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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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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 선전하는 허구의 항일 무장군사조직에 대한 내용은 조선인민혁명군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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륙군 해군 공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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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군 특수작전군 준군사조직
표어는 조국의 무궁한 번영과 인민의 안녕을 위하여로 변경 }}}}}}}}}

조선인민군
朝鮮人民軍
Korean People's Army
Корейская Народная Арми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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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민군기[뒷면] 휘장
<colbgcolor=#E40001,#000><colcolor=#FFDD0C,#E40001> 국가
[[북한|]][[틀:국기|]][[틀:국기|]]
소속 조선로동당
지위 조선로동당당군
인민군통수권자[2] 김정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무력
최고사령관
)
군령권자 리영길 (총참모장)
군정권자 (정부) 노광철 (국방상)[3]
군정권자 (당) 박정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군정비서 겸 군정지도부장)
상비군 약 1,000,000명 (2024년 8월 기준)[4]
예비군 약 7,000,000명 (2024년 8월 기준)[5]
병역제도 징병제 (양성 징병제)
육군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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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40001,#000><colcolor=#FFDD0C,#E40001> 전차 4,300여 대
장갑차
(APCs/IFVs)
2,600여 대
야포 8,800여 문
다연장로켓 5,500여 문
수송 차량 8,000여 대
지대지유도무기 발사대 100여기[6] }}}}}}}}}
해군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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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colbgcolor=#E40001,#000><colcolor=#FFDD0C,#E40001> 전투함정 420여 척
상륙함정 250여 척
기뢰전 함정(소해정) 20여 척
지원함정 40여 척
잠수함정 70여 척 }}}}}}}}}
공군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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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colbgcolor=#E40001,#000><colcolor=#FFDD0C,#E40001> 전투임무기 810여 대
감시통제기[7] 30여 대
공중기동기[8] 350여 대
훈련기 80여 대
헬리콥터[9] 290여 대
스텔스기 0기
전자전기
(SIGINT/ISTAR)
0기
공중급유기 0기 }}}}}}}}}
1. 개요2. 상세
2.1. 군사적 전술
3. 역사4. 수뇌부5. 예산6. 내부 사정7. 용어8. 여군9. 대외 참전 / 지원 경력
9.1. 직접적인 참전9.2. 무기 수출9.3. 군사 훈련9.4. 기술 이전9.5. 외국과의 조약/관계9.6. 북한의 핵개발
10. 군복11. 군장12. 계급13. 편제14. 관련 문서15. 출처 목록16. 대중매체에서
16.1. 영화 및 드라마16.2. 만화 및 애니메이션16.3. 게임
17.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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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선인민군은 국가방위의 기본력량, 혁명의 주력군으로서 사회주의조국과 당과 혁명을 무장으로 옹호보위하고 당의 령도를 앞장에서 받들어나가는 조선로동당의 혁명적 무장력이다.
조선인민군은 모든 군사정치활동을 당의 령도 밑에 진행한다.
- 조선로동당 규약 제47조 (2021년 1월 개정판)
조선인민군(, Korean People's Army, KPA)은 조선로동당당군이다. 로동당이 국가를 영도하는 북한의 정치체제로 인해 실질적으로는 북한의 국군이라고 봐도 무방하다.[10]

북한에서는 김일성이 세운 부대[11]일본군을 물리쳐서 8.15 광복이 이루어졌으며, 그 부대가 지금의 조선인민군이 되었다고 허위 선전을[12] 한다. 실제로는 1948년 2월 8일에 창설되었으나, 1978년부터는 조선인민군은 김일성의 항일 빨치산전통을 이어받았다는 선전 효과를 위해 김일성이 항일유격대를 창설하여 이 부대가 조선인민군의 전신이라는 말을 꾸미고는, 그 날짜를 1932년 4월 25일이라고 하여 조선인민군의 창설 시기를 앞당겼고, 해당 날짜를 '건군절'로 지정해 공식화한다. 그런데 2018년 1월 22일 정치국 결정서를 통해 건군절을 둘로 분리하여 4월 25일조선인민혁명군 창건일로, 2월 8일은 조선인민군 창건일로 나누고 2018년 2월 8일 열병식을 하겠다고 예고했다. # 2월 8일이 평창 올림픽 개막 하루 전날로 남북한 합동 전야제가 있는 날인데 이와 연계하여 체제 선전을 하려는 목적인 듯하다.

주요 전술로는 총력전, 배합전, 대량 선제 기습 공격 전략, 속전속결 전략이 있다.# 총력전은 우리가 아는 총력전의 의미를 넘어 국가의 모든 분야를 전쟁에 종속시키는 전술이고, 배합전은 전면에서 주력이 남한을 공격하면서 특수부대후방을 교란함으로써 상대 전선의 안팎에서 동시에 전쟁을 치르는 전술이며, 선제 기습 공격 전략과 속전속결 전략은 전쟁 발발 시 빠른 기동력으로 적을 공격하여 전쟁을 빨리 끝내는 전술로 4차 중동전쟁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13] 군 자체에서 "조선인민군"이라는 신문을 발행한다.

2021년 개정 당규약 서문에는 "조선로동당은 (...) 강력한 국방력으로 근원적인 군사적 위협들을 제압하여 조선반도의 안전과 평화적환경을 수호하며 민족자주의 기치, 민족대단결의 기치를 높이 들고 조국의 평화통일을 앞당기고 (...)"라는 문구가 추가되어 군사력을 바탕으로 한 북한에 의한 통일을 위한 목적을 명시적으로 갖게 되었다. # 한국을 소위 '통일' 대상이 아닌 '적국'으로 선언한 2024년 이후에도 건군절 김정은 연설에 따르면 '한국괴뢰족속들을 우리의 전정(前程, 앞길)에 가장 위해로운 제1의 적대국가, 불변의 주적으로 규정하고 유사시 그것들의 영토를 점령, 평정하는 것을 국시로 결정'했다고 하여 평화적 의미와 동포애를 연상시키는 통일이라는 수사와 대비되게, 유사시 한국을 '점령·평정'하는 '국시'를 돕는 목적을 갖는 조직이라고도 할 수 있다.

주적으로 명시한 대한민국에서는 주로 북한군이나 인민군[14]이라고 불리며, 남북간 대립이 한창 심했던 냉전 시대에는 북한괴뢰군이나 북한공산군, 북괴군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2. 상세

조선인민군은 설립 초기부터 김정은 시대 이전까지는 북한 전체의 군대가 아닌, 조선로동당이 소유한 군대였지만 실질적으로는 북한이라는 집단의 국군 기능을 하였다. 이러한 시스템은 공산주의 국가의 당군(黨軍)이나 인민군의 개념을 통해 이해할 수 있는데, 마르크스-레닌주의에서는 '국가 수준의 군대는 부르주아지와 권력자들의 입맛에 맞는 압제의 도구에 속한다'는 카를 마르크스의 오랜 이론에 근거하여 국군의 개념을 부정했다. 그 대신 혁명의 전위주체인 공산당을 수호하기 위해 노동자인민들이 자발적으로 무력집단을 결성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는데 이것이 당군이나 인민군의 개념이다.

북한도 마찬가지여서 조선인민군은 원래는 북한의 공산당인 조선로동당에 속해있었다. 정확히는 북한의 내각 구조 중 국방을 담당하는 부서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를 만들고 그 조선로동당의 당원 중 하나인 김일성이 국방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으면서 김일성이라는 연결고리를 통해 조선로동당의 일원으로 엮여있는 구조였다. 즉 원래대로라면 김일성은 북한 정권에서 군사 부분만 담당하는 당원 중 하나여야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연하지만 혼란한 사회에서 군사권을 손에 쥔 사람이 아무것도 안하고 있으면 그게 오히려 더 이상한 법인지라 이후 김일성이 정권을 휘어잡으면서 내각의 주요 자리들을 '겸임'하는 식으로 북한 정권을 장악하면서 조선로동당 전체가 김일성의 거수기가 되었고 조선인민군도 사실상 조선로동당의 당군에서 김일성 가문사병 조직이 되었다.

이런 '명목상으로만 조선로동당의 군대이고 실질적으로는 김씨왕조의 사병 조직인' 구조는 김정일 시절까지는 유지되었다가 김정은 시대에 국방위원회를 해산하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를 신설하여 모든 업무를 이관함으로서 그 구조가 크게 바뀌었는데, 그 이유는 국방위원회가 실질적으로는 이미 북한의 최고 기관이지만 명목상으로는 어디까지나 조선로동당의 하위 부서 중 하나일 뿐이었기 때문에, 이제는 명목상으로도 공개적으로 조선로동당과 아예 별개의 조직으로 독립시키는 의도 때문이다. 한마디로 그동안 유지하고 있던 '인민군은 조선로동당의 하위 부서이지 수령의 개인 사병이 아니다'라는 가면조차 완전히 벗어던졌다.[15]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그동안은 김씨 일가가 국방위원회 대표가 되는 과정에서 형식적으로나마 조선로동당의 거수 투표를 거쳐야 했던 것을, 이제는 그럴 필요조차 없이 김씨 일가의 후계자는 다이렉트로 국무위원회 대표 자리를 세습할 수 있게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동안 자신들은 세습 국가가 아니라는 가식도 완전히 탈피하고 점점 더 세습 왕조로 변해버렸음을 입증한 셈. 다르게 본다면 군을 이제는 김씨 일가가 직접 통제해야 한다는 일종의 사회적 변화가 닥쳤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현대 한국에서 6.25 전쟁을 다룰 때 조선인민군을 인민군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6.25 전쟁 당시에는 공산군, 북한공산군[16]이라고도 불렸으며, 이후 냉전 시기에는 정부 차원에서 소련 혹은 중공의 꼭두각시 군대라는 멸칭으로 북한괴뢰군,[17] 줄여서 북괴군(北傀軍)이나 아예 괴뢰군이라고 주로 불렀었다. 이 북괴군이란 용어는 1980년대에는 국민학교 1학년 교과서에서도 등장한다. 군사정권 때까지는 이것이 한국 정부나 한국의 언론 국군에서 공식적으로 쓰이는 명칭이었으나 현재는 공식적으로도 비공식적으로도 일반적으로는 쓰이지 않고 '북한군'이라는 호칭이 일반적으로 자주 쓰이는 표현이다. 의외로 북한 주민들도 자국군인 인민군을 공산군이라는 멸칭으로 부르는 경우가 흔하다고 한다.[18]

김정은 집권 이후 이상할 정도로 장성급 장교강등이 자주 발생한다. 장성택, 최룡해, 황병서 등 최고위 장령들조차 조선인민군 차수대장 사이에서 진급과 강등을 반복했다.

