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5-31 13:56:58

대군

1. 大軍2. 大君
2.1. 고려조선작위
2.1.1. 조선 왕조의 대군들
2.2. 일본에서 덴노 또는 쇼군을 달리 이르던 말2.3. 2018년 TV조선에서 방영하는 TV드라마

1. 大軍

말 그대로 규모가 '큰 군대' 또는 '군세(군사력)'.

2. 大君

2.1. 고려조선작위

황실 | 왕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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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width=100%><|3><-4> 태상황 | 상왕 || 태황태후 | 대왕대비 ||
태상황후 | 태상왕비
황태후 | 왕대비
대원군 | 부원군 부부인
황제 | 황후 | 왕비
후궁
여제 | 여왕 국서
황태제 | 왕세제 황태자비 | 왕세자빈
황태자 | 왕세자
황태손 | 왕세손
황제皇弟 | 왕제 친왕 프린스 #s-2.1 | 친왕비 | 부부인
황자 | 왕자
황녀 | 왕녀 내친왕 프린세스 공주 | 옹주 부마
군주郡主 | 현주



고려 시대에도 사용된 작위지만, 조선 시대에 비해선 규칙이 느슨했다. 고려 초에는 왕자들에게 대군이나 원군이 붙였다. 원 간섭기부터 군()이 사용되기 시작했으나, 종종 대군을 쓰기도 했다.

공민왕 때부터 원 간섭기 이전에 쓰던 오등작을 다시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이건 조선 초기에도 영향을 미쳐 당시 왕자들은 대공, , 왕족 외척 부마들은 , , , 오등작을 썼으나 곧 제후국 체제를 도입함에 따라 대군, 군, 부원군, 대원군으로 바뀌었다.[1]

태종 때부터 '대군'은 적자, 즉 왕비에게 나온 아들에게 내렸던 작위(세자 제외)로 정해졌다. 왕의 서자인 군과 구별된다. 보통, 왕의 적장자가 세자가 되기 때문에 왕비 소생의 중자들(둘째~막내)[2]이 받게 되는 작위이며, 품계는 무계이다.[3]

세자(보통은 장남)가 있기 때문에 왕위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왕위를 물려받기도 한다.[4]

인조 대 이후로는 대군에 봉해진 왕족이 없다.[5] 이후 왕의 적자들은 외아들로서 바로 세자가 되었고, 나머지는 모두 이거나, 아예 대군은 고사하고 세자로 책봉할 왕자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세종의 아들들부터는 대군 및 군에게 내리는 호칭에 전국 각지의 지명(고을 이름, 또는 그 별칭)을 따다 붙였다. 가령 수양대군의 '수양'은 해주의 별칭, 금성대군의 '금성'은 나주의 별칭, 창녕대군의 '창녕'은 말 그대로 창녕이다. 이는 중국의 황제친왕들에게 봉토를 하사하고 책봉하듯이, 조선의 왕 역시 아들들에게 '명목상' 봉토를 하사하고 책봉하는 시스템을 따른 것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에서는 '대원군'이라는 단어와 함께 언중 및 언론 등에서 비유적 표현으로 간혹 사용되는 단어인데, 권력형 비리를 저지르거나 대통령의 혈연으로써 정계 등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아들이나 남자 형제를 종종 이에 빗대어 부르기도 한다. 봉하대군, 영일대군 등.

