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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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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5px -1px -11px"
<rowcolor=#ffc224> 제1-3대 제4대 제5-9대 제10대
이승만 윤보선 박정희 최규하
<rowcolor=#ffc224> 제11-12대 제13대 제14대 제15대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rowcolor=#ffc224> 제16대 제17대 제18대 제19대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rowcolor=#ffc224> 제20대
윤석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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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대한민국 투표 도장 문양(흰색 테두리).svg 제5대 대통령 선거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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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rowcolor=#005BA6,#FFC224> 기호 정당 이름 비고
1 신흥당 장이석
2 자유민주당 송요찬 사퇴
3 민주공화당 박정희 당선
4 추풍회 오재영
5 민정당 윤보선
6 국민의당 허정 사퇴
7 정민회 변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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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대한민국 투표 도장 문양(흰색 테두리).svg 제6대 대통령 선거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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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rowcolor=#005BA6,#FFC224> 기호 정당 이름 비고
1 정의당 이세진
2 한국독립당 전진한
3 신민당 윤보선
4 대중당 서민호 사퇴
5 민중당 김준연
6 민주공화당 박정희 당선
7 통한당 오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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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대한민국 투표 도장 문양(흰색 테두리).svg 제7대 대통령 선거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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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rowcolor=#005BA6,#FFC224> 기호 정당 이름 비고
1 민주공화당 박정희 당선
2 신민당 김대중
3 국민당 박기출
4 민중당 성보경 사퇴
5 자민당 이종윤
6 정의당 진복기
7 통일사회당 김철 사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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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대한민국 투표 도장 문양(흰색 테두리).svg 제8대 대통령 선거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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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rowcolor=#005BA6,#FFC224> 정당 이름 비고
민주공화당 박정희 당선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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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대한민국 투표 도장 문양(흰색 테두리).svg 제9대 대통령 선거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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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rowcolor=#005BA6,#FFC224> 정당 이름 비고
민주공화당 박정희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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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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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 곽상훈 허정 백낙준 박정희
최규하 박충훈 고건 황교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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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e4cd4d> 초대 제2대
장도영 박정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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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e4cd4d> 초대 제2대
박정희 이주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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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장도영 송요찬 박정희 김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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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민주공화당 로고만.png 파일:민주공화당 글씨만.png 총재 및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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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역대 총재
<rowcolor=#835B38> 초대
정구영
제2-3대
박정희
권한대행
박준규
제4대
김종필
권한대행
정래혁
역대 의장
{{{#!wiki style="margin:-16px -11px"<rowcolor=#835B38> 초대
김정렬
임시-제2대
윤치영
제3대
김종필
서리-제4대
정구영
<rowcolor=#835B38> 제5대
김종필
제6대 (서리)
윤치영
서리-제7대
백남억
제8대 (서리)
정일권
<rowcolor=#835B38> 제9대 (서리)
이효상
제10대 (서리)
박준규
총재 겸 의장대행
김종필
제11대 (서리)
전예용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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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e4cd4d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color:#181818; margin:-6px -1px -11px"
군사혁명위원회 의장
장도영
✯✯✯
군사혁명위원회 부의장
박정희
✯✯
군사혁명위원회 위원
김종오
✯✯✯
박임항
✯✯✯
김신
✯✯✯
이성호
✯✯✯
김성은
✯✯✯
정내혁
✯✯
이주일
✯✯
한신
✯✯
유양수
✯✯
한웅진
최주종
김용순
채명신
김진위
김윤근
장경순
송찬호
문재준
❁❁❁
박치옥
❁❁❁
박기석
❁❁❁
손창규
❁❁❁
유원식
❁❁❁
정세웅
❁❁❁
오치성
❁❁❁
박창암
❁❁❁
길재호
❁❁
옥창호
❁❁
박원빈
❁❁
이석제
❁❁
군사혁명위원회 고문
김홍일
✯✯✯
김동하
}}}}}}}}}}}}}}} ||

{{{#!wiki style="margin: -7px -10px"
{{{#!wiki style="margin:-6px 0px; display:inline-table"
<tablebordercolor=#228B22><tablebgcolor=#228B22>
파일:육군군수사령부 부대마크.svg
}}} {{{#!wiki style="margin: -5px -2px; display: inline-table;"<tablebordercolor=#228B22><tablebgcolor=#228B22> }}}}}}
{{{#!wiki style="margin:-0px -10px -5px"
{{{#FFF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181818,#e5e5e5
파일:대한민국 육군 및 해병대 중장.svg
초대
박정희
2대
박현수
3대
김용순
4대
신재식
5대
노재현
6대
최주종
7대
이규학
8대
이동화
9대
고광도
10대
임지순
11대
김용휴
12대
이범준
13대
김학원
14대
박찬긍
15대
안종훈
16대
최영구
17대
문응식
18대
김용진
19대
류근무
20대
정숭렬
21대
김상호
22대
배일성
23대
이중환
24대
최경근
25대
유재열
26대
김석원
27대
안성용
28대
정중민
29대
김기성
30대
류우식
31대
양원모
32대
이봉원
33대
이상돈
34대
전동운
35대
정항래
36대
이정근
37대
박주경
38대
황대일
39대
박양동
40대
엄용진
※ 초대~5대: 소장 / 6대~현재: 중장
※ 관련 직위 둘러보기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한국인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상훈 연도 결정일 수여일 이름 직책 국적 비고
1949년 8월 15일 이승만 대통령 대한민국
1960년 8월 13일 윤보선 대통령 대한민국
1963년 12월 5일 12월 17일 박정희 대통령 대한민국
1967년 6월 23일 육영수 영부인 대한민국
1979년 12월 7일 최규하 대통령 대한민국 12.12 군사반란으로 하야
1979년 12월 7일 홍기 영부인 대한민국
1980년 8월 29일 8월 29일 전두환 대통령 대한민국 무궁화대훈장 이외의 모든 훈장 취소
1980년 8월 29일 8월 29일 이순자 영부인 대한민국
1988년 2월 24일 2월 25일 노태우 대통령 대한민국 무궁화대훈장 이외의 모든 훈장 취소
1988년 2월 24일 2월 25일 김옥숙 영부인 대한민국
1993년 2월 11일 2월 23일 김영삼 대통령 대한민국
1993년 2월 11일 2월 23일 손명순 영부인 대한민국
1998년 2월 17일 2월 25일 김대중 대통령 대한민국
1998년 2월 17일 2월 25일 이희호 영부인 대한민국
2008년 1월 28일 노무현 대통령 대한민국
2008년 1월 28일 권양숙 영부인 대한민국
2013년 2월 12일 이명박 대통령 대한민국
2013년 2월 12일 김윤옥 영부인 대한민국
2013년 2월 19일 박근혜 대통령 대한민국
2022년 5월 3일 문재인 대통령 대한민국
2022년 5월 3일 김정숙 영부인 대한민국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외국인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상훈 연도 결정일 수여일 이름 직책 국적 비고
1964년 12월 3일 12월 8일 하인리히 뤼프케 대통령 서독 외국인 최초 상훈자
1964년 12월 3일 12월 8일 빌헬미네 뤼브케 영부인 서독 외국인 최초 상훈자
1966년 2월 1일 2월 7일 이스마일 나시루딘 국왕 말레이시아
1966년 2월 1일 2월 7일 틍쿠 인탄 자하라 왕비 말레이시아
1966년 2월 1일 2월 10일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 태국
1966년 2월 1일 2월 10일 시리낏 끼띠야콘 왕비 태국
1966년 2월 1일 2월 15일 장제스 총통 중화민국
1968년 5월 10일 5월 18일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 에티오피아
1969년 5월 23일 5월 27일 응우옌반티에우 총통 남베트남
1969년 5월 23일 5월 27일 응우옌티마이아인 제1부인 남베트남
1969년 10월 28일 10월 28일 하마니 디오리 대통령 니제르
1969년 10월 28일 10월 28일 아이샤 디오리 영부인 니제르
1970년 9월 25일 9월 28일 피델 산체스 에르난데스 대통령 엘살바도르
1970년 9월 25일 9월 28일 마리나데 산체스 에르난데스 영부인 엘살바도르
1975년 6월 27일 7월 5일 오마르 봉고 대통령 가봉
1975년 6월 27일 7월 5일 조세핀 봉고 영부인 가봉
1979년 4월 17일 4월 23일 레오폴 세다르 상고르 대통령 세네갈
1979년 4월 17일 4월 23일 콜레테 위베르트 상고르 영부인 세네갈
1980년 5월 11일 할리드 빈 압둘아지즈 알사드 국왕 사우디아라비아
1980년 5월 14일 자베르 알아흐마드 알자베르 알사바 국왕 쿠웨이트
1981년 6월 25일 수하르토 대통령 인도네시아
1981년 6월 25일 시티 하티나 영부인 인도네시아
1981년 6월 29일 아마드 샤 이브니 아부 바카르 국왕 말레이시아
1981년 6월 29일 틍쿠 아프잔 왕비 말레이시아
1981년 7월 6일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 필리핀
1981년 7월 6일 이멜다 마르코스 영부인 필리핀
1981년 10월 13일 로드리고 카라소 대통령 코스타리카
1981년 10월 13일 에스트레야 셀레돈 리사노 영부인 코스타리카
1982년 5월 10일 사무엘 도 대통령 라이베리아
1982년 6월 7일 모부투 세세 세코 대통령 자이르
1982년 6월 7일 보비 라다와 영부인 자이르
1982년 8월 25일 압두 디우프 대통령 세네갈
1982년 12월 21일 케난 에브렌 대통령 터키
1983년 3월 10일 3월 15일 자파르 모하메드 니메이리 대통령 수단
1983년 3월 10일 3월 15일 부띠나 칼릴 압불핫산 영부인 수단
1983년 9월 10일 후세인 1세 국왕 요르단
1983년 9월 10일 누르 왕비 요르단
1984년 4월 9일 하사날 볼키아 국왕 브루나이
1984년 4월 21일 할리파 빈 하마드 알타니 국왕 카타르
1984년 8월 30일 9월 13일 다우다 자와라 대통령 감비아
1984년 8월 30일 9월 13일 치렐 자와라 영부인 감비아
1985년 5월 17일 무함마드 지아울하크 대통령 파키스탄
1985년 5월 20일 루이스 알베르토 몽헤 대통령 코스타리카
1986년 9월 4일 4월 10일 엘리자베스 2세 국왕 영국
1986년 9월 4일 4월 16일 보두앵 국왕 벨기에
1987년 4월 7일 아메드 압달라 대통령 코모로
1988년 11월 3일 이스칸다르 국왕 말레이시아
1988년 11월 3일 자나리아 왕비 말레이시아
1989년 11월 3일 11월 20일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 대통령 서독
1989년 11월 3일 11월 30일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 프랑스
1989년 11월 3일 11월 30일 다니엘 미테랑 영부인 프랑스
1990년 6월 21일 안드레스 로드리게스 대통령 파라과이
1990년 11월 5일 괸츠 아르파드 대통령 헝가리
1991년 9월 13일 아즐란 샤 국왕 말레이시아
1991년 9월 13일 투안쿠 바이눈 왕비 말레이시아
1991년 9월 25일 카를로스 살리나스 데 고르타리 대통령 멕시코
1992년 8월 13일 호르헤 안토니오 세라노 엘리아스 대통령 과테말라
1993년 5월 20일 5월 25일 피델 라모스 대통령 필리핀
1993년 5월 20일 5월 25일 이멜리타 마르티네스 라모스 영부인 필리핀
1994년 11월 7일 11월 21일 에두아르도 프레이 루이스 타글레 대통령 칠레
1994년 12월 5일 12월 9일 레흐 바웬사 대통령 폴란드
1995년 2월 7일 2월 16일 이슬람 카리모프 대통령 우즈베키스탄
1995년 2월 21일 3월 6일 로만 헤어초크 대통령 독일
1995년 3월 28일 4월 3일 젤류 미테프 젤레프 대통령 불가리아
1995년 6월 26일 7월 7일 넬슨 만델라 대통령 남아프리카 공화국
1995년 9월 26일 9월 29일 카를로스 메넴 대통령 아르헨티나
1996년 7월 23일 9월 4일 알바로 아르수 대통령 과테말라
1996년 7월 23일 페르난두 카르도주 대통령 브라질
1996년 10월 8일 10월 20일 후안 카를로스 1세 국왕 스페인
1996년 10월 8일 10월 20일 소피아 마르가리타 빅토리아 프리데리키 왕비 스페인
1996년 11월 26일 자파 이브니 압둘 라만 국왕 말레이시아
1996년 12월 10일 12월 15일 레오니드 쿠치마 대통령 우크라이나
2000년 2월 22일 3월 3일 카를로 아첼리오 참피 대통령 이탈리아
2000년 2월 22일 3월 6일 자크 시라크 대통령 프랑스
2006년 3월 12일 압델아지즈 부테플리카 대통령 알제리
2007년 3월 26일 사마 알아마드 알자베르 알사바 국왕 쿠웨이트
2007년 3월 28일 하마드 빈 할리파 알사니 국왕 카타르
2009년 5월 13일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 카자흐스탄
2009년 11월 12일 알란 가르시아 대통령 페루
2012년 5월 30일 칼 16세 구스타프 국왕 스웨덴
2012년 11월 21일 할리파 빈 자이드 나하얀 대통령 아랍에미리트
2018년 10월 8일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프랑스
2019년 하랄 5세 국왕 노르웨이
2021년 6월 14일 알렉산더 판데어벨렌 대통령 오스트리아
2021년 6월 16일 펠리페 6세 국왕 스페인
2021년 6월 16일 레티시아 오르티스 로카솔라노 왕비 스페인
2021년 8월 25일 이반 두케 대통령 콜롬비아
2021년 9월 21일 보루트 파호르 대통령 슬로베니아
2023년 7월 13일 안제이 두다 대통령 폴란드
2023년 11월 21일 찰스 3세 국왕 영국 }}}}}}}}}

파일:대한민국장 약장.png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수훈자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0;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4D4D4D, #696969 20%, #696969 80%, #4D4D4D); color: #fede58"
{{{#fede58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파일:건국훈장 대한민국장 부장.png
1949
이승만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49
이시영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53
제임스 A. 밴 플리트
파일:미국 국기.svg
1953
장제스
파일:대만 국기.svg
1955
하일레 셀라시에
파일:에티오피아 제국 국기.svg
1957
응오딘지엠
파일:베트남 공화국 국기.svg
1958
아드난 멘데레스
파일:튀르키예 국기.svg
1962
허위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62
김좌진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62
오동진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62
조병세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62
안중근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62
윤봉길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62
이준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62
강우규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62
김구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62
안창호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62
신익희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62
김창숙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62
손병희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62
이승훈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62
한용운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62
최익현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62
이강년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62
민영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64
더글러스 맥아더
파일:미국 국기.svg
1964
해리 S. 트루먼
파일:미국 국기.svg
1964
루트비히 에르하르트
파일:독일 국기.svg
1965
프랑수아 톰발바예
파일:차드 국기.svg
1965
다비드 다코
파일:중앙아프리카 공화국 국기.svg
1965
수루-미강 아피디
파일:베냉 국기.svg
1965
레오폴 세다르 상고르
파일:세네갈 국기.svg
1965
펠릭스 우푸에부아니
파일:코트디부아르 국기.svg
1965
레옹 음바
파일:가봉 국기.svg
1965
아마두 바바투라 아히조
파일:카메룬 국기.svg
1965
하마니 디오리
파일:니제르 국기.svg
1965
조모 케냐타
파일:케냐 국기.svg
1965
무테사 2세
파일:우간다 국기.svg
1965
필리베르트 치라나나
파일:마다가스카르 국기.svg
1965
툰쿠 압둘 라만
파일:말레이시아 국기.svg
1966
타놈 키티카초른
파일:태국 국기.svg
1966
쑹메이링
파일:대만 국기.svg
1966
천궈푸
파일:대만 국기.svg
1968
쑨원
파일:중화민국 북양정부 국기.svg
1968
천치메이
파일:중화민국 북양정부 국기.svg
1969
피델 산체스 아르난데스
파일:엘살바도르 국기.svg
1970
조만식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76
임병직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77
필립 제이슨
파일:미국 국기.svg
1979
박정희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0
최규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1
시리낏 끼띠야꼰
파일:태국 국기.svg
1981
푸미폰 아둔야뎃
파일:태국 국기.svg
1983
전두환(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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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
김규식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9
조소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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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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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여운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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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유관순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21
홍범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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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태극무공훈장 약장.png
태극무공훈장 수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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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파일:태극무공훈장 부장.png
||<tablewidth=100%><table bgcolor=#fff,#191919><tablecolor=#373a3c,#ddd><width=20%> 1950
더글라스 맥아더
미 육군원수 ||<width=20%> 1951
이근석
공군준장 ||<width=20%> 1951 1953중복수훈
백선엽
육군대장 ||<width=20%> 1951 1953중복수훈
정일권
육군대장 ||<width=20%> 1951
심일
육군소령 ||
1951
이명수
육군일등상사
1951
김용식
육군일병
1951
홍재근
육군일병
1951
홍재근
육군일병
1951
김용배
육군준장
1951
박노규
육군준장
1951
김백일
육군중장
1951
김홍일
육군중장
1951
함준호
육군중장
1951 1953중복수훈
손원일
해군중장
1951
최용남
해병소장
1951
김성은
해병중장
1951 1952중복수훈
김정렬
공군중장
1952
이형근
육군대장
1951
권동찬
육군준장
1952
김종오
육군중장
1952 1953중복수훈
신현준
해병중장
1953
장덕창
공군중장
1953
최용덕
공군중장
1953
마크 클라크
미 육군대장
1953
김교수
육군대위
1953
김한준
육군대위
1953
김용배
육군대장
1953
민기식
육군대장
1953
임충식
육군대장
1953
한신
육군대장
1953
김점곤
육군소장
1953
이성가
육군소장
1953
이용문
육군소장
1953 1954중복수훈
임부택
육군소장
1953 1954중복수훈
강문봉
육군중장
1953
김동빈
육군중장
1953
김종갑
육군중장
1953
백인엽
육군중장
1953 1954중복수훈
송요찬
육군중장
1953
유재흥
육군중장
1953
최영희
육군중장
1953
함병선
육군중장
1953
최치환
총경
1954
김만술
육군대위
1954
허봉익
육군대위
1954
김경진
육군소령
1954
김웅수
육군소장
1954
송석하
육군소장
1954
엄홍섭
육군소장
1954
임선하
육군소장
1954
백재덕
육군이등상사
1954
최득수
육군이등상사
1954
김옥상
육군일병
1954
조재미
육군준장
1954
안낙규
육군중사
1954
박병권
육군중장
1954
이응준
육군중장
1954
이준식
육군중장
1954
장도영
육군중장
1954
최석
육군중장
1954
최창언
육군중장
1954
박옥규
해군중장
1954
김석범
해병중장
1955
김창룡
육군소장
1955
정긍모
해군중장
1956
서정학
이사관(치안국장)
1960
미군무명용사
-
1961
김금성
공군준장
1961
국군무명용사
-
1964
박정희
대통령
1966
이종세
육군상사
1966
강재구
육군소령
1966
이인호
해병소령
1967
송서규
육군대령
1967
채명신
육군중장
1967
지덕칠
해군중사
1967
정경진
해병대위
1967
신원배
해병소위
1968
최규식
경무관
1968
이익수
육군준장
1968
최범섭
육군중령
1970
이세호
육군중장
1972
이무표
육군대위
1972
임동춘
육군대위
1975
찰스 B. 스미스
미육군중령
1980
전두환(취소)
육군대장
2002
장철부
육군중령
2006
김영옥
미 육군대령
2011
조달진
육군소위
2021
에밀 카폰
미 육군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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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 2004년 한국갤럽이 창립 30주년을 맞이하여,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인이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알아보는 한국인이 좋아하는 조사 시리즈를 기획해 2004년부터 5년 주기로 발표하고 있다.
2014년
※ 2014년 한국갤럽한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한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을 선정.
1위 2위 3위 4위 5위
이순신 반기문 박정희 세종대왕 노무현
6위 7위 8위 9위 10위
정주영 이건희 김수환 김대중 김구
2019년
※ 2019년 한국갤럽한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한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을 선정.
1위 2위 3위 4위 5위
이순신 세종대왕 노무현 박정희 김구
6위 7위 8위 9위 10위
정주영 유관순 김대중 반기문 안중근
11위 12위 13위 14위 15위
부모님 신사임당 이국종 이건희 안창호
16위 17위
문재인 김연아
※ 응답수 50명 미만인 18위부터는 공개하지 않음.
같이 보기: 한국인이 존경하는 인물, 좋아하는 스포츠선수, 좋아하는 소설가, 좋아하는 탤런트, 좋아하는 영화배우, 좋아하는 가수, 좋아하는 노래, 좋아하는 예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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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5ba6><colcolor=#ffc224>
대한민국 제5-9대 대통령
박정희
朴正熙 | Park Chung-hee
파일:박정희_대통령.jpg
출생 1917년 11월 14일
경상북도 선산군 구미면 상모리 171
(현 경상북도 구미시 박정희로 107)[1]
사망 1979년 10월 26일 (향년 61세)
서울특별시 종로구 궁정동 안전가옥
(현 서울특별시 종로구 효자로 97)
묘소 국립서울현충원 박정희대통령묘소
재임기간[2] 제5대 대통령
1963년 12월 17일 ~ 1967년 6월 30일
제6대 대통령
1967년 7월 1일 ~ 1971년 6월 30일
제7대 대통령
1971년 7월 1일 ~ 1972년 12월 26일[3]
제8대 대통령
1972년 12월 27일 ~ 1978년 12월 26일
제9대 대통령
1978년 12월 27일 ~ 1979년 10월 26일[4]
서명
파일:박정희 서명.svg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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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5ba6><colcolor=#ffc224> 본관 고령 박씨[5]
등록기준지 경상도 성주목 망성방 철산리 사읍촌
(현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장산리)
부모 아버지 박성빈, 어머니 백남의
형제자매 형 박동희, 박무희, 박상희, 박한희
누나 박귀희, 박재희
배우자 김호남[이혼]
이현란[사실혼]
육영수[재혼]
자녀 장녀 박재옥[9]
차녀 박근혜[10]
삼녀 박근령
장남 박지만
학력 구미공립보통학교[11] (졸업 / 11회)
대구사범학교 (졸업 / 4회)
조선경비사관학교 (졸업)
종교 개신교[12]불교 (사실상 무종교)[13][14]
신체 164cm[15], 60kg, A형
약칭 , 박통, PP[16]
중수(中樹)
군사 경력
임관 신경군관학교 (2기)
일본육군사관학교[17] (57기)
조선국방경비사관학교[18] (2기)
복무 만주국 육군
1944년 ~ 1945년
한국광복군
1945년 ~ 1946년
대한민국 육군
1946년 ~ 1949년[19]
1950년[20] ~ 1963년
최종 계급 중위 (만주국 육군)
중대장 (한국광복군)
대장 (대한민국 육군)
주요 보직 제5보병사단장
제6군단 부군단장
제7보병사단장
제6관구사령관
군수기지사령관
제2야전군사령부 부사령관
병과 포병
참전 제2차 세계 대전 (중일전쟁)
여순사건
6.25 전쟁
}}}}}}}}}
파일:박정희대통령초상화.png
공식 초상화

