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기를 다룬 드라마에 대한 내용은 제1공화국(드라마)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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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font-size: min(1em, 4.2vw); text-align: center; word-break: keep-all" | <colbgcolor=#fff,#101010>상고시대 | <nopad>부여 | <nopad> | <nopad>진국 | <nopad>탐라 | <nopad>우산 | |||||
원삼국시대 | 한사군[2] | <nopad>마한 | <nopad>변한 | <nopad>진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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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 고구려 | <nopad>백제 | <nopad>가야[3] | <nopad>신라 | |||||||
고구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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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국시대 | 발해 | 통일신라 | |||||||||
후삼국시대 | <nopad>후고구려 | <nopad>후백제 | 신라 | ||||||||
고려 | |||||||||||
고려시대 | 고려 | ||||||||||
조선시대 | 조선 | ||||||||||
개화기 | 대한제국 | ||||||||||
일제강점기 | 식민지 조선[4] | 대한민국 임시정부 | |||||||||
현대 | <nopad>조선건국준비위원회 | ||||||||||
소련군정[4] | 미군정[4] | ||||||||||
<nopad>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 <nopad> | ||||||||||
[1] 기자조선은 현대 주류 학설에서는 인정되지 않음. | |||||||||||
주요 민족: 예맥 · 삼한 · 한민족 | }}}}}}}}} |
대한민국 大韓民國 | Republic of Korea | |||||
국기 (1948-1949)[1] | |||||
국기 (1949-1960) | 국장 | ||||
1948년 8월 15일 ~ 1960년 6월 15일 (11년 10개월) | |||||
역사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5px -13px" | 제1공화국 출범 (대한민국 정부 수립) 1948년 8월 15일[2] 6.25 전쟁 발발 1950년 6월 25일 제1차 개헌 (발췌 개헌) 1952년 7월 7일 6.25 전쟁 정전 협정 체결 1953년 7월 27일 제2차 개헌 (사사오입 개헌) 1954년 11월 29일 3.15 부정선거 1960년 3월 15일 4.19 혁명 1960년 4월 19일 이승만 대통령 하야 1960년 4월 27일 | }}}}}}}}} | |||
정부 수립 이전 | 제3차 개헌 이후 | ||||
대한민국 임시정부[3] | 대한민국 제2공화국 | ||||
미군정 | |||||
위치[4] | |||||
한반도 삼팔선 이남 지역 (1950년 이전) → 한반도 휴전선 이남 지역 (1953년 이후) | |||||
수도 | |||||
공식 | 서울특별시 | ||||
임시 | 충청남도 대전시 ,(1950.06.27 - 1950.07.16), 경상북도 대구시 ,(1950.07.16 - 1950.08.17), 경상남도 부산시 ,(1950.08.18 - 1950.10.27, 1951.01.04 - 1953.8.14), | ||||
면적 | |||||
실효 지배 93,634km2[5] (108위) (1949년) → 97,534km2[6] (108위) (1954년) 내수면 비율 0.3% | |||||
인문 환경 | |||||
{{{#!wiki style="margin: 0 -10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 인구 | 총 인구 | <colbgcolor=#fff,#1f2023>2,002만 7,393명 (1948년) → 2,501만 2,374명 (1960년) | ||
인구 밀도 | 213.89명/㎢ (1948년) → 256.44명/㎢ (1960년) | }}}}}}}}} | |||
하위 행정구역 | |||||
1특별시 9도 14부 133군 1도(島) 8구 73읍 1,456면 → 1특별시 9도 26시 140군 15구 85읍 1,407면 | |||||
