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24 13:39:50

왕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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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yalty, 王族
1. 개요2. 상세3. 창작물에서

1. 개요

의 가족이나 왕의 혈통이 이어진 친척을 말한다. 왕실의 일원이다. 군주가 황제일 경우는 황족이라고 쓴다.

2. 상세

동양권에서는 중국에서는 부계혈통의 경우 군주의 5대손까지, 모계혈통의 경우 딸의 자녀, 즉 외손자 정도까지만 왕족의 일원으로 치고 있다. 한국에서는 고대에는 그나마 계층구분 기록이 명확한 신라의 경우 성골~진골이 일단은 왕족 개념에 해당하지만 그 범위는 중국이나 후대 조선에 비해 굉장히 넓었던 것으로 보인다.[1][2] 부계와 모계가 모두 왕족이어야만 했다는 설도 있지만 가야계 진골 문명왕후처럼 이래저래 예외가 있어서 확실하게 밝혀진 것은 아니다. 이후 조선시대부터는 위 중국과 똑같은 범위의 왕족개념을 받아들여 정착시켰다.[3]

서양권에서는 남녀 구분없이 계승권이 가까운 사람[4]을 왕족으로 쳐준다. 서양권도 기본적으로는 부계혈통을 더 쳐준다.[5] 모계혈통의 경우 직계후손이 아니면 따로 왕족으로 지정을 해줘야 하는 관습이 있다. 왕의 혈통을 받았으나 왕족의 범위에서 벗어나면 귀족의 대우를 받는다.

왕족이나 황족은 다른 신하들과 구별되어야 하므로 작위를 받게 되어있는데, 신라 때는 고유의 작위인 갈문왕 등이 있었으며, 중국 역대 황조와 대한제국의 경우는 가까운 황족에게 친왕의 작위를 수여했다.[6] 대한제국 이전의 조선에서는 왕과의 촌수에 따라 대군, [7], 수, 정, 부정의 칭호를 수여했다. 원 간섭기 이전의 고려에서는 , . 서양의 경우는 프린스프린세스를 수여.

왕족 자체가 혈통이라는 이름의 지원을 타고났다고도 할 수 있다. 때문에 엄청난 호강을 누릴 것 같지만, 예나 지금이나 항상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왕권체제이던 옛 시대에선 그야말로 군주란 모든 것이었기 때문에, 남자 왕족이면 90%의 확률로 왕위에 관심이 있었고, 왕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 거의 모든 것을 걸었다. 말하자면 왕의 자리는 항상 누군가 노리는 목표였고, 왕의 암살시도가 일어나면 항상 제일 먼저 의심의 화살은 주위 왕족들에게 향했다. 실제로 반란시도는 왕족들이 많이 했기 때문에 아주 틀린 것도 아니다. 물론 몰살당하면 끝장이다. 또한 왕위에 관심없던 왕족 입장에선 재수없게도, 전혀 모르는 이들이 그의 이름을 팔아서 역모를 꾸몄다 들키도, 운이 좋아야 유배형이고 최악의 경우에는 사사였다. 이 경우 다른 역적들이 거열형/참수형에 처해진다면, 왕족은 사약이나 교수형으로 그나마 사지를 보존해주는 정도였다.

조선의 경우, 경국대전의 종친사환금지법에 따라, 왕족은 과거를 볼수 없고, 실권직도 받지 못했다. 벼슬길에 오르더라도 명예직이나 한직으로, 청요직이나 당상관, 정승에 오를 수 없었으며, 5대 이상 지나야 종친에서 벗어나 과거를 볼 수 있었다. 조선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의 왕족도 정치인이나 공무원이나 하원의원이 될 수 없는데, 되고 싶다면 신적강하나 왕족 포기나 평민이 되어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왕족들은 예술가, 군인이 되거나 학자가 되는 길을 걷는게 다반사다. (물론 군인이라 해도 실질적 지휘권을 행사하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

