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10-06 20:22:05

선조(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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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bf1400><colcolor=#ffd400>
조선 제14대 국왕
선조 | 宣祖
파일:목릉 선조릉.jpg
목릉 전경
출생 1552년 12월 6일[1]
(음력 명종 7년 11월 11일)
한성부 인달방 덕흥군 사저
(現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동)[2]
즉위 1567년 8월 17일[A] (14세)
(음력 명종 22년 7월 3일)
한성부 경복궁 근정전[4]
(現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로 161)
사망 1608년 3월 16일 (향년 55세)
(음력 선조 41년 2월 1일)
한성부 정릉동 행궁 정전
(現 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 99)
능묘 숙릉(肅陵) → 목릉(穆陵)[5]
재위기간 조선 제14대 국왕
1567년 8월 17일[A] ~ 1608년 3월 16일
(음력 선조 즉위년 7월 3일 ~ 선조 41년 2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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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bf1400><colcolor=#ffd400> 본관 전주 이씨
균(鈞) → 연(昖)[7]
부모 친부 덕흥대원군
친모 하동부대부인
양부 명종
양모 인순왕후
형제자매 3남 2녀 중 3남
배우자 의인왕후 (1569년 혼인 / 1600년 사망)
인목왕후 (1602년 혼인)
후궁
13명 [ 펼치기 · 접기 ]
공빈 김씨, 인빈 김씨, 순빈 김씨, 정빈 민씨, 정빈 홍씨, 온빈 한씨, 귀인 정씨, 숙의 정씨, 숙의 김씨, 숙의 한씨, 폐소원 윤씨, 상궁 김개시, 상궁 박씨
자녀 14남 11녀 (15남 14녀)
종교 유교 (성리학)
봉호 하성군(河城君)[8]
전호 영모전(永慕殿)
묘호 선종(宣宗) → 선조(宣祖)
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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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륜입극성덕홍렬지성대의격천희운
(正倫立極盛德洪烈至誠大義格天熙運)
계통광헌응도융조이모수유광휴연경
(啓統光憲凝道隆祚貽謀垂裕廣休延慶)
경명신력홍공융업
(景命神曆弘功隆業)
시호 조선: 현문의무성예달효대왕
(顯文毅武聖睿達孝大王)
: 소경(昭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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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bf1400><colcolor=#ffd400> 파일:external/photo-media.hanmail.net/20060929163306.254.0.jpg
선조의 한글 어필[해석][10]

1. 개요2. 생애3. 평가4. 가족관계
4.1. 친가(전주 이씨)4.2. 조상4.3. 배우자/자녀
5. 기타6. 대중매체
6.1. 소설6.2. 만화6.3. 게임6.4. 영화6.5. 드라마6.6. 교양·다큐멘터리
7. 관련 문서8. 둘러보기

1. 개요

조선의 제14대 국왕.

묘호선조(宣祖), 시호는 소경정륜립극성덕홍렬지성대의격천희운경명신력홍공융업현문의무성예달효대왕(昭敬正倫立極盛德洪烈至誠大義格天熙運景命神曆弘功隆業顯文毅武聖睿達孝大王), 는 연(昖).

2. 생애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선조(조선)/생애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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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선조(조선)/생애#s-|]]번 문단을
#!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선조(조선)/생애#|]]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3. 평가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선조(조선)/평가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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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선조(조선)/평가#s-|]]번 문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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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선조(조선)/평가#|]]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4. 가족관계

4.1. 친가(전주 이씨)

4.2. 조상

본인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
선조
(宣祖)
<colbgcolor=#fff3e4,#331c00> 덕흥대원군
(德興大院君)
<colbgcolor=#ffffe4,#323300> 중종
(中宗)
성종
(成宗)
정현왕후
(貞顯王后)
창빈 안씨
(昌嬪 安氏)
안탄대
(安坦大)
정경부인 황씨
(貞敬夫人 黃氏)
하동부대부인 정씨
(河東府大夫人 鄭氏)
정세호
(鄭世虎)
정상조
鄭尙祖
죽산 안씨
(竹山 安氏)
정경부인 이씨
이세걸
(李世傑)
정선 전씨
(旌善 全氏)

4.3. 배우자/자녀

선조의 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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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bf1400> 순번 작호 생몰기간 모후 비고
<colcolor=#ffd400> 1남 <colcolor=#b82647,#d94767><colbgcolor=#fff> 임해군
臨海君
<colbgcolor=#fff><colcolor=#000> 진
<colbgcolor=#fff><colcolor=#000> 1572년 ~ 1609년 <colbgcolor=#fff><colcolor=#000> 공빈 김씨 <colbgcolor=#fff>
2남 광해군
光海君

1575년 ~ 1641년 15대 국왕
3남 의안군
義安君

1577년 ~ 1588년 인빈 김씨
4남 신성군
信城君

1578년 ~ 1592년
5남 정원군
定遠君

1580년 ~ 1619년 추존 국왕
- 왕자 ~ 1603년
6남 순화군
順和君

𤣰
1580년 ~ 1607년 순빈 김씨
7남 인성군
仁城君

1588년 ~ 1628년 정빈 민씨
8남 의창군
義昌君

1589년 ~ 1645년 인빈 김씨
9남 경창군
慶昌君

1596년 ~ 1644년 정빈 홍씨
10남 흥안군
興安君

1598년 ~ 1624년 온빈 한씨
11남 경평군
慶平君

1600년 ~ 1673년
12남 인흥군
仁興君

1604년 ~ 1651년 정빈 민씨
13남 영창대군
永昌大君

1606년 ~ 1614년 인목왕후
14남 영성군
寧城君

1606년 ~ 1649년 온빈 한씨 }}}}}}}}}
자식이 10명을 넘겼던 왕 중 하나로 이후에는 인조(6남 1녀), 효종(3남 8녀)[21], 현종(1남 3녀), 숙종(6남 2녀)[22]을 거쳐[23] 영조 때가 되어서야 2남 12녀로 10명 이상의 자녀를 둔 왕이 나온다.[24]

