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0-01-21 23:40:01

구색정당

1. 정의2. 구색정당 목록
2.1. 위성정당2.2. 오늘날
2.2.1. 중화인민공화국2.2.2. 북한
2.3. 옛날

1. 정의

具色政黨

Bloc party, Satellite party. 헤게모니 정당제[1]에서 정권을 독점하지 못한 작은 정당이다. 보통 이들은 현실적으로 정권을 잡을 수 없고, 심지어는 그럴 의지 자체가 없는 경우도 많다. 체제를 인정하고 지지하는 한편 특정 계층의 이익을 약간 대변하는 정도의 역할을 수행하는 경우가 많다.[2]

일당 독재 체제 구축 이전부터 활동하던 기존의 정치 단체를 구색정당으로 흡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중국이나 북한도 괜히 의도적으로 정당을 만든게 아니라 기존에 활동하던 정당이나 정치 단체를 자신의 우당(友黨)으로 만든 것 뿐이다. 자세한 것은 아래 구색정당 목록 참고.

심한 경우에는 일당제 국가에서 '우리도 복수 정당제 민주주의를 하고 있다'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만들기도 한다. 이런 의미에서는 관제야당이라고도 한다. 제5공화국민주한국당, 한국국민당이 그 예인데 이들은 집권당과의 합의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는 그냥 껍데기만 있는 정당이었다. 제5공화국 당시 전두환이 야당 총재들을 소집한 불러모은 자리에서 누군가 "저희 야당"이라는 말을 하자, 전두환이 "우리나라에 야당이 어디 있습니까. 1당, 2당, 3당이지"라고 일갈했고, 이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 때 나온 말이 바로 '2중대'라는 표현이다.

정권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일정 부분 야당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폴란드, 헝가리 등 동유럽에서는 자유화/민주화의 분위기가 불자 개혁의 주체가 되기도 했다.

보통은 복수 정당제 민주주의가 실제로 정착하게 되면 사라진다. 실제로 대만의 중국 청년당과 중국 민주 사회당은 자유화,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사실상 연구회 수준으로 몰락하였다. 제5공화국의 민주한국당, 한국국민당 역시 정치활동의 자유가 확대된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신한민주당(신민당) 돌풍이 불면서 몰락하였다.

기성 정당에 비해 세력이 매우 약해서 정권을 아직 잡을 힘이 없는 '군소 정당'과는 개념이 완전히 다르다. 복수 정당제 민주주의에선 이 군소 정당에게도 정권을 잡을 수 있는 기회를 당연히 보장한다. 가령 사실상의 양당제인 미국에는 민주당, 공화당 외에도 녹색당, 자유당 등이 있는데 이들에게도 당연히 선거를 통해 의회에 진출하거나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권리 등이 있다.

2. 구색정당 목록

2.1. 위성정당

아무 실체 없이, 본 정당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정당.

제5공화국이 막을 내린 이후 한국에 민주주의가 정착되면서 구색정당은 나오지 않았지만,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되면 정당 지지율보다 높은 비율로 지역구 의석을 획득한 정당은 원칙적으로 비례대표 의석을 배분받을 수 없기 때문에, 비례대표 전용 위성정당을 만들어 비례대표 의석을 극대화한다는 발상으로 시작되었다.

2019년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원내 정당들이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 합의하자, 자유한국당이 비례대표 전용 위성정당 창당을 공언하면서 현실화되었다. # 위성정당의 명칭은 비례한국당이 유력하였으나 최인식 등 구 통일한국당 세력이 10월에 창당한 정당과 당명이 겹쳐 해당 명칭으로의 창당은 불발되었다.

이에 '자유'를 넣어 비례자유한국당이라는 이름으로 창당준비위원회 설립을 신고하였으나, 중앙선관위에서 당명에 '비례'를 넣은 명칭[예시] 사용을 받아줄 수 없다고 하자, 1월 17일 '미래한국당'으로 명칭 변경 신고를 했다.# 다른 정당들은 크게 반발하고 있으며, 위헌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하겠다는 이야기도 나오는 중.