각 부대별 지휘부가 대단히 해괴하다. 지휘관, 부지휘관, 참모장, 정치장교 이렇게 네가지 종류의 보직이 지휘관이나 다름없는 역할을 하는데 구조가 굉장히 골때려서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는가 하면 그나마도 당에 대한 충성심이 작전보다 더욱 중요하게 여기다 보니 일부 야전 지휘관들은 맹탕들이 참 많다.
  • 지휘관: 능력은 그닥 중요하지 않으며 당에 대한 충성심 서열을 매겨 충성심이 높은 순서대로 높은 단위의 부대 지휘관에 임명한다.
  • 부지휘관: 실질적으로 지휘 통솔 능력이 뛰어난 인원이 임명되며 그러면서도 지휘관의 통제를 받는다.
  • 참모장: 자신 이외의 다른 수뇌부 구성원들의 의견을 조율해서 의견을 일치시키는 역할을 한다.
  • 정치장교: 인간 CCTV. 위의 세 보직에 종사하는 수뇌부 구성원들이 제대로 하는지 안 하는지 감시하거나 그들에게 감놔라 대추놔라 하는 등의 참견을 일삼는다.

만 17세에 입대하고 # 2021년에 남성 기준 군복무 기간이 7~8년으로 줄었다가, 2023년부터는 군복무 7~8년 끝나고 농촌 일을 3년 동안 해야 전역할 수 있도록 바뀌었으므로 # 올해 20[age(2000-01-01)]년 조선인민군으로 군복무 하고 있는 사람들은[19] 대부분 199[age(2016-01-01)]년생[20][21]~빠른 200[age(2017-01-01)]년생(200[age(2017-01-01)]년 1~3월생)[22][23]이다.

2.1. 군사적 전술

  • 12대 전투원칙: 사실 상당히 뒤떨어진 원칙이다. 화력을 압도하고, 지형을 활용하는 등 한국전쟁,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에나 사용했던 작전으로 현대전에서는 '영공을 점령하는 것'이 승리에 더 가까워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의 공군력이 상당히 처참한 수준이라... 그나마 북한 입장에서 쓸만한 건 항공기의 물량이 대한민국보다 많기에 화력압도와 후방 교란 정도다. 그래서 북한이 지금까지도 열심히 특수부대와 방사포에 집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 전멸소탕: 한미연합군의 후퇴로 부대재편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
    • 기습돌파: 야간, 악천후를 틈타 기습한다.
    • 화력압도: 장사정포 미사일 화력을 전투 초반에 집중적으로 투입해 수도권 주민들의 혼란과 공포심 조장을 위한 목적
    • 기동력: 국군이 기동을 중지한 틈을 타 공격한다.
    • 후방방어: 전투 부대를 지원하기 위한 안전 지대 확보 목적
    • 후방교란: 남한 전력의 분산을 위해 후방을 교란시켜 특수군의 전력을 극대화한다.
    • 협동작전: 육해공군의 협동 작전
    • 전투편성: 사다리꼴 모양으로 편성한다. (제1선 5/9전방, 제2선 3/9후방, 제3선 1/9예비) 개전 초반에 전력을 집중화하기 위한 목적
    • 연합작전: 대한민국 국군의 '소부대 훈련'과 비슷한 개념이다. 대대, 중대, 소대 모든 부대의 통합 작전
    • 병참확보: 전쟁에 있어서는 병참 문제가 제일 크기 때문에 병참부대의 병참선을 확보하기 위한 목적
    • 지형활용: 산악전을 중시한다.
    • 사전정찰: 한미연합군 현황을 사전에 정찰한다.
  • 투입전력
    • 전방지역: 전력의 70% 이상 배치
    • 후방지역: 병력 770만 명의 준군사조직 배치
    • 전시체제: 집단군 전환

    제대 배치부대 역할 인원

    1제대 4개 군단 한미연합군 돌파, 후속 부대의 돌파구 확보 병력 40만 명, 특수군 병력 12만 명

    2제대 1개 포병군단, 1개 기갑군단, 2개 기계화군단 수도권 우회 지방 점령 병력 12만 명

    3제대 2개 기계화군단 공세 시 전력 투입, 후퇴 시 평양 방어 병력 6만 명

    4제대 6개 군단 호위사령부, 평양 방어, 국경 경비 병력 12만 명, 건설 병력 30만 명

3. 역사

조선인민군 깃발[25]
파일:조선인민군기(1948).svg
파일:조선인민군기(1948-1961).svg
<rowcolor=#FFDD0C> 1948년 1948년 ~ 1961년

실질적으로는 소군정이 치안 관리용으로 소련군의 88여단 인사들을 주축으로 북한 내 준군사조직들을 통폐합해 창설한 적위대가 전신이다. 88여단은 중국공산당 산하 무장조직 동북항일연군 멤버들이 소련으로 도피해 산하에 들어간 외인부대인지라 소련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아 북한의 최고 권력층으로 돌변했다. 창군 시기에도 마오주의 계열인 옌안파와 한반도 자생적인 공산주의 계열인 남로당파,소련 이민 2세대가 주축이 된 소련파가 협력했지만 김일성의 빨치산파가 초기부터 주도권을 쥐고 있었다. 지금은 열약한 제식 장비를 지닌 군대지만 그래도 1950년대에는 미군이 6.25 전쟁에 참전하자마자 몇 차례 패퇴시키며 경남까지 쫓아낸 경험이 있었다.[26] 창설 초기 인원들 중에 소련군, 일본군, 중국 팔로군[27]동북항일연군, 그리고 독소전쟁에도 참전해 실전 경험도 있었던 데다 북한군이 쓰던 무기는 소련에서 지원받은 강력한 무기였다.[28][29] 또한, 남침을 위해 수년간 소련 고문관이 파견되어 체계적인 훈련과 소련제 제식 장비를 지원받았으니 6.25 전쟁 초창기 북한군이 보여준 전광석화 같은 남침 속도는 결코 과장된 것이 아녔다. 당장 미국도 초창기 북한군의 훈련 수준과 장비 수준을 얕보고 최초 전투를 벌인 스미스 특임대가 오산시에서 박살나고 뒤이어 천안시에서 M24 채피 경전차로 T-34 중형 전차[30]를 맞상대하려고 했다가 그야말로 참패를 당하고 T-34 쇼크에 빠지기도 했다. 당시 아시아에서 T-34 수준의 기갑 전력을 체계적으로 제식화하여 보유한 국가는 북한이 유일했다.[31] 극동 소련군은 논외로 하고 우리나라의 경우 기갑 병력이라고 부르기도 초라한 그레이하운드 장갑차에[32] 일본은 태평양 전쟁 직후라서 군대 자체가 와해된 상황이었고 중국의 경우 국공내전으로 인해 체계적인 기갑 병력 육성은[33] 물론 군대 자체가 체계화되지 못했던 상황이었다.[34] 종전 이후 스멀스멀 다시 기어돌아오는 유럽 국가들에 의해 독립하지 못하던 동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는 말 할 필요도 없다. 당시 아시아 전지역에서 북한의 전력은 결코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었다. 기갑전력 뿐만 아니라 공군까지 완편되었고 여기에 더해 소수이지만 일본군 출신 파일럿도 영입한 상태였다. 소련측의 주도로 사단급 훈련도 마쳤고 당시 북한군의 전력은 한국군의 5배였다. 보통 공격자가 방어자보다 3배의 전력을 갖추었을 때 공격하는 점을 미루어 보면 당시 김일성과 북한 당국이 얼마나 철저하고 치밀하게 전쟁 준비를 했는지 알 수 있다.

1945년 10월 21일, 소련 제25군 사령부의 명령으로 보안대가 창설되고 이 과정에서 조선의용군이 배제된다. 보안대의 임무가 철도안전을 포함한 형태의 임무확대가 되어서 1946년 1월 16일에 철도보안대가 추가로 창설되었고,[35] 현재도 북한 군인들의 신분은 철도보안원을 겸임할 정도로 이 철도보안대가 북한군의 전신으로 여겨지고 있다.[36] 그리고 군내 정치사상 교육과 군사분야의 간부 양성을 위해 1946년 2월, 평양학원[37]과 6월, 중앙보안간부학교[38] 등의 군사교육기관을 설립하였다. 7월 중순, 각 도에 설치된 철도보안대가 북조선철도경비대로 통합된다. 1946년 8월 15일, 규모가 확대된 보안대를 통합·지도하기 위해 평양에 보안간부훈련대대부를 창설했고, 미·소 대립이 심화되던 시기인 1947년 5월에 보안간부훈련대대부가 북조선인민집단군사령부로 개편된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기존 무력조직들이 일괄적으로 북조선인민집단군 산하로 개편되면서 준군사조직의 위장을 걷어내고 정규군의 형태를 띠게 된다. 북조선인민집단군은 이후 9개월여 동안 소련군의 지원을 받아 무장과 훈련을 증강했고, 북한 정부수립 7개월 전인 1948년 2월 4일에는 민족보위국이 설립되었고, 나흘 후인 8일에는 마침내 조선인민군이 창설된다.
1948년 2월 8일, 평양역 앞 광장에서 열린 조선인민군 창설식에서 연설하는 김일성과 군악대에 의해 연주되는 올드 랭 사인 애국가.