5. 기타

  • 원래는 선종(宣宗)이었으나 1617년(광해군 9년) 선조(宣祖)로 변경됐다. 대명회전에 태조 이성계의 부친이 이성계의 정적인 이인임으로 오기된 것을 바로잡은 종계변무의 공로다. 무엇보다 중요한 왕가의 정통성을 바로잡는 일로 태조 3년(1394년)부터 200여년 간 조선의 정말 오래된 숙원이었다. 실록은 선조의 공을 종계변무 및 명나라 사람 정응태가 조선이 일본을 도와 명나라를 친다는 무고를 바로잡은 것, 임진왜란을 극복한 공로로 돌리고 있다. 선조 본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아들인 광해군이 자신의 권위와 즉위에 대한 정당성을 강화하고자 밀어붙인 사안이었다. 죽은 사람에게 칭송과 권위를 덧붙이는 이유는 죽은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현재의 권력자를 위해서다. 참고로 이 묘호는 북송의 건국자 태조 조광윤의 아버지 조홍은이 황제로 추존되며 받은 묘호이기도 하다.
  • 선조 재위 시기에 민간에서의 조보 인쇄를 금지하기도 했다. 조보란 오늘날의 관보와 같은 것으로 왕의 하교 등 조정에서 일어난 일을 기록한 것이다. 인쇄가 아니라 필사를 시켜 한성부윤(정 2품의 고위직, 현재의 서울시장) 이상 고위 관리 몇몇만 볼 수 있었다. 그런데 당시 민간에서 활자 인쇄해 배포하였는바 금지한 것.
  • 실록에 따르면 선조는 직접 신무기를 만들어 류성룡에게 베타테스트를 권하기도 했다.선조실록 26년 11월 12일, 임금이 총을 고안하여 유성룡으로 하여금 시험해 보라고 전교하다 선조가 만든 총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확인할 수 없으나 사수는 쏘고, 부사수가 돌려가며 장전한다는 언급으로는 리볼버개틀링의 원리로 작동하는 공용화기로 추측된다. 선조도 딱히 실용성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는지 비치해 놓고 한번 웃어 보라고 머쓱히 덧붙였는데, 이 와중에 사관은 임금이 전시에 직접 무기를 만들고 살펴보는 걸 왕이 쓸데없이 공졸을 논한다며 까고 아무 말도 하지 않은 류성룡도 아첨하느라 비판 한 마디 못했다며 세트로 깠다.
  • 선조는 인물 욕심이 많았다. 과거 시험이 아니라 추천이나 평판 등을 누군가에게 듣고서 꼭 곁으로 불러 관직을 줬다. 중종-인종-명종 대를 지나면서 훈구파가 퇴조하고 사림파가 득세를 하게 됐는데, 선조는 사화를 당하고 역적 취급을 받은 선비들을 죄다 사면하고 그 후손들 중 뽑을 만한 자를 가렸다.[25] 덕분에 선조 대와 임진왜란 때 이름을 떨친 선비들이 현재도 많이 조명되고 있다. 아울러 자연에 은둔해서 도를 닦는 사람들(산림 세력)까지 학행으로 천거를 받아서 현감직이라도 꼭 내렸다고. 반면 비리를 저질러 탄핵된 인사들은 여지없이 끝까지 쫓아내 벌을 줬다.
  • 조선시대 대부분의 왕이 그랬지만 선조는 그 중에서도 유난히 피로와 스트레스를 받은 듯 하다. 애초에 태어날때부터 몸이 허약했다고 하니... 실제로 임진왜란 전에도 이명, 소화불량, 심질[26]에 시달린다고 스스로 인정할 정도였을 지경. 특히 임진왜란 이후에는 정신적으로 충격을 크게 받아 온갖 병이 도져 도저히 못하겠다며 광해군에게 계속 양위하려 하였다. 물론 이를 당대나 지금이나 왕권강화를 위한 선위파동 쇼라고 보기도 하나 극심한 정신병으로 실제로 양위하려 했던 걸로 보는 의견도 없지는 않다.[27] 그의 아들들이 대부분 성격이 거칠고 모난지라 특유의 기질이 유전된 것일지도 모른다. 임해군도 난폭함과 더불어 우울증이 있었다고 한다.
  • 지봉유설의 기록에 의하면, 선조나 그의 아들인 광해군 대에 잉글랜드사략선이 조선 해안을 침공했다가 조선 수군에 의해 격퇴되었다고 한다. 광해군일기에도 같은 기록이 있으므로 실제로는 광해군 시기의 일이 와전되었을 수도 있지만, 지봉유설에서는 이 사건이 선조 때의 일이었다고 기록되어있다.[28] 지봉유설의 기록이 사실이라면, 이 사략선단은 프랜시스 드레이크[29]의 함대라고 추정된다.
  • 서양과 관련된 선조 대의 또다른 기록이 있는데, 포르투갈인 선원인 '마리이(馬里伊)'[30]가 일본으로 가다가 풍랑으로 인해 조난당하여 조선의 해안에 표류했다는 서술이 그것이다. 이 사람은 현전하는 기록에 의하면 한반도에 도달한 최초의 유럽인인데[31] 조선 조정에 의해 명나라를 거쳐 본국인 포르투갈로 송환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임진왜란 중에 포르투갈인 선교사들이 명나라 만력제에게 바친 아프리카 출신의 흑인 노예들이 조선으로 파견되어오자[32] 이들에게 관직을 하사하고 신기하게 여겼다는 기록이 있는 등, 서방과의 인연이 꽤 되는 왕이다.
파일:선조.jpg* 임진왜란 당시 선조의 첫째아들 임해군을 수행해 피난했던 윤탁연의 후손들이 이것을 선조의 어진이라 주장했는데, 후손들은 이 어진을 윤탁연의 『중호관북일기』와 함께 대대로 보존해 왔다고 하지만, 감정사들은 ①전복 차림이 측면의 자세이고 ②좋은 필치가 못 되며 ③아무 기록이 없는 점을 들어 선조의 어진으로 봐야 할 근거가 희박한 것으로 보고 있다. 만약 이 그림이 진짜 선조의 어진이라면 광해군의 얼굴을 유추해볼 수 있는 자료이다. [33][34][35]