1. 개요2. 약력3. 일생4. 사상5. 평가6. 여담7. 다른 정치인들과의 관계8. 관련 시설
8.1. 박정희 대통령 생가8.2. 묘소8.3. 박정희대통령기념관
9. 가족 관계10. 대중매체에서11. 어록
11.1. 제5대 대통령 취임사11.2. 제6대 대통령 취임사11.3. 제7대 대통령 취임사11.4. 제8대 대통령 취임사11.5. 제9대 대통령 취임사
12. 각종 타이틀13. 저서14. 관련 서적15. 각종 친필 및 그림들16. 선거 이력17. 소속 정당18. 관련 문서
18.1. 사건18.2. 단체18.3. 기타18.4. 외부 링크
19.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 제5-9대 대통령 취임 선서[21]

대한민국의 제5·6·7·8·9대 대통령.

2. 약력

3. 일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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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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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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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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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다른 정치인들과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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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관련 시설

8.1. 박정희 대통령 생가

박정희가 태어난 1917년부터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한 1937년까지 20여 년을 살았던 집으로, 1993년 2월 25일경상북도 기념물 제86호로 지정되었다. 주소는 경상북도 구미시 박정희로 107(상모동)이다. 현재 구미의 가볼만 한 관광지로 자주 소개되어 일반인들도 많이 찾으며, 특히 보수 정치인들이 자주 와서 참배를 하곤 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 탄신제도 여기서 행해진다. 여기에 쓰인 영정 사진은 실제 장례 때 쓰인 사진이 아닌 테일코트 차림에 무궁화대훈장을 패용한 사진을 쓰고 있다.
파일:67069B3D-DED3-492D-A6A6-F14B000F779B.jpg

2016년 11월 30일, 누군가가 생가에 불을 질러 박정희 영정이 있는 추모관이 전소되었다. 경찰이 현장에서 백모 씨(48)를 방화 용의자로 체포하였는데, 이 사람은 4년 전에 노태우 대통령 생가에도 불을 지른 적이 있었고 그로 인해 대구지법에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은 전과가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또 백모 씨는 2007년에도 송파구에 위치한 사적 제101호 삼전도비를 훼손했던 적이 있다고 한다. # 백모 씨는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농단 사건이 터지고도 하야를 하지 않아 방화를 저질렀다고 경찰에 진술하였다. 그는 방화 외에도 폭행, 상해, 재물손괴 등의 전과가 있다고 알려졌다. 이에 구미시는 약 9천만 원을 복구비로 들여 생가와 추모관을 곧 복원하겠다고 한다. 2017년 4월 25일, 법원은 문화재보호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백모 씨에게 징역 4년 6개월을 선고했다. 이 재판은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되었다. #

8.2. 묘소

파일:external/image.chosun.com/2015121101803_1.jpg
파일:external/pbs.twimg.com/CwuYpxUXAAA4dl_.jpg
<colbgcolor=#005ba6>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묘소[26]
서울현충원 정문에서 직선방향으로 맨 안쪽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 당시 유명한 지관(地官) 지창룡(1922~1999)이 터를 골랐으며, 수맥을 막기 위해 토목공사를 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앞을 내다보면 앞에 장군 제1묘역과 한강을 중심으로 강북과 강남이 한눈에 보인다.[27]

현재 대한민국에서 순수 매장한 무덤 규모 기준 가장 규모가 큰 무덤이다. 국가원수 묘소 중 가장 규모가 크며, 국가원수 묘소 중 가장 규모가 작은 김대중대통령묘소(국립서울현충원 소재)와 비교하면 엄청난 차이가 난다. 사실 박정희 전 대통령 묘소와 김대중 전 대통령 묘소는 순수 묘소 기준으로 비교하자면 박정희 묘소가 김대중 묘소보다 약간 큰 수준으로 별 차이가 없지만, 주변 묘소 전체가 1000평이 넘어갈 정도로 굉장히 넓다.[28]

8.3. 박정희대통령기념관

김대중 정부의 공약으로 지어진 박정희대통령기념관[29]박정희도서관[30]상암동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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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가족 관계

파일:external/ilyo.co.kr/1316397016425351.jpg
파일:박정희대통령가족.jpg
박정희 전 대통령 가족 사진[31]

박정희 가문은 부울경의 김영삼 가문, 호남의 김대중 가문과 더불어 한국의 케네디 가문이라 불리는 3대 정치명문가 중 하나로 대구경북에서 절대적인 정치적 영향력을 갖고 있다.[32]
  • 조부 박영규(1840 ~ 1914)
  • 아버지 박성빈(1871 ~ 1938)
  • 어머니 백남의(1872 ~ 1949)
    • 큰형 박동희(1895 ~ 1972)
    • 둘째 형 박무희(1898 ~ 1960)
      • 조카 박재석
      • 조카 박재호
    • 큰누나 박귀희(1902 ~ 1974) - 남편 은용표
      • 외조카 은희만(1929 ~ 2018)[33]
    • 셋째 형 박상희(1906 ~ 1946)
      • 조카 박준홍(1946 ~ )
      • 조카딸 박영옥(1929 ~ 2015) - 남편 김종필(1926 ~ 2018)
      • 조카딸 박계옥 - 남편 김용태
      • 조카딸 박금자 - 남편 반기언
      • 조카딸 박설자 - 남편 김희용
    • 넷째 형 박한희(1910 ~ 1928): 요절
    • 둘째 누나 박재희(1913 ~ 1996)
    • 본인 막내 박정희(1917 ~ 1979)
      • 전처 김호남(1920 ~ 1990)
      • 아내 육영수(1925 ~ 1974)(1남 3녀 중 셋째)
        • 첫째 딸 박근혜(1952 ~ )
        • 둘째 딸 박근령(1954 ~ ) - 남편 신동욱(1968 ~ )
        • 아들 박지만(1958 ~ ) - 아내 서향희(1974 ~ )
          • 큰 아들 박세현(2005 ~ )
          • 둘째 아들 박정현(2014 ~ )
          • 셋째 아들 박지현(2015 ~ )[34]
          • 넷째 아들 박수현(2015 ~ )
      • 처형 육인순 - 남편 홍순일
      • 처남 육인수 - 아내 박심자
      • 처제 육예수 - 남편 조태호
      • 내연녀 이현란(1925 ~ ?)

자손 대대로 나이 차이가 매우 심하다. 박정희 본인은 아버지 박성빈46살 차이이며 박정희 본인 역시 아들 박지만41살 차이가 나는데 박지만 역시 손자 박세현과 47살 차이나며 이 박세현이 무려 장남이다. 박지만의 3남과 4남 쌍둥이 형제인 박지현과 박수현은 장남인 박세현보다 10살이 연하라서 아버지인 박지만과 57살이라는, 빼도 박도 못할 할아버지와 손자급의 나이 차가 난다. 이렇게 보면 증조할아버지 박성빈과 증손자 박지현, 박수현 쌍둥이 형제의 나이차는 144살이라는, 실로 괴물같은 나이 차가 난다.

박성빈 -46- 박정희 -41- 박지만 -47- 박세현으로 이어지는 4대가 각각 부모와 자식간 나이 차가 최소 40살 이상이라는 굉장히 큰 차이가 난다.

공교롭게도 아버지 박성빈과 김일성의 할아버지 김보현은 둘이 1871년 생 동갑내기이다. 김일성이 박정희보다 되려 5살 연상인 걸 감안하면 박정희와 그 아버지 박성빈의 나이차가 당시로서는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0. 대중매체에서

이창환이 특히 박정희 전 대통령 전문 배우로 유명하다.
  • KBS2 미니시리즈 무풍지대에서 배우 신종섭이 연기했다.
  • KBS 실록대하드라마 여명의 그날에서 배우 백준기가 연기했다. 관동군 내부에서 광복군과 내통한 것으로 묘사되는데 이 때문에 해당 드라마가 역사왜곡 논란이 있었다 한다.[35]
  • KBS 드라마 욕망의 문에서 배우 이진수가 연기했다. 직접적으로 언급되지는 않고 '이름 없는 대통령'으로 나오는데 이진수의 연기가 좋아서 이후에도 박정희 배역을 여럿 받는 계기가 된다.
  • KBS 드라마 훠어이 훠어이에서 배우 이진수가 연기했다.
  • MBC 드라마 제2공화국에서 배우 이진수가 연기했다.
  • MBC 드라마 전쟁과 사랑에서 배우 이진수가 연기했다.
  • MBC 드라마 제3공화국에서 아역 시절 김상민, 청소년 시절 홍경인, 청년 시절 이창환, 장년 시절 이진수가 연기했다. 남로당 관련 사건 등 젊은 시절의 박정희를 소재로 다루는 당시로써는 금기시되던 시도를 했다. 여기서 청년 박정희를 연기한 이창환은 이후 박정희 전문 배우가 되었다.
  • MBC 드라마 제4공화국에서 배우 이창환이 연기했다.
  • MBC 드라마 제5공화국에서 배우 이창환이 연기했다. 주인공이 전두환이고 10.26사태로 드라마가 시작하기 때문에 극초반과 회상 장면에만 등장한다.
  • MBC 특집극 오른손과 왼손에서 배우 이창환이 연기했다.
  • MBC 단막극 베스트극장 - 대통령과 TV에서 배우 이창환이 연기했다.
  • MBC 예능 타임머신에서 배우 이창환이 연기했다.
  • 다큐멘터리 MBC 스페셜 - 부마항쟁 40주년 기념 '1979'에서 배우 이창환이 연기했다.
  • KBS 다큐멘터리 극장에서 배우 이창환이 연기했다.
  • SBS 드라마 삼김시대에서 배우 이창환이 연기했다.
  • SBS 드라마 야인시대에서 배우 이창환이 연기했다. 최종보스처럼 등장하지만 주인공 김두한이 1972년에 사망하는 관계로 짤막하게만 등장한다.
  • SBS 특집극 70분 드라마 - 가방을 든 남자에서 배우 이창환이 연기했다.
  • 연극 인간 박정희에서 배우 이창환이 연기했다.
  • 영화 잘 살아보세에서 배우 이창환이 연기했다.
  • PBC 드라마 김수환 추기경에 관한 마지막 보고서에서 배우 이창환이 연기했다.
  • MBN 다큐드라마 대한민국 정치비사에서 배우 이창환이 연기했다.
  • SeMA 벙커 특별전시영상- '나, 박정희, 벙커'에서 배우 이창환이 연기했다.
  • tvN - TV조선 합작 단막극 <위대한 이야기 - 원폭 박치기 김일의 박정희>에서 배우 이창환이 연기했다.
  • SBS 드라마 코리아 게이트에서 배우 독고영재가 연기했다.
  • MBC 드라마 영웅시대에서 배우 독고영재가 연기했다. 실제 역사 속 박정희가 행한 부정적 행적 일부가 다른 인물들의 짓으로 각색되었으나 정책 실패후 의기소침한 모습을 보이거나 "쿠데타만 일으키고 실패한 군인으로 남겠지"등의 대사가 나오기도 한다.
  • 영화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에서 배우 이균식이 연기했다.
  • 영화 효자동 이발사에서 배우 조영진이 연기했다.
  • 신상옥 감독의 영화 증발에서 일본계 미국인 배우 조지 타케이가 연기했다.
  • 영화 그때 그 사람들에서 배우 송재호가 연기했다.배역은 '통치자'로 표기되며 인간적이지만 동시에 희화회된 모습으로 등장한다.
  • 영화 덕혜옹주에서 배우 김승훈이 연기했다. 여기서는 직접적으로 이름이 나오진 않고 박 의장이라고만 불린다. 김장한[36]의 부탁을 받아 덕혜옹주의 귀국을 허락한다.
  • 영화 남산의 부장들에서 배우 이성민이 연기했다. 직접적으로 이름이 언급되지는 않고 박통이라고 나오나, 군복 등의 명찰에 박정희라고 적혀 있는 것이 간간히 나온다.
  • 북한 영화 민족과 운명에서는 배우 김윤홍[37]이 박정희 역할을 맡았다. 북한영화답게 여러 인물을 압박하며 이렇게 압박 받던 인물이 월북해 진정한 꿈을 이루었다는 레퍼토리가 몇번 나온다. 10.26 사태도 다루는데 김재규의 대사중 "내 뒤에 미국이 있다"는 대사를 삽입하였다.
  • 영화 킹메이커에서 배우 김종수가 연기했다. 실명이 아닌 박기수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38]
  • 2차세계대전 게임 하츠 오브 아이언 4의 대체역사 모드인 레볼루션 오브 1896에서 한국 측의 장군으로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서는 경술국치만주사변[39] 이 일어나지 않았기에 만주군이 아닌 한국군에 입대해 장군이 된것으로 보인다.
  • 하츠 오브 아이언 4의 대체역사 모드 TNO에서는 백선엽과 함께 대만주제국 소속으로 등장한다.
  • THE LAST EMPIRE에서는 직접적인 등장은 없으나 한국이 미국에 승리하는 전후 중점을 타면 만주국에서 활약중인 장교라고 언급되며 이후 후속작이라고 볼수 있는 유자의 짐에서 한국을 만주국처럼 극단적인 전제주의 기업국가로 만들어버린다. TNO원본의 기시 노부스케 역할.
  • The Red Order: First Days of Eurasia에서는 공산주의자로서 김일성의 부하로 등장하나 김일성을 통수친다.
  • 대통령 각하 만세에서는 형인 박상희의 언급으로안 등장. 형에게 지기싫어하는 동생이라고한다.
  • 검은머리 미군 대원수에서는 나폴레옹과 주인공 유진킴을 존경하는 순진한 소년으로 등장하며 이후 원래역사랑 달리 미군에서 군생활을 시작. 독립운동가가 된다. 독립 이후 좌익계열 한국 대통령이된다.