조선의용군은 1949년 7~8월에 2만 명이 북한으로 들어옴으로써 북한군에 최초로 합류하게 되며, 1950년 5월에 추가로 약 2만 명 가량이 입북한다. 이로 인하여 중국공산당과 함께 활동한 군대 출신인 경우가 많게 된다. 먼저 김원봉조선의용대에서 이탈해 중국 연안 지방으로 간 군대인 조선의용군이 있다. 또 조선의용군과 함께 태항산에서 결성된 화북 조선 독립동맹의 일부 인원도 포함된다. 그리고 만주에서 활동했던 동북항일연군도 조선인민군에 포함되는데, 이 동북항일연군은 완벽히 통일된 군대는 아니었고 만주 일대의 공산주의 계열 유격대들을 공산당 주도로 통합한 일종의 통일전선 연합체 성격을 띄었다고 한다. 김일성이 제1로군 2군 6사의 대장이었다. 김일성은 이후 만주에서 활동할 수 없는 수준으로 탄압을 받자, 소련으로 넘어가서 소련 극동군 제88 국제여단에 합류한다. 여기에 추가로 소련에서 활동하던 소련 유학파 등이 모여서 형성되었다. 그래서 북한에서는 동북항일연군의 김일성부대의 모태가 되는 조선인민혁명군을 조선인민군의 뿌리로 소급하기도 한다.

이들은 처음에는 느슨한 분위기의 군사조직 연합으로 구성되었다. 이러한 점을 두고 북한에서는 '민족적 단결을 통한 인민의 군대 창설'로 평가한다. 6.25 전쟁 당시 서울이 점령되고 나서 북한군이 서울에 주둔할 때 야전병원에서 부상병들을 치료한 간호사나 의사들의 말에 따르면 소위 말하는 연안파, 다시 말해 조선의용대 출신 인원들이 김일성과 그의 직통 라인인 소련 극동군 88여단 출신 인물들보다 상당히 푸대접을 받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연안파 군인들은 공공연히 이러한 불만을 표출했다고 전해진다.

이후 북한의 경제력이 상대적으로 우월했던, 1970년대 초반까지는 한국과 1대1로 이길 가능성이 남는 상태의 군사력을 유지해왔으나,[39] 70년대 중후반부터 균형이 서서히 바뀌어 80년대에는 북한이 승리를 거두는 것이 어렵게 되었고, 서울불바다 발언을 마지막으로 고난의 행군과 함께 한국을 군사력으로 이길 수 있다는 북한군 입장의 희망이 꺾이게 되었다.[40]

현재 정규군 약 128만 명과 예비전력 762만 명[41] 총합 약 990만 명을 보유하고 있다. 병력 규모만으론 세계 4위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전체 인구수 2,700만 명과 대비하면 대략 35%로 군국주의의 궁극적 표상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군인의 비중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 하지만 그 인원도 그저 부족한 전투력을 메꾸기 위한 조치로 생각될 정도로 제대로 된 체계를 갖춘 것은 아니다. 세계에서 4위의 병력을 가지고 있는 그 북한군의 군사력 순위는 기껏해야 20위 후반이었는데 40여 개의 나라가 추가되면서 35위로 또 떨어졌다. 평가된 나라가 68개국에서 106개국으로 늘었지만 세계 상위권 군사력을 가진 국가들은 오래전부터 포함되어 있었기에 국가 비율만큼 순위가 떨어지지 않는다. 다만 2003년까지는 명목상으로는 초모 형식의 모병제라서 이 당시에는 군대에 가기 싫은 사람은 안 가도되었지만, 제대후에 배급을 많이 주고 좋은 직장에 배치하는 등 이런저런 혜택을 많이 주었고, 군대에 오래복무하면 복무할수록 조선로동당에 입당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에 사실상 징병제처럼 돌아가는 명목상 모병제 국가 답지 않게 실제 자원입대율은 높은 편이었다. 그러나 복무기간 연장을 통한 방법으로 군대의 규모를 무리하게 키우다보니 예산부담이 커져서 군대에서 별도의 사업체를 운영할수있도록하는 체계를 갖추었으며 1990년대 이래로 경제난으로 북한의 예산부족 문제가 심각한 상태에서 그나마 제대로 돌아가는것이 군대이다보니까 군수기업의 비중은 더욱 커졌다. 경제력이 부실한 북한에서는 거대한 병력수를 유지하는 것은 힘의 균형을 억지로라도 유지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어서이기도 하지만,[42] 그것뿐만이 아니더라도 군수기업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도 싸게 부려먹을 수 있는 군인들에 대한 수요가 많기도 하고, 인건비 날로먹기 경제상황이 낙후되었고, 국제재제로 경제성장에 제약이 많은 북한의 현실상 군복무기간을 무턱대고 단축시키기에는 애로사항이 있는것이 그 많은 군인들이 실업자가 되거나 실업자나 다를바 없는 수준의 푼돈으로 하루벌어 하루사는 신세나 될 게 뻔하기 때문에 사회불안요인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군인수를 과도하게 유지시키는 것이 그나마 북한의 실업률을 억지로라도 낮추면서 사회불만을 그나마 줄이는 역할을 하고있다는 것이다. 즉, 이들을 안정적인 직장에 취직시킬 여유가 없으니 허울뿐일지라도 감투와 밥이라도 주어서 남게해야될 필요는 있다는 것이고, 이것이 김정일 시대 때 북한의 군 복무기간이 최대 13년까지 연장된 이유 중 하나였다. 즉, 북한군의 무리한 군인수 증가에는 경제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서 빈곤층이 급속히 늘어나자, 이러한 빈곤층들을 그나마 밥은 주는[43] 군대에 감투와 밥을 주면서 묶어버린 궁여지책스러운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6.25 전쟁 당시의 조선인민군과 조선의용군을 헷갈리는 사람들이 있는데, 인민군은 북한의 정규군이고 의용군은 6.25 전쟁 당시 한반도 남부 지역에서 자원 또는 징집된 인원으로 편성된 군대를 이야기한다. 당연하게도 이 의용군은 북한 정규군에 비해 차별을 받았고, 휴전 후 포로 교환을 할 때도 공포 분위기를 조성해서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이 다수라고 한다.[44]

4. 수뇌부

파일:2021년도 조선인민군 지휘체계.png

파일:조선인민군 휘장.svg
조선인민군 현직 수뇌부
{{{#fff {{{#!wiki style="margin:-0px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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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위원장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무력 최고사령관
조선로동당 총비서 겸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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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국 대원수 김정은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조선로동당 군정지도부장 총참모장 국방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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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민군 원수 리병철
파일:1920px-Marshal_of_the_KPA_rank_insignia.svg.png
조선인민군 원수 박정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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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민군 차수 리영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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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대장 노광철
총정치국장 사회안전상 보위국장 미싸일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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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대장 정경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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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안전군 상장 방두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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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대장 조경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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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대장 장창하
국방성 제1부상 조선로동당 민방위부장 공군사령관 해군사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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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대장 김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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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대장 오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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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대장 김광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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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대장 김명식
전략군사령관 특수작전군사령관 국가보위상 정찰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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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상장 김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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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중장 리봉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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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상장 리창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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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중장 리창호
호위사령관 국무위원회 경위국장 만경대혁명학원 원장 강반석혁명학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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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상장 곽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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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상장 김철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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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소장 김성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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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소장 방금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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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민군은 조선로동당의 군대이다. 현재 통수권자는 조선로동당 총비서이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장이자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장이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무력 최고사령관 김정은이다.

그 외 군 간부들은 조선인민군/장관급 장교 문서를 참조.

5. 예산

북한은 폐쇄적인 국가라 정확한 예산 수치를 알아내는 것은 힘들다. 그러나 국내외 군사전문가들과 정보기관들은 여러가지 데이터들을 통해 추정하는데에는 성공했다.
2015년 13억 달러
2016년 14억 달러
2017년 13억 달러 이상
2018년 14억 달러
2019년 15억 달러 이상
2020년 16억 달러 이상
2021년 15억 달러 이상
2022년 15억 달러 이상
2023년 14억 달러 이상
2024년 14억 7000만 달러
2025년 14억 달러 이상
2026년 15억 달러
2027년 15억 달러 이상
2028년 15억 달러 이상
2029년 16억 달러
2030년 16억 달러 이상
2016년 부터 2020년 까지는 국방예산이 16억 달러(한화로 2조 1400억 원)까지 증가했지만 국경 봉쇄와 북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대유행으로 인해 제대로 타격을 입어 2023년까지 다시 국방예산이 14억 달러로 주저앉았다. 2024년 부터 다시 국방예산이 소폭 증가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인플레이션 때문에 실질적인 성과를 거둔다고 보기는 어렵다.
제인스에서 파악한 국방 예산 구조(2024년 기준)
전력 증강비 약 1억 8000만 달러 이상 12.24%
연구 개발비 약 2000만 달러 이상 1.36%
병력 유지비 약 8억 5000만 달러 이상 57.82%
전력 운용비 약 3억 달러 이상 20.41%
기타 약 1000만 달러 이상 0.68%
북한은 극단적인 1인 독재체제의 국가이기 때문에 인건비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북한은 어차피 당과 최고지도자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체제이기 때문에 필요에 따라 또 다른 예산이나 기타 자금이 핵개발 비용으로 충당될 수 있는 체제이다.[45] 즉, 터무니 없이 적어 보이는 예산으로도 핵과 미사일 개발을 진행할 수는 있다.
남북한 군비 비교(2024년 도 환율 기준)
2019년 대한민국 351억 달러 이상 북한 15억 달러 이상
2020년 대한민국 375억 달러 이상 북한 16억 달러 이상
2021년 대한민국 395억 달러 이상 북한 15억 달러 이상
2022년 대한민국 408억 달러 이상 북한 15억 달러 이상
2023년 대한민국 421억 달러 이상 북한 14억 달러 이상
2024년 대한민국 426억 달러 이상 북한 14억 7000만 달러
2025년 대한민국 480억 달러 이상 북한 14억 달러 이상
2026년 대한민국 523억 달러 이상 북한 15억 달러
2027년 대한민국 559억 달러 이상 북한 15억 달러 이상
2028년 대한민국 598억 달러 이상 북한 15억 달러 이상
  • 미국 국무부 발 '세계 군사비 지출 및 무기 이전'(World Military Expenditures and Arms Transfers) 보고서 자료#
2009년 약 36억 달러
2010년 약 30억 달러
2011년 약 33억 5000만 달러
2012년 약 35억 1000만 달러
2013년 약 39억 1000만 달러
2014년 약 41억 2000만 달러
2015년 약 42억 5000만 달러
2016년 약 43억 달러
2017년 약 44억 9000만 달러
2018년 약 44억 9000만 달러
2019년 약 46억 4000만 달러

북한은 한 해에 GDP의 20~25%, 전체 예산 대비 15% 이상을 군비에 투자하고 있다. 이는 GDP 대비 비율로만 따지자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치이다. 하지만 북한의 경제 규모 자체가 매우 작다보니 국방예산 전체총액으로 따지자면 세계 중하위권 수준이다. 대한민국 해군의 이지스함인 정조대왕급 구축함의 가격(1조 3000억 원)이 북한 전체 국방예산의 5분의 1 이상을 차지할 정도이다.