미수복지역 | 이북 5도, 경기도 일부, 강원도 일부 | ||||
정치 | |||||
{{{#!wiki style="margin: 0 -10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 정치 체제 | <colbgcolor=#fff,#1f2023>민주공화제(국민주권), 비자유민주주의[7], 단일국가, 대통령제[8], 단원제 → 양원제[9], 다당제, 성문법주의(대륙법계) | |||
국가 요인 | 대통령 | 이승만 | |||
부통령 | 이시영, 김성수, 함태영, 장면 | ||||
국무총리[10] | 이범석, 장면, 장택상, 백두진, 변영태 | ||||
수석국무위원[11] | 변영태, 김현철, 이익흥, 조정환, 홍진기, 허정 | ||||
여당 | [[대한독립촉성국민회| 대한독립촉성국민회 ]] → | }}}}}}}}} | |||
경제 | |||||
{{{#!wiki style="margin: 0 -10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 경제 체제 | <colbgcolor=#fff,#1f2023>자본주의 | |||
명목 GDP | 전체 GDP | $39억 5,787만 3,926(1960년) | |||
1인당 GDP | $158(1960년) | ||||
수출입액 | 수출 | $3,282만 7000(1960년) | |||
수입 | $3억 4,352만 7000 | ||||
화폐 | 공식 화폐 | 조선은행 원 → 대한민국 환(圜) | }}}}}}}}} | ||
<colbgcolor=#29166f> 단위 | |||||
법정 연호 | 단군기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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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rowcolor=#ffffff> 대한민국 정부 수립일로부터 |
D[dday(1948-08-14)] |
8.15 대한민국 정부 선포식 당시 실제 현장 육성이 담긴 촬영 영상 (25분)[12] | 대한민국 정부수립 국민축하식[13] |
1945년 광복 이후 모스크바 3상회의 협정에 따라 대한민국의 정부 수립 방안을 협의하기 위한 미소공동위원회가 개최되었다. 그러나 미국과 소련의 의견 대립으로 회담은 결렬되고 정부 수립 문제는 유엔으로 이관되었다. 1947년 11월 유엔 총회에서는 남북한 총선거를 통해 대한민국의 통일안이 가결되었으나 소련의 반대로 남한에서만 선거를 치르게 되었다. 1948년 5월 10일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총선거가 실시되어 이승만을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하여 마침내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탄생하였다.
독립기념관 공식 소개문
독립기념관 공식 소개문
대한민국 정부 수립식에서 대통령 이승만의 축사 |
8월 15일 오늘에 거행하는 이 식은 우리의 해방을 기념하는 동시에 우리 민국이 새로 탄생한 것을 겸하여 경축하는 것입니다. 이날 동양의 한 고대국인 대한민국 정부가 회복되어서 40여년을 두고 바라며 꿈꾸며 희생적으로 투쟁해 온 결과가 이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8.15 대한민국 정부 수립 경축사 전문 |
|
한국에 최초로 수립된 민주공화국. 1948년 8월 15일부터 1960년 6월 15일까지 존속하였다.
2. 한국 최초의 공화헌정체제
1910년 대한제국이 일본 제국에 의해서 멸망한 후 1919년까지 한국 독립운동의 주류는 복벽주의라고 불리는 왕정복고 운동이 주류였지만 3.1 운동 이후 독립운동의 주류는 공화주의로 급격하게 기울었고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였다. 지금은 공화국이라는 일본식 번역어가 대중에게 자리 잡았지만 일제강점기에는 민국이라는 중국식 번역어가 보편적이었기 때문에 대한공화국 임시정부가 아니라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된 것이다.그러나 한반도를 접수한 미군정과 소련군정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무시했고 임시정부의 국무위원들은 개인 자격으로 한반도에 귀국했다. 임정 진영을 구성한 정당들은 한국독립당을 제외하고 하나둘씩 탈퇴하기 시작했고, 1946년 1월부터 1948년 8월까지 정치단체(임시정부 국무위원회)로서 활동했지만 김구와 김규식과 신익희의 과두제였으며, 김구 계파와 김규식 계파는 남한만의 단독 선거를 반대하면서 제헌 국회의원 선거 참가를 거부한 덕택에 자연스럽게 한반도의 정계에서 배제되었다.
