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10 19:51:50

북조선인민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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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 북조선인민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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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정국)

[1]: 기자조선은 현대 주류 학설에서는 인정되지 않음
주요 민족: 예맥 · 삼한 · 한민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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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bgcolor=white,black> 군정 종결
(1946)
북조선인민위원회
헌법
(1948)
내각
사회주의헌법
(1972)
중앙인민위원회
제1차 수정보충
(1992)
중앙인민위원회 국방위원회
제2차 수정보충
(1998)
국방위원회
제7차 수정보충
(2016)
국무위원회
* 제1차 수정보충된 사회주의헌법에서는 중앙인민위원회와 국방위원회가 병존했으며, 1994년 김일성 사망 후 유훈통치 기간에는 국방위원회가 사실상 최고통치기관으로서 기능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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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조선인민위원회
北朝鮮人民委員會
People's Committee of North Korea
파일:북조선인민위원회 국기.svg 파일:소비에트 민정청.png
파일:북한 국기.svg 파일:北朝鮮人民委員會徽章.png
국기[1][2] 국장[3]
파일:500px-Locator_map_of_North_Korea_1945-50.svg.png
1946년 2월 16일 ~ 1948년 9월 9일
(2년 78일)
성립 이전 정부수립 이후
소련군정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국가 애국가[4]
위치 38선 이북의 한반도 부분
수도 평양(사실상)
정치체제 일당제 사회주의
위원장 김일성
공용어 조선어
민족 조선인
종교 국가무신론
통화 조선 엔, 소련 군표(1946~1947)
북한 원(1947~1948)
1. 개요2. 상세
2.1. 역사2.2. 구성
3. 여담4. 관련 인물5.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파일:태극기와_혹부리우스 (1).jpg[5]

북조선인민위원회(北朝鮮人民委員會)소련군정이 끝나자, 김일성이 이끄는 조선로동당에 의해 건설된 중앙정권기관이다.

사실상 정부로서 운영되었으며 현재 북한 정부의 전신으로 볼 수 있다. 물론 공식 건국일은 1946년이 아닌 1948년으로 인정되며 이 때문에 역사적으로 남북 분단의 근본적인 원인을 북측이 제공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2. 상세

2.1. 역사

1946년 2월 8일, 조선로동당이 개최한 '북조선 각 정당·사회단체·각 행정국 및 각 도·시·군 인민위원회 대표 확대협의회'에 의해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 수립이 결정되었다. 다음날인 2월 9일 소련의 통제 하에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가 설치되었다. 2월 15일에는 소련군정이 공식적으로 종식된다.

그러나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의 설립 의도는 소련이 북한에 사회주의 위성국을 세우려는 의도였고 김일성은 소련의 지시대로 행동한다. 1947년 2월 22일에는 북조선인민위원회로 개칭되었다. 1946년 3월 8일부터 지주의 토지를 몰수, 분배하였고, 주요 산업들을 국유화시켜 사회주의 정책을 폈다.

북한의 토지개혁은 가혹하게 진행되어 유산가와 지주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소련군정의 지원아래 김일성의 지시로 강압적으로 시행되었다. 많은 수의 지주가 학살되거나 오지로 추방되었고 살아남은 수는 남한으로 월남하였다. 그 이후부터 남북간 접촉이 두절되었고, 남북분단이 점점 현실화되어갔다.

북조선 인민 위원회 법령 30호에 의거하여 1947년 12월 6일부터 12일까지 7일간에 걸쳐 대규모 화폐개혁이 실시되었다. 일제 강점기에 발행되었던 구조선은행권과 ‘붉은 군대 사령부’가 발행한 소련군 군표가 북조선중앙은행에 의해 발행된 북조선중앙은행권의 신권과 1 대 1로 교환되었다. 이때 발행된 신권은 1원, 5원, 10원, 100원권 네 종이었다. 이때 소유 형태에 따라 화폐 교환의 한도에 차별을 둠으로써 상공업자, 종교 집단 등의 화폐 자산을 몰수하였으며, 이와 함께 교환 한도를 초과하여 예치된 예금의 지불 방법과 한도 또한 차등적으로 적용되었다.

