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로마군 기병과 보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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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후기 로마 제국의 지방군. 리미타네이 혹은 리펜세스로 불렸으며 단어적 의미로도 변경(리메스)의 부대라는 의미이다. 기원후 3세기부터 기존 레기오/프라이토리아니 체제를 코미타텐세스/팔라티나와 함께 서서히 대체하다가 6~7세기 이슬람 침공 당시 붕괴되었다."이전 레기오가 리미티네이로 전락하고 코미타텐세스는 기병위주로 새로 창설했다"는 세간의 오해와 다르게 코미타텐세스/팔라티나와 함께 모두 옛 군단, 보조병단의 후예이다.
2. 역사
3세기의 위기 전후로 황제들은 옛 군단들에서 정예부대, 기병대를 차출해 분견대(웩실라티오)를 구성했고, 옛 군단들의 본대는 계속해서 제국의 국경 요새지대(리메스)를 중심으로 주둔하고 있었다.이러한 백여년간의 점진적 변화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군제개혁 때 공식화되는데, 옛 군단의 정예 분견대들이 모여 만든 기전 야전군들이 '"코미타텐세스'"로 편제되었고, 옛 주둔지의 군단들은 "리메스의 부대들"이란 의미의 리미타네이가 되었다.
제국의 방어선은 대규모 침공을 맞이할 시 각 지역의 군정총독인 '둑스'가 리미타네이 군단을 이끌고 방어하다, 야전사령관 '코메스'가 이끄는 코미타텐세스 군단들이 기동하여 적을 격퇴하는 형식을 취했으며, 원정이 필요할때는 코미타텐세스 기동군단들이 진격하며 필요할 시 리미타네이의 지원을 받았다.[1]
그렇기에 코미타텐세스와 리미타네이가 유사한 군단명과 군단상징을 공유하고 부대번호만 다른 경우들도 흔했으며, 세간의 오해와 다르게 "양측 모두" 그냥 '레기오'라고 불리는 경우가 많았다.
4세기까지는 리미타네이 또한 대우와 봉급이 적었을 뿐 전업 군인이었던 리미타네이는 5세기부터 지방에서 징집한 파트타임 군인으로 전락했다. 하지만 이때까지는 부족하긴 해도 봉급 지불은 서로마 멸망까지 꾸준히 이어졌다. 서로마 멸망 직전인 460년대, 성 세베리누스가 약탈자들에게 공격당할 뻔했다 로마 본토에서 마지막 봉급을 받고 돌아오는 길이던 리미타네이 부대에게 도움을 받았다는 기록을 남겼다.
하지만 6세기 유스티니아누스 대제가 봉급 지불을 중지하면서 그저 무보수의 지방 징집군을 의미하게 되었다. 이후 100여년 뒤 이슬람 침공에서 동로마의 지방장악력이 붕괴하며 리미타네이 또한 붕괴되었다.
[1] 리미타네이 중 정예부대는 (가칭)코미타텐세스 부대라는 뜻인 프세도코미타텐세스로 불리며 기동부대와 함께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