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7-03 11:32:24

수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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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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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France.Ponte.Du.Gard..jpg
프랑스 동남부 론 강의 지류 가르(Gard) 강을 지나가는 '퐁 뒤 가르'(가르 교).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다.
파일:튀니지 수도교 4.jpg
튀니지 북부 자구완 ~ 카르타고 간의 수도교 유적
파일:1280px-Aqueduct_of_Segovia_08.jpg
스페인 세고비아의 수도교. 역시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다.
파일:로마의 수도교.jpg
Aqueduct
한자 水道橋
기원후 1세기에 로마에 물을 공급한 수로 시스템을 어찌 경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당시 로마 시에는 1985년의 뉴욕 시보다 훨씬 많은 물이 공급되었다.
A. 트레버 호지, 『로마의 수로와 급수 Roman Aqueduct & Water Supply』 中
전쟁은 슬프게도 언제나 공학에 도움을 준다. 그러나 전쟁 국가의 공학에는 예외 없는 경향이 있다. 건전한 사회에서는 공업 설계가 더욱 스마트 해지지만, 전쟁 국가에서는 규모만 더욱 비대해진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민주주의 국가들은 레이더를 생산하고 원자를 분열시켰다. 독일의 기초 연구는 이 분야에서 훨씬 뒤져 있었고, 영국을 태울 수 있을 만큼 커다란 렌즈나, 치명적일 정도로 크게 울리는 종 같은 것을 만들려는 계획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렌즈는 제도판을 벗어나지 못했고, 종은 전쟁이 끝날 무렵에 욕조 안의 쥐를 죽일 수 있는 정도였다). 로마 공학도 정교함이 전혀 없었다. 로마 도로는 직선으로 뻗어나갔다. 산에 이르면 스탈린의 정면 공격처럼 완고하게 산꼭대기를 넘어갔다. 그리스 병사들은 지형에 적합하게 진지를 구축했으나, 로마 군대는 하루 행진이 끝나면 알프스가 되었건 이집트가 되었건 언제나 똑같이 진을 쳤다. 만일 지형이 군대 관료에서 정한 유일한 모델에 일치하지 않으면 그만큼 지형에 피해를 입혔다. 지형을 로마 제국 기준에 맞을 때까지 파헤쳤기 때문이다. 로마의 수로는 그보다 몇 세기 전 고대에 사용했던 것보다 컸지만, 극도로 빈약한 수리학 지식으로 관리하였다. 알렉산드리아헤론(Heron)이 물시계, 수력 기관과 두 개의 실린더가 있는 물펌프, 그리고 이게 관한 저서를 남긴 훨씬 뒤에도 로마인들은 마치 흐르는 물의 부피가 속도와는 관계가 없다는 듯이, 여전히 수로의 용량을 흐름의 단면에 관한 측도의 퀴나리아(qunaria)로 설명하고 있다. 수로에서 큰 관으로 끌어다 쓰는 사용자들의 요금 계산에 똑같은 단위가 사용되었다. 로마 기술자는 단면을 두배로 하면 물의 흐름은 두배 이상이 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것이다. 헤론이라면 이와 같은 어리석은 실수는 결코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다.
페트르 베크만[1], <파이의 역사>[2]
1. 개요2. 수도교 목록
2.1. 로마의 수도교
2.1.1. 아피아 수도(Aqua Appia)2.1.2. 구 아니오 수도(Aqua Anio Vetus)2.1.3. 마르키아 수도(Aqua Marcia)2.1.4. 테풀라 수도(Aqua Tepula)2.1.5. 율리아 수도2.1.6. 비르고 수도2.1.7. 알시에티나 수도2.1.8. 클라우디아 수도2.1.9. 신 아니오 수도2.1.10. 트라야나 수도2.1.11. 안토니아나 수도
3. 갤러리