1948년 5월 10일의 제헌 국회의원 선거를 통해 선출한 제헌 국회는 이승만 계파와 신익희 계파의 협력에 힘입어 7월 12일에 입법한 제헌 헌법을 7월 17일에 정식으로 공포했다. 7월 20일에 간선제로 제1대 대통령 선거를 실행하면서 대한민국 국회의장 이승만을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뽑았고, 8월 15일에 광복 3주년을 기념하면서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했다. 제헌 헌법을 입법할 때 이승만은 임정법통론을 주장하면서 전문에 「기미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라는 문구를 넣었고, 그렇게 3.1 운동의 헌법 이념을 바탕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 북위 38도선 이남의 한반도를 다스리는 제1공화국이 탄생하였다.
3. 6.25 전쟁과 해체
좌익 진영의 대한민국 정부수립 방해 등 명분이 있기는 했으나 반공주의를 빌미로 정권의 입지를 강화하면서 경찰 및 우익단체와 결탁하였고, 그래서 6.25 전쟁 당시 민간인들이 빨갱이로 몰려 학살당하거나 좌익 세력들이 정치적으로 탄압당하기도 했다. 대북정책으로 북진통일을 내세웠고, 6.25 전쟁 중인 1950년 10~11월에 거의 성공할 뻔했지만 중국 인민지원군의 개입으로 전세가 역전되는 바람에 기회를 놓쳤다. 결국 전쟁이 서로 물고 물리는 교착상태에 빠진 끝에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체결되면서 북진통일에 실패하고 다시 실천에 옮기지는 않았다.[15]이후 이승만 정권은 발췌 개헌, 사사오입 개헌 등으로 장기집권을 시도했으나 이반된 민심이 들고일어나면서 4.19 혁명이 벌어졌고 이승만이 하야하면서 제1공화국은 해체되었다.
역대 대한민국 정부들 중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함과 동시에 가장 넓은 영토를 잃기도 한 체제이다. 6.25 전쟁 중 북한의 침공으로 낙동강 방어선 안쪽과 제주도, 일부 도서 지역으로 영토가 축소되었다가 인천 상륙 작전으로 전세가 역전되면서 초산, 혜산, 청진까지 차지했다. 그러나 중국 인민지원군의 개입으로 다시 삼팔선 부근으로 밀려났고 전쟁이 휴전으로 끝남과 동시에 휴전선이 그어지면서 철원, 속초, 설악산 등을 차지한 반면 개성, 연백, 옹진반도 등을 잃었다. 이 상태는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4. 관련 인물
4.1. 정부 및 여당
- 이승만
- 프란체스카 도너
- 이시영[비고]
- 함태영
- 강성태
- 곽영주
- 구용서
- 김대식
- 김도연
- 김동성
- 김동하
- 김마리아
- 김백일
- 김법린
- 김석범
- 김석원
- 김영삼
- 김용우
- 김원태
- 김응조
- 김일환
- 김장섭
- 김정렬
- 김정호
- 김종원
- 김창규
- 김창룡
- 김태선
- 김형근
- 김활란
- 노덕술
- 노진설
- 모윤숙
- 문봉제
- 민복기
- 민희식
- 박마리아
- 박범집
- 박승준
- 박용익
- 박원석
- 박임항
- 박춘식
- 박희현
- 방원철
- 백낙준
- 백두진
- 백선엽
- 백성욱
- 백인엽
- 백한성
- 변영태
- 석주암
- 선우종원
- 손원일
- 송석하
- 송요찬
- 신상묵
- 신성모
- 신용욱
- 신태영
- 신현준
- 안용대
- 안용백
- 안호상
- 양국진