11. 어록

내 一生 祖國과 民族을 爲하여
내 일생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1974년 5월 20일에 적은 휘호
군단에서 지시가 내려가면 말단 부대의 소대장에게 전달된다. 그 후 사병들이 일을 하게 된다. 일이 어떻게 되어가는지 물어보면 소대장은 현장에 가보지도 않고 전화로 중대장에게 ‘예, 명령 하달했습니다. 잘되어 갑니다’라고 보고한다. 중대장은 다시 대대장에게, 대대장은 연대장에게, 연대장은 사단장에게, 사단장은 군단장에게 이런 식으로 보고한다. 이래 가지고는 일이 안 된다. 귀와 입으로 일하면 아무것도 되는 일이 없다. 다리와 눈으로 일하라. 명령은 5%이고 확인과 감독이 95%다.
3군단 포병단장 시절 부하 장교들에게 강조했던 말(오정석 예비역 육군 소장의 회고)
소박하고, 근면하고, 정직하고, 성실한 서민사회가 바탕이 된, ‘자주독립된 한국의 창건’ 그것이 본인의 소망의 전부다.
《국가와 혁명과 나》 (1963.9.1.)
어떤 사람은 자기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큰 잔치를 베풀고 금시 국민을 호강시켜 줄 것같이 말하고 있지만, 그것은 다 하루 잘 먹고 아흐레는 굶어도 좋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의 말이다.
중앙방송을 통한 정견발표 (1963.9.23.)
그러나 여러분들이 아시다시피 우리는 원래 정치인이 아니며 정치에 대한 경험이 없습니다. 잘하려고 한 결과가 결과적으로 많은 과실을 범했고, 따라서 국민 여러분에게 미안한 느낌을 금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대해서 혁명 정부가 이룩한 2년 동안의 업적, 잘잘못한 것에 대해서는 본인이 여기서 누누히 변명이나 해명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국민 여러분들의 냉철한 비판과 평가를 바랄 뿐입니다.
제5대 대선 서울 유세 中 (1963.9.28.)#
그러나 우리가 진실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목전의 경제적 시련과 고난이 아니며, 이 시련과 고난 앞에 굴복하려는 실의와 체념인 것입니다.
제6회 근로자의 날 메시지 (1964.3.10.)
언론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것과 언론의 무책임한 자유, 왜곡된 자유, 과잉된 자유를 방치한다는 것은 스스로 구분되어야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만일 우리에게 자유를 수호할 의무가 있다면 타인의 자유나 타기관의 자유를 침해하는 자유를 규제할 의무도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시국수습에 관한 교서 (1964.6.26.)
이 나라에 복지사회를 건설하려면 막대한 물질과 자본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보다도 더 귀중한 자본이 또 하나 필요합니다. 그것이 바로 거짓이 없는 진실과 정의라는 정신적 자본입니다. 거짓과 부정과 부패와 부조리가 이 나라 사회 안에서 활개를 치고 다니는 한 우리에게는 아무리 많은 자본이 있다 하더라도 복지사회는 건설될 수 없다고 나는 단정합니다.
연두교서 中 (1965.1.16.)
그러나 국민 여러분! 그렇다고 우리는 이 각박한 국제사회의 경쟁 속에서 지난날의 감정에만 집착해 있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어제의 원수라 하더라도 우리의 오늘과 내일을 위해 필요하다면 그들과도 손을 잡아야 하는 것이 국리민복을 도모하는 현명한 대처가 아니겠습니까.
한일회담 타결에 즈음한 특별담화문 中 (1965.6.23.)
정치적, 경제적 예속이 민족의 참을 수 없는 굴욕인 것과 꼭 마찬가지로 문화적인 예속은 민족의 종장을 의미합니다.
백제문화제 치사 中 (1965.10.9.)
이를 위해서는 먼저 일제의 식민지 교육 하에서 왜곡되어 자라난 보수주의와 사대주의, 이기주의와 기회주의, 그리고 패배의식과 열등감을 제거하고 건전한 인생관과 세계관, 강건한 민족적 사회의식과 경제사상을 고취시킬 수 있는 새로운 가치관의 개발에 주력해야 할 것입니다.
대한교육연합회 제23회 전국대의원대회 및 교육공로자 표창식 치사 中(1965.11.3.)
또한 정부는 경제적으로 불우한 자녀들을 위하여 장학제도를 더욱 확충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여러 가지 정부의 노력도 교권의 확립 없이는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없는 것입니다. 제자가 스승을 우습게 여기는 교권 없는 학원에서 진정한 교육이 이루어질 수는 없는 것입니다. 배움의 전당에 배움이 없는 역설적 사태가 시정되지 않는 한, 진정한 교육이 이루어질 수는 없는 것입니다.
나는 전국의 학부형들에게 특별히 말씀드릴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아동들의 교육문제인 것입니다. 나는 우리의 아동교육에 관하여 정부나 학교나 학부형이 깊이 반성할 때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우리의 학부형들은 아동을 공부에 너무 혹사하여, 아동들의 보건과 정서면에 중대한 위협을 가져오고 있습니다.
연두교서 中 (1966.1.18.)
관록보다는 의욕과 능력을, 경력보다는 창의와 실천력을 더욱 존중하는 행정의 새 시대가 이제 왔습니다.
전국 지방장관회의 유시에서 (1966.3.30.)
한 치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단견과, 아무런 계획이나 한 가지 실천도 없이 덮어놓고, 헐뜯고, 불평하는 비생산적인 정신적 자세를 바로잡지 않고서 “번영이다, 발전이다, 조국의 근대화다”라고 하는 말은 한낱 공염불에 그치고 만다는 것을 나는 단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충무공 탄신일 기념사 中 (1966.4.28.)
자유는 그것을 위해 투쟁하는 자의 것이며, 평화는 그것을 지킬 수 있는 자의 것입니다.
아시아태평양지역 각료회의 치사 中 (1966.6.14.)
하나의 발전은 보다 큰 발전을 위한 밑거름이 되어야 하며, 오늘의 기쁨은 내일의 영광을 위한 분발의 계기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광복절 경축사 中 (1966.8.15.)
우리는 모두 정의를 지지하며, 정의가 지배하는 사회를 희구합니다. 그러나 정의가 힘을 동반하지 못할 때, 그것은 정의일 수 없고, 남는 것은 한낱 굴욕과 노예상태밖에 없을 것입니다.
월남지원국 정상회의 기조연설 中 (1966.10.24.)
문화와 예술은 한 민족 한 국가의 발전과 번영을 뒷받침하는 정신적 지주인 것이며, 국력 신장의 원동력인 것입니다.
개천예술제 치사 中 (1966.11.10.)
5.16 혁명이 일어나던 그 당시나, 지난번 제3공화국 대통령으로서 처음에 취임하던 그 당시나, 오늘 이 시점에 있어서나, 내 가슴 속에 풀리지 않고 맺혀 있는 하나의 소원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도 어떻게 하든지 남과 같이 잘 살아 보아야 하겠다, 그러한 염원입니다.
대통령 취임 제3주년 기자회견 中 (1966.12.17.)
오늘날 많은 외국인들은 한국에 기적이 일어나고 있다,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기적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실로 잘 살아 보겠다는 의욕과 희망을 가지고 인내와 용기로써 온갖 역경과 난관을 이겨낸 우리 국민들의 근면과 검소, 저축의 결정이었던 것입니다.
1967년 신년사
우리의 후손들이 오늘에 사는 우리 세대가 그들을 위해 무엇을 했고 조국을 위해 어떠한 일을 했느냐고 물을 때 우리는 서슴지 않고 조국 근대화의 신앙을 가지고 일하고 또 일했다고 떳떳하게 대답할 수 있게 합시다.
연두기자회견 中 (1967.2.2.)[40]
바르게 알도록 하고, 바르게 판단하도록 하고, 바르게 행동하도록 하는 무거운 책임이 바로 우리 언론에 있는 것입니다.
신문의 날 치사 中 (1967.4.6.)
나는 일하는 대통령이 될 것을 국민 앞에 약속합니다. 도시 건설도 내가 직접 살필 것이며, 농촌의 경지(耕地) 정리도 내가 직접 나가서 할 것입니다. 산간의 조림(造林)에도 내가 앞장설 것이며, 전천후 농토 조성에도 내 힘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어업전진기지나 공장 건설에도 더욱 부지런히 찾아다녀 그 진도를 격려할 것이며, 기공·준공식에도 쉬지 않고 참석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민족자립’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지 착수하여 자립의 길을 단축시켜 나갈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 여러분이 나에게 또 한번 일을 맡겨 주신다면, 나는 더욱 일하는 대통령이 될 것을 여러분 앞에 굳게 약속하는 바입니다.
제6대 대통령 선거 방송연설 (1967.4.15.)
통일을 안 했으면 안 했지, 우리는 공산식으로 통일은 못 하겠다. 통일이 된 연후에 북한 땅에다가 자유민주주의의 씨를 심을 수 있는 민주적인 통일을 하자는 것이다.
제6대 대통령 선거 유세 (1967.4.23.)
이 새 역사 창조의 국민적 대열에 우리의 전진을 가로막는 장애가 있으니, 그것은 아직도 우리 주위에 잔존하고 있는 수구와 파쟁이며, 시기와 모함이며, 독선과 아집이며, 단견과 무정견 등 전근대적이며 비생산적인 요소입니다.
제422회 충무공 탄신일 기념사 中 (1967.4.28.)
역사는 언제나 난관을 극복하려는 의지와 용기가 있는 국민에게 발전과 번영의 영광을 안겨다 주었습니다.
충무공 탄신일 기념사 中 (1967.4.28.)
사회의 불의를 절차와 법에 의하지 아니하고, 시민의 감정으로 이것을 시정해 보겠다는 조급성은 또 새로운 불의를 가져온다는 것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제7대 국회의원 총선 처리 특별담화문 (1967.6.16.)
자신의 자유와 권리만을 주장하기에 앞서, 타인의 권리와 인격을 존중할 줄 알아야 하고, 사랑과 신의, 이해와 존경으로 공동생활을 영위하겠다는 자세를 가다듬었을 적에 진정한 의미의 인권이 보장되는 것입니다.
세계인권선언 기념일 치사 中 (1967.12.8.)
우리에게 지금 가장 소중한 것은 시간입니다. 선진국에 1세기 뒤떨어진 것을 우리는 앞으로 10년 이내에 회복하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불가능하다고 포기하는 사람에게는 앞으로 1세기를 지나도 불가능할 것입니다. 가능하다고 자신과 신념을 가진 사람에게는 반드시 가능한 일입니다. 우리는 가난한 조국의 현실을 우리들 조상의 잘못이라고 원망한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우리의 조상을 원망하기에 앞서서, 우리들 후손들에게 우리들 자신이 원망 듣는 조상이 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이 세대는 모든 책임이 전적으로 우리들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해외공관장에게 보내는 친서 中 (1967.12.15.)
아직도 아마 이 경부 고속도 도로에 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보다도 숫자가 더 많은 걸로 이렇게 듣고 있는데 나는 이게 절대 된다고 해서 확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오늘 이 자리에서 여러분들한테 말씀을 드립니다.
연두 기자회견 中 (1968.1.15)
우리는 죽을 수는 없습니다. 나도 살아야 하고, 너도 살아야 하고, 우리 민족도 살아야 하고, 조국도 살아야 합니다. 살기 위해서는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는 길밖에는 없습니다.
서울대학교 졸업식 유시 中 (1968.2.26.)
친애하는 예비군 용사 여러분! 우리가 쓰고 있는 이 땅은 자손만대에 이어 받아서 번영과 행복의 땅으로 가꾸어 가야 할 우리들의 고향이요, 우리 조상들의 뼈가 묻혀 있고, 또 우리의 뼈도 언젠가는 이곳에 묻힐 우리들의 향토입니다. 이 땅을 수호할 사람은 바로 우리들인 것입니다. 우리의 생명, 우리의 단란한 가정을 우리 힘으로 지키고, 내 고장 내 직장을 내 힘으로써 수호하는 자기 방위의 사명감과 책임감이야말로 진정한 향토애이며 이것이 진정한 조국애의 구현인 것입니다.
아무리 방대한 국력을 자랑하는 나라라고 하더라도 그 국민이 안일과 태평 속에 연약해지고 방종에 흐를 때에는 조만간 세계사의 무대에서 후퇴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무방비 상태의 자유는 침략과 압제를 자초하는 법이며 힘이 없는 정의는 불의의 노예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향토예비군 창설식 유시 中 (1968.4.1.)
참다운 평화 수호의 길은 평화를 지킬 수 있는 힘을 비축하고 어느 때나 그 힘을 행사할 수 있다는 의연한 결의를 침략자에게 보여주는 데 있다는 사실이라고 믿습니다.
국방대학원 졸업식 유시 中 (1968.7.23.)
평시에 땀을 많이 흘리면 전시에 피를 적게 흘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따라서 여러분들은 전시나 평시를 막론하고 항상 연구하고 공부하는 수련의 노력을 다해 주기 바랍니다.
공군사관학교 졸업식 유시 中 (1969.3.29.)
우리가 조국 근대화를 하는데 있어서는 물론 정신 문제를 더 소중히 다루어야 된다고 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물질 문제를 등한히 할 수 있느냐 하면 그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요즈음과 같이 영하 20`, 30' 하는 추운 겨울 혹한에, 저 전방 고지에서 국토를 지키고 있는 우리 일선 장병들을 우리가 생각해 봅시다. 나는 우리 나라에서 그분들이 제일 애국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분들이 춥고, 여러 가지 어려운 것을 참고 나라를 지키고 있기 때문에 후방에서 우리가 이러한 국민 생활을 지금 할 수 있는데, 그분들이 그들 가슴 속에 있는 애국심, 조국에 대한 의무감, 군인으로서의 책임감 등등의 정신력으로 이것을 하고 있는 것은 틀림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용감하고 애국심에 불타는 우리 일선 장병들에 대해서도 우리가 먹을 것을 어느 정도 잘 먹이고 겨울에 추운 때에는 방한복 같은 피복도 잘 입히고, 잠자리도 잘 준비해 주는 등 여러 가지 물질적인 대우를 잘 해 주어야 그 애국심은 더욱 강해져서 국토를 잘 지키는 것이지, 먹을 것을 제대로 먹이지 않고 제대로 안 입히고 잠자리도 없고, 이렇게 해 놓고서 그저 애국심만 가지고 국토를 수호하라고 한대서야 제대로 일선을 지키는 장병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정신 문제를 물론 제 1위로 생각하고 항시 강조를 해야 되겠지만, 물질 문제도 절대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연초 기자회견 中 (1970.1.9.)
한 세대의 생존은 유한하나, 조국과 민족의 생명은 영원한 것. 오늘 우리 세대가 땀 흘려 이룩하는 모든 것이 결코 오늘을 잘 살고자 함이 아니요, 이를 내일의 세대 앞에 물려주어 길이 겨레의 영원한 생명을 생동케 하고자 함입니다.
서울대학교 총장에게 보내는 친서 中 (1970.3.16.)
우리는 전통문화의 가치 있고 품위 있는 밝은 면을 찾아 내어 그 속에 숨어 있는 민족의 예지와 긍지를 최대한으로 계발하고 문화적 자주성을 견고히 지키고 꿋꿋한 정신문화의 전통을 계승 및 발전시켜야 하겠습니다. 온고지신의 정신으로 우리의 빛나는 민족문화와 역사적 전통을 자손 만대에까지 길이 빛내자는 것입니다.
도산서원 보수 정화 준공식 치사 中 (1970.12.8.)
토지가 국민이라면, 지도자란 비료에 지나지 않는다. 여기서 종자(種子)는 민족의 이상이 될 것이다.
자서전 <민족의 저력> 中
우리 나라의 기업인은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의 이기심이나 근시안적인 태도를 버리고 경영을 합리화하고 노동조건을 점진적으로 개선하는 것이 기업을 살릴 수 있고, 또 국가를 위하는 길이 된다는 것을 명심하고, 근로자들과의 관계가 공존, 공영의 바탕 위에 선다는 것을 뼈저리게 인식해야 합니다.
근로자의 날 치사 中 (1971.3.10.)[41]
이제 우리는 절망 속에서 희망을 되찾았고, 체념 속에서 의욕을 일깨웠으며, 불안 속에서 자신을 얻었습니다. 우리의 이 희망, 이 의욕, 그리고 이 자신이야말로 민족의 생동하는 정신자원인 것이며, 바로 여기에 조국의 앞날을 밝히는 빛이 있고, 길이 있는 것입니다.
제7대 대통령후보 지명수락연설 中 (1971.3.17.)
누구나가 불가능하다고 체념해 버렸던 그 어려운 일들을 우리는 스스로의 힘으로 거뜬히 성취시켰고, “하면 된다.”는 인간의지의 승리를 역사 앞에 실증했습니다. 10년 성장의 힘겨운 과정에서 우리는 드디어 잠자던 민족의 얼을 일깨우고, 묻혔던 민족의 저력을 개발한 것입니다. 유구한 반만년 역사를 통틀어 이처럼 희망과 의욕과 자신과 긍지와 생명력이 생동한 때가 과연 몇 번이나 있었습니까?
제7대 대통령후보 지명수락연설 中 (1971.3.17.)
우리 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하여 적어도 1세기라는 시간을 잃었습니다. 이제 더 잃을 시간의 여유가 없습니다. 남이 한 가지 일을 할 때 우리는 열 가지 일을 해야 하겠고 남이 쉴 때 우리는 행동하고 실천해야 하겠습니다.
지방 장관회의 유시 中 (1971.7.30.)
우리는 우리를 해치지 않는 자에 대해서는 언제나 이들을 우리의 친구로 맞아들일 것입니다. 따라서 나는 앞으로 정치 체제나 이념에 구애됨이 없이 우리의 자주성을 존중하고, 우리에게 적대 행위를 하지 않는 나라들과는 가능한 모든 분야에 있어서 상호 유대와 협력 관계를 촉진할 것입니다.
제26주년 광복절 경축사 中 (1971.8.15.)
우리에게는 많은 문화유산이 있습니다만, 우리의 글인 한글이야말로 민족 문화의 큰 분수령을 이루는 찬연한 위업이요, 자랑이라 아니 할 수 없습니다.
제525주년 한글날 담화문 中 (1971.10.9.)
북한 위정자들이 우리와 핏줄이 같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술을 마실 때에도 상대방이 공산당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라.
남북적십자 본회담 시 지침 (1972.8.)
우리는 비록 남북으로 갈라져 있다 해도 같은 말, 같은 역사, 그리고 하나의 피로 이어져 온 운명공동체입니다. 이데올로기는 변해도 민족은 영원합니다.
제27주년 광복절 경축사 中 (1972.8.15.)
우리는 자유 민주 체제보다 더 훌륭한 제도를 아직 갖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훌륭한 제도라 하더라도 이를 지킬 수 있는 능력이 없을 때에는 이 민주 제도처럼 취약한 제도도 또한 없는 것입니다.
10·17 대통령특별선언 中 (1972.10.17.)
이와 같이 우리가 경제 개발과 국력 배양을 열심히 밀고 나가는 데 그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이냐, 결론은 국민들의 복지 향상, 우리 모든 국민들에게 더욱 살기 좋은 복지 국가를 만들어 주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정부는 앞으로 지금까지 설명한 이러한 여러 가지 사업을 통해서 도시나 농촌에 많은 일터를 마련해 주고, 국민들은 또 그 일터에 나와서 열심히 일만 한다면, 안정된 생활이 보장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되겠다, 이것이 우리가 지금 당장 해야 될 사회 복지 정책입니다. 일을 하고 싶어도 일 자리가 없다, 일을 해도 그거 가지고는 생활이 안정되지 않는다, 이것을 가지고는 아직 복지 운운할 형편이 안 됩니다.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 주고 열심히 일만 하면 생활이 안정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국민 복지 정책의 시초에 해야 할 일이고, 또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1973년 연두 기자회견 中 (1973.1.12.)
국민의 과학화란 무엇이냐, 우리는 과학하면 흔히들 연구실과 정밀한 고급 기기만을 연상하게 됩니다만, 여기서 말하는 과학화는 반드시 그것만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사고 방식과 생활 습성을 과학화해서, 비록 간단하고 초보적인 과학지식이라 할지라도 이것을 새마을 운동과 식목, 조립 사업에 유용하게 활용할 줄 아는 그러한 국민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어느 특정한 연구실에서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각계 각층이 모두가 자기의 직종에서 생산과 직결되고 국력 배양과 직결되는 과학 기술의 생활화를 말하는 것입니다.
전국민의 과학화를 위한 전국 교육자대회 치사 中 (1973.3.23.)
장병 여러분! 민족의 생존권은 절대불가침의 천부적 권리입니다. 그러나 이 권리는 결코 남이 지켜주는 것이 아니며, 또한 지켜 줄 수도 없는 것입니다. (중략) 자주-자조-협동의 정신이 바로 집단안전보장의 기본이 된다는 것을 아울러 강조해 두는 바입니다.
제25주년 국군의 날 유시 中 (1973.10.1.)
평화라는 것은 무슨 협정이다, 조약이다 하여 종이 한 장에 서명을 했다고 해서 보장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문제는 평화를 지키겠다고 하는 의지, 서로 전쟁을 하지 않겠다는 의사가 명백히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 의사만 분명히 있다면 협정이 없더라도 전쟁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과거에 북한 공산주의자들이 휴전 협정을 얼마나 충실히 이행을 했느냐 하는 것을 반문하고 싶습니다. 휴전 후 지난 20여 년 동안 우리가 알기에는 북한 공산주의자들은 1만 3천여 번이나 휴전 협정을 위반했습니다. 그러면 협정에 그러한 조문이 없어서 위반을 했느냐 하면 그것이 아닙니다.
1974년 연두 기자회견 中 (1974.1.18.)
생애에 있어서 사랑하는 내자를 여의는 것처럼 더없이 가슴 아프고 슬픈 일은 없을 것입니다. 이처럼 슬픔이 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본인은 국민 여러분이 보내 주신 애끓는 애도와 정중한 조의에 보답하는 길은, 대통령의 직책인 국가 보위와 국민의 자유, 복리 증진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 믿고, 이 땅에서 폭력과 빈곤을 몰아내고, 사랑과 희망이 가득찬 행복한 생활을 우리 모두가 골고루 누릴 수 있도록 성실히 노력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조국의 평화 통일과 민족 중흥에 헌신할 것을 이 기회에 국민 여러분에게 다시 한 번 굳게 다짐하는 바입니다.
고 육영수 여사 국민장 엄수에 즈음한 특별 담화문 中 (1974.8.20.)
새해 시정의 중점은 대략 세 가지로 나누어서 말씀을 드릴 수 있겠습니다. 첫째는 국가 안전 보장을 보다 더 튼튼히 해야 하겠다 하는 것입니다. 대통령이 맡고 있는 여러 가지 책임 중에 가장 최우선하는 것이 국가 안보에 대한 책임입니다. 여하한 도전이 있더래도 국가와 민족의 생존권을 위협받지 않도록 튼튼한 총력 안보 태세를 다짐하여야 하겠다 하는 것이고 둘째는 역시 경제 문제입니다. 아무리 세계 경제가 불황으로써 허덕이더래도 우리 국민 경제의 안정 기조가 크게 흔들리지 않도록 또 위협을 받지 않도록 위협을 받더래도 가급적이면 덜 받도록 만반의 대책을 세워나가야 하겠다 하는 것이고 셋째는 이러한 어려운 난국을 극복해나가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뭐겠냐, 이것은 역시 국민과 정부가 일치단결해서 단결된 힘으로 밀고 나가야 하겠다. 그것을 위해서는 역시 사회 기강을 바로잡고 총화 단결을 이룩하는 데 우리가 보다 더 힘을 써야 하겠고 이것을 위해서 정부가 또 앞장을 서야 하겠다. 이 세 가지 문제를 금년의 시정의 중점으로 들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요즈음 또 정부에 대해서 반대하는 사람들은 흔히 이런 소리를 하면, 또 무슨 궤변을 들고 나오느냐 하면서, 미국이 어떠니 서구가 어떠니 해서 그곳과 우리하고 대조해 가지고 얘기를 합니다. 물론 미국 국민들이 또는 선진민주주의 국가의 국민들이 우리 국민들보다도 더 많은 자유를 누리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것은 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도 빨리 나라가 성장을 하고 부강해지고 또 한반도에서 이러한 전쟁의 위협이 없어져서, 우리도 남과 같은 그런 자유와 번영을 누릴 수 있는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우리 모두가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 시점에 있어서 우리 한국 국민이 미국 국민들이 누리는 것과 같은 그런 자유를 향유하겠다는 것은 무리한 소리가 아니냐 이거예요. 미국하고 우리하고 사정이 다르고, 구라파하고 우리하고도 사정이 다릅니다.
그 다음에 인권에 대한 얘기가 많이 나오는데, 우리 정부가 인권 침해를 많이 했다고 하는데, 작년 4월에 있었던 소위 『민청 학련 사건』이라는 것이 있었지요. 여기의 주모자들 130여 명을 지금 구속하고 재판에 회부하고 있는데, 이것을 가지고 그 가족들이나 그 동료들, 또 이 사람들을 구출하겠다는 일부 인사들은 "그 사람들은 아무 죄도 없는 사람들인데, 정부가 그냥 막 잡아다가 고문을 해서 군법 회의에다 돌려 가지고 비밀 재판을 해서 지금 징역을 보내고 있다." 이렇게 악선전을 하고 있습니다. (중략) 소위 『민청 학련 사건』이라는 것은 무엇이냐, 그 주모자들은 폭력으로써 현정부를 전복하려는 내란 음모를 했기 때문에 구속해서 재판에 회부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현행 헌법은 고쳐서는 안 되겠다, 유신 헌법을 철폐하고 옛날 헌법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은 솔직이 말하면 나라 망하는 길이다, 나는 이렇게 단언하여 얘기하고 싶습니다.
1975년 연두 기자회견 中 (1975.1.14.)
이번 인도지나 반도의 사태는 우리에게 더없이 귀중한 여러 가지 교훈을 가져다주고 있습니다. 즉 첫째, 우리가 교훈으로 삼아야 될 하나는 공산주의자들과 무슨 평화 협정이다, 조약이다, 또는 긴장 완화다, 화해다 운운하는 이러한, 그들과의 이러한 그 거래라는 것은 그들과 우리와의 힘의 균형이 유지되고 있을 때, 만! 이것이 가능한 것이다 하는 것입니다. (중략) 그 다음에 두 번째 우리의 교훈으로 삼아야 할 일은, 자기 나라의 국가 안보를 남에게 의존하던 그러한 시대는 벌써 갔다, 하는 얘기입니다. 이것도 우리가 확실히 명심을 해야 될 줄 압니다. (중략) 다음에 세 번째 우리가 또 교훈으로 삼아야 될 일은 우리에게는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즉 국론이 분열이 되고, 국론이 통일이 되지 않고 분열이 되고 국내가 혼란에 빠져 있을 때에는, 일단 유사시에 있어서는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힘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다 하는 사실입니다.
국가 안보와 시국에 관한 특별 담화 中 (1975.4.29.) # 대한뉴스에서 박정희의 국장 소식을 보도할 때도 인용되었다.
정부는 앞으로 우리 실정에 알맞게끔 성장을 위축시키지 않는 그런 범위 내에서 연차적으로 특히 저소득층에 속하는 국민들에게 우선적으로 혜택이 돌아갈 수 있는 그런 분야부터, 이 정책을 추진해나갈 그런 생각입니다.#
우리는 중국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긴 했지마는, 중국 문화와 한국 문화는 엄연히 구별되고, 우리 문화는 중국 문화와는 엄연히 다른 독창성을 가지고 있는 문화라고 자부합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민족 문화의 재발견이라는 이야기가 자주 나옵니다. 이것은 우리 문화의 자주성과 독창성이 점차 퇴색해 가는 데 대한 하나의 경종이라고 나는 봅니다. 이것은 결코 우리가 외래 문화를 무조건 배격하자는, 배타성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외래 문화를 무조건 배격하는 것은 우리 문화 자체의 활달성이 없어지고, 우리 문화가 옹졸해지고, 발전성이 없어진다고 봅니다.
4차 5개년 계획 목표 중의 세 번째는, 사회 개발에 주력하겠다는 것입니다. 경제 정책의 궁극적인 목적은 국민 생활의 균형 있는 발전과 향상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모든 국민들이 고루고루 잘 사는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 경제 정책의 궁극적인 목적인 것입니다. 정부는 그간 축적된 국력을 바탕으로 앞으로도 지속적인 성장을 추구하는 한편, 사회 개발 정책도 적극적으로 추진해 나갈 계획입니다.
근로자의 사기를 양양시켜 주어야만 그 회사의 능률이 올라간다고 우리는 확신합니다. 근로자들의 근로 조건, 도는 환경 개선, 처우 개선 등에 들어가는 돈이 결코 기업으로서는 손해라고 생각하지 말고, 그로 말미암아 거기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의 사기가 양양되어서, 보다 더 능률이 올라가면 회사가 그 만큼 더 발전한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 동안 정부가 추진한 서정 쇄신 운동은 많은 성과를 올린 것도 사실입니다. 또, 공무원들의 기강이 많이 바로 서고, 또 국민들도 여기에 대해서 많은 호응을 해 주셨고, 따라서 국민들의 공무원에 대한 신뢰도도 전보다는 많이 높아졌다고 봅니다. 그러나, 이 정도를 가지고서는 대단히 미흡하여 아직도 구석구석에 쇄신을 하고 뿌리를 뽑아야 할 분야가 많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어떤 분야는 일시적으로는 한때 좋아졌다가 또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서 다시 옛날 상태로 되돌아가는 경향도 없지 않은 것 같습니다. 따라서, 정부는 앞으로 우리 공무원 사회의 소위 부조리라는 것이 완전히 없어질 때까지 계속 강력히 추진해 나갈 생각입니다. 이것이 결코 일시적인 것이 아닙니다. 완전히 없어질 때가지 그리고 공무원이 부정을 하고는 절대로 배겨내지 못한다, 언제인가는 이것이 탄로가 되어서 법의 제재를 받게 된다, 그러한 인식이 철저히 몸에 밸 때까지 계속 강력히 추진해 나가겠다는 것을 오늘 이 자리에서 확실히 밝혀둡니다. 그 대신, 정직하고 성실하고 유능한 공무원은 그들의 신분을 철저히 보장해주고, 또 처우를 개선해 하가는 데 정부는 최대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는 것을 아울러 약속 드립니다. 서정 쇄신이나 사회의 부조리 제거라는 것이 결코 공무원만 잘 된다고 해서 다 되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정부가 이것을 특별히 강조하는 것은, 우리 공무원 사회부터 먼저 기강을 바로 잡아서 모범을 보이고 솔선수범을 하자는 데 그 의의가 있는 것이다, 모든 국민들이 다 같이 협조하고 호응해야만 부조리가 없어지고, 밝고 명랑하고 건전한 사회가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것을 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분야에서 노력하고 있지만, 내가 항상 강조하는 바와 같이, 이 운동의 가장 좋은 성과를 가져오는 방법은 역시 사회 지도층에 속하는 국민들이 먼저 솔선수범해 주면, 일반 국민들도 자연히 따라 갈 것이라는 점입니다. 지위가 높은 자리에 있는 국민들, 재산이 없는 사람보다도 재산이 많은 부유층에 속하는 국민들, 또 교육을 적게 받은 사람보다는 지식이 많은 분들이 앞장 서서 먼저 실천을 해 나가면, 일반 국민들의 모범이 되어서 빠른 시일 내에 시정되리라고 믿습니다.
사람이 출세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노력해서 출세하겠다는 그런 욕심이 없으면, 그 사회는 발전도 없을 것입니다. 출세를 하되, 자기가 노력하고 능력을 쌓아서 그 능력으로 출세하라는 이야기입니다. 정직하고, 성실하고, 능력 있는 사람이 많은 보수를 받고 출세를 먼저 하는 그런 세상을 만들어 보자는 것이, 우리들이 원하는 이상적인 사회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돈이 좋다 하더라도 인간이 더 소중하다는 그러한 가치관이 똑바로 서 있는 사회를 만들어 보자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우리들의 노력을 정신 문화의 계발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1977년 연두 기자회견 中 (1977.1.12.)
나는 물론 인간인 이상 나라를 다스리는 데 시행착오가 없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당대의 인기를 얻기 위해서 일하지 않았고, 후세 사가(史家)들이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를 항상 염두에 두고 일해 왔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우리도 다른 나라 부럽지 않게 떳떳이 잘 살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난 일이 없다.
기자들과의 환담 中 (1977년 봄)
기업인은 국가와 사회의 발전에 이바지하는 공기(公器)가 바로 기업임을 명심하고 기업 활동에서 얻은 이윤은 다시 국가 발전에 되돌린다는 투철한 기업 윤리를 생활 신조로 삼아야 하며 종업원의 처우 개선과 복지 향상에 더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나가야 할 것입니다.
100억 불 수출의 날 치사 中 (1977.12.22)
큰 부대를 지휘하는 지휘관들은 앞으로 예상되는 정세 판단을 위해서 백 가지중에 아흔 아홉 가지는 다 되어 있고 한 가지는 좀 불비하더라도 그것을 절대로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며, 또 그런 경우에는 어떻게 대처한다고 하는 완전한 대비책을 마련해 놓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99퍼센트가 되어 있으니까 1퍼센트 정도는 무시해도 괜찮다고 하는 그런 안보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향토 예비군을 줄이자든지 또는 없애자든지, 최근에 민방위대가 생겼는데 이것도 없애거나, 연령을 낮추자는 말들이 자주 들리고, 또 군에 가서 복무하는 병사들의 복무연한도 단축시켜야 되느니 하는 말들을 하는데, 국가안보나 국방문제에 있어서는 대단히 신중을 기해야 하는 것입니다.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는 그러한 발언은 위험 천만합니다.
정신 계발 문제는 법이나 규정이나 단속만으로써는 안 됩니다. 법과 규정과 단속으로 어느 정도까지는 시정이 될는지 모르지만 한계가 있는 것이고, 근본적으로는 인간의 정신을 뜯어 고쳐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결국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들 생활 태도에 대해서 다시 반성하고 각성하고 우리들 마음 속에 정신 혁명을 일으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의 병폐가 무엇이라는 것은 모두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시정 안되는 것은 알고도 실천을 잘 못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 나라의 주인이다’고 하는 것과 ‘나는 주인도 아니고, 잘 되면 여기에서 살고 시원찮으면 어디 해외에 이민이라도 가자’하는 사람과는 근본적으로 국가에 대한 관념이 다를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자주 정신이 없는 사람이라고 봅니다.
우리가 경제 건설을 하고 산업화다, 공업화다 하는 것도 결국은 우리 인간이 보다 더 행복하게 잘 살자고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인데 물질적으로는 풍요해졌으나 정신적으로는 오히려 더 빈곤해졌다고 한다면 이것은 행복한 삶이 아니라고 봅니다. 진정한 의미에 있어서 행복한 사회가 아니라고 봅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느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말을 합니다마는 역시 인간이 물질의 노예가 되고, 물질에 대한 유혹을 뿌리치지 못함으로써 인간의 존엄성을 점점 더 망각해가는 소치가 아니겠느냐고 보는 사람이 많은 것 같습니다.
요즈음 거리에 나가니까 아주 재미있는 표어가 붙어 있더군요, ‘사람은 자연 보호, 자연은 사람 보호’ 참 재미있고 적절한 표현이라고 봅니다. 사람이 자연을 잘 보호하면 자연도 사람을 잘 보호해 줍니다. 그러나, 사람이 자연을 함부로 파괴하고 훼손하면 자연은 인간에 대해서 무서운 보복을 하는 것입니다.
1978년 연두 기자회견 中(1978.1.18.)
금년도의 우리 정부의 시정 방침을 다음과 같이 정하고자 합니다. 첫째는 완전 자립 경제의 달성입니다. 둘째는 자주 국방 태세의 확립입니다. 셋째는 사회 개발 정책의 확충입니다. 마지막으로 넷째는 정신 문화의 계발입니다.#
나는 오늘 이 자리를 빌어서 북한 측에 대해서 다시 한번 다음과 같은 제의를 하나 하고자 합니다. 나는 어떠한 시기나 또는 어떠한 장소에든 또는 어떠한 수준에서든 남북한 당국이 서로 만나서 아무런 전제조건도 없이 허심탄회하게 어떻게 하면 한반도에서의 동족상잔을 막고 오천만 민족의 번영을 이룩할 수 있는가, 그리고 또 어떻게 하면 평화적으로 통일을 이룩할 수 있는가 하는 제반 문제, 다시 말해서 그동안 남북한이 제시해온 모든 분야의 문제들을 직접 논의하는 데 있어서 대화를 가질 것을 촉구하는 바입니다. 북한 당국은 나의 이 제의를 민족적 염원에 부응하여 수락할 것을 기대하는 바입니다.#
개인의 자유가 어느 정도 제한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국가의 안위와 민족의 생존이 더 우선해야 됩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국가를 위해서 대단히 위해롭습니다.[42]
오늘날 국가 경영에 있어서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역시 복지 사회 구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국민 모두가 자기의 창의와 노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그런 뒷받침이 되고, 또 노력하고 일하면 정당한 대가가 지불되는 그런 사회, 그렇게 해서 국민 각 계층간에 잘 살고 못 사는 빈부의 차가 크지 않고 골고루 잘 사는 그런 사회가 우리가 말하는 소위 복지 사회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지금 우리가 당면한 목표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근로자들 중의 일부 저임금을 어떻게 하든지 빨리 일소해야 하겠다는 것이며, 또 하나는 사회 계층 간에 소득의 격차가 많은데 가급적 격차를 줄이고 해소하는 것인데, 이 두 가지 시책에 정부는 앞으로 주력하겠습니다. (중략) 그러나 경제 개발을 어느 정도 해서 어느 단계까지 가면 소득이 상당히 늘은 사람과 구태 의연하게 늘지 않은 사람과의 차이가 점점 생겨서 소득 격차에 대한 불평 불만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성장이 더 잘 되고 경제 개발이 성숙 단계에 들어가면 중산층이 많이 생겨서 차이가 거의 없습니다. 소득 격차가 점차 해소되어 갑니다. 또 그 때 가면 노동력이 부족하니까 급여 수준도 자꾸 올라가고, 또 사회 보장 제도도 확충이 되어 가니까 소득 격차라는 것은 아주 줄거나 거의 없게 됩니다.
1979년 연두 기자회견 中 (1979.1.19.)

