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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성지 관리를 담당하는 예루살렘 교회의 수장. 현재 예루살렘 총대주교는 교회별로 정교회 총대주교와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 총대주교, 그리고 가톨릭 측의 라틴 총대주교까지 총 3명이다.예루살렘 교회는 "모든 교회의 어머니"라고 불린다. 그 이유는 오순절에 예루살렘에서 사도들에 의해 교회가 세워졌으며, 복음이 이곳에서 전 세계로 퍼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로마 제국과 유대인들의 분쟁 때문에 예루살렘 교회는 쇠락해갔고, 초대 교회 5대 관구 중 로마 교황좌,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좌,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좌, 안티오키아 총대주교좌가 각각 가톨릭, 정교회, 콥트 정교회, 시리아 정교회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반면 예루살렘은 특정 교파의 구심점 역할은 하지 못하고 현재 성지 관리만 하는 상태이다.
2020년 기준 이스라엘 인구의 2.17%는 그리스도인이며, 이 중 과반수인 1.27%는 가톨릭, 0.46%는 정교회, 0.14%는 개신교, 기타 0.44%이다.
2. 공통 역사
사도행전이나 바울로 서간을 보면 예루살렘 교회의 첫 번째 지도자는 '의인 야고보'이리라는 정황이 드러난다.[1] 또한 초기 그리스도교의 교부 에우세비오(Eusebius)는 저서 <교회사>에서 야고보가 예루살렘 교회의 초대 주교였다고 언급했다.[2]
예루살렘은 초창기 그리스도교의 총본산이자 중심지였지만, 이내 인접한 대도시 안티오키아에서 교회가 급성장하고 뒤이어 2차에 걸친 유대-로마 전쟁을 통해 예루살렘 도시 자체가 몰락함에 따라 예루살렘 교회의 세력도 줄어들었다.
로마 제국에서 그리스도교가 공인된 후 로마 제국 치세 아래 그럭저럭 무난한 위치가 되었다. 이후 예루살렘은 카이사리아 관구에 속했다가 451년 칼케돈에서 소집된 칼케돈 공의회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와 함께 총대주교좌 교회로 설정되었다. 하지만 총대주교좌로 정해진 후 쏜살같이 서열 2위까지 올라간 콘스탄티노폴리스와 달리 예루살렘은 계속 5위에 머물렀다. 그래도 단성론에 관해서 아예 교회가 반토막난 알렉산드리아와 안티오키아에 비하면 홍역을 좀 덜 치른 편이다.