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6-19 19:54:41

임영대군

1. 생애2. 불행한 가정사3. 화차 개발4. 여담


臨瀛大君[1]
(1420 ~ 1469)

1. 생애

조선의 제 4대 임금인 세종대왕소헌왕후 심씨의 4남이다.

이름은 구(璆)이며, 자(字)는 헌지(獻之)이다. 본관은 전주 이씨. 구성군 준의 아버지이다.

평소 성격이 꾸밈이 없고, 검소하였다고 전해졌다. 그래서 아버지 세종에게 칭찬을 많이 들었다. 또한 둘째형인 수양대군과 같이 무예에 뛰어났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경회루에서 승마 시범을 보이기도 하였다고 한다. 그렇지만 여자를 밝히는 데 흠이 있어 궁녀를 겁도 없이 겁탈하였다. 오죽하면 세종이 "임영은 왜 양녕 형님을 닮았는가..."라고 한탄할 정도였다.

2. 불행한 가정사

그러나 임영대군은 가정사가 그리 좋지 못했다. 의외로 알려지지 않은 사실인데, 큰 형인 문종처럼 재혼을 한 경험이 있다.[2]

첫 번째 부인인 남씨는 남은의 손자인 남지의 딸이었으나, 정신질환이 있었다고 한다. 결국 1433년(세종 15년) 6월 14일 세종대왕영의정 황희, 좌의정 맹사성, 우의정 최윤덕 등을 불러 "임영대군의 아내 남씨는 나이가 12세가 넘었는데 아직 오줌을 싸고 눈빛이 바르지 못한 데다가 혀가 심히 짧고 행동이 놀라고 미친 듯한 모습이기에 내쳐야 되겠다" 는 뜻을 밝혔다.

두 번째 부인 전주 최씨에게서 5남 2녀를 두었고, 3번째 아내 안동 안씨에게는 4남 5녀를 두었다. 이중 한명이 훗날 이시애의 난에서 활약하여 20대에 병조판서을 거쳐 영의정까지 오르는 구성군이다.

3. 화차 개발

의외로 임영대군의 존재가 그렇게 두드러지지 않아서 그렇지만, 임영대군도 화차 개발에 힘을 쓰기도 하였다.
아버지인 세종대왕이 그에게 총통 제작을 맡기어서 군기감에서 일하기도 하였다. 세종대왕의 명을 받아 동생인 금성대군과 함께 총통, 화차를 제작하였다.

1450년(문종 즉위년)에 맏형 문종의 명을 받아 화차를 제작하기도 하였다.

4. 여담

임영대군은 큰 형인 문종이 죽자, 세조를 두둔하였고, 세조가 죽을 때까지 그를 보좌하였다고 한다.

이인좌의 난으로 유명한 이인좌가 그의 9대손이라고 한다.

묘는 경기도 의왕시에 있다.


[1] 군호는 강원도 강릉의 별칭인 '임영'에서 따왔다.[2] 여담으로 막내동생인 영응대군도 재혼을 한 사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