1. 개요

파일:튀니지 수도교 5.jpg파일:튀니지 수도교 1.jpg
튀니지 자구완 수도교 유구의 항공 사진과 물이 지나가던 수도교 내부 모습

수도교는 기본적으로 수로의 일부이다. 수원지에서 물이 필요한 곳 (주로 대도시)까지 물을 끌어올 때에 계곡같이 움푹 파인 곳을 지날 때에 건설된다. 다만 건축물이 즐비한 도심에서도 건물과 길을 피하기 위해 높은 수도교를 만들어 목욕탕 등으로 곧장 연결시킨다. 위의 사진 전자는 계곡을 지나기 위함이고 후자는 도심의 길을 건너기 위함이다. 여담으로 위의 두 수도교는 모두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주로 로마 시대에 유럽 지중해 세계 각지에 지어진 수도교가 유명하고, 기원전 1세기 ~ 기원후 4세기에 지어진 수도교가 19세기까지 쓰이기도 하였다. 따라서 원형경기장과 가도와 함께 로마 건축술의 대표로 꼽힌다. 로마 외에도 인도 남부의 함피 (비자야나가라 제국 시기), 이란 (사산 제국 시기), 요르단의 페트라 (나바테아 왕국) 등지에 수도교가 지어졌으나 시대적으로나 기술적으로나 로마 수도교를 앞서지 못한다.

중세 유럽에서 고대 로마 수준의 수도교를 건설, 유지하지 못한 건 여러가지 요인이 있다. 로마시대에 콘크리트를 한 차례 개발해 수도교 만들 때 쓰다가 서로마 제국 멸망을 전후해 기술이 한 번 잊혀졌기도 하고[3] 물이 흐르는 관도 채굴, 제련은 에스파냐, 브리타니아 등지에서 하고 제조는 이탈리아에서 하는 식으로 공급망이 있었는데 유럽을 통일했던 제국이 찢어지면서 공급망도 무너지고 납관 사용의 전승도 끊겼다.

구 동로마 제국 영토이자 오스만 제국의 영토이던 지역은 오스만이 계속 고쳐 쓰고 새로 설치하기도 했다. 그리고 로마제국의 본진 이탈리아에서는 로마 근교의 수도 중 일부는 아직도 로마시대의 것을 써먹고 있는 구간이 있다.

고대에는 충분한 공간이 필요한 풍력을 사용하거나 흐르는 강에 수차를 대서 펌프나 양수기를 작동시켜야 해서 수도교를 사용하였지만, 현대에는 전기만 들어온다면 아무곳에나 전기 펌프를 설치해서 느려진 유체에 압력을 더 줄 수 있기 때문에 지하로 매설된 상수도 파이프로 대체되었다. 다만 농촌 지역에는 농수로를 연결하면서 간혹 수도교와 같이 계곡 사이를 연결하는 경우는 더러 있다.

이후 절대왕정기 프랑스에서도 베르사유 궁전의 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센 강에서 물을 퍼올린 후 8km 가량의 수도교를 지어 물을 끌어들이기도 했다.

2. 수도교 목록

2.1. 로마의 수도교

상수도의 수원을 정하는데 몇가지의 조건이 있다.
  1. 산의 샘터나 호수에 물을 길어다가 육안으로 검사하는데 이때 물이 맑고 색깔이 없고 불순물이 없어야 한다.
  2. 수원 주변 지역을 조사한다. 초목의 상태, 토양의 색깔도 조사한다.
  3. 수원지 주변의 주민들의 건강을 확인하는데 안색이 좋은지, 눈빛은 맑은지, 골격의 상태나 환자나 불구자가 눈에 띌 만큼 많은지 등을 조사한다.
  4. 길어온 물을 청동제 항아리에 부어넣어서 며칠간 방치해두어서 썩기 쉬운 물인지 조사한다.
  5. 물을 끓이면 거품이 나거나 불순물이 떠오르는지 조사한다.
위의 조건을 모두 만족해야만 수도교의 수원으로 정해진다. 그리고 샘의 표면이 아닌 그 밑으로 땅을 파서 맑은 물을 공급하였다.
그리고 완만하게 경사를 만들어서 마모를 방지하였으며 대부분은 지하의 갱도를 파서 지하로 수돗물이 지나가게 하였다. 가끔 사이펀의 원리를 이용하여 수도를 짓기도 했는데 짧은 곳은 수도교 대신에 건설하기도 했다.

