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23 11:16:37

내셔널리즘

파일:nationalism.jpg
Nationalism

1. 개요2. 역사3. 학술적 논란4. 내셔널리즘의 특징
4.1. 장점4.2. 단점4.3. 총평
5. 한국에서6. 내셔널리즘 성향을 가진 정치가들7. 민족주의 음악8. 관련 문서

1. 개요

내셔널리즘(국민주의)은 사회의 기본 단위로서 존재하는 Nation을 우선하는 정치적 이념이자 사상을 말한다. 단일민족-단일국가 주의가 팽배한 한국에서는 국민=민족=국가로 인식하기 때문에 내셔널리즘이 민족주의로 번역되어 들어왔기 때문에 많은 오해를 낳는다.

미국, 영국, 프랑스 등의 자유주의적인 다민족 국가에서는 주로 문화의 일치를 기준으로 동질적인 사회지향을 추구하는 공동체를 구획하여 타자와 구분되는 하나의 정체성과 국가를 공유하는 국민집단인 'Nation'의 개념을 토대로, 이 공동체에 걸맞은 독립적인 국가의 건설을 목표로 하는 내셔널리즘이 나타나고, 독일, 폴란드 등에서는 전제적이며 전통적으로 언어적, 혈통적 일치를 보였던 국가에서의 Ethnic group을 Nation으로 설정하는 경향이 있다. 중국에서는 신해혁명 이후 한족 중심의 권익을 위해 만주족을 배제한 Nation을 설정하고 그들의 이익을 위한 내셔널리즘이 나타났던 적이 있지만, 현재는 중국 공산당 주도로, 한족과 중국 관내 소수민족을 모두 포함한 중화민족이라는 새로운 개념의 Nation을 만드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Nation'과 'Ethnic group', 'Nationalism'과 'Ethnic nationalism'은 각각 '민족'과 '민족주의'로 번역되었으며, 이 번역에는 굉장히 논란이 많은데, 한국에서 '단일민족국가' 같은 단어에 들어있는 "민족"이란 개념[1]에 가장 일치하는 것은 분명 'Ethnic group'이지만, 민족주의는 'Ethnic group'과는 다른 의미를 가진 'Nation'의 파생어 'Nationalism'이기 때문이다. 영어를 기준으로 'Ethnic nationalism'이란 단어가 따로 존재하며 실질적으로 한국어의 민족주의란 단어에 가장 가까운 의미는 이 단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경우 'Nationalism'이란 단어의 번역이 애매해지는데, Nationalism을 국가주의라고 번역하기에는 국가주의는 'Statism'이라는 별개의 단어가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Nation-State를 국민-국가로 번역하고 있다. 그렇다면 'Nationalism=국민주의'. 그런데 사실 '국민'이라는 단어도 사회에서는 대부분 '한 국가내에서 그 나라 국적을 가지고 있는 사람' 정도로만 통용되는 게 일반적이라 이것도 그리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뭐가 이리 복잡해

그렇기에 이 사상을 늦게 받아들인 나라들은 적어도 학술적으로는 구분하려 애쓰며, 예로 일본은 굳이 구별하기 위해 'Ethnism'을 '민족주의'로, 'Nationalism'을 '내셔널리즘'으로 구별하고자 했더니 이젠 '민족주의'를 '혈통주의' 등으로, '내셔널리즘'을 '애국주의', '국수주의', '민족정복주의' 등으로 오해하기도 한다. 번역을 포기하면 편하다.

내셔널리즘은 공통적인 특성을 갖는 하나의 공동체의 확립 및 타자와의 구분을 전제로 하므로, 내부 공동체의 단결과 타자로부터의 독립 등에 많이 사용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단결을 해치는 내-외부 요소나 타자에 대한 배척이 이루어지므로, 공격적으로 이기적, 배타적인 행동을 하도록 하는 경우가 많은 사상이기도 하다.

다른 이데올로기와는 다르게 내셔널리즘은 그 개념이 모호하며 다른 이데올로기와 잘 합쳐진다는 특징이 있다. 그렇기에 근ㆍ현대의 거의 모든 신생 독립국가들을 탄생하게 한 이념이기도 하지만,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 전 분야의 갖가지 담론을 '민족'이라는 이름 아래로 소환시켰던 그 파괴적인 힘은 도리어 양차 대전을 비롯하여 증오와 피로 얼룩진 20세기의 수많은 분쟁을 만들어냈다.

내셔널리즘은 봉건제의 붕괴에 따른 절대왕정의 등장에 그 기원을 두며, 나폴레옹 전쟁 때 전 유럽으로 퍼져나갔다. 이는 'Nationalism'이며, 시대에 따라서 그 뜻이 변화해온 것이 내셔널리즘이다. 여느 사상들이 그렇듯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식으로 자유주의 시대 때는 국민 국가 형성을 위한 시민적 내셔널리즘으로, 제국주의 시대에는 우월한 민족이 당연히 세계를 지배해야 하는 제국주의로, 우리나라와 같은 식민 시대였던 국가에서는 다른 민족으로부터의 독립을 위한 저항적 내셔널리즘(민족자결주의)으로, 그 후로는 양차 대전의 나치즘과 파시즘으로도 변화했다.

현재는 집단적 배타성 그 자체를 뜻하는 의미로 용례가 확장되고 있다. 이를테면 white nationalist라던가. 이 경우는 백인인종주의의 차별적, 우월적 요소보다는 '백인끼리 뭉치자는' 좀더 소극적이고 배타적인 뉘앙스가 강하다. 적합한 역어를 찾자면 '자국주의자'가 그나마 적절할 것이다. 애초에 한국어로 1:1 번역이 불가능한 개념이다.

2. 역사

혈통적인 공동체를 구성하는 민족(Ethnic group)의 개념은 고대부터 있었고 개중에는 유대인처럼 수천 년을 유지한 경우도 있지만[2], 'Nationalism'은 근대에 'Nation'의 개념을 기본적으로 인식하면서 태동한다. 'Nation'은 흔히 '국가', '민족'으로 번역되지만, 그것 외에도 '국민'의 뜻을 지니고 있다. 특정 국민들끼리 매우 빈번한 왕래와 의사소통[3] 등을 함으로써 형성된 동질적인 유대감 및 소속감에 따라 형성된 공동체 의식이 '특정한 거대 공동체 집단'을 구성하며, 이들이 건설하는 국가가 '국민 국가(Nation-State)'의 형태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 때의 국가는 울타리(국경, 더 강한 분리가 필요할 경우는 장벽을 건설한다)의 개념으로서 자국민을 다른 영역의 타국민과 분리시키는 역할을 한다.

Nation이라는 개념이 학술적으로 쓰이기 시작한것은 유럽에서는 17세기 영국에서 처음 시작되었다고 여겨진다. 섬이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대륙의 외부 세력(숙적인 프랑스나 여타 가톨릭 세력 등)들과 맞서면서 영국인(브리튼인)이라는 배타적 집단의식이 형성되고, 강력한 국가로 발전하기 시작한 영국[4]이 자국 국민들을 하나로 만들기 위하여 기존의 앵글로색슨족/켈트족 등의 민족이라는 용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추상적인 개념에서 만들어 낸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Nation-State의 관념은 전통적 계급구도를 뒤엎어 놓은 시민혁명기를 거치면서, 그리고 계몽사상이 보급되면서 정치 참여에 대한 의지를 갖는 시민들 사이에 널리 확산되었다. 이는 이전의 봉건제도에 의한 분절성을 극복하고 통일적인 국가가 성립하는 데 강한 추동력이 되었으며, 지식 및 교육의 확산과 정치 참여 계층의 확장과 함께하며 유럽 각국의 지배적인 이념으로 자리 잡았다.