파일:1610636a2e221d3ed.jpg* 원본은 아니고 누군가 모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선조 어진으로 추정되는 어진이 이베이에 떴었다. 현재는 판매된 상태이고 이 어진은 선조라고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아무런 기록이 없어 진짜 선조의 모습을 보고 그렸을 가능성은 낮다.
파일:external/img.khan.co.kr/6i30k11b.jpg
파일:external/photo-media.hanmail.net/20060929163306.254.0.jpg* 위는 속리산 법주사에 있는 오언절구 중 첫 수로 '담장 가의 매화 한 가지가 / 추위에도 능히 홀로 피었네 / 멀리서도 눈송이가 아님을 알겠으니 / 은은한 향기가 나오고 있음이어라.'(墻角一枝梅 凌寒獨自開 遙知非是雪 爲有暗香來)라고 쓴 것이다. 아래는 여동생 정안옹주의 병을 걱정하며 편지를 보낸 딸 정숙옹주에게 보낸 답장으로 언문 편지다. 만력 31년 계묘 복월 사시라 적혀 있는 것을 번역하면 복월(復月)은 음력 11월을 뜻하고 사시(巳時)는 대략 오전 9시 반~11시경이므로 1603년 음력 11월 19일 오전에 쓴 편지다. 전문 현대어 해석은 조선 왕실의 한글 편지를 참조. 선왕들과 마찬가지로 선조는 서예그림에 소질이 있었다고 평가된다. 특히 글씨는 명나라 장군들이 얻고 싶어할 정도로 뛰어났으며 당대의 명필인 한석봉의 글씨에 대해서도 "한석봉이는 액자(額字)가 비록 훌륭하지만 초서와 해서는 부족하다."라고 평가했을 정도로 자신의 글씨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던 모양.[36] 실제로도 조선 역대 국왕 중 명필의 하나로 꼽히며 후대 왕들의 서체에도 영향을 주었다고 하는데 지금까지도 그의 친필은 곳곳에 많이 남아 있다.[37] 계비 인목왕후와 유일한 적녀 정명공주도 명필로 유명했다.
  • 은근히 삼국지연의에 관심이 많았다. 즉위 초 삼국지 내용을 언급하다가 기대승에게 까인 것은 유명한 일화인데 주변에서 들었다고 핑계를 대긴 했지만 잠저가 되었든 궁중이 되었든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연의의 내용을 어린시절부터 접한 것은 확실하기에 한국 최초의 삼국지덕후들 중의 한 명으로 추정된다. 그 외 선조 38년인 1605년엔 선조가 향시 과거에 '제갈량관우를 구하지 않았다'는 주제를 냈는데 '제갈량이 관우를 죽이려고 일부러 그랬다'라고 쓴 합격자를 보고 '이건 무슨 개소리냐?'라고 합격을 취소시키기도 했다. 또 자치통감강목(제왕교육)을 공부하면서 웬만한 촉빠들도 실드치기 어려운 유비유장 통수를 가지고도 "유비는 호걸일 뿐 아니라 사실 인자한 사람이었다. 유장에 대한 처리를 보면 그의 선(善)함을 엿볼 수 있다. 또한 '작은 악이라 하여 행하지 말고 작은 선이라 하여 행하지 아니하지 말라.'는 말은 삼대(三代) 이후에 없었던 말이다.","'사자(嗣子)가 하잘것 없다면 그대가 스스로 차지하라.'하였으니, 이 어찌 천하를 공공물로 여기는 마음이 아니겠으며 제갈량이 아니면 어찌 그 말을 들을 수 있었겠는가."라고 칭찬하기도 했다. 사실 본인이 원하지는 않았다지만 임진왜란 때 관우 신앙을 처음 받아들인 왕이기도 했고 왜란 직후 나온 소설 임진록에서는 장비의 환생 취급을 받기도 했으니 여러모로 삼국지와 촉한과는 인연이 많은 왕이긴 했다. 그래서 일각에선 사실 진성 촉빠라는 얘기를 듣기도 한다.
  • 조선 역대 임금 중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모진 풍파를 겪은 임금이다. 정여립의 난이몽학의 난 등 반란이 계속 일어난 데다가 조선 역사상 최고로 큰 전쟁인 임진왜란까지 겪었다. 이것 때문에 선조는 몽진을 가면서, 일국의 임금씩이나 되는데도 불구하고 길에 천막을 치고 잠을 자거나 백성들이 제공하는 메조밥을 먹는 굴욕까지 당했다.[38] 선조의 입장에서 보면 왜 하필 나냐고!라며 고함을 지를만할 정도로 고생을 엄청나게 했다. 충분히 정신병이 걸리고도 남을 상황이긴 하다. 이 풍파는 선조가 죽어서까지 병자호란으로 이어지게 된다.
  • 조선 최초의 후궁 소생 방계 왕족 출신 국왕이다. 명종의 유일한 친아들 순회세자요절하자 종친 가운데 덕흥군의 셋째 아들인 하성군이 후사로 선택되어 명종과 인순왕후양자로 들어가 명종의 뒤를 이었다. 초창기에는 숙모이자 법적 어머니인 인순왕후가 수렴청정을 했지만 곧 철렴하고 1년 만에 친정을 하게 된다. 조선 역사의 중간에 위치한 임금으로 왕위 계승도를 보면 선조와 임진왜란을 중심으로 계보도가 전기와 후기로 나뉜다. 이후의 조선 임금들은 모두 선조의 직계 후손으로 모두 서계이다.
  • 1603년 수박을 진공 받았는데 이미 상해서 못 먹을 것이었다. 그러자 왜적이 가져갔는가? 하면서 밑에 신하들을 타박하기도 했다. 이 일화는 사관이 왜적 운운했다고 왕이 할 말이 아니라고 깐다.#