물은 먼저 불순물 침전을 위해 저수조를 거쳐 각 도시의 중앙 수조에서 3개의 목적으로 분배되었다. 공공용, 황제용, 개인용으로 나뉜다. 공공용은 도시 곳곳의 분수나 공동수조에 물을 공급해서 주민들이 여기서 물을 길어서 식수나 생활용수로 사용할 수 있도록 했고 전체 수량의 44.2%가 분배되었다.
황제용은 주로 공중목욕탕이나 정부기관과 황실에서 사용하였다. 이름은 황제용이지만 대부분 공중목욕탕의 물을 공급하는 목적이 강했는데 로마시대의 공중 목욕탕은 원래 황제가 시민들에게 선물한 것이라서 공공용이 아닌 것이다. 전체 수량의 17.2%가 분배되었다.
개인용은 각 가정에 돈을 주고 설치한 것으로 주로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하던 것으로 각 도시의 수도국에 신청을 하여 수도국 직원들이 신청자의 집까지 수도관을 연장하였다. 전체 수량의 38.6%가 분배되었는데 공사비의 전액을 신청자가 부담해야해서 주로 부자들이 거주하는 도무스라고 불리는 저택에 공급되었다.

2.1.1. 아피아 수도(Aqua Appia)

총길이는 16.617km, 그 중 지하로 뚫린 곳이 16.528km이다. 수도교로 있던 부분은 89m정도이며 평균 경사도는 0.06%다. 하루 공급량은 73,000㎥에 달하였다.
기원전 312년 당시 로마의 감찰관이었던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카이쿠스[4]가 로마에 인구가 늘어가고, 그에 따라 물 사용량도 늘어나면서 이를 감당하기 위해 수도망을 건설을 하였다. 그리고 수도의 명칭을 아피우스 본인의 이름을 따와 아피아 수도라고 명명하였다.
185 : 1 의 비율로 지하의 비율이 높다. 이는 수온 상승을 방지하고 적들이 파괴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수원은 로마의 동부 산지의 샘물이며 그 밑으로 16m가량을 파서 깨끗한 물이 바로 수도에 공급되도록 하였다. 수질은 상당히 깨끗하고 수량도 풍부해서 주로 로마의 시내에 물을 공급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2.1.2. 구 아니오 수도(Aqua Anio Vetus)

기원전 272년에 착공한 아니오 수도[5] 총길이는 63.680㎞이며 지하길이는 63.352㎞ 지상길이는 328m, 하루 공급량 175,920㎥을 공급한다.
수원은 로마에서 북쪽으로 약 3km 떨어진 테베레강에 흘러드는 아니오 강(지금의 아니에네강)의 상류의 시냇물을 수원으로 삼았다. 재무관 두명이 같이 건설을 한 탓에 수원인 아니오강의 이름을 따서 아니오 수도라고 명명되었다.
수질은 들쭉날쭉했는데 아피아 수도처럼 지하수를 수원으로 한 것이 아니고 시냇물을 수원으로 한 탓에 맑은 날에는 수질이 괜찮았지만 비가 오는 날에는 탁도가 심해서 마시기가 어려웠다.

2.1.3. 마르키아 수도(Aqua Marcia)

포에니 전쟁이 끝나고 기원전 144년 늘어나는 로마의 인구를 감당하기에는 물이 모자랐다. 그래서 새로운 수도가 필요해지면서 법무관 마르키우스의 감독하에 마르키아 수도가 지어졌다.
총길이 91.64km, 지하길이 80.56km, 지상 길이 11.08km이며 이 중 수도교로 지어진 구간이 9.6km다.
하루에 185,600㎥의 물을 공급할 수 있었다.
수원은 아니오 강의 발원지의 샘물을 바로 연결하였기 때문에 수질은 웬만한 현대의 수돗물 못지 않았다. 1870년에 복구하여 지금도 사용되는데 지금은 한번 정수시설을 거친다고 한다. 그리고 원래보다 송수량이 60%가 늘어나면서 지금은 302,400㎥에 이른다.