이렇듯 군주의 가족이나 친척이므로 왕조 자체에 대한 충성심은 가장 높으나,[8] 군주의 계승권을 가지고 있으므로 반란의 위험이 있기 때문에, 보통 군주의 관리를 받으며 생활한다. 원래 신라-고려-조선 초까지는 왕족들도 다른 신하들처럼 일반 관직에 나갔으나,[9] 조선 성종 때의 구성군 사건 이후 '종친사환금지법' 이 생기며 왕으로부터 5촌까지는 명예직 외의 관직은 하지 못하게 되고, 왕실에서 주는 봉록으로 먹고 살게 되었다. 고려의 경우는 왕족들의 힘이 가장 약했는데, 초기는 제법 강했으나, 이후 절간에 승려가 된다던가,[10] 반란군의 얼굴마담이 된다던가, 원나라에 사신으로만 간다던가, 볼모로 잡히는 신세가 되는 등, 그야말로 안습이었다. 특히나 대령후 사건의 경우는, 왕족의 권위가 문벌귀족이 비대해짐에 따라 얼마나 추락했는지 여실하게 보여준 사건이라고 볼수 있다.[11] 그로 인해 의종시기를 거쳐 무신정권때는 왕족의 권위가 더욱 바닥으로 추락했다. 왕의 권위가 실추됨과 동시에 왕족들의 권한도 덤으로 실추될 수밖에 없었다.[12]

그리고 관직에 나가지 못하니, 왕위에서 먼 왕족들은 달성할 목표가 없다고 공부를 열심히 안해서, 심하면 자기 이름도 쓰지 못했다고 한다. 왕위 계승권이 있는 사람이 매우 똑똑하다거나 열심히 공부한다거나 하면 왕위에 욕심이 있는게 아닌가 해서 왕에게 찍힐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어차피 왕족의 경우 무식해도 먹고 사는건 보장되었기에 별 문제는 없었을 것이다.[13]

조선 왕족에 대한 경칭은 대감이다(군호를 넣는다면 그 군호와 같이 섞어서 ??군 대감). 엉터리 현대 사극에서 불러대는 것처럼 절대 마마가 아니다! 마마대비, , 왕비, 세자라는 매우 제한된 왕족만 사용했으며, 세자를 제외한 왕자공주는 절대 쓸 수 없었다. 세자빈의 경우 마마가 아닌 '마노라'로 불렸다. 만약 어떤 종친따위을 마마라고 부르면 당장 역모에 연루되어 목이 날아가도 할 말 없다. 조선 후기에 경칭에 대한 분류가 모호해져 마마의 사용도 이루어졌다는 얘기가 있지만, 사실무근이며 야사에 불과하다.

현대 대한민국민주공화제를 추구하기에 왕족의 존재는 대한민국 헌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3. 창작물에서

창작물의 장르에 따라 묘사가 상당히 다양한 편이다.

가벼운 딸바보물이나 귀족영애물에선 왕권이 왕자/공주 조금 괴롭혔다고 사람을 쉽게 죽일 수 정도로 막강하게 묘사되며 이에 반발을 표하는 이도 없고 왕가 자녀들 사이도 굉장히 좋거나 왕/여왕도 자식들을 굉장히 아끼고 호위무사나 메이드 등 사용인들도 주인공을 어화둥둥하는 등 극단적으로 좋은 모습만 보이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에는 왕자/공주들이 특별히 대단한 것을 배우지 않고 호위호식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주로 묘사되며 여성향 로맨스판타지에서 자주 보인다.

그러나 정치물과 같은 시리어스물에선 현실 이상으로 왕족 사회가 각박하게 묘사되어 왕권을 차지하기 위해 형제들이 서로를 죽이거나 부모도 자식을 왕권을 이을 핏줄로만 생각하고 전혀 정을 주지 않고 특정 자식만 편애하는 등 부정적인 묘사가 심한 작품도 있다. 사실 이쪽이 위보단 현실적인 묘사에 가깝다. 현실에선 형제들이라도 정적에 가깝기 때문에 마냥 사이좋게 지내기도 힘들며 왕/여왕이 일이 바빠서 자식을 직접 키우는 경우가 매우 드물고 왕위쟁탈전으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자식들에게 정을 쉽게 주지도 못했다. 물론 형제자매나 부모자식간 사이가 좋았던 왕족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드물다.