- 여운홍
- 오제도
- 원용덕
- 유재흥
- 유지광
- 윤석구
- 윤치영
- 윤태일
- 이강석
- 이근직
- 이기건
- 이기붕
- 이범석
- 이병도
- 이선근
- 이용
- 이윤영
- 이응준
- 이익흥
- 이인
- 이재학
- 이정재
- 이종린
- 이종욱
- 이종찬
- 이종형
- 이주일
- 이태희
- 이한림
- 이한창
- 이항발
- 이해익
- 이협우
- 이형근
- 이호
- 인태식
- 임문환
- 임병직
- 임영신
- 임철호
- 임화수
- 임흥순
- 장경근
- 장석윤
- 장성환
- 장택상
- 전봉덕
- 전예용
- 전진한
- 정낙훈
- 정래혁
- 정운갑
- 정인보[17]
- 정일권
- 조병옥[비고]
- 조용순
- 조진만
- 지청천
- 차일혁
- 채병덕
- 최난수
- 최덕신
- 최순주
- 최운하
- 최인규
- 최주종
- 최창식
- 최하영
- 탁성록
- 하판락
- 한암회
- 한희석
- 허정
- 홍진기
4.2. 야당
- 김성수
- 장면
- 계훈제
- 고정훈
- 곽상훈
- 구익균
- 김구
- 김규식
- 김대중
- 김두한
- 김말봉
- 김명시
- 김병로
- 김붕준
- 김상덕
- 김성숙
- 김시현
- 김약수
- 김양수
- 김창숙
- 김철수
- 김철호
- 노일환
- 박기출
- 박낙종
- 박순천
- 박열
- 배성룡
- 백관수
- 백남훈
- 서민호
- 서상일
- 송남헌
- 송진우
- 신익희
- 신재모
- 신현모
- 심재인
- 안용봉
- 안재홍
- 양일동
- 엄항섭
- 오화영
- 원세훈
- 유림
- 유우석
- 유진산
- 유진오
- 윤기섭
- 윤보선
- 이관술
- 이병희
- 이을규
- 이철승
- 이효정
- 장건상
- 장병준
- 장연송
- 장준하
- 정일형
- 정현섭
- 조동호
- 조봉암
- 조소앙
- 최능진
- 최동오
- 함석헌
- 홍가륵
5. 관련 사건
- 우키시마호 사건
- 제헌 국회의원 선거
- 제헌 헌법 제정
- 대한민국 정부 수립 선포
-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 제주 4.3 사건[19]
- 제1대 대통령 선거
- 국회 프락치 사건
- 백범 김구 암살 사건
- 청년방위대
- 제2대 국회의원 선거
- 대통령 직선제
- 농지개혁법
- 6.25 전쟁
- 남북한의 전후복구사업
- 뉴델리 밀회 조작사건
- 제2대 대통령 선거
- 단성사 저격 사건
- 대구 매일신문 테러사건
- 제3대 대통령 선거
- 장면 부통령 저격사건
- 경향신문 폐간 사건
- 가짜 이강석 사건
- 닭죽 사건
- 경무대 똥통 사건
- 장충단집회 방해 사건
- 충정로 도끼 사건
- 신국가보안법 제정(보안법 파동)
- 진보당 사건
- 3.15 부정선거
- 고려대학교 4.18 학생 시위
- 4.19 혁명
6. 미디어에서
이 시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 중 대중들에게 가장 익숙한 드라마가 야인시대인데, 최근에 들어서 심영물의 대상이 점점 많아지면서 제1공화국 자체가 합성물의 소재가 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야인시대 합성물 중 최근에 부상하는 인물이 바로 제1공화국의 수장 이승만. 그뿐만 아니라 이기붕, 조병옥 등의 당시 정치인들이 개성을 가진 캐릭터로 부상하고 있다.야인시대 바로 전에 편성된 SBS 대하사극 여인천하의 원작인 월탄 박종화 선생의 소설 <여인천하>의 소재 역시 제1공화국으로, 박종화 선생이 프란체스카 도너, 모윤숙, 박마리아 같은 자들의 치맛자락 정치를 조선시대의 문정왕후, 정난정, 경빈 박씨 등에 빗대어 쓴 것이다.