2.1.1. 조선 왕조의 대군들

아버지군호어머니비고
태조진안대군신의왕후태조의 적장자였으나, 고려 왕조에 충성하며 은둔하며 살았다.
영안대군훗날의 정종. 후궁소생은 있었지만 정비소생은 없었다.[6] 대군이라는 작위는 태종 시기에 등장한 작위이므로 실제 대군이 된적은 없었다.
익안대군
회안대군
정안대군훗날의 태종. 아래에 있는 이복동생 둘(무안대군, 의안대군)을 죽였다. 대군이라는 작위는 태종 시기에 등장한 작위이므로 실제 대군이 된적은 없었다.
덕안대군
무안대군신덕왕후
의안대군 이방석잠깐이나마 세자였다. 때문에 끔살
태종양녕대군원경왕후세자였으나, 폐위되면서 양녕대군에 봉해졌다.
효령대군
충녕대군훗날의 세종.
성녕대군
세종수양대군[7]소헌왕후훗날의 세조. 원래 '진평대군'이었다가 '함평대군', '진양대군'을 거쳐 수양대군이 되었다.[8] 아래에 있는 친동생 둘(안평대군, 금성대군)을 죽였다.
안평대군[9]
임영대군[10]
광평대군[11]
금성대군[12]
평원대군
영응대군[13]
문종노산대군[14]현덕왕후단종. 문종의 (장성한) 유일한 아들이므로 당연히 처음부터 세손(할아버지 세종 재위 시)→세자(아버지 문종 재위 시)였다. 숙부 수양대군(세조)에게 양위하고 상왕으로 물러났다가, 단종 복위 운동의 실패로 상왕에서 폐위되어 '노산군'으로 강등되고 그 신분으로 죽음을 맞이했다. 먼 훗날 숙종 때 '노산대군'으로 격상되었다가, 마침내 '단종'으로 추존되었다.
세조해양대군[15]정희왕후훗날의 예종. 의경세자(덕종)의 급서로 세자가 되고 왕위에 올랐다.
덕종월산대군[16]소혜왕후왕위계승서열이 높았던 까닭에 자칫하면 끔살당할 수도 있어서 오히려 몸조심을 해야 했다.
예종인성대군장순왕후조졸했다(1461~1463). 사후 9년이 지난 1472년에 대군으로 추봉되었다.
제안대군[17]안순왕후
성종진성대군[18]정현왕후훗날의 중종.
연산군창녕대군[19]거창군부인 신씨둘째 아들. 아버지가 폐위되면서 불과 5살에 형(폐세자 황)과 함께 사사되었다.
중종경원대군[20]문정왕후훗날의 명종.
선조영창대군[21]인목왕후선조가 늘그막에 본 늦둥이로 유일한 적자였으나, 이복형 광해군에 의해 불과 8살에 사사되었다.
원종능창대군[22]인헌왕후인조(능양군)의 동생. 형이 왕이 되기 전인 1615년에 광해군에게 역모를 의심받아 자살하였다. 원래 '능창군'이었으나, 형이 왕이 되고 아버지가 추존왕이 되면서 대군으로 추봉되었다.
인조봉림대군[23]인열왕후훗날의 효종. 소현세자의 급서로 세자가 되고 왕위에 올랐다. 예송논쟁은 덤
인평대군[24]능창대군의 사후, 그의 양자로 입적되었다.
용성대군[25]조졸했다(1624~1629).

2.2. 일본에서 덴노 또는 쇼군을 달리 이르던 말

'오오키미(덴노)' 또는 '타이쿤(쇼군)'이라 하였으며, 타이쿤은 이 단어의 어원이 되었다.

2.3. 2018년 TV조선에서 방영하는 TV드라마

2018년 3월 3일 ~ 5월 6일까지 방영된 TV 조선의 주말드라마 대군 - 사랑을 그리다.


[1] 이후 성녕대군이 드물게 변한 소경공(卞韓 昭頃公)으로 추증되었다.[2] 물론 무조건 둘째~막내인건 아닌게, 양녕대군처럼 동생이 세자가 되고, 장자가 대군이 된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양녕의 경우는 원래 세자였다가 자기가 너무 범죄를 많이 저질러서 폐세자 후 대군으로 바꿔준 거지만..[3] 왕자군은 원래 정1품이었으나 나중에 올려서 무품하계가 되었고, 대군(적자)는 무품상계다.[4] 세자 폐세자되거나, 하거 조카 것을 빼앗거나(...) 등등.[5] 심지어 왕에서 황제로 바꾼 대한제국 시대의 대군 역할을 찾아보려고 해도 없다. 적자가 없어서 명성황후가 낳은 고종의 적자는 순종 뿐이다. 다른 아들 의친왕, 영친왕 등은 모두 서자. 그리고 순종은 아예 자식이 없었다. 그래서 순종 당시 황태자는 이복동생 영친왕이 되었다.[6] 이런 이유로 이방원이 왕위를 잠깐 맡겼다는 견해도 있다. 만약 적자가 왕위를 계승하겠다고 주장하면, 계유정난 프리퀄이 발생할 수도(...)[7] '수양'은 해주의 별칭이다.[8] 마지막 군호인 수양대군이 가장 유명하지만, 가장 오래 불렸던 군호는 진양대군이다.[9] '안평'은 홍주의 별칭이다.[10] '임영'은 강릉의 별칭이다.[11] '광평'은 광주의 별칭이다.[12] '금성'은 나주의 별칭이다.[13] '영응'은 연안의 별칭이다.[14] '노산'은 평창의 별칭이다.[15] '해양'은 남해의 별칭이다.[16] '월산'은 경주(월성)의 별칭이다.[17] '제안'은 황주의 별칭이다.[18] '진성'은 진주의 별칭이다.[19] '창녕'은 창녕이다.[20] '경원'은 인천의 별칭이다.[21] '영창'은 이천의 별칭이다.[22] '능창'은 능주의 별칭이다.[23] '봉림'은 봉산의 별칭이다.[24] '인평'은 인제의 별칭이다.[25] '용성'은 남원의 별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