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11-05 01:24:20

필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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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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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룸의 외형
1. 개요2. 성능3. 역사4. 종류
4.1. 개량
5. 지급6. 번외: 필룸 무랄레7. 번외: 현대의 필룸

1. 개요

Pilum

로마군 군단병의 제식 장비였던 투창이다. 영어식으로 읽어 필럼이라고도 한다. 길이는 1.5m~2.2m로 창날은 50cm~70cm, 손잡이는 1m~1.5m다. 무게는 2kg~5kg 정도. 매체에서 보이는 전형적 로마군은 스쿠툼과 필룸을 들고 글라디우스를 허리에 차고 있는 걸로 묘사된다.

2. 성능

파일:external/img3.wikia.nocookie.net/Pilum.jpg
필룸을 손에 쥐고 자세를 잡은 리인액터
중투척병기의 일종으로, 가늘고 긴 창날은 상대방 방패를 뚫고 그 뒤에 있는 사람까지 맞추는 것을 노렸다. 창대(손잡이)는 나무로 만들었으며 창날과 손잡이를 잇는 부분에 추를 달아 매우 무겁게 해서 타격력과 관통력을 높이기도 한 것으로 보인다.

가늘고 긴 창날쪽 목은 박힌 후 휘어져서 쉽게 뽑아낼 수 없고, 이것이 박힌 방패는 너무 무거워지므로 방패를 버릴 수밖에 없어진다는 것은, 좋게 말해 논란이 있다이고, 미신이라고 단정짓는 의견도 많다. 창날 끝의 삼각/사각날은 단단하게 열처리했으나 그 뒤의 가느다란 긴 창목은 연한 채로 놔뒀으니 전투 중 휘어지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고, 필룸이 박힌 방패가 무거워져 제대로 다루기 힘들어지니 방패를 버리도록 유도하는 효과도 생길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을 의도하고 설계했다는 주장에는 이견이 많으며 실물을 조사하거나 재현해 사용해본 연구가와 리인액터들은 이것이 미신이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다. 재현실험에서 던져서 박혔을 때 저절로 휘는 사례는 극히 드물지만 스쿠툼 정도의 방패를 관통하는 경우는 훨씬 많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방패를 무겁게 만들어 상대를 괴롭히기보다는 아예 방패를 관통해서 그 뒤의 사람을 죽이는 것이 훨씬 쉽고 합리적이다. 창두보다 가느다란 창목 부분은 창두가 방패를 관통했을 때 저항 없이 깊숙히 박히도록 하며, 창목 길이를 감안하면 방패를 몸 가까이 붙이고 있을 때 몸통까지 창이 박히게 되는 것이다. 고로 필룸의 구조는 휘어지는 것보다는 관통을 목적으로 설계했다는 것이 주 의견. 휘어진 채로 발견되는 유물들은 늪지 등에 의식으로 던지기 전 일부러 의도적으로 휘어서 넣은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필룸은 투창치곤 매우 크고 무거운 축에 속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창처럼 근접 전투용으로 사용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행군이나 경계근무 시에는 일반적인 창처럼 필룸을 들고 다녔다. 즉, 검으로 도저히 커버가 불가능한 부분인 대기병 대응력과 중거리 견제를 이 무기로 해결하는 것이며, 군단병은 접근전과 중장거리 공격까지 폭넓게 대응하는 것이 가능했다. 이런 이유로 인해 로마군은 전성기까지는 장거리 전투원인 궁병의 비중이 생각보다 낮았다. 고대 서양에서는 고도의 훈련이 필요한 활보다는 투창이나 다트를 많이 사용했다.

3.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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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룸 투척준비를 하는 로마군
필룸이 최초로 도입된 시기는 산악민족이었던 삼니움족과의 전투에서 패배하고 카우디움의 평화라 불리는 불명예스런 강화를 해야 했던 기원전 321년 이후다. 이후 삼니움족의 전법을 도입하여 군단병의 전법을 보다 유연하게 개량한 로마군은 여기에 삼니움족과 에트루리아인들이 사용하던 창날 부분이 긴 던지기 창을 새롭게 도입했으며 전체 군단의 4/5의 병사[1]에게 필룸을 장비시켰다.