6. 내부 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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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용어

대한민국 국군에도 은어가 존재하듯이 조선인민군에도 역시 은어가 존재한다.

8. 여군

2015년부터 이스라엘처럼 여성들에게도 병역 의무가 주어진다.

많은 사람들이 북한 여성들은 모두 2년 국방의 의무가 주어진다고 했지만 이것은 루머다. 김일성, 김정일 시대만 해도 북한 여성들은 일주일 군사 훈련을 받은 게 전부였다. 예비군에 준하는 정도로 생각하면 되겠다.[46] 사실 2003년 제정된 군사복무법으로 인해 남성 10년, 여성 7년의 복무기간이 명문화되긴 했으나, 기존의 남성들만 징집해도 120만 대군을 유지할 수 있어서 사실상 여성은 징집이 아닌 지원제에 가까웠다. 그러나 후술할 1995년 닥친 고난의 행군의 여파로 인해 여성징병제가 본격 실시된 것이다.

하지만 김정은이 전면적으로 여성들을 징병 대상으로 바꾸었으므로 이제 북한은 일반 여성들도 남자들처럼 신체검사를 받고 군에 입대하게 되어 7년의 의무 병역을 마쳐야 한다.[47] 물론 여전히 남군(男軍)에 비해 비율은 낮겠지만 기존의 25%라는 수치에서 훨씬 더 높아진다는 것은 분명하고 그 비율은 점점 높아질 것이다. 이 정도가 되면 거의 유례 없는 군국(軍國)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48] 여성징병제를 하는 다른 나라를 보자면 노르웨이는 현역과 예비역 중에서 선택해서 복무할 수 있고 이스라엘은 결혼을 빨리 하면 병역이 면제되는 등 이런저런 방법으로 굳이 현역으로 복무해야 할 필요가 없는 군대인 반면 북한의 조선인민군은 모든 종류의 병역을 당이 정해주는 대로 이행해야만 하는 문제점으로 인해 여성들도 얄짤없이 현역으로 마구 끌려가는데 그 중에서 미모가 뛰어난 편에 속하면 얄짤없이 기쁨조로 징병당한다.

이런 무자비한 징병제 탓에, 북한은 전세계 인구 대비 군인 비율 1위(5%), 전세계 군 내부 여군 비율 1위(30%)라는 세계적 기록을 세웠다.

이런 극단적인 상황까지 와 버린 가장 큰 원인은 고난의 행군이 원인이다. 이 당시의 기근으로 인해서 3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죽어나갔다. 흔히 생각하는 영양 부족은 사실 그 이전에도 연명할 정도로만[49] 배급을 했기 때문에 탈북민 대상 신장 조사에 따르면 신장이 변동이 없이 남성 평균신장은 160cm 초중반으로 일제강점기 수준을 유지는 했다.

그런데 빈부 격차가 북한은 아주 심하여[50], 저출산이 빈국치고는 대단히 극심하여 한국은행의 2023년 조사[51]에 따르면 고난의 행군 이후 학교의 한 반 인원이 40명대에서 20명대로 줄었고, 60년대생 기준 1.9명대 정도로 낳던 사람들이 70년대생 부터는 1.57명 정도를 낳기 시작했다. 고난의 행군의 트라우마로 자식을 안 가지려고 하는 사람이 많았고, 사회주의의 지향과 달리 일과 가정의 양립의 개념이 전무하고 북한에서 시장 활동을 '장려'는 할 수 없었기에 여성이 주로 하는 장사에 참여한 사람들은 더 자식을 가지지 않았다. #

국군이 겪던 저출산으로 인해 징집 기준을 낮추는 문제가 북한에도 있었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이들 세대가 징병된 시기인 2000년대에는 신체기준에 미달하는 사람이 많아져서 병역기간을 늘렸음에도 120만여 명이라는 상비군의 숫자를 충당하기 어려워졌다. 이런 탓에 입대 기준을 대폭 낮춰서 키 140cm대인 단신까지 징병하는 것은 물론이요, 심지어는 복무 기한을 다 채우고 제대해야 할 병사들조차 도로 붙잡아 놓는 무시무시한 경우도 많다고 한다. 불행하게도 북한에서는 이런 명백한 불합리에조차 항의할 수 없다.

남자의 병역 의무를 13년으로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기도 했지만 이미 실패한 전례가 있어 여성에게 병역 의무를 부과하는 방향이 됐다고 한다. 현재는 이미 2020년대이므로 이 정책이 진짜 시행되었다면 상당수 여군이 입대하여 이미 복무 중일 것이다.

아시아프레스의 조사에서는 2020년 기준으로 군 복무가 남자는 11년, 여자는 7년이라고 한다.북한군의 병역 의무

2021년 2월에는 남자 8년, 여자 5년으로 군 복무 기간을 대대적으로 감축했는데[52] 먹여살릴 입을 조금이라도 더 줄이는 것과 더불어 인력이 크게 부족한 북한 내 3D업종인 탄광, 건설노무대, 기타 열악한 직종에 더 빨리 배치시키기 위함이다. 원래도 북한군은 전역자들을 이런 데 자주 집단배치시켰으나 전반적인 저출산과 인구 감소로 인해서 그 시기를 앞당긴 것. 군인들이 좋아할 것 같지만 여군들을 제외하면[53] 오히려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는데, 그 이유는 군 복무 10년차 이상이 되어야 로동당 추천을 받을 자격이 주어지는 등 군복무에 따른 혜택을 본격적으로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2~3년 만에 빨리 전역시키는 것도 아니고 어중간하게 8년 전역으로 별다른 혜택도 없이 3D업종에서 일하라고 강요하면 반발이 커지는 것은 당연지사. 당연히 배치된 곳에서 될대로 되라고 막나가는 전역자들이 많은데 사회안전원들도 답이 없다 보니 대놓고 체제를 거스르는 행위를 하거나 김정은을 욕하는 수준까지만 아니라면 사실상 내버려둔다고 한다.

문제는 이런 무리한 징병이 오히려 북한 스스로의 숨통을 조이는 자살 행위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남자를 8년 이상이나 군대에 가둬 두는 탓에, 가뜩이나 국력도 바닥인데 그나마 경제 활동을 할 수 있는 일손들을 전부 군대로 내던져 버리니 악순환이 가속될 수밖에 없다. 그나마 그렇게 발악하며 긁어모은 군인들조차 신체기준을 왕창 낮춰 억지로 군에 들여놓은 사람들이다 보니 인적 자원의 질이 형편없다. 더구나 기존의 북한군조차 원활한 보급을 받지 못해 극심한 식량난과 영양실조를 겪고 있는 판에, 유지비가 훨씬 많이 드는 여군이 제대로 된 보급을 받을 수 있을지는 굉장히 의문이다. 다만 북한 여군들은 신체조건 탓에 보통 비전투 병과에 배치하는 편이라곤 한다. 사실 남군들도 체력이 바닥인데 여군들을 전투병과에 배치하는 건 그 북한군 수뇌부도 불가능하단 것을 알 것이다.

9. 대외 참전 / 지원 경력

9.1. 직접적인 참전

  • 베트남 전쟁
    조선인민군 첫 파병 전쟁으로 북베트남을 소극적으로 지원했다. 당시 북한의 슬로건은 '윁남(베트남) 전선에서 미군이 100명 죽으면 남조선에 있는 미군이 100명 죽는 것이나 같으므로 베트콩을 도와주어야 한다'였다. 1967년에는 전투기 조종사,[54] 1972년에는 공작원을 베트남에 파견해 게릴라 활동을 지원하였다. 기타 수송병, 화학병, 공병, 심리전 요원 등의 형태로 소규모 참전하였다. 총 200~300여명이 참전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최소 14명이 전사했다.# 2000년 북한 외무상이 베트남에 있던 조선인민군 묘지에 참배하며 그 존재가 알려졌고, 2002년 이들의 유해는 북한으로 송환되었으나 묘역 자체는 아직도 유지되고 있다고 한다.