2.1.4. 테풀라 수도(Aqua Tepula)

기원전 125년에 지어진 테풀라 수도는 총길이 17.745km, 하루 공급량 18,000㎥의 로마의 수도교 치고는 좀 작은 편에 속하는 수도로 수원은 알바노 언덕이다. 그리고 섹스투스 율리우스 프론티누스는 물이 미지근하고 사람이 마시기에는 부적합했다고 서술한다. 그래서 다른 수도교의 물과 혼합하여 시원하게 만드는 방법을 주로 사용하였다.

2.1.5. 율리아 수도

율리아 수도는 카이사르의 암살 이후 로마제국의 황제의 자리를 두고 다툰 내전이 끝나고 아우구스투스가 집권한 시기에 건설된 상수도다. 로마시내의 동부지역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지어졌다.
총길이 22.9km, 지하길이 12.5km, 지상길이는 10.4km이며 이중 9.6km는 수도교로 되어있다. 하루 송수량은 48,240㎥이었다.
수질은 그런대로 좋은 편이었다. 수원은 로마의 남동쪽 그로페라타 지역이다.
그리고 이 율리아 수도는 로마가 제정이 시작되고서 최초의 수도이며 아우구스투스와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씨족 명을 붙였다.
이 수도부터는 아그리파가 조직한 240명의 노예로 이루어진 건설·토목 기술자 집단이 감독과 유지·보수를 담당하고 건설회사(소키에타스라고 불렸다.)들이 입찰을 통해 공사를 따낸 기업이 건설을 하는 방식으로 바뀌게 된다.
그리고 이 기술자들과 아그리파가 지은 건물들 중에는 판테온, 로마 최초의 대규모 공중 목욕탕인 아그리파 목욕탕과 그 서쪽에 자리한 공원인 아그리파 호수, 빕사니우스 회랑 그리고 프랑스의 그 유명한 퐁 뒤 가르 역시 아그리파가 현재의 프랑스 의 주민들에게 수돗물을 공급하기 위해 지었던 수도교다.

2.1.6. 비르고 수도

아그리파가 만든 두번째 수도는 바로 비르고 수도이다. 현재도 사용되는 아쿠아 베르지네베르지네 수도라는 이 상수도는 기원전 19년에 지어진다.
총 길이는 20.946km이며 지하길이는 19.104km, 지상길이는 1.842km이며 하루 공급량은 103,846㎥ 정도다. 이 중 수도교로 되어있는 부분은 1km정도이다.
이 비르고 수도는 아그리파 목욕탕마르스 광장 일대에 물을 공급하는 목적으로 지어졌다. 로마의 북쪽에서 로마로 들어와서 지금의 스페인 광장에서 판테온 남부에 있는 아그리파 목욕탕까지 가로질러 흘렀다. 나중에 마르스 광장 일대로 연장되었다. 수질은 마르키아 수도 못지않은 훌륭한 품질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비르고 수도는 538년에 로마 공방전 때 파괴되어 버렸고 그 뒤로 계속 버려진 상태가 되었다. 나중에 1453년에 로마 교황 니콜라우스 5세가 재건하게되었고 베르지네 수도로 다시 기능을 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현재도 스페인 광장과 트레비 분수 그리고 로마 시내의 분수들에 물을 대는 역할을 하고 있고 로마의 구 시가지에 수돗물을 여전히 공급하고 있다. 특이한 점은 염소 소독을 하지 않는데 계속 분수에 물이 흐르는 고대 방식을 그대로 유지하기 때문이다.
참고로 비르고 또는 베르지네의 뜻은 소녀 또는 처녀를 뜻하는 단어다. 이 수도를 짓기 위해서 토목기사들이 수원을 찻던 중 우연히 만난 한 소녀가 맑은 물이 솟아나는 샘을 알려주었고 이를 기리는 뜻에서 비르고 수도라고 하게 되었다.
아그리파는 이 수도가 완공된 후 7년 뒤인 기원전 12년에 죽는데 그가 이끌던 240명의 노예 기술자들은 죽은 친구를 기리는 뜻으로 아우구스투스가 이들의 신분을 기사계급으로 승격시켰다.