6. 대중매체

선조는 전시 이전에는 매우 성군이자 무난한 왕이였으나 한국사에서 가장 큰 임팩트를 남긴 임진왜란에서 몽진, 훗날 의병 숙청, 전쟁영웅 이순신에 대한 견제 등등의 행태들 때문에 대중적 인식이 매우 부정적이어서 매체에서는 십중팔구 암군이자 찌질이, 겁쟁이, 멍청이로 등장하는 경우가 잦으며 심하면 폭군 이미지[39]로 나온다. 게다가 이순신과 관련해서도 거의 무조건적인 이순신 혐오를 보여준 탓에 이순신의 이미지와 반대되어 원균과 같이 엄청나게 까이기도 한다.

6.1. 소설

  • 이우혁의 소설 <왜란종결자>에서는 임진왜란기 당시 선조의 부정적인 행동들에 대해 선조의 몸에 마수가 깃들었지만[40] 그걸 제외해도 원래부터 암군에 인성 자체가 구제불능이라고 묘사했다.[41] 같은 케이스로 설정된 원균[42]과 비교해도 그 패악성과 인간성이 심각하게 묘사되어 주인공인 은동 입으로 살아있을 가치가 없는 인간 쓰레기라 평가되었고[43] 이순신의 경우 다시 지휘관에 부임했다가 은동의 격려로 마음을 다잡은 뒤로는 백성들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자신이 연승하여 이 인간을 부들거리게 만들겠다는 증오심으로 싸움에 임했다.
  • 김성한의 소설 <7년전쟁>에 등장하며 특유의 찌질함이 잘 묘사되었다. 정여립의 난 에피소드 때 우의정 이양원이 이발의 팔십 노모를 제대로 고문하지 않고 보고를 올리는데 이 때 이양원을 갈구는 모습은 가히 인상적. 임진왜란 발발 후부터는 말할 것도 없다.
  •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에서는 무능하고 잔혹하게 표현되는 "칼로 벨 수 없는" 권력의 정점에서 정치로 전쟁을 수행하며 유능한 지휘관을 무자비하게 숙청하는 악인으로 표현된다.
  • 대체역사 웹소설계에서는 임진왜란 당시 한성을 떠나 의주까지 하루 수십 km를 주파한 행적 때문에 기동과 속도의 아이콘 취급을 받고 있다. 코락스 작가의 대체역사소설 <혁명은 내 취향이 아니었다>와 <탐관오리가 상태창을 숨김>에서는 블랙 코미디 성향이 짙은 작품답게 선조의 행적을 풍자해서 최속군주라는 닉네임을 붙여주고 작중에서 누군가가 도주에 실패할 때마다 선조의 행적과 비교했는데, 이게 대체역사판에서 유행을 타서 타 작품까지 퍼진 것이다. 그래도 요가군주니 전쟁군주니 하며 비꼼을 당하는 인조보다는 취급이 나은 편인게, 선조를 무작정 까는 것 같으면서도 신립의 패배 소식을 듣자마자 망설이지 않고 이틀 만에 몽진을 떠난 점 같은 건 또 호평한다. 현대에 살았다면 투자 손절은 기가 막히게 했을 거라고.

6.2. 만화

파일:attachment/fat_seonjo.png
  • 온리 콤판의 만화 <YI SOON SHIN>에서는 무능하고 찌질한 임금 이미지를 극대화하여 짜리몽땅한 비만한 체형으로 나오는데 실제로 선조가 뚱뚱했다는 기록은 없다.[44] 사실 비만보다 더 문제는 서구권 폭군 클리셰대로 만화고기를 손으로 들고 뜯어먹는 장면이 나오는데 아무리 연산군 같은 폭군이라도 명색이 예법에 엄격했던 조선의 왕이 이런 창피한 짓을 신하들 보는 앞에서 할 리는 없으므로 한국인이 보기엔 심히 어색한 장면.
  • 웹툰 <호랭총각>에 나오는 왕의 모델이 선조가 아니냐는 의견도 있는데 그 이유는 아무래도 호랭총각의 배경이 임진왜란 직전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의 시대가 명나라인 점이 크다. 선조 이후의 중국은 청나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선 통신사 설정이라든가 박문수가 작중에 등장하는 등 호랭총각은 작가의 말 그대로 '조선시대 비슷한 시대' 정도로 보는 것이 맞다. 즉 나대용이 나온다는 사실만으로 그 시대의 왕인 선조로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왜구네이터 편에서 나대용이 이순신의 부하 나대용과 동일 인물이며 시대도 임진왜란 직전임이 밝혀져 사실상 선조가 맞다는 것이 드러났다.
  • 웹툰 <오성X한음>에서 등장해 명군처럼 보였으나 역시 두 얼굴의 왕이었다. 이이에게 일부러 스트레스를 줘서 죽게 만들었고 정여립을 예의 주시하면서 한바탕 피바람을 예고하는 등 인식이 좋지 않았는데 결국에는 정철을 배후에서 조정해 기축옥사를 일으켜 왕권을 강화시키는데는 성공했지만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오성과 한음에게 울면서 살려달라 통곡하는 등 찌질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 만화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자신의 손자 인조와 더불어 박시백 작가가 제일 비판하는 군주이기도 하다.
  • 만화 <노부나가를 죽인 남자>에서 등장한다.[45][46]

6.3. 게임

  • <임진록 2> 오리지날 캠페인에서 유일한 캠페인 전용 등장 인물로 등장한다. 완전한 픽션을 다룬 확장팩과 달리 그나마 현실의 임진왜란 사건을 어느 정도 재현한 <임진록 2>의 캠페인에서 등장하는 빈도가 높은 편이며 전용 초상화도 있지만 이순신이나 권율처럼 자신이 직접 싸우는 장수 유닛이 아닌 '선조의 어가'라는 이동 밖에 할 수 없는 유닛으로 딱 1번 등장한다. 확장팩에서는 아예 등장하지 않는다.
  • <토탈 워: 쇼군2>의 임진왜란 모드인 Morning Sun에서 조선 국왕으로 등장하며 후계자로 광해군을 두고 있다. 전투에서 장군 호위대와 함께 말을 타고 전투에 참여할 수 있고 플레이어의 플레이에 따라 능력 6성에 명예수치 만땅을 찍는 명군이 될 수도 있다.
  • 엠파이어즈 근대사회의 여명 이순신 캠페인에서도 선조가 나오는데 실제역사와는 달리 딱히 찌질하거나 이순신을 갈구지는 않고 노량해전이순신전사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이 평화와 영광을 이순신에게 바친다."라는 실제로는 한 적도 없는 말을 하며 에필로그 나레이션으로 "선조 임금은 그가 죽은 1608년까지 나라를 다스리는데 기여하였으며 그 후 조선왕조는 300년동안 번창하였다."고 언급해 작 중 묘사로만 보면 세종(조선)급 명군마냥 소개되었다.[47][48] 어떻게 보면 선조 미화지만 한국사를 잘 모르는 서구에서 만들어진 게임이라 생긴 한계점.