    북베트남은 훗날 조선인민군이 요구한 서방진영 군수품을 제대로 제공하지 않았던 것 같다. 전쟁이 끝난 후 베트남은 중국과 사이가 벌어졌는데, 이때 친중국 정책을 취하던 북한과도 사이가 벌어졌다. 다만 F-5A-37 등의 공군 항공기와 M48 전차, M16 소총 등 각종 육군 무기가 북베트남군에 노획되었고, 이 중 일부는 공산국가로 흘러들어간 점 등을 봤을 때[55] 소량이라도 노획품을 제공했을 것이다. 폴란드의 경우 북베트남에게 인계받은 F-5와 A-37을 국영 박물관에 전시하고 있으며, 1996년에 귀순한 조선인민군 출신 전투기 조종사 이철수 대위는 F-5를 조종한 선임을 맞이했다고 증언한 적이 있다.
  • 제4차 중동전쟁
    1973년 10월에 발발한 제4차 중동전쟁[56] 당시 이집트에 미사일 요원 30명과 전투기 조종사 및 정비사 50명을 파견했다. 이스라엘군과의 공중전으로 북한 조종사가 조종하던 MiG-21 1기가 격추된 적이 있다고 하며 이들이 어떤 전과를 올렸는지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없다. 이때 파견된 사람 중 하나가 빌 클린턴 대통령 시절 미국을 방문한 조명록 차수(당시 대좌). 당시 공군 사령관이었던 호스니 무바라크는 대통령이 된 후 은혜를 갚기 위해 "김일성이 사망할 때까지 대한민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하지 않겠다"고 했고 이를 끝까지 지켜 김일성이 죽고 난 다음해인 95년 수교 협정에 서명한다.
  • 시리아 내전
    다수의 특수부대원과 군사고문단, 기갑 승무원들이 파병되어 있다. 일부는 전투에 참여했다는 이야기도 있으며, 바샤르 알 아사드의 군대 편을 들고 있다.
  •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2024년 10월 조선인민군이 우크라이나에 파병되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으며 증거로 제시된 사진 및 영상 자료로 보아 사실로 보인다. 보도에 의하면 이미 선발대 1500여명이 파병되었고 총 12000명이 파병될 예정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보도가 사실이라면 많아야 수십~수백 명의 소규모 파병만을 해왔던 조선인민군이 최초로 4~5자릿수 단위의 대규모 파병을 하는 것이다. 조선인민군이 그동안 벌여왔던 소규모 국지전이나 무력도발이 아닌 진짜 전쟁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큰 주목을 받고있으며 실전 경험을 통해 전술적으로 발전할 것에 대한 우려도 있다.[57]
  • 기타
    비동맹회의에 가입한 아프리카의 여러 국가에 80년대부터 군사고문단을 파견했다. 리비아에도 북한의 군사고문단이 파견되었다. 프란스 알버트 레네 대통령 치하의 세이셸에 전투기 조종사를 파견했다. 동남아시아 브루나이캄보디아에서 저격여단 요원들이 경호 업무를 수행했다.

9.2. 무기 수출

북한은 1960년대부터 중동, 아프리카, 동남아, 중남미 등 전 세계적으로 무기를 수출(내지 밀매)하고 있다. 1980년대의 전성기 때는 연간 5억 달러가량을 벌었으나, 2000년대부터 국제 사회의 감시가 심해지자 연간 1억 달러 정도로 수입이 줄어들었다. 뉴욕 타임스는 "북한의 무기는 저렴하면서도 위력적이기에 경제가 어려운 국가들에게 딱 맞다"고 평하였다.

북한이 수출하고 있는 무기들은 딱히 첨단 기술이 크게 필요하지 않는 것들이 대부분이고, 가난한 국가에 판매할 정도의 성능은 되는 듯하다. 애초에 빈국 대부분은 무기의 질까지 따질 정도로 주머니 사정이 좋지는 않은 경우가 많다. 북한제 무기가 아무리 최하급이라 해도, 어쨌든 근본은 제대로 검증된 소련제 설계도를 이용해 공장에서 만들어진 공산품이니 급조 총기를 대량으로 생산하는 것보다는 당연히 성능이 좋을 것이고, 또한 그런 공산품치고 전 세계에서 최고로 싼 가격을 자랑하니 빈국 입장에서는 매우 좋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프리카에서는, 디디에 라치라카 대통령 치하의 마다가스카르에 고사기관총 등의 무기들을 대여하거나 수출했다. 2007년 1월 비로봉호를 통해 3,400여t의 무기를 콩고민주공화국에 수출했다. 2009년콩고를 향하던 화물선이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임검당해 T-55 전차 부품 등을 압류당했다.

중동에서는,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스커드 미사일, 곡산형 자주포[58]이란에 수출했다. 곡산형 자주포 중 일부는 이라크군에 노획되어 이라크 전쟁에 사용되었으며, 최소 2문 이상이 밀수를 통해 한국군에 넘어갔다. 1987년 4월 이란에 차호급 경비정(80t대) 3척을 수출하였다. 1990년 11월경 타막골호를 통해 시리아에 스커드 C 미사일 80여 기를 수출했다. 레바논팔레스타인에 M-1985 240mm 다연장로켓을 수출하였으며, 이는 이스라엘군과의 전쟁에 사용되고 있다.

아시아에서는,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당시 아프가니스탄군이 북한제 140mm 다연장로켓 BM-14를 사용했다. 2009년 미얀마에 M-1991 240mm 다연장로켓을 최소 14문 이상 수출한 것이 확인되었다.

이런 '알려진' 수출 행위 외에도 비밀리에 '수출'을 행하는 경우도 빈번히 있다. 2009년 무기를 수출하려다가 태국군에 의해 압수되었다. 목적지는 이란, 스리랑카, 우크라이나 등으로 추측되고 있다. RPG-7, 맨패즈, M-1985 240mm 다연장로켓, 대포동 2호의 부품 등이 발견되었다.

2010-2011 아랍권 민주화 운동 당시 벌어진 리비아 내전 도중 리비아 정부군이 퇴각하면서 놓고 간 북한산 무기가 잔뜩 발견되었다. 불도저 부품이라는 식으로 위장 포장을 해서 들여온 건데 포장지에 당당하게 북한의 국명이 영문으로 적혀있는 데다가 완제품 무기에도 한글이 적혀있어서 의심의 여지도 없게 되었다.

또한 북한이 헤즈볼라, 하마스를 대상으로 무기 장사를 한다는 게 확인됐다. 기사.

미국의 대북제재가 심화된 근래 상황에서 무기 수출로가 막히자 소말리아 해적에게 연어급 잠수정을 팔아먹으려던 정황도 포착되었다. 판매는 못했지만 가능성이 확인된 셈. 연어급 잠수정은 나름 천안함을 격침시킨 놈이다!

이를 잘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잠복이다.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북한이 러시아에 무기와 탄약을 판매했다는 뉴욕 타임즈 보도가 있다. #

9.3. 군사 훈련

디디에 라치라카 대통령 치하의 마다가스카르에서 대통령경호여단을 훈련시켰다.

1983년 로버트 무가베 대통령 치하의 짐바브웨에 교관 130명을 파견해 대통령경호여단[59]을 훈련시켰다. 이 여단이 무가베의 반대 정파에 대한 대규모의 민간인 학살을 저지른 전과 때문에, 2010년에는 일부 짐바브웨 국민들은 북한을 증오하고 있다. 무가베는 오마르 알 바시르 수단 대통령(2위)와 김정일(3위)보다 더한 세계 최고의 독재자로 선정된 인물로, 짐바브웨의 인플레이션을 세계 1위로 만들었다. 짐바브웨는 끝내주는 친북 국가로, 관공서에는 주체사상 전집이 놓여 있다든가 무가베의 사진과 김일성의 사진이 나란히 걸려있다든가라는 흠좀무한 국가다. 94년 김일성이 사망하자 부통령을 위원장에 임명하여 추모위원회를 만들었고, 심지어 매년 김일성이 사망한 달을 애도 기간으로 지정해놓고 행사를 연다고 한다.

IRA, 하마스헤즈볼라, 소말리아 군벌 등의 무장단체를 훈련시켰다.

2007년 5월 콩고민주공화국의 정부군을 훈련시켰다.

현재에도 캄보디아의 왕궁 경호원들을 훈련시키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9.4. 기술 이전

1994년~1998년경 이란은 북한의 '로동 1호' 개발비 전액과 부품을 제공했다고 알려졌다. 그 대가로 기술 이전을 통해 이란의 탄도미사일 샤하브-3, 파키스탄의 탄도미사일 가우리-1가 만들어졌다. 이 외에 미얀마 등 제3세계 국가들에게도 미사일 기술을 전파하고 있다는 의혹이 있다.

9.5. 외국과의 조약/관계

조-중 우호협력 및 상호원조조약은 전쟁 상태에 놓일 때 중국이 자동개입하도록 되어 있다. 다만 중국으로서도 미국과의 전면적 대립은 피하고 싶은 상황인 만큼 북한이 핵이나 생화학 무기등을 미국과 미국의 동맹국에 사용할 시에는 이탈할 가능성도 있다. 계속되는 북한의 핵개발과 미사일 도발로 인해 북중관계가 나날이 악화되어 중국 내부에서도 "북한을 포기하라" "군사개입 조항을 삭제하라"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 조약에 의거하여 중국 인민해방군의 교육기관에서 북한군 장교들이 교육 이수를 받는 등 인적교류를 하고 있으며 공공연한 비밀로서 중국의 비공식적인 군사원조 혹은 지원을 받고있다.

특히, 2조 조항의 의미를 많이 상실을 했는데, 제2조는 “체약 일방이 어떠한 한 개의 국가 또는 몇 개 국가들의 연합으로부터 무력 침공을 당함으로써 전쟁 상태에 처하게 되는 경우에 체약 상대방은 모든 힘을 다하여 지체 없이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3월 인줘(尹卓) 중국 인민해방군 해군 소장이 언론 인터뷰에서 한·미·일 동맹과 달리 북·중 동맹은 군사 동맹이 아니라는 뜻을 밝히는 등 이 조항은 이미 중국 정부 내에서 논란의 대상이 된 지 오래다. 인줘 소장은 당시 “중국이 북한에 군대를 주둔하고 있느냐. 중국이 북한 인민군을 지휘하느냐”고 반문했다.

1조에서 ‘조약 당사국 쌍방은 아시아와 세계의 평화와 각국 인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위 글대로 계속되는 핵실험과 미사일 실험으로 인해 접경지역 주민들이 짜증이 가득하며, 조약에 위배되는 사항이다.

기타로 모잠비크, 리비아, 쿠바, 몽골 등과 협력 조약을 체결했다.

그 외에도 미얀마 군사정부와 모종의 관계를 설립했다. 두 국가 모두 서방권과는 왕따된 형편.

러시아는 과거, 소련시절에 조소우호협력및상호원조조약을 맺었지만 보리스 옐친이 김일성에 대한 반감과 더불어[60] 대한민국과의 외교 관계 개선으로 소련-북한간 조약을 무효화 시켰다. 하지만 2024년 푸틴이 북한을 방문하여 김정은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로씨야련방사이의 포괄적인 전략적동반자관계에 관한 조약을 체결하면서 이와 유사한 조약이 체결되었다.

