 달랐기 때문에 무시되었다.

결국 GM은 막대한 돈을 들여 일부 도시의 노면전차를 자사 버스로 대체하는 수준의 득밖에 보지 못하였고 진정한 몸통이었던 독점 버스 공급은 연방법원에 의해 제대로 걸려서 겨우 개척한 시장을 후발주자인 캐나다의 뉴 플라이어와 본래 스쿨버스를 만들던 블루버드에게 60년대부터 점유율을 빼앗겼다.[18] 결국 버스 시장의 개척으로 이득을 본 건 스캔들과 상관없는 후발주자였고 이를 공모한 GM은 돈만 크게 날리고 별 이득도 보지 못한 셈. 자업자득이다

5. 결과

그리고 미국 대중교통은 멸망했다.

대부분의 미국 소도시들의 대중교통은 노면전차의 폐선과 때마침 진행된 교외 지역 확장으로 도시들의 인구밀도가 낮아지는 현상까지 합쳐져서 사라져 갔고 도로는 캘리포니아에서 20세기에 접어들면서 보인 바와 같이 보행자보단 차량을 중심으로 재편되었다. 전차 회사들이 직접 진두지휘한 스프롤 현상이 서부에서 동부로 뻗어나가며 스캔들에 영향 받지 않았던 노면전차 회사들과 인터어반도 망해 갔고 그 자리는 연방 정부의 엄중한 감시하에 다수의 버스 회사들이 차량을 공급하는 대중교통 회사들이 대체해 갔다.

현재까지도 미국의 도시 구조는 도로교통과 자동차 중심으로 짜여 있고 대부분의 도시에서 대중교통 수익률이 심각하게 저하되었으며 노면전차가 떠난 자리를 일부 버스노선이 대체한 것 말고는 대부분의 도시에서 별다른 교통대책이 세워지지 않았다. 그렇게 미국의 대중교통은 아이젠하워의 고속도로 프로젝트와 제트 에이지의 여파로 사그라드는 여객철도와 함께 사라져갔다.

곧이어 펼쳐지게 된 제트 에이지의 개막과 함께 도시 간 거리가 멀고 인구 밀도가 낮은 미국에선 시내/시외 할 것 없이 대중교통이 끝장나 버리고 말았다.[19] 지난 세기 각광을 받아 온 도시간 광역 교통망인 인터어반조차도 대공황으로 타격을 입고 시카고의 South Shore Line과 필라델피아SEPTA 소속 일부 노선만 살아남았으며 대체재로 등장한 시내버스마저도 오일쇼크를 거치며 사라졌다.

이미 당시에 지하철과 같은 중전철이 보급되어 철도 중심 사회가 된 네 개의 대도시들(보스턴, 뉴욕, 필라델피아, 시카고) 및 상당히 예외적인 사례인 시애틀의 대중교통 시스템[20]은 살아남았지만 중전철을 제외한 대도시 대중교통 전반이 수요 부족으로 쇠퇴하였다. 특히 캘리포니아 대도시들의 대중교통은 직격타를 맞았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교통체증으로 악명높은 로스앤젤레스. 그리고 늘어난 차량으로 인해 LA형 스모그가 탄생했다.

이 사건으로 미국에서 노면전차 노선들이 줄줄이 폐선되면서 남는 잉여 차량들이 대한민국, 이집트, 칠레 등 우방국에 대량 무상증여되었다. 로스앤젤레스애틀랜타 같은 도시의 남은 전차들의 일부는 대한민국으로 수출되어 서울전차부산전차 등에 쓰여 마침 8.15 광복 후 정비기술 부족과 6.25 전쟁 등으로 상태가 영 좋지 않았던 서울전차부산전차의 운행에 가뭄의 단비가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방국에 무상증여된 노면전차들도 상당수가 20년을 못 넘기고 없어졌는데 당시 개발도상국들도 지하철시내버스, 그리고 해외에서 수입된 중고차 열풍이 불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지구 온난화에 따른 화석연료 사용 규제와 석유 파동 이후 경전철인 LRT가 재조명받으면서 미국의 수많은 도시들이 부랴부랴 인터어반을 재해석한 철도 노선, LRT 혹은 광역 버스 체계와 BRT를 도입했다. 이러한 신규 대중교통은 도심지 교통혼잡으로 인해 재조명을 받으며 살아난 지역상권들 및 Park & Ride 시스템과 결합하여 미국 대중교통에 새로운 활력이 되고 있다. 결국 없어진 사철 노면전차가 공공사업으로 새로 태어나서 다시 돌아와 활약하는 셈이다. 그러나 실정을 무시하고 버스에 비교해 수송능력 및 정시성면에서 별로 차이가 안 나는 주제에 커버 범위는 한정적이고 비용은 훨씬 더 드는 보기에만 그럴듯한 과시성 사업이라는 비판도 있다. #