반면 식민지를 겪은 나라들의 내셔널리즘에 대한 학술적 개념이 생긴 과정은 매우 다르다. 19세기 서구 열강의 식민지 침탈이 가속화되면서 식민지로 전락한 나라들이 서구 식민 지배자에게 저항하기 위한 결속의 근거를 삼기위하여 발전한 것이다. 이른 시기의 예로는 미국 독립전쟁이나 라틴아메리카의 독립 열풍이 있고, 19세기 후반에는 동아시아를 포함한 세계 각지에서 저항을 위한 내셔널리즘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이런 점에서 서구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적 내셔널리즘으로 출발한 일본의 내셔널리즘이 제국주의 침략의 강력한 추진력으로 변모하는 과정은 꽤 흥미로운 사례이다. 어쨌든 근대에 내셔널리즘을 도입한 국가, 세력이 한둘이 아니고 그들이 받아들인 방식도 다양하므로 이들을 간단히 일률화하기는 힘들다. 어쨌든 내셔널리즘은 제국주의자들과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 세력 양쪽 모두에 사상적 토대를 제공하게 되었다.

사실, 'Nationalism'으로서 통합된 국가가 이전보다 훨씬 강력해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내셔널리즘은 비슷한 언어, 비슷한 문화만 공유하고 있으면 대단히 넓은 범위의 인간들을 '하나의 정체성'으로 묶어버릴 수 있다. 내셔널리즘의 위력으로 인해 혈연에 기초한 씨족이나 부족, 귀족이나 노예와 같은 계급 제도, 종교, 지연 등의 다른 사회적 연결 고리는 분명 상당히 약화하고, 적어도 같은 국민 내부에서는 균질적인 사회가 출현하게 된다. 이렇게 "설사 출신지(민족), 인종이 달라도 우리는 같은 국민이 아닌가?"라는 구호 때문에 '내부 갈등'은 줄어든다. 결국, 같은 규모라면 외부로 투사할 수 있는 국력이 엄청나게 달라지며, 설사 규모가 크다고 해도 내셔널리즘로 묶이지 않은 국가는 국가라는 개념이 거의 솜 무더기 처럼 흐리멍덩하게 인식된다. 이 때문에 내셔널리즘 국가와 내셔널리즘이 완성되지 않은 국가[5]를 비교하면, 후자는 거의 "나라 꼴도 못 갖춘 것"처럼 보일 정도이다. 그러므로 후발 국가의 지식인들에게는 "같은 국민이라면 다 같이 힘을 합쳐서 나라를 건설하자."는 내셔널리즘이 그럴 듯하게 보이게 된다. 내셔널리즘이 완성되지 않은 나라에서는 '국가 전체'보다는 씨족, 부족 같은 혈연 집단의 이익이나 왕족이나 귀족 같은 특정 계급의 이익이 '매우 당연하게' 우선시되고 그것이 정당화된다. 19세기 지식인들은 그 대안으로서 '내셔널리즘'을 제시했던 것이다.

그런데 'Nation'의 개념이 당시에 유행하던 사회진화론, 우생학, 인종차별 등과 결합하면서 혈통적인 민족/종족의 개념인 'Ethnic group'이 대두하기 시작했으며, 이것이 제1차 세계대전에서 범게르만주의와 범슬라브주의가 충돌하는 사건 등으로 표출되기도 했다. 동아시아는 특히 역사적인 연고가 오래되고 내부의 단결력이 뚜렷하며 이미 공간적인 구획이 확고하고 여러 종족을 하나의 단일종족으로 흡수통합한[6] 국가들이 존재했으므로, 근대 일본의 번역어인 '민족(民族)'을 (단일)혈통적인 의미로 받아들이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7]

20세기 미국의 대통령 우드로 윌슨이 제창한 민족자결주의는 이러한 독립 국가 건설의 열풍을 유럽에 적용하여 제국들의 해체를 위해 이용하였으나, 아시아와 아랍 등지에 큰 파급을 미치면서 내셔널리즘을 다시 한 번 고조시켰다. 이에 영향을 받은 한국의 대표적인 내셔널리즘 운동으로 3.1 운동 등이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개별 국가(nation)를 넘어 국제적이고 다국적인(International) 노동자의 단결을 추구한 사회주의 국가 소련도 제국주의에 대한 공세를 위해 각국의 내셔널리즘 세력과 협력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패전국의 식민지가 독립하였고, 유럽 지역이 막대한 피해 복구에 여념이 없는 동안 1960년대까지 독립 열풍이 몰아닥치면서 세계 각지의 식민지들이 스스로 단결을 위해 내셔널리즘을 이용하였다.

3. 학술적 논란

한국에선 민주주의의 도입 이후 이 내셔널리즘의 성격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데, 이것이 세계화에 꽤나 방해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양의 내셔널리즘 개념을 들여왔고 서양사학계에서 꽤 주목을 받는 탈민족주의 관점에 따르면 내셔널리즘은 조상들로부터 이어받아온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고 근대에 만들어낸 새로운 개념이라 설명하기에[8] 이 개념을 들여와 한국인에 정착시키면 내셔널리즘을 차근차근 제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특히 근대에 서구의 이념을 수입한 경우인 동아시아 등에서 전통을 배제하는 경우 쉽게 일어난 일이다.

원래 동아시아에서는 민족 비슷한 개념이 확립되어 있었다. 전근대의 동아시아 문명권은 조공과 책봉이라는 시스템을 기반으로 하는 '중화문명'의 기치 아래 그 중심인 중화와 그 변경인 수많은 조공국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조선이 소중화를 내세우며 명나라 외 나머지 국가들을 죄다 오랑캐 취급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듯 '민족'이라는 개념을 학술적으로 설명할 필요도 없고 '민족'이라는 별칭을 써서 분리할 필요성이 없었다. 게다가 민족단위 이동과 지배민족 교체가 잦거나 결혼으로 바뀌는 지배층과 피지배층 일반민이 혈연적 연관성이 없던 중국이나 유럽과 달리, 한반도의 경우 각 왕조가 오백 년 천 년이라는 장구한 세월을 지속한 관계로, 신분이니 혈통이니하는 것은 달라도 경계 이쪽은 일단 저편과 구별되는 우리라는 생각이 정착돼 있어도 이상할 게 없었다. 내셔널리즘 = 민족주의였던 것이다.

그러나 19세기 말, 일본이 개화기를 거치면서 'nation'이라는 단어를 '민족'[9]이라고 번역하면서, 비로소 '민족주의'는 동아시아 고유의 학술적 어휘로 새롭게 태어났다. 그러나 계급제의 모순에 대한 저항으로 출발한 서구 사회의 내셔널리즘과 비교하여 동아시아의 민족주의는 외세 침탈에 대한 방어적 형태로 발현하였기에 발전에 주어진 시간이 매우 짧았으며, 근본적인 정치, 역사, 문화적 배경부터가 크게 달랐기에 사상적인 체계화도 쉽지 않았다. 때문에 근대화 시기의 동아시아 국가들이 내셔널리즘의 관념들을 받아들였다 한들 단번에 서구 국가들에 준하는 수준의 엄청난 결속과 맨파워를 얻는 것은 불가능했으며, 한쪽에서는 인종주의와 팽창주의적 정책으로, 다른 한쪽에서는 내분의 씨앗을 뿌리는 형태로 격동의 반 세기를 소모한 끝에야 어느 정도 긍정적인 결말을 얻을 있었다.