9.6. 북한의 핵개발

파일:external/img.imnews.imbc.com/DN19970010-00_01060724.jpg
1997년에 망명한 황장엽은 회견에서 북한의 핵무기 보유에 대해서도 언급하는데 "이미 북한 내부에서 핵무기 보유는 상식화되어 있고 지난 85년 소련 측이 핵개발을 문제 삼자 김일성 부자가 이를 무시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혀, 북한의 핵 개발계획이 이미 80년대 중반부터 시작됐다. "자신은 핵관련 시설을 직접 본 적은 없으나 92년 국제 원자력 기구의 특별 사찰을 피하기 위해 핵 확산 방지조약에서 탈퇴하는 것을 보면서 조선로동당의 비서들은 모두 핵 보유를 믿게 됐다"고 밝혀, "북한의 핵 개발계획이 이미 80년대 중반부터 시작됐고 이미 북한이 핵무기까지 보유했다는 것(1997년 당시)으로 북한에서는 모두들 이렇게 알고(믿고) 있다"고 폭로하여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KBS, MBC, 조선일보, 또한 당시 김정일은 "북한이 없는 지구는 존재할 필요가 없으며 북한이 망하면 세계와 함께 자폭하겠다는" 극언을 내뱉었다고 황장엽은 증언했다. 또한 당시 북한 당국에서는 "지금까지의 전쟁에서는 미국에 포탄하나 떨어진 적 없지만 앞으로 북한과의 전쟁에서는 다르다"라며 "미국에도 북한군이 상륙할 수 있다"라고 주민들에게 선동하고 있다며 증언하기도 했다. 동아일보, 경향신문

1985년 당시 소련 측이 북한의 핵개발을 문제삼은 이 내용은 지난 1994년 러시아 관계자들에게도 나온 이야기였다. 1994년 러시아 국가안보 연구소 블라디미르 쿠마초프 고문에 의하면 "북한은 그들 미사일의 사정거리를 늘리기 위해 독자적으로 완성한 발사 차량을 가지고 있으며 전체주의 체제하에서 특정한 아프리카 국가들에서 북한이 그러한 핵실험을 행한 것으로 알고 있다. 소련도 85년부터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시작했음을 알았고 그로 인해서 북한에 있던 핵전문가들을 본국으로 송환했다"고 밝혔다.(조선일보, 경향신문, 한겨레)

1994년 7월 27일, 북한에는 이미 핵무기를 5개나 보유하고 있으며 핵무기를 5개나 더 개발한 뒤 이를 국제사회에 발표하고 미국에 알릴 예정이라고 북한 정무원 교원 강명도 씨와 김일성대학 상급교원 조명철 씨가 귀순기자회견에서 밝혀 큰 충격을 안겼다. 그들은 북한은 핵탄두개발과 함께 핵탄두를 탑재할 로켓개발에 열중하고 양산체제로 들어갈 것이며 심각한 경제난과 식량난을 타개할 방법은 핵무기의 완성뿐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핵무기 5개로는 북한에 충분하지 않으며 공개될 경우 국제적 압력으로 더 이상의 핵개발이 불가능해질 것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KBS, MBC, 조선일보, 경향신문 동아일보)

이러한 강씨의 회견에서 국내 언론들은 믿을 수 없었으나, 북한이 5개나 보유한 것이 가능한가라는 반응을 보였고 미국과 일본도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조선일보, 경향신문1, KBS, MBC, 경향신문2)

당시 회견에 대해 월리엄 페리 미국 국방장관은 "북한이 핵무기를 1개~2개 즈음 보유했을 것으로 추정한다"고 발표하고 미국 PBS와의 인터뷰에서도 이같이 밝혔다.(MBC, 조선일보, 동아일보)

당시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북한 핵 개발에 대해서 미국 정부는 아주 단호하고도 강경한 입장을 취하겠다고 경고하면서 결코 묵인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이어 북한은 핵무기를 손에 쥐면 이를 써버릴 위험이 높은 정권이기 때문에 북한의 핵 개발은 엄청난 악몽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클린턴 대통령은 머지않아 이란과 이라크가 핵 개발에 성공해 미국에 대항할 것이라는 느낌을 갖고 있다고 말하면서도 북한의 핵 개발이 최악의 상황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북한이 핵개발의 가능성만 보이더라도 곧 일본이 재무장을 하게 돼 이 지역의 안정이 크게 위험해 지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KBS, MBC)

빌 클린턴 대통령은 "북한이 핵을 사용하려 할 경우 북한의 최후가 될 것"이라며 강력 경고했다.(KBS, MBC)

10. 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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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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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계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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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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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 육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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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 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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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 공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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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 전략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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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 특수작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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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 준군사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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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 예술단


군가 목록에 대해서는 군가/북한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4. 관련 문서

15. 출처 목록

  • 단행본
    • 이정연, 2007, 『북한군에는 건빵이 없다』, 플래닛미디어.[62]
    • 강명도, 1995, 『평양은 망명을 꿈꾼다』, 중앙M&B.[63]
    • 2012 국방백서
  • 논문
    • 함택영, 1997, 「남북한의 군사력 - 사실과 평가방법」, 국제정치논총.
    • 최성빈 외, 2005. <북한 군수 산업 개황 보러가기

16. 대중매체에서

의외로 6.25전쟁 시기만이 아닌 현대를 배경으로 한 세계 미디어물에서 자주 나온다. 당연히 대부분 악역으로 등장한다.[64]

영화 등에 등장할 경우 열세인 전력을 보강하기 위해 비대칭 전력에 몰빵하여 대량살상무기로 테러를 저지르려다가 좌절되는 등 열악한 북한의 현실을 어느정도 반영한 경우가 많지만, 게임에 등장할 경우 보통 극단적으로 버프되어 미군도 쩔쩔매는 1류 강군으로 나올 때가 많다.[65] 이것은 사실 대체로 어른의 사정으로 인해 중국군이 북한군으로 대체되며 생기는 현상이다. 중국은 자신들을 조금이라도 거슬리게 묘사하면 바로 수입 금지를 해버리며, 분청 성향의 중국인들이 난리를 쳐서 중국 시장 수출길이 아예 막혀버리기 때문에 갈수록 서구 미디어물들은 중국군을 악역으로 등장시키는 것을 피하고 있다.[66]

현대 미국과 서방세계의 가장 큰 적성국은 러시아와 중국이다. 러시아는 권위주의 국가지만 중국만큼 검열이 심하진 않으며, 러시아인들도 러시아군이 악역으로 나오는 미디어물을 '저런 걸 만드는 걸 보면 양키들이 보기에 우리가 무섭나 보군' 정도의 반응을 보이며 별 거부감 없이 즐기는 편이다. 하지만 러시아는 소련 시절부터 70년이 넘도록 주구장창 악역으로 우려먹었기에 등장 자체가 식상해졌다는 문제가 있다.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 또한 21세기 들어 악역으로 많이 등장하고 있지만 서구권에도 이슬람 이민자가 많이 거주하며 이슬람권 국가들도 갈수록 개방적으로 변하고 있기에 19억 인구의 이슬람권 시장을 고려하면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을 악역으로 내세우기는 어렵다.

독일과 일본도 구 나치 독일, 일본 제국과 완전히 단절했기에 자신들이 악역으로 등장하는 2차 대전 미디어물을 잘 수입하지만, 이 국가들은 2차 대전 이후 미국의 충실한 우방으로 변한지 오래라서 현대 배경의 미디어에는 악역으로 등장시키기가 어렵다.

여기에 대안으로 나온 것이 북한군이다. 애초에 개혁개방을 전혀 안 한 꽉 막힌 국가라서 시장으로 고려 대상조차 아니니 아무리 악랄하게 묘사하더라도 문제가 없다. 중국군과 같은 동아시아 공산권 군대라서 이미 중국군을 모델로 거의 다 개발해둔 게임에서 설정만 바꿔 북한군으로 변경시키기도 편하다. 아무리 때려죽여도 아무도 뭐라하지 않는 나치좀비가 과거에 단골 악역으로 등장한 것이 현대에는 북한군으로 확장된 것이다.

아래 목력에서 ^표시가 이런 이유로 타국에서 북한으로 설정변경된 작품이다.

열세인 전력을 보강하기 위해서 비대칭 전력과 함께 특수전 전력에 미친듯이 투자를 한 것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으며, 이 특수부대들이 탈인간급 초인으로 묘사되곤 한다. 총알도 비껴갈 수준으로 빨리 달리고 고층에서 추락해도 멀쩡히 일어나며 칼이나 맨손으로 총을 든 상대 여럿을 제압하는데다 피탄 당하더라도 상처 부위를 부여잡고 버티며 전투를 이어나가는 말도 안되는 체력과 정신력을 보여준다.

국산 미디어에서는 보통 남성향의 액션 위주면 북한 강경파를 비롯한 악역들을 물리치는 내용이고, 여성향 드라마, 영화 등지에서 잘생긴 미남 조선인민군과 남한 여성이 이어지는 이야기가 클리셰화되었다. 기존에는 남남북녀라는 이미지 성향이 강했다. 이런 멜로 이야기까진 아니더라도, 사실 소련 등 구 공산권 국가 출신의 등장인물이 등장할 때는 선악을 막론하고 말쑥하고 유능한 미남/미녀로 묘사한 사례는 흔하다. 007 시리즈가 그 예.[67]

16.1. 영화 및 드라마

한국 전쟁 시기의 북한군을 묘사하는 영상물에서는 전통적으로 케피 형태의 전투모를 쓰고 PPSh-41, 통칭 따발총으로 무장한 모습으로 묘사된다. 바로 한국인들이 북한군하면 떠올리는 이미지. 그러나 실제로 북한군이 철모 없이 전투모만 쓰고 다니고 거의 전 병력이 PPSh-41만으로 무장한 것은 아닌데, 이런 이미지가 생긴 것에는 사정이 있다.[68]

첫째는 독재정권 시기 만들어지던 흑백 반공 영화에서의 피아식별 문제. 흑백 영화에서는 군복의 색으로 소속을 구별하기 어렵다. 북한군을 소련제 СШ-40 철모를 쓰고 모신나강 소총을 든 모습으로 묘사할 경우에는 미국제 M1 철모를 쓰고 M1 개런드 소총을 든 국군과 구별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때문에 국군과 딱 봐도 다르게 생긴 전투모를 쓰고 PPSh-41로 무장한 모습으로 북한군을 묘사하게 되었고, 이런 반공물이 쏟아져 나오면서 이것이 북한군의 이미지로 고착화되어 컬러 영상물에까지 이어지게 된 것.