6. 관련 문서



[1] Vox에서도 미국의 노면전차 노선들이 없어지고 주간고속도로들의 무지성 건설로 인해 미국의 도심은 보행 중심 도시에서 도로교통 중심이 되었으며 특히 무리한 고속도로의 건설로 일부 지역은 도보로는 다른 지역과 단절이 되면서 오히려 미국의 자동차 수요를 증가시키는 데 도화선을 붙였다고 했다. 이로 인해 미국의 공해 문제도 상당하다는 것. 문제는 이 모든 문제들의 시발점이 이 사건으로 인해 생긴 것이다.[2] 대표적인 사례로 LA의 퍼시픽 일렉트릭이 해당한다.[3] 당시에는 버스전용차로 그런 거 없었다. 게다가 노면전차가 폐선된 노선 중 수요가 워낙 많은 노선의 경우 지하철 건설 같은 대책을 세워야 하는데 미국은 그런 거 없었다. 물론 한국이 일제강점기를 겪기도 전에 만들어진 뉴욕 지하철 같은 경우는 예외.[4] 여기에 더해 인근 도시간의 연결을 담당하던 인터어반도 망하면서 소도시들은 대중교통이 증발해 버렸다.[5] 전차 스캔들의 진원지 로스앤젤레스문화산업군수산업 위주로 발전한 지역 특성상 도심지보단 교외 각지에 일자리가 있었고 여기에 노면전차 회사들의 부동산 개발이 더해져 스프롤 현상이 미국에서 거의 최초로 시작하였다. 전후에는 고속도로 위주의 교통정책과 도시의 타락에서 벗어나고 싶어한 신흥 중산층들의 열망, 핵전쟁 예상 폭심지인 로스앤젤레스 도심에서 최대한 인구를 빼려는 연방정부의 의도 등이 더해져 도시가 무한히 팽창해 분지를 꽉 채워나갔고 자동차 위주의 사회가 완전히 정착했다. 현재도 로스앤젤레스 광역권은 규모에 비해 LA 다운타운의 세력이 약한 축에 들고 교외 팽창이 기본값인 미국 도시권 중에서도 유독 너저분한 저밀도 확장이 심하다는 평을 듣는다. 최근 들어 설치하곤 있지만 철도 교통도 스캔들 이후에는 매우 빈약한 편이다.[6] 비슷한 상황은 철도대국이라고 평가받는 일본에서도 똑같이 나타났다. 사철 회사들은 교외 부동산을 자체적으로 개발해 도시권을 계속해서 팽창시켜나갔다. 다른 점이라면 미국과 달리 일본은 자동차 보급이 더뎠던 1930년대에 이미 도쿄 수도권이 1천만이 넘는 거대 도시권을 형성하고 있었다는 것이고 이미 1920년대쯤 되면 노면전차로 시작한 사철회사들은 대부분 전용궤도를 보유한 본격적인 철도사업자로 전환했다는 것이다.[7] 반면 비슷한 식으로 도시 스프롤 현상을 주도한 일본의 사철회사들은 노선망을 처음부터 중전철로 건설했거나 노면전철로 시작한 기업도 이른 시기부터 중전철로의 전환을 적극적으로 시도했기 때문에 자동차가 활성화된 후에도 노선망을 폐선하는 게 오히려 손해였으며 일본의 도시 건설 스타일이 미국과는 정반대로 좁은 도로와 조밀한 주택으로 이루어져 철도와 교외 도보상권의 수요가 결코 낮지 않았다. 자동차산업이 걸음마 단계였던 1930년대에 이미 도쿄 수도권 인구가 1천만을 찍어버렸으니 그만큼 중전철화에 투자할 수 있었던 것. 전후에도 이미 운수산업 자본이 철도 위주로 투자되어 있었으니 교통정책의 헤게모니를 철도가 쥐고 있어 미국식 고속도로 건설보다는 철도망 확충 위주의 교통대책을 선호하기도 했고. 그렇기 때문에 일본의 스프롤 현상은 오히려 도로교통의 쾌적성을 낮추면서 철도 의존도를 높였다. 물론 미국이라고 비슷한 역할을 하던 게 없었던 건 아니고 인터어반이 있긴 했지만 이쪽은 사업이 안정화되겠다 싶을때 T형 포드가 데뷔했고 고중량 차량이 도로를 지나가며 교통정체 및 도로 파손을 일으킨다며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다. 무엇보다 도시지역에서의 고빈도 운행에 적합한 전동차량을 적극 운영한 일본과 달리 무지막지한 소음에 속터지는 가감속으로 무장(?)한 디젤기관차가 운행하니 버텨날 도리가 없었다.[8] 궤도교통의 특징으로 인해 노면전차도 선로/가선/차량 정비 등에서 상당한 비용이 들어가게 되며 운용을 위해 전문인력의 양성 및 고용이 필요하다.