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1-04 01:23:50

가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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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1. 개요2. 맛3. 제조법4. 쇠퇴5. 호불호6. 유사 식품7. 여담

1. 개요


Garum / Liquamen

고대 로마에서 먹던 피시 소스의 일종. 다만 대부분의 고대 로마 문물이 그러하듯 기원은 고대 그리스로 그리스서는 가론이라고 불렀다.[1] 리쿠아멘이라고도 불렸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가룸의 흔적은 기원전 500년으로 이미 그 시절부터 꽤 퍼진 음식이었다고 한다.[2] 각종 요리에 맛을 돋우기 위해 썼다고 한다.

2.

가룸의 맛은 생선도 생선이지만 아래 까는 허브에 의해서도 좌우된다.

요리사 아피키우스(Apicius)의 기록을 보면 젓갈다운 감칠맛 이외에도 매운 맛이 나는 물건도 있었다고 한다.

만들어지는 방식이 소금에 층층이 묻어 절여 액즙을 내는 방식인만큼, 짜기가 이루 말할 수 없는 수준이라 로마의 철학자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가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멋 모르고 이 가룸을 먹다가 속을 버렸다고 불평하는 대목이 있다.

3. 제조법

강한 향의 향신료를 깐 항아리에 기름기 많은 생선과 소금을 손가락 두 마디 두께로 층층이 교대로 항아리가 가득 찰 때까지 깔아서 일주일 동안 햇빛을 쐬인 다음 20일 동안 막대로 휘저어가며 숙성시켜, 위에 뜬 액젓을 떠서 만들었다. 만드는 과정에서 발효가 왕성하게 일어나 지독한 냄새를 풍기므로 시내 외곽 지역에서 만들어졌다. 다만 숙성이 된 액젓만 떠내면 괜찮은 냄새가 나서 식용으로 쓸 수 있게 된다고 한다. 이렇게 액젓을 떠내고 아래 남은 고기 찌꺼기는 알레크(allec, alec)라고 불렀는데, 술지게미나 비지를 먹듯 빈민들이 이를 가져다 먹었다고 한다.

제조 방법은 다음과 같다.
  • 1. 기름기가 많은 생선을 준비한다.[3][4]
  • 2. 26~35 리터들이의 암포라(로마식 장독. 한국 장독으로도 대체 가능)와 같이 생선을 담아 발효시킬 만한 용기를 준비한다.
  • 3. 향이 강렬한 말린 허브[5]를 준비한다. , 코리앤더, 회향, 셀러리, 민트, 오레가노 등.
  • 4. 암포라의 바닥에 3을 깔아서 한 층을 만든다.[6]
  • 5. 4의 위에 생선을 담아 한 층을 만든다. 생선이 작으면 통째로, 크면 입구에 들어가게 토막쳐서 넣는다. 여기서 생선의 머리나 내장은 발라내지 않고 그대로 사용한다.[7]
  • 6. 5의 위에 소금으로 한 층을 만든다. 소금은 손가락 두 마디 정도 높이로 많이 쌓는다.[8]
  • 7. 암포라가 꽉 찰 때까지 4~6을 반복한다.
  • 8. 일주일 동안 햇볕을 쐬어 준다.
  • 9. 20일 동안 매일 8을 주기적으로 뒤섞어 준다.
  • 10. 위에 뜬 액체를 채취하여 요리에 사용한다.

근현대에 이르러 다시 제조되는 가룸은 대체로 위와 같이 기록에 남은 제조법을 토대로 복원한 것이다. 이탈리아 캄파냐 주에 있는 '콜라투라 디 알리치'라는 앤초비 소스가 가룸의 후예 뻘 된다는 주장이 있지만 진위는 불명.

2014년에 폼페이에서 발굴된 식료품점에서 가룸을 보관하던 항아리를 분석해서 사용되었던 허브와 생선의 종류를 알아냈다고 한다. 참고글

4. 쇠퇴

이처럼 오랜 세월 동안 로마인들의 식탁의 필수요소였지만 5세기 경 서로마 제국의 멸망과 함께 서유럽 일대에서는 점차 잊혀진 음식으로 사라져 갔다.

