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1-12 14:00:21

방원철

파일:방원철.jpg

方圓哲
1920년 ~ 1998년 11월 23일

1. 개요2. 생애3. 여담

1. 개요

대한민국의 전 군인.

2. 생애

1920년 중화민국 길림성 연길현[1]에서 태어났다. 부모의 고향은 함경북도 부령군이다. 용정에서 영신소학교와 광명중학교를 졸업했다. 중학 재학시 여운형의 '백의민족의 북진과 장래'라는 강연을 들었고 학교 선배이자 만주군 장교인 정일권으로부터 군관에 지원하라는 강연을 듣게 된다. 그 영향인지 신경군관학교에 입학하여 1942년 제1기로 졸업하면서 만주군 소위로 임관하였다.

주로 팔로군 작전에 종사하던 중, 1945년 8월초 당시 만주군 헌병대문용채로부터 일본이 곧 패망할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 휴가를 내지만 휴가가 연기되는 바람에 실패하고 팔로군 공격 작전을 수행하고 이어 소련군 진격을 막으라는 명령을 받는다. 결국 무장 해제를 당하고 평안북도 신의주부, 황해도 서흥군 화회면 신막동(현 황해북도 서흥군 거문리)을 거쳐 서울로 들어왔다.

군사영어학교에 입교했으나 여운형이 이끄는 조선건국동맹의 만주군 조직책에 포섭되어 월북했다. 김일성을 만난 후 월북한 만주군 출신들과 함께 조선인민군 창설에 간여했다. 그 외 공작원 양성 기관인 진남포학원 교수, 평양사범학교 교원, 김일성대학 인민체육 교수 등을 했는데 동지 박승환이 숙청되면서 예비검속[2]으로 1년 3개월 수감되기도 하고 전찻길을 까는 노역에 동원되기도 하였다. 결국 1948년 중앙경위대 대대장으로 근무하던 중 이재기·최창륜 등과 함께 월남하였다.#

1949년 육군 소령으로 임관한 뒤 초대 전사감, 연대장, 대한민국 육군본부 전투과장 등을 지내면서 대령으로 진급하였다.[3]

1961년 5.16 군사정변에 적극 가담하여 치안국 정보과장으로 있으면서 주한미군쿠데타 세력 간의 불화를 조정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러나 김종필과의 알력으로 반혁명 세력으로 몰려 함경도 출신 만주군 인맥이 대거 숙청당했다.

이후 중앙정보부 대남전력 교수, 6.25참전동지회 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1998년 11월 23일 서울특별시에서 병사했다. 사후 그의 유해는 1998년 12월 29일 국립대전현충원 장병 1묘역(207판-2840호)에 안장되었다.

3. 여담

  • 만주군관학교 신입생 통과의례로 신입생 박정희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고 한다.

[1]중화인민공화국 지린성 연변 조선족 자치주 연길시.[2] 豫備檢束. 아무런 일도 저지르지 않았음에도 어떤 상황에 대비해 사람들을 구속하는 것[3] 군번 1169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