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11 11:22:49

내전기(율리우스 카이사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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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arii de Bello Civili(라틴어)
라틴어 원문

1. 개요2. 내용3. 평가4. 번역본5. 여담

1. 개요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기원전 49년 루비콘 강을 건넌 이후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가 이끄는 원로원 세력과 벌인 내전의 경과를 다루고 있는 책. 카이사르 본인이 직접 저술했다.[1] 갈리아 전기와 함께 카이사르의 양대 저작으로 유명하다.

2. 내용

내전의 자세한 진행과정에 대해서는 카이사르의 내전 항목을 참고하자.

총 3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2] 각 권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제삼자가 아니라 내란의 참가자, 그것도 한 쪽 진영을 이끈 지도자가 쓴 글이니 철두철미하게 주관적인 글이다. 우선, 내전에 앞서 루비콘 강 도하 직전까지 원로원을 무대로 벌어졌던 카이사르가 이끄는 민중파와 폼페이우스가 이끄는 원로원파 사이의 정치적 암투를 서술하는데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당연히 카이사르는 자기 자신을 원로원의 정치적 음모에 의해 발목이 잡혀 어쩔 수 없이 루비콘 강을 도하하게 된 희생자로 묘사하면서 자신의 정당성을 독자들에게 부각시킨다.

또한 상대 진영의 우두머리인 폼페이우스는 대차게 비난한다. 폼페이우스가 원로원 파로 갈아탄 것을 카이사르가 갈리아 전쟁에서 거둔 막대한 성과에 대해 질투심을 느꼈기 때문이라 묘사한 것은 기본이고 내전 초기에 유리한 지역[3]을 자신의 지지세력으로 갖고 있었음에도 전략적인 식견이 부족해서 자멸했다는 언급도 있다. 뭐 어느 정도는 사실이긴 하다...

그렇다고 폼페이우스를 절대악으로 묘사하는 것은 아니어서 폼페이우스가 파르살루스 전투에서 패배하고 망명한 이집트 왕국에서 파라오와 그의 신료들에게 배신당하여 암살당한 사건을 놓고는 폼페이우스를 살해한 자들의 잔혹함과 비도덕성을 신랄하게 비난하고 있다.[4]

3. 평가

과장이 아니라 기원전 1세기 로마에서 나온 최고의 사료이자 산문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최고의 산문일 수밖에 없는 것이 문장력 하면 로마 시대 전체를 통틀어서 키케로와 어깨를 나란히 했던 양반인데다가 카이사르의 내전을 다룬 1차 사료가 본인의 이 책이나 키케로의 서간 몇몇을 제외하고는 거의 전무한 상황인지라 최고의 사료일 수밖에 없다.다만 갈리아 전쟁기와 달리 군사적인 행동과 그 근거에 대한 서술이 책 속에서 꽤나 빈약한 것을 아쉬워하는 역사가들도 무척 많다.

어찌보자면 이는 그럴수밖에 없는게 이민족, 외적과의 싸움이었던 갈리아 전쟁과는 달리 이건 동족과의 내전을 기록한 글이기에 모든 걸 있는 그대로 털어놓기에는 정치적 부담이 꽤 상당했을 것이다. 즉 내용 전체가 거짓말을 한 것도 아니지만 진실을 얘기한 것도 아닌 것으로 판단될 수도 있는 것. 그래서 일부 현대 사학자들은 이 책의 내용 하나하나가 다 교묘하게 카이사르에게 유리하게 왜곡됐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뭐 진실은 저 너머 저승에 있는 카이사르만이 알 듯...

4. 번역본

범우사에서 출판된 박광순 역의 '카이사르 내란기'와 사이에서 출판된 김한영 역의 '카이사르의 내전기'가 있다. 번역의 질은 김한영 역이 평이 좋으나 박광순 역은 내전기에서 이어지는 알렉산드리아 전기, 북아프리카 전기, 히스파니아 전기까지 모두 번역되어 카이사르가 치른 전투를 1차 사료로 모두 접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카이사르의 저작 번역중 라틴어 원문 번역으로 가장 번역의 정확성이 높은 천병희 역은 '갈리아 원정기'만 번역된걸 보면 세 가지 번역본은 양과 질에서 각기 장단점이 존재한다 볼 수 있다.

5. 여담

  • 나폴레옹이 무척이나 사랑한 책. 다만 디라키움 공방전같은 경우 카이사르의 오판[5]을 비판하기도 하면서 자신이 좀 더 천재적이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고.
  • 카이사르 특유의 간결한 문체가 돋보인다. 괜히 라틴 산문문학의 정수로 <갈리아 전쟁기>와 함께 꼽히는 게 아니다.
  • 이후에 일어난 알렉산드리아 전쟁이나 북아프리카의 폼페이우스 잔당과의 전쟁[6]에 대한 책은 카이사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썼는데 카이사르가 이 부분에 대한 책을 쓰기도 전에 암살당해 미처 책을 쓰지 못했기 때문이다. 폼페이우스파의 잔당까지 모조리 처리한 이후 카이사르가 암살되기까지는 불과 1년도 걸리지 않았다.
  • 중세를 거치면서 소실된 뻔 했고, 오늘날 전해지는 것도 완전하지는 않다. 최소한 16페이지 정도가 사라졌다고 한다.

[1] 클레오파트라와 나일강 여행을 하는 와중에 지었다.[2] 당시에는 오늘과 같은 디자인의 책이라는 개념은 로마시대에는 없었다. 둘둘 말린 두루마리 형태가 그들이 부르는 책이었다. 이 두루마리가 총 세개로 나뉘어서 출판된 셈[3] 경제적으로 풍족한 그리스, 아나톨리아 및 인적자원이 풍부한 히스파니아 등등.[4] 실제로 이집트 측에서 폼페이우스를 살해한 것은 그들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다손 치더라도, 정치적·도의적으로는 결코 용납되기 힘든 만행이었다. 비록 비참한 패장 신세가 되었다곤 하나 정치적으로 엄연히 로마의 전직 집정관이었으며, 도의적으로도 이집트 왕가는 폼페이우스에게 빚이 있었다. 그렇게 비겁하게 초법적으로 살해하는 것은, 아무리 폼페이우스가 정적이라곤 하나 카이사르 입장에서도 용납할 수 없는 행위였다. 일단 폼페이우스의 죽음에 대한 묘사는 담담하고 건조하게 '죽음을 알았다'라고 사실만을 쓰고 있지만, 실제로는 상당히 분노했을 것이다. 드라마 ROME에서도 폼페이우스를 죽인 것을 잘한 일인양 떠벌이는 이집트 왕가에게 카이사르가 그야말로 대노하는 모습이 묘사된다.[5]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적은 병력으로 몇배나 많은 폼페이우스의 병력을 포위하려고 했다. 결국 포위전은 실패로 끝났고 카이사르는 도주할 수밖에 없었다.[6] 소 카토가 이 전쟁 패배 이후 자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