상당수 출처-대통령기록관 연설기록

11.1. 제5대 대통령 취임사

단군 성조가 천혜의 이 강토 위에 국기를 닦으신 지 반만년, 연면히 이어 온 역사와 전통 위에, 이제 새 공화국을 바로 세우면서, 나는 국헌을 준수하고, 나의 신명을 조국과 민족 앞에 바칠 것을 맹세하면서, 겨레가 쌓은 이 성단에 서게 되었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삼천만 동포들이여!

나는 오늘 영예로운 제3공화국의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이 중한 시기에 나를 대통령으로 선출해 주신 국민 여러분에게 감사드리며, 보람있는 이 날의 조국을 보전하기에 생명을 바치신 순국선열과 공산침략에서 나라를 지켜 온 충용스러운 전몰장병 그리고 독재에 항거하여 민주주의를 수호한 영웅적인 사월혁명의 영령 앞에 나의 이 모든 영광을 돌리고자 합니다.

한편 나는 국내외로 매우 중요한 이 시기에 대통령의 중책을 맡게 됨에, 그 사명과 책무가 한없이 무거움을 깊이 통감하고, 자주와 자립과 번영의 내일로 향하는 민족의 우렁찬 전진의 대오 앞에 겨레의 충성스러운 공복이 될 것을 굳게 다짐하는 바입니다.

아시아의 동녘에 금수강산이라 불리우는 한반도에, 선조의 거룩한 창국의 뜻을 받아, 찬란한 문화로 자라난 배달의 겨레가 5천년의 역사를 지켜 온 이 땅이 우리들의 조국입니다.

한 핏줄기 이 민족의 가슴속에 붉은 피 용솟음 치는 분발의 고동과 약진은 결코 멈추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반세기의 고된 역정은 밞았으되, 일본제국주의에 항쟁한 3.1독립정신은 조국의 광복을 쟁취하였고, 투철한 반공의식은 6.25동란에서 공산 침략을 분쇄하여 강토를 보위하였으며, 열화 같은 민주적 신념은 4월혁명에서 독재를 물리쳐, 민주주의를 수호하였고, 이어 5월 혁명으로 부패와 부정을 배격함으로써 민족정기를 되찾아, 오늘 여기에 우람한 새 공화국을 건설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당면한 현실은, 결코 목적지 도달의 안도가 아니며, 준험한 노정에의 새 출발인 것입니다.

4월 혁명으로부터 비롯되어, 5월 혁명을 거쳐 발전된 1960년대 우리 세대의 한국이 겪어야만 할 역사적 필연의 과제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분야에 걸쳐 조국의 근대화를 촉성하는 것이며, 이를 위하여 우리는 조성된 계기를 일실함이 없이 성공적으로 이 과업을 성취시키는 데 범국민적인 노력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제 여기에 3.1정신을 받들어 4.19와 5.16의 혁명이념을 계승하고 당위적으로 제기된 바 민족적인 제과제를 수행할 것을 목표로 나는 오늘 이 뜻깊은 자리를 빌어, 일대 혁신운동을 제창하는 바이며, 아울러 이에 범국민적 혁명 대열에의 적극적 호응과 열성적인 참여 있기를 호소하는 바입니다.

인간 사회에는 피땀 어린 노력의 지불 없는 진보와 번영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격동하는 시대, 전환의 시점에 서서, 치욕과 후진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오늘의 세대에 생존하는 우리들의, 생명을 건 희생적 노력을 다하지 않는 한, 내 조국, 내 민족의 역사를 뒤덮은 퇴영의 먹구름은 영원히 걷히지 않을 것입니다.

정치적 자주와 경제적 자립, 사회적 융화 안정을 목표로 대혁신 운동을 추진함에 있어서 우리는 먼저 개개인의 정신적 혁명을 전개하여야 하겠습니다.