동아시아뿐 아니라 세계 각지의 역사에서 각자 나름대로 원시적인 민족 관념이 등장하곤 하지만, 이들은 순수 학문적 영역에서만 비교하더라도 근대 이후 서구에서 출현한 내셔널리즘과는 명확한 차이점이 있었다. 고대의 민족주의는 고작 조세나 도시 간의 이질성 같은 지엽적인 문제만으로 칼을 거꾸로 잡았으며[10], 충성심도 보통 '민족'보다는 국가나 국왕이 그 대상이었다.[11] 이처럼 본래 비슷한 민족 간에도 현실주의적 국익에 따라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하던 유럽 국가들이, 내셔널리즘의 확산에 따라 가까운 민족들끼리 적대감이 약화됨은 물론 동족의 국가가 이민족에게 침략당하면 지원하고 공감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다. 당장 범게르만주의범슬라브주의 등이 흥했던 20세기 초, 얼마 전 과거까지 서로 전쟁을 벌이던 이웃 국가들끼리 동족이라는 이유로 급속도로 관계가 개선되기도 하고, 본래는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거나 심지어 한 국가 안에서 잘 어울려 살던 민족들이 갑작스럽게 잔혹한 학살극을 벌이곤 했던 역사를 보면 잘 알 수 있다.[12]

일본은 세계 2차대전 이후에 이것을 오역이라고 규정하고 '국가주의'로 수정하는 등 민족주의란 단어의 사용을 최대한 지양하는 상황이지만,[13] 대한민국중화인민공화국은 아직 민족이라는 단어를 교과서에서 사용하고 있다. 이는 20세기 동안 한국, 중국 등이 서구 사회를 재해석하여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들여오거나 아예 거부해서라도 자신들의 전통적 정체성을 지켜내고자 했던 반면, 일본의 경우 메이지 유신으로 체제를 싹 갈아엎고 서구식 내셔널리즘 개념을 긍정적인 측면이든 부정적인 측면이든 전면적으로 받아들였던 역사적 차이가 반영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실제로 일본은 뒤틀린 내셔널리즘을 바탕으로 세계대전을 일으키기도 했으며[14], 미국이 일본을 비보통국가로 하고 군국주의를 없애면서 서구식 내셔널리즘(Nationalism)으로 변화해간다.

20세기 중후반에 이르러 제국주의가 막을 내리고 세계주의가 시작되면서, 서유럽 국가나 미국에서는 내셔널리즘을 철지난 과거의 유산 취급하며 경계하는 정서가 강하다. 서유럽 국가에서는 양차대전의 상흔을 넘어 유럽 연합이라는 새로운 시스템 아래 자신들을 유럽인으로 규정하려는 시도들이 있고, 미국에서도 2차대전 이후 인종차별을 뿌리뽑고자 하면서 내셔널리즘이 크게 쇠퇴했다. 반대로 터키(쿠르드족 문제)나 중국(티베트, 위구르 문제) 등 권위주의 중진국들은 자국 내의 분리주의터키 민족, 중화민족 따위 새로운 개념을 창시하여 민족의식을 리셋해버리는 방식으로 해결하려고 시도하기도 한다. 어느 쪽이든 전통적인 의미의 민족주의는 세계 대부분의 지역에서 사양길에 접어든 셈이다.

한편 한중일[15]처럼 민족적 특수성이 강하다거나 이스라엘처럼 국가 존속이 위협받을 위기에 처한 경우 내셔널리즘을 통해 민족의 생존과 부흥을 도모하기도 한다. 한국의 민족사학을 대표적으로 예시를 들자면 고조선으로부터 시작되는 왕조 정통성론이나 종족 및 혈통 관념과 조상 숭배 등 역사 속에서 민족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선험적인 관념들이 이미 존재하고 있었고, 중국 역시 겉으로는 부정하지만 실질적으로는 한족 민족주의가 막강하며 소수민족 융합정책을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일본 역시 (이제 와서는 어느정도 문화적으로 동화되어 안정되었지만) 비교적 최근까지 아이누, 류큐인등을 차별하고 야마토 민족을 우대해 온 역사가 있으며, 재일 한국인재일 중국인 등에 대한 차별은 한일관계, 중일관계와 맞물려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사회 이슈이다.

다만 돌이켜보면 근대 이전의 유럽 국가들 역시 동아시아 국가들와 유사한 '자국 의식'을 갖고 있었으며, 그를 바탕으로 내셔널리즘을 창출한 것이다.[16] 동아시아 국가들은 타국과의 엄격한 구분을 주장하며 독자적인 길을 걷기보다는 동아시아의 세계 체제 내에서 한자, 불교, 유교 등의 보편 문화를 추구하는 성향이 강했는데, 이는 내셔널리즘 의한 분화라기보다는 이미 고대서부터 달랐기 때문에 내셔널리즘이 아니어도 다르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적지 않은 학자들은 유럽과 동아시아의 역사적 배경이 크게 다르므로, 서구의 역사적 경험에 입각한 내셔널리즘 이론으로 동아시아 등의 민족 관념을 설명하려는 시도가 무리라고 주장한다. 요는 (설사 그것이 근대적 내셔널리즘의 형태는 아니었을지라도) 이미 민족에 준하는 어떤 관념이 있어서 그것이 근대의 변혁기를 거쳐 현대의 동아시아식 내셔널리즘으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서양에서 말하는 'Nation'과 동양에서 말하는 민족은 서로 다르다는 것인데, 이걸 제대로 설명하려면 유대인 특유의 속성을 반영한 시오니즘처럼 기존의 근대 내셔널리즘 이론을 넘어서서 동아시아 민족의 특수한 발전양상을 규명할 수 있는 새로운 이론이 개발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편 혈통적인 차원의 공통점으로 민족주의에 접근하는 이론은 특히 많이 두들겨 맞았다. 이스터 섬과 같은 극단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세계 거의 모든 국가가 이주, 교역같은 상호 간의 인적 교류 행위를 전제로 하여 형성되고 변화해 왔다. 그러한 의미에서 나치 독일의 아리아인 순혈주의나 반대로 환빠들의 '사실 XX족은 한민족'과 같은 주장은 지양해야 할 사상 중 하나이다. 굳이 그러한 의미가 아니더라도, 1775년 당시에는 영국과 크게 다른 혈통적 집단이라고 볼 수 없는 미국이 독립의지를 품고 영국과 전쟁한 사건이 '내셔널리즘(Nationalism)'의 주요 사례로 꼽히는 것처럼, 혈통상의 민족조차도 꼭 한 개의 민족국가만을 만들어 모두 거기에 소속되지는 않는다. 무엇보다 백퍼센트 단일민족국가란 인류 역사에서 단 한번도 실재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국가간의 모든 교류가 차단되지 않는 이상에서야 결코 존재할 수 없는 개념이다.

아무튼 내셔널리즘은 근대 담론과 함께 한국 역사학계에서 논의가 많이 되는 부분이기도 하니 궁금한 사람은 나무위키에 너무 많은 것을 바라지 말고 직접 책과 논문같은 것들을 읽고 다양한 의견을 찾아보자. 일단 유럽 근현대사, 제국주의를 중심으로 한 근대 세계사, 한국사 전반 등을 공부해야 하는 후덜덜한 매우 흥미로운 주제이다.

