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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율리우스력(Julian calendar)은 고대 로마 공화국의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로마력을 개정하여 기원전 46년에 제정, 기원전 45년부터 로마의 달력으로서 시행한 역법으로,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쓰인 양력(태양력)이다. 이는 로마가 쇠퇴한 이후에도 유럽 각국의 표준적인 역법으로 사용되어 거의 1,500년 넘게 사용되었다. 1582년에 율리우스력의 오차를 수정한 그레고리력이 제정된 이후에도, 일부 국가 등에서는 계속 사용되었는데, 결국 수백 년에 걸쳐 점차 사장되었다.현재 쓰이는 그레고리력과 율리우스력의 간극은 13일로, 서기 1900년 3월 1일부터 2100년 2월 28일까지는 그레고리력 날짜에서 13일을 돌리면 율리우스력의 날짜를 계산할 수 있다.
2. 방식
기본 구조는 1년을 365일, 4년마다 한 번씩 윤년(하루를 보태어) 366일로 1년을 평균 365.25일로 정한 역법이다.[1] 4년마다 한 번씩 2월 29일이 생기는 이유가 이것이다. 고대 사회에서 종교 및 정치적 목적(세금 부과 등의 속셈)으로 무질서하게 흐트러진 역법 체계를 개혁하고자 한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작품. 고대의 달력은 대개 점치는 용도로 사용했었다. 아시아경제 보도에 따르면 라틴어로 달력(캘린더)은 칼렌다리움(Calendarium)이라고 해서 차용증, 채권, 빚 문서, 금전 출납부 등의 의미도 지니고 있었으며, 고대 로마에서는 그리스의 관습을 본떠 매년 1월 1일에 로마 시내 모든 주민들이 광장에 모여 신전에서 주관하는 의식을 치르고 새해 달력을 받아 오면서 채권자와 채무자들이 모여 기존 채무 관계를 재조정하는 관습이 있었다고 한다. 채무자들이 돈 떼먹고 외국으로 튀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것으로 나오지 않으면 즉시 추방 및 로마 내에서 보유한 모든 재산을 동결시켜 버렸다고. 늘 빚에 쪼들려 살던 카이사르로서는 달력이 전혀 예사로 보이지 않았을 법도 하다.엄밀하게는 알렉산드리아의 천문학자 소시게네스(Σωσιγένης, ? ~ ?)의 공로이다. 이보다 앞서 카이사르는 이집트로 원정하였으며 클레오파트라를 만난 것도 이 무렵이었다. 새로운 역법의 도입은 당시 선진 문명의 중심이었던 알렉산드리아를 로마 제국의 판도에 편입하면서 가능하였던 일. 기원전 45년 1월 1일을 기하여 실시되었으며, 그레고리력 선포와는 상관없이 이를 아직도 사용하는 문화권이 있으므로 2천 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한다.
과학 분야에서 사용되는 시간 단위인 율리우스년은 율리우스력의 방식을 평균하여 계산된다.
3. 달력 명칭
1월이 야누아리우스가 된 것도 정확히는 율리우스력 도입 때부터라 할 수 있다. 이후 아우구스투스(옥타비아누스)가 황제로 즉위한 뒤, 아우구스투스는 그의 양아버지였던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기려 7월의 명칭을 양부의 씨족의 명칭 율리우스(Julius)를 따서 바꾸었다.[2] 말년에는 당시 기묘하게 시행되던 율리우스력의 윤달 적용을 명확히 하면서 달력에 자신의 이름도 넣었다. 트라키아, 악티움 해전에서 승리를 한 8월(섹스틸리스: Sextilis)의 이름을 전승 기념이라는 명분으로 '아우구스투스'(Augustus)로 변경한 것이다. 보다시피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가 끼어 들어가서 숫자 이름과 달이 2개씩 밀렸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 원래의 로마 달력은 오늘날의 3월이 첫 번째 달이었고 오늘날의 1, 2월은 아예 달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가 나중에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그렇게 전통(?)이 될 뻔했던 달력에 이름 넣기는 다행히 다음 황제인 티베리우스가 '황제가 13명이 되면 어쩔 건데'라면서 측근의 진언을 거절하면서 일단 중지되었다. 하지만 칼리굴라는 9월을 '게르마니쿠스'(자기 아버지의 이름이자 자기가 계승한 별칭-성)로 고쳤었고, 네로도 4월을 '네로네우스', 5월을 '클라우디우스' 6월을 '게르마니쿠스'로 고쳤었다. 9대 황제 도미티아누스도 10월을 '도미티아누스', 9월을 '게르마니쿠스'로 고쳤었다. 물론 이 변경 사항들은 각 황제의 사후에 원래의 이름으로 환원되었다. 더하여 9월은 안토니우스나 타키투스, 11월은 파우스티나와 로마누스로 바뀐 적도 있으며, 콤모두스는 아예 달 이름을 전부 바꿔버리기도 했다. 각 달의 명칭은 Amazonius, Invictus, Felix, Pius, Lucius, Aelius, Aurelius, Commodus, Augustus, Herculeus, Romanus, Exsuperatorius 였다.