국민은 한 개인으로부터 자주적 주체의식을 함양하며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한다는 자립, 자조의 정신을 확고히 하고, 이 땅의 민주와 번영, 복지사회를 건설하기에 민족적 주체성과 국민의 자발적 적극 참여의 의식 그리고 강인한 노력의 정신적 자세를 바로 잡아야 하겠습니다.

불의와의 타협을 배격하며, 부정부패의 소인을 국민 스스로가 절개 청산해야 하겠습니다. 탁월한 지도자의 정치역량이나 그의 유능한 정부라 할지라도 국민대중의 전진적 의욕과 건설적 협조없이는 국가 사회의 안정도 진보도 기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의 시점에서, 우리들의 최대의 적은 선거과정에서의 상대 정적이나 대립 정당도 아니며, 바로 비협조와 파쟁으로 인한 정치적 사회적 불안정 그 자체인 것입니다.

나는 여기에 대혁신 운동의 정치적 목표의 일환으로 정치적 정화운동을 통한 새로운 차원의 정치활동 양상을 시현하고 국가공동 목적을 위한 협조의 전통을 세워나가고자 합니다.

우리는 오늘 여기서 중단도 후퇴도 지체의 여유도 없습니다. 방관과 안일, 요행과 기적을 바라며 공론과 파쟁으로 끝끝내 국가를 쇠잔케 한 곤욕의 과거를 되풀이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민주주의 정치제도 운용의 역사가 얕다거나, 시행착오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막중한 부담과 희생을 지불한 우리들이기에, 여기에 또다시 강력정치를 빙자한 독재의 등장도, 민주주의를 도용한 무능, 부패의 재현도 단연 용납될 수 없는 것입니다.

여하한 이유로써도 성서를 읽는다는 명목 아래 촛불을 훔치는 행위가 정당화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새 공화국의 대통령으로서 나는 국민 앞에 군림하여, 지배하려함이 아니요, 겨레의 충복으로 봉사하려는 것입니다.

시달리고 피곤에 지쳐 가는 동포를 일깨워 용기를 돋우며, 정의 깊은 대중의 벗으로 격려와 의논과 설득으로 분열과 낙오 없는 대오의 향도가 되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국민이 지워 준 멍에를 성실히 메고 이끌어, 고난의 가시밭을 헤쳐, 새 공화국의 진로를 개척해 나갈 것입니다.

오늘날의 민주주의는 선거에서 패배한 소수자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또 그를 보호하는데 더욱 의의가 있는 것입니다. 선거에서 승리한 집권당이 평면적 종다수 의결방식을 근거로 만능, 우월 의식에서 독선과 횡포를 자행하며, 소수의 의사를 유린할 때, 이 나라 민주주의 전도에는 또 다른 비극의 씨가 배래될 것입니다. 또 일방진부한 관록이나 허망한 권위 의식에서, 대국을 망각한 소아병적 도발로 정쟁을 벌이고, 정국을 어지럽히며, 사회를 혼란시킨다면, 이 나라는 또 다시 역사의 뒤로 후퇴하는 슬픈 결말을 초래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자제와 책임을 수반하는 민주적 정치질서를 확립해 가면서, 대중의 이익에 벗어나는 시책이나, 투명치 못한 정치적 처사에 대하여는 정당한 비판과 당당히 반대할 수 있는 자유가 최대한 보장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본인과 새 정부는 정치적 행동방식에 있어서, 보다 높은 윤리규범을 정립하여, 극렬한 중압감과 극단적 대립의식을 불식하고, 여야의 협조를 통해 의정의 질서와 헌정의 상궤를 바로잡을 것이며, 유혈보복으로 점철된 역사적 악유산을 청산하고, 평화적 정권 교체를 위한 복수정당의 발랄한 경쟁과 신사적 정책 대결의 정치 풍토 조성에 선도적 역할을 다할 것입니다.

이 세기의 초로부터 시작된 험난한 역정과 살벌한 시류 일제에의 병탄과 40년의 식민지 통치, 종전과 더불어 밀려 온 퇴폐한 외래풍조의 급격한 침투, 6.25전란과 혼돈, 궁핍 속에 두 차례의 혁명, 이 오욕된 반세기는 이 나라 사회의 전통적 미풍과 양속을 짓밟아 도의는 타락되고, 사상분열과 정치적 대립, 그리고 사치와 낭비, 허영과 안일, 반목과 질시 속에 사회는 만성적으로 불안하며 민심은 각박해지기만 했습니다. 이제 대혁신운동은 대중사회의 저변으로부터 사회적 청조운동의 새 물결을 이끌어 들여, 이 모든 오염과 악풍을 세척하고 선대가 평화 속에 이루었던 전원적 향토를 되찾아 선린과 융화의 새 사회 건설을 촉진시킬 것입니다. 그리하여 신의와 ´건전한 상식´이 지배하며, 노력과 대가가 상동하는 형평의 사회, 성실한 근로만이 영예롭게 살 수 있는 사회를 이룩할 것입니다.

민주정치는 몇 사람의 지도자나 특수계층의 교양에 의해 가능한 것이 아니라 개인의 자각과 책임, 그리고 상호의 타협과 관용을 통한 사회적 안정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국민은 질서 속에 살며, 정부로부터의 시혜를 기대하기에 앞서 스스로의 의무를 다하며 때늦은 후회이전에 현명하고 용감하게 권리의 자위를 도모하기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또한 대국적 안목과 이성적 통제로서 ´초가삼간의 소실´을 초래하는 우를 범하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질서와 번영 있는 사회의 영광된 새 공화국건설의 기치를 높이 들고, 다시는 퇴영과 빈곤이 없는 내일의 조국을 기약하면서, 나는 오늘 사랑하는 동포 앞에 다시 한번 ´민족의 단합´을 호소하는 바입니다. 지금 우리는 조국의 근대화라는 막중한 과업을 잎에 두고, 불화와 정장과 분열로 정대와 쇠잔을 되풀이할 것인가, 아니면 친화와 협조와 단합으로 민족적인 공동의 광장에서 새로 대아를 정비할 것인가의 기로에 선 것입니다. 또한 한 핏줄기의 겨레, 우리는 이미 운명을 함께 한 ´같은 배´에 탄 것입니다. 파쟁과 혼란으로 표류와 난파를 초래하는 것도, 협조와 용기로써 희망의 피안에 닻을 내리는 것도 오로지 유리들 스스로의 결의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동포 여러분의 현명한 결단과 용맹을 촉구하는 바입니다.

친애하는 애국 동포 여러분!

오늘 역사적인 새 공화국 탄생의 성전에 임해, 이 날의 환희를 함께 하지 못하며, 자칫 우리의 자리에서 소원해 가기 쉬운 북한 1천만 동포의 노예 상태에 대해, 이 땅에 자유를 향유하는 우리들의 경각을 높이고자 합니다.

본인과 새 정부는 안으로는 조속히 견실한 경제, 사회적 도태를 이룩하고, 현군사력의 유지와 발전을 포함한 단합된 민족의 힘을 결속할 것이며, 밖으로는 유엔과 자유우방, 그리고 전 세계자유애호 인민들과의 유대를 공공히 하여 여하한 상황과 조건 하에서도 공산주의에 대항, 승리할 수 있는 민주적 역량과 민족진영의 내실을 기하여 우리의 숙원인 민족통일의 길로 매진할 것입니다.

나는 이 자리에서 우리가 당면한 현실적인 제 문제를 일일이 논급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러나 경제 문제를 비롯한 난국타개의 숙제는, 이미 공약을 통해 자청한 바 있으며, 신정부는 이를 위하여 능률적 태세로써 문제 해결에 임할 것입니다.

시급한 민생문제의 해결, 그리고 민족자립의 지표가 될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합리적 추진은 중대한 국가적 과제로서 여야협조와 정부 국민간의 일치 단합된 노력으로써 그 성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세운 목표를 향하여 인내와 자중으로 성실하고 근면하게 살아 나가는 근로정신의 소박한 생활인으로 돌아가 항상 성급한 기대의 후면에는 허무한 낙망이 상접함을 명심하고, 착실한 성장을 꾀하는 경제국민의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제 여기에 우람한 새 공화국의 아침은 밝았습니다.

침체와 우울, 혼돈과 방황에서 우리 모든 국민은 결연히 벗어나 생각하는 국민, 일하는 국민, 협조하는 국민으로 재기합시다. 새로운 정신, 새로운 자세로써 희망에 찬 우리의 새 역사를 창조해나갑시다.

끝으로 하느님의 가호속에 탄생되는 새 공화국의 전도에 영광있기를 빌며, 이 식전에 참석하신 우방친우들에게 감사의 뜻할 표함과 아울러 동포 여러분의 건강과 행운 있기를 축원하는 바입니다.

감사합니다.
1963년 12월 17일 대한민국 대통령 박정희

11.2. 제6대 대통령 취임사

단군성조가 천혜의 이 강토 위에 국기를 닦으신 지 반만년, 연면히 이어 온 역사와 전통 위에, 이제 대한민국 제6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나는 국헌을 준수하고, 나의 신명을 조국과 민족 앞에 바칠 것을 맹세하며, 겨레가 쌓은 이 성단에 서게 되었습니다.

나는 나의 이번 임기에 속하는 앞으로의 4년간이 이 나라의 자주와 자립과 번영이 안착하는 대망의 70년대를 향한 중대한 시기임을 깊이 명심하고, 책임이 한없이 무거움을 통감하며, 일하는 대통령으로서 조국근대화 작업에 앞장서서, 충성스럽게 나라와 겨레를 위해 봉사할 것을 굳게 다짐하는 바입니다.

친애하는 국내외 동포여러분!

우리 대한민국은 탄생한 지 얼마 안되는 신흥국가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역사는 수없이 많았던 외세의 침략을 전 국민적인 항쟁으로 격퇴한 억센 민족이며, 인내와 끈기로 고난을 이겨낸 생명력과 창조력을 지닌 민족임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백년전의 쇄국과 고립이 백년의 고난과 정체를 가져오기는 하였습니다만, 이제 한국은 그 새로운 민족사를 개척하고 아시아에서뿐만 아니라, 세계에 있어서 중요한 공헌을 할 시기가 다가왔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아시아에 있어서 새 물결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것은 신생국이 예속과 정체를 박차고, 정치적 독립과 경제적 자립을 성공적으로 달성하는 본보기를 보이는 일이며, 민주주의가 공산주의보다 더욱 능률적인 경제 발전을 이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이는 일이며, 동서와 남북이 대립 속에서 그 중엄을 지양하고, 자유. 평화. 번영. 통일을 이룩하는 일이며, 한 마디로 자립에 눈뜬 한 민족의 각성은 진실로 큰 힘을 발휘하는 것이라는 위대한 실증을 70년대의 세계에 증언하기 위하여 모든 준비를 다하고 있습니다.

하루 속히 조국의 근대화를 완수하고, 자주. 자립의 통일 조국을 창건하는 역사적 대업을 착실하게 진행시키고 있습니다. 나는 우리의 대도시에서부터 벽촌. 낙도에 이르기까지, 민족 중흥의 양광이 정체와 의타의 검은 안개를 무찌르고 서서히 퍼져 나가, 자력전진에 의한 번영, 이른바 창조적인 자조의식이 움텄음을 응시하는 바입니다.

친애하는 동포 여러분!

오늘로 시작되는 국정의 새 출발을 위해서 우리는 먼저 냉철한 이성과 슬기로운 자각으로 돌아가, 과열된 6.8선거로 빚어진 정쟁분위기를 냉각시키고, 사리와 당리를 초월한 국가의 대의와 국리민복의 증진을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민족사상 참으로 획기적인 역사적 과업에 이미 착수했습니다.

균형있는 경제성장으로 아시아에 빛나는 공업국가를 만들기 위하여 우리는 위대한 전진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좋은 기회를 놓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우리는 현재 진행 중인 제2차 5개년계획을 추진하는 데 온 국민의 공동의 노력을 집중해야 하겠습니다. 정국의 안정은 경제발전의 대전제입니다.

6.8총선거가 유감스럽게도 입후보자들의 과열된 경합으로 그 분위기가 혼탁하게 되었고, 또 일부 지역에서 일어난 선거의 부정은 급기야 6.8총선 전체를 불명예스러운 것으로 인상주고 말았으니, 이것은 실로 우리 민주 시민의 큰 실망이라 아니 할 수 없습니다. 6.8선거가 주고 간 오늘의 실망의 여건 속에서, 우리가 찾아나가야 할 길은 자목과 자기와 자학이 아니라, 새로운 자신의 가능성을 찾아내는 냉정과 지혜와 금도의 길인 것입니다.

법을 어긴 자에게는 법으로 다스리고, 민주주의 과정에서 일어난 과오는 민주주의 방식에 의하여 시정함이 민주 사회에 있어서 최선의 방책임을 우리는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국민 여러분!

참신한 정치 풍토의 조성과 평화적 정권교체는 민주주의를 하겠다는 우리 온 국민의 한결같은 염원이 아니겠습니까? 이것은 또한 나의 변함없는 정치적 소신인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민주주의 과정에 다소의 오점이 찍혔다고 해서, 민주주의를 하겠다는 우리의 노력과 신념에 변동을 가져와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가 성급한 나머지 과오의 시정을 변칙수단에 호소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평화적 정권교체라는 우리의 염원 달성을 더욱 멀리하고야 마는 결과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시련에 부딪칠수록 더욱 확고히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을 가지고, 냉철한 이성과 지혜로써 민주주의 원칙을 신봉해 나가는 인내와 용기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나의 소원은 이 땅에서 가난을 몰아내고 통일조국을 건설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사회는 ´소박하고, 근면하고, 정직하고, 성실한 서민국가가 바탕이 된 자주독립의 민주사회´입니다. 우리의 적은 빈곤과 부정. 부패와 공산주의입니다.

나는 이것을 우리의 3대 공적으로 생각합니다.

빈곤은 생존을 부정할 뿐 아니라, 인간의 천부적인 개성을 억제하고, 정직과 성실과 창조력을 말살하는 것이며, 부정. 부패는 인간이 양심과 친화력을 마비 저해하는 것이며, 공산주의는 우리의 자유와 인권과 양심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정녕 이 3대 공적이야말로 우리 민족의 중흥을 위한 투쟁에 있어서, 근본적으로 배격해야 할 공적이라고 아니 할 수 없습니다.

정직하고, 근면하고, 소박하고, 성실한 국민 대중이 국가의 중추가 되고, 빈곤과 부패를 추방한 복지사회의 건설이라는 우리의 목표 달성을 위해서, 나는 우리들이 보다 더 근로와 실무에 밝고 충실하며, 우리 주변의 사소한 구석구석을 눈여겨 개선하고, 사회생활의 윤리와 질서를 존중할 것을 희구합니다.

남을 헐뜯기 전에 자신을 돌아보고, 자기의 주장만을 옳다기 전에 주위를 두루 살피는 여유와 긍지를 가지기를 희구합니다. 그리하여 법과 질서와 슬기와 이치가 지배하는 사회가 되기를 희구합니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나는 이러한 정의의 복지 사회가 지금 우리가 추진하고 있는 공업입국의 대도를 통하여 이루어질 수 있고, 또 공업입국은 이러한 사회를 건설하는 데 그 주안이 있음을 확신하는 바입니다.

경제건설 없이는 빈곤의 추방이란 없을 뿐 아니라, 경제건설 없이는 부정. 부패의 온상이 되는 실업과 무직을 추방할 수 없기 때문이며, 또 그것 없이는 공산주의에 대한 승리, 즉 자유의 힘이 넘쳐흘러 북한의 동포를 해방하고 통일을 이룩할 수 없는 것입니다.

공업입국에 관해서는 제2차 5개년 계획을 골간으로 농공병진정책과 대국토건설계획을 국민 앞에 공약으로 제시하고 이미 진행 과정에 있습니다만, 여기서 한 가지 분명히 해 둘 것은 경제 개발의 지렛대가 되는 것은 진정 농업 생산력의 증대에 있다는 나의 신념인 것입니다.

우리가 추진하는 조국의 근대화나 공업입국은 소위 비체계적인 공업편중정책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근대화는 합리적이고 균형있는 산업구조. 국토구조. 소득구조의 형성을 목표로 전근대적인 제반 터전 위에서 발전시키는 3위일체의 근대화 작업을 하자는 것입니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지금 우리나라에는 시급히 불식해야 할 전근대적 요소가 많으며, 극복해야 할 장애물도 허다합니다. 정치로부터 경제. 문화. 사회 전반에 걸쳐 말끔히 씻어야 할 비합리적 요소가 허다할 뿐 아니라. 또 계속해서 새로운 과제가 그 해결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난관극복의 길은 난관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들의 의지 속에 있는 것입니다. 불굴의 의지와 용기로써 조국의 근대화를 향해 위대한 전진의 발걸음을 재촉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기왕에도 몇 차례 분단의 비극을 극복하고 통일하고야 말았던 영용한 민족의 피를 이어 받고 있습니다. 그러한 조상을 가진 우리가 어찌 통일을 이룩하지 못하겠습니까?

협력하고 단합합시다!

통일을 향한 전진의 대열에는 너와 내가 있을 수 없고, 다만 우리가 있을 뿐입니다. 끝으로 사랑하는 동포 여러분의 영광과 행운을 빌고, 오늘 우리와 자리를 같이 하지 못하는 북한 동포들에게 하느님의 인용 있기를 빌며, 멀리 우리를 찾아 이 식전에 참여하신 우방의 친우들에게 감사드리는 바입니다.
1967년 7월 1일 대한민국 대통령 박정희

11.3. 제7대 대통령 취임사

사랑하는 5천만 국내외 동포 여러분! 그리고 내외 귀빈 여러분!

제2차 세계 대전의 포화가 멎은 지 어느덧 사반세기, 오늘 우리는 인류의 이상인 평화와 번영을 다짐하는 새 시대의 문턱에 섰습니다.

나는 이 시기야말로, 인류가 대화와 협조의 윤리를 존중하여 공존 공영하는 세계 평화의 새 질서 확립의 기회요, 아시아인에게는 아시아 고유의 전통을 바탕으로 다양 속의 조화를 이룩해야 할 교류와 협력의 시기이며, 우리 한국 국민에게는 조국 근대화의 굳건한 터전 위에서 국토 분단의 비극을 종식시켜야 할 통일의 연대가 되어야 하겠다고 생각합니다.

이 역사적인 새 시대의 출발점에서 조국과 인류 사회를 위해 이바지해야 할 사명이 참으로 크고 또한 무거움을 통감하면서, 나는 겨레의 공복으로서 주저보다는 용기를 앞세우고, 편안보다는 보람을 일깨워 맡은 바 대임완수에 심혈을 바칠 것을 역사와 민족 앞에 서약합니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세계의 모든 나라들이 발전을 위하여 몸부림쳤던 60년대에, 우리들은 5·16 혁명을 기폭으로 하여 오랜 의타와 침체의 묵은 껍질에서 벗어나 자립과 중흥의 반석 위에 새 한국의 기초를 다져 놓았고, 경제 건설의 토양 위에서만 민주주의의 꽃이 길이 피어날 수 있음을 체험을 통해 실증하였으며, 개발과 성장에 있어서도 민주체제가 공산체제보다 훨씬 능률적이라는 자유 이념의 승리를 기록하였습니다.

확실히 지난 60년대는 우리에게는 내부 성장에 치중한 내실기였다고 자부해도 좋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를 토대로 하여 평화 지향의 새로운 국제 조류에 능동적으로 뛰어 들어, 그 속에서 국가 목표 달성의 길을 모색하는 외향적 참여도 강화해야 할 시기에 들어섰다고 봅니다.

이른바 동서간의 해빙 기운이 점차 높아가는 가운데 미국과 중공의 화해 움직임이 싹트는 등, 최근 우리 주변에는 커다란 변화의 물결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나는 이 같은 변화가 우리 아시아에 감도는 침략의 먹구름을 몰아내고 평화의 열풍으로 발전되어 나가는 커다란 계기가 되어지기를 기원하면서, 분단된 조국을 평화로운 방법으로 하루속히 통일해야 하겠다는 굳은 결의를 다시 한 번 중외에 선언하는 바입니다.