4. 내셔널리즘의 특징

4.1. 장점

"민족주의란 한 국가가 발전하고 한 민족이 살아남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최고의 보물이다."
쑨원
"내 몸이 남의 몸이 될 수 없음과 마찬가지로 이 민족이 저 민족이 될 수 없으며, 피와 역사를 같이하는 민족보다 완전한 영원함은 없다."
백범 김구
"민족이란 인간의 육신을 구성하는 장기와도 같다. 민족이 고통에 처했을 때는 마치 우리들 스스로가 고통에 처한 것처럼 노력해야 한다."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17]

내셔널리즘은 내부 구성원들 사이의 동질성을 강조함으로써 결속력을 도모하고 위기 상황에서 하나의 국가 혹은 민족의 역량을 최대한으로 끌어내는 원동력을 제공한다. 이러한 위기대 처능력은 바로 내셔널리즘이 처음으로 태동한 프랑스 혁명 직후의 프랑스에서부터 입증된다. 혁명기의 혼란과 연이은 외침을 겪으며 내셔널리즘의 의식이 고취된 당대의 프랑스인들은 프랑스를 '우리들의 국가'로, 프랑스인들은 '우리네 동포'로 인식하였으며, 이는 자국과 자민족을 여전히 '국왕의 국가'이자 '국왕의 신민' 정도로 여기던 주변국들과 명백히 대비되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의 차이는 국가를 향한 애국심과 거기에서 비롯된 전쟁수행에 대한 협력, 반-자발적 징병제 등으로 나타나 나폴레옹 제국과 프랑스 대육군(La Grand Armée)이 대영제국신성로마제국(후의 오스트리아 제국), 프로이센, 러시아 제국 등 당대의 열강들을 상대로 압도적인 패권을 과시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

위기 상황에서 내셔널리즘의 위력을 증명하는 또 다른 대표적인 예시는 바로 제2차 세계대전 동부전선의 교전국인 소비에트 연방이다. 공산주의는 본질적으로 내셔널리즘이나 애국주의적 사고보다는 국경을 초월한 계급 간의 연대를 강조해왔으며[18], 실제로 소련 초기 러시아의 수많은 역사적 위인들이 공산주의 이념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격하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독소전쟁 초기의 암울한 전황 속에서 스탈린이 선택했던 방법은 러시아의 독립과 근대화, 조국전쟁 등 역사적인 승리의 순간들에 자리하였던 러시아의 영웅들을 부각하고 러시아 정교회를 재허용하는 등 내셔널리즘 사고에 기초한 것이었다. 조국이 존망의 위기에 처한 극단적인 상황에서 러시아인들의 저항정신을 고취해 끝내 나치를 파멸로 몰고 간 원동력은 결국 허울뿐인 공산주의에 대한 신념보다는 (러시아) 내셔널리즘였던 셈이다.

또한 내셔널리즘은 약소국이 외세의 압제에 맞설 기회를 제공하는 유용한 수단이기도 하다. 이러한 저항적 내셔널리즘(혹은 방어적/해방적 민족주의)는 제국주의의 침탈을 경험한 피식민국가들에서 상당한 지지를 받아왔다.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들에게 민족주의(내셔널리즘)[19]는, 반대방향[20]에 있는 공산주의[21]와 함께 항일 저항운동의 핵심 키워드였다. 일제의 한국어 말살 교육이나 창씨개명 등에 맞서 한민족의 얼을 지키자는 운동이 벌어진 것 또한 같은 맥락이었고.

마지막으로 내셔널리즘은 후발 주자가 (열강 구도가 굳어졌던) 근대 이후 국제사회의 판도를 변화시킬 수 있는 최후의 카드(Game Changer)였다. 오랫동안 수십, 수백 개의 영방국가로 쪼개져 있던 독일이나 이탈리아가 통일을 이루고 유럽사회의 열강 클럽에 가입할 수 있었던 계기는 바로 유럽 사회를 강타한 내셔널리즘의 확산이었는데, 프로이센과 독일 제국이 보수적·전통적 가치를 중시했던 것과는 별개로, '독일 민족국가'는 귀족계급보다는 소상공인을 비롯한 독일 민중들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얻었다. 독일 민중의 내셔널리즘 신화는 수백 년간 주위 열강들에 의해 분열된 채 변방으로 취급받던 국가가 불과 한 세기 만에 유럽에서의 지위를 확고히 하고, 심지어 양차대전에서 전 세계를 상대로 깽판을 벌이고 난 지금 이 순간까지도 유럽의 지도 국가로 자리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4.2. 단점

파일:external/www.catch21.co.uk/nationalism1.jpg
"내셔널리즘은 소아병적이다. 내셔널리즘은 인류가 앓는 홍역이다."
알버트 아인슈타인[22]
"내셔널리즘은 자기기만에 가려진 권력욕이다."
조지 오웰

내셔널리즘은 태생적으로 집단의 공통점을 추구하기에, 하나의 집단을 구성하는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천편일률적인 몇 가지 기준으로 정의하려는 경향성을 나타내며, 이는 자연스럽게 그러한 기준, 즉 민족성에서 벗어나는 모든 가치를 억압하는 방향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크다.

그뿐만 아니라 과도한 내셔널리즘에 기반한 사고방식은 국가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을 요구하는 국수주의전체주의로 변질할 위험성이 있다. 물론 이처럼 극단적인 이데올로기가 주변 국가들은 물론이고 결과적으로 자국민 혹은 자민족에도 불행을 가져온다는 사실은 이미 지난 한 세기 동안 전 세계가 수많은 희생을 통해 체득한 바 있다. 항일 유격대 시절의 투쟁논리와 소위 '민족해방전쟁'을 근거로 주체사상선군정치를 발명, 반미-반일-반제국주의 논리까지 버무려서 인민 세뇌에 써먹고 있는 북한도 가까운 예이다.[23]

또한 다민족 국가에서는 단결이 아닌 골칫거리 중의 하나이다. 조율을 제대로 못 할 경우 내전으로 치닫게 되어 국가 막장 테크로 가는 경우도 있고, 제노사이드 혹은 그에 준하는 대규모 학살이 벌어져 그 국가에 대한 국제 여론이 매우 나빠질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후투족과 투치족이 내전을 벌여 수십 만명이 죽어 나간 르완다 내전, 다수민족 버마인과 로힝야, 카친, 카렌, 샨족등 소수민족과의 충돌과 대립이 이어지고 있는 미얀마, 7개[24]의 국가로 분열한 유고슬라비아 등이 있다. 현대의 중국 또한 자국 내의 민족 분규를 해결하는 데 '55개의 민족[25]이 화합하여 만들어내는 중화민족'의 개념을 창작하여 티베트, 위구르 문제 등을 강압적으로 해결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내셔널리즘이 강성해질수록 그 민족의 근간이 되는 역사를 '민족의 역사'라는 하나의 줄기로 묶어내려는 경향이 강해지는데, 문제는 현대 민족국가들 대다수가 근대에 형성된 것이므로 근대 국가와 민족 관념을 자꾸 고대사로 확장, 투영시킴으로써 그 역사에 대한 소유권과 정당성을 찾으려 한다는 점이다. 민족을 초역사적 실체로 보지 않는 이상 이런 태도는 역사학 연구에서 지양해야 할 태도이며, 그 저변에는 대개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다.

중국이 그 대표주자로서, 애초에 한족이란 개념부터가 한이란 이름에서 보이듯 서로 다른 나라나 다름없었던 춘추전국시대를 끝장낸 진나라의 강력한 통일정책이 한나라로 이어지면서 생긴 민족개념이다. 그 외 동북공정 문제와 고구려, 발해 역사가 한국 역사냐, 중국 역사냐[26] 따위의 소위 역사 분쟁은 이미 한국 사회에도 익히 알려진 바 있다. 물론 한국 사학계도 이에 대해 ', 에 대한 고구려의 승리는 민족의 방파제 역할을 한 것' 등 내셔널리즘이 도구로써 활발히 사용하고 있다. 이것도 민족을 정의하는 관점에 따라 "저런 놈들과 같은 수준에서 진흙탕 싸움을 하면 안 된다"[27]라는 주장과 "그렇다고 한민족의 역사를 강탈하려는 시도를 좌시하면 안 된다"[28]는 주장이 대립하고 있다. 한때 상당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자본주의 맹아론식민지 근대화론을 둘러싼 담론 또한 한국사학계에서 내셔널리즘과 근대가 갖는 위상이 어땠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자세한 내용은 각 항목 참고.

또한, 한 민족이 여러 나라에 퍼져 있을 때, 강성해진 내셔널리즘은 자기 민족이 사는 땅은 다 달라고 요구하게 되는데 대표적인 것이 독일히틀러세르비아밀로셰비치였다. 결과는 둘 다 폭망... 1차 대전만 해도 세르비아인이 사는 땅은 무조건 세르비아에 소속되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던 세르비아 과격주의자들의 총성으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위에 언급된 고대사에 대한 소유권 문제가 확대되어 엄청난 영토를 "원래 우리 땅이었다."란 논리로 요구하게 된다. 오늘날에는 이스라엘이 입으로나마 이런 개드립을 치고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면 환빠들처럼 애초에 영유한 적도 없는 역사를 날조해 내고 그 소유권을 주장하기도 한다.