후에 카롤루스 대제도 아예 모든 달 이름을 옛 게르만식으로 싹 바꿔버리는 짓을 하기도 했는데, 그 이름은 15세기까지는 일반적으로, 그리고 독일과 네덜란드에서는 18세기 말까지도 약간의 변형만 이루어진 채 사용되었다고 한다. 각 달의 명칭은 순서대로 Wintarmanoth(겨울의 달), Hornung(붉은 수사슴의 뿔이 떨어질 때의 달), Lentzinmanoth(사순절 달), Ostarmanoth(부활절 달), Wonnemanoth(사랑을 만드는 달), Brachmanoth(밭을 가는 달), Heuvimanoth(건초 달), Aranmanoth(수확 달), Witumanoth(숲 달), Windumemanoth(포도 수확 달), Herbistmanoth(가을·수확 달), Heilagmanoth(성스러운 달).
하지만 어쨌거나 가장 빨랐던(그리고 문화적 영향력이 가장 컸던) 두 명의 지배자 이름만이 살아남아 현재에 이르고 있다.
라틴어로 septem, octo, novem, decem은 각각 7, 8, 9, 10을 의미하는 숫자이고, 여기에 ber/bre를 붙이면, September, October, November, December이며, 각각 9월, 10월, 11월, 12월이 되며 실제 숫자와는 2씩 차이가 난다. 인터넷에서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가 각각 7월과 8월을 끼워 넣어서 밀렸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 두 사람은 기존의 7월과 8월의 이름을 바꾸기는 했어도, 뒤로 두 칸씩 밀어낸 것은 아니다. 카이사르 이전 세대의 로마력은 농업과 관련이 있는 10개월의 달력만 있었는데, 누마 폼필리우스 시대에 겨울에 해당하는 두 달분의 역법이 보강되면서 1년 12개월 체계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때, 저 2달이 앞에 붙으면서 모두 두 달씩 밀린 것이다. 당장 아우구스투스가 손을 댄 오늘날의 8월도 위에 나왔듯이 원래 이름은 6과 연관이 있는 섹스틸리스(Sextilis)였다(sex-는 라틴어로 6에 해당하는 접두사이다). 카이사르는 이 두 달의 겨울이 앞에 붙는지 뒤에 붙는지 혼용되어 사용된 것을 앞에 붙는 것으로 확정하며 율리우스력을 만들었다.
4. 시차 및 개혁
365일마다 한 번씩 태양의 주위를 공전하는 지구에서 1년 365일의 달력은 일단 자연스러운 것일 수도 있지만, 엄밀하게는 365일 하고도 약 6시간이 추가되어야 지구 공전 = 태양 회귀년(回歸年)을 제대로 채운다. 지구가 4번 공전하는 동안(4년) 6시간 차이가 누적되어 하루 차이가 발생하니([math(\displaystyle 4×6=24)]), 4년마다 하루를 추가하는 윤년을 설정함(치윤, 置閏) 또한 오차를 극복하려 한 지혜다.하지만, 자연의 운행이 인간의 편의대로 톱니바퀴처럼 깨끗하게 맞물리는 일은 없었다. 율리우스력의 1년은 365.25일(0.25일 = 6시간)인데, 실제 태양 회귀년은 약 365.24219일(약 365일 5시간 48분 45초 정도)이다. [math(\displaystyle 365.25일 - 약 365.24219일 = 약 0.00781일)][3]로, 이 숫자를 분초로 환산하면 약 11분 15초(675초)다. 하루가 86,400초이다 보니, 86,400초/675초로 계산하면 약 128년에 하루씩 밀리는 것이 발생한다. 쉽게 말해서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하는 자신의 궤도를 정확히 1바퀴 돌았는데 달력상의 1년은 약 0.0078일 정도 남아서 로마력 때와는 반대로 달력상의 날짜가 실제 날짜보다 반대 방향으로 앞서가게 되었다는 뜻이다. 그레고리력으로는 2024년 1월 4일이 율리우스력으로 환산 시 2023년 12월 22일이다.