2.2. 오늘날

2.2.1. 중화인민공화국

중화인민공화국중국 공산당 이외에도 '다당 합작(多黨合作/多党合作)'이라는 명목으로 민주당파(民主黨派/民主党派, United Front)라고 불리는 8개의 정당을 인정한다. 물론 중국 공산당 동의 없이는 기금조차 마련하지 못하는 무늬만 정당이다. 차라리 공산당 내 비공식 파벌들이 사실상의 여당과 야당 노릇을 한다고 보는 게 맞을 수도 있다.
명칭 약칭
한글 번체자 간화자 한글 번체자 간화자
영문 영문
중국 국민당 혁명위원회 中國國民黨革命委員會 中国国民党革命委员会 민혁 民革
Revolutionary Committee of the Chinese Kuomintang RCCK
중국 민주 동맹 中國民主同盟 中国民主同盟 민맹 民盟
China Democratic League CDL
중국 민주 건국회 中國民主建國會 中国民主建国会 민건 民建
China Democratic National Construction Association CDNCA
중국 민주 촉진회 中國民主促進會 中国民主促进会 민진응? 民進 民进
China Association for Promoting Democracy CAPD
중국 농공 민주당 中國農工民主黨 中国农工民主党 농공당 農工黨 农工党
Chinese Peasants' and Workers' Democratic Party CPWDP
중국 치공당 中國致公黨 中国致公党 치공당 致公黨 致公党
China Zhi Gong Party[4] CZGP
구삼 학사 九三學社 九三学社 구삼 九三
Jiu San Society[5] JSS
대만 민주 자치 동맹 台灣民主自治同盟[6] 台湾民主自治同盟 대맹 台盟[7]
Taiwan Democratic Self-Government League TDSGL

그런데 중국 민주당이라는 불법[8] 정당이 인터넷, 휴대전화 문자, 전자우편 등으로 지지와 세력을 얻어가자 위협을 느낀 중국 공산당이 이새끼들이!를 외치며 해산시키고 금순공정을 만든 일도 있었다. 한편 2013년에는 실각한 보시라이를 지지하며 마르크스주의를 표방하는 중국 지헌당(中國至憲黨/中国至宪党)이 창당됐지만 역시 코렁탕행이었다. 지헌당 측은 중국 공산당의 지도 체계를 인정한다면서 임의로 구색정당 행세를 하는 식으로 불법화를 피하려 했지만 당연히 중국 정부는 얄짤없었다. 독일 좌파당독일 사회민주당만큼이나 관계가 개판이다

2.2.2. 북한

북한에서는 우당(友黨)이라는 표현을 쓴다.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이 정당들도 최고인민회의의 의석을 일부(전체 687석 중 80석) 점하고 있다. 모두 조선노동당과 함께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에 가맹돼있으며 공동으로 선거 후보를 공천한다.

하지만 북한 정치에서 이들은 어떤 차별성도 보이지 않는다. 성명서도 대부분 조선노동당의 정책을 무비판적으로 지지한다는 것뿐이다. 지역조직도 50년대 말부터 거의 와해되었다가 80년대부터 북한 언론에 평양직할시당과 일부 도(道)당이 다시 언급되는 등 몇몇 도당조직이 복구된 것으로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2000년대 초반 남북교류 당시 민주노동당 간부 등 이들을 방문한 인사들의 증언에 의하면 보석세공공장 등 일부 기업을 소유·경영하면서 지역경제 운영에 관여하고 있다고 한다.
  • 조선사회민주당
    해방 후 소련군 군정 당시 조만식으로 대표되는 우파 민족주의 세력, 강량욱으로 대표되는 좌파 개신교 세력, 김일성과 같은 파인 최용건 세력에 의해 창당된 조선민주당이 원형이다. 그러나 조만식이 신탁통치 반대를 이유로 숙청당한 뒤 최용건의 세력과 강량욱의 세력이 당을 장악하고 이후 8월 종파사건 이후에는 완전히 조선노동당김일성 빨치산파에 종속된다. 창당 때부터 지금까지 조선그리스도교연맹과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민주노동당이 2000년부터 조선사회민주당과 교류하기도 했다. 교류 당시 방북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당 운영의 대부분은 소유하고 있는 기업의 경영으로 충당한다고 한다. 기관지로는 계간지 《조선사회민주당》을 발행하고 있으며 출판사로 《조선사회민주당 출판사》을 운영하고 있다.
  • 조선천도교청우당
    천도교 이념을 바탕으로 1919년 창당된 뒤 일제 탄압으로 해체됐다가 해방 후 재조직화를 거쳐 1946년 창당된 북조선천도교청우당이 원형이다. 1950년 월북한 남조선천도교청우당 조직을 흡수해 조선천도교청우당을 발족했다. 그러나 8월 종파사건 후 지역조직들이 거의 와해되어, 지금은 조선노동당에 완전히 종속된 구색정당에 불과하다. 조선노동당에 종속된 후로는 강장수 등 조선노동당에서 파견된 천도교 교리도 모르는 간부도 있었다. 천도교인이었던 최덕신, 류미영 부부가 월북하여 당 대표를 맡은 이후로는 다시 천도교 색채가 짙어졌다.