2.1.7. 알시에티나 수도

기원전 2년에 완공된 알시에티나 수도는 아그리파가 사망한 지 10년뒤에 완공되었다. 이 수도교부터 아그리파의 기술자들이 기사계급이 된 이후 완공된 첫 상수도이기도 하다.
총길이 32,9km, 지하길이 32.39km, 지상길이 510m이며 하루 공급량은 15,680㎥이다.
수원은 로마의 서북쪽에 있는 마리티나노 호수의 중간에 갱도를 파서 고가 수도를 통해 곧장 나우마키아라고 하는 저수지로 흘러가고 여기서 테베레강 공업지역으로 공업용수를 공급하였다. 이를 이용해 각종 물레방아가 여러공장에서 사용되었다. 내부에 방수처리를 위해서 시멘트로 포장되어있었고 여기서 여러공장에 수도를 통해 물을 공급하였다. 참고로 이 수도는 공업용수를 공급하려고 만든 것이기 때문에 식수로는 완전히 부적합했다.

2.1.8. 클라우디아 수도

칼리굴라가 늘어나는 로마의 인구를 감당하기 위해서 서기 38년 두 개의 수도를 건설을 발표한다. 그러나 칼리굴라는 41년에 근위대에 암살되고 공사는 중단되었는데 그래도 건설 속도가 지금의 이탈리아와는 다르게 빠른 공사 속도를 자랑하는 로마여서 상당 부분 완공이 되었다. 결국 클라우디우스 1세가 공사가 중단된 지 6년 만에 건설을 재개한다. 그리고 서기 52년 8월 1일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생일에 클라우스디우스 황제의 수도교라는 뜻에 클라우디아 수도(Aqua Claudia)가 건설된다.
총 길이는 68.9km이며 지하 53.8km, 지상 15.1km다. 이 중 수도교인 부분은 9.6km이다. 수질은 좋은 편이었고 하루에 19,196㎥의 공급량을 자랑했다.
수원은 아니오강의 상류지역인 카이룰레우스와 쿠르티우스 연못이다. 이후 클라우디아 수도는 7년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와 81년 티투스 황제가 전면 개보수를 거친다.

2.1.9. 신 아니오 수도

클라우디아 수도와 마찬가지로 칼리굴라가 서기 38년에 로마에 수돗물을 공급하기 위한 목적으로 착공하였으나 칼리굴라의 암살로 공사가 중단되었다가 클라우디우스 황제 서기 52년 8월 1일 클라우디아 수도와 함께 준공되었다. 수원은 아니오강의 시냇물이었다. 총길이 87.17km이며 지하 '73.2km, 지상 13.97km이다. 수도교로 되어있는 부분은 9.64km이다. 하루 공급량은 196,627㎥이라는 엄청난 송수량을 자랑했다.

2.1.10. 트라야나 수도

2.1.11. 안토니아나 수도

3. 갤러리

파일:B10-Valens-Aqueduct-4.jpg
튀르키예 이스탄불의 발렌스 수도교
파일:시리아 로마 이탈리아.jpg
시리아 하마의 수도교
파일:튀니지 자구완.jpg
튀니지 자구완 수도교

[1] 체코, 미국의 전기공학자, 자유지상주의 저술가로 환경주의자들에 반대하여 원자력 발전을 옹호했으며 상대성 이론을 비판하기도 했다.[2] 대중서이면서도 로마, 종교(특히 가톨릭), 나치즘, 공산주의 등에 대한 반감이 드러나 있다.[3] 콘크리트가 다시 발명된 건 근대에 포틀랜드 시멘트를 발명하면서였다.[4] 아피아 가도로 유명하다.[5] 새 아니오 수도가 건설되며 Aqua Anio Vetus로 개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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