동로마 제국은 당연히 그 로마 제국이 계속 이어진 것인 만큼 여전히 가룸을 만들어 먹었다. 다만 제국 말기에 이르면 가룸 대신 murri라고 불리는 발효소스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murri는 곡물가루를 발효시켜서 만든 것으로 중세 아랍 지역에서도 널리 사용되었다.

15세기에 이르러 동로마 제국이 오스만 제국에 의해 멸망하자 가룸의 맥은 완전히 끊기고 말았다. 동로마를 정복한 튀르크족들은 내륙에 주로 살았고 유목 문화를 기반으로 하였다. 유목 민족들은 생선보다는 육상 동물의 고기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했기 때문에 생선을 재료로 하는 가룸은 낯설어서 수요가 없었던 것이다.[9] 다만 정복에 의해서라기보다는 이미 위에서 말한 murri로 대체되어 쓰이지 않게 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이 관점에 따르면 동로마 시대의 요리 문화는 오스만 제국 정복 이후에도 쇠퇴하기는커녕 고스란히 흡수, 융합되어 현대 튀르키예 요리그리스 요리의 바탕이 되었다고 한다. 사실 후자 쪽이 더 신빙성이 높은 게, 정복이 일어났다고 해도 피정복민들의 문화가 완전히 사라지거나 맥이 끊기기보다는 오히려 정복민들에게 영향을 주거나 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또 오스만 제국은 튀르크계가 세운 것은 맞지만 튀르크계라는 정체성을 딱히 강조한 적이 없으며, 그리스인들을 비롯한 다른 민족과의 통혼에 대단히 적극적이었고 그런 만큼 그들의 문화를 받아들이는 데에도 열심이었다. 물론 유목 문화가 하루 아침에 어디로 가는 건 아니지만 1453년쯤이면 동로마 문화를 이미 상당히 받아들인 상태였으며, 건축 같은 경우 14세기 중, 후반에 동로마 돔 양식을 그대로 가져다 쓴 건물이 건설되었다.

사실 냄새가 상당히 심한 음식이라 언제든지 유행이 끊길 위험이 있었을 것이다. 대구 같은 흰살생선은 절이기가 쉬웠고 냄새도 덜 나는 한편 기름이 많은 생선으로 그것도 내장과 머리를 버리지도 않고 만드는 가룸은 만들기도 번거롭고 냄새도 지독했다. 때문에 자주 먹던 시절에도 호불호가 지극히 갈리는 음식이었고 세월에 따라 배척될 수도 있다.

5. 호불호

아무래도 냄새가 강렬한 발효식품이라 로마의 음식 문화에 익숙지 않았던 이방인들이 먹기에는 다소 생경한 음식이었던 듯 하다. 예컨대 968년, 신성 로마 제국의 초대 황제 오토 1세의 사절로서 동로마 제국에 파견되었던 크레모나 주교 리우트프란트는 니키포로스 2세로부터 만찬을 대접받았는데, 음식에서 풍기는 가룸의 비린내를 견디고 품위를 지키느라 몹시 힘들어했다는 기록을 남겼다. 결국 리우트프란트는 모든 음식마다 잔뜩 뿌린 가룸의 비린내가 너무 역겨워서 음식을 거의 못 먹고 굶었다고 한다.[10]

발효식품은 대부분 평소에 늘 먹어온 현지인 이외에 외지인들한테는 적응이 힘들다. 현대에도 액젓을 듬뿍 쓴 김치나 삭힌 홍어, 취두부 같은 음식들이 대개 그렇다. 만약 현대인이 로마 제국으로 여행을 간다면 음식이 입에 안 맞을 가능성이 클 것이다. 물론 동남아시아 요리 등 전세계의 각종 피시 소스에 거부감 없는 식성이라면 좀 나을 듯하다.

6. 유사 식품

동아시아의 대표적인 조미료인 간장과 상당히 유사한 위치의, 제조법도 비슷한 물건이다.[11] 그것도 콩으로 만든 간장 이전에 많이 쓰이던 생선으로 만든 어간장과 별반 다르지 않다. 즉 가룸은 로마식 간장이라 봐도 과언이 아니다.