2.3. 옛날

2.3.1. 독일민주공화국(동독)

  • 독일 기독교민주연합(CDU)
  • 자유민주당(LDPD): 독일의 주요 정당인 자유민주당(FDP)하고는 명칭이 다르다.
  • 독일 민주농민당 (DBD)
  • 독일국가민주당 (NDPD) :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의 후신이다.[9] 창당 당시 지도부 중 일부가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소련군에 항복한 독일군 장교 출신이었으며 당원의 과반수 이상이 전(前) 나치당 당원이었다. 당연하게도 전후에 독일 서부는 물론 동부에도 전(前) 나치당 당원들이 많이 있었다. 이들을 어떻게 활용할까 구상하던 소련과 동독 공산주의자들은 전(前) 나치당 당원들로 구성된 정당 창당을 허용하여 이들을 자신들에게 정치적으로 유리하게 활용하고자 결정했다. 전쟁 중 투항한 전(前) 독일군 장교들이 주도하여 전(前) 나치당 당원들을 당원으로 모집했다. 창당대회 때에는 소련군 고위 간부와 사회주의통일당 고위 간부가 가면을 쓰고 몰래 참관했다. 물론 하켄크로이츠는 동독에서도 금지되었으므로 곡엽(참나무 잎사귀)에 NDPD라고 써진 깃발을 사용했다.(영문 위키피디아) 다행스럽게도 통독 후 네오 나치 정당인 NPD에 흡수되는 일은 면했으며, 대신 위의 LDPD와 함께 FDP에 흡수되었다.

기독교민주연합과 자유민주당은 서독에도 같은 이름의 정당이 있었는데, 통독 이후에 기민련과 자민당은 서독의 기민련, 자민당에 흡수되었다.

2.3.2. 중화민국(대만)

  • 중국 청년당 : 유학생과 중산층이 지지하는 국가주의자들의 정당. 국민혁명 시기 쩡치의 지도 아래에 마지막까지 북양정부를 지지했고 1938년에 국민당과 공식합작하기 전까지 10년 이상 국민당에 저항한 역사가 있지만 국부천대 이후 지지기반이 붕괴되고 무력한 관제야당으로 전락했으며 1960년부터 총통과 부총통 후보를 내는 것조차 포기하게 된다.
  • 중국 민주 사회당 : 화교와 학자가 지지하는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정당. 중화인민공화국의 위성정당인 중국민주동맹에서 분열되었다.

1928년 중국 국민당이 북양정부를 타도하면서 생성된 국민정부는 삼민주의 이념의 [ 군정 => 훈정 => 헌정 ] 논리를 바탕으로 1935년부터 1937년까지 여당/무소속/직업단체의 직선으로 선출한 '제헌' 국민대회를 1946년에 소집했으며, 중화민국 헌법을 반포하면서 다당제 헌정으로 전환했는데, 1947년에 여당/야당/무소속/직업단체의 직선으로 선출해 소집한 '행헌' 국민대회/'행헌' 입법원/'행헌' 감찰원에서는 중국 공산당이 참정을 거부하면서 중국 국민당(大)/중국 청년당(中)/중국 민주 사회당(小)의 여대야소를 자연스럽게 연출했으니, 장제스의 책략으로 '3당 훈정'을 형성했다. 여기서 '3당 훈정'은 강력한 총통제와 3개 정당의 연립내각을 결합하는 방식으로 형식적인 헌정(憲政)과 실질적인 훈정(訓政)을 동시에 추구하는 1946년 체제를 가리키는 낱말이다.