접근해오는 적들에게 필룸을 던져서 짤짤이를 넣다가, 상황이 유리해지면 돌진해 접근전으로 들어가는 것이 로마군 전술의 기본이었다. 여기에 빈틈이 안 보이는 스쿠툼을 들고도 상대를 찔러댈 수 있는 검인 글라디우스도 중요한 입지를 가진다. 글라디우스는 칼이 짧기 때문에 초근접전에 매우 유리하다.

이후 필룸은 제정 말기에 베르툼이라는 다트로 무장변경하기 전까지 계속 로마군의 제식무장으로 장비된다. 이 베르툼의 경우 표준 규격이 없고 각자 취향대로 만들었는지 무게와 크기가 천차만별이라 무거운 축의 경우 180g~200g 정도이고 말이 다트지 정확하게 말하면 대형화살을 손으로 날리는 것과 크게 차이가 안난다. 다트라고 분류할 때는 중다트라고 말해야 할 정도. 어지간한 현대의 지정사수소총이나 경기관총급의 무게인 필룸 하나를 소지할 것을 5~6개씩 가지고 돌아다니면서 투척이 가능해졌으니 투척시의 화력이 늘었다. 단, 필룸이 가지는 장점인 비상시 1회용 대기병용 창의 역할을 더이상 바랄 수 없게 된 것은 큰 단점이 되었다. 대신 이 부분은 제정시절 파르티아 등과 붙으면서 보강한 원거리 전력과 제정 말기의 기병전력이 커버해 주며, 아예 보병들 자체가 창을 자주 들고 다니며 대기병용으로 사용했다.

4. 종류

필룸에는 가벼운 것과 무거운 것이 있었다. 가벼운 것은 멀리 던질 수 있었으며, 주로 먼저 가벼운 것을 던져 적의 기세를 누르고, 접근해서 무거운 것을 던져 적이 맞으면 좋고 방패로 막더라도 깊숙히 박혀 팔과 몸에 부상을 입히기 쉬우며, 필룸이 박혀 걸리적거리고 무거워지기 때문에 방패를 버릴 수밖에 없다. 그렇게 적들의 방어력을 저하시킨 후 글라디우스로 돌격해서 백병전에 돌입하는 것이 로마군의 주 패턴이었다. 물론 양쪽 다 접근전용으로도 사용하는 등 다목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충분히 훈련되었다.
이 중 가벼운 것을 필라(Pila)라고 부른다는 잘못된 오해가 있지만, Pila란 말은 필룸의 복수형이다. 즉 그냥 두 개 다 통틀어서 필라라고 하는 것이지 무게에 따라 투창의 이름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일본의 <판타지 라이브러리 시리즈> 등에서 저지른 실수인데 이게 그대로 한국에 그대로 수입되면서 국내 책/인터넷 문서들도 2020년대가 된 지금까지도 잘못 적고 있는 경우가 많다.

율리우스 카이사르갈리아 전기에서는 고지대를 이용하여 저지대의 상대에게 필룸 공세를 가하여 유리한 위치에 서기도 했다.

4.1. 개량

공화정기에 알려진 개량은 가이우스 마리우스에 의해 한 것으로, 창날과 손잡이를 고정하는 철못을 목재 리벳으로 바꿨다고 말한다. 하지만 고고학적으로 플루타르코스의 기록을 입증할 증거가 발견되지 않기에 현재 위 기록의 진위는 알 수 없다.

공화정 시기까지는 가벼운 필룸과 무거운 필룸을 가지고 다녔으나, 무거운 것은 점점 가벼워지고 가벼운 것은 점점 무거워져서, 결국 적어도 트라야누스 시대의 로마군들은 중앙에 무거운 추가 추가된 똑같은 모양의 필룸 자루 두 개를 들고 다니게 되었다.

또한 무게추가 하나가 아닌 둘 달린 것도 점차 보이게 되며, 어떤 이유에선진 모르지만 길이가 이전 시기에 비해 약간 짧아지게 된다. 또한, 필룸의 특징인 독특한 창날은 개성을 상실한 채 그냥 뾰족한 송곳 모양으로 변화하게 된다. 가장 마지막 버전의 필룸이 이것인데, 의외로 잘 알려져 있지 않으며, 몇 년 전의 오스프리 시리즈에서도 후기 로마군은 벌써 세베루스 황제 이후 시절에서도 필룸을 쓰는 게 보이지 않으나 상대적으로 최근 나온 책에선 이 독특한 필룸이 자주 등장한다.