둘째는 실제로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이 기억하는 북한군의 이미지가 전투모와 따발총이었다는 것. 전쟁 초기 북한군 사진을 보면 소련제 СШ-40 철모 혹은 일본제 90식 철모를 착용했으나, 전쟁 기간의 대부분이었던 1951년 이후의 사진들을 보면 철모를 쓴 북한군이 거의 없는 것을 알 수 있다. 인천상륙작전 이후 주력군이 박살나면서 보유 중이던 철모 대부분을 손실했고, 이후 주력이었던 중국 인민지원군조차 철모를 못 쓰는 마당에 북한군의 철모는 보급 우선순위에서 한참 밀렸을 것으로 보인다. 즉 전쟁 후반의 북한군 묘사가 전투모를 쓴 모습이라면 고증에 맞지만 전쟁 초반부터 전원이 전투모만 쓰고다니는 것은 틀린 것이다. 또한 북한제 PPSh-41의 품질이 조악했다고는 해도 당시 국군은 자동화기 보유 수량이 턱없이 부족했기에 근거리에서 총알을 흩뿌리는 PPSh-41, 즉 따발총은 굉장히 위협적인 무기였다. 때문에 국군의 것보다 열세였던 북한군의 다른 무기들에 비해 이 따발총은 참전용사들의 기억에 더 강하게 남았을 것이고 따발총+전투모라는 고착화된 이미지가 형성되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제작비 문제로, 국내에 넘치는 M1 철모와 달리 북한군 엑스트라들에게 구하기 어려운 СШ-40 철모를 씌워주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물론 국군의 무기가 아닌 PPSh-41도 마찬가지지만, 대충 전투모로 퉁치면 되는 철모와 달리 따발총은 북한군의 상징과도 같아서 제작비를 위해 생략할 수는 없는 부분이다.

그러나 태극기 휘날리며 이후로는 이러한 클리셰도 어느 정도 깨지고 있어 제대로 철모를 쓰고 따발총 외의 다양한 무기를 사용하는 북한군들이 등장하고 있다.