그러나 국민 여러분! 나는 우리의 이와 같은 기원과 아량과 결의가 다만 일방적일 따름이며, 한반도를 뒤덮고 있는 긴장의 짙은 안개는 좀처럼 가실 줄 모르는 이 냉혹한 현실을 안타깝게 여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북괴는 우리의 평화 통일 제의를 묵살하고 있을 뿐 아니라, 심지어는 세계 도처에서 [인민 전쟁] 수출의 파괴적 역할까지 떠맡고 있으며, 바로 이 때문에 우리도 평화를 지향하는 희망적 판단과 행동을 부득이 유보하지 않을 수 없는 딱한 처지에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밖으로는 평화를 추구하고, 안으로는 자유 민주의 이념과 제도를 더욱 더 다져 나가는 기본입장을 견지하면서, 안보와 통일을 위한 노력을 과감하면서도 신중하게, 그리고 진취적이면서도 유연성 있게 한 걸음 한 걸음 착실하게 기울여 나가야 한다고 믿습니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우리 조상들이 일찍이 역사적 전환기를 맞아 이에 대처할 국력을 기르지 못한 탓으로, 뼈아픈 망국의 비애를 겪은 지 어언 한 세기가 되려 하고 있는 이 때, 우리는 또다시 세계사의 일대 변환기에 처하고 있습니다.

이 마당에서 우리는 우리의 운명이 오직 우리들 자신의 자주 역량여하에 따라 판가름될 것이라는 엄연한 역사의 법칙을 새로이 인식해야 하겠습니다.

만일, 이 시점에서 우리가 또다시 우리의 국력을 기르는 데 실패하고 만다면, 우리 세대와 우리 후손들은 영영 낙오자가 되고 만다는 것을 나는 단언합니다.

우리는 민족의 시련을 극복해야 합니다. 한 시각도 조국의 자유와 겨레의 번영을 위한 걸음을 멈출 수는 없습니다.

나는 통일과 중흥이 반드시 우리 시대에 이루어질 수 있다고 자신하며, 이를 성취하는 열쇠는 오로지 우리 자신의 힘, 즉 국력을 기르는데 있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따라서, 70년대 중엽을 통일 국력 확보의 시기로 내다보고 모든 분야에서 우리의 수준을 높이고 국력을 기르는데 나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바칠 것입니다.

제 3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은 민주 발전의 자양소요, 민주 사회의 성장은 통일 기지의 확보인 것입니다.

나는 앞으로 중화학 공업 시대의 막을 올리고, 한강변의 기적을 4대 강에 재현시킬 것이며, 수출 입국의 물결을 5대양에 일으키고, 농어촌을 근대화하여 우리나라를 곧 중진국 상위권에 올려놓고야 말 것입니다.

도시와 농촌의 발전을 균형화하고, 소득의 사대적 격차를 서서히, 그러나 착실하게 해소해 나갈 것이며, 특히 건설과 생산에 피땀어린 노고를 한 우리 농어민과 근로 역군들에게 충분한 보상이 돌아가도록 할 것입니다.

또한, 슬기로운 민족의 자질이 새로이 개발될 것을 확신하면서, 나는 선대의 빛나는 전통과 문화를 계승 발전시키고, 문예와 학술의 적극적인 창발로 문화 한국 중흥에 각별한 관심과 지원을 다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해를 거듭하면서 국민 생활이 보다 품위있고 더욱 윤택해질 때, 민주주의의 토양은 더욱 기름지고, 자율과 협동에 뿌리내린 개방 사회의 건실한 기풍은 우리에게 복지문화사회를 구현시킬 것으로 확신합니다.

한편, 나는 산업화와 민주화 초기 과정에 따르는 사회 일부의 부조리 현상을 새로운 결의로 시정해 나갈 것을 명백히 밝힙니다.

그 방법은 결코 일시적이며 전시적 편법이 아니라, 예방과 치유의 기본 방향에서, 제도적인 개선과 보완을 포함한 광범위한 개혁이 될 것입니다.

우리들은 남을 탓하는 그 시간에 나 자신의 허물을 고치는 자기 정화를 생각하고, 거짓과 부정을 배격하는 그 의분으로 사치와 낭비를 몰아내고, 근면과 검소, 정직과 성실의 기풍을 일으키는 사회혁신을 위하여 지도적 지위에 있는 사람들부터 말보다 실천을 앞세우는 조용한 정신혁명을 전개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가정과 직장과 사회를 연결하는 넓은 생활 영역에 걸쳐, 이러한 근대 시민의 생활이념을 일상화하는데 나 스스로 앞장설 것을 다짐하면서, 국민 여러분의 호응과 실천 있기를 호소합니다.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이제 우리는 경제 개발의 토대 위에서 국가 발전의 다음 단계에 대한 구상을 가다듬고, 그 전진 방향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서로 다짐할 때가 왔습니다.

나라 살림을 앉아서 구경하는 방관자가 되지 말고, 여기에 발벗고 뛰어들어 함께 걱정하고 서로 힘써 나가는 참여자의 긍지를 가지고, 주인의 책임과 사명을 다하는 데서 보람을 찾는 국민이 될 것을 당부합니다.

국민들의 절대적인 지지와 신임을 바탕으로 어려운 국정 운영에 나의 모든 것을 바쳐왔던 지난날을 돌이켜 보고 조국의 먼 앞날을 내다보면서, 나는 지금 이 순간 벅찬 감회 속에 조국을 향한 나의 간절한 소망을 다시 되새겨 봅니다.

가난한 농촌의 아들로 태어나 동족 상잔의 비극적인 시대에 살면서, 나는 자나깨나 이 땅에서 가난을 몰아내고 남북의 부모 형제가 얼싸안고 재회의 기쁨을 누릴 통일조국의 실현을 희구해 왔습니다.

5천만 우리 민족이 삼천리 금수강산 이 땅 위에서 자유와 번영과 평화의 기쁨을 누려보자는 나의 이 열망은 더욱 진하고 뜨거워짐을 절감합니다. 어찌 이것이 나 혼자만의 소망이겠습니까? 남녘에 살거나 북쪽에 살거나, 수륙 만리 이방에 살거나, 내 조국 내 민족을 사랑하는 우리 국민 누구나의 가슴속에 타오르고 있는 민족의 염원이 아니겠습니까? 우리 함께 단결하여 전진해 나갑시다.

이 소망, 이 염원이 우리들의 피땀어린 자주적 노력으로 활짝 피어나는 날, 그 날은 바로 위대한 한국의 횃불을 온 누리에 밝히는 민족 성전의 축제일이 될 것을 나는 확신합니다.
1971년 7월 1일 대한민국 대통령 박정희

11.4. 제8대 대통령 취임사

친애하는 5천만 동포 여러분! 그리고 내외 귀빈 여러분! 친애하는 5천만 동포 여러분! 그리고 내외 귀빈 여러분!

우리는 오늘 고난과 시련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고, 안정과 번영의 보람찬 새 역사를 기록해 나가야 할 엄숙하고도 뜻깊은 전환점에 섰습니다. 이 자리에 모인 우리들은 이 순간을 지켜보는 역사의 증인들입니다.

나는 지금부터 우리가 기록해야 할 역사는 활기찬 창조의 새 역사이어야 하며, 민족의 자주성에 입각한 영광의 역사이어야 한다고 굳게 믿는 바입니다.

이러한 민족사의 새로운 출발점에서 나는 국민 여러분의 절대적 지지 속에 민족통일과 번영의 대임을 맡은 제8대 대통령으로서 헌법이 부여한 책임과 의무를 성실히 이행할 것을 조국과 민족의 양심 앞에 엄숙히 맹세하였습니다.

나는 우리 조국의 안정과 평화, 통일과 번영에 대한 온 겨레의 염원 속에서 마련된 이 식전이, 나에게는 막중한 책임과 숭고한 사명의 십자가를 지게 하는 헌신의 제단이며, 우리 모두에게는 조국의 밝고 희망찬 내일을 위해 온 겨레의 뜻과 힘을 하나로 묶는 구국 유신의 대광장이라고 믿습니다.

친애하는 동포 여러분!

지난날 우리의 오천년 역사는 영예와 오욕으로 점철된 것이었으며, 특히 우리의 현대사는 수난과 비운의 연속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러나 5.16혁명을 기점으로 우리는 민족의 위대한 자아를 되찾기 위한 보람찬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온갖 시련과 도전을 이겨내면서, 국력배양에 일로 매진해왔습니다.

우리는 1,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통해서 공업 입국의 터전을 튼튼히 닦아 놓았으며, 이제 바야흐로 중화학 공업시대의 막을 열었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4대강 유역의 크고 작은 마을에선, 번영의 꿈을 이룩하려는 우렁찬 개발의 고동이 메아리치고 있습니다.

새마을 운동은 근면, 자조, 협동의 정신을 일깨우면서, 도시와 농촌간의 격차를 착실히 좁혀 나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새마을 정신은 새로운 정신혁명이 원동력이 되어, 전국에 요원의 불길처럼 타오르고 있으며, 우리의 정신문화와 정치제도는 이제 떳떳하게 그 국적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또한, 우리는 이십년 동안 단절되었던 남북간의 대화의 문을 열어,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달성할 수 있는 전망을 갖게 하였습니다.

이제 우리는 분단의 논리가 지배하던 냉전의 대결구조에서 벗어나, 서로 번영을 추구하는 평화와 조화의 구조로 전환하고 있습니다.

나는 지난 10년간의 우리 역사가 비단 고난과 역경만의 연속은 아니었으며, 오히려 시련을 극복하는 용기와 잘 살 수 있다는 자신을 안겨 준 보람찬 긍지의 기록이라고 자부하고자 합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남들이 수 백년 걸려서 이룩한 정신적 자아의 발전을 불과 10년이란 짧은 기간에 이룩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우리 민족의 위대한 저력을 실증한 것이며, 불굴용기로 새 역사를 창조해 나가는 무한의 가능성을 부여 준 것이라고 나는 확신합니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우리는 지금 우리가 되찾은 민족의 위대한 자아와 민주, 자립의 역량을 한 차원 더 높이 승화시켜, 이를 세계사의 진운 속에 드높이 발양해야 할 새 역사의 관문에 이르렀습니다.

나는 이 같은 일대 전환점에서 우리 민족이 나가야 할 길은 오직 하나, 그것은 국력배양의 가속화를 통해 번영된 통일 조국을 구현하는 것뿐이라는 것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전쟁 없는 평화 속에 5천만 동포가 다 함께 행복과 번영을 누리며,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하여, 민족의 영광을 드높이는 것이야말로, 오늘을 사는 우리 세대가 반드시 이룩해야 할 엄숙한 민족의 소명인 것입니다.

그러나,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은 결코 평탄한 대로만은 아닙니다. 우리 눈앞에는 국제권력정치의 거센 파도가 휘몰아치고 있으며, 그 속을 헤치며 나가야 할 통일과 번영의 길은 아직도 시련과 도전의 연속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용감하게 이 시련을 극복해야 합니다. 우리는 슬기롭게 이 도전을 이겨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나는 또다시 국민 여러분에게 촉구합니다. 우리는 앞으로 더 많은 땀과 더 많은 정열을 우리 조국에 바쳐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조국의 번영과 통일을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는 총화전진의 시대를 열어야 하겠습니다.

국민 여러분!!

동서를 막론하고 모든 국가가 시대와 환경에 따라 그들 나름대로 생존을 유지하고 번영을 누리기 위한 이념과 제도를 가져야만 했던 것은 역사발전의 엄연한 법칙입니다.

우리도 오늘의 현실에 대처하고 시대적 사명을 완수할 수 있는, 우리 자신의 생산적인 이념과 제도를 마땅히 가져야만 합니다.

그 이념이 바로 10월유신의 기본정신이며, 그 제도가 지금 유신적 대개혁을 통해 정립되고 있는 것입니다.

10월유신은 되찾은 우리 민족의 위대한 자아를 바탕으로 하여 안정과 번영, 그리고 통일의 새 역사를 창조해 나가기 위한 민족의지의 창조적 발전입니다.

이 유신은 우리의 운명을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개척해 나아가기 위한 한국인의 사상과 철학의 확립이며, 그 실천인 것입니다.

따라서 나는 이 숭고한 유신이념을 구현하기 위해, 전 국민의 절대적인 지지 속에 국정전반에 걸친 일대 개혁을 단행해 나갈 것입니다.

이 개혁을 통해 이루어지는 유신질서는 번영과 통일을 위한 새 질서이며, 도의와 협동과 능률과 생산을 위한 새 질서일 것입니다.

나는 앞으로 한반도에서 다시는 전쟁이 발생하지 않도록 이를 미연에 방지하고, 남북이 서로 하나의 민족으로서 평화와 번영을 추구해 나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북한공산주의자들과 대화를 계속하고, 이를 더욱 넓혀 나갈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역사와 전통 그리고, 현실에 가장 알맞는 정치제도를 육성 발전시켜, 생산적인 민주주의의 기틀을 마련하고, 정치의 진실과 능률을 극대화해 나갈 것입니다.

농공병진에 의해 균형있게 배양되는 국력이 국민 개개인의 행복과 직결될 수 있도록, 모든 국민에게 일터가 보장되는 탄력성 있는 정책을 집중적으로 펴 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땀흘려 일하는 근로와 창의, 생산과 능률의 미덕을 사회윤리의 기본으로 삼고, 일하는 국민에게 안정 속에 보람있는 생활을 누리게 할 수 있도록 사회보장제도를 더욱 확충해 나갈 것입니다.

또한 기업의 공개와 근로자의 지주제를 실시함으로써, 근로자의 이익과 복지를 증진시키는 복지체제를 갖추어 나갈 것입니다.

사회지도층에게는 검약과 봉사로써 스스로 사회복지의 균점에 이바지하도록 하는 사회기풍을 크게 진작시킬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고유한 전통문화를 더욱 창의적으로 계발하여, 민족문화의 꽃이 활짝 피어나도록 문예중흥의 시책을 펴 나갈 것입니다.

친애하는 동포 여러분!

나는 이러한 혁신적인 유신작업을 추진함에 있어서, 정부와 국민이 그 어느 때보다 혼연일체가 되어, 서로 신뢰의 유대를 더욱 강화하고, 이를 뒷받침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래야만 유신의 열매도 더욱 알차게 맺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특히, 나는 민족의 사활과도 직결된 이번 유신과업은 일차적으로 공직을 맡은 사람들의 자세와 태도에 그 성패가 달렸다고 보고 이제부터 나 자신을 포함한 모든 공직자는 막중한 책임과 숭고한 사명을 더욱 절감하고, 공인으로서의 마음가짐을 다시 한번 가다듬고 유신대열에 앞장서서, 솔선 수범할 것을 다짐하는 바입니다.

이 길만이 국민의 절대적 지지에 보답하며, 겨레의 소망에 부응하는 길이라 믿습니다.

공직자들이 맡은 바 책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모든 국민들이 유신과업에 자발적으로 적극 참여할 때, 국가발전을 위한 위대한 전진은 힘차게 계속될 것이며, 유신의 보람찬 열매는 반드시 맺어질 것입니다.

나는 조국에 대한 사랑, 국가에 대한 충성심이 없는 사람은, 자기의 가정에서도 진정한 화목과 우애를 이룰 수 없다고 믿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애국심, 이 조국애가 곧 우리들이 정립해나가야 할 국민기강의 근본이라고 강조해 두고자 합니다.

나는 국민 한사람 한사람이 나와 국가를 하나로 알고, 국력배양을 위해 총력을 기울일 때, 비로소 그 국력은 국민 각각의 안정과 번영에 직결될 수 있으며, 행복하고 명랑한, 그리고 도의가 지배하는 사회를 건설할 수 있게 된다고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안으로 근면과 검소, 정직과 성실의 기품을 크게 일으키고, 조국을 위한 사랑, 국가에 대한 충성을 굳게 다짐하면서, 국력증강을 위해 더욱 힘차게 매진해야 하겠습니다.

밖으로는, 민족의 진취적인 기상과 슬기로운 자주성을 더욱 드높여, 우방과의 친선. 협력관계를 증진하여,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곧, 민족의 대웅비를 기약하는 발판이 되며, 민족사의 진운을 영예롭게 개척해 나가는 새 이정표가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우리는 서로 이 강토 위에서 영원토록 사랑을 가꾸어 나가야 할 한 핏줄의 아들. 딸들입니다. 서로 힘을 합쳐서 비능률과 부조리, 퇴폐와 낭비가 스스로 자취를 감추고, 합리와 능률, 성실과 근면이 뿌리를 박은 아름다운 생활풍토를 이룩해 나갑시다.

그리고, 다시는 전쟁의 포성이 울리지 않게 하고, 그 대신 번영과 정의의 꽃이 만발하는 희망과 행복의 통일조국, 위대한 한국을 건설합시다.

그 날의 영광을 앞당기기 위해, 다같이 이 보람찬 유신의 대행진에 참여합시다.

그리고 힘차게 끈기있게 전진합시다.

그리하여, 이 위대한 유신의 횃불을 무궁한 조국의 영광과 더불어 길이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줍시다.

우리는 오늘 고난과 시련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고, 안정과 번영의 보람찬 새 역사를 기록해 나가야 할 엄숙하고도 뜻깊은 전환점에 섰습니다. 이 자리에 모인 우리들은 이 순간을 지켜보는 역사의 증인들입니다.

나는 지금부터 우리가 기록해야 할 역사는 활기찬 창조의 새 역사이어야 하며, 민족의 자주성에 입각한 영광의 역사이어야 한다고 굳게 믿는 바입니다.

이러한 민족사의 새로운 출발점에서 나는 국민 여러분의 절대적 지지 속에 민족통일과 번영의 대임을 맡은 제8대 대통령으로서 헌법이 부여한 책임과 의무를 성실히 이행할 것을 조국과 민족의 양심 앞에 엄숙히 맹세하였습니다.

나는 우리 조국의 안정과 평화, 통일과 번영에 대한 온 겨레의 염원 속에서 마련된 이 식전이, 나에게는 막중한 책임과 숭고한 사명의 십자가를 지게 하는 헌신의 제단이며, 우리 모두에게는 조국의 밝고 희망찬 내일을 위해 온 겨레의 뜻과 힘을 하나로 묶는 구국 유신의 대광장이라고 믿습니다.
1972년 12월 27일 대한민국 대통령 박정희

11.5. 제9대 대통령 취임사

친애하는 5천만 동포 여러분! 그리고 내외 귀빈 여러분!

대망의 80년대를 눈앞에 바라보면서 역사의 새 장이 펼쳐지는 이 순간에 우리는 민족 웅비의 부푼 꿈과 새로운 결의를 다짐하며 오늘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온 국민의 집념과 땀이 어린 이 보람찬 중흥의 창업 도정에서, 개발의 60년대와 약진의 70년대에 쌓아올린 빛나는 금자탑이 있기에 내일의 우리에게는 부강한 선진 한국의 웅장하고도 자랑스러운 모습이 뚜렷이 떠오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부터 우리가 도전하는 80년대는 새 역사 창조를 향한 자신과 긍지에 가득찬 웅비의 시대가 될 것입니다.

다가오는 연대야말로 기필코 고도 산업 국가를 이룩하여 당당히 선진국 대열에 참여하고, 번영과 풍요 속에서도 인정과 의리가 넘치는 복지 사회를 이룩해야 할 시기입니다. 이제까지 축적된 민족의 힘과 슬기를 유감없이 발휘하여 우리 역사상 다시 한 번 민족 문화의 개화기를 맞이하는 위대한 연대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숙원인 조국의 평화적 통일에 획기적인 진전을 성취함으로써 유구한 역사 속에 연면히 이어온 민족사의 정통성을 드높이고 평화와 안정과 번영을 향한 인류 역사의 진운에 적극 기여해야 하겠습니다.

