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22 01:46:44

플라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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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플라멘 두상.png
플라멘 마르티알리스의 두상, 루브르 박물관 소장.

1. 개요2. 기원3. 플라멘의 구성원4. 특권과 금기5. 변혁과 쇠락

1. 개요

플라멘(flamen)은 고대 로마의 특정한 신을 섬기는 제사장이다.

2. 기원

고대 학자들은 '플라멘(flamen)'이란 단어의 기원에 대해 두 가지 설을 제시했다. 첫번째 가설은 로마 사제들이 쓰는 모자인 에픽스(Apex)의 밑부분을 둘러싼 양모를 가리키는 단어인 필라멘(filamen)에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제단에 피워져서 사제들의 보호를 받는 '신성한 불꽃'에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조르주 뒤메질(Georges Dumézil, 1898 ~ 1986)은 인도유럽어족 종교와 사회에 관한 저서에서 힌두교에서 성직자를 가리키는 산스크리트어 명칭인 브라만과 플라멘이 유사하다며, 플라멘은 인도유럽어족이 성직자들을 부르는 고유 명칭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브라만과 플라멘간에 뚜렷한 연관성이 있다는 증거가 부족하기에, 현대 학계에서는 이를 회의적으로 본다. 일부 학자들은 게르만어 동사 *blōt-a-("희생으로 명예를 주다, 희생하다")와 플라멘이 연결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티투스 리비우스 파타비누스로마 왕국 2대 국왕 누마 폼필리우스가 거듭된 전쟁을 치르면서 성격이 거칠어진 백성들이 법률과 도덕률에 쉽사리 익숙해지지 않는 것을 보고, 이들의 공격성과 잔인성을 완화하고 신들에 대한 경외심을 심어주기 위해 플라멘을 창설했다고 주장했다. 물론 누마 당대에 플라멘 체계가 갖춰졌다고 보기는 어렵고, 에트루리아, 이웃 라틴족, 켈트족, 움브리아인, 삼니움, 그리스인 등 이웃 종족들과 전쟁과 교류를 병행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신앙 체계를 참고하면서 점진적으로 발전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3. 플라멘의 구성원

플라멘은 총 15명으로 구성되었다. 이 중 3명은 플라미네스 마조레스(flamines majores)로 일컬어졌고, 12명은 플라미네스 미노레스(flamines minores)로 일컬어졌다. 플라미네스 마조레스는 오직 파트리키만 맡을 수 있었고, 플라미네스 미노레스 역시 로마 공화국 초기까지 파트리키만 맡았다가 플레브스의 권력이 강해진 끝에 노빌레스 계급이 출현하여 로마 사회를 주도한 후에는 노빌레스 가문에서 주로 배출되었다. 플라미네스 마조레스에 해당하는 플라멘은 다음과 같다.
  • 플라멘 디알리스(flamen dialis): 유피테르를 섬기는 제사장.
  • 플라멘 마르티알리스(flamen martialis): 마르스를 섬기는 제사장.
  • 플라멘 퀴리날리스(flamen quirinalis): 퀴리누스를 섬기는 제사장.

