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11 02:25:12

평택 임씨

平澤 林氏
평택 임씨
<colcolor=#ece5b6> 관향 <colbgcolor=#fff,#191919>경기도 평택시
태시조 비간(比干)
시조 임팔급(林八及)
중시조 임세춘(林世春), 임언수(林彦脩)
집성촌 광주광역시 광산구 등임동
전라남도 나주시곡성군 고달면
전라북도 순창군
충청남도 부여군
경상북도 김천시 남면 옥산리[1], 청도군, 구미시 선산읍 봉곡1리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갈계리
강원도 춘천시, 원주시 지정면 월송리
충청남도 청양군 화성면 화암리
인천광역시 옹진군 영흥도
서울특별시 용산구
경기도 광명시
인구 225,872명(2015년)
사이트 평택임씨대종회
1. 개요2. 역사3. 집성촌4. 유명 인물5.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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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씨들 중 인구는 2번째 순위 정도이며, 나주 임씨를 제외한 모든 대부분의 임(林)씨는 평택 임씨에서 분관되었다고 한다. 나주임씨와 인구수가 거의 흡사하게 흘러가지만 아주 근소하게 나주보다 적은 편이라고 한다.

인구는 1985년에 46,670가구 194,550명, 2000년엔 65,015가구 210,089명이었다가 2015년에 225,872명으로 늘어났다.

2. 역사

평택 농성공원에 있는 임팔급의 동상에 적혀있는 기록에 따르면 시조인 임팔급의 먼 조상은 은나라 주왕 시절의 충신, 비간으로, 그가 충언을 한 후 조카인 주왕에게 잔혹하게 살해당한 후, 그의 아내인 진씨(陳氏)는 안양 인근으로 도피하는 가운데 장림산(長林山)에서 아들을 낳아 이름을 천(泉)으로 지어주었으며, 이후 주나라 무왕이 비간의 아들에게 임씨(林)성과 견(堅)이라는 이름을 사하였다.

이후 임견의 후손인 임팔급이, 당나라에서 18세에 등과하여 한림학사(翰林學士)를 거쳐 병부시랑(兵部侍郎) 예부상서(禮部尙書)로 있었으나, 간신의 모함을 받고 당시 신라로 망명을 하였으며, 적국이 침입하였을 때, 이를 막아낸 공로로 팽성군(彭城君)에 봉해진 후, 신덕왕 때에 충절공이라는 호를 얻게되었다고 한다.

고려시대 말 각각 연희궁부사와 평성부원군을 역임한 임세춘(林世春)이 시조인 전객령계(典客令系)와 임언수(林彦脩)가 시조인 충정공계(忠貞公系)가 있다. 조선 시대 땐 문과 급제자가 20명 정도 있었다.

전객령계 시조 임세춘(林世春)은 세자전객령(世子典客令)와 연희궁부사(延禧宮副使)를 지냈고, 증손자 임정(林整)은 형조판서까지 지냈다.[2]

전객령계의 역사적 유명 인물인 임경업은 임세춘의 11대손으로, 무장이었으며 탁월한 전술로 백성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충정공계 시조 임언수(林彦修)는 아들 임견미 덕에 평성부원군(平城府院君)이 되었다.

3. 집성촌

4. 유명 인물

신분직위에 상관없이 가나다순으로 나열하고, 특정인물 강조표기를 금한다.

5. 관련 문서


[1] 일부 구역은 현재 율곡동 지역에 속한다.[2] 시호는 공혜(恭惠).[3] 일부 구역은 현재 율곡동 지역에 속한다.[4] 1558~1612. 선조(조선) 시기의 무신으로 자는 자방(子房)이다. 임진왜란 당시 벌어진 이몽학의 난을 진압시킨 공로로 청난 3등공신에 칭해졌다. 최종 벼슬은 경상우도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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