이처럼 장엄한 민족사의 분수령에서 제9대 대통령의 무거운 책무를 맡게 된 나는, 이 시대를 함께 사는 온 국민과 더불어 항상 고락을 같이 하면서, 우리 세대에게 주어진 엄숙한 소명을 받들어 헌신할 것을 조국과 민족 앞에 굳게 맹세하는 바입니다.

국민 여러분!

어느 국가든, 그 국가가 지향하는 목표가 뚜렷하고 이상이 원대하며, 이를 성취하겠다는 국민의 강인한 의지와 단합된 힘이 있어야만 융성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엄연한 역사의 진리입니다.

돌이켜보면 6.25 동란 후 빈곤과 침체, 체념과 무기력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던 우리는 60년대 초 용약 기사회생의 전기를 잡고 일어났습니다.

국정의 모든 면에서 차츰 활기와 질서를 되찾으면서 자력 갱생의 뚜렷한 목표를 세워 힘찬 발걸음을 재촉해 왔습니다.

우리도 남부럽지 않게 떳떳이 잘 살아 보겠다는 불굴의 집념과 의지, 그리고 사랑하는 후손들에게 길이 보람된 유산을 물려주어야겠다는 투철한 사명감으로 우리는 땀흘려 일하고 또 일해왔습니다.

지난 10여 년 동안에 우리 사회에는 엄청난 변혁을 가져왔습니다. 상전벽해의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조국 근대화를 위한 민족의 대행진은 지금 이 순간에도 힘차게 계속되고 있습니다. 6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전통적인 농경 사회였던 우리나라가 이제 중화학 공업국가로부터 다시 고도 산업 사회로 이행해 가고 있습니다. 일상 생활용품까지 우방의 원조에만 의존하던 우리 경제가 이제 거의 자립 단계로 도달했고, 소총 한 자루 우리 손으로 만들지 못하던 우리나라 방위 산업이 이제 국산장거리 유도탄 시대의 막을 열게 되었습니다.

70년대 초부터 우리나라 농촌에서 바람이 불기 시작한 새마을 운동은, 그 동안 온 국민이 근면·자조·협동의 정신 혁명을 수행하고, 유신적 국정 개혁으로 국민 총화와 능률의 극대화를 이룩하여 국력 배양을 가속화할 수 있는 확고한 기틀을 마련하였습니다. 우리 대한 민국은 한민족의 엄청난 저력을 바탕으로 세계에서 그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운 고도 성장을 거듭하여 자립 경제와 자주 국방의 터전을 굳게 다지면서 바야흐로 세계 속의 한국으로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이제 우리의 국력은 북한을 제압하게 되었습니다. 조용히, 오늘이 있기까지 우리들이 걸어온 고난과 시련의 도정을 뒤돌아 볼 때에 참으로 만강의 감회를 누를 수가 없습니다. 이 위대한 한국민의 발자취에 대하여 나는 무한한 긍지를 느끼면서 국민 여러분에게 뜨거운 치하와 감사를 드리고자 합니다.

국민 여러분!

지금부터 우리가 가야 할 앞길도 결코 순탄한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열강의 움직임은 더욱 다양하고 복잡한 국제 권력 정치의 유동성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세계 여러 곳에서는 새로운 분규와 충돌의 불씨가 가시지 않고 있으며, 한반도의 주변 정세에도 미묘한 변화와 더불어 새로운 시련을 예감케 하는 바 있습니다. 우리의 국제적 지위가 높아지고 국력이 세계로 뻗어감에 따라 무역, 자원 문제 등 국제 경쟁면에서 새로운 장벽과 도전이 우리 앞에 나타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국민 생활이 향상될수록 국민들의 기대 수준은 이에 비례하여 급격히 상승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스스로 이를 조절할 줄 알아야 하고 우리 마음 속에 싹트기 쉬운 자만과 안일과 사치와 낭비 등 우리 내부의 도전에도 과감하게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슬기와 용기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우리에게는 잠시의 방심도 허용될 수 없으며, 하물며 주변 정세에 대한 아전인수격인 안이한 관측은 금물입니다.

그 어떤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필경 우리의 운명을 결정할 주인은 바로 우리들 자신이란 것, 이것을 잊지 맙시다.

의젓한 한국민의 자주성과 국력을 바탕으로 내외 정세의 어떠한 변화와 도전에도 능동적으로 적응하고 여유있게 대처해 나가면서, 세계 모든 나라들과 평화와 번영을 추구하는 데 그들과 더불어 협력해 나갈 것입니다.

돌이켜보면, 우리 선조들은 거듭된 국난에도 굴하지 않고 도리어 이를 분발과 약진의 발판으로 삼아 불사조처럼 떨치고 일어났습니다.

통일 신라나 세종대왕 때와 같이 국운이 융성하고 민족의 기상이 드높았던 시대를 자랑스러이 회상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역사와 전통과 문화의 뿌리가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민족 중흥을 구현하기 위하여 이 시대를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우리의 중요 정책 지표를 앞으로도 계속 완전 자립 경제의 달성, 자주 국방 태세의 확립, 사회 개발의 확충, 정신 문화의 계발에 두고 온 국민과 더불어 총력을 기울여 나가고자 합니다.

또한, 나는 분단된 국토를 평화적으로 통일하여 민족 중흥의 새 역사를 창조하는 데 신명을 바칠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

이제 우리는 그 동안 이룩한 발전의 여세를 몰아 하루빨리 부국 강병의 기틀을 반석같이 다져야 하겠습니다.

자립 경제와 자주 국방은 자주성 확립의 기초인 동시에 평화와 번영의 기반입니다. 우리는 중화학 공업을 바탕으로 한 고도 산업 사회를 건설하고 과학 기술을 세계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하여 고급 두뇌 배출을 위한 교육에 가일층 힘을 쓰는 한편, 도시와 농촌이 균형있게 발전할 수 있도록 박차를 가해 나갈 것입니다.

또한, 온 국민의 투철한 호국 정신과 적극적인 협조로 철통같은 총력 안보 태세를 확립하고, 날로 발전하는 방위 산업으로 명실 공히 자주 국방을 실현할 것입니다. 전래의 미풍인 근면·협동을 바탕으로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사는 사람이 우대를 받고 보람 을 누릴 수 있게 하며, 저마다 자질과 능력을 살릴 수 있도록 사회 개발 정책을 계속 확충해 나갈 것입니다.

그리하여, 모든 국민이 밝고 보람찬 생활 환경에서 고루 잘 살 수 있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추구하고 있는 국민 생활의 미래상입니다. 건전한 국가와 건전한 사회의 기본이 되는 것은 역시 건전한 국민 정신과 사회 기강의 확립입니다.

조상이 물려준 문화 전통과 정신 유산을 알뜰히 보전하고 창조적으로 계발하여 격조높은 민족 문화를 꽃피우는 데도 역시 건전한 사회가 바탕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수려한 금수강산의 보금자리에서 우리 모두가 풍요하고 품위있는 사회를 건설하는 것은 후손 대대에 물려 줄 자랑스러운 유산일 뿐 아니라 인류 공영에도 이바지 하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이 벅찬 과업들을 성공적으로 추진해 나가기 위해서는 질서있는 자유의 바탕 위에 우리 문제 해결에 효율적인 정치 제도를 착실하게 다지면서 발전시켜 나가야 합니다. 각계 각층의 국민들이 저마다 창의와 헌신으로 국가 발전에 적극 참여하는 깨끗하고 생산적인 민간정치가 국민 생활 속에 뿌리내리도록 더욱 힘써야 하겠습니다.

내외 동포 여러분!

우리의 국력이 모든 분야에서 이만큼 신장했고, 또한 앞으로 중단없이 전진할 방향과 목표가 뚜렷한 이상 민족적 숙원인 조국의 통일 문제도 필연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될 것을 나는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결국은 북한측이 우리의 제의를 받아들여 대화의 자리에 나오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도도히 흐르는 민족사의 주류에서 볼 때, 한때의 외래적 이단에 불과한 북한 공산주의자들이 언제까지나 5천만 겨레의 한결같은 소망을 거역하고 방해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그 동안 참기 어려운 일들을 수없이 견뎌내면서 와신상담 힘을 길러 온 것도 벌써 30여 년을 남북으로 분단된 채 살아온 겨레의 한을 하루라도 앞당겨 풀어보자는 일념에서 입니다.

나는 북한측에 대화의 문을 언제나 열어 놓고 기다리면서, 한편으로는 우리의 막강한 국력 배양만이 평화 통일의 지름길임을 확신하고, 이를 위해 앞으로도 온갖 노력을 꾸준히 기울여 나갈 것을 거듭 다짐하는 바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기필코 이 땅에서 전쟁의 그림자를 몰아내고 평화를 굳건히 정착시켜 통일 조국 구현을 위한 획기적인 연대를 맞이해야 하겠습니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나는 유구한 민족사에서 오늘이 차지하는 위치를 지켜보면서, 영광된 민족의 대행진을 이끌어 나갈 엄숙하고도 막중한 책임을 절감하며, 다시금 온 국민의 아낌없는 협조와 분발을 당부하고자 합니다.

불과 수년 전 우리가 체제를 정비하여 세계적인 유류 파동과 인도지나 반도가 적화된 직후의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했던 굳센 단결의 교훈을 결코 잊어서는 안됩니다.

우리 모두 방방곡곡에 세차게 메아리치는 개혁과 창조와 전진의 우렁찬 발걸음을 더욱 재촉하면서, 격동과 시련을 겪고 있는 오늘의 세계 속에서 한민족의 찬연한 횃불을 밝힙시다.
1978년 12월 27일 대한민국 대통령 박정희

12. 각종 타이틀

13. 저서

이하 저서들은 2017년에 기파랑 출판사에서 전집으로 출간되었다.
  • 우리 민족의 나갈 길 - 동아출판사. 1962.
  • 국가와 혁명과 나 - 향문사. 1963.
  • 민족의 저력 - 광명출판사. 1971.
  • 민족중흥의 길 - 출판사 동일. 1978.

14. 관련 서적

  • 남산의 부장들
  • 실록 민주화운동: 우리 강물이 되어 1권
  • 실록 청와대: 궁정동 총소리
  • 청와대 비서실 1~2권 - 김진/노재현 저.
  • 김형욱 회고록 1~3권 - 김형욱/박사월 공저.
  • 한국 현대사 산책 1960년대편: 4.19 혁명에서 3선 개헌까지 1~2권
  • 한국 현대사 산책 1970년대편: 평화시장에서 궁정동까지 1~3권
  • 박정희시대(전 3권), 박정권 18년: 그 권력의 내막 - 이상우 지음
  •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 조갑제 지음
  • 박정희 다시 태어나다
  • 실록 군인 박정희 - 정운현 지음
  • 개발 독재자 박정희 평전 - 김삼웅 지음
  • 만화 박정희(상, 중, 하) - 조갑제,이상무 지음
  • 만화 박정희 (상,하) - 백무현 지음

15. 각종 친필 및 그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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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태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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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없는 안정속에 중단없는 전진을
파일:0079744001635836386.png
국토의 균형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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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립경제 자주국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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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약하는 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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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영과 통일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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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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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 과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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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언론 밝은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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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는 나라의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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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진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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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만인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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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의 전당(세종문화회관 머릿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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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근대화

위 사진의 출처
파일:RenR3yt.jpg
통일로
1960~70년대에 제작된 각종 비석들 중에 박정희 친필 비석이 심심찮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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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승해병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65년에 쓴 '상승해병' 휘호. 이 휘호는 대한민국 해병대사령부가 서울 대방동에 자리잡고 있었던 시절에 해병대사령관실에 걸려 있었다.
파일:external/image.ytn.co.kr/201609041153544336_t.jpg
블라디미르 푸틴과 박근혜
특이하게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박정희가 1979년에 쓴 신년 휘호[62]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선물로 주기도 하였다.[63] 미국으로 이민간 사람이 판매하는 걸 푸틴이 개인적으로 구입하였다고 전하였다.
파일:external/www.chogabje.com/20132418463958813.jpg
의자에 앉아있는 소녀와 여우
파일:external/bemil.chosun.com/20100625151707.jpg
화분
파일:external/bemil.chosun.com/20100625151717.jpg
풍경
서예만큼 전문적으로 그림을 배우진 않은 것으로 보인다. 스케치나 수채화 그림들이 대부분. 그림을 보면 알다시피 미술을 전공한 사람이 아닌 일반인 기준에선 상당한 수준이다.
파일:external/blog.joins.com/map.jpg
경부고속도로 관련 구상도
경부고속도로 건설하기 전 그림으로 구상해 건설하였다.

16.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1963 제5대 대통령 선거 대한민국

[[민주공화당|
파일:민주공화당_글씨만.png
]]
4,702,640 (46.64%) 당선 (1위) 초선[64]
1967 제6대 대통령 선거 5,688,666 (51.44%) 재선
1971 제7대 대통령 선거 6,342,828 (53.19%) 3선
1972 제8대 대통령 선거 2,357 (99.92%) 4선[65]
1978 제9대 대통령 선거 2,577 (99.85%) 5선[66]
역대 선거 벽보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파일:5대대선 박정희.jpg
파일:IE001673294_STD.jpg
5대 대선 6대 대선
파일:downad.jpeg.jpg
7대 대선 }}}}}}}}}

17. 소속 정당

<rowcolor=#ffc224> 소속 기간 비고

[[남조선로동당|
파일:남로당_노랑.png
]]
1946 - 1948 입당[67]


[[무소속(정치)|
무소속
]]
1948 - 1963 탈당(전향)[68]
정계 입문[69]


[[민주공화당|
파일:민주공화당_글씨만.png
]]
1963 - 1979 입당[70]
피살[71]