1946년에 장제스는 3당 훈정의 막후 공작을 추진하면서 중국 국민당과 중국 청년당과 중국 민주 사회당의 정치인들을 차례로 초청하여 최고위급 관직에 등용을 약속했고, 곧이어 3당 훈정의 여당으로 변신한 중국 국민당과 중국 청년당과 중국 민주 사회당의 정치인들은 연립내각의 여당으로서 중앙정부의 장차관으로 출세했지만, 그들의 표밭은 어디까지나 중국대륙의 대도시에 한정되어 있었다. 결국 1949년부터 1950년까지 국공내전의 패전으로 중화민국이 중국대륙의 99%를 상실하면서 중국 청년당과 중국 민주 사회당은 지지세력의 99%를 잃어버렸다. 중화민국의 중앙정부가 타이베이로 천도하면서 3대 정당들의 본부도 타이완 섬으로 이전했다.

원래 타이완 섬에서는 중국 청년당과 중국 민주 사회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장제스 정권이 총력전을 명분으로 야당의 창당을 금지한 덕택에 역설적으로 기사회생한 중국 청년당과 중국 민주 사회당은 중국 국민당의 협찬으로 토착인 무소속 정치인들을 포섭하면서 외성인의 표밭으로 명맥을 유지했지만, 민주화 이후인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국민대회/입법원/감찰원/성의회/현의회에서 모든 의석을 모두 상실해 연구회 수준의 야당으로 전락했다. 애초부터 국민당의 자금지원으로 버텼던 군소정당인데다가 본성인의 표밭으로 승승장구하는 민주진보당이 온나라의 곳곳에서 버티는 마당에 외성인들의 대다수가 중국 국민당의 노선을 지지하면서 외성인의 야당들은 아무런 경쟁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2.3.3. 대한민국

파일:나무위키+유도.png   해당 문단의 내용에 대한 내용은 제11대 국회의원 선거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12.12 군사반란5.17 비상계엄 전국확대 조치로 정권을 장악한 신군부는 1980년 8월 집권여당 민주공화당과 제1야당 신민당을 포함해서 모든 정당을 강제해산해서 군부독재체제를 확고히 하였다. 그래도 대외적으론 민주주의라는 모양새를 갖춰야 했기에 민주정의당을 창당하면서 동시에 비교적 군사정권에 고분고분한 야당인사들을 회유, 협박, 매수 등의 방법으로 끌어모아서 여러개의 관제야당을 만들어냈다.

이런 관제야당들은 마치 북한의 조선사회민주당과 천도교청우당처럼 아예 정권에서 직접 각 지역구마다 국회의원 선거 후보를 정해줄 정도로 사실상 무늬만 야당이었지, 정권의 노리개에 불과했다. 관제야당 창당과 1981년 대통령 선거 공천은 보안사에서 주도했고, 5공화국 정권이 들어선 이후에는 안기부가 관리했다. 신군부는 기존의 제도권 정치세력을 모두 정치금지로 묶어놓고, 집권 민정당과 자신들에게 고분고분한 관제야당으로만 판을 짜서 편하게 독재를 할 수 있었다.

아래는 당시 5공 정권이 정치공작을 통해서 만들어낸 관제야당들이다. 이 정당들은 1987년 6월 항쟁으로 민주화 시대가 열리자 모두 흔적도 없이 몰락하였다.[10]


[1] 강력한 여당이 정권을 독점하여 정당정치 하에서는 사실상 정권 교체가 일어나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독일어 헤게모니는 패권 따위의 뜻이다. 이는 사회주의 국가 등에서 보이는 이데올로기 국가들과 자본주의 독재국가 등에서 보이는 독재의 한 유형이다. 한국의 경우 박정희, 전두환 시대가 그 예가 된다.[2] 단지 장난이나 풍자를 목적으로 만든 장난 정당과는 엄연히 다르다![예시] 비례○○당.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 창준위만 3개가 있었다.[4] China Party for Public Interest으로 옮기기도 한다.[5] Jiusan Society, September 3 Society로 옮기기도 한다.[6] 본래 '대만'의 번체자가 臺灣이므로 臺灣民主自治同盟으로 적기도 한다. 중국어 정체자(번체자)에서는 臺와 台가 혼용된다.[7] 번체자의 경우 臺灣民主自治同盟을 줄여 臺盟으로 쓰기도 한다.[8] 중국 정부 입장에서는 불법이지만 민주국가 입장에서는 정치 탄압이다.[9] 물론 직계후손은 따로 있었다.[10] 이들 정당은 최종적으로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득표율 2% 미만을 기록하는 바람에 모두 해산되었다. 몇몇은 이미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 이후에 사라졌다. (현재는 이 부분에 대해 위헌 결정이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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