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29 22:32:02

일당제

정치학
Political Science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word-break: keep-all"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colbgcolor=#242E59,#333><colcolor=#fff,#fff>분야정치철학 · 비교정치 · 국제관계학 · 정치사 · 정치경제학 · 공공선택론 · 정치지리학 · 정치심리학 · 과학기술과 정치 · 인구학 · 정치통계학 · 수리정치학 · 계산정치학}}}}}}}}}

1. 개요2. 목록
2.1. 현재의 사례2.2. 역사적 사례
2.2.1. 명목상 다당제였던 사례
3. 같이 보기

1. 개요

일당제(, One-party System는 어떤 국가의회에서 하나의 당만이 합법적으로 인정되는 정당제를 말한다. 대표적인 과두주의독재정치로서, 유일한 여당정부를 사실상 장악하고 있으며 다른 당은 선거에 참여할 수 없다.

일부 전체주의사회주의 국가가 이를 채택하고 있으며, 대외적으로는 여론의 불만을 달래고 민주주의 코스프레를 하기 위해 실권이 없는 거수기 정당, 곧 구색정당(satellite party)을 내세워 형식적 다당제와 같이 운영되는 경우도 있다. 반대로 에리트레아처럼 구색정당 없이 대놓고 일당제인 국가도 존재한다.

일당제라고 하더라도 그런 거대한 정당에서는 파벌을 형성하는 경우가 많아, 그 파벌의 일부가 제한적으로 당 주류 파벌이나 정부를 견제하는 야당 비슷한 역할을 맡기도 한다. 공청단, 상하이방, 태자당으로 나뉘어진 중국공산당의 파벌이 대표적이다.

일당제 국가라 하더라도 당원의 수는 전 국민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소련 공산당 6.84%(1986), 중국 공산당 6.74%(2021), 조선로동당 15.93%(2015), 나치당 12.88%(1945)이 그렇다. 이런 나라에서는 국민이 당원으로 가입하는 것이 이론(異論) 없는 애국상징이 되거나 일종의 명예, 특권처럼 여겨진다. 반면에 구 자이르의 '혁명대중운동(1967-1997)'이나 구 르완다의 '민주발전을위한혁명공화운동(1975-1994)'은 아예 전 국민이 자동으로 당원이 되었다.

2. 목록

2.1. 현재의 사례

파일:관련 문서 아이콘.svg   관련 문서: 일당독재
,
,
,
,
,
◎ 위성정당 등 구색정당을 두어 명목상으로는 다당제를 표방하는 국가

2.2. 역사적 사례

2.2.1. 명목상 다당제였던 사례

  • 파일:대한민국 국기(1949-1997).svg 대한민국 제5공화국 - 민주정의당 (1980~1985년)
    신한민주당 창당 이전까지는 여당인 민주정의당과 구색정당 밖에 없었기 때문에 사실상 일당제였다. 1985년 신한민주당의 창당으로 일당제가 깨졌다.
  • \
    [[대만|]][[틀:국기|]][[틀:국기|]] - 중국국민당 (1946~1986년)
    1946년부터 1996년까지 3개 정당(중국 국민당중국 청년당중국 민주사회당)이 연립내각을 구성한 3당 훈정(三黨訓政)의 시기였다. 명목상 3개 정당이 참여하는 민주주의 체제였으나 국민당을 제외한 두 개의 당은 거수기 역할만 맡은 관제야당에 지나지 않았다. 장제스 사후 장징궈가 철권통치를 완화했고, 1986년 민주진보당이 창당하며 국민당과 2중대의 일당제도 사실상 종말을 고했다. 이후 장징궈가 87년 계엄을 해제하고 리덩후이가 91년 동원감란시기임시조관도 철폐했지만 아직 국민당 주도 정치체제를 바꾸지는 못하다가[4] 2000년에 민주진보당천수이볜이 당선되며 일당우위제도 끝나게 된다. 다만 여기도 계엄 해제 전까진 계엄령 시대라 절차적 민주주의가 제대로 갖춰졌다고 보긴 어렵긴 하다.
  • 파일:라이베리아 국기.svg 라이베리아 (1878~1980년)
    1878년 라이벌이었던 공화당이 해산된 이후부터 명목상으로는 다당제였으나 사실상 트루 휘그당(True Whig Party)이 유일한 정당이었다.
  • 파일:튀르키예 국기.svg 튀르키예 (1923~1946년)
    사실상 일당제였다. 일단 명목상으론 다당제라 여당 공화인민당 외에도 진보공화당(TCF)과 자유공화당(SCF)이 잠깐 결성되기도 하였으나 몇 달 안 가서 해산당했다.
  • 파일:미국 국기(1822-1836).svg 미국 (1824~1828년)[5][6]
    정말로 이 시기에 딱 한 정당 밖에 없었다.[7] 그래도 위의 나라들과 다르게 나름대로 민주적으로 통치하기는 했다. 이런 상황이 발생한 이유가 미영전쟁 이후로 친영적이었던 연방당이 힘을 쓰지 못했고 당시까지만 해도 정당이 굉장히 느슨했기 때문에 민주공화당과 연방당의 합당 이후에도 얼마든지 내부에서 야당활동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1824년 대통령 선거에선 존 퀸시 애덤스, 앤드류 잭슨, 헨리 클레이, 윌리엄 크로포드 이렇게 4명이 출마 했는데 모두 민주공화당이었다.[8][9] 물론 나름대로 민주적이었다고 하더라도 당대에 여성흑인, 원주민들에게 투표권이 주어지지 않았다는 한계점은 있었다. 다만 이 시기에는 여성과 흑인 등 소수자[10]에게 선거권을 부여한 나라는 거의 없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3. 같이 보기



[1] 서사하라 대부분 지역은 모로코의 점령 하에 있다.[2] 현재 이란도 공식적으로 무당제다.[3] 극초기에는 다당제였으나, 러시아 내전이 일어나면서 정리되고 말았다. 그리고 소련 말엽 다당제가 용인되어 야당인 소련 자유민주당이 탄생했다.[4] 사실 리덩후이는 당적만 국민당이지 성향은 오히려 반대에 가깝다는 평도 있다.[5] 이전에는 (1792~1824년)이라 되어 있었으나 1824년 이전에는 연방당이 존재했고, 민주당은 1828년에 창당되었다.[6] 제임스 먼로 말기와 존 퀸시 애덤스 대부분의 집권기간이 이에 해당된다.[7] 엄밀히는 민주공화당은 야당인 연방당과 함께 동시 해산했으나 실질적으로는 민주공화당 세력에 연방당이 합류한 것에 가까웠다.[8] 이중 퀸시 애덤스와 헨리 클레이는 계파마저 연방당계로 같았다.[9] 심지어 애덤스와 잭슨은 부통령 러닝메이트를 둘 다 존 칼훈을 지목했다. 누가 이기든 부통령이니 개꿀아닌가[10] 이때의 여성은 이견이 생길수 없는 명백한 소수자였다. 또한 여성 선거권은 1920년에 시행됐다. 모든 주에서의 시행은 후의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