6.1. 동명의 드라마
7.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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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공화국 | |||||||||||
제2공화국 | 제4공화국 | ||||||||||
박정희 정부 최규하 권한대행 체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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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49년 10월 15일 이전 사괘의 배치가 달라지기 전의 국기.[2] 1948년 7월 24일, 이승만 대통령이 취임했고, 며칠 내에 내각 구성도 완료하면서 제1공화국 정부는 이미 실질적으로 수립되어 그 기능을 수행하고 있었다. '정부수립국민축하식'을 의도적으로 광복절에 맞추어 8월 15일에 거행한 것. 그러나 법률상으로는 정부 수립의 선포까지가 공식적인 정부의 출범 절차이므로 공식 정부 수립 기념일은 8월 15일이다.[3] 승계 여부에 논란이 있다. (임정 법통 논란 참조.) 제1공화국 정부가 당시에 임시정부의 법통을 승계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하자로 인해 발행한 논란이다. 그러나 현행 대한민국 헌법에서 임시정부 법통 계승을 천명하고 있으므로 그것이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4] 헌법상의 영토는 당연히 한반도 전역과 그 부속도서이다.[5] 출처[6] 1954년 11월 15일 ~ 17일 수복지구 행정권 이양식 이후 면적, 다만 국내 상황이 안정되지 않아 미등록 토지를 제외한 면적이다.[7] 제헌 헌법의 전문에는 민주주의제제도라고 적혀 있었다. 현재 학계의 주류적인 학설은 이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또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해석하는 것이다. 헌법적인 취약점을 이용해 비자유민주주의적으로 운용했다고 지적받는다.[8] 제헌 헌법기에는 대통령이 국회에서 선출되는 형태였다.[9] 제헌 때는 단원제로 정하였으나, 제1차 헌법 개정 때 양원제로 바뀐다. 그러나 단원제처럼 운영되었으며 본격적인 양원제는 제2공화국부터다.[10] 사사오입 개헌으로 국무총리직이 폐지되었다.[11] 사사오입 개헌으로 폐지된 국무총리직을 대신하여 국무회의를 조정 및 총괄한 신설 직책이다.[12] 00:20 각계 인사들 중앙청으로
02:15 개회
03:01 이승만 대통령 연설
09:48 맥아더 장군 연설
16:28 하지 장군 연설
20:56 유엔 한국위원단 의장 연설
23:52 주한 미 대사 연설
24:33 폐회
24:45 참석한 내외 귀빈들 퇴장[13] 현수막에 적힌 한자를 그대로 옮긴 것이다.[14] 정부 수립 후 9월 25일 단군기원 연호가 법제화되기 전까지 이승만 행정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사용한 대한민국 연호를 사용하였다. 대한민국 연호 사용 경위에 대해서는 해당 문서 참조.[15] 만약 6.25 전쟁 당시 북진통일을 이루었다면 이승만과 1공화국의 위상은 지금과는 180도 다른 엄청난 신격화가 이루어졌을 것이다. 이승만이 거의 조지 워싱턴+에이브러햄 링컨 수준의 위인으로 대우받았을지도 모르는 일이다.[비고] 내각 사임 후 야당 정치활동.[17] 내각에서 경질됨.[비고] [19] 미군정기에 시작되었지만 제1공화국 시절에 종료되었다.
02:15 개회
03:01 이승만 대통령 연설
09:48 맥아더 장군 연설
16:28 하지 장군 연설
20:56 유엔 한국위원단 의장 연설
23:52 주한 미 대사 연설
24:33 폐회
24:45 참석한 내외 귀빈들 퇴장[13] 현수막에 적힌 한자를 그대로 옮긴 것이다.[14] 정부 수립 후 9월 25일 단군기원 연호가 법제화되기 전까지 이승만 행정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사용한 대한민국 연호를 사용하였다. 대한민국 연호 사용 경위에 대해서는 해당 문서 참조.[15] 만약 6.25 전쟁 당시 북진통일을 이루었다면 이승만과 1공화국의 위상은 지금과는 180도 다른 엄청난 신격화가 이루어졌을 것이다. 이승만이 거의 조지 워싱턴+에이브러햄 링컨 수준의 위인으로 대우받았을지도 모르는 일이다.[비고] 내각 사임 후 야당 정치활동.[17] 내각에서 경질됨.[비고] [19] 미군정기에 시작되었지만 제1공화국 시절에 종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