6.4. 영화

6.5. 드라마

  • 1999년 MBC 드라마 《허준》에서는 배우 박찬환[51]이 연기했다. 사람 좋은 임금님으로 묘사되어서 사극 매니아나 역덕후들이 충격에 빠지기도 했다.[52] 주인공 허준 편에 서서 허준을 지원해주고 임진왜란 때는 분조를 이끄던 광해군을 걱정하는 인자한 성군으로 그려졌다. 다만 광해군과의 사이가 돈독하게 나온 것은 아니고 광해군과 거리를 두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실제 역사나 이후 다른 사극에 등장하는 선조에 비하면 부자지간이 나쁘지 않게 나온다. 인기있던 드라마라 선조의 이미지 재고에 도움이 될 법도했지만 대중들이 여기서 나온 왕이 선조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극 중에서는 다른 사극에서 흔히 보이던 인물 이름을 알리는 자막이 1번도 등장하지 않았기 때문에 역사적 배경을 알지 못하면 선조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없다. 극 중에서 허준이 존재했던 시기를 알 수 있는 단서는 오로지 1부에 등장한 '선조 1년'이라는 자막과 후반부에 등장하는 임진왜란뿐이다.
  • 2000년 KBS 드라마 《천둥소리》에서는 배우 이호재[53]가 연기했다. 기존의 선조에서 다르지는 않지만 조선군을 매우 나약하게 여긴다. 이순신의 첫 승전을 과대하게 부풀린 장계라고 여기는가 하면 서산대사가 행재소에 찾아와 "5천 승병이 일어났다" 라고 하자 서산대사가 떠난 이후 "파리 때만 모인다"고 비난하는 등 오로지 명나라 군대만 찾는다. 특이점이라고 하자면 호통칠 때 벼락치는 듯이 우렁차다는 게 특징이며 다른 임진왜란 배경 드라마와는 다르게도 신하들에게 하대한다.[54]
  • 2003년 SBS 드라마 《왕의 여자》에서는 배우 임동진이 연기했다. 위엄은 전혀 없는 데다 갈수록 찌질한 모습까지 보이고, 왕비인 의인왕후에게 내심 고마워하는 모습이 보인다. 드라마 내내 임해군과 충돌하며 광해군 역시 후반부로 갈수록 점점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다. 미모가 뛰어난 개시를 마음에 들어하던 와중에 광해군에게 열등감이 느끼고 광해군과 개시의 사이를 눈치채고 일부러 개시를 자신의 여자로 삼는다. 개시의 뛰어난 미모 뿐만 아니라 입바른 소리를 하는 당돌함을 마음에 들어한다. 몇 년째 다른 후궁들은 거들떠도 안 보다가 나이 어린 후처인 인목왕후를 총애하면서 개시를 잊어버린다. 결국 작품 중후반부에 새벽에 매화틀로 납시다가 풍을 맞아 몸져 눕고, 개시가 올린 약밥을 먹고 숨을 거둔다.
  • 2004년 KBS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서는 곽정욱(아역), 최철호(성인)[55][56]가 연기했다. 이 작품에서는 왕권에 집착하는 왕[57]으로 묘사되었고 임진왜란으로 몽진을 하던 도중 이순신의 첫 승전보에 감격하며 이순신을 매우 중용하는 듯 보였으나 민중들이 이순신을 추앙하는 모습과 류성룡을 시기하는 윤두수와 이순신의 공적을 시기하는 원균의 보고가 겹치면서 점차 이순신을 위험시하기 시작하며 점차 암군의 면모를 보인다. 마지막까지도 명나라 유정의 말을 듣고 선전관을 보내 노량 해전을 준비하는 이순신을 방해하는 것도 모자라 "칙사를 가두고 출전했다"며 노발대발하는 모습을 보인다.
  • 2019년 tvN 드라마 《왕이 된 남자》에서는 배우 장혁이 연기했다. 실존 인물이 아닌 모티브만을 따온 창작 캐릭터이다.

6.6. 교양·다큐멘터리

1994년 KBS 교양 프로그램 《역사의 라이벌》 〈이순신과 원균〉 편에서는 배우 임혁이 연기했다.