적어도 율리아누스 황제 때까진 계속 썼던 걸로 보이며, 이후 시기, 즉 서로마 제국동로마 제국이 분열된 시기인 플라비우스 스틸리코 시기 로마군은 필룸 대신 플룸바타[2]로 부르는 마치 현대 스포츠 다트를 크기만 늘려놓은 듯한 짧은 투척 무기를 쓰게 된다. 그러나 당대인들은 이런 작은 투척 무기도 그냥 필룸이라고 자주 불렀다. 영어권에선 다트가 투창 전반을 의미하는 만큼 크건 작건 다트라고 호칭하기도 하니 유럽권에선 딱히 특이한 일이 아닐 수 있다.

5. 지급

한때 본 문단에선 ‘한 번 던지면 끝인 일회용 주제에 꽤 비싸서 병사들에게 인기가 없었다’, ‘전투 손실은 전부 국가에서 부담했으므로 인기가 없었다는 주장은 맞지 않는다’ 등 여러 서술이 충돌했었다. 확실하게 어느 쪽 서술이 옳은지는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있는데, 이는 로마군과 필룸의 역사가 매우 길고 로마군의 정책이 그 세월 동안 계속 변해왔기 때문에 확인하기 쉽기 않다. 현대 국군만 해도 부바부 효과가 매우 강해서 같은 사단 출신도 연대에 따라 ‘너네는 그렇게 꿀빨았냐/헬빨았냐’ 등으로 놀라기도 하는데, 새로운 황제가 취임할 때마다 정책이 극적으로 바뀌는 고대 로마시대는 말할 것도 없다. 어느 전쟁에서 싸우는지, 어떤 군단에서 복무하는지, 상여금 유무는 어떻게 되는지 등 여러 요인에 따라 필룸 지급 정책은 달라졌을 것이다. 그래도 정리하자면 ‘전투 손실은 국가가 부담했지만, 초기 지급과 평시 소모는 개인이 부담했다’ 가 현재로서는 정설에 가까운데, 뒤에 나오겠지만 이는 병사들에게 인기가 없었던 쪽에 더 가깝긴 하다.

군단병의 전대인 하스타티와 중반에 있는 프린키페스는 필룸을 가벼운 것과 무거운 것 모두 소지하지만 후위인 트리알리는 나이에 따른 체력 문제도 있기에[3] 둘 중 하나만 소지해도 되었다.[4]

공화국 시절의 로마군은 개인이 직접 필룸을 직접 구매하였다. 전쟁이 나면 동원되는 단기 복무 제도였기 때문에, 직업군인이 아니라 본업이 따로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로마군에 복무하기 위해 무기, 갑옷, 장비를 모두 부담하기 때문에 결코 가벼운 부담은 아니었다.

마리우스 개혁 이전에는 다른 로마군 병장기들과 마찬가지로 병사들이 직접 구입해서 써야했으나 마리우스 개혁 이후에는 국가에서 지급하는 표준 물자가 되었다.[5] 실제로 기원전 122년 가이우스 그라쿠스가 '국고에서 군복을 병사들에게 제공하고 그 비용을 봉급에서 공제하면 안된다'는 군법을 통과시켰고 공화정 말기 가이우스 마리우스의 군제 개혁 이후 명목상 무기, 장비, 의복 등은 지급되는 것으로 되어 있었지만 법령과는 달리 대부분은 무상지급되지 않았다. 그나마 징병제 말기에는 워낙 사람이 부족해서 재산이 거의 없는 병사도 전쟁터에 보내야 했으니까 국가가 일단 지급하기도 했지만 모병제 이후에는 병사들이 자기 장비값을 내는 공동구매가 정착되었으며, 물건을 선지급한 후 나중에 받는 봉급에서 일정 금액을 공제하면서 복무 기간중에 천천히 갚아나가는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필룸의 제작은 표준화되어 국가에서 직접 생산과 보급을 맡는 중앙화된 체계가 있었고, 대량 생산되어 단가를 낮췄다. 제정 시기 군단병들의 무구를 국가가 조달하는 체계는 갖추어져있던 것으로 보이는데 R. MacMullen은 제20군단이 주둔하였던 와일더스풀에서 용광로, 단조 도구, 철광석 등이 발견되었으며 2005년 J. Penrose의 논문 'Rome and her Enemies'에 따르면 2~3세기 경 이집트 방면 군단 작업장에서 "스파타 10개(spathar[u]m fabricatae Ⅹ), 어떤 것 6개([?]̣ fabricatae Ⅵ), 어떤 것 125개([?]peractae CXXV)를 제조했다." 라는 기록이 남아있다.