16.2. 만화 및 애니메이션

16.3. 게임

17.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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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면] 조선인민군기의 뒷면은 아래와 같다.
파일:조선인민군기(뒷면).png
[2] 북한 헌법, 제 103조[3] 국무위원회 산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성의 수장. 얼핏 보면 한국 국방부에 대응되는 포지션 같지만, 군령권과 군정권을 모두 지닌 국방부와 동등한 수준의 권한과 위상을 가지고 있지 않다. 자세한 것은 해당문서 참고. 군 관련 대외업무, 행정통제, 후방사업(보급 등) 다만, 군사건설, 교육-훈련, 후방사업과 외화벌이는 조선인민군 총참모부는 물론 총정치국 보위국에서도 따로 수행하고 있다. 때문에 일반행정통제권만 있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4] 대한민국 국방부 추정치이다. 다만 이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탈북자 출신의 동아일보 주성하 기자는 북한군의 실제 병력은 많이 쳐주어야 70만 정도라고 주장한다. # 정확히는 북한 정부의 인구 부풀리기에 대해 폭로하면서 함께 언급했다. # 특히 학자들의 추정치도 주성하의 주장과 비슷하다. 게다가 2021년 2월 들어 북한은 군 의무 복무 기간을 감축했다. 남성 10년에서 8년으로, 여성 7년에서 5년으로 줄였다고 한다. 그래서 북한도 군대의 규모가 축소될 것으로 보인다. MBC 통일전망대 영상(5분 17초부터 확인 가능): # 아시아프레스는 김정은 정권이 70만 북한군 병력 중 14만 명을 제대시켜서 북한군 규모가 56만 명으로 줄어들었다는 취지로 보도하였다. #[5] 로농적위군, 교도대, 붉은청년근위대 등 포함한 숫자. 어마어마한 규모 같지만 이 역시 사실상 과장된 수치로 실제 전시에 전투 가능한 전력은 30~70만 명 정도밖에 안 된다.[6] 전략군[7] 정찰기[8] An-2기 포함[9] 육•해•공군[10] 마르크스주의에 따르면, 기존의 '국가'는 무산자들을 착취하고 지배하기 위해 만들어진 부르주아를 대변하는 기구로써 간주되며, 따라서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기반으로 세워진 현실사회주의 국가들은 기존의 국가 및 군대 개념을 형식적으로나마 부정했고, 평의회에서 선출되어 '무산자들의 뜻을 철저히 대변한다'는 공산당이 인민들을 지키기 위해 창설한 방위대라는 개념을 내세웠으며, 북한도 어찌되었건 마르크스-레닌주의에 기반하여 세워진 국가였으므로 이러한 형태를 취했다. 물론, 실질적으로는 국군과 다를 바가 없긴 했지만.[11] 빨치산 등을 규합해서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조선인민혁명군'[12] 한국에서는 중학교 수준 상식으로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일본군은 38선 북쪽을 소련군이, 남쪽을 미군이 무장해제시켰다. 김일성은 자신이 어떤 부대를 만든적 조차도 없다. 소련과 중국의 외국 조직에서 장교로 복무했기에 그에게 해방이 되자 정권을 잡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13] 이상우 『북한 40년: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의 특성과 변천』, 을유문화사, 1990, p337.[14] 북한에서도 이렇게 부른다.[15] 고종이 황궁에 황제 직속 군령기관인 원수부를 설치하고 황제가 대원수를 맡아 국방·용병·군사에 관한 사항을 전부 장악하여 중앙과 지방의 각 부대까지 직접 지휘하고 원수인 황태자가 통솔하게 하여 군통수권을 황제가 가지고 황제의 칙령이나 조칙이 없으면 그 누구도 군대에 명령을 내릴 수 없게 했던 대한제국 시기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16] 1950년 6월 25일에 위진록 아나운서가 북한의 남침을 긴급 보도하며 사용한 단어이다.[17] 한자로 풀이하면 北韓 傀儡軍[18] 공산주의 북한에서는 멸칭이 아닐 것이다.[19] 남성 기준[20] 20[age(2008-01-01)]년~20[age(2007-01-01)]년에 입대했고, 20[age(2000-01-01)]년~20[age(1999-01-01)]년에 군복무가 끝나며, 그 이후 농촌일 3년 하고, 20[age(1997-01-01)]년~20[age(1996-01-01)]년에 전역 예정.[21] 그러나 군입대를 연기하고, 나중에 군 입대하는 사람들도 있으며, 그리고 특수부대, 기술병 등등에 해당되는 일부 사람들은 군복무가 단축되지 않고 기존처럼 10년 정도 군복무 하고 있어서 군복무 하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 199[age(2018-01-01)]년생~199[age(2017-01-01)]년생인 사람들도 많으며, 군복무 끝나고 농촌일 3년 하는 사람들 중에서는 199[age(2019-01-01)]년생~30대 초반인 사람들도 많다.[22] 20[age(2000-01-01)]년에 입대하고, 20[age(1993-01-01)]년~20[age(1992-01-01)]년에 군복무가 끝나며, 그 이후 농촌일 3년 하고, 20[age(1990-01-01)]년~20[age(1989-01-01)]년에 전역 예정.[23] 소학교를 만 7세에 입학한 200[age(2019-01-01)]년 4월생~200[age(2018-01-01)]년 3월생+소학교를 만 6세에 입학한 200[age(2018-01-01)]년 4월생~200[age(2017-01-01)]년 3월생은 대부분 20[age(2000-01-01)]년 3월에 고급중학교를 졸업하게 되는데 이들 중에서 20[age(2000-01-01)]년 3~4월에 조선인민군으로 군입대하는 사람들이 많다.###[24] 공교롭게도 이들과 대치 중인 국군 또한 5군단이다.[25] 북한군 창건 당시 사용된 깃발이다. 인공기 도안을 바탕으로 하여 별 대신 북조선인민위원회(당시는 북한 건국 이전) 및 북한의 국장이 그려진 형태이며, 당시에는 근위대를 제외하면 육군, 해군, 공군 3군 공통으로 해당 도안의 군기를 사용하였다.[26] 주의해야 하는 것이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미국은 연이어서 전쟁이 없을 것이라는 예상으로 군 조직을 축소시켰다. 이에 50년 당시 한반도에 미군은 소수의 고문관과 연락관이 전부였고. 전쟁 발발 후 일본에서 유유자적 지내던 미군을 급하게 한반도에 투입했고 이러한 상황에 한국의 지형도 모르는 불상사까지 겹치면서 낙동강까지 밀렸다. 이후 다시 재건된 부대들이 투입되면서 제대로 된 전쟁을 하나 싶었지만 중공군의 공격에 또 다시 굴욕적인 상황을 맞이하였다.[27] 화북에 있던 조선의용군 출신과 만주에 숨어서 저항하던 소수의 독립군들은 소련군에게 무장해제된 상태에서 들어왔다. 그러나 6.25 전쟁 당시 북한군은 이들로만 구성되지는 않았다.[28] 다만 북한군이 정말로 소련제 무기만 100% 사용한 건 아니다. 중국으로부터 지원받은 중국제 무기도 많이 사용하였으며, 심지어 일본군이 두고간 무기를 접수해서 쓰기도 했다. 통념과는 달리 북한도 초반에는 한국처럼 일본의 잔재를 청산하는 것은 실패하여 친일파 중에서도 잽싸게 김일성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지원을 꼬박꼬박 제공한 친일파들은 잘 먹고 잘 살았고, 북한이 열심히 때려잡았다는 친일파들은 촌 동네 지주 같은 만만한 중소 친일파들만 골라서 보여주기식으로 때려잡은 쇼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 전쟁 이후 김일성이 자신의 경쟁자들을 대거 숙청하면서 친일파 출신 고위직들도 전부 숙청되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심영이 있다.[29] 또한 이때 친일파 뿐만 아니라 남로당, 친소련파, 친중파 같은 친 외세 성향 출신들도 대거 숙청되었다.[30] 정확히는 1944년에 업그레이드 된 T-34/85[31] 중국 인민해방군은 1950년 2월부터 소련과 동맹을 체결하면서 빠르게 소련제 전차와 장갑차,자주포로 전력을 불리고 있긴 했다.[32] 그마저도 소수였다.[33] 노획한 일본군의 97식 전차나 극소수의 국민당군 소속 미제 전차가 전부였다. 두 전차를 모두 합쳐도 유의미한 기갑전력은 구축하지 못했다.[34] 믿기지 않는 사실이지만, 냉전 내내 지리멸렬한 모습을 보이다가 90년대부터 현대화 작업에 착수한 중국군은 고난의 행군으로 인해 붕괴하기 전의 북한군보다도 약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35] 평양에 본부를 둔 각 도별 철도보안대의 형태로 창설되었다.[36] 해군의 경우 1945년 10월 창설된 수상보안대를 모태로 하며, 수상보안대는 동년 12월에 해안경비대로 개칭되었다.[37] 1949년 1월, 제2군관학교로 개편되었다.[38] 1948년 12월, 제1군관학교로 개편되었다.[39] 6.25 때처럼 대승으로 밀어붙일 수 있는 군사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40] 북한군의 장비를 살펴보면 김일성 사후 김정일 시대에는 핵폭탄과 미사일을 제외한 재래식 무기의 개발과 배치가 김일성 시대나 이후 김정은 시대와 비교해 봐도 현저히 적다는 것을 알 수 있다. 92-94년이 북한군이 재래식 군사력의 기둥뿌리나마 유지하고 있던 마지막 시기이기 때문. 김정은 시대에 들어 재래식 병종에도 신무기가 배치되고 있지만 90년대에 이미 남쪽으로 기울어버린 재래식 군사력의 균형을 뒤집을 가능성은 요원하다.[41] 교도대 60만여 명, 노농적위군 570만여 명, 붉은청년근위대 100만여 명, 기타 호위사령부, 사회안전성 및 기타 준군사조직 32만여 명.[42] 러시아나 중국으로부터 무기를 수입하는것도 다 외화가 있어야 가능한데, 당연히 둘다 남한과의 교류가 활발한데다가 북한의 외환보유고야 말 안해도 뻔한 상황이라서 북한에서 이를 대규모로 도입하기 어렵다.[43] 물론 각종 비리로 군인들이 부실한 식사를 하는 경우는 많았고 그것이 어느정도 현재진행형이지만, 고난의 행군 시대에는 타 직장에서 근무해봐야 점심밥조차 제대로 주지 않아서 그 부실한 밥이라도 주는 군대에 있는 것이 더 나았다.[44] 물론 그 이전에도 김원봉이 이끌던 조선의용대를 뿌리로 하는 조선의용군이 존재했지만 이건 다른 군대다. 이들이 광복 후 북한에 돌아와서 연안파를 형성한다. 조선의용군의 주요 인물들이 바로 김두봉김무정이다.[45] 대한민국도 추가경정예산으로 국방비를 필요에 따라 추가적으로 충당할 수는 있지만 법이 정한 바에 따라 여러 가지 절차를 거쳐가야 하는데에 비해 북한은 김정은의 말 한 마디에 바로 집행된다는 점에서 차이점이 크다.[46] 의무가 아니라는 것뿐 군대를 다녀와야지만 노동당에 입당 자격이 생기고, 출세를 하든 시집을 잘 가든 뭘 좀 하려면 당원 자격이 필요하기 때문에 자원입대하는 여자들이 꾸준히 존재하긴 했다.[47] 지금은 5년으로 줄긴 했다.[48] 흔히 세계사의 군국주의 국가라고 하면 떠오르는 고대 스파르타나치 독일, 일본 제국도 여성까지 징집하지는 않았다.[49] 이미 노동신문에는 50년대에 자기 비판적인 태도로 절약하고 음식을 대체하기 위해 나무껍질과 풀을 먹으라라는 주장까지 실렸다. 70년대에 잘 살았다는 식의 주장은 저때가 너무 김일성의 권력이 절대적이라서, 외부 세계에다가 원조 등을 통해 얻은 것으로 이룩한 건설과 같은 훌륭한 모습을 보여주는 쇼를 벌이며 가난을 외부에 숨기고 주민도 가난에 적응한 외형적인 것에 가까웠다. 인구 증가율이 식량 생산 증가율보다 높다는 주장은 70년대부터 나왔고, 김정일에게서 3명 이상 낳으면 안된다는 주장이 1978년부터 나왔다.[50] 잘 사는 집은 아이를 내세우려고 하여 그렇지 않은 집의 박탈감이 심하다. 그러니까 치맛바람의 풍조가 있다. 간부, 돈주가 아닌 사람이 아이를 잘 못 낳으면 고통의 삶이 이어진다는 분위기가 만연하다. 고난의 행군 전에도 그래서 시장화가 되지 않았어도 '이론적'으로는 바쁘지 않아 아이를 많이 가지기 쉬운(스펙을 쌓아서 가는 일자리가 그렇게 흔하지 않다는 뜻이다.) 가난한 환경에도 억압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저출산이 좀 있었다.[51] 국제기구에 북한이 제출한 자료가 조작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이렇게하면 합계출산율이 1명대 후반 정도 나오지만, 사실은 2010년대 기준 1.3명대라는 것이다.[52] 동아일보의 주성하 기자도 유튜브로 보도했다.#[53] 전역 후 집단배치는 남자들만 해당된다. 여성들도 공산국가에서는 일자리를 강제배정해주지만 남자들처럼 철저하게 집단으로 돌아가는 수준은 아니고 어느 정도는 봐주는 편인데 북한도 여군 전역자들은 그냥 집으로 보내는 것으로 보인다.[54] 비행 연대 2개[55] M16 소총은 입수 루트가 워낙 다양하긴 하지만 북한도 상당량을 가지고 있다. 국군으로 위장해 침투했다가 703 연대와 조우했을 때 위장한 부대가 갖고 있지 않은 M16으로 무장했던 탓에 공비라는 것이 들통나 실패했던 적도 있을 정도다.[56] 욤 키푸르 전쟁[57] 아무리 제대로 훈련을 못 받았거나 열악한 환경에서 싸웠다 해도 실제 목숨을 걸고 전쟁에서 싸워본 군대와 훈련만 해본 군대의 차이는 상당히 크다. 실제로 국군도 월남전에 참전한 전적이 전술 향상에 도움이 되었다.[58] M-1978, M-1989[59] 폭풍여단 또는 짐바브웨 제5여단.[60] 옐친은 개인적으로 북한을 굉장히 싫어했으며 남한에 호의적이었다. 이상할 것도 없는 게, 옐친은 젊은 시절부터 북한이 어떤 뻘짓을 해댔고, 그 적인 남한은 어떻게 성장해 나갔는지 다 지켜본 인물이다. 북한이 하는 꼬라지를 수십년간 지켜보다 못해 정나미가 떨어진 셈이었다.[61] 그 외에 해군과 공군의 사령부 직속인 해군사령부협주단과 공군사령부협주단이 있으며, 준군사조직 중에서도 인민보안부와 조선인민내무군 직속의 협주단과 취주악단이 활동하고 있다. 기타 군단, 사단급 부대에도 약간 작은 규모이기는 하지만 예술소조-한국의 동아리 개념-활동을 겸하는 공연 단체를 두고 있으며, 각 단위의 경비소대/중대에는 소규모 군악대가 조직되어 의장대 역할도 겸하고 있다.[62] 문제는 '폭풍호' 떡밥 등을 볼 때 이 책에 대한 신빙성이 0에 가깝다. 일단 저자부터가 사기 치고 중국으로 도망친 양반. 따라서 포병, 기갑 부분의 상당 부분은 제외했으며, 북한군 내에서 상식적일 것 같은 부분만 게재했다.[63] 김정일 유모이던 강보비의 조카. 김일성의 외사촌 친척이며 강성산 정무원 총리의 사위이기도 했다. 장성택 실각설 이후에 교수 직함으로 이제 만나러 갑니다를 비롯한 종편에 자주 출연하고 있다.[64] 사실 당장 미국의 대통령들이 공화/민주 안 가리고 북한을 악으로 묘사한 바가 적지 않다. 도널드 트럼프를 제외하면 미국의 최근 대통령들은 북한을 항상 비판하고 경계했었기 때문. 그 트럼프마저도 2018년에 북한이 갑자기 화해무드로 돌아서기 이전인 집권 초기에는 다른 대통령과 비슷했다.[65] 크라이시스에선 미국이나 개발할 만한 첨단 강화복을 만드는 사기국가로 묘사된다.[66] 사실 이는 6.25 전쟁을 다룬 미디어가 세계적으로 잘 나오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과거엔 잊혀진 전쟁으로 취급했다가 현재는 존재감이 커졌지만, 6.25 전쟁은 시작은 한국VS북한이었지만 점차 미국+UN VS 중국+소련으로 옮겨가며, 현대 중국이 서방국가랑 대놓고 싸운 전쟁인 데다, 중국은 현재 UN 상임이사국 소속인데 6.25전쟁은 당시 중국이 UN을 어기고 침략국을 도와주었기 때문에 역사왜곡 및 미화에 걸림돌이 된다.[67] 007의 경우 대부분 적국 첩보요원과 상대했다는 점도 이유의 하나. 그 가운데에서도 고골 장군이나 로자 클렙 같은 고위급들의 경우는 나이도 많고 전혀 잘 생기지 않았다.[68] 사실 북한군도 철모를 쓰고 다녔고 대부분 PPsh-41만 무장한게 아니라 모신나강 소총이나 PPS-43이나 덱탸료프 기관총을 무장하여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드라마나 영화에서는 전투모만 쓰고 따발총만 들고 다니는건 그냥 간략하게 묘사한듯하거나 이해도가 부족해서 대충 떼운듯하다.[69] 원본이 중국제이여서 중국 트리에 배치되어있지만 운용국가가 북한으로 표시되기에 조선인민군 항공군 소속 기체가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