[1] 초기에 외국에서 왔다고 명시된 석탈해 가문이 왕위에 오르기도 했고 이후에도 고구려안승이나 발해대조영, 가야 구형왕 가문 등 신라 밖 출신 외부인을 진골로 인정한 경우도 있다.[2] 둘 다 진골이고 선대-차기 국왕 관계인 선덕왕원성왕이 부계로 21촌 거리다. 중국이나 조선 같으면 이 정도 거리는 너무 멀어서 그냥 왕족도 아니고 성씨 글자만 같은 남남이나 마찬가지다.[3] 조선의 경우 왕자의 딸은 엄연히 왕족이었지만, 왕녀의 아들은 왕족이 아니었다. 설령 조선 왕실의 부계혈통 남성이 전멸했다 하더라도(물론 조선 멸망까지 그런 일은 단 한 번도 벌어지지 않았다.), 선왕과 7촌, 8촌 지간인 부계혈통 여성이 여제로 오를지언정, 왕녀의 아들은 후보에도 오르지 못한다. 물론 직계 왕녀가 살아 있다면 7촌, 8촌까지 뒤질 필요 없이 왕녀를 여왕으로 세우면 된다. 왕녀들도 모두 사망한 경우를 가정한 것이다.[4] 대략 직계후손이나 현 군주의 형제와 그 자손까지의 범위[5] 일례로 영국 왕실에서 찰스 왕세자, 앤드루 왕자, 에드워드 왕자의 자식들은 태어날 때부터 prince, princess지만, 앤 공주의 자식들은 그런 거 없다. 어머니인 왕녀가 왕의 후계자라서 곧 여왕의 자식이 될 예정이 아닌 한, 왕족으로써의 작위는 주지 않는다. 다만, 아버지가 귀족이라면 그 작위를 따라간다.[6] 먼 황족에게는 이나 군왕을 수여했다. 다만 대한제국은 애매하게도 제국 선포 이전에 왕실의 후손들이 사용하던 칭호인 을 계속 수여했다.[7] 태조 시대엔 [8] 당연한 것이 왕조 자체가 자신이 호사를 누리는 기반이기 때문[9] 그 덕분에 특히 신라 하대는 이전까지 시중 등 대신이었던 사람이 왕이 되는 경우가 흔했다. 또한 조선의 영의정 중에서도 가장 강한 권력을 휘둘렀던 것도 다름아닌 수양대군.[10] 현종이 이런 시절을 보냈다가 극적으로 왕이 된 사례다.[11] 왕족이 쓸데없이 잘 나가면 어떻게 되느지를 보여준다. 개부를 하여 따로 세력을 가졌고, 인망도 좋아서 추종자도 있었으며, 나름 의종과 왕위경쟁을 했던 몸이다. 애초에 조용히 살기에는 틀린 사람이었다. 괜히 제안대군과 유선의 행동이 처세술의 일환이라는 시각이 있는 것이 아니다. 고려의 숨막히는 정치속에서 결국 간신들의 모함과 의종의 확신으로 몰락하게 된다.[12] 참고로 고려의 작위에는 개부의 권한이 주어지기도 했다. 대령후 왕경의 대령부 이런 식으로. 왕족들은 작위를 유지하기 위해서 족내혼을 선호했는데, 원간섭기 이후로 족내혼이 제한되면서 작위유지가 힘들어졌다. 왕과 사돈을 맺지 못한 왕족들은 명예직만 받고 말았다.[13] 글 모른다고 사기치고 삥땅쳐도 들키면 그냥 왕에게 쪼르르 가서 알리면 왕이 알아서 족쳐줄 것이 분명하다. 왕족에게 사기치고 삥땅친건 그 왕족들의 맨 우두머리인 왕 자신에게도 연관이 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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