케첩의 어원이 되는 중국 요리 '꿰챱(규즙)'이 가룸과 비슷한 생선 액젓이었다. 대항해시대에서는 중국에서 만들어진 피시 소스가 유럽으로 오면서 값비싼 향신료로 둔갑하였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유럽인의 조상은 이러한 생선 액젓을 이미 만들어 먹었다는 것이다.

7. 여담

당시 기록에 따르면, 최고의 가룸은 이베리아 반도 즉 오늘날 스페인 지방에서 생산되었다고 하며, 여기서 출하된 암포라가 로마 제국 전역에서 발견되어 고대 제국의 물류 네트워크를 보여준다. 오늘날에도 스페인의 고대 로마 유적지에 가면 테마 상품으로 가룸을 파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그리고 화산으로 멸망한 폼페이는 이 가룸과 포도주가 주요 특산물이었다고 한다. 참고글[12]

로마인들은 물고기 촌충에 감염된 경우가 많았는데 목욕탕[13], 인분 비료[14]와 함께 가룸이 물고기 촌충의 주요 감염원으로 추정된다. 제작 과정에서 생선 내장을 그대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가룸은 각종 감염에 대해 민간요법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소화제, 살균용 연고, 피부 트러블 완화제 등으로써 효험이 있다는 인식이 퍼져 있었다고 한다. 현대 한국으로 치면 된장이나 목초액과 비슷한 취급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모두 산성 혹은 염기성을 띠어 약간의 살균 효과를 지닌다는 공통점이 있다. 차이가 있다면 목초액은 산성을 띠지만, 발효식품에 속하는 된장과 가룸은 알칼리성을 띤다는 점이다.


[1] 그리스어로 '-on'인 것 중 라틴어로는 '-um'에 대응되는 것이 꽤 많다. 가령 '스타디온-스타디움', '비잔티온-비잔티움', '무세이온-무세움' 등이 있다.[2] 출처 도해 식문화의 역사, 저자 다카히라 나루미[3] 그러니까 대구명태 같은 흰살생선은 안 되고, 참치, 장어, 청어, 고등어, 정어리 등의 등푸른생선이 많이 쓰였다. 참고로 최상품은 에 사는 잉어로 만든 것이었다고.[4] 폼페이 유적에서 발견된 가룸 항아리 중에는 유대인을 위한 코셔 푸드 기준에 부합하는(비늘이 있는) 생선으로만 만들었다는 광고 문구가 붙은 것도 있었다.[5] 일부러 말렸다기보다는, 과거에는 허브를 보관하려면 말리는 게 당연했기 때문이다.[6] 이후 과정에서 암포라 안의 내용물을 뒤섞을 것이기 때문에, 결국 가룸 전체의 퀄리티를 결정하는 향신료 배합이 3~4의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셈이다.[7] 이것이 가룸의 악취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동남아의 피시소스인 느억맘 중에는 물고기의 머리, 내장, 피, 뼈, 비늘을 제거하고 몸통살만 써서 만드는 종류가 있는데, 이렇게 만들면 확실히 악취가 덜하다.[8] 소금의 양도 중요하다. 소금이 너무 적으면 썩어버리고, 소금이 너무 많으면 발효가 저해되어 잘 익지 않거나 풍미가 떨어지게 된다.[9] 현재의 튀르키예 요리도 대부분 육류 요리가 주류이고 생선 요리는 그리스의 영향을 받은 음식들이다.[10] 출처: 비잔틴 제국 / 미셀 카플란 / 시공사[11] 권투암흑전 세스타스에서 로마인의 식탁을 소개하는데 가룸을 간장과 비슷하다고 서술하고 있다.[12] 일본 만화 로마 둘이서 살기서는 폼페이 태생인 주인공이 로마서 가룸을 보고 고향을 생각하고 추억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13] 일반적인 인식과 달리 로마 시대의 목욕탕은 온갖 기생충들이 들끓었다. 물을 자주 갈지 않았고, 뜨끈한 물로 데운다고는 하지만 아무 때나 펄펄 끓어서 식히지는 않기 때문이다. 현대 시대의 워터파크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14] 발효를 하지 않고 그냥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