그러나 로마군은 개인 과실이 아닌 전투 중 장비 손실은 무상으로 재보급하는 방식을 채택했다.[6] 겉보기에는 별 문제가 아닌 것으로 보이지만 행간에 진실이 있다. 전투 중 장비 손실에 국한한 것이다. 국가가 비용절감을 위해 꼼수를 쓴 것이다.

따라서 초기 장비 마련 및 유지보수는 모두 로마군 개인의 몫이고 전투를 제대로 하려면 훈련과 연습이 필요한데 여기서 발생하는 장비 마모와 파손도 모두 로마군 개인이 담당해야 하며 오직 전투 중에만 국가가 지원한 것이다. 따라서 법령과는 달리 무기를 국가에서 무상으로 제공하는 현대의 시스템이 아닌 봉급에서 공제하는 형태였던 로마 공화정의 그것과 비슷했던 것으로 보인다.

애초에 고대 로마 자체가 고대 시대의 국가다. 당연하게도 로마군이 고대 시대 기준으로 훌륭했다는 소리지 현대적인 기준에서 훌륭한 것은 절대로 아니다. 고대 시대의 대부분의 군대가 전사(戰士)라는 개념하에 복무중인 장병들이 스스로 무기와 장비를 마련하고 기초적인 병참도 스스로 마련하고 국가는 부족한 분량만 약간 도와주는 답없는 경우가 압도적인 상황에서 로마군은 그래도 봉급도 주고 체계적인 군대 구조하에서 정해진 복무기간도 있으며 일단 돈만 있으면 제식 장비를 구입할 수 있으며 나중에 퇴역할 때 퇴직금을 주고 로마 시민권이 없다면 수여하는 식의 복지가 잘 되었다는 것이 선진적이라는 것일 뿐이다.

따라서 고대 로마에서 항상 나타난 상황이지만 애초에 법문이 작성되지 않는 불문법이 대다수이고 법문이 있더라도 후대에 판례나 지시나 칙령등으로 수정이 복잡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법률을 제정해놓고 실제로는 여러가지 이유로 그런 것이 있었나 하고 일부러 망각상태로 묻어버리면서 지키지 않는 경우는 매우 흔하다. 이런 이유 때문에 정말 중요한 법은 호르텐시우스 법처럼 폐지와 재입법을 반복하게 된다. 마리우스의 법률도 사실상 그렇게 묻혀버린 것이다.[7] 아무리 로마라고 해도 국가가 도저히 비용을 감당할 수 없을 지경이었으니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실제로 이러한 상황을 뒷받침하는 증거는 넘친다. 제국의 전성기에 살았던 타키투스의 기록에 따르면 당시 군단병 봉급 공제품목으로 군복, 무기, 침구가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네 황제의 해 당시 군단병들이 내전이 끝난 줄 알고 무기와 군복을 반납하였다는 것을 고려하면 이렇게 제대 군인들이 남기고 가거나 초기 지급되는 갑옷이나 칼 등은 국가가 제공했을 가능성이 높지만 이후 소모되는 장비는 개인 돈으로 해결해야 했다. 그래서 로마군은 봉급 중에서 보통 70%를 식비와 의복비 등의 생활비로 소모했으며, 특히 갑주랑 무기 유지비가 가장 많이 들었다.