플라미네스 미노레스에 해당하는 플라멘은 다음과 같다.
  • 플라멘 카르멘탈리스(flamen carmentalis): 아르카디아의 여성 선지자로서 이탈리아로 건너온 후 여성의 출산을 도와주는 여신이 되었다고 전해지는 카르멘타를 섬기는 제사장.
  • 플라멘 케리알리스(flamen cerialis): 농업, 수확, 다산의 여신인 케레스를 섬기는 제사장.
  • 플라멘 파라케르(flamen falacer): 하늘을 관장하는 신인 팔라케르를 섬기는 제사장.
  • 플라멘 플로랄리스(flamen floralis): 곡물과 과일나무의 꽃을 보호하는 여신 플로라를 섬기는 제사장.
  • 플라멘 푸리날리스(flamen furinalis): 지하수와 우물을 수호하는 여신인 푸리나를 섬기는 제사장.
  • 플라멘 팔라투알리스(flamen palatualis): 팔라티노 언덕을 관장하는 여신 팔라투아를 섬기는 제사장.
  • 플라멘 포모날리스(flamen pomonalis): 과일과 정원의 여신 포모나를 섬기는 제사장.
  • 플라멘 포르투날리스(flamen portunalis): 문과 열쇠의 신이자 테베레강 강둑에 있는 밀 창고를 지키는 신 포르투누스를 섬기는 제사장.
  • 플라멘 볼카날리스(flamen volcanalis): 불, 화산의 신이자 대장장이의 수호신인 볼카누스를 섬기는 제사장.
  • 플라멘 볼투르날리스(flamen volturnalis): 시냇물과 분수의 신 볼투르누스를 섬기는 제사장.
  • 나머지 2명은 고대 기록에서 전해지지 않는다. 다만 프랑스의 역사학자, 언어학자, 고고학자인 카미유 줄리안(Camille Jullian, 1859 ~ 1933)은 나폴리에서 발견된 비문에 'flamine Virbiale'라는 문구가 있고 리볼리노에서 발견된 비문에 'flamine Luculare'라는 문구가 있는 점을 근거로 비르비우스[1]를 섬기는 플라멘 비르비알리스(flamen virbialis)와 루쿠스(Lucus, 신성한 숲)를 의인화한 신을 섬기는 플라멘 루쿠알리스(flamen lucularis)일 거라 추정했다.

플라멘 중 가장 높은 지위와 권위를 지닌 플라멘 디알리스는 최고 제사장인 폰티펙스 막시무스의 지명으로 선임되었다. 폰티펙스 막시무스는 사전에 로마 사제단 원로들로부터 3명을 추천받고 후보자의 자격을 면밀히 조사할 뿐만 아니라 '디알리스의 아내'로 선정될 후보의 부인 역시 조사했다. 플라멘 마르티알리스와 플라멘 퀴리날리스는 사제단의 추천으로 선임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플라미네스 미노레스는 민회 투표를 통해 선출되었다. 이렇게 선출된 인사들은 카피톨리누스 언덕에서 거행된 의식을 통해 '신들의 허락'을 얻음으로써 플라멘으로 확정되었다.

4. 특권과 금기

신들과 직접 소통할 수 있다고 간주되는 플라멘은 로마 사회에서 막강한 특권을 누렸다. 그들은 범죄자를 임의로 풀어줄 수 있었으며, 보라색 줄무니가 있는 토가인 '토가 프라이텍타(Toga Praetexta)'를 착용할 수 있었으며, 원로원 회의에서 먼저 발언할 권리를 인정받았고, 행사에 참석할 때마다 셀라 큐루일스(sella curulis: 두 쌍의 청동 다리가 받치는 접이식 의자)에 앉을 수 있었고, 릭토르를 대동할 수 있었다. 여기에 가장의 친권으로 처벌받는 것을 면제받는 등 다양한 특권을 누렸다.

하지만 플라멘은 여러 규제와 금기를 지켜야 했다. 우선, 플라멘은 반드시 유부남이어야 했으며, 플라멘의 아내인 플라미니카(flaminica)는 결혼 이전에 처녀여야 했다. 두 사람의 결혼 방식은 전통적인 로마 귀족의 결혼 형태인 콘파레티오(confarreatio)에 따라 행해져야 했다. 두 사람은 3일 이상 침대에서 떨어져 지낼 수 없었고 이혼할 수도 없었다. 플라멘에 오른 순간부터 그들이 맡은 신의 소유물이 되었으니, 이혼은 곧 신에게 불경을 저지른 것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2] 플라멘과 플라미니카는 제사를 치를 때 서로 다른 역할을 수행했다. 플라멘은 플라미니카가 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없었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였다. 또한 플라멘은 플라미니카 없이는 신성한 임무를 수행할 수 없었다. 둘 중 한 명이 사망할 경우, 남은 하나는 그 자리에서 물러났다.