[9] T형 포드 이전에는 미국에 8,000대 가량 밖에 없던 자동차가 1920년엔 750만 대, 1929년엔 2,300만 대까지 불어나 거의 모든 가정에 차가 한 대씩 있는 꼴이 되었다.[10] 심지어 주정부에서 공익 목적으로 재정적자를 감수할 것을 요구했는데도 이를 무시하고 자산을 매각하는 사례도 부지기수였다.[11] 애초에 전쟁 수행 목적 국유화가 진행된 양차대전 이전까지 서구권에서는 철도를 보통 민간 기업이 까는 것이 보편적이었다. 19세기에는 (지금은 사철로 유명한) 일본 쪽이 차라리 국가 주도 근대화로 인해 국철 비중이 유의미하게 높은 편에 속하였다. 19세기에서 20세기 초반 당시에는 육상 교통 대다수 수요가 철도에 의존하다 보니 민간 철도기업도 상대적으로 쉽게 흑자를 볼 수 있었고, 지금은 도저히 수요를 얻지 못할 것만 같은 농촌 지역에 민간 철도가 부설되는 현상도 흔하였다.[12] 그나마 유지된 고규격 철도들도 사정은 비슷했다. 극단적인 예시로 시카고 L은 다들 이런 썩어가는 전철 남 부끄러워서 못 보여주겠다고 난리를 치지만 정작 전철을 쾌적하게 개선하기 위한 세금 투입에는 난색을 표하기 일수다.[13] 다만 상술되었듯 일부 지역에선 노면전차 폐선 이후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풀린 부대시설을 인수해 서비스를 되살리거나 거의 유사한 다른 대중교통으로 대체하는 경우도 없지는 않았다.[14] 여러모로 도로 교통상황에 별로 안 좋다는 토론토 노면전차도 뜯어내기보다는 신차를 도입해서 개선하려는 방향으로 가고 있으며 중국은 기존 인프라는 놔두고 자체 배터리로 수십 킬로미터를 이동할 수 있는 차량을 도입하는 걸로 유연성 문제를 해결했고 중국제 차량을 도입한 멕시코 시티에서도 이런 식으로 운영하고 있다.[15] 지역정부가 지원금을 기대하기 힘들다 보니 재정자립도가 상대적으로 높다. 그래서 한국처럼 대중교통 유치가 정치인의 치적이 되기보다는 사업성에 따라서 까방권 내지는 까임권으로 작용할 수 있는 양날의 검이다.[16] 당시에는 환승저항을 유발하고 유연성과 문전 접근성이 떨어지는 철도 시스템은 (마치 장거리 정기 여객선이 비행기에 밀린 것처럼) 자동차와 비행기에 밀려서 사라질 것이라는 예측이 적지 않았다. 철도를 중시하는 교통 설계를 구시대적이라고 보는 시선도 존재하였고. 이것이 뒤집힌 것은 교통체증, 에너지, 안전 문제 등 자동차 위주 도시설계의 한계가 밝혀지고, 고속철도가 틈새시장을 잡는데에 성공하였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의 지리멸렬한 여객철도와 (한국을 비롯한) 후발 산업국들의 철도망 부족 현상은 근본적으로 이러한 기류의 영향이 짙다. 사실 지금도 비슷한 맥락에서 UAM자율주행 자동차의 도입, 인구감소 등의 사유로 기존 대중교통의 미래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존재하기도 하고.[17] 반면 포드는 50년이 되기도 전에 단종시킨 포드 트랜짓 버스 이후로 버스는 자사 트럭 F 시리즈를 기반으로 만든 B 시리즈 밖에 생산하지 않았다.[18] 블루버드는 80년대에 버스 시장에서 철수하였고 이후부터는 뉴 플라이어가 과점에 가까운 시장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19] 이와 반대되는 사례가 유럽동아시아 지역이다. 대도시간 거리가 가깝거나 멀다고 해도 각 대도시 사이에 인구 밀도가 높은 중규모 도시들이 여럿 존재하다 보니 기존의 장거리 수요를 충족하면서도 구간수요를 새롭게 창출할 수 있는 철도 노선의 활성화가 가능했으며 곧 항공기가 따라올 수 없는 대규모 인원을 수송하면서도 고속으로 이동할 수 있는 대중교통수단인 고속철도의 탄생으로 이어졌다.[20] 버스와 무궤도전차, 페리로 살아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