포클랜드 전쟁을 일으켰던 아르헨티나의 독재자, 레오폴도 갈티에리의 경우도 있다. 아르헨티나는 후안 페론 사후에 1년이 머다하고 끝없이 이어지는 쿠데타로 엉망이 되어있었다. 1981년 상황을 보면 실업률이 13%에, 인플레이션이 130%였다. 아르헨티나 광장에서는 매일 시위대가 들끓었고 각 주요 도시에서는 격렬한 데모가 벌어졌었다. 그러나 포클랜드 전쟁을 일으키고 나서, 갈티에리는 지지율이 50~60%로 훌쩍 뛰어오른다. 당시 아르헨티나엔 환호성을 지르는 사람들도 넘쳐났다고 한다. 비록 참패하고 국민이 실망하기 전까지였지만 말이다.

더군다나 21세기 현대의 관점에서 EU의 출범, 영미권 국가간의 문화적, 언어적 동질성 등과 인터넷으로 인한 개방화, 세계화와 항공, 운송수단의 발달로 인한 국경의 의미가 점점 퇴색되면서 나라가 극단적인 상황에 처하지 않는 이상 선진국들을 위주로 현대에 내셔널리즘이 필요한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더구나 과학적으로 봐도 유전적으로 가까운 그룹에 속할수록 유전자에 의한 유전적 차이는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29]

내셔널리즘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탈민족주의자나 반민족주의자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4.3. 총평

내셔널리즘은 신분이나 계급 간 갈등, 지역주의 등 내분의 소지를 제거하고, 국가의 장기적인 비전 달성을 위한 결속력을 강화시키며, 궁극적으로는 정치, 경제, 사회, 군사 등 국가의 전 분야에 걸쳐 강력한 개혁의 추진력을 제공한다. 그러나 이처럼 무시무시한 위력에도 불구하고 내셔널리즘과 관련하여 합의된 이론적 체계나 제도가 결여된 상황이기 때문에, 현실 역사에서는 각 이익집단의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목적에 따라 전용(轉用)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곤 했다. 때문에 내셔널리즘은 한편으로는 인종주의나 전체주의와 결합하여 제국주의·파시즘과 같은 극우적 사상들을 낳기도 하였고, 국가자본주의·사회주의 등의 경제 정책에 덧대어져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고속 성장의 발판이 되기도 하였으며, 정반대로 식민지배를 받던 국가의 독립운동가들에 의해 저항적 민족주의의 형태로 재탄생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내셔널리즘은 다수의 대중들을 단결시키고 선동하기 용이한 이념으로,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강력한 잠재력을 갖고 있기에 이를 어떻게 사용하여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전적으로 위정자의 의도에 따라 갈려왔다. 물론 과학기술의 악용 가능성 때문에 과학 자체를 나쁘다고 손가락질할 수 없듯, 내셔널리즘의 악용 가능성만을 이유로 그 본질마저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섣부른 판단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침해할 수 있는 사상이라면 어떤 사상이라도 엄정히 비판할 필요가 있고, 지난 한 세기 동안 지구촌에 흩뿌려진 수많은 피와 눈물에 내셔널리즘이 직간접적으로 관여하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다. 기실 국제연합에서 유럽연합[30]에 이르기까지 2차대전 이후 창설된 수많은 국제기구들 역시 본질적으로는 내셔널리즘의 한계를 인정하고 극복하려는 치열한 정치적 문제의식의 발로이며, 이는 오늘날에도 엄연히 지구촌에서 가장 중요한 화두의 하나이다. 그런 만큼 만일 내셔널리즘적인 주장을 듣는다면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기 전에 한번쯤은 그 주장이 과연 보편적으로 타당한지 당위성을 자문해 보는 편이 좋을 것이다.

5. 한국에서

다른 동북아시아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내셔널리즘이 매우 강한 편이다.

일각에서는 국뽕 등의 유행어로 대표되는 자국 혐오 분위기를 근거삼아 한국에서는 내셔널리즘의 영향력이 약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환빠와 같은 극단적인 역사왜곡 세력[31]을 차치하고라도, 한국 사회에는 이미 내셔널리즘이 극단화되어 발생할 수 있는 잘못된 관념이나 사상들조차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지는[32] 사례가 현실적으로 무시하기 어려울 만큼 많은 편이다. 한국인들 상당수가 주변국들의 우경화 논란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도 자국에 대해서는 완벽한 이중잣대를 적용함은 물론이고, 소위 말하는 국뽕을 경계하는 사람들조차 은연중에 내셔널리즘을 보이기도 한다.

외부인 유입이 적은 대륙 끝의 반도라는 지리적 요인과 장기적인 쇄국 정책으로 인한 인적 교류의 단절, 비교적 안정된 강역을 유지하면서 큰 분열없이 중앙 집권적 통치를 유지하고 공통된 통치집단을 유지했다는 역사적 요인과, 조선 말과 일제강점기 시절 외세에 의한 큰 흔들림으로 내셔널리즘이 대두되면서 조선 사람은 하나의 동포라는 논리가 어렵지 않게 먹혀들 수 있었다. 실제로 조선 말기에도 외국에 대해 격렬한 배타성을 보이기도 했으며, 심지어는 소중화적 사상을 포함해 조선과 이미 죽은 명나라를 제외하면 모두 저열한 오랑캐라고 생각해 청, 일본, 서양 모두에게 배타성을 보이기도 했다. 또 일제강점기라는 흑역사를 거치면서 일본 및 친일파에 대한 반감이 커졌으며, 외세와 소통하기보다 독자노선을 고수하고자 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한국의 민족주의자들은 기본적으로 '외세'를 '궁극적으로는 신뢰할 수 없는' 세력이라고 간주하는 경향이 강하다[33].

재외 한국인들을 보더라도 한민족의 한국에 대한 내셔널리즘이 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개 일반적으로는 다른 나라에서 태어난 사람은 그 나라 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살아가지만, 유독 한인들은 예외가 많다. 러시아, 쿠바 등 지난날 국외로 이주한 수많은 재외 한국인들이 2대, 3대를 거치며 한국어한글도 제대로 알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자신들이 한국인임을 잊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들의 고유한 문화를 지키려고 노력한다.[34]

그리고 군사정권 시기에 정부에서 정책적으로 내셔널리즘을 함양하는 프로파간다와 교육을 실시하였다. 사실 군사정권 자체는 외부 외교에선 한미일 삼각동맹을 강화하는 등 내셔널리즘을 내세우지 않았으나 내부 정치에선 반일감정을 조장하는 등 잘 써먹었다. 이는 내부의 문제로부터 관심을 돌리기 위한 정책의 일환이기도 하고, 상하이 임시정부의 정통성, 그 법통성을 이어받은 대한민국 정부(와 정권의) 정통성을 뒷받침하기 위함, 나아가 장기적으로는 한반도 이북의 미수복영토에 대한 주권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함이기도 했다. 이 때문인지 아직도 대한민국에서는 국가와 민족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많이 남아있고 교육계나 사학계 정치계에서도 내셔널리즘이 크게 두드러진다. 위인전만 펴봐도 민족 얘기가 안 나오는 한국 위인은 손에 꼽을 정도다.