서기 325년 콘스탄티누스 1세 시대 제1차 니케아 공의회에서 부활절 설정 기준을 정하였는데, 춘분이 지난 후에 오는 보름 이후 첫 일요일을 부활절로 정하면서 춘분점 측정은 종교적으로도 중대한 과제가 되었다. 요즘은 각 국가 천문대에서 자국이 사용하는 기준 자오선에 따라 춘분 등 절기를 정밀하게 계산하지만, 옛 로마와 그 전통을 이은 지역에서는 '춘분이 3월 21일이니까 그냥 3월 21일 = 춘분이라고 정하자.'는 식으로 넘겼다. 달력의 간격 때문에 수백 년이 지나고 천 년이 넘게 지난 나중에는 실체 춘분과 달력상 춘분이 달라졌다. 325년의 춘분은 3월 21일이라 부활절을 계산할 때에는 3월 21일을 춘분으로 간주하였다. 율리우스력의 125년마다 2월 29일 하루의 간극이 1,200여 년 동안 누적되면서 1582년이면 10일 간격이 생겼다. 실제로 태양이 춘분점과 합쳐지는 날이 율리우스력으로는 아직 3월 11일이었다. 율리우스력으로 춘분인 3월 21일이면 정확한 태양력으로는 3월 31일인 것이다. 하루이틀도 아니고 이 차이는 너무 심했지만, 부활절을 계산할 때는 여전히 율리우스력 3월 21일을 춘분으로 간주하여 계산했다. 율리우스력 춘분이면 실제는 벌써 춘분이 한참 지났다는 얘기.
당대 그리스도교계 지식인들은 이 문제를 심각하게 여겼고,[4] 당시 교황 그레고리오 13세는 실제 춘분과 달력상 춘분이 열흘 차이가 있음을 천문대에서 몸소 확인하기도 했다. 그래서 10일을 건너뛰는 대개혁을 단행하는 이유가 되었다. 이 문제로 골치가 아파진 교황은 그 뒤로 달력과 천체 운행 주기의 차이를 해결코자 율리우스력을 손보기로 작정한다. 이렇게 시차가 수정된 달력이 오늘날 사용되는 그레고리력의 유래이다.
5. 사용 지역
오늘날 공식적으로 율리우스력을 표준 달력으로 사용하는 나라는 없다.처음 그레고리력 제정이 가톨릭의 주도에 따른 것이라는 데에 대한 반감 때문에 개신교와 정교회를 믿는 지역에서는 한동안 율리우스력을 유지하였으나, 오차 문제[5]로 결국 새 달력의 보급을 막지 못하고 율리우스력을 폐지하기에 이르렀다. 개신교 강세 지역인 독일, 잉글랜드, 미국은 18세기에 그레고리력을 받아들였으나 정교회권에서는 20세기까지 율리우스력을 사용하였다. 러시아와 튀르키예에서는 1918년까지[6], 그리스에서는 1923년까지 공식적으로 율리우스력을 썼다고 한다.
제국주의 시대에 대부분의 강대국이 그레고리력을 썼다보니[7] 대세가 되어 전 세계적으로 그레고리력이 정착했지만, 정교회 문화권에서는 가톨릭에서 정한 것이라 기존 율리우스력을 바로 대체하지 못하고 다소 늦게 도입되었다. 그래서 율리우스력 시절 출생자는 율리우스력으로 기록된 경우가 많다. 이런 이유 때문에 율리우스력으로 2월 23일에 일어난 러시아 혁명의 2월 혁명은 그레고리력으로 3월 8일(현 국제 여성의 날)이고, 율리우스력 10월 25일에 일어난 10월 혁명은 그레고리력으로 11월 7일(구소련 및 벨라루스의 혁명 기념일)이다.