7.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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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율리우스력 11월 26일[2] 조선시대에 사직단이 있었던 사직공원 근처다. 도정궁(덕흥군 사저) 건물이었던 경원당은 오늘날 건국대학교 서울캠퍼스 내부에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다.[A] 율리우스력 8월 7일[4] 선조 재위 중에 임진왜란이 발발하여 전란 중 경복궁이 불타버리면서 선조는 조선 왕실에서 경복궁에서 즉위한 마지막 왕이 되었다.[5] 선조 시기 신하들 중 유명하거나 뛰어난 인물, 재상이 많이 배출되었다고 이 시기의 왕인 선조의 무덤, 목릉을 따와서 목릉성세(穆陵盛世)라고 부른다.[A] [7] 선조가 명종의 양자로 입적되었으니 이름이 부()였던 형 순회세자의 이름을 따라 '날 일(日) 변'의 한자로 바꿔야 한다는 건의로 바꾼 것이다.[8] 봉호는 경상도 하동군(河東郡)에서 유래했다.[해석] (네가 쓴) 편지 보았고, (정안옹주의 얼굴에) 돋은 것은 그 방이 어둡고 (너 역질 앓던 방) 날씨도 흐리니 햇빛이 (그 방에) 돌아서 들거든 내 친히 보고 자세히 기별하마. 대강 약을 쓸 일이 있어도 의관과 의녀를 그 방에 들여 명령을 기다리게 하려 한다. 염려 마라. 자연히 좋아지지 않겠느냐. 만력 31년 계묘 (1603년) 복월(復月, 11월의 이칭) 19일(9일) 사시(오전9~11시)[10] 여담으로 정안옹주는 당시 13세였으며, 1660년까지 70세를 넘겨 장수하였다.[11] 1살 차이로 선조의 둘째 적녀이자 동복여동생이 있다. 인목왕후의 3남매 소생 중 영창대군이 막내. 여동생은 난산으로 사산되었다.[E] 영창대군이 영성군보다 약 9개월 정도 일찍 태어났다.[13] 광해군 즉위 후 공성왕후로 추증되었으나 인조반정 이후 다시 추탈되었다.[F] 정원군이 순화군보다 약 2개월 정도 일찍 태어났다.[15] 술만 마시면 괜히 사람을 죽이고 그 재산을 강도했다. 정원군은 순화군보다 머리가 좋았는지 권력을 휘두르는 것을 굉장히 좋아하여, 처남을 과거에 부정 합격시켜준 혐의로 사헌부에 고소를 당하기도 했으며, 병역 회피자를 돈을 받고 자신의 집에 숨겨주는 등 자신이 왕자라는 것을 최대한 이용해서 전횡을 일삼았다. 정원군의 권력이 얼마나 막강했던지, 정원군의 노비들이 자신보다 신분이 높은 양민들을 아무 이유 없이 때리고 다닐 정도였다. 각 왕자들에게 할당된 마부들은 직무유기를 일삼았는데 정원군의 마부에게 마차를 요청하면 정원군은 그 요청한 근무원들을 모질게 구타했다. 10일 초저녁에 정원군의 노비 7명이 창기를 끼고 하원군의 집을 지나가다가 하원군의 노비들과 싸움이 일어났는데 정원군의 노비들이 하원군의 가택에 침입해 마구 때려부수고 귀부인을 끌어내 개끌듯 끌고갔는데... 그게 바로 하원군의 부인인 남양군부인 홍씨였다. 그러니까 정원군은 자기 큰어머니의 머리 끄댕이를 움켜쥐고 땅바닥에 질질 끌고 갔던 것이다. 하원군은 선조의 큰 형으로 정원군에게는 큰아버지였다. 결국 이 사건으로 인해 정원군은 탄핵을 당했다.[F] 정원군이 순화군보다 약 2개월 정도 일찍 태어났다.[17] 임진왜란이 발생하자 선조 임금의 명으로 의병을 모으라고 했지만 임해군과 순화군 두 왕자는 그러기는 커녕 백성들을 학대하고 백성들에게 저지르는 행패가 침략군 장수인 가토 기요마사 따위 아득하게 능가할 정도로 잔악무도했다. 결국 백성들은 이 두 왕자들을 가토 기요마사에게 넘겨줬으며 가토 기요마사는 이 왕자들을 일본에 압송해서 이들은 1년이 조금 넘는 기간동안 일본에 있다가 귀국했다. 순화군은 일본에 있으면서 더욱 극악무도해졌는데 순화군의 비교 대상은 저 연산군도 뛰어넘고 조선에는 이런 악인이 없으며 저기 해릉양왕 정도는 되어야 순화군과 비교대상이었다. 순화군은 어렸을 적부터 주변의 동물들을 보기만 하면 반드시 죽여야만 직성이 풀렸으며, 매해 연쇄살인을 저지르는 등 그 악행은 끝이 없었다. 이후 순화군은 의인왕후의 장례식장에서 의인왕후의 시종 궁녀를 강간하는 짓을 저질렀다. 선조는 이 혐의로 순화군을 수원으로 유배보냈는데, 선조 34년 2월 9일 순화군은 술을 나르는 노비를 재미삼아 구타했고, 2월 12일에는 노비를 벌거벗기고 결박한 뒤 해가 뜰 때까지 옷을 입히지 않았다. 장석을시와 굿을 하는 무당을 잡아 묶어두고 고문한 뒤 밤새도록 매달아 놓았다. 이 과정에서 순화군은 장석을시의 이빨을 위 9개, 아래 9개를 강제로 발치했고 무당도 이빨을 위 1개, 아래 1개를 강제로 발치했다. 얼마나 잔인하게 고문했는지 무당은 피가 목구멍을 막아 호흡곤란으로 사망했다. 순화군의 악행이 얼마나 지독했는지 수원에 있는 모든 사또들이 전부 도망가서 수원의 통치가 마비될 정도였다. 백성들도 사또를 따라 죄다 도망쳐서 그 거대한 수원이 허허벌판으로 바뀌었다. 이에 선조는 순화군을 다시 압송해서 자신의 저택에 감금했는데 순화군은 살인을 못하는 충격으로 풍을 맞아 사망했다.[18] 과부들을 능욕하고 백성들에게서 땅과 금품을 마구 갈취했다. 이괄의 난이 일어나자 이괄에 의해 임금으로 옹립되었다가 이괄이 무악재에서 패했는데 흥안군을 미처 챙겨가지 못한 채 달아났고 그렇게 흥안군은 관군에게 잡혔는데 국문도 없이 즉결처분 당했다.[19] 인조보다 5살 연하의 숙부이긴 한데 조카인 인조조차 경평군을 실성한 사람 취급을 했을 정도로 인간성이 글러먹었다. 사람을 가두고 패는 악취미가 있었고, 형 흥안군과 함께 사대부에게 트집을 잡아 그 사대부의 집을 습격해 완전히 철거 수준으로 때려부쉈으며 노비를 가둬서 장살해버리기도 하고 자신의 귀중품을 몰래 숨긴 뒤 애꿎은 사람을 도둑으로 몰아 죽이고 재산을 강탈하는 등 행패가 장난이 아니었다.[E] 영창대군이 영성군보다 약 9개월 정도 일찍 태어났다.