전두환 역시 외부적으로는 일본·미국과 동맹을 강조했으나 국내 정치에는 민족주의를 계속해서 써먹었다. 그러나 군사정권 시기가 끝나도 민주 세력에서도 내셔널리즘은 그치치 않았고[35], 운동권들 중 NL 계열과, 1990년대 통신 세대를 기점으로 성장한 친노 세력의 내셔널리즘은 노무현의 참여정부 시기에 제대로 힘을 얻었고, 반미주의와 반일주의는 2000년대 초중반에 정점을 찍는다. 2010년대 현재 시점에서, 운동권들의 프로파간다에 가장 열렬히 동의하고 민족주의가 가장 불타던 30대, 40대들이 주축이 된 2000년대 시기에는 안톤 오노에 대한 반감, 미선이 효순이 사건, 광우병 사태, 위안부 문제의 대두가 이루어졌고, 이는 못 믿을 외세인 미국/일본에 대한 반감과, '미워도 우리 민족'인 북한에 대한 호의감으로 발전하기도 했다. 그 전까지는 아무도 관심 안 가지던 건국절이나 '건국'이나 '정부수립' 이란 단어도 별 논란이 없었으나 2000년대 후반 및 2010년대 들어 반미/반일 정서와 내셔널리즘 고취 글이 인터넷에 오르내리며 70~80년대 출생자 네티즌들을 자극하고, 양김과 이회창/노무현이 몰락하고 그 혼란 사이에 보수정당에 군사정권 세력이, 민주당에 전직 운동권 세력이 들어서 친박/친문을 구성하며 예전엔 없었던 민족/역사적 화젯거리도 엄청난 분쟁 요소로 떠올랐다.

사실 지금도 우리의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고 볼 수 없다. 예를 들어 국가간 대항전, 특히 한일전에서 일본을 응원하는 것은 본인의 자유다. 그러나 그 사람은 그의 됨됨이, 인성과 상관없이 따가운 눈초리를 받을 것이며 심지어는 야유를 받을지도 모른다. 반대로 행실이 나쁜 인물이라도 한국을 응원한다면 그의 인기는 올라갈 것이다. 그의 올바름이나, 그 전까지 했던 공적이나 잘못에 상관없이 내셔널리즘 하나에 휩쓸려 쉽게 남을 판단하는 것이다. [36]

일단 현재 내셔널리즘이 가장 강한 세대는 30대, 40대의 민주당 지지자와 60대 이상의 보수정당 지지자들이다. 물론 내셔널리즘은 나이에 상관 없이 팽배해 있다. 외국어만 많이 섞어 써도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고 짱개쪽바리, 양키 등의 비하적 표현도 인터넷 공간에서 자주 보인다. 또 단군의 후손이라는 관념과 (확인되지 않는) 반만년 역사[37]를 굳게 믿고[38],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표현이나 한국사 수능 필수과목 지정에 대한 목소리도 매우 높다. 과거를 알고자하는 지식욕이나, 잘못된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하여 행해지는 역사교육에 그치지 않고 공식적으로 '창의적(?)인 역사의식 함양.', '민족의식 함양.', '우리나라의 찬란한 역사 교육.'등 내셔널리즘에 기반한 슬로건을 매번 역사교과서 개정 때에 외치는 것만 봐도 역사란 것이 결국 가르치는 목적이 사실에만 의거하는 것이 아니며, 역사교과서를 만들 때, '모종의 목적'을 포함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교육이 수동적으로 행해지기에, 학생들은 이리저리 휩쓸려갈 수 밖에 없다. 고로 객관적 사실을 다양한 관점에서 가르쳐주고 학생들이 스스로 이론을 정립해가는 교육이 필요한데, 현재의 세계사적인 역사의 흐름이나 최소한 주변 국가의 역사관에 대한 이해와 연구조차 거부하는 자국사 교육은 한국뿐 아니라 대부분의 국가에서 자국내 결집을 위한 배타주의만 키우게 되기 쉽다. 또한, 어린 시절에 주로 읽는 동화책 등에 들어가있는 민족적 전래설화 또한 민족적 동질감을 길러 한편으로는 선민사상을 잉태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보수, 진보 양쪽으로 역사관에 문제는 많은 상태이나, 각 진영의 극성 지지자들이 그 문제 제기를 찍어누르고 있다. 보수 진영에서는 60대 이상의 장년층 극성 새누리당 지지층, 진보 진영에서는 30~40대층 민주당 극성 지지자들과 NL이 이에 해당한다.

2010년대 후반 들어, 현재는 1990~2000년대 출생자인 10대~20대 사이에선 '이전 세대와 비교하여' 민족주의가 많이 약해진 모습을 보인다. 가장 큰 이유는 같은 민족이라면서 행패를 부리는 북한의 모습 및 바로 윗 세대 혹은 부모 세대의 반미/반일감정에 대한 반감이 주된 이유로 뽑힌다. 특히 70~80년대 출생자(현재 더불어민주당을 강하게 지지하는 계층)들이 주도한 광우병/미군 전차 여중생 사건 등에 대한 반미정서에 대한 반감 및 위안부 문제 등의 반일정서에 대한 반감이 있으며, '나이키 신고 반미' 혹은 '마일드 세븐 피면서 반일' 등의 윗 세대의 이중성도 반감에 한몫 했다.[39](참고로 나이키는 독일브랜드이다 그리고 미제 일제를 쓴다고 반미반일이 안될것같으면 일본여성과 결혼한 여운형선생은 뭐냐?) 무엇보다도 한국에서의 내셔널리즘과 집단주의는 개인의 철저한 집단만을 위한 맹목적 충성과 희생을 전제로 깔고 간다. 하지만 그런 희생에 돌아오는건 아무것도 없고 당연히 국가를 위해 집단을 위해 희생하는거다는 뜬구름잡는 소리만 돌아올 뿐이다. 이런 불합리한 것에 개인주의가 퍼지면서 90년대 이후부터는 집단을 위한 무조건적인 희생을 요구하는 민족주의, 내셔널리즘은 많이 사장되었다. 이는 헬조선론과 함께 더욱 심화되었다. 보수정권 동안 헬조선론은 20~40대의 넓은 연령대에서 널리 유행했지만, 내셔널리즘을 내세우는 민주당계 정당의 집권이 2017년에 이루어지자 30~40대들이 헬조선론을 버리고 순식간에 국뽕 성향을 보이게 되고, 여전히 희생만을 강요당하는 20대들은 여전히 민족주의에 피로감을 느끼며 자국 혐오 성향을 보이게 된 것이다.

한편으로 현재 한국에서 그나마 토론되고 있는 것은 '내셔널리즘'이지, 그 기반이 되는 '민족'에 대해서는 별로 논의되지 못해, 그 스펙트럼이 매우 넓어, 이에 대한 합의 없이는 민족 담론에 대한 논의에 해를 끼친다. 예컨데, 과거에는 고구려 등의 북방계와 신라 등의 남방계의 서로 다른 씨족이 섞여왔으며, 한편으로는 조선은 중기까지 제주도 사람들을 육지인들과 같은 권리를 가진 백성으로 취급하지 않고 대형 선박 건조 금지, 본토로의 이주 금지, 특산품의 생산 할당량을 정해 진상하기를 강요하는 등 부조리한 핍박을 가하다가 개화기를 맞이하며 인식이 변화해오는 등 지금의 한민족(韓民族)이라는 공동의식도 시대가 바뀌면서 완성된 것이다. 즉, 옛날에는 서로 남남이었던 사람이 하나의 민족이 된 것인데, 그렇다면 왜 현재는 불가능한지에 의문을 품고 국제주의(internationalism[40])나 세계주의[41]에 투신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민족 내에서도 지역감정으로 인해 분열해 새로이 배타적 집단을 이루는 경우도 있지만, 정작 논쟁의 중심이 되는 민족의 기준에 대해서 혈통인지, 문화인지, 종교인지, 언어인지에 대해 제각각의 기준을 세우고 논쟁에 임하기에, 서로 간극을 좁히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예로, 조선족의 경우에는, 같은 '혈통'이므로 같은 민족이며, 동포로 맞아야 한다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정서적인 '문화'가 워낙 이질적이어서 숫제 한국에 돈 벌러 온 한국말 좀 쓰는 중국인으로 취급하는 경우도 있다. 정작 그들의 소속감 또한 제각각이기에, 이 경우에는 두 주장 모두 내셔널리즘에 의해 나온 것이고, 민족의 기준이 무엇인지에 대한 견해의 차이로 나온 다른 주장이라 할 수 있다. 그 외에, 한국에 귀화한 외국인, 외국에 귀화한 한국인 등에 대해, 때로는 이중잣대까지 써가며 그들의 민족 정체성을 규정하려는 시도 등은 비단 한국에서만이 아니라 내셔널리즘을 인식하는 사회 전체에 많이 존재한다. 민족(Ethnic group, Nation 두 단어 각각)이라는 단어 자체가 몹시 넓은 영역을 일컫는 말이므로 이러한 논쟁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6. 내셔널리즘 성향을 가진 정치가들

독재자들이 많은데 이는 내셔널리즘의 특성상 극단주의나 nation에 속하지 않은 자들에 대한 배타주의로 흐르기 쉽기 때문이다. 일단 역대 대한민국 대통령 중 대부분이 여기에 해당한다. 따라서 거의 국가적 기치로 여겨진다고 볼 수 있다.