플라멘은 희생제를 치르기 위해 짐승을 잡는 것 외에는 죽음과 관련된 모든 것과의 접촉을 금지했다. 일부 기록에 따르면, 플라멘과 플라미니카는 자연사한 동물의 가죽으로 만든 신발인 칼케이 모르티키니(Calcei Morticini)를 신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았다고 한다. 왜냐하면 신발 제조에 사용된 동물은 종교 의식에 쓰이지 않았고 신에게 바쳐진 것도 아니므로, 이 신발은 불결하고 신에게 무례한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또한 플라멘은 생고기, 염소, 개, 담쟁이 덩굴 등 비위생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것들을 만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봐서도 안 되었으며, 신전을 오랫동안 비워서도 안 되었다. 기원전 242년 집정관 아울루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제1차 포에니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시칠리아로 출진하려 했지만, 딩시의 폰티펙스 막시무스루키우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가 알비누스는 마르스 신의 플라멘(flamen)으로서 로마 시 내부에서 마르스를 모셔야 할 의무가 있는데 군대를 맡기 위해 신전을 떠나서는 안 된다고 반대해 출진하지 못했다.

플라멘 디알리스는 이렇듯 금기 사항이 많은 플라멘 중에서도 독보적으로 많은 제약을 받았다. 아울루스 겔리우스가 인용한 퀸투스 파비우스 픽토르의 글에 따르면, 디알리스가 직면한 금기 사항은 다음과 같았다고 한다.
  • 로마 시의 경계인 포메리움을 넘어 도시 바깥으로 나갈 수 없었으며, 말에 올라타거나 만지는 것도 안 되었고, 포메리움 밖에 집결한 군대를 보는 것도 금지되었다.
  • 사흘 밤 연속으로 자택 침대 밖에서 자는 것이 금지되었다. 이 규정 때문에, 디알리스가 지방 통치를 맡는 것은 불가능했다.
  • 죽음과 관련된 관직에 오르는 것이 금지되었다. 이 때문에 군대를 통솔하여 전쟁을 수행하는 집정관을 맡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 끝이 뾰족한 모자인 에픽스와 두꺼운 양모 망토인 라이나(laena)를 항시 착용해야 했다.
  • 타인과 맹세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 만물의 절대자인 유피테르에 종속된 몸으로서 인간과의 언약에 얶매이는 것은 불경하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 야외에서 벌거벗을 수 없었으며, 외출을 할 때 적절한 머리 장식을 써야 했고, 죽기 전에 머리 장식을 벗어야 했다.
  • 옷차림의 어떤 부분에도 매듭을 짓지 말아야 하며, 덩굴이 덮인 길을 따라 걸어서도 안 되었다.
  • 장례식에 참석하는 것은 허용되지만 시체를 만지거나 무덤에 들어가서는 안 되었다.
  • 음식 없이 식탁 앞에 앉는 것도 허용되지 않았으며, 개, 암염소, 담쟁이덩굴, 콩, 생고기를 만지거나 보는 것 뿐만 아니라 그 명칭을 입에 담는 것도 금지되었다.
  • 자유인이 아닌 사람에게 자신의 머리나 손톱을 자르게 해서는 안 되며, 잘려진 머리카락과 손톱을 아보르 펠리스(arbor felix: 성스러운 나무) 아래에 묻어야 했다.

플라멘 디알리스의 아내 플라미니카 디알리스 역시 남편에게 부과된 제약 사항을 준수해야 했고, 3단 이상으로 구성된 계단을 오르는 것이 금지되었다. 이는 남들에게 발목이 보이지 않게 하려고 그랬을 것으로 추정된다. 디알리스가 이토록 많은 제약에 걸린 것은 로마의 안위를 좌지우지하는 유피테르를 평생 동안 충실하게 숭배하는 사제로서 세상의 어떤 유혹도 받지 않는 환경을 조성하려는 의도로 기획된 것으로 추정된다.