따라서 실제로 가용한 자금이 크게 부족했으므로 성실한 병사는 이 돈을 낭비하지 않고 저축할 수도 있었지만 대체로 돈이 모자라는 병사가 많았다. 또한 경제가 잘 돌아가던 제정 중기와 오현제 시기에는 그래도 나았지만 그 이전과 이후에는 봉급 체불이 꽤 자주 있었다. 4개월에 1회 주는 방식으로 1년에 3회 주는 봉급이 밀리는 일이 많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클라우디우스 고티쿠스 황제가 이미 사용 기한이 지난 무기를 병사들이 사용하는 형편이라고 원로원에 서한을 보낸 바 있었는데, 병사의 봉급으로 무기를 교체하도록 되어 있었으므로 3세기 중엽부터 봉급 체불이 자주 이루어져 무기 교체도 어려워지는 형편이 되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심지어 제정 극초반의 티베리우스 황제 즉위 시기에 라인강과 판노니아 군단의 파업에 가까운 반란이 벌어졌는데 판노니아의 도나우 군단 반란을 주도한 페르켄니우스의 군복과 장비를 우리 봉급으로 사야한다!가 군단병들에게 바로 먹혀들어갔으며, 요구 사항 중 전역 기간을 지난 병사들에 대한 즉각적인 퇴직금 및 전역 조치가 있었음을 고려하면 아우구스투스에 의해 세심하게 손질받은 초기 로마군단의 운영도 로마군에 복무하는 개인이라는 입장에서는 절대로 만만치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설상가상으로 병사들이 구매해야 하는 '장비'에는 무기와 갑옷뿐만 아니라 의복, 신발, 텐트, 이불, 식기, 건초 같은 군생활에 필요한 것들 대부분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러한 봉급 부족은 티베리우스 즉위 직후의 병사 반란의 중요한 원인 중 하나이기도 했고, 군 당국도 이걸 잘 알고 있어서 처우 개선 요구로 인한 평시 집단 행동에 대해서는 의외로 처벌이 가벼운 경우가 많았다.[8] 로마가 안정기에 접어든 후에도 박봉 문제는 심각했는데, 병사들이 무기를 비롯한 각종 장비에 대해 공제 받고 나니 돈이 부족하다는 기록이 많이 발견되고 있다. 제1차 유대-로마 전쟁 당시 마사다 요새 공략전에 참전했던 한 로마 기병의 급료 명세서를 보면 급료 50데나리우스로 식비, 의복비, 군장 구입비, 말 사료비 등을 지출하고 나자 한 푼도 남지 않았다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그 직후인 81년 알렉산드리아에서 주둔하던 군단병의 봉급 명세서를 보면 침구, 군화, 식량, 가죽 끈, 군복 심지어 축제 비용까지 공제되었다고 되어 있으며 소 플리니우스의 기록에 따르면 무기 구입 비용으로 103 데나리우스를 공제하였는데 당시 군단병 연봉이 225 데나리우스였다. 제국의 재정이 제일 풍족하였던 153년 안토니누스 피우스 황제 시대에 갈리아 기병 소대의 병사가 무기 구매 비용으로 50 데나리우스를 빌렸다는 기록이 남아있는 만큼 로마가 제일 잘 나가던 원수정 시기와 오현제 시기때 조차 각종 지급 및 생활 품목을 공제하고 나면 군단병들이 저축을 한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어려웠던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문제 때문에 로마 내전이 벌어지면 항상 군단병이 반란에 대규모로 가담하면서 일이 커지며 새롭게 즉위한 황제는 로마군에게 상여금을 엄청나게 뿌려야 했다. 아우구스투스가 기존의 봉급을 3배 올려서 1년치 봉급인 연봉이 225 데나리우스가 되었으며 1년 중 3회에 걸쳐서 나누어서 지급했어도 그것만 가지고는 로마군의 생활을 이어가는 것이 힘들었던 것이다.

이렇게 로마군이 박봉에 시달리면서 무기, 갑옷, 장비 및 의식주에 해당하는 거의 모든 것이 선지급 후에 후불식 할부로 대금을 갚아나가는 상황에서 필룸만 무제한으로 무상지급될 리가 전혀 없다. 물론 전투시에는 필룸을 국가가 지급해주니까 인터넷에서 나도는 것처럼 전투시에도 필룸을 아껴써야 할 수준은 아니겠지만 평상시가 항상 문제였다. 입대 후 처음으로 지급받는 필룸부터 할부로 대금을 납부해야 하고 훈련이나 연습시에 마모 및 파손되는 필룸도 로마군이 자기 봉급에서 사비로 구입해야 하니 그렇지 않아도 돈 들어갈 곳이 천지에 널린 로마군 입장에서는 필룸이 좋아보일 리가 없다. 덤으로 무기와 갑옷과 장비가 부서진다고 훈련이나 연습에 혼자서 빠질 수도 없기 때문에 강제 구매가 실행되버린다.