18. 관련 문서

18.1. 사건

18.2. 단체

18.3. 기타

18.4. 외부 링크

19.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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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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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펼치기 · 접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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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5f5f5,#2d2f34><colcolor=#835B38> 일생 일생 · 평가
다른 정치인들과의 관계
가족 틀:박정희 가문
역대 선거 제5대 대통령 선거 · 제6대 대통령 선거 · 제7대 대통령 선거 · 제8대 대통령 선거 · 제9대 대통령 선거
사건사고 5.16 군사정변 · 황태성 사건 · 1.21 사태 · 3선 개헌 · 7.4 남북 공동 성명 · 10월 유신 · 저격 미수 사건 · 10.26 사건
관련 단체 박정희 정부 · 국가재건최고회의 (군사혁명위원회) · 민주공화당 · 통일주체국민회의 · 유신정우회 · 중앙정보부 · 정수장학회 · 육영재단
기타 여담 · 어록 · 별명 · 사상 · 박정희주의 · 박정희계 · 박정희로 · 박정희체육관 · 박정희대통령기념관 (박정희도서관) · 뮤지컬 박정희 ·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 새마을운동 · 새마을노래 · 경부고속도로 · 고속도로의 노래 · 월남파병 ·서울어린이대공원 · 국민교육헌장 · 긴급조치 · 녹화사업 · 한일기본조약 · 독도 밀약 · 백지계획 · 프레이저 보고서 · 김호남 · 이현란 · 내 일생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 박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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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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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의 배우자, 동생 및 직계 가족 일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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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 김호남육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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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835b38><colbgcolor=#f5f5f5,#2d2f34> 구성 인사(3공) · 인사(4공) · 통일주체국민회의
여당 민주공화당
연립여당 유신정우회
정책 및 방향 제1-4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 중화학공업화 · 수출주도산업화 · 녹화사업 · 그린벨트 · 새마을운동 · 지방자치에 관한 임시조치법 · 국민교육헌장 · 중·고교 평준화 · 한강의 기적 · 한일수교 · 베트남 파병 · 혼분식 장려 운동 · 통일미 · 율곡사업 · 핵무장 · 향토예비군 · 주민등록증 · 재형저축 · 한글전용 · 부가가치세 · 백지계획 · 강남 개발 · 금지곡 · 방위세 · 방위병
평가 긍정적 평가 · 부정적 평가 (정치 · 사회·문화 · 안보·국방 · 외교 · 경제) · 논란이 있는 평가
타임라인
국가재건최고회의
1961년 5.16 군사정변 · 국가재건최고회의 설립 · 혁명재판 · 전국 18개 학군단 창설 · 수도방위사령부 창설 · 농어촌고리채법 · 은행국유화(금융기관에 대한 임시조치법) · 경제기획원 설립 · 중앙정보부 창설 · 한국전력주식회사 창설 · 농업협동조합 창설 · 지방자치에 관한 임시조치법 · 연호에 관한 법률 개정
1962년 서력기원 사용 · 문화재보호법 제정 · 제1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 발표 · 주민등록법 제정 · 화폐개혁 · 4대 의혹 사건 · 마포아파트 준공 · 김종필-오히라 메모 · 대한항공공사 설립 · 5차 개헌 공포 · 제1차 국민투표
1963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발족 · 민주공화당 창당 · 3.16 성명 · 감사원 개원 · 의정부역-능곡역 구간 교외선 개통 · 서울 대확장 · 부산 직할시 승격 · 박정희 의장 예편 후 민주공화당 입당 · 삼양라면 출시 · 서울가정법원 개원 · 제5대 대통령 선거 · 제6대 국회의원 선거 · 구로공단 조성 · 황태성 사건 · 의료보험법 제정
대한민국 제3공화국
1963년 국가안전보장회의 설치 · 파독 근로자 파견
1964년 미터법 실시 · 삼분폭리사건 ·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보완계획안 발표 · 울산정유공장 준공 · 무장군인 법원 난입 사건 · 6.3 항쟁 · 베트남 전쟁 파병안 통과 · 제1차 인민혁명당 사건 · 무즙 파동 · 서독 공식 방문 · 국가기술자격 시행
1965년 한국독립당 내란 음모 사건 · 독도 밀약 · 수출제일주의 표방 · 제2한강교 준공 · 춘천댐 준공 · 광복회 발족 · F-5 20대 도입 · 원충연 반혁명 사건 · 한일기본조약 조인 · 전매청 신탄진공장 준공 · 야당 불참 속 한일협정 비준 및 베트남 전쟁 파병 동의안 가결 · 베트남 전쟁 1개 전투사단 파병 · 이승만 대통령 서거 · 한국해외개발공사 발족 · 농어촌 전화 사업 추진
1966년 KIST 설립 · 국세청 발족 · 장면 별세 · 태릉선수촌 설립 · 한미행정협정 조인 ·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 해병대 공군비행학교 습격사건 · 국회 오물 투척 사건 · 사카린 밀수 사건
1967년 산림청 개청 · 해군 당포함 격침 사건 · 한국외환은행 발족 · 대도시 그린벨트 설정 · 짜빈동 전투 · GATT 가입 · 과학기술처 신설 · 제6대 대통령 선거 · 제7대 국회의원 선거 ·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발표 · 동백림 사건 · 한국수자원개발공사 설립 · 지리산국립공원 지정 · 정부종합청사 착공
1968년 1.21 사태 · 푸에블로호 피랍사건 · 684부대 창설 · 서울사범대학 독서회 사건 · 포항종합제철주식회사 설립 · 향토예비군 창설 · 주민등록법 개정 · 통일혁명당 사건 · 만화 검열제 · 육군3사관학교 창설 ·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 · 주민등록증 발급 실시 · 국민교육헌장 발표 · 경부고속도로 서울-수원-오산 구간 개통 · 경인고속도로 개통
1969년 교련 과목 개설 · 한국도로공사 발족 · 가정의례준칙 · 서울 중학교 무시험 제도 · 금화시민아파트 준공 · 경부고속도로 오산-천안-대전 구간 개통 · 호남정유 여수공장 준공 · 김영삼 질산 테러 사건 · MBC 개국 · 3선 개헌 · 제2차 국민투표 · 제3한강교 개통 · 울산고속도로 개통 · 경부고속도로 대구-부산 구간 개통
1970년 정인숙 살해사건 · 와우 시민아파트 붕괴사고 · 포항종합제철소 착공 · 새마을운동 제창 · 우편번호제 도입 · 경부고속도로 대전-대구 구간 개통 (완공) · 호남고속도로 대전-전주 구간 개통 · 백원 주화 발행 · 국방과학연구소 설립 · 병무청 설립 · 모산 수학여행 참사 · 전태일 분신 사건 · 번개사업 · 남영호 침몰사고 · 4대강유역 종합개발 계획 확정 · 정부종합청사 개청
1971년 전국 중입시험 폐지 ·대한항공 F27기 납북 미수 사건 · 고리 원자력 발전소 기공 · KAIS 설립 · 주한미군 7사단 철수 · 제7대 대통령 선거 · 진산 파동 · 제8대 국회의원 선거 · 제3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 발표 · 광주대단지 사건 · 브레튼우즈 체제 종료 · 실미도 사건 · 국토종합계획 발표 · 통일로 개통 · 영동고속도로 신갈-새말 구간 개통 · 대연각호텔 화재
1972년 정병섭군 자살사건 · 경주고도개발 10개년 계획 확정 · 7.4 남북 공동 성명 · 통일미 개발 · 8.3 사채 동결 조치 · 제1차 남북 적십자 회담 · 10월 유신 · 울산석유화학단지 준공 · 제3차 국민투표 · 통일주체국민회의 발족 · 제7차 개헌 · 서울시민회관 화재 사고
대한민국 제4공화국
1973년 중화학공업화 선언 · 치산녹화 10개년 계획 추진 · 남서울아파트 분양 · 장발 및 미니스커트 단속 · 승압사업 개시 · 제9대 국회의원 선거 · KBS 설립 · 베트남 전쟁 종전 · 유신정우회 창립 · 윤필용 사건 · 남산 부활절 연합예배 사건 · 서울어린이대공원 개장 · 1973 서울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 화전민정리 5개년 계획 수립 · 포항종합제철소 준공 · 대덕연구단지 착공 · 불국사 복원공사 준공 ·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정 · 김대중 납치 사건 · 소양강댐 준공 · 제1차 오일쇼크 · 최종길 교수 의문사 사건 · 태백선 고한-황지 구간 개통(완공) · 호남고속도로 전주-순천 구간, 담양지선 개통(완공) · 남해고속도로 개통 · 친아랍 성명 4개 조항 발표
1974년 율곡사업 추진 · 긴급조치 1·2호 선포 · 긴급조치 3호 · 현대울산조선소 제1호선 진수 · YTL30호 침몰 사건 · 서울/부산 고등학교 평준화 첫 실시 · 창원국가산업단지 조성 · 민청학련 사건 · 긴급조치 4호 선포 · 팔당댐 준공 · 속초해전 · 제2차 인민혁명당 사건 · 박정희 저격 미수 사건 · 서울 지하철 1호선 개통 · 수도권 전철 1호선 개통 · 새마을호 운행 시작 · 긴급조치 1·4호 해제 · 대왕코너 화재사고 · 주안국가산업단지 준공 · 동아일보 광고탄압사건
1975년 제4차 국민투표 · 한강 이북지역 택지개발금지조치 · 핵확산금지조약 비준 · 민방위 결성 · 긴급조치 7호 선포 · 인민혁명당 재건위 사건 사형 집행 · 김상진 할복 사건 · 종합무역상사 제도 실시 · 여의도 국회의사당 준공 · 영동고속도로 새말-강릉 구간 개통(완공) · 동해고속도로 개통 · 여천석유화학단지 기공 · 학원 침투 간첩단 사건 · 서울고속버스터미널 개장 · 1975 서울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1976년 포항 석유 발견 사건 · 3.1 민주구국선언 사건 · 한독맥주 사건 ·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 서울 UFO 격추미수 사건 · 신민당 전당대회 각목 난동 사건 · 한국수출입은행 발족 · 잠수교 개통 · 국산자동차 현대 포니 첫 수출 · 코리아게이트 · 안동댐 준공 · 함평 고구마 사건 · 직업훈련기본법 제정
1977년 제4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 백지계획 발표 · 박흥숙 살인사건 · 월성 원자력 발전소 기공 · 고리 원자력 발전소 1호기 가동 · 의료보험 시행 · 부가가치세 시행 · 남해화학 여수공장 완공 · 반국가행위자의 처벌에 관한 특별조치법 제정 · 구마고속도로 개통 · 이리역 폭발사고
1978년 한미연합사령부 발족 · 대한항공 902편 격추 사건 · 여천석유화학단지 준공 ·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특혜분양 사건 · 제9대 대통령 선거 · 8.8 조치 시행 · 백곰 미사일 발사 성공 · 자연보호헌장 선포 · 안동교구 가톨릭농민회 사건 · 제10대 국회의원 선거
1979년 서울 지하철 2호선 착공 · 정부 제2청사 착공 · 보문관광단지 개장 · 고리 원자력 발전소 3.4호기 착공 · 2차 오일 쇼크 · YH 사건 · 성수대교 개통 · 김영삼 총재 의원직 제명 파동 · 김형욱 실종 사건 · 부마항쟁 · 삽교천방조제 준공 · 10.26 사태 · 최규하 권한대행 체제 · 서울의 봄 · YWCA 위장결혼식 사건 · 12.12 군사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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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 한국갤럽이 창립 30주년을 맞이하여,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인이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알아보는 한국인이 좋아하는 조사 시리즈를 기획해 2004년부터 5년 주기로 발표하고 있다.
2014년
※ 2014년 한국갤럽한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한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을 선정.
1위 2위 3위 4위 5위
이순신 반기문 박정희 세종대왕 노무현
6위 7위 8위 9위 10위
정주영 이건희 김수환 김대중 김구
2019년
※ 2019년 한국갤럽한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한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을 선정.
1위 2위 3위 4위 5위
이순신 세종대왕 노무현 박정희 김구
6위 7위 8위 9위 10위
정주영 유관순 김대중 반기문 안중근
11위 12위 13위 14위 15위
부모님 신사임당 이국종 이건희 안창호
16위 17위
문재인 김연아
※ 응답수 50명 미만인 18위부터는 공개하지 않음.
같이 보기: 한국인이 존경하는 인물, 좋아하는 스포츠선수, 좋아하는 소설가, 좋아하는 탤런트, 좋아하는 영화배우, 좋아하는 가수, 좋아하는 노래, 좋아하는 예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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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번주소상 경상북도 구미시 상모동 171[2] 취임일을 포함한 대통령 재임기간은 총 15년 10개월 10일이나 집권기간은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시기까지 포함해서 흔히 18년으로 일컬어진다. 의장 역임기간은 1961년 7월 3일~1963년 12월 17일(2년 5개월 14일)인데 대통령 취임일까지이다. 합산하면 18년 3개월 24일.[3] 당시 헌법상(4년씩 3선까지) 7대 대통령으로서의 임기는 1975년 6월 30일까지였지만 1년 5개월 만에 10월 유신으로 끝.[4] 유신 헌법상(6년씩 무제한) 9대 대통령으로서의 임기는 1984년 12월 26일까지였지만 10.26 사건으로 취임한 지 10개월 만에 사망했다.[5] 직강공파 29세손, 혁거세 65세손 ◯희(熙), ◯인(仁), ◯하(河) 항렬.[이혼] 1936년 4월 1일 결혼. 1950년 11월 이혼.[사실혼] 1948년 6월부터 박정희와 교제하기 시작하여 같은 해 8월부턴 결혼을 전제로 동거했었던 내연녀. 1950년 2월 결별.[재혼] 1950년 12월 12일 결혼. 1974년 8월 15일 피살.[9] 전처 김호남 소생[10] 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11] 현 구미초등학교.[12] 어린 시절 주일학교까지 나오면서 교회를 열심히 다녔지만, 교회에서 싸움이 난 이후부터 교회에 나가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13] 대구사범학교에 진학하기 전까지는 고향에 있는 교회 주일학교를 열심히 다녔다고 한다.# 대통령이 된 이후엔 독실한 불교 신자인 육영수 여사의 영향을 받아 친불교적 행보를 보였다. 그 예로 1972년 석굴암불국사의 도안을 넣은 만 원권 지폐 발행을 추진했었던 것, 1975년 석가탄신일(지금의 부처님오신날)을 공휴일로 지정한 것, 이승만 정부 시절부터 개신교만 인정되었던 군종불교까지 확대한 것 등이 있다. 1979년 미국 대통령지미 카터와의 한미정상회담에서 카터가 "대통령님의 종교는 무엇입니까?"라고 묻자 "저는 특별히 종교가 없습니다."라고 답했다는 일화도 있는 만큼 박정희 본인은 무종교였던 것으로 보이지만, 상술한 대로 집권 기간 동안 친불교적 행보를 보였기 때문에 세간에는 불자로 알려져 왔고 대통령기록관 홈페이지에 게시된 공식 약력의 종교란에도 불교로 기재되어 있다. 그럼에도 대한뉴스 603호를 비롯한 상당수의 연설기록에서 하나님을 언급하는 모습도 보인다.[14] 참고로 자녀들은 무종교박근혜를 제외하면 모두 개신교 이다.[15] 박정희/여담 참고[16] President Park.[17] 신경군관학교 졸업 후 편입학.[18] 일본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만주군 육군에서 복무하다 8.15 광복 직후 귀국하여 단기과정에 입학.[19] 숙군에서 남조선로동당 소속인 것이 발각되어 불명예 파면.[20] 6.25 전쟁 발발을 계기로 재임관.[21] 취임 전에 이루어진 5차 개헌에서 국민에게 엄숙히 선서한다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로 수정함으로서 선서를 존댓말로 읽은 첫 대통령이 되었으며, 또한 국민의 복리의 증진에 자유를 추가했다. 유신 개헌 이후로는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추가하여 읽었다.[22] 현 문경초등학교.[23] 중위를 거치지 않고 진급.[24] 전임자 윤보선의 사퇴로 1962년 3월 24일부터 1963년 12월 16일까지 1년 9개월 가량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으로서 수행.[25] 10.26 사건으로 임기 중 사망.[26] 육영수 여사와 같이 안치되었으며, 대통령으로서 두 번째로 국립서울현충원(國立—顯忠院) 박정희대통령묘소에 자리하였다. 상석의 조각이 봉황인 쪽이 박정희, 목련화인 쪽이 육영수.[27] 출처/두번째 사진 블로그 출처.[28] 부대시설까지 포함할 경우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역이 가장 크다. 봉분만 따지고 보면 그의 유해가 화장된데다 작은 비석 하나만 세워서 가장 작지만 추모공원으로 조성되어 아주 크게 조성되었기 때문이다.[29] 기념관 홈페이지[30] 도서관 홈페이지[31] 좌측부터 박근령, 박정희, 박근혜, 육영수, 박지만.[32] 이승만은 단명하지 않은 유일한 양자 이인수가 이승만 기념사업 외에는 정치에 뜻을 전혀 두지 않았었고, 윤보선 가문은 윤치영 외에는 대부분 학계, 방송계, 의료계, 문화예술계에 몸담았다. 최규하는 박정희 본인의 유고로 사실상의 임시 대통령을 맡았을 뿐이고 그와 자녀들은 정계에 뜻을 두지 않았다. 전두환 일가는 정치인 가문이라기보단 군인 가문에 더 가까우며 과거사와 추징금 논란으로 정계에는 발을 들일 생각조차 않고 있다. 노태우 일가는 SK가와 사돈일 뿐 자신의 가문을 정치인 가문으로 키우지 않았다. 그나마 사위가 정치인인 노무현 가문과 형이 6선의원에 국회부의장을 역임한 이명박 가문이 이 3대 가문까지는 아니어도 나름 정치인 가문으로서의 위상을 갖고 있다. 문재인 일가는 일반인으로서의 삶을 지향하고 있고 윤석열 일가는 학계와 전문직에만 종사하고 있다.[33] 연예인 은지원의 아버지며 은지원에게 박정희는 진외종조부, 박근혜는 진외당고모다.[34] 박지현과 박수현은 쌍둥이다.[35] 해당 드라마는 이외에도 김일성을 멋진 이상적 독립운동가로 그리다가 점점 타락하는 인물로 묘사했는데 이때문에도 비판을 받았다.[36] 실제로 덕혜옹주의 원 약혼자이나 영화 속 김장한은 실제 김장한보단 그의 형 김을한에 더 가까운 캐릭터이다.[37] 북송선을 타고 온 재일교포 출신으로, 이 영화의 박정희 연기 덕분에 김정일로부터 "대통령 각하"라는 칭찬도 받고, 무명배우에서 공훈배우로 출세했다. 박정희와 닮게 나오려고 주사도 맞고, 튀어나온 입을 묘사하기 위해 촬영 때마다 안에 틀도 넣었다고 한다.[38] 영화가 모두 실존인물을 바탕으로 하나 실명으로 나오지 않고 개명이 이뤄졌다.[39] 만주 일대에는 현실에선 28년도에 중화민국 국민정부에 통합된 봉천군벌이 30년대 중후반까지 살아있다.[40] 이 말은 통째로 붓글씨로 남기기도 했다.[41] 참고로 이튿날에 숨을 거둔 인물이 유일한 박사이다.[42] 이 기자회견만 해도 선진국가로의 지향을 여러 차례 언급하면서도 이렇게 개인주의보다 공동체주의에 치우친 듯한 발언을 반복한다.[43] 다만 임시정부 포함시 이승만이 44세로 최연소이다.[44] 이 역시 임시정부 포함시 이승만이 17년 3개월로 최장기이다.[45] 두 번째는 친인척들의 비리 조사 중에 자살로 세상을 떠난 노무현 전 대통령.[46] 사실 과거사까지 한국사를 통틀어 봐도 임기 중에 최고권력자가 살해된 사례는 아주 드물다. 마지막이 좋지 못했던 일부 군주들도 일단 왕위에서 내려온 다음에 제거된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 한참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야 고조선우거왕 암살 사건, 고구려 모본왕 암살 사건, 백제 부여(책계)/분서 부자(다만, 이 부자는 사망 사유는 차이가 있는데, 아버지는 전장에서 전사했고, 아들은 적국의 자객에 손에 피살당했다.), 연개소문영류왕 시해, 고려 공민왕 시해 사건 정도가 꼽힐 정도로 적다.[47] 여담으로 박정희 영부인 육영수 또한 유일하게 재임도중 사망했다는 것과 암살 당했다는 것 그리고 가장 단명했다는 타이틀을 갖고있다[A] 두 번째는 노무현 전 대통령. (향년 62세)[49] 저 당시 평균 수명을 감안하면 실질적으로 가장 단명한 대통령은 노무현이다. 또한 노무현과 마찬가지로 두 대통령은 각각 암살, 자살로 생을 마감했기 때문에 해당 사건들이 없었더라면 더 오래 살았을 것이다.[50] 현재 기준 대부분의 대통령들은 60살을 넘어서 취임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 타이틀은 어지간하면 깨지지 않을 듯 하다.[A] [52] 다른 한명은 초대 대통령 이승만. 윤보선김대중도 재혼이기는 하지만, 이들은 이혼이 아닌 사별 후 재혼이다.[53] 재임중은 아니어도 사별을 경험한 대통령으로는 최규하가 있다.[54] 전임 대통령 이승만은 1875년생, 윤보선은 1897년생으로 둘 다 조선시대에 태어났으며 심지어 이승만은 과거 시험 응시 경력도 있다.[55] 전임 대통령 이승만, 윤보선조선시대에 태어났다. 현재 기준 후임 대통령 중 노무현, 박근혜, 문재인, 윤석열을 제외한 전원이 일제강점기 출생자이다.[56] 전두환, 노태우도 장성 출신 대통령이며 3명 모두 최종계급이 대장이다. 참고로 3명다 육군사관학교 출신이다.[57] 선출직은커녕 임명직조차 안해보고 대통령이 되었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겸 내각수반을 지낸 적이 있긴 하지만 이건 상급자의 임명을 받은 게 아니라 본인이 대통령 권한대행을 겸직하면서 스스로 된 것이기 때문에 정치 경력 없이 바로 대통령 권한대행부터 시작한 케이스다. 전임자 중 한 명인 이승만은 초대 대통령이라서 정치 경력이 없을 것 같지만 존 하지미군정 조선총독이던 시절에 동대문구 갑 지역구 국회의원을 잠깐 했었다. 후임자 최규하는 선출직은 안 해봤지만 외무부차관, 외무부장관을 거쳐 국무총리로 재직했기 때문에 엄연히 정치 경력이 있는 사람이다. 박정희 다음에는 전두환이 정치 경력 없이 바로 대통령이 되었다. 노태우부터 문재인까지는 전원 국회의원 유경험자였다. 그러나 선출직 경력은커녕 출마조차 해본 적이 없고 정치 경력조차 전무한, 다시 말해 20대 대선이 생애 첫 선출직 출마이자 정치 입문 단계였던 윤석열이 정치 경력 없이 바로 당선되면서 6공 대통령은 모두 선출직을 거쳤다는 기록이 깨져버렸다. 따라서 윤석열이 박정희, 전두환의 뒤를 이어 3번째로 정치 경력 없는 대통령이 되었다.[58] 최단신 대통령은 딸인 박근혜(162cm). 인터넷상에는 158cm설이 광범위하게 퍼져있으나 공식적으로는 164cm이다. 대통령 재임 당시 기록된 공무원 인사기록카드상 박정희의 신장은 163cm#와 165cm# 두 가지가 있는 것으로 보이고, 조갑제는 박정희의 키가 그 중간인 164cm# 정도라고 보고 있다. 다만 164cm면 1910년대생치곤 작은 키는 아닌데 박정희의 주변 사람들이 '키가 작다'고 언급하는 경우가 많은 걸로 보아 실제 키는 그보다 작았을 가능성도 있다.[59] 황해도 출신 이승만, 충청도 출신 윤보선, 강원도 출신 최규하, 전라도 출신 김대중, 일본에서 태어난 이명박을 제외하면 현재 기준 문재인 전 대통령을 포함하여 전부 경상도 출신이다. 다만 이명박마저도 유년기에 귀국했을 때 경북 포항시에 정착해 살았었기 때문에 경상도가 사실상 제2의 고향이다. 참고로 윤석열서울특별시 출신이자 또다른 비경상도 출신 대통령이다.[60]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딸 박근혜가 당선되면서 부녀 모두 대통령이 되었다.[61] 둘 다 1남 3녀를 두었고, 또한 각자 아들들이 집안에서 남매들 중 가장 막내다. 다른 대통령들의 자녀 여부를 보면 대다수가 아들이 딸보다 더 많고, 이승만처럼 딸 없이 순수 아들만 셋인 대통령도 있고, 윤보선처럼 아들과 딸이 둘씩인 대통령도 있고, 김영삼처럼 아들과 딸이 셋씩인 대통령도 있고, 그 외 나머지들은 아들과 딸이 하나씩이고, 박근혜윤석열처럼 자녀가 전무한 대통령도 있다. 단, 박근혜는 미혼이고, 윤석열은 기혼이지만 무자녀다.[62] 사진 우측의 4글자는 총화전진.[63] 푸틴은 박정희는 나의 모델이다라고 밝혔다. 어느 정도냐면, 박정희 전 대통령에 관한 책이 있으면 어떤 언어로 쓰여있던 모두 구해달라고 했을 정도다.[64] 역대 직선제 대선 중 2위 후보와의 득표수 최저 격차. (15만 6026표)[65]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의 간접 선거.[66]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의 간접 선거.
1979년 10월 26일 피살.
[67] 좌익이었던 형 박상희대구 10.1 사건 당시 우익에 의해 피살되자 남로당에 가담하여 군내에서 프락치 활동을 했다.[68] 여순사건 때 발각되어 수감된 후 전향했다.[69] 1961년 5.16 군사정변 이후.[70] 입당 원서.[71] 10.26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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