지금도 러시아에서는 달력은 그레고리력을 써도 성탄절이나 부활절 같은 종교적 명절은 율리우스력을 기준으로 쇠는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대한민국에서 공식적으로 양력을 써도 명절은 음력인 것과 비슷하다. 정교회 가운데 예루살렘, 러시아, 벨라루스, 조지아, 세르비아, 북마케도니아, 몬테네그로, 보스니아의 교회들은 로마 제국 이래로 율리우스력의 전통을 지켜오고 있다. 러시아의 경우 제정 시기까지 율리우스력을 계속 사용해 왔고, 이 때문에 러시아 혁명 시기의 사건을 설명할 때는 두 역법을 병기해서 혼란을 방지한다.
유럽의 나라별 성탄절 공휴일 날짜 | |
12월 25일 (그레고리력) | |
1월 7일 (기존 율리우스력의 12월 25일) | |
1월 6일 (그레고리력의 주님공현대축일·주현절) | |
공휴일이 아님 | |
지역에 따라 다름 |
오늘날 그리스의 아토스 자치주에서는 내부적으로 율리우스력을 사용하는데, 그리스 정부에서는 그레고리력을 사용하므로 그리 영향력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의 정교회 신도 중 그리스 구달력파는 콘스탄티노폴리스와 그리스 교회의 그레고리력 도입에 반대하여 갈라진 사람들이다.
우크라이나 그리스 가톨릭교회는 개정된 율리우스력을 사용한다.#
6. 여담
21세기의 천문학에도 율리우스력의 흔적이 남아 있다. 광년의 정의가 빛이 1년간 이동한 거리인데, 여기서 1년은 365.25일로 율리우스력 기준으로 1년(율리우스년)이다.[1] 정확히는 율리우스력 제정 이전에 사용된 로마 공화정이 제정한 역법의 1년도 평균 365.25일이었다. 하지만 그 방식이 훨씬 복잡했고 해마다 연월의 일수가 동일하지 않아 많은 어려움을 야기했다. 자세한 내용은 로마력 참조.[2] 당시 로마 귀족들은 남자가 성인이 되면 개인의 이름이라 할 수 있는 프라이노멘(praenomen)을 부모나 형제자매 등 직계 친족들 사이에서만 사용하였다. 해당인이 속한 씨족의 명칭인 노멘(nomen)이 실질적으로 성인 귀족 남자가 사회적으로 사용하는 이름이 되었다. 당연히 동시대 기준으로도 해당 노멘을 사용하는 인물이 한둘이 아니거니와, 심지어 로마인들은 (개인의 진정한 이름인) 프라이노멘조차도 열몇 개를 돌려가며 사용했기 때문에, 로마 역사 연구가들은 동명이인을 구분하는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다.[3] 태양 회귀년의 기준이 되는 지구의 공전 주기는 소수점 여섯 번째 자리부터는 매년 미세하게 변화하므로 정확하게 계산해 봤자 다음 연도에 다시 달라지므로 의미가 없다.[4] 극단적인 예로, 실제 춘분이 3월 11일에 발생했고 3월 12일이 보름날이고 그다음 일요일이 3월 13일이라고 한다면, '부활절'로 규정한 춘분이 지난 후에 오는 보름 이후 첫 일요일이 3월 21일보다 앞서서 부활절이 아니게 되었다는 부활절이면서 부활절이 아니라는 심각한 모순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5] 개신교와 정교회에서도 춘분 이후 보름이 지난 첫 일요일을 부활절로 기념했으니, 춘분을 3월 21일로 고정한 율리우스력을 고집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6] 다만, 러시아(당시 소련)는 1918년에 그레고리력을 바로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소련만의 혁명 달력을 사용하였고, 레닌에 이어 스탈린까지 죽은 1953년 이후에야 그레고리력으로 바꿨다.[7] 열강으로 꼽히는 나라 중에서는 러시아 제국과 후발 주자 일본 제국(1873년에 그레고리력 도입)만이 그레고리력을 쓰지 않는 문화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