그 결과 상공업자들은 보유 화폐의 21%만을, 종교인들은 겨우 8%정도만을 교환할 수 있었고, 나머지는 모두 무효화되었다.# 상공업자들과 종교인들의 반발은 대단했지만 모두 진압되었고, 이로서 북한은 소련군의 군표 남발로 인해 벌어진 인플레이션과 생활수준 저하를 어느정도 극복하고 사회주의 국가 건설을 위한 유산계급 때려잡기를 완료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상공업 쇠퇴도 가시화되어 경제사정이 악화하였으며, 소련군 군표와 구조선은행권 사이의 교환비율에 차별을 가했다. 북한은 화폐개혁의 목적이 자주적인 금융주권을 확보하기 위해서였으며 이를 통해 전후 경제개발을 진행할 수 있었다고 찬양하지만, 러시아와 남한 학계는 이 화폐개혁의 보다 직접적인 목적을 소련군이 지나치게 발행해 인민위원회에게 큰 부담이 된 소련군 군표의 문제점을 인민에게 떠넘긴 것으로 본다.[6]

미국-소련간의 냉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동년 11월 3일, 인민위원회 선거를 했다. 1948년 2월 8일에는 사실상 북한의 군대인 조선인민군이 창설되었다. 1948년 7월에는 태극기올드 랭 사인 애국가를 폐지하고 독자적인 국기국가를 가지게 된다.

1948년 8월 15일에는 남한미군정이 끝나면서 소련군이 철수했다.[7] 1948년 8월 25일에는 최고회의 선거를 하였으며, 그해 9월 9일, 김일성수상으로한 북한이 수립되면서 북조선인민위원회는 북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계승된다.

2.2. 구성

1946년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 시절에는 23명의 위원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총 10개 국과 3개 부가 존재했다고 한다.
    • 산업국
    • 교통국
    • 농업국
    • 재정국
    • 체신국
    • 상업국
    • 교육국
    • 보건국
    • 사법국
    • 보안국
    • 선전부
    • 기획부
    • 총무부

이후 1947년 2월 개편이 있었는데, 입법부에 해당하는 북조선인민회의가 설치되어 2월 22일 제1차 회의를 개최했으며, 이 회의에서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를 북조선인민위원회로 개편하고 행정부의 기능을 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북조선인민회의의 휴회 기간에는 북조선인민위원회가 법률을 제정 및 공포할 권한을 가졌다. 이러한 개편 과정에서 조직 구성도 변화해 14개 국과 4개 부로 개편되었다.
    • 기획국
    • 산업국
    • 내무국
    • 외무국
    • 농림국
    • 재정국
    • 교통국
    • 체신국
    • 상업국
    • 보건국
    • 교육국
    • 로동국
    • 사법국
    • 인민검열국
    • 량정부
    • 선전부
    • 간부부
    • 총무부

지방 단위에서도 인민위원회가 구성되었는데, 1946년 11월 3일 치러진 선거에 따라 각 도·시·군·구별로 지역인민위원가 구성되었다. 당시 영상

이는 현 북한에도 이어져, 도청·시청을 도인민위원회·시인민위원회라 하며, 도지사시장을 도인민위원장과 시인민위원장이라 한다. 하지만 사실 북한에선 행정부보다 입법부가 우선이고, 입법부에서도 이 최우선이기 때문에 도·시인민위원회보다 도당위원회, 시당위원회가 더욱 힘을 발휘한다.

3. 여담

  • 향린교회 전(前) 담임목사 홍근수 목사의 형 홍동근 목사는 월남 전 1946년 11월 3일 인민위원회 선거에 반대표를 던졌다고 한다.

4. 관련 인물

5.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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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괄호 안의 연도는 북한의 주장에 근거한 연도이며, 실제 역사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단체 및 사건이거나 실제와는 다른 연도일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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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북한도 처음엔 태극기를 국기로 사용했으나 1948년 7월 10일 이후에는 인공기를 국기로 제정하면서 태극기는 더 이상 쓰이지 않게 되었다.[2] 당시 소련 국기도 준 국기 수준으로 쓰였다.
파일:소련 국기(1936-1955).svg
[3] 1948년 7월부터 쓰였고, 그 이전에는 위의 국장이었다.[4] 북한도 처음엔 올드 랭 사인애국가를 사용했다. 그러나 1948년 7월 이후 자신들만의 국가를 제정한다.[5] '영도자'라는 표현을 썼는데 현재의 북한 표준어 표기 방식과는 다르다. 이때까지만 해도 남한과 북한의 언어 표기 방식은 공히 조선어학회가 정한 조선말 표준어 모음에 기반했기에 거의 같았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1948년 북한 정권 수립 직후 조선어 신철자법을 발표하면서 두음법칙을 폐지했기 때문에 현재 북한에서는 '령도자'라고 한다. 사진은 1948년 2월 8일 평양역 앞 광장에서의 조선인민군 창설식 모습으로, 잘 보면 김일성 사진 양옆에 태극기가 있는데, 사실 이는 8.15 해방 이후 북한 정권이 수립되기 전까지는 북한도 태극기를 썼기 때문이다.[6] 전현수. (1996). 논문 1947년 12월 북한의 화폐개혁. 역사와현실, 19, 175-218.[7] 다만 철군과정에서 장비들은 모조리 조선인민군에게 넘겨주었고 남침 준비를 위한 군사고문단은 철수하지 않고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