애초에 글라디우스라는 검을 들고 스쿠툼이라는 방패를 든 로마군의 입장에서 가장 위험한 경우인 적의 기병이나 전차가 몰려오는 상황에서 방진을 짜고 기병대를 견제하기 위해 꼭 필요한 창 역할을 하는 무기가 필룸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로마 후기에는 필룸이 결국 다트형 투척 무기 플룸바타 혹은 베르툼[9]으로 교체되었고, 궁수와 기병대로 방진을 지키는 쪽으로 바뀌었던 것이 이유가 있던 것이다. 단순하게 로마군 병사들이 필룸을 선호하지 않았다면 그런 의견 따위는 무시하고 병사들에게 강매를 해서라도 필룸이 그대로 로마군 장비로 남아있었겠지만 필룸에 들어가는 비용을 로마군 개인이건 로마라는 국가건 간에 감당할 수 없을 지경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포기된 것이다.[10]

6. 번외: 필룸 무랄레

Pilum Murale/Sudis

로마군이 사용하던 진지구축용 나무말뚝의 이름이다. 일반적으로 말뚝을 의미하는 라틴어 Sudis로 불렸으나 외형이 쌍날창 처럼 생겼기 때문에 '성채용 창'이라는 의미의 필룸 무랄리스로 불리기도 했다.

줄지어 바닥에 박아넣고 울타리를 만들거나 세개를 하나로 묶어 체코 고슴도치 같은 장애물을 만드는 방식으로 사용하였다.

단순 토목장비에 불과하지만 이름과 형태 때문에 무기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참조자료1 참조자료2

7. 번외: 현대의 필룸

해외 리인액트먼트계에서 로마군은 가장 큰 인기를 자랑한다. 그래서 지금껏 발견된 필룸 종류의 거의 전부를 구입하는 것도 실제로 할 수 있다. 워낙 수요가 많기 때문이다. 다만 잘 알려진 미신처럼 필룸같이 창목이 휘어지거나 나무 리벳이 부러지는 기능은 없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사람들 모두 거품을 문다. 리인액트는 재현이지 실전이 아니다. 창을 못 쓰게 만들 이유가 없는 것이다. 필룸 한 자루에 싸게는 99달러에서 보통 150달러 정도 가격인데, 만만한 금액은 아니다.


[1] 2/5를 차지하는 하스타티와 또 2/5인 프린키페스는 필룸을 장비했고, 나머지 1/5인 트리아리는 일반 장창을 장비했다.[2] Plumbata, 이것을 쓰는 병사를 플룸바타리(Plumbatarii)라 불렀다.[3] 마리우스 개혁 이전 로마군은 나이에 따라서 전위-중위-후위가 결정되었다.[4] 마리우스 개혁 이전의 트리알리는 가벼운 것 대신 4m쯤 되는 하스타(hasta)로 무장했다. 장창병의 특성상 무거운 것은 사용하지 않는다.[5] Adrian Goldsworthy, The Complete Roman Army (2003)[6] Yann Le Bohec, The Imperial Roman Army (1994)[7] 동로마 제국유스티니아누스 1세로마법 대전을 편찬하기 전까지는 로마법 중에서 어떤 것이 존재하는지, 어떤 것이 폐지되었는지, 어떤 것이 아직도 효력이 있는지 찾아보는데만 엄청난 자료를 찾아봐야 했으며 이런 것도 고대 문서가 다량으로 남아있는 수도의 도서관 같은 곳에서나 가능했다.[8] 물론 전장에서의 명령 불복종은 사형 내지는 그에 상응하는 최고 수위 처벌이었다.[9] 단 이런 세부명칭에 당대인들은 그다지 집착하지 않고 그저 필룸으로 흔히 불렀다.[10] 전투시의 필룸 사용은 모두 로마라는 국가가 부담해야 하고 로마군 병사가 전투중에 전사하기라도 하면 못받은 비용은 모두 로마의 국고 손실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