[21] 이 중 두 아들과 한 딸은 일찍 죽었다.[22] 이 중에서 성인까지 성장한 건 세 명 뿐이다.[23] 경종은 아예 없어서 제외[24] 이후 고종 때가 되어서야 또다시 자식이 10명이 넘는 왕이 나온다.[25] 윤흥신이 그 중 한 사람으로 훗날 다대포 전투에서 목숨걸고 싸우다가 장렬히 전사했다.[26] 心疾, 발작이나 혼절을 하고 감정 기복이 심한 증세로 추정. 조현병으로 추정하는 경우도 많다.[27] 다만 선조 말년에 정인홍이 이런행태에 열받아 진짜 양위하라는 내용의 상소문을 올리자 선조가 격분한 걸 보면 정치적 쇼일 가능성이 더 높다[28] 시기 상으로도 광해군 치세에 있었던 싸움은 1622년(광해군 14년)에 일어난 일인데 반해, 지봉유설은 그보다 8년 전에 쓰인 책이다. 그래서 지봉유설에서 언급하는 사건이 광해군 시기의 일이었을 리는 없다. 참고로 이 해전은 종전처럼 잉글랜드 해적의 소행이라는 설이 있는가 하면, 그 정체가 네덜란드 선박이었다는 설이 있다. 이에 관해서는 흥양 해전 문서를 참고할 것.[29] 칼레 해전의 주역인 그 드레이크다. 실제로 선조의 치세 기간에 드레이크의 사략함대가 태평양아메리카에서부터 서쪽으로 횡단하여 세계일주 항해를 하는 중이었으므로, 중간에 일본이나 조선 앞바다를 지나갔을 가능성도 있다.[30]선조실록》의 기록을 따른 표기로 포르투갈어로 선원을 뜻하는 단어, '마리녜이루(marinheiro)'를 음역한 것이다. 여담의 일부이긴 하나 특유의 발음과 철자 표기에서 발견할 수 있듯 선원이 때로는 항해사, 그리고 선원과 보병 및 포병의 역할을 동시다발적으로 수행하는 경우가 잦았던 대항해시대 특징 상 "바다의", "배의", "해병대"와 같은 언어적 의미를 지칭하는 단어인 'marine'과 기원이 같은 일반명사다.[31] 신라고려 시대에 동로마 제국에서 추방된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도들이 한반도에 정착했다는 설은 있으나, 이를 입증할 만한 사료나 유물 등이 전무하다.[32] 다만 《선조실록》에는 이들 흑인들의 출신국이 프랑스라고 기록되어 있다.[33] 임진왜란 시기 어진으로 전해지나 확실하지는 않다. 임진왜란 발발 시기 윤탁연이 평소 어진을 그리는 것을 꺼리던 선조의 초상화를 발견하여 보관했고 그가 입수한 어진은 후손에게 전해지다 1974년 이은상이 윤탁연의 후손을 찾아내면서 발견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해당 어진에 대한 자료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선조 어진으로 단정하지 않는다. 선조가 아니라 해도 다른 어진 중 하나라는 의견도 있는데 이는 가슴의 흉배에 용이 그러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왕은 사각이 아니라 원형의 흉배를 사용하는데, 이는 천원지방(天圓地方), 즉 하늘은 둥글고 땅을 네모나다는 당시의 우주관 때문이다. 그러므로 용흉배만으로 이것이 어진이라는 근거가 되지 않는다. 또한 대부분의 어진은 정면상 혹은 좌안 8분면상인데, 이 그림은 반측면상이라는 점, 어진에서는 없는 지물(持物, 지닌 물건)을 보이고 있다는 점, 어진은 한번도 사복(私服)본이 그려진 점이 없다는 점 등을 볼 때도 해당 그림은 공식적인 어진으로 보기 어렵다. 이러한 그림은 최치원, 남이, 경순왕 등 민간이나 불교 사찰에서 신앙의 대상으로 보이는 무속화의 양식을 더 많이 보이고 있다. 따라서 사찰이나 당집, 개인이 사사롭게 모시던 그림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34] 그러나 해당 어진이 선조를 묘사한 것이라는 추정도 있다. 임진왜란 당시 피난 중이던 선조의 초상을 측면에서 빠르게 그린 것일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선조의 신변에 이상이 생기면 더이상 어진화사를 할 수 없기 때문에. 또한 복장과 관련하여, 해당 초상의 흉배가 원형이 아닌 사각형이라 하더라도, 조선 시대 흉배에서 정1품 문관은 공작, 무관은 호랑이, 정2품은 꿩을 사용했으며, 용은 오직 임금만을 위한 문양이었다. 이를 고려할 때, 초상을 그린 화가가 급박한 상황에서 얼굴을 먼저 그린 후, 흉배의 형태는 당시 고관들의 흉배를 참고해 사각형으로 표현하고 나중에 왕이니까 용만 그려넣었을 가능성 또한 있다. 이것 말고도, 전쟁 중이라는 상황을 고려할 때, 초상의 모델이 된 인물이 선조가 아니라면 누구인지에 대한 의문도 남아 있다. 전란 중 임금의 초상을 제작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지만, 만약 전쟁 중에 그려졌다면 임금을 제외하면 한가하게 자신을 모델로 초상화를 그릴 만한 인물이 있었을 가능성은 낮다는 해석도 있다.[35]링크에서는 해당 그림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반우향(半右向)으로 호피가 깔린 이동 좌식 교의(交椅)에 앉아 왼손은 팔걸이를 잡고 오른손은 홀(혹은 부채)을 팔걸이에 세운 채 붉은색 차양 밑의 갓끈 달린 갓을 쓰고 있는데, 화려한 운보문(雲寶紋) 녹포 단령 안에는 붉은 용포를 껴 입었고, 흉배의 용문과 풍만한 얼굴의 기품은 사대부의 그것과는 또 다른 고귀한 신분의 풍모로써, 앞을 응시하는 맑은 눈에는 여유 있는 만기친람(萬機親覽, 임금이 온갖 정사를 일일이 몸소 다스림.)의 기품이 넘쳐 흐른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임진왜란 시 의주로 몽진한 선조가 상황이 급박하여 세자 광해군과 분조(分朝)하여 후일을 기약하며 서로 달리 갈 때, 맏아들 임해군에게 본 어진을 주었던바, 임해군은 곧 왜군에게 포로가 되었다. 