5. 변혁과 쇠락

플라멘은 로마 왕국과 공화국 시기 내내 존경받는 인사들이었지만, 공화국 말기에 이르러 쇠락했다. 많은 플라멘들이 금기 사항을 어기고 정치에 뛰어들면서 '순수한 사제'로서의 위상이 손상을 입었고, 내전이 빈번하게 벌어지면서 많은 이들이 살해되었다. 특히 플라멘 디알리스를 맡다가 동료 집정관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킨나를 로마에서 축출한 현직 집정관 그나이우스 옥타비우스에 의해 기원전 87년 집정관에 선임된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메룰라는 킨나와 가이우스 마리우스가 로마를 무력으로 공략하고 옥타비우스를 살해한 뒤 기소당하자 유피테르 신전 안에서 정맥을 검으로 절단한 뒤 마리우스와 킨나 및 그들의 추종자들을 저주하면서 숨을 거두었다.

그 후 정권을 잡은 킨나는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플라멘 디알리스로 지명했지만, 술라의 내전을 통해 절대 권력을 확보한 술라가 이를 취소했다. 이후 디알리스는 오랫동안 공석 상태로 남았고, 다른 플라멘들 또한 유명무실해졌다. 그러다가 오랜 내전을 종식하고 로마 세계의 유일무이한 권력자가 된 아우구스투스는 기원전 13년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가 사망한 뒤 공석이 된 폰티펙스 막시무스를 맡은 뒤 세르빌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말루기넨시스를 그때까지 공석이었던 플라멘 디알리스에 선임하고 플라멘 체계를 재정비했다. 이때 플라멘 페르페투이(flamen perpetui)를 신설해 아우구스투스의 양아버지이며 신격화된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숭배하게 했다. 이후 아우구스투스가 사망하여 신격화된 후에는 플라멘 아우구스탈리스(flamen augustalis)가 아우구스투스 숭배를 책임졌다.

로마 제국 치세에서, 플라멘은 로마 시에서 제국 각지의 대도시로 확산되었다. 이들은 도시의 의식을 주재하면서 로마와 황제에 대한 충성을 표하고, 신격화된 황제를 기념하는 행사를 개최했다. 도한 종신직이었던 로마의 플라멘과는 달리 1년 동안 임기를 맡았다. 다만 플라멘이라는 칭호를 평생 가질 수 있었다. 알제리 팀가드(Timgad) 유적지에서 발견된 비문에는 플라멘을 역임한 인사 36명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3세기의 위기 시절 기독교가 로마 제국 전역에 확산된 후에는 기독교인 중에 플라멘이 된 이들이 간혹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4세기 초반에 소집되었다고 전해지는 엘비라 공의회에서는 기독교인 플라멘이 희생제로 자신을 더럽히거나 그 비용을 부담해서는 안 되며, 검투사 경기를 관람해서는 안 되며, 연극이나 댄스 쇼에 참여해서는 안 되고, 이를 어길 경우에 속죄해야 한다는 결의가 이뤄졌다. 콘스탄티누스 1세 이래로 기독교가 로마 제국의 대표적인 종교가 된 이후에도 플라멘이란 호칭은 서로마 제국이 무너질 때까지 사라지지 않았다. 이는 반달 왕국 치하에서 플라비우스 게미니우스 카툴리누스가 '종신 플라멘'이라는 내용이 담긴 알베르티니 서판이 제작된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1] Virbius, 그리스 신화의 영웅 히폴리토스와 동일시되는 로마의 신.[2] 일부 학자들은 율리우스 카이사르독재관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로부터 코르넬리아 킨나와 이혼하라는 권고를 받았을 때 이를 단호히 거부한 것은 이와 관련있을 거라 추정한다. 당시 플라멘 디알리스를 맡았던 그가 아내와 이혼한다면 유피테르에게 불경을 저지르는 짓이라고 여겼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