7. 민족주의 음악

국민악파로도 불린다. 19세기 후~20세기 초 즈음해서 나타난 형태로, 러시아 5인조를 비롯해, 체코의 드보르자크야나체크, 스메타나, 핀란드의 장 시벨리우스, 후기 낭만파로 분류되기도 하는 독일의 리하르트 바그너 등이 이에 속한다.

8. 관련 문서



[1] 혈통, 언어적 일치의 공통점을 가지는 민족.[2] 현대 유대인은 혈연적인 개념이 아니라 유대교를 믿고 유대전통을 지켜나가는 사람들이라는 좀 더 광의적인 개념이다. 유대인들의 디아스포라가 오래 진행되면서 유럽계 유대인과 중동계 유대인으로 나뉘기도 했고, 유대교 전통을 따르게 된 유대인의 배우자나 유대인의 입양아 등도 유대인으로 인정하는 등 혈연적으로는 연관성을 찾아보기 힘들다. 다만 그들 중 일부는 이를 분별해, 유대인이라는 민족이 최소 3개 있다는 사설도 존재할 정도이고 이스라엘에서는 같은 유대인이라도 혈연적 차이가 있으면 차별하기도 한다.[3] 특히 비슷한 언어와 문화가 크게 작용한다.[4] 영국은 연합왕국United Kingdom으로서 앵글로색슨족인 잉글랜드인, 켈트족인 웨일스인, 북아일랜드인, 그 외 소수의 여러 이민족(인도, 파키스탄 등)으로 분포하고 있다.[5] 주로 부족 별로 나뉘고 국민이라는 정체성이 제대로 형성되기 전에 일방적으로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 정치적 이유 등으로 인하여 성급하게 국경선을 나뉘게 된 아프리카 국가들이 주로 해당한다. 그래서 몇몇 국가는 같은 국민'이라는 의식보다는 '같은 국민이고 뭐고 우리랑 쌩판 남인 부족'으로 취급하여 종족 갈등이 잦기도 하다.[6] 대표적으로 중국의 한족이 있다. 중국은 특히 다민족국가임에도 '중화민족'이라는 통일적 용어를 강조하는 편이다.[7] 일본은 현재 야마토 민족(大和族)과 오키나와에 류큐인, 홋카이도에 아이누인, 그 외 재일 외국인이 분포하고 있다.[8] 예로서 베네딕트 앤더슨은 민족이 과거부터 내려져온 것이 아닌, 근대 시기 인쇄자본주의의 발전과 더불어 발명된 이른바 '상상의 공동체(Imagined Communities)'였다고 말한다.[9] 여기서 민(民)은 ethnic의 개념이 아닌, 전근대적인 구체제(앙시앙 레짐)에 대응하여 개인의 권리가 보장되고 그 권리를 바탕으로 민주적 참정을 통해 국가를 이끌어가는 자유주의ㆍ민주주의 의식을 공유하는 집단ㆍ구성원을 뜻하는 개념이고, 족(族)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민족이라는 어휘를 보면 무의식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그것, 이른바 혈통(Ethnic)을 강조하며 언어와 같은 문화, 역사, 관습 등을 공유하고 있는 집단을 뜻한다.[10] 예컨대 알렉산드로스처럼 이민족이 세금을 낮추어 준다고 하자 칼을 거꾸로 잡는 경우, 그리고 같은 민족인 이웃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자국이 원하는 부와 물자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침공하여 몰살시키는 경우가 흔했다.[11] 단적인 예로, 로마에 고용된 게르만족들은 문명의 경계선 밖에 사는 동족을 죽이는 것에 별 고민을 하지 않았다.[12]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해체와 대독일주의 논쟁, 오스만 제국에서 청년 튀르크당이 벌인 학살극 등이 그 예시이다. 사실 멀리 갈 것 없이 인류사 최악의 비극인 제1차 세계대전제2차 세계대전 모두 내셔널리즘이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했다.[13] 위키백과 일본어판과 일본내 일부의 서적의 경우는 그냥 '내셔널리즘'이라는 원어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14] 식민지 침략에 대한 항쟁이나 식민지 확보(일본의 경우)에 따라 아시아주의, 대동아 공영권등의 개념을 만들어내는 등으로 변화하여, 더이상 'Ethnic group'이라고도, 근대유럽의 'Nation'이라고도 못할 완전히 다른 개념이 되었다고 할 수 있었다. 혈통적 민족주의라면 아시아주의같은 개념이 설명되지 않고, 국민국가에 기반한 민족주의라면 황국신민이나 오족협화 같은 개념이 설명되지 않으니까.[15] 현재 중국은 중화민족 담론으로 분리주의를 통제하고 억압하고자 하지만 중화민족 담론과는 다른 한족 민족주의 또한 존재한다. 쑨원의 멸만흥한 같은 구호가 그 예시 중 하나.[16] 여기서 말하는 근대 서구의 내셔널리즘은 이전의 모호한 '민족' 개념을 넘어선 사상적 개념, 즉 17세기 유럽의 근대적 국민 국가(민족 국가, Nation-State)의 토대가 되는 사상을 가리키는 것이다.[17] 동일한 문구가 민족주의 항목에도 인용되어 있는데, 이들 가운데 쑨원이나 김구의 경우 민족주의에 가깝고, 아타튀르크의 경우 그보다는 상대적으로 국민주의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쑨원의 경우 (청나라만주족이 아닌) 한족이 권력을 장악해야 중국이 산다고 이야기했을 만큼 강경한 한족 내셔널리스트였고, 백범 김구 선생 역시 백범일지를 읽어보면 한민족의 부흥에 방점을 찍고 있다. 반면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의 경우 "자신을 터키인이라 믿고 터키의 문화를 받아들이려는 모든 사람은 터키인"이라 규정했으며, 이러한 정체성을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터키라는 새로운 '민족국가'에 대한 애국·애족심을 심으려 했던 사람이다. 실제로 오스만 제국의 아나톨리아 외부 영토 상당수를 자의적으로 포기했던 것, 엔베르 파샤로 대표되는 범튀르크주의와 미묘한 노선 갈등을 겪었던 것도 이 때문이고. 물론 이는 민족국가의 성격이 강한 동북아시아와 국민국가의 정체성을 인정하지 않고는 구 유고슬라비아처럼 나라가 망할 수밖에 없는 유럽~중동의 정치적 특성 차이 때문이 가장 클 것이다.[18]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라는 표어나 수많은 공산주의 인터내셔널 조직 등에서 알 수 있다.[19] 일제의 핍박을 주도하는 '일본 민족'의 속박에서 벗어나, 민족자결주의를 바탕으로 한 "한민족의 나라를 세우자"는 주장.[20] 당시의 독립운동가들의 상당수는 민족주의(내셔널리즘)와 공산주의를 동시에 지향했던 사람도 많다. 일종의 민족주의적 사회주의자들.[21] 일제의 파시즘을 선도하는 '제국주의 부르주아'에 맞서 "노동자의 국가를 세우자"는 주장.[22] 아인슈타인은 국제 유대인 활동에 열심이었다. 