그래서 임해군을 배종하던 본도 도순찰사 윤탁연(尹卓然, 1538-1594)에게 이 어진을 잘 보관토록 맡겨 지금까지 전해 온 것이라 한다.[36] 한석봉은 조선 4대 명필로 꼽히는데다가 선조 자신부터가 한석봉 팬이라 한석봉에게 가평 군수에 앉혀준 적도 있었다.[37] 인조효종이 선조 서체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38] 메조로 지은 밥을 먹는 치욕을 당한 임금은 동아시아에서는 선조 이외에도 이각곽사의 행패를 견디다 못해 몽진을 간 헌제 정도밖에 없었다.[39] 사실 선조는 폭군으로 분류되기에는 힘든데 전란에서 이순신을 견제하며 냉대하는 등의 모습과 아들 광해군까지 견제한 행적때문에 발생한 일이다.[40] 원균도 그렇고 원래 성격부터가 문제가 많았는데 마수들이 이성과 절제력을 없애자 숨겨왔던 본성이 튀어나와 부정적인 행동을 일삼았다고 묘사했다.[41] 한양을 등지고 피난하는 첫등장에서 흑호와 태을사자가 그 모습을 지켜보는데, 태을사자도 저사람은 마수가 아니었어도 본래부터 의심이 많고 음험한 인물이라고 평했고 흑호도 정말 저 인간이 싫다고 반응했다.[42] 원균의 경우 패전 후 도망치면서 마수가 떨어져나가면서 비로소 자신의 잘못과 어리석음을 깨닫고 절망 속에서 이순신에게 용서를 빌면서 최후를 맞이했지만 선조는 그런 거 없다.[43] 은동은 이 인간의 패악질 때문에 천계에 부여받은 권능을 써서 죽여버리려 한 게 한두 번이 아니고 태을사자조차 이에 대해 적극적인 반대를 못할 지경이었다. 한 번은 선조가 이순신의 누명을 빌미로 그를 압송하여 국문 후 죽이려 했을 때 분개하여 선조를 염라대왕의 비술(주문은 "저승의 명령이다!" 이 한마디면 그 즉시 사람이건 동물이건 혼백이 달아나버릴 정도의 위력이라고 한다)로 사살하려고 하였으나 태을사자의 "지금 상감을 없앤다고 이 난리가 끝날 것 같으냐?" 라는 만류에 간신히 참았고, 한 번은 이순신을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하려고 온 선조의 선전관을 두들겨 패 죽여버린 후 내친김에 선조를 다시 죽여버리려고 하였으나 은동 본인이 다시끔 간신히 참아넘겼다.[44] 오히려 기록을 통해서 실제로 비만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왕으로는 세종경종이 있다.[45] 한국 매체에서 묘사된 작품들보다도 선조가 긍정적으로 묘사된 작품인데 일반적으로 한국 매체에서 당시 동인 출신 김성일의 외침 따위 없을거라는 말만 믿고 외침대비를 전혀 안했다가 전쟁이 발발하자 백성버리고 도망가기 바빴다고 묘사되는 것과는 달리 나름 외침대비를 하고 있었던걸로 나오고 파천할때 왕이 도망가는거냐고 비난하는 백성들에게 혼잣말로 자신은 도망가는게 아니라 명나라에 구원을 요청하러가는 것이며 반드시 명나라군과 함께 돌아오겠다고 해명하는 장면이 있다.[46] 실제로 파천하면서 명나라에 구원을 요청한것 자체는 사실이고 명나라에 구원 요청을 한것까지는 당시 국왕 입장에서 할일을 한것이다. (명나라 구원군이 올때까지 조선을 떠나 명나라로 망명하려한게 문제였을뿐)[47] 물론 에필로그 나레이션의 언급의 경우 아주 틀린것은 아닌것이 왜란으로 국토가 초토와 되어 1601년 농사 지을 수 있는 토지가 왜란이전의 5분의 1 수준인 29만결에 불과하던것이 광해군 초기인 1611년 10년만에 54만결로 2배가까이 늘어났으며 이토록 빠른 회복은 선조의 기여가 크다.[48] 다만 이후 조선왕조가 300년간 번창했다기에는 임진왜란이후에도 조선은 정묘호란,병자호란,경신대기근,을병대기근등으로 고통받았으며 18세기에 중흥기를 맞으나 19세기에 세도정치로 고통받게 된다.[49] 해당 배우도 실제 선조처럼 전주 이씨이다.[50] 2008년 SBS 드라마 <일지매>에서는 인조 역.[51] 2004년 KBS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서는 순천 부사 겸 이순신의 심복인 권준 역.[52] 실제로 기록상에 선조는 허준에게 중인이라는 신분임에도 정1품 보국숭록대부라는 작위를 내리려다 실패하는 등의 허준을 총애한 기록이 많이 남아있다. 이후 허준이 사망했을 때 광해군은 비로소 정1품 작위를 추증하였다. 물론 허준이 정1품 작위를 받을만큼 충분한 공적을 세운 것은 명약관화지만 이순신이 당시 정2품 정헌대부에 불과했던 것을 볼 때 신하를 대함에 있어 편차가 컸다는 것을 볼 수 있다.[53] 2006년 MBC 드라마 <>에서는 내관 역.[54] 선조보다 나이가 많은 신하도 예외는 없어서 하였소? 와 같은 체는 거의 보이지 않고 하였느냐? 하였는가? 라는 어체를 쓴다. 간혹 화를 낼 때 하였소? 라는 어투를 쓴다.[55] 당초 배우 조민기가 선조 역이었으나 제작진과의 마찰을 빚고 심지어 무단으로 촬영을 펑크내자 최철호로 변경되었다. 훗날 이 이야기는 조민기가 미투 운동에 엮이면서 재조명되었는데 당시 들리는 말로는 조민기가 <불멸의 이순신> 촬영장에서 뚱한 표정만 짓고 있었으며 한번은 "어떻게 여자 한번 보기가 힘드냐? 내 평생 이렇게 여자없는 작품은 처음이다. 엑스트라 궁녀가 이뻐보일 지경이다."라고 한 적도 있다고 하며 궁녀 역할 엑스트라를 사진으로 찍어가려고 했다고 한다.[56] 초반(1~4화)에만 잠시 선조의 분량이 있었던데다 선조 이전의 왕인 명종도 잠시 등장하는 시기가 있고 무엇보다 선조가 아역부터 성장기를 거치는 과정까지 묘사되기 때문에 이 교체로 처음부터 드라마를 시청했던 사람이라도 이질감을 느낄 수 없을 정도다.[57] 무조건 까내린 것은 아니고 선조가 막 즉위했던 어린 시절은 귀를 열고 충언을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등 성군이 될 자질을 보습도 보여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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