해당 발언 또한 자신보고 독일인이냐 유대인이냐 묻는 기자에게 짜증을 내며 한 발언.[23] 그러나 북한은 사실 내셔널리즘이라는 잣대로 평가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지 오래다. 북한이 한'민족'인 대한민국, 아니 당장 북한 땅에서 나고 자란 토종 자국민에게조차 어떻게 대하는지만 돌이켜봐도... 외국인이나 소수민족, 한민족의 전통적 가치에 반하는 사람들에 대한 차별은 몰라도, 아예 전 국민을 서열화하며 개인의 자유를 탄압하는 태도는 내셔널리즘보다 오히려 타락한 전체주의에 가깝다. 괜히 중국 일각에서 북한을 파시스트 국가라 부르는게 아니다. 또한 김일성 민족등의 리론이론을 만들기까지 하며 한민족과의 차별성(기존의 조선민족은 단순히 호칭이 달랐을 뿐이었지만. 김일성 민족은 김일성을 시조로 하는 민족이라고 울부짖는다.)을 드러내는 모습은 내셔널리즘에 기반했지만, (본디 같은 민족인 한민족을 상대로 한) 반민족행위라고도 할 수가 있겠다.[24] 코소보를 국가로 포함했을 경우. 포함하지 않았을 경우 6개.[25] 자세히 알아보면 부족에 가까운 개념이다. 중화민족이야말로 진정한 (다른 국가에서 보편적 의미로 쓰는)민족이라는 것이다.[26] 근래에는 백제 역사에서도 소유권을 주장하려는 움직임이 있기도 했다.#[27] 일례로, 박노자는 고대 역사에 현대의 국가나 민족이란 개념을 대입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과연 고구려인들이 신라인들을 같은 민족이라고 생각했을까? 아니, 애초에 당시 고구려, 백제, 신라인들에게 '하나의 민족'이란 개념이 있었을까? 예컨대, 삼국통일 당시 신라 입장에서는 결국 고구려나 백제나 당나라나 다 외국이자 견제 대상에 불과했다는 말이다. 애초에 말도 서로 통하지 않아 통역관까지 두는 판국이었으니. 참고할만한 기사[28] 당대에도 삼한이라는 표현이 사용되었음은 물론 삼국통일도 삼한일통이라고 일컬었다는 점으로 미루어 볼 때, 고구려·백제·신라 삼국, 혹은 고구려 이남의 국가들은 이웃끼리의 국가를 그 외의 국가보단 가깝게 보긴 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역사를 굳이 특정 시점에서 누구만의 역사라고 구분 지으려는 시도부터가 내셔널리즘 담론의 부산물일 뿐이다.[29] 사실 같은 그룹에 속하고 환경 등 일반적인 독립 변수들이 같다면 같은 그룹에 속한 다른 집단들끼리의 차이보다 동물들처럼 개체 간의 차이가 더 심하게 나타날 수 있다. 쉽게 설명해서 시베리아 호랑이 100가 있는 집단 A와 시베리아 호랑이 100마리이런 경우 일반적으로 집단의 숫자는 별 의미없다가 있는 집단 B는 집단이 A와 B로 다르다고 해서 대다수 호랑이들의 경우에는 그리 차이가 심하게 나타나지는 않지만 각 집단에서 유독 특별한 호랑이들이 있을 수는 있다. 하플로그룹 등이 같을 때 능력 차이가 나타난다면 일반적으로 유전보다는 환경에 의한 차이일 확률이 높다.[30] 다만 유럽연합 내에서도 모든 형태의 내셔널리즘을 거부하는 진성 세계주의자들도 있는가 하면, 외부의 도전에 맞서 유럽의 문명을 공유하는 새로운 집단인 유럽 연합의 내부적 단결을 주장하는 유로내셔널리스트들도 있다. 예컨대 EU를 지금처럼 동유럽을 포함하는 거대 집단이 아니라 (보다 문화적, 정치적 거리가 가까운) 서유럽 선진국들만의 동맹체로 만들려 했던 독일의 초기 안, 그리고 (최근 난민 문제에서 대두되는) "왜 유럽연합이 유럽인이 아닌 사람들을 위해 자리를 내어주어야 하는가"라는 반발 여론이 바로 후자의 인식에서 출발한다고 볼 수 있다.[31] 사실 환빠내셔널리즘의 도구로 사용되기는 해도 근본적으로는 역사왜곡에 더 무게가 실린다. 오히려 민족주의적(ethnic) 관점이든 국가주의적(state) 관점이든 간에, 내셔널리스트들은 과거의 영광이야 아무래도 좋고 현재 국제관계에서의 손익에 더 치중하는 성향이 강하다. 내셔널리스트들에게 과거사 왜곡은 단지 현재의 국익을 위해 필요하다면 취할 수 있는 하나의 수단일 뿐이며, 과거사에 대한 집착 자체는 오히려 파시즘의 특성에 가깝다.[32] 한국의 역사왜곡, 두 유 노우, 한국사(2011), 이덕일 문서 참조[33] 내셔널리즘이 어떠한 공통점을 가지는 집단과 타 집단을 구별하고, 자신들의 이익을 우선하는 그 본질 때문에 배타적으로 흐르기 쉽다는 것을 생각하면 특이한 일은 아니다.[34] 이것도 지역마다 차이가 있어서, 미국과 같이 발달한 국가에서 그것도 도시 지역에서 태어나 자란 한국인 2세 이상들은 앞서 말한 러시아, 쿠바 등의 동포들에 비해 혈통적 정체성을 중시하지 않는 편이다. 실제로 여러 매체에서 소개되는,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대를 이어서도 유지해 나가려는 사람들은 대부분 생활 환경이 도시적 삶과는 거리가 멀다. 따라서 재외 동포들의 강한 민족 의식은 단순히 한국인들이 전통적으로 민족 의식이 강한 게 원인이라기보다는 그들의 생활 방식과 수준에 따른 것이라고 보는 게 적합할 수도 있다.[35] 민주화 운동 세력이던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도 결국엔 어떤 식으로든 민족적 유대감을 정치에 써먹었고 그 후의 대통령인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도 방향이 어찌되었든 특정 순간에는 민족주의를 자주 들먹이는 경향이 강했다.[36] 예를 들어 파트리스 에브라는 국대에서의 행실로 논란을 빚은 인물이지만,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스포츠 스타인 박지성과 두터운 친분이 있어서 한국에서의 에브라에 대한 인상은 상당히 좋은 편이다.[37] 단기 기원이 서력기원전 2333년이라는 무리한 설을 어떻게 받아들이더라도 반만년은 되지 않는다.[38] 상투적으로 '반만년 역사의 한국'과 '중국 사천년(한국에서 사천년이며, 중국에서는 더 올라가는 경우가 많다. 보통 천년 단위로 올라간다. 오천, 육천.)의 신비'라는 어구가 붙는다. 어떤 학설을 지지하건 간에 한국사가 중국사보다 오래되었을 가능성은 정말 거의 없지만, 서로가 군비경쟁을 하듯이 역사를 확장(?)하고 있다.[39] '반외세 감정과 외제 물건 사용은 다른 문제다' 라지만 해당 세대(30~50대)들이 아랫세대에게 행한 너무 지나친 반외세/불매운동 강요 때문에 반감을 사기엔 충분했다.[40] 명칭에서 보듯, 민족을 초월해 소통하겠다고 하는 주장.[41] cosmopolitanism, 세계의 모든 사람은 동포로서, 같은 공동체를 이룬다는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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